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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16일 Asan_UBF 주일메세지
구원의 뿔 예수님
말씀 / 누가복음 1:57~80
요절 / 누가복음 1:69
그동안 입지 못했던 양복을 입고 왔습니다. 와이셔츠는 슬림핏을 입었습니다. 최대 체중에서 10킬로그램 줄어 있습니다. 오늘 아침 체중계에 올라보고 확인하였습니다. 과체중과 뱃살에서 해방 되기만 해도 이렇게 기쁩니다. 우리는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해방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해방해 주시러 오셨습니다. 2018년 성탄에 우리의 심령이 찬양으로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를 해방하여 주신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영혼 깊은 곳으로부터 흘러 나오기를 기도합니다. Asan_UBF
1. 세례요한의 탄생
57절을 보십시오. 엘리사벳이 드디어 아들을 낳았습니다. 엘리사벳은 나이가 너무 많아서 아이를 낳을 수 없었습니다. 남편 사가랴는 가브리엘의 계시를 받았을 때, 자신과 아내 엘리사벳이 나이가 많아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생물학적으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 임신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기적의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58절을 보십시오. 이 부부의 득남 소식은 이웃들과 친족들에게 기쁨을 주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아이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정통파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축복이라 여기기 때문에 열 명 이상 낳는다고 합니다. 유대사회에서 아이 없이 지내온 사가랴 엘리사벳 부부는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은 좋은데 왜 아이가 없을까? 기도 많이 하는데 왜 아이를 갖지 못할까? 이런 가정에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믿음의 가정에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셨습니다. 오랜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께서 당사자 뿐 아니라 이웃과 친족에게도 기쁨이 충만하게 해주셨습니다. Asan_UBF
사람들은 문제를 안고 살아갑니다. 우리 인생의 깊고 큰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크고 작은 문제들을 가장 적절한 때에 해결해주셔서 우리 영혼의 기쁨이 솟아나게 해주십니다.
59~66절을 보십시오. 유대인들은 남자 아이는 태어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행하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딸은 한 달 이내에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이름을 지을 때, 사가랴 라고 짓자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사가랴는 '여호와는 기억하신다'는 뜻입니다. 제사장 가문에서 제사장 다운 이름이라고 합니다. 사가랴jr가 전통과 관습적으로는 적합하였습니다. 엘리사벳과 사가랴는 시대의 대세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요한'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요한’이라는 이름은 제사장들은 잘 쓰지 않는 일반 사람들이 짓는 이름이었습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누가복음 1장 13절의 가브리엘 천사의 방향대로 순종하여 아들 이름을 지었습니다.
세례요한은 이렇게 태어났습니다. 그의 태어남이 부모와 사람들에게 큰 기쁨이었습니다. 1장 14절의 예언대로였습니다. 세례요한의 이름 짓는 것과 그의 성장, 그의 많은 모습들이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었습니다. Asan_UBF
예수님께서는 세례요한에 대하여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에 대하여 코멘트 하신 말씀 중에서 최고의 찬사입니다. 엘리야나 이사야나 예레미야 에스겔 많은 위대한 선지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의 나라와 민족을 망하게 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오신다고 증언하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의지와 인식세계에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로 가득하였습니다.
그는 태어날 때, 자신의 의지가 있기도 전에, 그의 인식세계가 만들어지기 전에도 예수님을 증언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은 인본주의자들이 잘 안믿으려고 하는 대표적인 사건입니다. 세례 요한은 부모가 모두 의학적 생리적으로 잉태 불가 상태였습니다. 그의 잉태와 출산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믿지 못하는 자들에게 성령의 능력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됩니다. 세례 요한은 의식세계를 통해서나 그의 의식 외의 세계에서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예고하였습니다. Asan_UBF
우리는 아름답고 위대한 삶을 살기 원합니다.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삶은 예수님을 증언하는 삶인 것을 세례요한을 통하여 배울 수 있습니다. 세례요한의 삶은 인간적으로 본다면 고단한 삶이었습니다. 그는 제사장의 아들로 태어났으면서도 어려운 삶을 살았습니다. 편안한 잠자리에서 누워보지 못하였습니다. 부드러운 음식을 먹지 못하였습니다. 밤에는 추위를 견뎌야 했습니다. 낮에는 찌는 더위와 갈증을 경험하여야 했습니다. 그에게는 배고픔이 있었습니다. 그는 사명을 감당하다가 감옥에 갇혔고 죽을 때는 참수 당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의 삶이 아름답고 위대한 것은 예수님을 증언하고 예수님 중심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 성탄에 예수님을 환영하고 예수님을 찬양하기 위하여 우리는 모여 있습니다. 우리의 성탄이 온 세상에 예수님을 전하는 성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성탄이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성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2. 구원의 뿔, 돋는 해
67절을 보십시오. 이름을 요한으로 하도록 순종하였을 때, 사가랴의 혀가 풀렸습니다. 사가랴는 말 하지 못하고 10개월 지냈습니다. 사가랴는 고통스러운 훈련기간이 끝났다는 개인 소회를 밝히지 않았습니다. 68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사가랴는 혀가 풀리자마자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사가랴는 찬송으로 성탄을 맞이하였습니다. 사가랴의 찬송은 “나도 아빠가 되었다” 이것이 아니었습니다. 엘리사벳의 찬송은 하나님께서 나를 돌보셨는데, 내 부끄러움이 없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개인적인 소감입니다. Asan_UBF
엘리사벳의 찬송 내용이 개인적이었다면 사가랴의 찬송 제목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이었습니다. 사가랴의 성탄 찬송을 배우면서 우리는 성탄의 은혜를 깊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가랴의 성탄 찬송은 구체적으로 어떠합니까?
첫째,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신 것입니다. 속량은 노예거래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로마의 유대통치는 B.C. 63년에 로마 폼페이우스에게 예루살렘이 함락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로마는 유대교를 인정해주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사법 입법 기관인 산헤드린 공회를 가지는 것이 허락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국내의 사건들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유대를 다스리는 헤롯과 그 아들들에 대해서 불만이 있을 때는 대표단이 로마 황제에게 가서 분봉왕 교체를 요구하고 로마총독이 직접 통치해주기를 청원하기도 하였습니다. 청원이 받아 들여져서 헤롯의 아들 유대 분봉왕 헤롯 아켈라우스는 추방되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끊임없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A.D. 70년 예루살렘과 유다가 파멸될 때까지 유대인들의 반란은 꼬리를 이어 발생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어떤 당근을 제시한다고 하여도 만족하지 못하였습니다. 헤롯이 거대하고 화려한 새 성전을 지어 주었다고 해도, 이방인들의 정치권력 아래 있는 것 자체를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Asan_UBF
유대인들은 자나깨나 정치문제가 이슈였지만, 사가랴의 찬송은 정치이슈, 경제이슈, 사회적 이슈를 근거로 하지 않았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사가랴의 찬송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속량 해주셨다는 것을 첫번째 찬송제목으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찬송한 속량은 죄로부터의 속량입니다. 속량은 속신이라고도 하는데, 포로나 노예를 대가를 주고 자유롭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속량물은 주로 금전이 쓰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생명을 지불하셨습니다. 사가랴는 하나님께서 죄의 노예로 있는 우리를 예수님의 피로 속량하심을 찬양하였습니다.
그 시대 유다 정치상황은 바뀐 것이 없었습니다. 로마는 더욱 강해졌습니다. 거대한 로마는 영원할 것 같아 보였습니다. 유대청년들은 그것 때문에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사가랴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찬송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속량하시는 은혜를 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인 죄와 사망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주시는 큰 은혜를 보았습니다. 이 사실을 볼 때, 그의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찬양이 흘러나왔습니다.
둘째,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일으키셨습니다. 69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뿔은 힘입니다. 뿔은 능력입니다. 옛날 ‘동물의 왕국’을 보면, 사자, 표범, 치타가 아프리카 초원을 지배하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그런 방송이 거짓과 날조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 초원의 최강은 코끼리입니다. 사자, 표범 그 어떤 고양이과 동물도 건강한 성체 코끼리는 건드리지 못합니다. 유튜브를 보니, 아프리카 물소가 사자가 떼로 덤비는데도 덤벼드는 사자를 뿔에 걸어 공중으로 던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뿔은 능력과 힘입니다. 구원의 뿔을 일으키셨다는 것은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힘 있는 구원자를 보내주셨다는 것입니다. Asan_UBF
우리를 사로잡은 죄는 매우 강합니다. 얼마나 강한지 인류 역사상 아직까지 죄를 이긴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두려움의 죄에 여러 번 빠졌습니다. 아내를 아내라고 말하지 않는 비열함에 빠졌습니다. 이삭도 같은 두려움, 같은 허물을 남겼습니다. 그 아들 야곱은 속이고 속고 잔머리와 다툼으로 흘러갔습니다. 위대한 모세도 혈기를 부렸고, 구스 여자를 아내로 삼았다가 비난 받았습니다. 위대한 다윗왕도 두려움에 빠져서 이스라엘 경내에 있지 않고 이방으로 도망쳤습니다. 왕이 되어서 간음, 살인, 교만, 직무유기, 직권남용의 죄에 빠졌습니다. 솔로몬은 많은 아내를 두다가 우상숭배의 죄에 빠졌으며 나라는 분열되게 하였습니다. 엘리야도 제발 나를 죽여 달라며 쭈욱 뻗은 적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이건 왕이건 선지자건 그 어떤 위대한 인물도 일은 큰 일 하였을지 모르지만, 죄는 절대로 이기지 못하였습니다. 30년, 40년 초인적인 금욕생활을 하고 수행정진하면 죄를 피할 수 있습니까? 죄는 우리의 본성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죄 속에서 태어나 죄 가운데 살다가 죄의 대가인 죽음으로 들어갑니다. 죄가 그렇게 강하니 죄가 너무 강해서 어쩔 수 없다며 그냥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죄는 우리의 양심을 고통하게 합니다. 죄는 우리 영혼을 파멸로 끌고 갑니다. 죄는 나의 영혼, 나의 인격, 나의 생활, 나의 삶을 더럽고 추하고 어둡고 지치게 합니다. 죄는 내 곁에 있는 사람들, 모든 관계를 파괴합니다. 다른 사람들까지 고통에 빠지게 합니다. 결국 죄의 삯은 사망이며 그 후에 둘째 사망이 있으니 불와 유황으로 영원히 타는 불못과 그 안에서 당하는 고통입니다. 돈도 사랑도 세상의 그 어떤 법과 제도, 시스템, 문화, 예술, 학문도 사람도 나를 죄에서 건져 낼 수 없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사가랴는 10개월 동안 일체 말을 하지 못한 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기도하였습니다. 사가랴가 섣불리 사람들에게 흥분하여 나가지 않고 하나님을 더 열심히 바라보고 기도 하였을 때, 그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역사가 얼마나 큰 은혜인지 기쁨과 감사가 더하였습니다. “구원의 뿔” 열 달 동안 기도 해온 사가랴는 예수님을 구원의 뿔이라 찬송하였습니다. 이 뿔은 죄를 이기는 뿔입니다. 이 뿔은 죽음을 제압하는 뿔입니다. 인간을 강력한 힘으로 지배해 온 죄와 사망은 구원의 뿔 예수님께 완전히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새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Asan_UBF
셋째,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70~73절을 보십시오. 다윗의 집에 일으키신 것,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 이것은 모두 메시야를 보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원래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언약관계였습니다. 신명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축복의 그리심산과 저주의 에발산을 두고 이스라엘에게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물어보십니다. 계명을 지켜서 그리심산과 같이 푸르고 아름다운 축복의 나라가 되겠는가? 계명을 지키지 않아서 에발산과 같이 헐벗고 저주받은 나라가 되겠는가? 이스라엘은 대답합니다. 계명을 지키겠다고! 그렇지만 이스라엘은 이 맹세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에게 약속을 지키지 않으셔야 합니다. 이스라엘에게 주시겠다고 한 것을 해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약을 지키시고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가 누리는 축복에 대하여 74,75절에 기록하였습니다. “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받고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우리는 원수의 손아래 압제 받고 종신토록 사람과 세상 앞에서 추함과 불의함으로 두려워하며 종노릇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미움의 종노릇하였습니다. 반발심, 반항심, 절망, 허무, 원망, 불평, 낙심, 욕심, 탐욕, 거짓, 위선, 게으름, 안일, 정욕, 더러움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무의미하게 자신을 소모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약을 지키셔서 우리는 성결과 의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두려움 없이 나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다. 사가랴에게 있어서 성탄은 찬송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함에 대한 찬양, 하나님의 신실함으로 우리에게 구원의 뿔을 허락하심에 대한 찬양입니다.
76,77절을 보십시오. 사가랴는 자기의 아들에 대해서도 '너는 자랑스런 내 아들이다, 내가 축복하노니 잘 먹고 잘 살아라' 라는 식의 개인적인 감회는 나타내지 않고 있습니다.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로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하여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사가랴는 아들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선지자,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사람으로 축복하고 있습니다.
사가랴가 입을 닫고 메시야를 주시겠다 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을 때, 하나님의 위대하심, 하나님의 아들로 오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놀라운 사랑이 가득하게 보였습니다. 아들의 위대성도 메시야 앞에서 쓰임 받는 복! 그것이 중요하였습니다. Asan_UBF
78,79절을 보십시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예수님을 보내 주신다는 소식, 요한이 예수님의 앞에서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사가랴는 캄캄한 어둠속에서 찬란한 아침 해가 떠올라 온 땅의 어둠을 몰아내는 것을 실제적으로 체험하였습니다. 해가 떠오르며 빛이 비췰 때, 생명이 살아납니다. 만물은 빛으로부터 에너지를 얻습니다. 빛은 우리 모든 세계의 에너지의 근원입니다. 빛의 속성은 예수님의 속성과 많은 면에서 닮아 있습니다. 빛이야 말로 예수님을 계시하는 측면이 아주 많습니다. 빛이 어두움을 몰아내듯이, 예수님께서 죄의 어두움, 죽음의 그림자를 몰아냅니다. 빛이 생명을 주듯 예수님께서 우리 인생에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빛이 만물에 에너지를 공급하듯 예수님께서 자연 만물과 우리 인생에게 새 힘을 공급하여 주십니다. 빛이 비췰 때, 우리가 안심하고 평안하게 다닐 수 있듯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실 때, 우리는 평안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빛이십니다. 예수님은 빛을 발하는 돋는 해 이십니다. Asan_UBF
오늘날 세상은 어둡습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슬픈 노래가 많이 들려옵니다. 슬픈 노래, 애절한 노래에 사람들은 공감합니다. 나이 많은 사가랴가 이렇게 힘차고 비전 넘치는 노래를 부르는데, 우리 시대의 청년들은 슬픈 노래에 빠져 있습니까? 구원의 뿔이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한 결과입니다. 내가 자격증도 따고, 학점도 받고, 어학점수도 높였는데, 이렇게 스펙을 갖췄는데 어느 곳에도 나를 원하는 곳이 없습니다. 내가 새벽 모임에도 나가고 내가 소감도 쓰고 내가 말씀도 전했는데, 세상은 나를 배척 합니다. 슬픕니다. 애절합니다. 아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되고 되는 것이 없습니다. 정말 안되나 봅니다.
예수님이 구원의 뿔입니다. 나는 이길 수 없습니다. 나는 이겨낼 수 없는 것이 아주 많습니다. 오늘날 세상은 빨리 변합니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고 있어서 누구든지 이 시대는 어려움을 겪습니다. 제가 ‘4차산업혁명 시대에는 예수님이 답이다’라고 하자, 사람들이 저에게 말합니다. ‘예수님이 답이다’ 그렇게만 말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아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이기는 길인지 상세하게 알려 달라고 합니다. 알려달라고 한다고 상세하게 알려주면요? 그건 나한테나 통하지 자기한테는 안통한대요! 어쩌라는 것일까요? ‘안되요’, ‘안되요’, 슬픈 노래만 계속 부르고 있겠다는 것입니다. Asan_UBF
오늘 말씀은 예수님을 구원의 뿔이며 돋는 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뿔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구원의 뿔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들에게 환한 빛, 생명의 빛이 비취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려워요’ ‘안되요’ 슬픈 노래를 부르지 말고 기쁨의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절망의 노래 대신 승리의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생명의 빛을 비추시니 두려워하지 말고 힘껏 하나님을 섬기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이들에게 구원의 시작이자 구원의 마침입니다. 우리 구원의 시작이요, 구원의 내용이요, 구원의 마침이며, 구원의 은혜이신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성탄의 기쁨과 찬양이 우리에게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Asan_UB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