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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편불보은경 제5권
7. 인자하신 품
[유리왕]
그때 유리왕(流離王)이 네 가지 병사들을 일으켜 사유국(舍維國)을 정벌하면서 여러 석가(釋家) 자손들을 잡아다가 구덩이를 파고 묻되, 구덩이를 모두 겨드랑이 높이로 하여 움직이지 못하게 하였다.
7일이 지난 뒤에 여래께서는 인자하신 선근의 힘으로 곧 그 땅을 변화시켜 목욕하는 못으로 만드셨으며, 그 목욕하는 못의 물은 여덟 가지 공덕을 갖추었고, 미묘하고 향기로운 꽃인 파두마꽃과 분다리꽃이 있어서 푸르고 누르고 희고 붉은 것이 크기는 마치 수레바퀴만큼 하여 가운데 가득히 찼고, 기이한 종류의 뭇 새들은 서로 화답하며 지저거렸다.
여러 석가 자손들을 이런 일을 보고서 기쁜 마음을 내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는데, 보리의 마음을 낸 뒤에
유리왕이 술을 5백 마리의 검은 코끼리에게 마시게 하여 아주 취하게 하고, 다리에는 철갑(鐵甲)을 채우고 코에는 날카로운 칼을 매달아서 곧 사납게 북을 울리며 여러 마리의 코끼리 떼를 풀어놓으니 석가의 자손들을 밟았으므로,
몸의 모든 뼈마디며 살갗과 뼈가 부서져서 어지럽게 흩어져 땅에 있었으나
여래의 자비로운 힘 때문에 몸과 마음은 편안하고 즐거웠으며,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웠기 때문에 보리의 마음을 내었고,
보리의 마음을 내었기 때문에 여러 중생들에게 평등한 마음을 내었으며,
평등한 마음을 내었기 때문에 성을 내지 않았고,
성을 내지 않았기 때문에 목숨을 마치고 하늘에 태어났다.
하늘에 난 뒤에 곧 하늘눈[天眼]으로 도리어 본래의 인연을 자세히 살피면서
서로가 말하기를,
‘우리들은 부처님의 인자한 은혜를 입고 하늘에 나게 되어, 칠보의 궁전에서 훌륭한 옷과 몸의 여러 광명이며 미묘한 풍악과 일체의 즐거움이 갖추어져 있으니, 모두 이는 여래의 거룩한 힘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내어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며,
부처님의 법이 유포되어 있는 곳이라면 성읍이거나 마을이거나 산과 숲과 나무 아래며 궁전과 사택에 이르기까지 읽고 외우고 쓰고 베끼어 그 뜻을 해설하며, 유포한 곳을 따라 뜻에 맞도록 공급하여 모자라거나 적음이 없게 하며,
만약 병란(兵亂)과 질병과 흉년이 있으면 우리들은 응당 밤낮으로 옹호하여 마음에서 버리거나 여의지 않으리라.’고 하였다.
그때 여러 하늘들은 이런 원을 세운 뒤에 몸의 빛깔과 힘이며 광명이 빛나서 보통 때보다 갑절이나 되었으므로, 기뻐 날뛰며 공중을 날아 떠나갔다.
여래 방편의 인자하신 선근의 힘은 헤아릴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다.
그때 유리왕이 사유국을 정벌하고 여러 석가 종족들을 해친 뒤에, 여러 석가 여인들을 고르되 단정하여 재능이 남보다 뛰어나고 저마다 수없는 재주를 지닌 이들을 선택하여 5백 사람을 뽑아 앞뒤로 에워싸고 풍악을 잡히며 본국으로 돌아와서, 부인이며 채녀들과 정전(正殿) 위에 올라 가부하고 앉아서 대중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이제 쾌락과 좋음이 한량없도다.”
때에 여러 석가 여인들이 유리왕에게 물었다.
“당신은 지금 어째서 쾌락하십니까?”
대답하였다.
“내가 적에게 이겼기 때문이니라.”
여러 석가 여인들이 말하였다.
“당신은 이길 수 없습니다.
설령 당신 나라의 모든 네 가지 병사들이라도 우리 석가 성바지 한 사람도 대적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석가 성바지는 바로 부처님의 제자들인지라 남들과 싸우지 않기 때문에 당신들이 이긴 것입니다.
만약 악한 마음을 일으켰다면, 당신들이 앞뒤로 서너 차례 병사를 일으켜서 사유국을 향하였더라도 항상 물러났을 것입니다.
당신들이 처음으로 왔을 적에 우리 여러 석가 성바지들은 말하기를,
‘이 유리왕이 은혜도 모르고 도리어 반역을 하는구나.
만약 우리들이 그들과 싸운다면 어짊과 어리석음이 구별되지 않으며 검은 것과 흰 것이 분명하지 않을 것이니, 우리들은 이제 응당 두렵게 해서 그들이 물러나 흩어지게 해야 하리라.’ 하고,
곧 맹세를 세우되
‘이제 여러 분들은 같이 쏘되 화살에 다치지 않게 하라.’라고 하면서,
곧 네 가지 병사를 일으켜 가서 유리왕에 대항하여 40리 떨어져 활을 당겨 쏘니, 화살마다 서로 이어지고 오늬가 서로 버티었으므로, 유리왕이 이것을 보고는 두려워하며 물러나 돌아갔습니다.
90일 만에 다시 네 가지 병사를 일으켜 석가 성바지를 쳤는데,
그때에 여러 석가들이 곧 함께 의논하기를
‘유리왕은 악인이라 부끄러워 할 줄 모른다. 또 와서 해치려 하는구나.’ 하고,
여러 석가들이 다시 맹세를 세우되,
‘오늘 여러 사람은 다 함께 갑옷을 쏘되, 사람은 다치지 않게 하라.’고 하였으므로,
이에 여러 석가들은 다 함께 쏘아서 여러분들의 갑옷을 맞게 하여 갑옷이 갈갈이 깨어져서 알몸으로 서 있게 하자,
때에 유리왕이 두려워하며 곧 여러 신하들을 모으고서 같이 의논하기를,
‘우리들은 이제 아마 온전히 살아남지 못하겠구나.’라고 하니,
그 중의 첫째 대신이 대왕에게 말하기를,
‘이 여러 석가 성바지는 모두가 부처님의 제자들인지라 살생하지 않는 계율을 지녀서 인자함과 가엾이 여김을 닦고 행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들의 몸과 목숨은 오래 전에 죽어 없어졌을 것입니다.’라고 하므로,
왕이 말하기를,
‘사실이 그렇다면, 다시 전진해야겠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여러 석가들은 손을 거두고 서 있다가 유리왕의 군사와 말들이 드디어 가까이 닥쳐왔으므로,
여러 석가 성바지 중에서 어느 한 바라문이 석가들에게 말하기를,
‘이제 패망의 앙화가 다가왔거늘, 어찌 가만히 있으리오’ 하자,
여러 석가들이 대답하기를,
‘우리들은 이제 남들과 다투지 않으리라. 만약 그들과 다룬다면 부처님의 제자들이 아니다.’라고 하므로,
바라문은 곧 그 말을 듣고 싫어하며 석가들 앞으로 뛰어 나와 유리왕과 싸우면서 한 개의 화살로 일곱씩을 쏘았는지라 잠깐 사이에 다치고 죽는 이가 점점 많아졌으므로 유리왕의 네 가지 병사들은 곧 물러가 돌아갔습니다.
때에 여러 석가들은 다시 생각하기를,
‘우리들은 이제 이 나쁜 사람과 더불어 한 편이 되어서는 안되겠다.’ 하고,
곧 석가의 무리들을 모아서 함께 이 바라문 성바지를 내쫓았으니, 내쫓은 뒤에 유리왕의 네 가지 병사들이 사유국을 무너뜨린 것입니다.
이런 인연 때문에 당신이 이기게 된 것입니다.”
유리왕은 곧 부끄러워하면서 전타라를 불러 귀와 코를 깎고 손발을 끊어버렸고, 손발을 끊은 뒤에 곧 수레에 태워서 무덤 사이에 버리니,
여러 석가 여인들은 뒹굴며 또 손발이 없어졌는지라 슬피 울부짖었는데, 몹시 심한 고통은 몸을 저미었고 남은 목숨도 얼마 되지 아니하였다.
때에 여러 석가 여인들은 저마다
‘아버지, 어머니’를 부르고, ‘형님’, 또는 ‘아우야’를 부르며 ‘누이’를 부르기도 하였고, 혹은 다시 하늘을 일컫기도 하고 땅을 부르는 이도 있었으나 심한 고통은 한량이 없었는데,
오직 그 중에 첫 번째 석가의 여인이 여러 여인들에게 말하기를,
‘자매들이여, 알아야 하오. 내가 일찍이 부처님께 들었으니 만약 어떤 사람이 운명에 급할 적에 한 생각을 내어 부처님을 지극한 마음으로 생각하며 귀의한다면, 곧 편안함을 얻고 저마다 소원을 이룬다고 하셨습니다.’라고 하자,
5백의 석가 여인들은 소리를 같이하며 지극한 마음에서 부처님을 생각하되,
‘나무석가모니, 다타아가타(多陀阿伽度)ㆍ아라하(阿羅訶)ㆍ삼먁삼붓타(三藐三佛陀)’라 하고,
다시 부르짖되,
‘괴롭고 괴롭습니다. 아프고 아픕니다. 아아, 바가바(婆伽婆)이시여, 수가타이시여’라고 이렇게 부르짖을 때에,
공중으로부터 여래께서 인자하신 선근의 힘으로 큰 자비의 구름을 일으키시어 큰 자비의 비를 내리시니, 여러 여인들의 몸에 내렸으므로 비를 맞은 뒤에 몸과 손발이 도로 생겨서 옛날과 같이 되었다.
여러 여인들은 기뻐하며 모두가 부르짖되,
‘여래는 인자한 아버지요, 위없는 세존이시며, 세간의 미묘한 약이시며, 세간의 안목(眼目)이시어서, 삼계 안에서 괴로움을 뽑아버리고 쾌락을 주시옵니다.
왜 그런가?
저희들이 이제 고통과 환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니, 저희들은 이제 부처님의 은혜를 생각할 것이오며, 은혜 갚기를 생각하겠나이다.’라고 하였다.
여러 여인들은 생각하기를,
‘무슨 일로써 부처님의 은혜를 갚아야 할까? 여래의 몸은 금강의 몸이요, 항상 머무르시는[常住] 몸이요, 굶주림이 없는 몸이요, 미묘한 빛깔의 몸으로서,
모두 이는 백천의 선정과 5근(根)ㆍ5력(力)ㆍ7각지(覺支)ㆍ8정도(正道)의 헤아릴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는 것과 서른두 가지 몸매와 여든 가지 잘생긴 모습을 두루 갖추었으며, 두 가지 장엄을 갖추시어 큰 열반에 머무신다.
평등하게 중생들을 보시어 마치 라훌라처럼 여기시고, 원수와 친한 이를 똑같이 보시며, 또한 갚음도 바라지 아니하신다.
우리들이 이제 부처님의 은혜를 갚으려면 함께 출가하여 계율을 닦고 지니어 바른 법을 보호하고 가져야겠구나.’라고 이런 생각을 한 뒤에,
곧 옷과 발우를 구하여 왕의 동산[王園]에 있는 비구니 정사로 나아가 출가하기를 구하였다.
[여섯 무리의 비구니]
때에 여섯 무리[六群]의 비구니는 그 석가 여인들이 나이 어리고 아름다우며 단정함을 보고서,
‘이제 어떻게 이 버리기 어려운 것을 버리고 함께 출가할 수 있겠는가?
우리들이 그들을 위하여 세간의 다섯 가지 욕심의 쾌락을 말해주리라.
나이가 차기를 기다렸다가 지난 연후에 출가함이 또한 유쾌하지 않겠는가?
그들이 만약 세속으로 돌아간다면 반드시 옷과 발우를 우리들에게 보시하리라.’고 이런 생각을 한 뒤에,
석가 여인들 앞에서 곧 위의 일들을 그 여인들에게 말하였다.
그 여인들은 듣고 나서 마음에 괴로움을 품고서,
‘이렇게 안온한 곳에 어찌 이런 큰 두려움이 있을까?
마치 반찬과 음식에 독약이 섞여 있는 것처럼, 이 비구니들이 말하는 것도 역시 그와 같구나.
세간의 다섯 가지 욕심은 여러 가지 허물과 근심이 많아서 우리도 이미 자세히 알거늘 어떻게 도리어 그 아름다움을 찬탄하며 우리들에게 권하여 본가로 돌아가서 다섯 가지 욕심에 있으라는 것일까?’라고 이런 생각을 한 뒤에,
소리 내어 크게 울면서 도로 승방을 나왔다.
[화색 비구니]
때에 화색(華色)이라는 비구니가, 곧 그 여인들에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슬피 우는가?”
그 여인들이 대답하였다.
“소원을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비구니가 말하였다.
“그대들의 소원은 무엇인가?”
대답하였다.
“출가를 하려고 하였으나, 허락 받지 못하였습니다.”
화색 비구니가 물었다.
“너희들이 출가를 하고자 한다면, 내가 너희들을 제도하였다.”
그 여인들은 듣고서, 기쁜 마음을 내어 곧 따라서 제도 되어 제자들이 되었다.
때에 그 석가 여인들이 이미 허락을 받고 슬픔과 기쁨이 엇갈려서 이런 말을 하였다.
“화상(和上)은 마땅히 아셔야만 합니다.
저희들은 집에 있으면서 뭇 고통이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일가붙이들이 죽었으며 귀와 코를 깎이고 손발이 끊어지는 등 재앙과 근심이 아주 심하였습니다.”
그때 화상이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의 괴로움쯤이야 어찌 말할 거리나 되느냐?
내가 집에 있을 때에 받은 여러 가지 고통이야말로 그 일들이 너무도 많았다.”
석가 여인들은 길게 꿇어앉아 스승에게 아뢰었다.
“원컨대 집에 계실 때의 뭇 고통의 인연을 말씀하여 주십시오.”
그때 화색비구니는 곧 삼매에 들어 신통력으로 큰 광명을 놓아 염부제에 비추면서 인연이 있는 하늘ㆍ용ㆍ귀신ㆍ사람과 아닌 것을 불러 청하고, 대중들 가운데서 곧 말하였다.
“나는 집에 있을 때, 바로 사위국(舍衛國)의 사람이었다.
부모가 나를 북방 사람에게 시집을 보냈는데, 그 나라 풍속에는 그 아내가 임신하여 해산하려 할 때에는 부모의 집으로 돌아가는 법이었느니라.
이렇게 하여 차례로 수년 동안 아들을 낳았으며, 뒤에 또 임신하여 해산할 날이 다가왔으므로 모두가 수레와 말을 타고 부부가 서로 거느리며 부모의 집으로 돌아가던 중에, 중도에 있던 강물이 느닷없이 범람하였는데, 그 길은 뒤가 끊어져서 여러 도둑의 재난이 많았고 이미 강에 닿았으나 건너갈 수가 없어서, 강가 언덕에서 머무르며 묵게 되었느니라.
초저녁에 나는 배가 갑자기 아팠으므로 곧 일어나 앉았는데 얼마 되지 않는 사이에 분만하여 한 사내아이를 낳았느니라.
언덕가의 풀 속에 있던 큰 독사가 새 피의 냄새를 맡고 곧 나에게로 오다가 아직 나에게 닿기 전에, 나의 남편과 종이 길 가운데서 잠을 자고 있었는데 뱀이 종에게로 가서 바로 깨물어 죽이고 그 앞에 남편이 있는 곳에 이르러 남편 역시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으므로 남편도 깨물어 죽였느니라.
나는 그때 부르짖으면서,
‘뱀이 온다. 뱀이 온다.’라고 하며
남편을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으니, 남편과 종은 이미 죽었으며, 그때에 독사는 소와 말도 물어죽였느니라.
해가 돋아나온 뒤에, 그 남편의 몸은 부풀어서 문드러졌고 뼈마디는 흩어져 여기 저기 땅에 있는지라, 근심과 슬픔과 두려움으로 땅에 쓰러져 소리 내어 크게 울면서 손으로 가슴을 치고 자신의 머리칼을 뽑으니 먼지가 몸에 묻었느니라.
곧 다시 기절하여 온몸을 뼈에 던지며 이렇게 근심하고 괴로워하기를 수일 동안 하면서 혼자 언덕가에 있었는데, 그 물이 점차 줄어들었으므로, 어린아이를 등에 업어 손으로 끌어안고, 그 새로 낳은 아이는 치마에 담아서 입으로 물고는 곧 앞에 있는 물로 들어갔느니라.
바로 강의 절반쯤에 이르러서 뒤돌아 큰 아이를 보니, 한 마리 사나운 호랑이에게 쫓기고 있는지라 입을 벌리어 부르짖는다는 것이 입에서 치마를 놓치게 되었고, 젖먹이가 물에 빠졌으므로 손으로 찾고 더듬다가 끝끝내 찾지도 못하고 그 등 위의 아이까지 손을 놓쳐서 물에 빠뜨려 또 잃어 버렸고, 그 언덕 위의 아이는 호랑이에게 먹혀버렸느니라.
나는 이런 일을 당하고서 심장과 간장이 찢어져 입으로 뜨거운 피를 토하며 소리 내어 크게 울면서,
‘괴이하고, 괴이하구나. 나는 이제 하루아침에 이런 혹독한 재난을 당하였도다.’라고 하고,
곧 언덕위에 이르러서는 기절하여 땅에 쓰러졌다.
오래지 않아서 큰 무리들이 다가왔느니라.
그때 그 일행들 가운데 한 장자가 있었는데, 그는 나의 부모와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였으므로, 내가 곧 나아가 부모의 소식을 물었더니,
그때에 장자가 나에게 대답하기를,
‘그대 부모의 집은 어제 밤에 불이 나서 모두 다 타버렸고 부모도 죽었느니라.’라고 하므로,
나는 이를 듣고서 기절하여 땅에 쓰러졌다가 한참 만에 깨났느니라.
얼마 되지 않아서 5백의 떼도둑들이 곧 그 일행을 무너뜨렸는데, 그때에 도둑의 우두머리가 나를 데리고 가서 자기 부인으로 삼았고, 언제나 문을 지키게 하다가 만약 급한 일이 있어서 사람에게 쫓김을 당하면 속히 문을 열어야 했느니라.
뒤에 어느 땐가 남편과 떼도둑들이 같이 가서 도둑질을 했다.
그때에 재산의 주인과 왕이며 마을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쫓았으므로 곧 그의 집으로 돌아 왔으나,
때마침 그의 아내인 나는 그 집 안에 있으면서 아이를 낳던 참이라 남편이 문 밖에서 두 번 세 번 불렀지마는 안에 문을 열어 줄 사람이 없었느니라.
그러자 도둑의 우두머리가 생각하기를,
‘이제 이 아내라는 것이 나를 해치려 하는구나.’ 하고,
이렇게 생각한 뒤에 곧 담장을 넘어 들어와서 나에게 말하기를,
‘무슨 일 때문에 문을 열어주지 않느냐?’라고 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아이를 낳느라고 미처 못하였습니다.’라고 하였더니,
그제야 도둑의 우두머리는 이 일을 보고 나서 성이 조금 가라앉으며 나에게 말하기를,
‘사람이 임신을 했으면 마땅히 아이를 낳아야 하지만, 너는 아이를 낳느라고 나를 해칠 뻔 하였다. 이 아이 때문이었으니, 속히 가서 죽여 버려라.’라고 하였으나,
나의 마음에는 가엾어서 차마 죽이지 못하였느니라.
그러자 도둑의 우두머리는 곧 칼을 뽑더니 손발을 끊어 버리면서 나에게 말하기를,
‘네가 도로 먹어라. 만약 먹지 않으면 너의 머리를 끊으리라.’라고 하였으므로,
나는 두려웠기 때문에 곧 도로 먹었더니, 도로 다 먹고 나자 성이 곧 풀렸느니라.
그 남편 되는 이는 뒤에도 계속 다시 도둑질을 하다가 왕에게 잡혀서 그 죄를 다스리게 되었는데, 도둑을 다스리는 법에는 반드시 그의 목숨을 끊고 아내는 합쳐서 산채로 매장하였느니라.
나는 그때 몸에 아름다운 영락을 걸치고 있었으므로, 어떤 사람이 영락을 탐내어 새벽녘에 곧 무덤을 헤치고 나의 영락을 가져가면서 아울러 나를 데리고 떠나갔는데,
또 얼마 있다가 관청에 들켜서 붙잡혔으므로 법률대로 판결되어 도둑을 다스리는 죄와 같이 하니, 도둑을 다스리는 법으로 곧 그의 목숨을 끊고 나는 합쳐서 산채로 매장하였으나, 묻은 것이 허술해서 새벽녘에 많은 범과 이리들이 무덤을 파헤쳐 열고 죽은 시체를 뜯어 먹는 것을 나는 그 때문에 탈출할 수 있었느니라.
탈출한 뒤에 정신없이 동쪽 서쪽을 모르고 도망가다가,
길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 곧 묻기를,
‘여러분, 아십시오. 나는 지금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어디 근심을 잊고 재난을 없앨 수 있는 데가 있읍니까?’라고 하였더니,
때에 어떤 장로 바라문들이 가엾이 여기면서 나에게 말하기를,
‘일찍이 듣건대, 석가모니부처님의 법 안에는 편안함과 고요함이 많고 모든 쇠함과 괴로움이 없다고 합니다.’라고 하므로,
나는 듣고서 기쁜 마음을 내어 대애도교담미(大愛道憍曇彌)비구니 처소에 나아가서 출가하였으며, 차례대로 닦아 익혀 곧 도의 과위를 얻고 3명(明)ㆍ6통(通)ㆍ8해탈(解脫)을 갖추었느니라.
이런 인연이었나니, 그대들은 알아야만 하느니라.
내가 집에 있을 적에 애쓰고 괴로워했던 것이 이와 같으며, 이런 인연 때문에 스스로 도를 얻게 되었느니라.”
때에 석가의 여인들은 이 말을 듣고서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며 법의 눈이 깨끗하게 되었으며, 여러 모임에 있던 청중들도 저마다 소원(所願)을 세우고 기뻐하면서 떠나갔다.
[고담미 비구니]
그때 부처님의 이모인 고담미비구니가 일체의 비구니ㆍ식차마니(式又摩尼)ㆍ사미니ㆍ우바이며 모든 여인들에게 말하였다.
“부처님 법의 큰 이익인 온갖 공덕과 세 가지 과보는, 오직 여래 부처님의 법 바다 안에서만이 비로소 갖추어져 있습니다.
일체 중생에게는 모두 다 분수[分限]가 있으므로, 우리들 일체 여인들은 여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일체의 여인들은 여러 가지 의혹이 많고 집착하여 버리기 어려웠습니다.
집착하기 때문에 모든 번뇌에 한량없이 얽히어 어리석음과 사랑으로 마음이 뒤덮이게 되나니,
덮여 있는 마음이 무겁기 때문에,
사랑의 물에 빠져서 스스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두 가지 등지(等智)때문에, 게으르고 방자하기 때문에,
현재의 몸으로써 보리를 장엄하고 서른두 가지 몸매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나고 죽는 동안에 전륜성왕이 지닌 훌륭한 과보의 열 가지 선한 법으로 중생을 거두지 못하기 때문에,
또한 위없는 범왕의 지위에서 바른 법을 이룩하여 권하여 발하고 묻고 청하면서 일체 중생들에게 이익과 즐거움을 얻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여인이 즐거이 제자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늘의 악마 파순(波旬)과 여러 삿된 소견의 일체 외도들은 오랜 동안 사악하게 삿된 이론에 집착하여 바른 법을 없애고 부처님ㆍ가르침ㆍ승가를 헐뜯었나니,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여인이 즐거이 부처님의 법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모든 여인들을 위하여 세 번 여래께 청하며 부처님 법을 구하려 하였고, 이와 같이 세 번까지 하였지마는 역시 허락하시지 않았습니다.
때에 나는 소원을 이루지 못한지라, 마음으로 서운해 하며 근심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해서, 곧 기원정사[祇桓]를 나오면서 슬픈 눈물이 눈에 가득 찼었습니다.
그때 아난이 나에게 묻기를,
‘큰 어머니께서는 무엇 때문에 근심 걱정을 그렇게 하십니까?’라고 하므로,
내가 곧 시자 아난에게 대답하기를,
‘출가하여 부처님의 법을 구하려고 세 번이나 여래께 청하였으나, 여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셨소. 이 일 때문에 나는 근심하고 괴로워합니다.’라고 하였더니,
아난이 나에게 말하기를,
‘큰 어머니는 근심하지 마십시오. 제가 여래께 여쭙고 청하여 큰 어머니가 부처님의 법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하므로,
교담미는 이 말을 듣고 나서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아난이 들어가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이제 부처님께 여쭙고 한 가지 소원을 청하려 하옵니다.’라고 하자,
부처님께서 말씀하기를,
‘들어보자, 말해보아라.’라고 하시므로,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교담미 큰 어머니가 여래의 육신에 젖을 먹여 길렀으니, 지금에 이르러서 부처님이 되신 것은 어머니를 의지하셔서 이루신 것입니다. 어머니를 의지하셔서 이루셨으므로 어머니는 여래에게 큰 은혜가 있으십니다.
여래께서는 오히려 일체 중생들이 부처님 법 가운데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시거든, 하물며 어머니를 허락하지 아니하오리까?’라고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너의 말처럼 여래는 어머니가 여래에게 무거운 은혜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다만 여인들이 부처님 법안에 들어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니라.
여래가 만약 여인들이 부처님 법 안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면, 바른 법[正法]이 점점 미약해지고 점점 스러져 5백 년뿐이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여인이 부처님 법 안에 들어오는 것을 기꺼이 허락하지 않았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아난은 땅에 엎드려 부처님 발에 예를 올리고 길게 꿇어앉아 합장하고 거듭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아난이 스스로 생각건대, 지나간 세상의 여러 부처님들도 4부(部) 대중을 갖추셨거든, 우리 석가여래만이 갖추시지 않겠나이까?’라고 하자,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기를,
‘만약 교담미가 부처님 법을 좋아하여 크게 힘써 나아가며 여덟 가지 공경하는 법[八敬之法]5)을 깨끗이 닦고 익힌다면 부처님 법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난은 즉시 땅에 엎드려 부처님께 예배하고 오른 편으로 세 번 돌고서 곧 밖으로 나와 큰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아난이 이미 여래께 권하고 청하였으므로, 큰 어머니께서는 부처님의 법을 받들어 지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라고 하므로,
교담미가 이 말을 듣고서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며 아난에게 말하기를,
‘장하십니다. 아난이여, 은근히 여래께 권하고 청하여서 큰 어머니의 본래 소원을 이룰 수 있게 하였구료’라고 하였다.
아난이 여래의 은근한 가르침을 자세히 말하였으므로, 큰 어머니는 듣고서 슬픔과 기쁨이 엇갈리어,
‘바로 나의 몸은 무상한 몸이거늘, 오늘에야 비로소 보배의 몸으로 바꾸게 되었구나.
지금 나의 목숨은 찰나 찰나에 옮아 스러지고 갈마들어 정해진 것이 아니거늘, 비로소 오늘에야 보배의 목숨으로 바꾸는구나.
이제 내가 지닌 몸과 목숨과 재물은 뭇 인연으로 함께 한 바요 참된 주인이 없었거늘, 오늘에야 비로소 보배 재물로 바꾸게 되었구나.’라고 하고,
나는 이와 같은 공덕과 이익을 생각하였기 때문에 아난에게 깊이 공경과 공양하는 생각을 내고서 말하기를,
‘대덕 아난이여, 원컨대, 염려하지 마십시오. 여래의 은밀한 가르침을 당연히 다 받들어 행하겠습니다. 가령 몸과 목숨을 잃을지언정 마침내 물러나거나 잃지 않겠습니다.
여래께서 곧 널리 말씀하신 미묘한 여덟 가지 공경하는 법이야말로 헐거나 범하기 어려울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교담미 큰 어머니는 곧 대자비로 그 마음을 훈습(熏習)하고, 널리 장차 오는 세상의 일체 여인들을 위하여 거듭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만약 장차 올 악한 세상에서 어떤 착한 여인이 부처님 법을 믿고 즐기고 사랑하고 공경하면, 오직 원하오니 허락하시어 이 전례를 따를 수 있게 하옵소서’라고 하였더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좋도다. 만약 여인으로서 부처님 법을 보호하고 지니어 점차로 계율ㆍ보시ㆍ많이 들음[多聞]과 여러 선한 법을 닦고 배우며 집에 있거나 집을 떠나거나 간에 3귀(歸)ㆍ5계(戒)와 구족계(具足戒), 여러 바라밀[度]이며 도를 돕는 법들에 이르는 이가 있으면 모두 다 뜻대로 닦고 익히게 허락하겠으며, 또한 이 세 가지 과보인 사람ㆍ하늘ㆍ열반을 얻게 하겠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교담미는 이 말씀을 듣고서 마음으로 기뻐하면서 부처님께 아뢰기를,
‘이와 같은 과보가 바로 부처님의 은혜이십니다.’라고 하였더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렇게 말하지 말라. 여래는 끝내 여러 중생들에게 은혜가 있지 않으며, 여래는 끝내 여러 중생들에게 은혜가 있다고 헤아리지도 않느니라. 은혜가 있다고 헤아리게 되면, 여래의 평등한 마음이 깨지게 되니, 교담미여, 알아야 하느니라.
여래가 모든 중생들에게 은혜가 있다 은혜가 없다고 헤아리게 되면 평등함이 있을 수 없느니라.
왜 그런가?
어떤 중생이 부처님을 헐뜯고 해쳐도 여래는 성을 내지 않고, 어떤 중생이 전단향의 즙으로 여래의 몸에 발라도 여래는 기뻐하지 않으며, 여래는 널리 중생들을 원수거나 친한 이거나 간에 평등하게 보기 때문이니라.
오직 이는 아난이 한 것이요, 여래가 한 것이 아니니, 아난 때문에 여러 여인들이 부처님의 법에 들어 올 수 있게 된 것이니라.
교담미여, 미래의 말세에 비구니와 여러 착한 여인들은 언제나 지극한 마음으로 아난의 은혜를 생각하여야 하며 이름을 부르고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하며 찬탄함이 끊어지지 않게 하여야 하리니,
만약 늘 할 수가 없으면, 밤낮으로 여섯때만이라도 마음에 잊지 않도록 하여야 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교담미가 여러 비구니와 모든 착한 여인들에게 말하였다.
“우리들은 응당 지극한 마음으로 아난 큰 스승께 귀의하여야 합니다.
만약 어떤 여인이 편안함과 상서로운 과보를 구하고자 한다면, 언제나 2월 8일과 8월 8일에 깨끗한 옷을 입고 지극한 마음으로 8계제(戒齋)의 법을 받아 지니어 밤과 낮의 여섯때에 대 정진을 이룩하면, 아난이 곧 크고 거룩한 신력으로 소리에 응하여 지키고 도우므로 소원대로 곧 얻게 될 것입니다.”
때에 모임의 대중들은 법을 듣고 기뻐하며 오른쪽으로 돌고서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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