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가나찰소집경 중권
[부처님의 웃음]
그때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웃으셨으니, 이러한 인연을 지음은 본래 지은 대로 저 중생들을 어여삐 여기는 까닭에 이런 웃음을 나타내셨다.
부처님께서 웃으실 때 제일 부드럽고 청정하고 미묘하여 그 웃음소리 귀에 거슬리지 않았다.
부처님의 웃음을 보면 번뇌가 없고 청정하여 티가 없나니, 본래 수행한 대로라 또한 헛된 말이 없어, 마치 우담발화와 첨포꽃에 가지가지 향기가 있듯이, 감로의 말씀을 펴고 나타내어 가지가지 광명으로 가장 미묘하게 마음으로 분별하였다.
그리고 부처님의 몸은 황금색으로 마치 높은 산봉우리같이 그것을 세 겹 두루하고, 아가니타(阿迦膩吒)에 이르면 그 천궁(天宮)에서 믿음을 얻은 사람은 부처님의 교훈을 받아 어기고 잃음이 없으며, 잇따라 서로 전하여 이르며, 곧 부처님을 크게 기쁘게 하니 그것도 부처님의 본래 지은 행 때문이었다.
푸르고 누른 가지가지 빛의
입으로 금계를 말하는 빛이라
해탈한 부처님의 몸은
천상과 인간이 공양해 받드네.
부처님의 눈썹 사이의 상호는
세 인연으로 비길 데 없어
위로 아가니타천에 이르고
다시 부처님 처소로 돌아오네.
[부처님의 광명]
그때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광명이 있었다.
이것은 다 본래 지은 대로 몸 뒤에도 이런 광명이 극히 묘하고 좋은 해탈의 광명으로 가장 훌륭하였다.
몸에 광명이 있음을 보는 사람은 크게 기뻐하며, 가지가지 광명이 그 몸을 영락(瓔珞) 삼는지라, 모든 티끌이나 연기[煙]ㆍ라후라[羅睺]ㆍ아수라[阿須倫]도 능히 막지 못하였다.
다섯 가지 맺힘[五結]을 해탈하여 미련하고 어리석음을 제거하였으며, 그때 부처님께서 감로를 나타내어 저 중생들에게 이 맛을 얻도록 하였으니, 자연의 신통은 불가사의하였다.
몸이 잘 해탈되었는지라
능히 막고 허물 수 없도다.
10력의 이 광명이 있으나
어리석은 사람은 볼 수가 없네.
부처님은 큰 신통이 있어
중생들에게 나타내어 보이나니
큰 광명은 해의 밝음도 가리는지라
이런 까닭에 광명에 귀의하노라.
[부처님의 옷]
그때 부처님께서는 이런 옷을 입으셨다.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아 때를 따라 옷을 입으셨다.
생사의 들판 잡초를 제멸하여 의복을 입지 않아도 경계가 온화하여 즐거웠고, 가는 곳마다 모두 다 크게 기뻐하였다.
이러한 과실(果實)이 있으니, 이런 까닭에 존자 난타도 옷이 항상 선명하였고, 또 모든 비구들도 부처님 곁에서 승가리(僧伽梨)를 입었으나, 부처님의 옷을 더럽힘이 없었다.
그때 존자 난타는 미증유(未曾有)함을 찬탄하고 부처님께 나아가 아뢰되, 옷 입는 법을 알고자 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어떠하냐. 난타야, 본래 부처님이 세상에 나옴이 없다면 어떻게 중생들의 음욕ㆍ성냄ㆍ어리석음의 번뇌를 제거하여 아주 끊어서 남음이 없게 하겠느냐.
곧 그 가르침을 따라서 이렇게 성취하는 사람은 태풍이 불어도 이 옷을 움직이지 못하고, 먼지와 때도 불들이지 못하느니라.”
부처님이 옷을 입으심은
스스로 그 몸을 가림이나
마치 연꽃에 물이 묻지 않듯
이 옷도 또한 그러하도다.
만약 큰 태풍이 휘몰아쳐
힘의 형세 막기 어려워도
부처님의 옷은 움직이지 못하거니
어느 누가 10력을 이기랴.
[부처님의 걸식]
그때 이런 걸식(乞食)을 했으니, 모든 부호한 집이나 빈천한 집을 가리지 않고 모두 다 고루 돌아 삿됨이 없었다.
땅을 내려다보고 (약초 재배 등) 먹지 않으며,
별을 보고 점을 치거나 하는 짓으로 먹지 않으며,
사자(使者)로서 심부름하는 짓으로 먹지 않으며,
사방으로 권력ㆍ부호를 찾아 아첨하여 먹지 않으며,
주술(呪術)과 환혹(幻惑)의 방법으로 먹지 않고,
밭일을 의지해 먹지 않았다.
걸식하는 것은 그들을 구제하기 때문이요, 희망이 없는 음식에 집착함이 없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음식에 실로 감촉(感觸) 없어, 모든 물들고 집착함의 이런 업(業)을 관하여, 그 음식을 받되 또한 탐하거나 집착하지 않고, 음욕ㆍ성냄ㆍ어리석음과 또한 미혹도 없었다.
미혹한 마음을 제하고, 물들고 집착하는 마음을 다 버려서 그와 함께 하지도 않고, 그 욕애를 버림으로써 막지 않으며, 그를 애락하여 선(禪)으로 음식을 삼았다.
또한 나라는 생각이 없고 괴로움을 다 버려 이치 아닌 것을 떠나서 이 몸이 반드시 다하여 세 가지 일을 버리고 떠나면 청정하여 음욕ㆍ성냄ㆍ어리석음이 없음을 알았다.
지금 어찌하여 먹어서 이 몸을 나타내려 하느냐 하면 굳건함이 없는 까닭에 길이 그 병을 길러 불을 일으키지 않고 모두 버려 어지러운 생각을 내지 않고, 감로를 나타내어 펴서 범행(梵行)을 닦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감수(感受)의 집착이 이미 무너져서 새로운 감수를 짓지 않았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그 믿음에 베풂을 받아 그 과를 먹고, 몸의 지은 보(報)로 안온하고, 세상 사람을 옹호하려 하였다.
곳곳에 집집마다 빌되
바른 법을 얻게 하려 하였다.
저 숲 동산에서
여섯 개 발 달린 벌이 맛을 보듯
좋고 나쁨을 가려 먹지 않고
좋고 나쁜 뜻을 내지 않았다.
그 누구도 꺾고 허물지 못하거니
마음으로 해탈을 맛보려 하네.
[부처님의 누우신 모습]
그때 부처님께서는 이런 와상(臥床)이 있었다.
산 바위 구멍 맨 바닥에 계셨다. 동산 물 옆 샘과 시내 가지가지 꽃과 과일이 무성한 곳은 쾌락함이 비길 데 없고 사람이 없는 곳에서 해탈을 구하였다.
거기서 머물러 모든 악함을 해탈하고 또한 번뇌가 없어 사람이 이르지 못하는 곳에 이르러 두려움이 없었다.
색에 물듦을 떠난지라, 항상 고요함을 즐기고 중생과 더불어 설법하되 널리 설함은 계경(契經)과 같았다.
나무에 꽃과 열매가 여는
만나화(漫那花)의 동산
분별해 고요함을 즐기니
푸르고 푸른 꽃이 모두 피었네.
그곳에서 해탈을 구하려고
그래서 그곳에 머무르시네.
만약 한가로운 데 있을 때는
소리도 없고 어지러운 생각도 없네.
[부처님의 좌선]
그때 부처님께서는 풀을 땅에 펴셨다.
번뇌가 없어 꾸밈에 집착 않고, 매우 가늘고 부드럽고 미끄러워 잘생기고 미묘하였다.
만약 그 그림자를 보아도 볼수록 싫음이 없고, 모두 관찰하자 높지도 낮지도 않았다.
이런 생각으로 잇대어 서로 의지하며, 명색(名色)과 6입(入)은 그 다함이 없음을 나타내었다. 혹 풀을 땅에 폄으로써 자주 그것을 항복시키는 까닭에 풀을 펴고 앉아 욕상(欲想)이 없으며, 풀을 자리로 삼으므로 번뇌가 없고 모두 청정하였다.
지난 옛날 부처님의 지은 공덕으로 또한 껴잡음이 없고, 탐착함이 없이 증득함을 얻어 회전하는 곳이 많았다.
또한 온갖 번뇌의 모든 번뇌 풀이 남이 없이 가지런하여 또한 어긋나고 어지러움이 없었다.
저 중생을 의지하는 까닭에 또한 번뇌로 가려짐이 없이 삼매를 증득하고, 오른 옆으로 눕고 오래 잠자지 않고, 곧 일어나 거닐고 도를 수행하였다.
삼매를 깨달음이 없는 까닭에, 오른 옆으로 누워 원적(怨敵)을 항복하려고 하는 까닭에 사자의 자리에 올랐었다.
다섯 가지 채단을 입어 색을 나타냄은 참으로 사문(沙門)의 빛과 형상이 아니라, 물듦이 없이 범행(梵行)을 닦아 저 중생을 의지해 해탈의 마음을 구하였다.
착한 종자가 없는 중생과
석가족의 큰 공덕과
마음의 지은 바 착한 행을
마음으로 다 깨달아 아시나니
착하도다. 큰 법의 뜻이여,
능히 더 훌륭한 이가 없으리.
지금 부처님과 대중들은
풀로써 욕애를 없앤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