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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굴마라경 제4권
[여덟 가지 모습을 갖추면 처음 배우는 이라고 하지 않는다]
앙굴마라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로서 몇 가지 모습을 갖추어야만 처음 배우는 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는 앙굴마라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여덟 가지 모습을 갖추면 처음 배우는 이라고 하지 않는다.
무엇이 여덟인가?
첫째는 법을 앎이요,
둘째는 생각하여 지닐 줄을 앎이요,
셋째는 부모를 잘 받듦이요,
넷째는 스승의 은혜를 앎이요,
다섯째는 모든 나쁜 소견을 싫어함이요,
여섯째는 온갖 상을 냄과 업신여김과 조복되지 않음과 좋지 못하고 깨끗하지 못한 물건을 멀리함이요,
일곱째는 음욕을 생각하지 않으며 꿈 속에서도 역시 그 생각을 내지 않음이요,
여덟째는 계율을 공경하고 존중하게 여김이니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이 여덟 가지 모습을 갖추면 처음 배우는 이가 아니라 할 것이다.
또 보살마하살이 여덟 가지 모습을 갖추면 처음 배우는 이가 아니라고 할 것이다.
무엇이 여덟인가?
첫째는 대승법을 연설함이요,
둘째는 여래장을 분명하게 연설하고 싫어하거나 버리지 않음이요,
셋째는 재물을 탐내지 않음이요,
넷째는 인자[慈]하며 불쌍히 여기며[悲] 기뻐하며[喜] 놓아버리며[捨] 참음[忍]이요,
다섯째는 일체 중생을 마치 외아들과 같이 보는 것이요,
여섯째는 선지식(善知識)을 가까이함이요,
일곱째는 악지식(惡知識)을 멀리함이요, 여덟째는 세속의 이익에 대하여 만족할 줄 앎이니
보살이 이와 같은 여덟 가지 모습을 갖추면 처음 배우는 이가 아니라고 할 것이다.
또 보살이 여덟 가지 모습을 갖추면 처음 배우는 이가 아니라고 할 것이니,
무엇이 여덟인가?
첫째는 편히 위안시키되 상대의 정도를 알아서 잘 말해줌이요,
둘째는 실없는 짓과 실없는 말을 하지 않음이요,
셋째는 번뇌가 줄고 희박하여 앎이요,
넷째는 일체 경을 듣고 앎이요,
다섯째는 수면을 항복 받음이요,
여섯째는 게으르지 않음이요,
일곱째는 부지런하고 방일하지 않음이요,
여덟째는 항상 계율을 좋아함이니
보살이 이와 같은 여덟 가지 모습을 갖추면 처음 배우는 이가 아니라고 할 것이다.
또 보살이 여덟 가지 모습을 갖추면 처음 배우는 이가 아니라고 할 것이니
무엇이 여덟인가?
첫째는 진실함이요,
둘째는 깨끗하여 깨끗한 일 익히기를 좋아함이요,
셋째는 빛나고 윤택함이요,
넷째는 단정함이요,
다섯째는 여자를 멀리함이요,
여섯째는 친척을 멀리함이요,
일곱째는 악을 들으면 두려워할 줄 알고 이런 저런 악에 괴롭혀지면 듣고는 몸에 털이 모두 곤두섬이요,
여덟째는 중생들을 불쌍히 여김이니
보살이 이와 같은 여덟 가지 모습을 갖추면 처음 배우는 이가 아니라고 할 것이다.
또 보살이 여덟 가지 모습을 갖추면 처음 배우는 이가 아니라고 할 것이니
무엇이 여덟인가?
첫째는 부처님의 말씀과 마군의 말이 다른 것을 잘 앎이요,
둘째는 경전 아는 이를 공경함이요,
셋째는 계율과 계율 아닌 것의 차이와 그 숨은 뜻을 알음이요,
넷째는 여래의 비밀한 말씀을 잘 앎이요,
다섯째는 여래의 비밀한 말씀을 앎이요,
여섯째는 세간의 일에 순종하는 것을 잘 앎이요,
일곱째는 여래가 항상 변치 않음을 잘 앎이요,
여덟째는 보살의 나쁜 일과 나쁜 일 아닌 것을 잘 알며 때와 장소를 잘 알아서 스스로 능란함이니
보살이 이와 같은 여덟 가지 모습을 갖추면 처음 배우는 이가 아니라고 할 것이다.
이상의 마흔 가지 모습을 몸과 생각과 법으로 성취한 보살이라면 처음 배우는 이가 아니라고 하나,
만일 마흔 가지의 공덕이 없거나 만일 반만 되거나 반도 안 된다면 그 남녀는 대승법에 머무른 것이 아니며, 또한 여러 보살의 무리에 들지 못한 것이라고 알아야 하니,
그러므로 보살의 행은 매우 어려운 것이다.
저 보살에게는 어떤 수승한 공덕이 있는가?
그는 애욕에 대한 생각이 없으며 꿈에서조차 마음을 일으키지 않나니 이 사람에게는 모든 각지(覺支)의 수승한 공덕이 있다고 알아야 한다.”
[여래장]
그때 문수사리는 앙굴마라에게 말하였다.
“여래장이란 어떠한 뜻이 있는가?
만일 일체 중생에게 모두 여래장이 있다면 일체 중생이 모두 마땅히 부처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일체 중생이 모두 죽이고 도둑질하며 음행하고 거짓말하며 술을 마시는 등 좋지 못한 업을 짓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일체 중생에게 모두 불성(佛性)이 있으면 마땅히 동일한 때에 해탈을 얻어야 할 것이며,
만일 불성이 있다면 마땅히 5역죄를 짓고 일천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만일 나[我]와 나의 계(界)가 있다면 마땅히 온갖 존재[有]를 제도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세간에는 나가 있을 수 없고 계(界)도 있을 수 없으니, 온갖 법에 나가 없는 것이 바로 불교인가 하오.”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일체 중생에게 여래장이 있으나 한량없는 번뇌에 덮인 것이 그릇 안에 있는 등불과 같다.
또 문수사리여, 비유컨대 한 조복자(調伏子)가 있는데 가섭(迦葉)여래께서 그에게 수기하시되,
‘7년 후에는 꼭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어 바른 법으로 다스리고 교화할 것이며, 나도 이 뒤 7일이면 꼭 열반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심과 같으니라.
그때 조복자는 그 수기 주심을 듣고 기뻐 날뛰면서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일체지(一切智)께서 나에게 수기하시기를, 꼭 전륜성왕이 된다고 하셨으니 나는 지금 그것을 의심하지 않겠다’ 하고서,
곧 자기 어머니에게 말하였다.
‘저에게 어육과 젖과 낙(酪)이며 깨와 팥 등의 온갖 좋은 음식을 주십시오. 제가 힘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한꺼번에 온갖 음식을 함부로 먹다가 스스로 살아가지 못하고 비명에 죽었다.
어찌 생각하는가?
문수사리여, 저 부처님께서 거짓말을 하신 것인가, 일체지가 아닌 것인가?
그 사람은 참으로 전륜성왕이 될 선근과 과보가 없는 것인가?”
문수사리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그는 본래의 나쁜 업으로 이렇게 죽게 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한 말을 하지 말 것이니 그는 비명으로 죽었을 뿐이요, 본래의 나쁜 업 때문이 아니다. 문수사리여, 저 부처님께서 과거의 나쁜 업보를 알지 못하고 수기하셨겠느냐? 과거의 나쁜 업보가 없거늘 지금 스스로 허물을 저질러서 목숨을 잃게 된 것뿐이다. 이와 같도다.
문수사리여, 만일 남자와 여인이
‘나의 몸 안에 여래장이 있으니 저절로 해탈되어야 할 것이며, 나는 마땅히 악을 지을 것이다.
만일 이와 같이 악을 짓는다면 불성이 해탈을 얻는 것이냐, 해탈을 얻지 못하는 것이냐’고 생각한다면,
위에서 말한 저 조복자와 같아서 참으로 왕이 될 수 있는 성품이 있지만 되지 못한 것과 같다. 왜냐 하면 방일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불성(佛性)이 해탈 못하는 것도 그와 같아서 저 중생들이 많이 방일하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없는 것이었느냐? 그건 아니다. 전륜왕이 되는 과보처럼 실제로 불성이 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거짓말을 하셨느냐? 그건 아니다. 중생들이 거짓말을 하고 온갖 방일한 짓을 하며 법을 듣고도 방일하기 때문이니 자기의 허물과 악 때문에 성불하지 못한 것이다.”
문수사리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일체 중생에게 본래의 업이 없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그에게 본래의 업이 있다 하여도 이 경을 조금만 들으면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 쌓인 죄가 모두 다 소멸하리라.
왜냐 하면 여래께서는 한량없는 아승기겁부터 큰 서원을 세우시되,
‘일체 중생 가운데 제도 못한 이는 제도 시킬 것이며, 해탈 못한 이는 해탈시킬 것이다’라고 하셨나니
이 서원과 선근으로 여래의 지혜 광명이 비추는 곳에는 한량없는 아승지의 죄가 모두 다 소멸한다.
또 문수사리여, 비유컨대 온갖 구름과 안개가 덮여 지나가 해가 나타나지 못할 때에는 온 세간을 덮고 가리우지만 햇빛이 조금만 나타나면 온 세간의 어둠과 가리움이 다 사라짐과 같나니,
아승지의 큰 죄가 쌓여 이 경(經)의 해가 나타나기 전에는 일체 중생이 나고 죽음에 윤회하지만,
이 경의 해가 나타나면 아승기의 악과 큰 어둠이 쌓였더라도 여래의 항상 변치 않는 여래장에서는 그것이 한번 손가락 튀기는 순간에 없어지며,
만일 희롱하여 웃으면서 말하거나 딴 짓을 따랐거나 외도에 쏠렸거나 바라이(波羅夷)와 무간(無間)의 나쁜 업과 아승기의 죄라도 잠깐만에 모두 다 없어질 것이다.
왜냐 하면 석가모니여래의 이름만 들으면 비록 발심을 못했으나 이는 벌써 보살이기 때문이다. 왜냐 하면 여래의 수승한 서원은 세간을 모두 나의 소유라고 여기며 제도되지 못한 이들을 모두 제도를 얻게 하며 바른 법으로 교화하여 모두 깨닫게 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수사리여, 여래의 이름만 들은 이도 모두 보살이 될 것이니 그들은 스스로 번뇌를 속히 끊을 뿐만 아니라, 내가 얻은 몸도 얻게 될 것이다. 문수사리여, 내가 말한 게송과 같으니라.
내가 이미 도를 말했으며
근심과 슬픔의 독 가시 빼냈으니
그대들은 마땅히 받아 행해야 하리.
이는 바로 여래가 하신 말씀이라네.
[성문의 도와 보살의 도]
내가 말하는 도는 어떠한 도인가?
그 도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성문의 도와 보살의 도이다.
저 성문의 도는 8성도(聖道)를 말하고
보살의 도는 일체 중생에게 모두 여래장이 있다고 말한 것이다.
나는 차례로 모든 번뇌를 끊고 불성을 증득하여 그야말로 변동이 없으며 참으로 즐겁도다.
만일 번뇌를 끊지 못했더라면 항상 나고 죽음에 바퀴돌듯 하였으리라.
‘내가 이미 도를 말했으며 근심과 슬픔의 독 가시 빼냈으니’라고 한 데서
근심과 슬픔은 번뇌를 말하고, 가시를 빼냈다는 것은 여래를 말하니 나는 한량없는 번뇌를 끊어 없애고 큰 의왕(醫王)이 되었으므로 그대들은 마땅히 나에게 받아 배워야 하고 나는 당연히 그대들에게 여래장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대들은 응당 받아 행해야 하리’라고 함은 숨기고 말한 뜻이요,
‘이는 바로 여래가 하신 말씀이라네’라 함은 너희들을 속이지 않고 너희들을 속이지 않았다는 것을 밝힘이니,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시는 것이 우담바라[優曇鉢]꽃과 같고 그를 믿게 되는 것도 항하(恒河)의 모래에 금 좁쌀과 같으며, 또한 눈먼 거북이 뜬 나무 구멍을 만나는 것과 같아서 여래ㆍ응공ㆍ등정각(等正覺)의 여래장(如來藏)경을 만나게 된 것이니
나고 죽음과 수명과 업과에 대하여 속지 말고, 그대들은 스스로 온갖 존재[有]와 일체 번뇌의 병을 벗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는 여래가 하신 말씀이라고 하였다.
모든 착한 법 부지런히 닦으며
온갖 나쁜 마음 항복시켜야 하나니
복 닦기를 게을리하는 이는
마음이 나쁜 데에 빠져 버린다네.
이 게송은 내가 성문들을 위하여 말한 것이다.
또 여래장은 매우 얻기가 어렵다. 세상에 이처럼 얻기 어려운 것은 없으니 여래장을 마땅히 빨리 관찰해야 한다.
이와 같고 이와 같이 마음이 나쁜 데에 빠져 있는 비구도 그 자성(自性)만은 청정하거니와 마음 마음에 나쁜 스승에게 배운 허물이어서 다섯 번뇌[五垢]가 우두머리 되어 많은 번뇌들이 앞뒤로 둘러싸고 있다.
어떤 것을 다섯 번뇌가 우두머리 되어 많은 번뇌들이 둘러싸고 있다 하는가?
이른바 탐욕과 성냄과 수면(睡眠)과 들뜸[掉]과 의혹이 그것이다.
이 다섯 번뇌가 마음을 파괴하니, 근본이 되는 이 다섯 번뇌와 그에 따르는 모든 번뇌를 깨끗이 제거하려고 하면 자성의 청정한 마음에 대하여 방편과 힘을 부지런히 닦아야 할 것이며, 방편을 부지런히 닦고 수다라(修多羅)를 비방하지 말며 일천제 짓을 하지 말 것이며, 방편을 부지런히 닦아서 스스로 제도해야 할 것이니 이러한 뜻에서 저 마음에 한량없는 객진(客塵)번뇌를 근본부터 빨리 뽑아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의식인 법은 행(行)보다 앞서서
의식이 법보다 수승하여 법을 냈나니
의식인 법을 청정하게 믿으면서
만일 말하거나 행한다면
그림자가 물체를 따르듯
쾌락이 저절로 따르리.
이 게송은 내가 성문들을 위하여 말한 것이니 여래장의 이치를 말한 것이다.
의법(意法)을 자성이 청정하다는 쪽으로 말한다면 여래장이 일체법보다 수승하다는 뜻이다.
일체법은 여래장이 지어내는 것이며 의법(意法)을 깨끗하게 믿어 모든 번뇌를 끊는다면 참 나[我]의 경지를 본다는 것이다.
만일 여래장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끗이 믿은 후에 말하거나 행하며 부처를 이룰 때에 말하거나 행하여 온 세간을 제도한다면 사람이 자기 그림자를 보듯이 여래장을 보는 것도 그와 같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림자가 물체를 따르듯 한다고 말했다.
의식인 법은 행(行)보다 앞서서
의식이 뜻보다 수승하여 법을 냈나니
의식인 법이 나쁜 짓을 저지르면서
만일 말하거나 행한다면
수레바퀴가 소 발자국 따르듯
온갖 고통 저절로 따르리.
이 게송은 번뇌의 법을 말한 것이다.
‘의식인 법이 나쁜 짓을 저지르면서’라고 함은 한량없는 번뇌에 덮여 온갖 악을 짓기 때문에 ‘나쁜 짓을 저지른다’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자성인 마음이 바로 여래장인 줄 알지 못하고 한량없는 번뇌에 들어가서 이처럼 들뜨고 혼탁하여 쉬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말하거나 행한다면 수레바퀴가 소 발자국을 따르듯 온갖 고통이 항상 따르고 끊어지지 않는다 함은 모든 악이 쌓이고 모여 나고 죽음에 바퀴 돌듯함을 말함이다.
일체 중생이 수레바퀴가 소의 발자국을 따르듯 3악도에 윤회하니,
그러므로 ‘복 닦기를 게을리하는 이는 그 마음이 나쁜 법에 빠진다’라고 말했다.
또 문수사리여, 젖[乳]에 소(酥)가 있는 줄을 알고 방편껏 짜내고 맹물을 짜내지 않나니 맹물에는 소(酥)가 없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중생도 여래장이 있는 줄을 알기 때문에 부지런히 계율을 지니며 범행(梵行)을 깨끗이 닦는다.
또 문수사리여, 산에 금이 있는 줄을 알고 산을 파서 금을 구하고 나무를 파지 않나니 나무에는 금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다.
문수사리여, 중생도 여래장이 있는 줄을 알기 때문에 부지런히 계율을 지니며 범행을 깨끗이 닦으면서
‘나는 반드시 불도를 이루게 되리라’고 말한다.
또 문수사리여, 만일 여래장이 없다면 헛되이 범행을 닦는 것이니, 마치 겁(劫)이 다할 때까지 맹물을 짜내도 소(酥)를 얻을 수 없는 것과 같다.”
[범행의 뜻]
문수사리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범행이란 무슨 뜻입니까?
무엇 때문에 여래께서는 5욕락(欲樂)을 버리셨습니까?”
앙굴마라가 문수사리에게 말하였다.
“한량없는 하늘ㆍ사람들이 항상 법에서 타락하는 것만 알기 때문에 모든 욕락에 대한 생각을 버리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마라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한 말을 하지 말라. 일체 중생에게는 여래장이 있나니 일체 남자는 다 형제가 되며 모든 여인은 다 매가 된다.”
[형제와 자매로서 부모가 되는 까닭]
앙굴마라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찌 정반왕(淨飯王)과 마야부인(摩耶夫人)이 형제와 자매로서 부모가 되셨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앙굴마라에게 말씀하셨다.
“이는 방편을 보여서 중생을 제도하기 때문이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제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유컨대 어느 대왕에게 2천의 역사(力士)가 있는데 그 중 두 사람이 방편으로 그들을 굴복시키는 것을 보여 왕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러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경우 오직 왕만 혼자 알고 그 밖의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것과 같다.
부처님도 그와 같아서 부모님을 보여 인간의 실정과 같음을 나타내고서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하여 나고 죽는 가없는 큰 바다를 벗어나게 하였다. 그러나 저 중생들은 알지 못한다.
비유컨대 재주 부리는 이가 대중 속에서 갖가지로 변화하고 보여서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듯이,
부처님 세존도 그와 같아서 가지가지로 변화하며 나타내어 중생을 제도하나 그 중생들은 알지 못한다.
비유컨대 요술하는 이가 대중 속에서 스스로 자기 몸을 끊어 뭇 사람들을 기쁘게 하나 사실은 그 몸에 아무런 손상이 없듯이,
부처님 세존도 그와 같아서 저 요술하는 이가 갖가지로 변화하고 나타내는 것처럼 하여 중생을 제도하신다.
문수사리여, 여래는 일체지로 온갖 것을 아시므로 관찰하되,
‘세간의 일체 중생은 끝없는 옛적부터 부모와 형제ㆍ자매 아닌 적이 없고 일정함 없이 오르락내리락하여 번갈아 서로 높은 이ㆍ낮은 이가 되어 저 재주 부리는 이가 자주자주 변화하는 것과 같았다’고 하나니,
그러므로 여래는 범행을 깨끗이 닦는다.
또 문수사리여, 피차가 자기 계(界)에서 있다면 어떻게 함께 즐기면서 욕락을 누리겠는가? 그들이 자기 밖에 신분이라면 왜 계(界)나 과보가 성립되지 않겠는가?
이 욕락은 바로 크나큰 괴로움의 덩어리이다.
여자에게도 부처의 여래장이 있고 남자도 그러하나니, 어찌 하나인 성품에서 스스로 염심(染心)을 내겠는가?
하나의 성품이기 때문에 여래는 범행을 깨끗이 닦고 제자리에서 물러나지 않는 지위에 머물러 여래의 경지를 얻었다.”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의 바른 법]
문수사리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엇 때문에 여래께서는 온갖 범행으로써 우바새ㆍ우바이를 건립하지 않으셨습니까?
무슨 까닭에 세존께서는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의 바른 법을 말씀하시어 집에 네 기둥과 같이 하셨습니까?
우바새ㆍ우바이는 현재 크나큰 악(惡)이 있거늘, 어찌하여 바른 법의 계율 안에 들어서도록 하셨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이는 괴이한 생각이니, 세속적인 생각이라고 한다.
여래는 일체 중생을 라후라(羅睺羅)와 같이 보아서 항상 그들을 편히 세워서 부처 지위에 머무르게 하려고 하는데 여기에는 단계나 점차가 없다.
부처님의 생각은 이 세속 생각과 다르다. 이와 다른 것은 그릇된 물음이다.”
[일체 중생계가 이 모두 하나의 계이다]
문수사리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일체 중생계가 이 모두 하나의 계(界)이기 때문에 부처님은 생명 죽이는 것을 떠나셨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렇다. 세간에서 생명을 살해하는 것은 어떤 사람이 제 자신을 죽이는 것과 같으니 제 몸 안의 중생계를 죽였기 때문이다.”
문수사리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서는 무슨 까닭으로 일체 중생을 라후라와 같이 보시면서 사람들에게 제 몸 안의 아주 나쁜 무리들을 조복하고 죽이라고 가르치셨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문수리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그러한 말을 하지 말라. 여래는 이와 같이 일체 중생을 라후라와 같이 보신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날마다 항상 두 번씩 먹다가 법을 좋아하기 때문에 매일 한 번만 먹어서 몸 속에 8만 마리 벌레를 죽게 했다면, 그것을 살생(殺生)이라고 해야겠는가?
깨끗하지 못한 살생이 아니라고 해야겠는가?
또 문수사리여, 가없는 욕락을 성인은 모두 등지고 버리나니 성인은 애욕을 없애기 위하여 자신을 해치는데 만약 그렇게 한다면 성인에게는 스스로 해치는 허물이 있다고 해야 한다.
말하자면 애욕의 마음이 치성하면 다른 사람의 처소에 가서 말하되,
‘나에게는 애욕의 마음이 일어나고 있으니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생기도록 가르쳐 주소서. 나는 이대로 있을 수는 없소’라고 하면서
곧 방편을 써서 스스로 해치니, 이렇게 한다면 제 몸을 해치는 것이 되겠는가?”
문수사리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그는 이 일로 공덕이 더 쌓이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문수사리여, 무슨 까닭인가?
여러 성인들이 스스로를 해침은 이 번뇌의 독사 때문이거니와 어찌 다른 이의 몸을 해쳤겠는가?
부처님이 연설하신 바른 법을 모든 나쁜 무리들이 파괴하면 자기의 번뇌가 치성할 적에 그를 붙들어 온갖 곤란을 가하는 것과 같이 하나니, 그것이 바로 자계(自界)에 공양한 것이다.
스스로 최고의 낙을 구하는 것과 같이 욕락과 의복ㆍ음식ㆍ수명에 대한 낙을 버리며, 스스로 몸을 해치는 것과 같이 그들을 조복하나니 이야말로 여래장을 잘 알았다고 할 것이다.”
문수사리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장으로 인하여 부처님께서는 고기를 드시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렇다. 일체 중생이 끝없는 옛적부터 나고 죽음에 언제나 바퀴돌듯 하였나니, 부모ㆍ형제ㆍ자매가 아닌 적이 없었다.
마치 재주부리는 이가 정해진 바 없이 모습을 바꾸는 것과 같아서 나의 고기와 남의 고기가 동일한 고기니 그러므로 여러 부처님께서는 모두 고기를 드시지 않았다.
또 문수사리여, 일체 중생의 계(界)와 나의 계가 하나의 계이니, 지니고 있는 고기가 바로 동일한 고기인지라, 그러므로 여러 부처님께서는 모두 고기를 드시지 않았다.”
문수사리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옥돌과 자개와 밀[蠟]과 꿀이며 피혁과 비단과 솜 따위는 자계(自界)의 고기가 아닙니까?”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한 말을 하지 말라. 여래는 세간의 온갖 것을 떠나셨고 여래는 드시지 않는다.
만일 여래가 세간의 물건을 가까이 한다고 말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일 가까이 했다면 그것은 방편의 법이다.
만약 물건이 이리저리 옮겨져서 온 것이라면 가까이 할 수 있거니와 물건이 직접 나온 곳에서는 가까이 할 수 없다.
만일 이리저리 옮겨져서 죽인 사람의 손을 떠난 것이면 가까이 할 수도 있다.”
문수사리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지금 이 성 안에 가죽 다루는 사람이 한 명 있어서 가죽신을 만들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그것을 사서 보시한다면 이것은 이리저리 옮겨져서 온 것이니 부처님께서는 그것을 받으시겠습니까?
또 세존이시여, 만일 저절로 죽은 소를 소의 주인이 전타라에게 가서 가죽을 벗겨서 가죽 다루는 이에게 맡기어 가죽신을 만들게 하고 그것으로 계행 지니는 사람에게 보시한다면 이것도 이리저리 옮겨져서 온 것이니 받을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저절로 죽은 소를 소의 주인이 가죽을 가지고 가죽신을 만들어 계율지니는 이에게 보시하면 응당 받아야 되느냐고 하였는데, 받지 않는 것이 비구의 법이다.
만일 받는다면 자비가 아니나 그렇다고 그러나 계율을 깨뜨린 것은 아니니라.”
문수사리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또한 깨끗하지 못한 물을 사용할 수 없고 익혀서 먹는 것도 비구는 응당 받지 못할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러함이 현실이십니까?”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세간의 생각이라 할 것이니 만일 우바새가 있으면 깨끗한 물로 음식을 만들므로 사용하지 않아도 되거니와, 만일 우바새가 없다면 부처님인들 어떻게 하겠는가?
육지에도 벌레가 있고 물에도 벌레가 있으며 허공에도 벌레가 있다.
그렇다면 깨끗한 법에도 악이 되고 마니 세간에서 어떻게 깨끗한 법을 닦겠는가?
이것은 논지에 벗어난 질문이라 하겠다.”
문수사리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간에서도 오래전부터 또한 저절로 고기 먹지 않는 법을 세워 왔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세간에서 부처님의 말씀에 따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부처님의 말씀으로 알아야 한다.”
문수사리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간에서도 역시 해탈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 해탈은 해탈이 아니요, 오직 부처님 법만이 해탈입니다.
또한 출가(出家)하였으나 출가 아닌 것이 있사오니 오직 부처님 법만이 출가입니다.
세존이시여, 세간에서 또한 나[我]와 고기 먹지 않는 것을 말하나, 저들은 나가 없고 또한 고기 먹지 않는 것도 없으며 오직 세존의 법에서만 나와 결정적으로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