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유식보생론 제3권
2.5. 유식이십론[5], 4원소와 식
[5] 만약 업력에 의해 다른 물질의 4원소[大種]가 생겨나는 일이 있어서 이와 같은 전변을 일으킨다고 인정하면 식에 있어서는 어째서 인정하지 않는가? |
만일 그렇다면 마땅히 저 나락가(那落迦)의 업이 더욱 불어난 힘으로, 유별난 대종(大種: 四大)이 생겼음을 인정해야 하리라.12) 이 유정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흙 등 대종(大種)이 지옥 안에서 특별한 형상ㆍ빛깔ㆍ크기ㆍ힘의 차별을 일으킴이, 마치 유정의 형상에서 얼굴빛이 다르고, 손ㆍ발ㆍ몸, 크기ㆍ힘의 차별과 같아야 한다.
길고 짧고 크고 작음이, 거기에서 작용해야만 비로소 옥졸 등이라고 이름한다.
만일 유정이 아니라고 한다면, 어떻게 옥졸 등이 바깥 인연을 기다리지 않고, 손ㆍ발ㆍ몸의 구분 등 가지가지 작용으로 저들에게 큰 두려움이 생기게 하려고, 가지가지 더욱 뛰어난 위력을 나타내며, 손ㆍ발 등을 움직이는 것인가?
이것은 바람의 힘이, 손ㆍ발을 움직이게 하니, 가지가지 작용으로 따로 따로 나타내 보이기 때문이다. 저 바람의 힘은 마치 사람이 하고 싶은 대로, 생각을 따라서 일으키는 것과 같다.
모든 나락가도 역시 이와 같지만 겨우 이것을 보는 순간, 문득 두려움이 생긴다. 저 지옥 안의 나락가(那落迦) 등이 업력(業力)을 따르므로, 큰 두려움을 내는 것이다.
마치 나무로 만든 사람이 움직일 수 있어서 가지가지 작용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 대종(大種)의 화합과 같다.
비록 생각하는 감각이 없을지라도, 업력의 인연으로 결국 이렇게 손ㆍ발 등의 모양과 상태에 특이하게 나타내 보인 작용이 있음을 본다.
온갖 무정물(無情物) 등의 도리로서, 저들의 땅 경계가 성립되었음을 인정하리라.
모든 나락가(那落迦)는 업의 더욱 불어난 힘에서, 문득 저절로 숫염소처럼 생긴 산이 금방 왔다가 금방 가버림을 보게 된다.
이것은 유정이 아닌데도, 또한 있는 것으로 보았으니, 이거야말로 머무는 곳인 땅의 차별이다.
그리고 옥졸 등도 이 유정이 아니라는 이치가 성립될 수 있으리니, 수고롭게 의혹을 품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렇다면 인식 대상[所緣]이 없지 않으리라.
이 옥졸 등은 자신의 뜻으로 원하여 태어났기 때문에, 저 모든 옥졸 등과 땅 등의 처소(處所)가 똑같지 않은 형상(形相)을 가지고 나락가(那落迦) 등을 표시한다.
업의 힘이 지옥 안의 흙 등 대종(大種)에서 이 형색(形色)을 발생시킨 근거임을 인정하리라.
차별되게 변하고 달라진 손, 발이 움직임 등이 경계(處)와 대종(大種)이라면, 혹은 이것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리라. 온갖 얽어 묶음 등이 업의 힘이기 때문이다.
이치가 마땅히 성립되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인정하지 못하는가?
식(識)은 업의 힘을 근거로 다음과 같이 굴러 변한다.
마치 꿈에 보이는 대상은, 색(色) 등이 화합하여 밖에 그림자가 생겨서 가지가지 모습을 나타내는 것과 같다.
이치를 마땅히 함께 인정해야 하리라. 굴러 변하는 작용은 식이 업의 힘을 근거로 이렇게 굴러 변하면서 경계와 서로 어긋나는 것이다.
만일 업의 힘에 근거한다고 인정한다면, 어째서 특이한 대종[異大種]을 쓴다고 하는가?
모든 옥졸 등은 사대종(四大種)이 가지가지로 굴러 변함에 따라서, 손, 발이 움직이는 등 작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마치 꿈에 보이는 색(色) 등의 경계와 같기 때문이며, 저들의 형상(形狀)은 자체와 작용이 없기 때문이다.
혹은 흙 등의 차별된 모양이 아니므로, 앞에서 말한 숫양처럼 생긴 산 등이 색의 모양이 변해진 것임을 그들은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변화 또한 그러니, 형상(形狀)이 달라짐은 그들의 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것은 식이 변함에 따라서, 가지가지 다른 모습과 잇달아 변화한 형태[形儀]가 차별되어 똑같지 않으니, 식을 떠난 외에 다시 한 물건도 볼 수 있는 것이 없다.
이 가운데서 외부인이 따지기를
“만일 단지 식만을 근거할 뿐이라면, 구르고 변하여 별도로 달라짐은 가지가지 형태이고, 옥졸 등의 생각은 자기의 식이 변했기 때문이다.
똑같은 괴로움의 원인이므로, 모든 나락가(那落迦)가 옥졸 등이 아니다.
이 옥졸은 사대종(四大種)이 더욱 불어난 결과를 따라서 똑같은 업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며,
저들이 고통을 받을 때, 똑같이 고통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꼭 사대종(四大種)을 설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말은 남의 종(宗)을 잘 알지 못한 데서 나왔다.
어째서 잘 알지 못한다고 하는가?
단지 유정이 자기의 식만이 변하여 나타날 뿐이라고 설한다면, 옥졸 등을 보고 혹독하다고 여길 수 있는 것도 자기의 식을 근거로 나타났으니, 각기 옥졸 등의 괴롭히고 해치는 온갖 기구(器具)를 봄도 서로 어긋나지 않으리라.
그렇다면 자기의 식이 괴롭히고 해치는 것 등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무리의 그림자가 나타나도 저 원인이 똑같기 때문에, 괴로움을 받는 작용도 함께 해야 하리라.
스승이 제자와 함께 하는 사업도, 똑같거나 똑같지 않다.
똑같지 않은 사업에 대해 억지로 똑같다고 한다면, 홀로 지옥만이 서로 본 일이 없으니, 고통이 똑같지 않다고 하는 격이다.
그러니 세운 바 대종(大種)은, 이치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설명하리라.13)
12)
여기서부터 『이십론』의
“만일 업의 힘 때문에 달라진 사대가 생길 수 있어서, 이러한 굴러 변함이 일어난다고 인정한다면, 식에서는 어째서 인정하지 않는가”에 대한 해석이 시작된다.
[若許由業力 有異大種生 起如是轉變 於識何不許]
13)
이상은 『이십론』의
“만일 업의 힘 때문에 달라진 사대가 생길 수 있어서, 이러한 굴러 변함이 일어난다고 인정한다면, 식에서는 어째서 인정하지 않는가”에 대한 해석이다.
[若許由業力 有異大種生 起如是轉變 於識何不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