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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사유범천소문경 제5권
[보리행]
이때 문수사리 법왕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의(法義)를 이해한 바로는,
만약 어떤 사람이 보리의 발원[菩提願]을 낸다면 이것은 삿된 발원입니다. 왜냐하면 일체의 법에 만약 얻는 것이 있다면 이것은 모두 삿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보리를 얻으려는 계획으로 발원(發願)한다면 이러한 사람의 모든 소행은 다 삿된 행입니다. 왜냐하면 저 보리라는 것은 욕계에도 머물지 않고 색계에도 머물지 않고 또한 무색계에도 머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 보리는 머무는 곳이 없기에 발원에 상응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허공을 얻으려고 원한다 해서 그 사람이 허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없다.”
“이와 같이 세존이시여, 보살 역시 그러하여 허공의 모습[虛空相]인 보리를 발원한다는 것은 마땅히 이 허공을 발원하는 것임을 알겠습니다.
이 보리에 대해서는 발원할 수 없습니다. 3세(世)를 벗어나서 이것은 상(相)을 받을 수 없습니다.
만약 보살이 두 가지 상(相)을 일으켜서 보리심을 내면서
‘저 생사(生死)와는 다르게 보리가 있으며 저 보리와는 다르게 열반이 있다’ 하는 이런 생각을 낸다면 그 보살은 보리행이 아닙니다.”
이때 승사유범천이 문수사리 법왕자에게 물었다.
“문수사리여, 어떻게 보살마하살은 보리행을 행하십니까?”
대답했다.
“범천이여, 만약 보살이 일체의 법을 행하되 모든 법에서 행하는 것이 없다면 이것은 보살이 보리행을 행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범천이여, 모든 소행을 초월했기에 이름하여 보살이 보리행을 행한다고 합니다.”
다시 물었다.
“문수사리여, 어째서 보살이 모든 소행을 초월한 것을 보리행을 행한다고 하십니까?”
대답했다.
“범천이여, 일체의 반연하는 모습[攀緣相]을 멀리 여의되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에서 모든 반연상을 여읜다면 이것을 보살이 모든 경계(境界)를 초월한 행이라 합니다.”
다시 물었다.
“문수사리여, 초월했다는 말씀은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까?”
대답했다.
“범천이여, 평등을 초월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법이 평등한 것이 곧 보리입니다.”
다시 물었다.
“어째서 보살은 보리의 발원을 일으킵니까?”
대답했다.
“범천이여, 마땅히 저 보리와 같아서입니다.”
다시 물었다.
“무엇을 보리라 합니까?”
대답했다.
“범천이여, 보리라는 것은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고 현재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보살은 3세를 청정하게 보므로 보리의 발원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범천이여, 과거나 미래나 현재나 모든 법은 본래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본래부터 생기는 것이 아니라면 수행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원을 일으킨다면 그 사람은 발원하는 처소가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이 발원하여 보리행을 행해야 일체종(一切種)과 일체지지(一切智智)를 얻기 때문입니다.”
[일체지]
다시 물었다.
“어떤 뜻을 일컬어 일체지지라고 합니까?”
대답했다.
“범천이여, 일체를 다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체지지라고 합니다.”
다시 물었다.
“어떠한 법이기에 일체를 다 아는 지혜[一切智]라 합니까?”
대답했다.
“범천이여, 차별이나 달라지는 상(相)이 없으므로 어느 곳에서든 중생의 모습[衆生相]이 없습니다.
이 중생에 대해서도 이와 같이 하여 압니다.”
[중생은 보리와 다르지 않다]
다시 물었다.
“어찌하여 중생이 없다고 합니까?”
대답했다.
“범천이여, 중생이라는 말은 단지 명자(名字)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명자의 성(性)을 떠나서 중생이 없고 그 중생을 떠나서는 이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름은 중생과 다르지 않고 중생의 성(性)은 이름과 다르지 않습니다.
만약 보리가 중생과 다르다면 마땅히 두 가지 상이 있게 됩니다.
보리와 중생이 같음도 역시 그러합니다.
이러한 의미 때문에 중생과 보리는 다르지 않으며, 다르지 않기 때문에 보리는 평등합니다.
보리가 평등하므로 나[我]가 평등하며 이와 같이 평등하여야 보리를 얻게 되며 그 법도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뜻 때문에 그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내가 항상 평등하면 그와 같이 내가 없으며 이렇기 때문에 내가 없음이 나[我]와 다름이 없습니다.
마치 저 허공에 다른 상(相)이 없듯이 이와 같이 일체의 법은 평등하여 다른 상이 없습니다.”
이때 승사유범천이 문수사리 법왕자에게 말했다.
“문수사리여, 여래께서는 실어자(實語者)이심을 알겠습니다. 여실(如實)하게 이와 같은 법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수행]
문수사리 법왕자가 말했다.
“범천이여, 부처님께서는 모든 법에서 수행하신 바가 없습니다.
여래께서는 오히려 모든 법을 얻지 않았는데 하물며 수행함이 있겠습니까?”
범천이 물었다.
“문수사리여, 여래께서 어찌 이것은 유위법이고, 이것은 무위법이고, 이것은 세간법이고, 이것은 출세간법이다 하는 여러 법을 알지 못하셨겠습니까?”
문수사리가 말했다.
“범천이여, 당신의 뜻에는 어떠합니까? 사람이 허공을 수행한다고 허공을 알겠습니까?”
대답했다.
“아닙니다.”
물었다.
“범천이여, 허공을 말했다 해서 허공이 생겨나거나 사라짐이 있습니까?”
대답했다.
“아닙니다.”
문수사리가 말했다.
“범천이여, 그와 같이 모든 법도 허공과 같습니다.
저 허공은 생멸(生滅)이 없듯이 일체의 법도 역시 그러합니다.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문득 말하기를
‘모든 법에는 생겨남이 있고 소멸함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범천이여, 이와 같이 법을 말하되 말한 바가 없습니다. 일체의 법은 말할 수 있으나 일체의 법은 생기지도 않았고 소멸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말한 것이 없습니다.
만약 말한 법이 생기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아서 말한 것이 없다면 말 역시 그와 같아서 법을 말함이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 법을 말함이 무엇을 알아서 저 모든 법을 말하겠으며, 안다는 것도 역시 그러합니다.
이러한 의미 때문에 모든 법은 진여법(眞如法)에 머문다고 말하나 진여에 머묾이 없고 진여도 머물지 않는 것입니다.”
[문수사리 법문의 공덕]
이때 사천왕(四天王)ㆍ석제환인(釋提桓因)ㆍ대범천왕(大梵天王)은 사바세계의 주인으로서 모인 대중 가운데 있다가 즉시 하늘 꽃[天華]을 부처님께 뿌리면서 이렇게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선남자ㆍ선여인이 문수사리 법왕자가 말한 이와 같은 법을 듣고 믿어서 아는 자가 있다면 마땅히 이 사람은 능히 마군(魔軍)과 모든 원적(怨敵)을 부수어 버린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왜냐하면 법왕자 문수사리께서는 모든 법은 일체의 상(相)을 여의었음을 잘 말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선남자와 선여인이 만약 이와 같이 매우 깊은 법문(法門)을 듣고도 놀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믿어서 알 수 있다면 마땅히 이 사람은 작은 공덕을 따르지 않았음을 알겠습니다.
만약 이 경전이 있는 곳이면 마땅히 부처님께서 머물고 계심을 알겠으며,
만약 이와 같이 매우 깊은 법문을 듣는 곳이면 마땅히 부처님께서 법륜을 굴리시는 곳임을 알겠습니다.
이 경전을 따라 머무는 곳, 즉 취락이나 성읍(城邑)이나 산림(山林)ㆍ광야(曠野)나 탑사(塔寺)ㆍ승방(僧房)이나 경행(經行)하는 곳에서는 모든 마군과 외도와 탐착함이 있는 사람은 지날 수가 없습니다.
만약 과거의 모든 부처님께 많은 공양을 했다면 이에 이와 같은 경전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 경전 가운데서 저희들은 지혜의 광명을 획득했으나 여래와 문수사리ㆍ승사유범천의 큰 은혜를 갚지 못했습니다.
저희들은 항상 경을 들을 때마다 설법하는 법사가 세존(世尊)이시라는 생각을 하며, 피와 살로써 그분들께 공양하여도 오히려 은혜를 갚을 수 없습니다.
이제 저희들과 모든 사람은 법사에 대해 세존이시라는 생각을 내겠으며 저희들과 모든 사람은 마땅히 이전 법을 말하는 분을 따르며 모시겠습니다. 이러한 선남자는 마땅히 모든 하늘[天]이 호위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사람이 이 경전을 베껴 쓰거나, 읽거나, 암송하거나 해설할 때에는 한량없는 모든 하늘이 법을 듣기 위해 가서 그곳에 이를 것입니다.”
이때 세존께서 사천왕ㆍ제석환인ㆍ범천왕 등 모든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여러 선남자여, 너희가 말한 것과 같이 그렇다, 그렇다.
만약 삼천대천(三千大千)세계에 가득한 일곱 가지 보물로 보시한 공덕을 한 부분으로 삼는다면 이 법문을 듣고 얻는 공덕은 그 복이 보시의 공덕보다 수승(殊勝)하다.
여러 선남자여, 삼천대천세계에 사람이 있어 만약 항하(恒河)의 모래와 같이 많은 시방세계에 가득한 일곱 가지 보물로 보시한 공덕을 한 부분으로 삼는다면 이 법문을 듣고 얻는 공덕은 또한 보시의 공덕보다 뛰어나다.
여러 선남자여, 만약 모든 공덕을 얻고자 한다면 마땅히 이 경을 들어야 하며,
만약 신색(身色)의 단정함을 얻고자 하거나 재부(財富)를 얻고자 하거나, 권속(眷屬)을 얻고자 하거나 자재(自在)를 얻고자 하거나 하늘의 즐거움과 사람의 즐거움을 구족하고자 하거나 명예와 칭찬[名稱]을 얻고자 하거나 많이 들어서[多聞] 생각이 견고하고 바르게 위의(威儀)를 행하며 계(戒)ㆍ정(定)ㆍ혜(慧)로 경서(經書)에 통달하고자 하거나 선지식을 얻고자 하거나, 즐거이 말하는 변재(辯才)를 얻고자 하거나 3명(明)과 6통(通)을 얻고자 하거나, 일체의 선법(善法)을 얻고자 한다면
마땅히 이 경을 듣고 이 경을 받들어 믿고 수지독송(受持讀誦)하면서 말씀과 같이 수행하여 널리 남을 위해 설법해야 한다.
여러 선남자여, 만약 사람이 이 경(經)을 행하고도 섭수(攝受)하지 못함이 있는 것을 나는 보지 못했다.
이처럼 일체의 세력자인 여러 선남자여, 나는 지금 너희들에게 말하니, 이 경을 들은 자로서 가령 화상(和尙)이나 아사리(阿闍梨)에게 세간에 있는 공양구(供養具)로써 능히 그 은혜에 보답한 것을 보지 못했다.
이 법은 세간에서 벗어났으므로 세간의 공양으로서는 보답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법은 세간을 초월했기에 세간의 재물로는 보답할 수 없으며,
이 법은 물듦이 없으므로 더러움에 물드는 물건으로는 보답할 수 없으며,
세간에서 필요한 음식ㆍ와구(臥具)로는 은혜를 갚을 수가 없다.
여러 선남자여, 이 법을 설하는 자에게 다른 것으로는 보답할 수 없고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으니, 말하자면 그 말씀과 같이 수행하는 것이다.
만약 사람이 이 법문(法門)에서 그 말씀과 같이 행한다면
이런 사람을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한다고 말하며,
또한 이런 사람을 스승을 공경하며 깨끗하게 은혜를 갚았다고 하며,
이런 사람을 일컬어 중류(衆流)를 건넜다고 한다.
이 사람을 여래의 가르침에 수순하였다고 말하며,
이런 사람은 공연히 남의 신시(信施)를 먹는 것이 아니며,
이런 사람을 모든 험한 길을 지나왔다고 하며 이런 사람을 승당(勝幢)을 건립했다 한다.
이런 사람을 능히 적진(敵陣)을 파괴했다고 한다.
이런 사람을 사자의 왕이라 하는데 두려워함이 없기 때문이며,
이런 사람을 코끼리의 왕이라 하는데 마군을 항복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을 소의 왕이라 하는데 외도의 논사(論師)가 무너뜨릴 수 없기 때문이며,
이런 사람을 의왕(醫王)이라 하는데 여러 가지의 병을 치료하기 때문이며,
이런 사람을 두려움이 없다고 하는데 이와 같이 매우 깊은 법을 설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을 사(捨)를 구족(具足)했다 하는데 일체의 번뇌를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을 청정계(淸淨戒)를 지녔다 하는데 일체의 선법(善法)을 나타내기 때문이며,
이런 사람을 큰 인욕(忍辱)을 얻었다 하는데 나와 내 것을 멀리 여의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을 대정진력(大精進力)이라 하는데 무량겁 동안 마음에 게으름이 없었기 때문이며,
이런 사람을 선정심(禪定心)을 구족했다 하는데 마음을 항상 묶어 생각을 한곳에 머물게 하기 때문이며,
이런 사람을 큰 지혜가 있다 하는데 모든 장구(章句)를 잘 해설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을 큰 공덕이 있다 하는데 무량한 복으로 신상(身相)을 장엄하기 때문이며,
이런 사람을 큰 위덕이 있다 하는데 일월(日月)의 모든 광명을 덮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며,
이런 사람을 큰 힘[大力]이라 하는데 부처님의 10력(力)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을 큰 구름[大雲]이라 하는데 법뢰(法雷)를 진동시킬 수 있기 때문이며,
이런 사람을 큰 비[大雨]라고 하는데 번뇌의 티끌을 소멸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을 귀의(歸依)했다고 하는데 열반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을 큰 구제[大救]라 하는데 생사의 두려움을 구제하기 때문이며,
이런 사람을 밝음을 증득했다[證明]고 하는데 무명(無明)의 어둠을 여의었기 때문이며,
이런 사람을 귀의처[歸趣]라 하는데 마군을 두려워하는 자가 귀의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을 중생의 구경대도(究竟大道)라 하며, 이런 사람을 지위[位]를 얻었다 하는데, 도량(道場)에 앉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을 법안(法眼)을 얻었다 하며, 이런 사람을 진여(眞如)를 보았다 하며,
이런 사람을 공(空)을 안다 하며, 이런 사람을 대비(大悲)에 안주(安住)한다 하며,
이런 사람을 대자(大慈)에 편히 섰다 한다. 이런 사람은 일체의 중생을 버리지 않으며,
이런 사람을 소승(小乘)을 등졌다 하며, 이런 사람을 대승으로 향한다 하며, 이런 사람을 전도(顚倒)를 버렸다 한다.
이런 사람을 평등에 이르렀다 하며, 이런 사람을 법위(法位)에 들어갔다 하며,
이런 사람을 도량에 안주(安住)한다 하며, 이런 사람을 모든 마귀를 파괴했다고 하며,
이런 사람을 일체지(一切智)에 머문다 한다. 이런 사람은 법륜(法輪)을 굴릴 수 있으며,
이런 사람은 불사(佛事)를 지을 수 있다.
선남자여, 내가 1겁이나 나머지 남은 겁[殘劫] 동안 저 사람을 칭찬하고 찬양하며 찬탄한다 해도 말한 것과 같이 수행하는 공덕은 말로 다할 수 없고, 여래의 변재(辯才)로도 다하지 못하며, 소유한 공덕 또한 다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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