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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대집지장십륜경 제6권
4. 유의행품(有依行品)②
“선남자야, 그대는 보아라. 이와 같이 저 찰제리 등 무량한 유정들이, 그와 같이 계율을 깨뜨리고 악행하는 법기가 아닌 승려들을 친근하면, 일체의 선법을 잃고 결국 무간지옥에 떨어지느니라.
그러므로 아주 훌륭한 천상에 나서 열반의 즐거움을 얻고자 하는 이는 모두 승도(勝道)의 사문을 친근하여 섬기고 공양하면서, 그에게 3승의 요긴한 법을 묻고 들어야 하며 혹은 시도(示道)와 명도(命道)의 사문을 구해야 하며,
만일 그런 3도(道)의 사문이 없으면 오도(汚道) 사문 가운데서라도 구해야 하느니라.
비록 그가 계율은 깨뜨렸다 하더라도 바른 견해가 있고 뜻[意樂]과 수행[加行]을 갖추었으면, 마땅히 찾아가 친근하여 섬기고 공양하면서 3승의 요긴한 법을 묻고 들어야 하지만
수행과 뜻과 견해까지 깨뜨린 사람은 찾아가 친근하고 섬기고 공양하지 않아야 한다.
또 그가 비록 계율은 깨뜨렸더라도 삿된 견해가 없고 뜻과 수행과 견해를 갖추었으면, 마땅히 찾아가서 성문승의 법과 독각승의 법과, 또 대승의 법을 묻고 들어야 하며 그를 경멸하거나 헐뜯지 말아야 한다.
3승(乘) 중 어떤 하나의 승을 택하여 배우겠다고 원을 세우고 정진하더라도 다른 승을 경멸하고 헐뜯지 않아야 한다.
만일 그가 3승 가운데서 다른 하나의 승이나, 더 나아가 한 게송이라도 경멸하거나 헐뜯으면, 그와 친근하여 사귀거나, 혹은 함께 살거나, 혹은 함께 사업해서는 안 된다.
만일 그와 친근하여 사귀거나 혹은 함께 살거나, 혹은 함께 사업하면 결정코 그와 함께 무간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선남자야, 만일 3승 중 어떤 하나의 승에 의하여 생사를 벗어나기를 원하고 안락하기를 원하고 위태함과 괴로움을 떠나려 하는 이는
여래가 말하는 바른 법, 혹은 성문승에 의한 것이거나, 혹은 독각승에 의한 것이거나, 혹은 대승에 의한 것이거나, 그 말하는 바른 법을 모두 깊이 믿고 공경하여, 더 나아가 한 게송이라도 비방하거나 방해하거나 감추거나 없애지 말아야 한다.
항상 공경하고 읽고 외우고 들어야 하며 마땅히 견고한 바른 서원을 세워 깨달음[證]을 구해야 하느니라.
3승을 헐뜯으면서 하나의 법만을 따르는 사람과는 같이 살거나, 또한 하룻밤이라도 함께 자지 말며, 그를 친근하여 법을 묻거나 듣거나 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만일 유정이 3승 가운데서 한 승을 헐뜯고 비방하거나, 혹은 3승을 비방하는 사람을 친근하여 법을 묻고 들으면,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결정코 모두가 무간지옥에 떨어져 큰 고통을 받으면서 거기서 벗어날 기약이 없느니라.
왜냐 하면 선남자야, 나는 과거에 보살행을 부지런히 닦아 위없는 지혜를 증득하려 할 때,
혹은 성문승이 설하는 바른 법과 더 나아가 한 게송이라도 구하기 위하여 심지어는 내 몸의 손ㆍ발ㆍ피ㆍ살ㆍ가죽ㆍ뼈ㆍ머리ㆍ눈ㆍ뇌수 등을 다 버렸고,
혹은 독각승이 설하는 바른 법과 더 나아가 한 게송이라도 구하기 위하여 심지어는 내 몸의 손ㆍ발ㆍ피ㆍ살ㆍ가죽ㆍ뼈ㆍ머리ㆍ눈ㆍ뇌수 등을 버렸으며,
혹은 대승이 설하는 법과 더 나아가 한 게송이라도 구하기 위하여 심지어는 내 몸의 손ㆍ발ㆍ피ㆍ살ㆍ가죽ㆍ뼈ㆍ머리ㆍ눈ㆍ뇌수 등을 버렸다.
이렇게 괴로움을 이긴 끝에 3승 가운데 하나를 얻었고 더 나아가 하나의 게송이 가르치는 법을 얻었으며 그것을 얻었을 때마다 깊은 환희심(歡喜心)을 내어 공경하고 받들어 지녀, 설한 그대로 수행하였으며,
잠깐도 쉬지 않고 그와 같이 무량한 겁을 지내면서 일체의 행하기 어려운 고행을 수행하고서야 비로소 구경의 위없는 지혜의 과(果)를 증득할 수 있게 되었고,
또 저 유정들을 이롭고 안락하게 하기 위하여 3승의 바른 법을 설명하여 나타내 보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심지어 한 게송만이라도 비방하거나 방해하거나 감추거나 없애서는 안 되며, 항상 그것을 공경하고 읽고 외우며 묻고 들으면서 견고한 바른 서원을 세워 증득하기를 구해야 하느니라.
선남자야, 이와 같이 3승에서 나온 요긴한 바른 법은 과거ㆍ미래ㆍ현재의 항하의 모래알 수만큼 많은 모든 부처님이 다같이 말씀하시고, 큰 위신력(威神力)으로 함께 호지(護持)하시는 것이니라.
그것은 일체 유정을 생사의 큰 고통에서 건지기 위해서이며, 3보의 종성(種姓)을 흥성하게 해서 끊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니라.
그러므로 이 3승의 바른 법을 두루 믿고 공경하여야 하며, 비방하거나 방해하거나 은폐하여 감추거나 없애서는 안 되느니라.
만일 누구나 이 3승의 바른 법과 나아가 한 게송만이라도 비방하거나 방해하거나 은폐하여 감추거나 없애면 그는 결정코 무간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또 선남자야, 미래의 이 부처님 국토에 사는 포악한 찰제리ㆍ포악한 바라문ㆍ포악한 재관ㆍ포악한 거사ㆍ포악한 사문ㆍ포악한 장자ㆍ포악한 벌사ㆍ 포악한 수달라 등
남녀가 아첨하고 간사하고 어리석으면서도 총명하다는 교만한 마음을 품고, 그 성질이 흉악하고 사나우며 거칠어, 후세의 고과(苦果)를 돌보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살생하기를 좋아하고, 나아가 삿된 견해를 갖고 질투하고 간탐하며 좋은 벗을 미워하고 나쁜 벗을 친근하나니,
이는 3승의 성현의 법기(法器)가 아니니라.
그러한 이들은 혹 성문승의 법을 조금이라도 듣고 익히기만 해도, 곧 모든 부처님이 함께 호지(護持)하시는 독각승의 법과 무상승(無上乘)의 법을 비방하고 헐뜯고 방해하고 은폐하여 널리 퍼지지 못하게 하며,
혹 독각승의 법을 조금이라도 듣고 익히기만 해도, 곧 모든 부처님이 함께 호지 하시는 성문승의 법과 무상승의 법을 비방하고 헐뜯고 방해하고 은폐하여 널리 퍼지지 못하게 하며,
혹 무상승의 법을 조금이라도 듣고 익히기만 해도, 곧 모든 부처님께서 함께 호지하시는 성문승의 법과 독각승의 법을 비방하고 헐뜯고 방해하고 은폐하여 널리 퍼지지 못하게 하느니라.
그리하여 명예와 이익을 구하기 위해 이렇게 외쳐 말하느니라.
‘나는 대승이다. 대승의 무리이다. 나는 오직 대승만을 듣고 익히고 받들어 지니기를 좋아하며, 성문과 독각승의 법은 좋아하지 않고 그와 같은 2승을 배우는 사람을 친근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대승 사람이라고 거짓으로 일컫고, 스스로 어리석고 교만한 힘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자기가 익히지 않는 3승 중의 다른 바른 법을 비방하고 헐뜯고 방해하고 은폐하여 널리 퍼지지 못하게 하며,
자기가 익히지 않는 3승 중의 다른 법을 배우는 사람을 미워하고 질투하며 비방하고 헐뜯고 욕하여 그 위세(威勢)를 없애느니라.
선남자야,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과 보살마하살은 일체의 유정을 이롭게 하고 안락하게 하고자 하기 때문에 큰 자비심의 힘으로 두 가지 일을 호지하신다.
첫째는 3보의 종성을 흥성하게 해서 항상 끊이지 않게 하기 위하여, 세속을 버리고 출가하여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는 것이요,
둘째는 3승에서 나온 요긴한 법인 4성제(聖諦) 등과 상응하는 바른 법이니라.
이 같은 두 가지 일은 오직 부처님과 큰 보살들만이 능히 호지할 수 있으며 성문이나 독승각(獨勝覺) 등의 할 일이 아니며, 또 백천 나유타 수의 대범천왕이나 제석천왕이나 4대주(大州)의 전륜성왕 등은 호지할 수 없느니라.
미래세(未來世)의 이 부처님 국토에 사는 찰제리의 포악한 왕은 나의 법에 의지하여 출가하여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은 이를 보면,
그가 범한 과실을 방편을 써서 찾아내어 갖가지 방법으로 꾸짖고 욕하되,
혹은 매로 때리고, 혹은 감옥에 가두며, 혹은 온갖 필수품을 빼앗고, 혹은 가사를 벗기고 환속시켜서는 갖가지 속가(俗家)의 일을 시키며, 혹은 함부로 역사(役事)를 시키고, 혹은 함부로 나라 밖으로 내쫓고, 혹은 음식을 주지 않고, 혹은 몸과 목숨을 해치느니라.
그 찰제리의 포악한 왕들은 어리석고 교만하여 자기 세력으로 모든 부처님과 보살이 큰 자비의 힘으로 함께 호지하시는 나의 모든 제자를 헐뜯고 욕하고 벌주며,
모든 부처님과 보살이 큰 자비의 힘으로 호지하시는 매우 깊은 나의 법을 비방하고 없애려 하며,
또 3세의 모든 부처님과 보살이 함께 호지하시는 3승의 바른 법을 방해하고 은폐하여 널리 퍼지지 못하게 하느니라.
찰제리의 포악한 왕과 나아가 벌사ㆍ수달라의 포악한 남녀들은 어리석고 교만하여 스스로 대승이라 부르지만,
그들은 성문이나 독각의 2승의 법기(法器)도 못 되거늘, 하물며 위없는 대승의 법기이겠느냐?
다만 이익과 공경과 명예를 구하기 위하여 세간의 어리석은 잡류(雜類)들을 속여 스스로를 대승의 사람이라 일컬으면서, 여래의 2승의 바른 법을 훼방하나니,
이런 사람들은 어리석고 아첨하며 교만하고 질투하며 간탐하는 인연 때문에 나의 법의 눈을 파괴하여 빨리 멸하게 하느니라.
그들은 3세의 모든 부처님에 대해서 큰 죄를 범하는 것이요,
또 3세의 모든 보살에 대해서도 큰 죄를 범하는 것이며,
또 3법의 모든 성문에 대해서도 큰 죄를 범하는 것이며,
또 3세의 모든 성문에 대해서도 큰 죄를 범하는 것으로서,
오래지 않아 그 몸이 못 쓰게 되고 갖가지 중하고 모진 병을 얻게 될 것입니다.
저 찰제리의 포악한 왕과 나아가 벌사ㆍ수달라의 포악한 남녀들은 그 악업을 짓고 전도된 소견을 일으키기 때문에 그로 인하여 일체의 선근을 끊게 된다.
때로는 보시의 복을 많이 닦아 미래 세상에 귀신의 세계나 축생의 세계에 태어나 부유하고 안락한 과보를 받은 일은 있지만,
그 몸으로는 색계와 무색계의 하열한 선근도 일으키지 못한다.
하물며 성문ㆍ독각 및 무상승의 공용(功用)이 없이 부처님의 지혜를 일으키는 선근의 종자를 심을 수 있겠느냐?
또 그 혀가 병에 걸려 병신이 되고 오랫동안 입을 다물고 말하지 못하면서 참기 어려운 온갖 지독한 고통을 받다가, 목숨을 마친 뒤에는 결정코 저 무간의 대지옥에 날 것이다.
그러므로 여래는 저 일체의 참되고 훌륭한 찰제리왕과 나아가 참되고 훌륭한 수달라 등의 남녀들을 자비심으로 가엾이 여겨, 어둡고 긴 밤동안 이익과 안락을 얻게 하기 위하여 은근하고 간절하게 이렇게 말하느니라.
‘너희들은 부디 내 법에 귀의하여 수염과 머리를 깎고 조각 가사를 입은 출가한 사람들을 괴롭히고 꾸짖으며 비방하고 질책하지 말며,
내가 말하는 3승의 바른 법을 부디 비방하거나 헐뜯거나 방해하거나 은폐하지 말라. 만일 내 말을 어기고 일부러 지으면 그가 받는 죄의 과보는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을 것이다.’
왜냐 하면 나의 법에 귀의하여 수염과 머리를 깎고 붉은 가사를 입은 출가한 모습은
곧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이 대비(大悲)의 신력(神力)으로 호지하는 바이며 수염과 머리를 깎고 붉은 가사를 입은 출가한 위의는 곧 모든 성현들의 해탈의 당기[幢] 모양이며,
그것은 또 모든 성문승의 사람들이 수용하는 해탈의 법미(法味)의 당기 모양이요,
그것은 또 모든 독각승의 사람들이 수용하는 해탈의 법미의 당기 모양이며,
그것은 또 모든 대승의 사람이 수용하는 해탈의 법미의 당기 모양이기 때문이다.
여래가 설하는 3승의 정법도 역시 3세의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이 대비의 신력으로 호지하는 바이며,
이는 모든 성현들의 해탈이 의지하는 곳이며,
이는 또 모든 성문승 사람들이 수용하는 해탈의 법미가 의지하는 곳이요,
그것은 또 모든 독각승 사람들이 수용하는 해탈의 법미가 의지하는 곳이며,
그것은 또 모든 사람들이 수용하는 해탈의 법미가 의지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선남자야, 그러므로 해탈을 구하는 이는
마땅히 나의 법에 귀의하여 수염과 머리를 깎고 붉은 가사를 입은 출가한 사람을 친근하고 공경하며 공양해야 하느니라.
먼저 성문승의 법을 믿고 공경하되,
만일 자기가 듣고 수용하였으면 남도 듣고 수용하게 할 것이며
자기가 독송(讀誦)하였으면 남도 독송하게 할 것이며,
자기가 베껴 썼으면 남도 베껴 쓰게 할 것이며
자기가 보시를 하였으면 남도 보시를 하게 할 것이며,
자기가 설명하였으면 남도 설명하게 하면서 생각하고 수행하여 널리 퍼지게 하여야 하느니라
이와 같이 독각승의 법을 믿고 공경하되,
만일 자기가 듣고 수용하였으면 남도 듣고 수용하게 할 것이며,
자기가 독송하였으면 남도 독송하게 할 것이며,
자기가 베껴 썼으면 남도 베껴 쓰게 할 것이며,
자기가 보시하였으면 남도 보시하게 할 것이며,
자기가 설명하였으면 남도 설명하게 하면서, 생각하고 수행하여 널리 퍼지게 해야 하느니라.
이와 같이 대승의 법을 믿고 공경하되,
자기가 듣고 수용하였으면 남도 듣고 수용하게 할 것이며,
자기가 독송하였으면 남도 독송하게 할 것이며,
자기가 베껴 썼으면 남도 베껴 쓰게 할 것이며,
자기가 보시하였으면 남도 보시하게 할 것이며,
자기가 설명하였으면 남도 설명하게 하면서, 생각하고 수행하여 널리 퍼지게 해야 하느니라.
만일 그가 법기가 아니면, 그의 말을 스스로도 듣지 말고 남도 듣지 말게 할 것이며,
자세히 말하자면 마땅히 일체의 악법을 멀리 떠나야 하며,
악한 벗을 버리고 착한 벗과 친할 것이며,
여섯 가지 바라밀을 닦아 익히고 일체의 악업을 자주 참회할 것이며,
능력에 맞는 바른 소원을 부지런히 내어야 하느니라.
만일 이렇게 해서 그와 같은 것을 이루게 되면 지금의 몸으로 성문승의 그릇을 이룰 수 있을 것이요, 혹은 독각승의 종자에서 물러나지 않고, 혹은 대승의 종자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3승을 다 배워 닦아야 하고, 교만하여 함부로 대승이라 부르면서 성문승과 독각승의 법을 비방하거나 헐뜯지 않아야 하느니라.
나는 먼저 오직 대승의 법기로서 굳게 수행하는 사람만을 위해서
‘오직 대승을 닦아 구경(究竟)을 얻으라.’고 말하였으므로 먼저와 지금의 말이 서로 틀리지 않느니라.”
그때 부처님께서는 이 뜻을 거듭 나타내기 위하여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많은 대중 앞에서
금강장보살은 내게 물었다.
계율을 깨뜨리는 악행 필추에게
공양하라고 어째서 권하느냐고.
온갖 두다(杜多)의 공덕을 잃고
어리석고 나쁜 견해를 가지고
도를 더럽히는 법기(法器)가 아닌 사람
그를 꾸짖고 벌하는 것을 왜 허락하지 않느냐고.
또 그를 따라
3승의 미묘한 법의
진실한 해탈의 양약(良藥)을 듣고서
적정(寂靜)의 열반에 나아간다고 설하느냐고.
무엇 때문에 다른 경전에서는
대승의 해탈만을 주장하면서
2승법은 배우지 말라 하더니
지금 다시 3승을 말하느냐고.
저 일체 유정들을 가엾이 여겨
사되고 나쁜 업을 모두 버리고
이익과 안락을 얻게 하기 위하여
원컨대 말씀하여 의심 풀어달라고.
저 찰제리왕을 이롭게 하고
내지 수달라를 이롭게 하기 위해
필추를 괴롭히지 못하게 한 것이니
그가 큰 죄를 지을까 두려워서니라.
수염과 머리 깎고 가사 입은 것
모든 부처님의 법의 당기 모양이요,
모든 부처님이 다 함께 호지하는
해탈로 나아가는 도복(道服)이니라.
비록 율의(律儀)를 깨뜨렸지만
해탈을 영원히 막은 것이 아니니,
능히 온갖 나쁜 견해 버리고
마땅히 빨리 열반으로 나아가리라.
마치 좋은 약은 썩었다 해도
그래도 뭇 병을 고칠 수 있는 것처럼
그와 같이 율의를 깨뜨렸더라도
나의 괴로움 없앨 수 있느니라.
그 필추가 포살갈마(布薩羯磨)에
참여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아도
남을 위해 설법하는 것 허락하나니
함께 복 받을 것 의심이 없느니라.
만일 3보에 귀의하여 공경하고
나를 일컬어 대사(大師)라 하며
능히 온갖 악을 버리면
저 외도의 무리보다 훌륭하니라.
마치 저 나찰(羅刹)의 섬에 떨어진
상인(商人)들이 모두 놀라고 당황하여
각각 짐승의 털 하나씩 붙잡고
바다를 건너 어려움을 면하는 것과 같으니라.
그와 같이 계율을 깨뜨린 사람도
온갖 나쁘고 삿된 소견 떠남에
하나의 믿음을 인(因)으로 삼아
번뇌의 악귀로부터 벗어나느니라.
해탈의 모양을 지녔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께서 평등하게 호지하여
계율을 깨뜨린 필추도 괴롭히지 않나니
능히 온갖 중한 죄악에서 떠났기 때문이니라.
많은 복 즐기는 모든 이들
참 해탈 구하기를 좋아하여
법기이건 아니건 간에 평등하게 보호하면
해탈을 증득하기에 어려움이 없으리라.
어리석고 교만하여 대승이라 자칭하지만
그는 지혜의 힘이 없고
더욱이 2승의 법도 모르거늘
하물며 대승법을 이해할 수 있으랴.
비유하면 저 눈을 잃은 사람이
어떤 빛깔도 보지 못하는 것처럼
그와 같이 믿음을 잃은 사람은
대승의 법을 이해하지 못하느니라.
힘이 없어 못물과 강물도 마시지 못하면서
어떻게 큰 바닷물을 마실 수 있겠는가?
그와 같이 2승의 법을 배우지 않고서
어떻게 대승의 법을 배울 수 있겠는가?
2승의 법을 먼저 믿어야
비로소 대승의 법을 믿을 수 있으리니
믿음 없이 대승을 외우는 것
그것은 빈 말일 뿐 아무 이익이 없느니라.
마음속에는 단견(斷見)을 가지고서
망령되이 스스로 대승이라 외치면서
3업(業)의 죄를 단속하지 못하면
나의 바른 법을 허물고 어지럽혀
그는 목숨을 마친 뒤에
결정코 무간지옥에 떨어지리니
그러므로 마땅히 근기를 관찰하여 말하되
법기 아닌 자에게는 말하지 말라 하느니라.
교만하고 자비심이 없어
포악하고 그 뜻이 낮고 천한 이를
지혜로운 사람은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그는 단견(斷見)을 가진 자이니라.
성문승도 아니요 연각승도 아니며
또한 대승법의 그릇도 아니어서
모든 부처님 의심하고 헐뜯고 비방하면
그는 반드시 무간지옥에 떨어지리라.
계율을 지키지만 떠들기를 좋아하고
법을 아끼면서 고통과 악을 두려워하면
지혜로운 사람은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그 이름 성문승(聲聞乘)이니라.
보시하기 즐기고 생멸(生滅)을 관찰하며
항상 고요히 혼자 있기 좋아하면
지혜로운 사람은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그 이름 독각승이니라.
온갖 선근을 모두 갖추고
자비의 근본을 잘 수호하며
항상 중생 껴잡아 이롭게 하기 좋아하면
그 이름 대승이니라.
신명(身命)을 버려 계를 지키고
중생을 괴롭히지 않고 해치지 않으며
정진하여 공의 법을 구하면
대승임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마음은 모든 법을 참을 줄 알고
좋은 말은 숨기거나 아끼지 않고
항상 법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면
대승임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법기이건 법기가 아니건 간에
이롭고 안락하게 하려는 그 마음 평등하며
어떤 세간법에도 물들지 않으면
대승임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그러므로 지혜 있는 사람은
3승을 말하는 이를 다 공경하고
나의 제자들을 괴롭히지 않아
위없는 깨달음을 빨리 이루느니라.
[열 가지 유의행(1)]
또 선남자야, 만일 참되고 훌륭한 찰제리ㆍ참되고 훌륭한 바라문ㆍ참되고 훌륭한 재관ㆍ참되고 훌륭한 거사ㆍ참되고 훌륭한 장자ㆍ참되고 훌륭한 사문ㆍ참되고 훌륭한 벌사ㆍ참되고 훌륭한 수달라의 남녀들로서,
열 가지 유의행의 바퀴[有依行輪]를 성취하면,
현재의 몸으로 성문승의 종자를 빨리 심어 잃지 않을 것이요, 혹은 지금의 몸으로 성문승의 거룩한 법의 그릇을 이룰 것이나, 그것은 독각승이나 대승의 거룩한 그릇은 아니니라.
그 열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 깨끗한 믿음을 완전히 갖추어 일체 선업과 악업의 과보가 있다고 믿는 것이요,
둘째 부끄러움을 완전히 갖추어 모든 나쁜 벗의 나쁜 견해를 멀리 떠나는 것이며,
셋째 율의(律儀)에 편히 머물러 살생과 나아가 술 마시는 일 등을 멀리 떠나는 것이요,
넷째 인자한 마음[慈心]에 편히 머물러 일체의 성냄과 괴롭힘을 멀리 떠나는 것이요,
다섯째 슬퍼하는 마음[悲心]에 편히 머물러 일체의 쇠약한 유정을 구제하는 것이니라.
여섯째 기뻐하는 마음[喜心]에 편히 머물러 모든 말로 짓는 네 가지 악업을 멀리 떠나는 것이며,
일곱째 버리는 마음[捨心]에 편히 머물러 일체의 간탐과 질투를 멀리 떠나는 것이요,
여덟째 바른 귀의를 갖추어 일체의 길흉(吉凶)에 대한 망령된 집착을 멀리 떠나 마침내 삿된 신(神)과 외도에 귀의하지 않는 것이며,
아홉째 정진을 완전히 갖추어 견고하고 용맹하게 모든 선법을 닦는 것이요,
열째 항상 고요함을 좋아하고 법의 뜻을 생각하고 구하되 기뻐하며 게으르지 않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만일 참되고 훌륭한 찰제리왕과 나아가 참되고 훌륭한 수달라 등의 남녀로서, 이 열 가지 유의행의 바퀴를 성취하면, 현재의 몸으로 성문승의 종자를 빨리 심어 잃지 않고, 혹은 현재의 몸으로 성문승이 소유한 모든 거룩한 법을 증득하여 성문승의 온갖 거룩한 법의 그릇을 성취하느니라.
그것은 독각이나 대승의 거룩한 법을 증득하는 것이 아니요, 독각이나 대승의 거룩한 그릇을 이루는 것도 아니니, 여기서 독각과 대승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하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선남자야, 이와 같은 열 가지 유의행의 바퀴는 일체의 성문ㆍ독각ㆍ보살과 모든 부처님이 공동으로 갖추신 것이니라.
[열 가지 유의행(2)]
선남자야, 또 열 가지 유의행의 바퀴가 있는데, 이것은 성문과는 함께 하지 않고 오직 독각과 보살과 여래만이 공동으로 갖추는 것이니,
만일 참되고 훌륭한 찰제리왕과 나아가 참되고 훌륭한 수달라 등의 남녀로서 이 열 가지 유의행의 바퀴를 성취하면, 그들은 현재의 몸으로 독각승의 종자를 빨리 심어 잃지 않고, 혹은 현재의 몸으로 독각승이 소유한 거룩한 법을 증득하여 독각승의 거룩한 온갖 법기를 이루느니라.
그 열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 청정한 몸과 말과 뜻의 업을 수행하는 것이요,
둘째 부끄러움[慙愧]을 갖추어 자신을 싫어하는 것이며,
셋째 다섯 가지 취온(取蘊)을 깊이 두려워하는 것이요,
넷째 생사의 강을 건너기가 극히 어렵다고 보는 것이며,
다섯째 항상 고요함을 즐기어 모든 시끄러움을 떠나는 것이요,
여섯째 아련야를 즐기고 남의 과실을 비방하지 않는 것이며,
일곱째 모든 감관을 잘 단속하여 언제나 마음이 고요한 것이요,
여덟째 연기(緣起)를 잘 관찰하여 인과를 자세히 살피는 것이며,
아홉째 항상 즐겨 부지런히 선정을 닦는 것이요,
열째 일어나고 모이는 법[集起法]을 잘 제거해 없애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만일 참되고 훌륭한 찰제리왕과, 나아가 참되고 훌륭한 수달라 등의 남녀로서, 이 열 가지 유의행의 바퀴를 성취하면 그들은 현재의 몸으로 독각승의 종자를 빨리 심어 잃지 않고, 혹은 현재의 몸으로 독각승이 소유한 거룩한 법을 증득하며, 독각승의 온갖 거룩한 법의 그릇을 이룰 것이다.
선남자야, 이것을 일체 성문ㆍ독각의 유의행의 바퀴라고 이름하나니, 모든 성문과 독각들은 이 바퀴를 의지하여, 3유(有)의 큰 바다를 빨리 건너 열반의 성(城)에 빨리 들어가느니라.
선남자야, ‘유의행(有依行)의 바퀴’라는 글귀의 뜻은 무엇인가?
유의(有依)란 집착(執着)이 있고, 나[我]가 의지하는 바가 있으며, 받아들임이 있고, 얽매임이 있다는 것이다.
행(行)이란 이른바 온(蘊)의 행ㆍ계(界)의 행ㆍ 처(處)의 행과 얽매이고 소속된 행[有繫屬行]이다. 바퀴란 가르쳐 주고 가르쳐 경계하는 바퀴이니, 전륜왕이 타는 수레바퀴와 같고 혹은 맨 먼저 가는 으뜸의 바퀴이니라.
이와 같이 모든 성문과 독각은 이 바퀴를 의지하여 열반의 길을 구하느니라. 그러므로 이 둘은 대승의 그릇이 아니니라.
왜냐 하면 그들은 하열한 행을 의지하기 때문에 대승의 그릇이 아니요,
그들은 자기의 온갖 온행(蘊行)에 집착하여 놀라고 두려워하고 싫어하고 근심하여, 스스로 일체의 걱정과 고통으로부터 해탈하기를 구하면서도 일체 유정의 해탈은 구하지 않고 수행하기 때문에 대승의 그릇이 아니니라.
그들은 자기의 온갖 계행(界行)을 의지하여 놀라고 두려워하고 싫어하고 근심하여, 자기만이 일체의 근심과 고통에서 해탈하기를 구하면서도 일체 유정의 해탈은 구하지 않고 수행하기 때문에 대승의 그릇이 아니며,
그들은 자기의 온갖 처행(處行)을 받아들여 놀라고 두려워하고 싫어하고 근심하여 해탈하기를 구하면서도 일체 유정의 해탈은 구하지 않고 수행하기 때문에 대승의 그릇이 아니니라.
그들은 얽매이고 소속된 행에 매달려 유정들을 받아들이기를 좋아하지 않아 자비심이 없고 얽매임만이 있기 때문에 대승의 그릇이 아니며,
그들은 남들이 온갖 고통을 받는 것을 보고도 자신을 버려 구제하지 않고, 다만 자신만을 위하여 해탈을 구하기 때문에 대승의 그릇이 아니며,
그들은 자기의 모든 번뇌를 끊지만, 일체 유정의 모든 번뇌를 즐겨 끊지 않기 때문에 대승의 그릇이 아니니라.
그들은 대승의 수레를 타고 보리로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대승의 그릇이 아니며,
그들은 불ㆍ보살의 지혜의 바퀴를 따라 보리로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대승의 그릇이 아니며,
또 그들은 벗도 없이 혼자서 열반의 성(城)에 들어가기를 좋아하여 수행하기 때문에 대승의 그릇이 아니니라.
선남자야, 어떤 중생은 성문승과 독각승의 법에 대하여 아직 고생하면서 바르고 부지런히 공부하려 하지 않는다.
이런 중생은 아직 근기가 성숙하지 못하였고, 또 하열하며 정진하는 힘이 미약하다.
만일 누가 그에게 미묘하고 매우 깊은 대승의 바른 법을 설명해 주면,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모두 큰 죄를 범하고, 또 일체 부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 된다.
왜냐 하면 만약 성문승과 독각승의 법에 대하여 고생하면서 바르고 부지런히 공부하려 하지 않는 중생은 근기가 아직 성숙하지 못하였고, 또 하열하며 정진하는 힘이 미약하므로,
갑자기 미묘하고 매우 깊은 대승의 바른 법을 들으면, 그 중생은 실로 어리석으면서 스스로를 총명하고 슬기롭다 생각하고서 단견(斷見)에 빠지고 전도된 생각에 떨어져 무인론(無因論)에 집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모든 인과에 대하여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을 내고서 모든 선악의 업을 부정하여 망령되게 대승을 말하면서 나의 법을 무너뜨리고 어지럽힐 것이다.
즉 법이 아닌 것을 법이라 하고, 바른 법을 법이 아니라 하며,
실로 사문이 아닌 것을 사문이라 말하고, 진실한 사문을 사문이 아니라고 말하며,
실로 계율이 아닌 것을 계율이라 말하고 진실한 계율을 계율이 아니라고 말하느니라.
이렇게 어리석고 전도되고 교만하고 질투하며 남을 배척하는 마음으로 대승의 법은 칭찬하고 옹호하여 널리 퍼지게 하면서, 성문승과 독각승의 법은 헐뜯고 비방하고 은폐하여 널리 퍼지지 못하게 한다.
성문승이나 독각승이나 혹은 무상승(無上乘:대승)을 여실히 의지하지 못하고서 속세를 버리고 출가하여 구족계(具足戒:비구계)를 받아 필추의 성품을 이루었다 해도 모든 선법(善法)의 인연을 여실히 닦아 모으지 못하면
나의 제자로서 법기이건 법기가 아니건 간에, 이른바 유학(有學)과 무학(無學)의 행을 부지런히 수행하여, 나아가 최후의 극과(極果)를 얻은 이와, 계율을 지키거나 계율을 깨뜨리거나 계율이 없는 참되고 훌륭한 이생(異生)을 헐뜯고 꾸짖으며 괴롭힌다.
그리고 그 옷과 발우를 빼앗고 모든 필수품 쓰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며, 그를 얽어매거나 옥에 가두느니라.
이와 같이 일체의 인과를 부정하는 단멸론자는 비록 사람들 사이에 있지만 실은 악귀이니라. 그는 미래 세상의 무수한 대겁(大劫)을 지내도록 사람의 몸을 받기 어려울 것이니, 차라리 지옥에서 무량한 고통을 받을지언정 사람으로서 단견(斷見)을 일으키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런 어리석은 사람은 오래지 않아 그 몸이 못쓰게 되고, 오랫동안 혀가 묶여 말하지 못하며 참기 어려운 지독한 온갖 고통을 받다가 목숨을 마친 뒤에는 결정코 무간지옥에 날 것이다.
그는 모든 나쁜 세계를 오가고 돌아다니면서 온갖 고통을 받지만 구제하기 어려우며, 몇 백 천 겁을 지내도 다시 사람의 몸을 받기가 어려울 것이다.
비록 무량무수한 겁을 지낸 뒤에 다시 사람의 몸을 받더라도, 부처가 없는 5탁(濁)의 세계에 나서 장님ㆍ귀머거리ㆍ벙어리ㆍ혀가 없는 등 갖가지 중병에 항상 걸리고, 혹은 몸이 추해 사람들이 보기 싫어하며, 입은 어눌하고 귀는 나쁜 소리만 들으므로 마음이 항상 산란하여 아무 것도 분별하지 못하느니라.
그리고 빈궁한 집에 태어나 온갖 일에 모자람이 많으며, 좋은 벗을 만나지 못하고 나쁜 벗의 행을 따라 즐겨 나쁜 업을 짓고 나쁜 견해에 집착하기를 좋아하여, 무간의 죄를 짓고는 다시 무간지옥에 떨어지며 나쁜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나올 기약이 없느니라.
이런 어리석은 단멸론자는 나의 바른 법을 깨뜨리고 어지럽히며 헐뜯고 없애며, 계율을 지키거나 계율을 깨뜨리거나 계율이 없는 나의 제자를 핍박하고 괴롭히고 꾸짖고 벌하여 모두가 편안하게 선업을 닦지 못하게 하나니,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몇 백천 겁 동안 온갖 나쁜 세계에 빠져 어둠에서 어둠으로 돌아 들어가면서 벗어날 기약이 없다.
이런 중생이 갖는 죄의 과보는 다 성문승이나 독각승의 법을 듣고 익히기를 구하지 않고, 먼저 미묘하고 매우 깊은 대승의 바른 법을 듣고 익히기를 구했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은 어리석은 단멸론자는 하열한 사람의 몸조차도 얻기 어렵거늘 하물며 성현의 법의 그릇을 이룰 수 있겠는가? 더욱이 성문과 독각이 증득한 열반조차도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광대하고 매우 깊은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을 얻을 수 있겠는가?
이런 중생의 온갖 과실은 다 성문승과 독각승의 법도 배우지 못한 채 먼저 대승에 들어가고자 하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야, 비유하자면 틈이 많은 진흙 병에 기름이나 우유를 넣으면 모두 새어 병과 기름을 다 잃고 마는 것과 같다. 왜냐 하면 그 병에 과실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중생도 성문승과 독각승의 법에 대해 아직 힘들여 공부하려 하지도 않고, 근기는 아직 성숙하지 못하였고, 하열하며 정진의 힘이 미약함에도,
만일 누가 그에게 미묘하고 매우 깊은 대승의 법을 말해 주면,
말하고 듣는 사람이 모두 큰 죄를 받으며, 또한 일체 부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 되나니, 그 여러 가지 과실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으니라.
또 비유하면, 세간의 창고가 무너져 구멍이 났을 때, 거기 보물을 넣어 두면 많은 손실이 있는 것처럼,
그와 같이 중생도 2승의 법을 헐뜯고 비방하면서 믿지 않고, 또 즐겨 배우려 하지도 않을 때, 그에게 대승을 말하면 그것을 여실히 이해하지 못하고 그로 인해 죄를 짓고는 끝없이 나쁜 세계로 돌아다니게 되느니라.
또 비유하면, 물이 많이 새는 배는 사람이 타거나 짐을 싣고 큰 바다에 뜰 수 없는 것처럼,
그와 같이 간탐과 질투가 많은 중생이 2승의 법을 배우지 않고 망령되게 대승이라 자칭하고, 실은 단견(斷見)을 갖고 교만하고 의심하면, 마치 물이 새는 배처럼 번뇌의 몸을 이루므로 일체지(一切智)의 바다에 들어가지 못하느니라.
또 비유하면, 눈먼 장님은 갖가지 보배를 드러내 보이지 못하는 것처럼,
그와 같이 중생도 교만하고 방탕하며 공견(空見)에 집착하여 2승을 배우지 않으면, 지혜의 눈이 없어서 위없는 대승의 공덕의 보배를 나타내 보이지 못하느니라.
또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그 몸이 냄새가 나고 더러우면, 비록 온갖 훌륭한 향을 발라도 끝내 그 몸을 향기롭고 깔끔하게 할 수 없는 것처럼,
그와 같이 중생도 어리석고 교만하여 2승의 법을 부지런히 닦기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살생과, 또한 삿된 견해 등을 끊지 않으면 아무리 위없는 대승의 법을 부지런히 들어도 끝내 매우 깊은 그 법을 이해하지 못하느니라.
또 비유하면, 돌밭에는 아무리 좋은 종자를 심고 부지런히 가꾸어도 끝내 그 열매를 얻지 못하는 것처럼,
그와 같이 중생도 2승의 법에 대하여 교만하고 게을러 부지런히 닦기를 좋아하지 않고, 5욕(欲)을 탐하고 구하여 만족할 줄 모르면서 아무리 그 몸에 대승의 종자를 심고 부지런히 정진하여도 끝내 이루지 못하느니라.
또 비유하면, 옹기에 먼저 독약을 넣었다가 다음에 석밀(石蜜)을 조금 넣으면 그것을 먹을 수 없는 것처럼,
이와 같이 중생도 2승의 법을 즐겨 배우지 않고 무인론(無因論)에 집착하면, 그를 위해 대승을 말하더라도 끝내 자타(自他)의 이익을 이루지 못하느니라.
또 비유하면, 옹기에 먼저 석밀을 넣고 뒤에 독약을 조금만 넣을지라도 그것을 먹을 수 없는 것처럼, 이와 같이 중생도 2승의 바른 법을 부지런히 배울지라도 아직 성취하지 못하였을 경우, 그를 위해 대승을 말하면 두 가지를 다 잃게 되느니라.
또 비유하면, 어리석고 미쳐 그 마음이 어지러운 사람에게 그를 위해 음악을 연주하여도 그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이와 같이 중생도 2승의 법을 아직 배우지 못하고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 등 사나운 번뇌가 그 마음을 어지럽히고 무인론과 단멸론(斷滅論:단견)에 집착하여 그 근기가 성숙하지 못했으면, 아무리 오랫동안 그에게 대승을 말하여도 그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느니라.
또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갑옷도 입지 않고 무기도 들지 않은 채 싸움터에 들어가면, 반드시 상해를 입어 온갖 고뇌를 받는 것처럼,
이와 같이 중생도 2승의 법을 아직 배우지 않아 지혜가 모자라고 근기가 성숙하지 않았을 경우, 그에게 대승을 말하면 반드시 허망한 집착을 내고, 그로 말미암아 계속 악을 지어 그 끝이 없을 것이다.
이런 어리석은 사람은 오래지 않아 그 몸이 못쓰게 되고, 여러 날 동안 혀는 묶여 말하지 못하고, 참기 어려운 지독한 고통을 받다가 목숨을 마친 뒤에는 결정코 무간지옥에 날 것이니라.
그리하여 온갖 나쁜 세계를 오가며 돌아다니는 것은 앞에서 자세히 말한 것과 같으니라.
[]
선남자야,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먼저 일체 중생의 마음을 관찰한 뒤에 설법해야 하느니라.
먼저 인자한 마음[慈心]ㆍ슬퍼하는 마음[悲心]ㆍ기뻐하는 마음[喜心]ㆍ 이롭게 하려는 마음[益心]ㆍ게으르지 않는 마음[不懈怠心]ㆍ잘 참는 마음[能忍受心]ㆍ교만하지 않는 마음[不憍慢心]ㆍ질투하지 않는 마음[不嫉妬心]ㆍ인색하지 않는 마음[不慳恡心]ㆍ고요한 마음[等引定心]을 일으킨 뒤에
남을 위해 바른 법을 설명하여 저 중생들로 하여금 그 설법을 듣고 생사(生死)에 돌아다니면서 큰 험난에 떨어지지 않게 해야 하느니라.
[행]
그러므로 여래는 일체 중생의 심상(心相)을 잘 통달하여 번뇌가 없고 집착이 없는 행의 바퀴로써 그들을 위하여 바른 법을 말하느니라.
큰 갑옷과 투구를 갖춘 일체의 보살마하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말미암아,
그들로 하여금 모든 번뇌를 끊어 없애게 하고 3유(有)의 바다를 건너게 하며, 3승 가운데서 그 마음이 좋아하는 대로 승(乘)으로 나아감을 따라 빨리 원만하게 이루게 하기 위하여 바른 법을 말하되, 마침내 생사에 돌아다니면서 큰 험난에 떨어지지 않게 하느니라.
[번뇌가 없는 행]
번뇌가 없는 행의 바퀴란 어떤 것인가?
이른바 설법할 때에 온(蘊)이 있다 하지 않고, 처(處)가 있다 하지 않으며, 계(界)가 있다 하지 않고,
욕계(欲界)가 있다 하지 않으며, 색계(色界)가 있다 하지 않고, 무색계(無色界)가 있다 하지 않으며,
이 세상이 있다 하지 않고, 저 세상이 있다 하지 않으며,
모든 행이 있다 하지 않고, 수(受)가 있다 하지 않으며, 상(想)이 있다 하지 않고, 사(思)가 있다 하지 않고, 촉(觸)이 있다 하지 않고, 작의(作意)가 있다 하지 않고,
무명(無明)이 있다 하지 않고, 또한 노사(老死)가 있다 하지 않으며, 행(行)과 행 아닌 것이 있다고도 하지 않기 때문에 저 중생들을 위해 바른 법을 말해야 하느니라.
그리고 오직 일체의 온(蘊)ㆍ처(處)ㆍ계(界), 자세히 말하면 나아가 행과 행 아닌 것에 이르기까지를 다 적멸(寂滅)이기 때문에 저 중생들을 위하여 바른 법을 말하나니, 그러므로 번뇌가 없다는 것이니라.
행이란 이른바 여기서 죽어 저기서 나는 것을 아주 끊기 위하여 중생에게 바른 법을 말하고, 모든 온ㆍ처ㆍ계와, 자세히 말하면 나아가 행과 행 아닌 것에 이르기까지를 아주 끊기 위하여 중생들에게 바른 법을 말하나니, 이것을 행이라 하느니라.
바퀴란 이른바 보름달의 맑고 시원한 빛이 허공에 두루 가득하여 일체를 모두 비추되 경계에 막힘이 없는 것처럼,
이와 같이 여래와 모든 보살이 가진 신통(神通)과 기설(記說)과 교계(敎誡) 등, 이 세 가지 훌륭한 바퀴는 그 작용이 걸림 없어 모든 세계에 두루하여, 교화한 중생들을 이롭고 안락하게 하되, 그들로 하여금 돌아가는 곳을 달리하지 않게 하면서 세간의 중생과 함께 하지 않으며, 성문과 독각과도 함께 하지 않으며, 모든 고뇌를 다 끊어 없애고, 안락한 보리의 열반을 증득하게 하느니라.
이것을 모든 부처와 보살의 번뇌가 없는 행의 바퀴라고 하느니라.
[집착이 없는 행]
또 집착이 없는 행의 바퀴란 이른바 모든 법에 아무 걸림이 없다는 것이다.
마치 햇빛이 일체를 두루 비추는 것처럼, 3승에 대한 근기의 자질에 따라 바른 법을 설하되 거기에 아무 집착이 없다는 것이다.
이른바 모든 여래가 중생들을 위하여 이런 법을 설하는 것은 마치 허공에 차별된 모양이 없는 것처럼,
무량한 선정의 유희와 자재한 장엄의 세계에 머물러 있으면서 중생들을 위하여 미묘한 법을 설하나 아무 집착이 없다는 것이니라.
큰 갑옷과 투구를 갖춘 모든 보살마하살이 남을 위해 설법하는 것도 그와 같나니, 다음의 말과 같다.
‘모든 법은 유(有)도 아니요 공(空)도 아니다.
색(色) 그대로의 공도 아니요 색을 떠난 공도 아니며, 또한 식(識) 그대로의 공도 아니요 식을 떠난 공도 아니다.
눈 그대로의 공도 아니요 눈을 떠난 공도 아니며, 또한 뜻 그대로의 공도 아니요 뜻을 떠난 공도 아니다.
또 색 그대로의 공도 아니요 색을 떠난 공도 아니며, 또한 법 그대로의 공도 아니요 법을 떠난 공도 아니다.
안식(眼識) 그대로의 공도 아니요 안식을 떠난 공도 아니며, 또한 의식(意識) 그대로의 공도 아니요 의식을 떠난 공도 아니다.
또 욕계(欲界) 그대로의 공도 아니요 욕계를 떠난 공도 아니며,
또한 허공무변처(虛空無邊處) 그대로의 공도 아니요 허공무변처를 떠난 공도 아니다.
식무변처(識無邊處) 그대로의 공도 아니요, 식무변처를 떠난 공도 아니다.
무소유처(無所有處) 그대로의 공도 아니요 무소유처를 떠난 공도 아니며,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 그대로의 공도 아니요 비상비비상처를 떠난 공도 아니다.
또 4념주(念住) 그대로의 공도 아니요 4념주를 떠난 공도 아니며,
또한 8 성도(聖道) 그대로의 공도 아니요 8성도를 떠난 공도 아니다.
연기법(緣起法) 그대로의 공도 아니요 연기법을 떠난 공도 아니며,
세 가지 불호(不護) 그대로의 공도 아니요 세 가지 불호를 떠난 공도 아니며,
4무외(無畏) 그대로의 공도 아니요 4무외를 떠난 공도 아니며,
10력(力) 그대로의 공도 아니요 10력을 떠난 공도 아니다.
18불공법(不共法) 그대로의 공도 아니요 18불공법을 떠난 공도 아니며,
대자(大慈)ㆍ대비(大悲)ㆍ대희(大喜)ㆍ대사(大捨) 그대로의 공도 아니요, 대자ㆍ대비ㆍ대희ㆍ대사를 떠난 공도 아니며,
열반 그대로의 공도 아니요 열반을 떠난 공도 아니다.’
이것이 여래와 보살이 중생들을 위해 설하는 말씀 가운데 있는 미묘한 바른 법이니라.
선남자야, 이와 같이 여래는 중생들을 위해 번뇌가 없는 행의 바퀴로 설법 하나니, 그것은 마치 보름달의 맑고 시원한 빛이 걸림이 없어, 허공에 두루 가득하여 일체를 비추되 어떤 경계에도 막힘이 없는 것과 같다.
또 집착이 없는 행의 바퀴로 미묘한 법을 말하되 일체의 법에 걸림이 없나니,
마치 햇빛이 일체를 두루 비추는 것처럼,
3승에 대한 근기의 자질에 따라 바른 법을 말하면서도 거기에 아무 집착이 없다.
이른바 여래가 중생들을 위하여 이 같은 법을 설할 때,
마치 저 허공에 차별된 모양이 없는 것처럼,
무량한 선정의 유희와 자재한 장엄의 세계에 머물러 있으면서 중생들을 위하여 미묘한 법을 설하되, 아무 집착이 없어 그들로 하여금 그 3승 중에서 그들의 자질을 따라 들어가게 하느니라.
또 큰 갑옷과 투구를 갖춘 일체 보살마하살이 남을 위해 설법하는 것도 이와 같아서,
중생들로 하여금 가장 훌륭하고 매우 깊은 이 법을 듣고는, 3승 가운데서 그 뜻하는 바를 따라 승(乘)에 나아가 갖가지 선근을 다 성숙한 뒤에,
그 한 승에 아주 잘 편안히 머물게 하되, 마침내 그들로 하여금 생사 가운데서 악하고 선하지 않은 법을 더욱 늘리게 하지 않고, 열반에서 견고하여 물러나지 않게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무량무수한 중생들이 생사에 흘러 다니는 것을 끊게 하기 위하여 남에게 설법하지만,
성문과 독각은 다만 자기만의 생사에 흘러 다니는 것을 끊기 위하여 남에게 설법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무량무수한 중생들로 하여금 4폭류(瀑流)를 건너게 하기 위하여 남에게 설법하지만,
성문과 독각은 다만 자기만이 4폭류를 건너기 위하여 남에게 설법하느니라.
또 보살마하살은 무량무수한 중생들의 번뇌의 병을 제거하기 위하여 남에게 설법하지만,
성문과 독각은 다만 자기만의 번뇌의 병을 제거하기 위하여 남에게 설법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중생들의 모든 온(蘊)의 번뇌와 습기(習氣)의 상속을 모두 끊어 없애어 남음이 없게 하기 위하여 남에게 설법하지만,
성문과 독각은 다만 자기만의 모든 온의 번뇌와 습기의 상속이 다하지 않고 남아 있음을 끊기 위하여 남에게 설법하느니라.
또 보살마하살은 대비(大悲)의 등류과(等流果)를 성취하기 위하여 대비를 인(因)으로 삼아 남에게 설법하지만,
성문과 독각은 대비의 등류과를 위하지 않기 때문에 대비의 인(因)이 없이 남에게 설법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중생들을 구제하고자 하는 염원(念願)이 있어 설법하지만,
성문과 독각은 중생들에 대해 아무런 염원 없이 설법하느니라.
또 보살마하살은 일체 다른 중생들의 고통을 멎게 하기 위하여 남에게 설법하지만,
성문과 독각은 다만 자기에게 있는 고통만을 멎게 하기 위하여 남에게 설법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일체 중생에게 법미(法味)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남에게 설법하지만,
성문과 독각은 다만 자기의 법미만을 만족하기 위하여 남에게 설법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중생들이 다 훌륭한 법의 등불을 얻기 위하여 남에게 설법하느니라.
선남자야, 요약해 말하면 보살마하살은 무량한 율의(律儀)로 일체 중생들의 큰 무명의 어둠과 크게 두려워하는 일과 일체의 손실을 제거하고, 큰 광명과 큰 명예를 얻고 일체지지(一切智智)를 여실히 깨닫게 하기 위하여 남에게 설법하지만,
성문과 독각은 조그만 율의로 다만 자기의 무명의 어둠을 제거하고, 조그만 광명과 조그만 명예를 얻고 조그만 법의 지혜를 여실히 깨닫기 위하여 남에게 설법하느니라.
선남자야, 저 성문과 독각은 진실로 남을 돌보아 주는 일이 없고 진실로 남을 가엾이 여기는 일이 없으며,
진실로 남을 업신여기지는 않으나 진실로 남을 이롭게 하는 일이 없으며,
진실로 남을 구제하는 일이 없고 진실로 남을 천거하는 일이 없으며,
진실로 남을 칭찬하려 하지 않으나, 진실로 남을 의심하거나 왜곡함이 없으며, 찬탄하는 일이 없으며, 자기 신명을 돌아보지 않고 남을 안락하게 하는 일이 없고, 남의 과오를 일어나지 않게 하는 3업(業)이 없느니라.
선남자야, 그러나 대승에 머무는 사람은 진실로 자기만을 돌보는 일이 없고, 나아가 남의 과오를 일어나게 하는 3업도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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