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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법장인연전 제6권
[사야다(19조)]
구마라타가 멸도할 때가 되어 사야다(闍夜多) 비구에게 말했다.
“장로야, 마땅히 알아라.
사람이 바다를 건널 때 반드시 배나 뗏목을 사용하는 것과 같이
중생도 마찬가지로 삼계를 떠나고 싶다면 좋은 법[善法]을 닦고 행한 뒤에라야 벗어날 수 있다.
이러한 까닭으로 내가 지금 법을 그대에게 부촉하고자 하니 마땅히 잘 익히고 배워 세상과 하늘에 이익되게 하여라.”
사야다가 말했다.
“예.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드디어 깊은 법을 부연하여 세간을 제도하고 교화하였다.
사야다는 큰 공덕이 있었고 용맹하게 정진하고 고행을 부지런히 닦았으며, 금계(禁戒)를 잘 지켜 빠뜨리거나 실수함이 없었으니 세존께서 수기(授記)하신 최후의 율사였다.
일찍이 대중 가운데 한 비구가 있었다. 형수가 절에 밥을 가지고 와서 비구에게 주었다. 갑자기 음욕의 불길이 일어나 음행을 저질렀다.
십중금계[重禁] 가운데 음행을 깨뜨리고 나서 문득 스스로 뉘우치고 자책하며 더할 수 없는 부끄러움에 젖어
‘나는 크게 어리석어 이렇게 나쁜 업을 저질렀으니 지금 나는 결코 사문석자(沙門釋子)가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가사와 발우를 모두 삼기장(三奇杖) 위에다 매달고 곳곳을 다니며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죄인이니, 다시 부처님 법의인 염의(染衣)를 입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나의 허물이 이미 무거우니 반드시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어느 곳에 가야 구제되어 보호함을 얻을 것인가?”
그때 사야다가 이 비구에게 말했다.
“그대가 지금 만약 나의 말을 따른다면 반드시 그대의 죄로 하여금 곧 저절로 소멸하게 해주었다.”
비구가 환희하면서 말하였다.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그때 사야다가 곧 신통변화로 불길이 거센 불구덩이를 만들어 놓고 그 비구로 하여금 직접 그 불구덩이에 뛰어들게 하였다.
그때 비구는 죄업을 없애기 위하여 몸을 큰 불구덩이 안에 던졌다.
바로 그때 맹렬한 불길이 깨끗한 물로 바뀌고 겨우 무릎 정도여서 조금도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 그
때 사야다가 비구에게 말했다.
“너는 좋은 마음으로써 지성으로 허물을 뉘우쳤으니 너에게 있던 모든 죄업이 지금 모두 없어졌다.”
곧 그를 위하여 설법하니 아라한도를 증득하였다.
이 인연을 말미암아 세상 사람들이 모두 청정하게 계율을 지키는 분이라고 불렀다.
또 어느 때 모든 제자들을 데리고, 그들에게 에워싸여 덕차시라성(德叉尸羅城)으로 나아가 그 성에 도착하였을 때
시야다가 슬프고 참혹하게 얼굴을 찡그렸다.
제자들이 의심하고 괴이하게 여기면서 그 스승의 뜻을 물으니 대답하였다.
“지금 말하지 않고 나중에 적당한 때에 자세히 말하겠다.”
조금 다시 앞으로 나아가다 길에 한 마리 까마귀가 보였다.
그때 존자는 기쁜 마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모든 제자들이 다시 스승에게 말하였다.
“저희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찡그린 까닭과 웃으신 까닭에 담겨 있는 그 인연을 말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사야다가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처음 성에 도착하여 그 문 아래에 있는 아귀(餓鬼)의 아들을 보았다.
굶주림이 지나쳐 여위고 피곤한 모습으로 나에게 말하였다.
‘어머니가 저를 낳고 밥을 구하기 위하여 성에 들어가 이별한 지가 오백 년이 되었습니다. 굶주리고 허기지고 궁핍하여 오래 살지 못할 것입니다.
존자께서 만약 성에 들어가셔서 저의 어머니를 보시거든 저를 위하여 저의 어려운 상황을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내가 처음 성에 들어와 그의 어미를 보고 그 아들의 굶주린 상태를 자세히 말했더니
그의 어미가 나에게 말하였다.
‘제가 성에 들어온 지 오백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일찍이 한 사람의 침도 얻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첫 아이를 낳느라고 기력이 지치고 피로한 상태이므로 설사 조금의 침을 얻는다 할지라도 모든 귀신에게 빼앗겼습니다.
비로소 오늘 한 사람의 침을 만나 주위에 다른 귀신이 없어 이것을 얻었습니다.
성 밖으로 나가 아들과 나누어 먹으려 하지만 문 아래에 큰 힘을 지닌 귀신들이 많이 있으니 그들에게 빼앗길까 두려워 다시 감히 밖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오직 존자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제가 이것을 가지고 성을 나가 아들놈과 만나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그때 아귀의 어미를 데리고 성 밖으로 나가 지금 아들과 함께 먹도록 하였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네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느냐?’
아귀가 답하였다.
‘저는 이 성이 일곱 번이나 생겼다가 파괴되고 국토가 풍족하고 안락하며 백성들이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또 헐리고 무너져 하나도 남음이 없는 폐허도 보았습니다.’
내가 그 말을 듣고 나고 죽으면서 받는 고통이 오랫동안 끝이 없는 것을 깊이 탄식하였다.
이러한 인연 때문에 슬프고 참혹하여 얼굴을 찡그렸다.
저 까마귀의 인연을 말할 테니 잘 들어라.
지나간 과거 구십일 겁 전에 비바시불(毘婆尸佛)께서 세상에 계시면서 교화하셨다.
나는 그때 장자의 아들이 되어 마음으로 오욕을 싫어하고 항상 출가할 것을 생각하였다. 내가 만약 그때 사문이 되었다면 반드시 모든 번뇌[結]를 끊고 아라한도를 증득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부모는 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억지로 장가보내 나의 뜻을 막으려 하였다. 나는 부모님의 명령을 어기지 못하고 장가들었다.
장가들고 난 뒤에도 다시 출가하려고 하였으나 부모님께서 말씀하셨다.
‘너와 아내를 위하여 바로 대 잇기를 구하니 만약 아들을 하나 낳으면 반드시 놓아 주겠다.’
나는 곧 말씀하신 대로 아내와 같이 교합하여 남자 아들 하나를 낳았다.
아이의 나이 여섯 살이 되자 부모님께서 그때 아이에게
‘너의 애비가 만약 출가하여 사문이 되려 하거든 너는 반드시 그의 발을 안고 아비에게 말하기를,
≺아버님께서 만약 저를 버리신다면 저를 누가 양육하여 생활하겠습니까? 먼저 반드시 저를 죽인 후에 가십시오≻라고 하라’고 가르쳤다.
그때 이 아이가 부모님의 가르침대로 울면서 나를 안고 매우 슬퍼하였다.
나는 그때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곧 아들에게
‘나는 너를 위하여 다시는 출가하지 않겠다’고 말하였다.
그 아이를 말미암아 도를 증득하지 못하고 구십일 겁을 나고 죽음에 헤매면서 다섯 갈래 중에서 일찍이 그를 보지 못하다가 지금 도의 눈으로써 저 까마귀를 관찰하니 전생에 내가 낳은 아들이었다.
그 애가 어리석어 오랫동안 나고 죽음에 있는 것이 불쌍하였다. 이러한 인연으로써 미소를 지었느니라.”
이와 같이 존자는 법의 요점을 잘 말하였으니 변재의 힘으로써 세간에 다니면서 교화하다가 할 일을 다하고 반열반(般涅槃)에 들었다.
[바수반타(20조)]
사야다존자가 멸도에 이르러 바수반타(婆修般陀)비구에게 말하였다.
“너는 지금 자세히 들어라. 옛날 천인사(天人師)께서 헤아릴 수 없는 겁 동안 부지런히 고행을 닦아 최상의 묘법으로 지금 만족하게 중생을 이익되게 하였고, 나에게 부촉해 준 것을 나는 지극한 마음으로 수호하고 유지하였다.
지금 그대에게 부촉하려고 하니 그대는 반드시 깊이 억념(憶念)하여라.”
바수반타가 말했다.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이로부터 그 뒤에 경장(經藏)을 널리 통달하여 많이 들은 것과 지혜와 변재 등 이와 같은 공덕으로써 자기를 장엄하였으니 일체 수다라(修多羅)의 뜻을 잘 알았으며, 분별하고 자세히 말하여 널리 중생을 교화하였다.
지어야 할 것을 짓고 나서 문득 생명을 버리고 가 버렸다.
[마노라(21조)]
다음으로 마노라(摩奴羅)비구에게 부촉하여 그로 하여금 위없고 최상으로 뛰어난 법을 유포하게 하였다.
그 마노라는 지혜가 뛰어났고 적은 것으로 만족함을 알아 부지런히 고행하여 오묘함만 말하여 중생들의 마음을 기쁘게 했다. 삼장(三藏)의 뜻을 잘 통달하여 남천축국에 큰 이익을 일으켰다.
그때 야사(夜四)라는 존자가 있었다. 변재와 지혜가 총명하고 민첩함이 매우 깊고 크고 넓어 마노라와 더불어 공덕이 동등하였으며, 또한 삼장의 뜻을 능숙하게 알아 훤하였으며, 이름이 널리 알려져 모두가 높이 우러러보았다.
일찍이 어느 때 마노라가 북천축에 이르니 야사존자가 그에게 말했다.
“항하(恒河) 이남의 두 천축국의 사람들은 삿된 견해를 가진 자와 총명하고 말 잘하며 예리한 지혜를 지닌 자가 많습니다.
장로님께서는 음성의 논리에 대하여 잘 아시니 그곳에서 다니며 교화하십시오. 저는 이곳에서 반드시 중생을 이롭게 하고 편안히 하겠습니다.”
그때 마노라는 곧 그 말과 같이 두 천축국에 도착하여 널리 비라(毘羅)와 아(我)가 없다는 논리[無我之論]를 설명하여 일체 다른 도를 배우는 이들의 삿된 견해를 꺾어 항복 받았다.
할 일을 이미 갖추고 몸을 버렸다.
[학륵나(22조)]
이후 다음에 학륵나(鶴勒那)라는 존자가 있었고, 야사가 세상에 나와 부촉하는 법을 받아 널리 자세히 퍼뜨렸는데 복과 덕망이 깊고 컸으며, 재주가 영명(英明)하고 크고 넓어 세상의 미혹함을 교화하여 그들로 하여금 바른 길에 나아가게 하고 할 일을 다 마친 뒤에 몸을 버렸다.
[사자(23조)]
다시 사자(師子)라는 비구가 있어 계빈국에서 불사(佛事)를 크게 지었다.
그때 국왕인 미라굴(彌羅掘)은 삿된 견해가 치성하고 마음으로 불법을 공경하거나 믿음이 없었고, 계빈국에서 탑과 절을 파괴하고 뭇 스님들을 살해하였다. 곧 날카로운 칼로써 사자존자의 목을 베었는데 목을 벤 자리에서 피가 솟지 않고 젖이 용솟음쳤다.
서로 부촉하던 법과 사람이 여기에서 갑자기 끊어졌다.
이와 같은 법은 크게 밝은 등불로 세간의 어리석음과 어둠을 밝혀 줄 수 있었다.
이러한 까닭으로 이와 같은 모든 현성(賢聖)들 모두 함께 높이 받아 유지시켜 지키고 보호하였으며, 다시 서로 부촉하여 항상 법륜(法輪)을 굴려 모든 중생을 위해 큰 이익을 일으켰다.
악한 길을 막아 단절하고 사람과 하늘에 태어나는 길을 열었으나 최후에 이르러 이 법이 쇠퇴하여 사라졌다.
어진 성인들이 숨고 사라져서 건립할 수가 없었으니 세간이 어두워 영원히 큰 밝음을 잃고 악업(惡業)을 짓고 열 가지 좋지 못한 일을 하니 목숨을 마치면 모두 삼악도(三惡道)와 여덟 가지 어려움[八難]에 떨어졌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지혜로운 이는 반드시 위없이 뛰어난 법은 큰 공덕과 미묘하고 심원한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이 있음을 관찰해야 한다.
비유하면 장사하는 사람이 큰 바다를 지나고 싶으면 반드시 배를 탄 뒤에라야 건널 수 있는 것과 같다.
일체 중생도 이와 같아서 삼계의 나고 죽는 큰 바다를 벗어나려고 하면 반드시 법이라는 배를 빌려야만 바야흐로 제도되고 해탈할 수 있다.
법이 청량하니 번뇌의 열병을 제거하며, 법은 묘약으로 번뇌의 병을 치유할 수 있으며, 곧 중생들에게 참된 선지식으로 큰 이익이 되어 모든 고뇌를 건져 준다. 왜냐하면 일체 중생의 성품은 결정된 모습[相]이 없기 때문에 물들고 익힌 바에 따라 선악(善惡)의 업을 일으킨다.
만약 외도의 삿된 견해를 익히고 가까이하면 그의 가르침과 계율을 받아 영원히 헤매어 끝남이 없으니, 이것을 선지식이라고 하지 않는다.
만약 어떤 사람이 믿고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켜 현성을 친근하고 오묘한 법을 듣고 받으면 이 법을 들은 공덕의 인연으로써 욕망의 진흙창을 벗어나고자 하며 최고로 뛰어난 즐거움을 받는다. 이런 까닭으로 이러한 사람을 선지식이라고 하나니, 반드시 부지런한 마음으로 익히고 가까이하며 공양 올려라. 그렇게 하면 꼭 사람들로 하여금 세 가지 나쁜 갈래의 고통을 여의게 한다.
옛날에 화씨국왕(華氏國王)에게 한 마리 흰 코끼리가 있었는데 기운이 용맹하고 힘이 뛰어나 원수와 적을 무찌르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만약 죄인이 있으면 코끼리로 하여금 밟아 죽이게 하였다.
그 후 어느 때 마구간에 불이 나서 코끼리를 잠시 동안 다른 곳으로 옮겨 두었는데 마침 절 가까운 곳이었다.
비구 스님들이 “착한 짓을 하면 하늘 나라에 태어나고 악한 짓을 하면 연못 같은 진흙창에 빠진다”는 법의 구절을 외우자
그것을 듣고 마음이 갑자기 부드러워져 자비의 마음이 일어났다. 뒤에 죄인을 코끼리 앞에 세웠으나 도무지 죽이지 않고 다만 코로써 냄새만 맡고 핥다가 가 버렸다.
왕이 이것을 보고 마음 속으로 크게 두려움이 일어나 지혜로운 모든 신하를 소집하여 이 일에 대하여 모의를 하였다.
그때 어떤 한 신하가 왕에게 말했다.
“이 코끼리를 매어 두었던 근처에 절이 있었으니 반드시 묘한 법을 들었을 것이고, 그 까닭에 이렇게 되었을 뿐입니다.
지금부터 도살장 근처에 매어 두고 저 도살하는 것을 보게 하면 악한 마음이 반드시 치성하게 될 것입니다.”
왕이 그 계책을 사용하여 코끼리를 도살장 근처에 매어 놓고 살육하고 가죽 벗기는 것과 목을 베는 것을 보게 하니 악한 마음이 맹렬하고 치성해져서 잔학한 행위가 더하게 되었다.
이러한 까닭으로 반드시 중생의 부류는 그 성품이 결정되지 않은 것임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축생도 오히려 법을 듣고 자비심을 내었다가 도살하는 것을 보고 문득 잔학해지는데, 하물며 사람이거늘 습기에 물들어 선악의 업을 일으키지 않겠는가?
이러한 까닭으로 지혜로운 이는 반드시 삿된 견해와 악한 법은 손해를 입힘이 많으니 버리고 여의어 부지런히 방편을 만들어 성인의 법을 익히고 가까이하며, 받고 유지하여 널리 퍼뜨려 대사(大師)의 생각을 일으킬 줄 알아야 한다.
이렇게 미묘한 공덕의 인연을 말미암아 영원히 세 가지 나쁜 갈래의 고통을 벗어나서 나고 죽음의 바다를 건너 열반의 즐거움을 받는 것이다.
또 이 법이란 것은 도를 얻어 이롭게 하는 전분(全分)의 인연이니 이러한 까닭으로 또한 참선지식이라고 한다.
옛날 아난존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선지식이라 하는 것은 도를 얻어 이롭게 하는 데 반 푼의 인연이 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선지식이라고 하는 것은 곧 도를 얻는 데 전분의 인연이니라.
아난아, 이 염부제에서는 대가섭과 사리불 등을 제외한 여타의 중생은 만약 나를 만나지 못했다면 항상 나고 죽음에 헤매어 해탈을 기약할 수 없었음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이러한 까닭으로 내가 말하지 않았더냐?
선지식이라는 것은 크게 이익되게 할 수 있다. 이러한 인연으로써 부처님의 법은 최고로 높고 최고로 묘하여 위가 있을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이 성취한 것임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이러한 까닭으로 세존이 처음 정각을 성취하고 보리수 아래에서 단정히 앉아 생각하였느니라.
‘일체 세간에서 만약 부모와 스승[師長]이 없었더라면 단독으로 외롭게 드러나 영원히 믿고 의지할 데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지금 반드시 누구를 의지하여 법을 세울 것인가?’
다시 이러한 생각을 하였다.
‘과거ㆍ미래ㆍ현재 모든 부처님께서 모두 뛰어난 법으로써 사범(師範)을 삼으셨으니 나도 삼세의 부처님과 같이 깊고 묘하고 뛰어난 법으로써 스승을 삼아야 하겠다.’
이러한 인연을 말미암은 까닭으로 부처님도 항상 이와 같이 묘한 법을 공경하여 지성스런 마음으로 예배하고 은근히 지키고 보호함을 더하였느니라.
이 법은 매우 희유하니 이러한 까닭으로 지혜로운 이는 반드시 받아서 유지하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또 옛날에 어떤 바라문이 사람의 해골[髑髏]을 가졌는데 그 숫자가 매우 많았다.
화씨성 안을 두루 돌아다니며 팔았으나 오랫동안 도무지 사는 사람이 없자 문득 성내어 높은 소리로
‘이 성 안에 사는 사람으로서 만약 나의 해골을 사지 않는 사람은, 내가 반드시 너희들 모든 사람은 어리석고 암둔한 사람이라는 나쁜 소문을 온 세상에 퍼뜨릴 것이다.’라고 외쳤다.
그때 성 안에 살던 모든 우바새(優婆塞)들이 이러한 말을 듣고 그가 헐뜯어 비방하는 것을 꺼려서 곧 돈과 재물을 지니고 해골을 파는 데에 가서 구리줄로써 그 귀를 꿰뚫으면서
‘만약 이것이 뚫리면 곧 많은 값을 줄 것이고, 반만 뚫리면 값이 점점 작아질 것이고, 전혀 뚫리지 않는 것은 조금도 값을 줄 수 없다’고 하자,
그때 바라문이 우바새에게 물었다.
‘나의 이 해골은 모두 꼭 같아서 차이가 없는 것인데 무슨 까닭으로 값에 차등을 매기는가?’
우바새가 말하였다.
‘앞의 해골과 같이 잘 뚫리는 해골은 이 사람이 살았을 때 부처님의 묘한 법을 들었으니 지혜가 높고 뛰어나 귀함이 이와 같으므로 많은 값을 주는 것이고,
그 반만 뚫리는 것은 비록 묘한 법을 들었으나 아직은 잘 분별하지 못했으니 이 인연 때문에 그대에게 조금만 주려는 것이며,
전혀 뚫리지 않는 것은 그 사람이 조금도 부처님 법을 듣지 못한 자이니 내가 이러한 이유 때문에 값을 조금도 주지 않겠다는 것이오.’
이 해골을 산 우바새는 성 밖으로 가지고 가서 탑을 세우고 공양을 올렸는데 죽고 나서는 천상에 태어났다.
이러한 인연으로 묘한 법은 큰 공덕이 있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 주는 것임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우바새는 법을 들은 사람의 해골로써 탑을 세우고도 오히려 천상 위에 났거늘 하물며 지극한 마음으로 이 법을 듣고 공양 올리고 공경하며 경전을 유지시키는 사람이야 어떠하겠느냐?
이러한 사람이 받는 복의 과보는 다 헤아리기가 어려우며, 미래 세상에 반드시 위없는 도를 성취할 것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모든 중생들이 위없이 안온한 쾌락을 얻고자 하면 중생을 교화하는 큰 이익을 짓기 위하여 모두 반드시 이와 같이 뛰어난 법을 받아서 유지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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