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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월 우주탐사선 '뉴 호라이즌스'의 발사 장면. 출처/ NASA.
태양계의 생성과 생명의 근원에 대한 비밀을 품고 있을지 모를 ‘67P/추류모프-게라시멘코(67P/CG)’ 혜성, 소행성대의 가장 큰 천체인 세레스, 비록 지금은 행성의 지위를 잃었지만 오랫동안 태양계의 가장 먼 행성으로 불린 명왕성…. 최근 1년여 동안 우주탐사선이 보내온 관측 자료들로 과학계를 들썩이게 했던 천체들이다. 공통적으로 지구보다 태양에서 훨씬 더 떨어져 있기도 하다. 태양에서 멀어지는 것을 방해하는 태양 중력 때문에 탐사선을 이들 천체에 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인류는 1970년대에 목성과 토성에, 1980년대에는 그보다 먼 곳에 있는 천왕성과 해왕성에 탐사선을 보내어, 그 먼 곳에서 전해지는 여러 관측 자료를 지구에서 수신한 바 있다. 명왕성 탐사는 보이저 1호의 해왕성 탐사보다 무려 26년이 지난 2015년에야 이루어졌는데, 기술적인 문제보다는 명왕성의 공전 궤도가 태양계의 다른 행성들과는 다른 데에 그 이유가 있다.
물론 이렇게 먼 천체를 탐사할 수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강력한 우주선 로켓 기술 덕분이지만, 또한 지구 공전을 이용해 효율적으로 우주선을 발사하는 기술, 그리고 항해 도중에 다른 행성의 공전을 이용해 우주선의 속도를 높이는 기술도 천체 탐사에 크게 기여했다. 이 글에서는 어떻게 우주선 발사와 비행에 행성의 공전을 이용하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초기 SF영화의 우주선 비행과 초기속도
물리학에서 물체의 움직임을 설명할 때 ‘초기속도’라는 개념을 자주 사용한다. 조그맣고 가벼운 공 같은 경우에는, 공을 손으로 던지거나 발로 차 날아가기 시작하는 속도를 초기속도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발사 이후에 일정한 시간 동안 속도가 점점 증가하는 우주선의 경우에는 어느 시점이 초기속도에 해당하는지 콕 집어서 말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비현실적인’ 우주선 발사 방법에서 ‘이게 초기속도’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을 찾을 수 있다.
[ 유투브 동영상 https://youtu.be/_FrdVdKlxUk ]
» 1902년 영화 <달나라 여행>에 등장하는 우주선의 발사 장면. 매우 긴 대포로 우주선을 쏘아 달에 보낸다. 출처/ 달나라 여행(1902) 세계 최초의 공상과학(SF) 영화로 알려진 <달나라 여행>(원제: Le voyage dans le lune)을 보면 사람들이 탄 우주선을 대포를 이용해 달로 쏘아 올린다. 이때의 우주선은 자체 추진체가 달려 있지 않아 오히려 포탄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현실의 우주 탐사 역사에서는 전혀 사용한 적이 없는 발사 방식이다. 이 영화를 제작해 공개한 때인 1902년은 아직 라이트 형제가 동력 비행기로 비행을 성공하기 1년 전이고, 로켓 추진체의 원조쯤 되는 독일의 ‘V-2 로켓’이 개발되기 40년 전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고 보면, 엉뚱해보이는 발사 방식이기는 하지만 대포로 발사돼 포신을 떠나는 순간의 우주선 속도가 그나마 초기 속도를 가장 잘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우주선 비행을 살펴보면서 초기속도의 이야기를 먼저 시작한 이유는, 초기속도의 개념이 중력의 영향을 받으면서 움직이는 물체를 설명하고 이해하는 데 유용하게 쓰이기 때문이다. 공을 위로 던지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빠른 속도로 던질수록(즉, 초기속도가 클수록) 공은 더 높이 올라간다. 그만큼 지구가 잡아당기는 중력을 더 오래 동안 극복하면서 위로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야구의 최고 강속구 투수가 던질 수 있는 속도인 시속 160km로 공을 위로 던질 수 있다면, 공기저항이 없다는 가정에서, 공은 약 100m 높이까지 올라간다.
우주선도 마찬가지로 시속 160km(또는 초속 44.7m)의 속도로 위로 발사하면 100m 상공까지 올간다. 공이건 우주선이건 초기속도만 같으면, 얼마나 무거운가와는 상관없이 도달할 수 있는 높이는 같다. 질량이 다른 두 물체는 똑같이 떨어진다는 원리 때문이다. 초기속도만 알면 중력에 의한 물체의 움직임을 질량과 관계없이 설명할 수 있다는 의미다.
영화 <달나라 여행>에서 그런 것처럼 수직 방향이 아니라 경사 방향으로 발사하는 경우에는 발사 속도가 빠를수록 더 높이 올라가기도 하지만 더 멀리 날아 가기도 한다. 이 경우도 초기속도의 크기와 방향만 같으면 우주선이 도달할 수 있는 높이와 거리는 우주선의 질량과는 관계없이 같다. 물론 공기저항이 없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 그림 1. 대포로 포탄을 쏘듯이 우주선을 쏘아올려 달에 보내는 개념: 발사 속도가 충분하지 않으면 도로 땅위에 떨어진다.
그러면 우주선의 발사 속도, 즉 초기속도가 얼마나 돼야 우주선이 달까지 갈 수 있을까? 적어도 날아가는 도중에 지구로 다시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 그럴려면 우주선은 달 중력이 지구 중력보다 커, 달이 우주선을 끌어 올리는 지점까지는 가야 한다. 아래 그림과 같이 지구와 달 사이 거리의 9 : 1 되는 위치에서 지구 중력과 달 중력이 같아 중력이 서로 상쇄된다. 우주선이 지구로 다시 떨어지지 않고 이 지점을 통과하면, 그때부터 우주선은 지구 중력보다 큰 달 중력에 끌려 달에 도달하게 된다. 계산하면 우주선 초기속도가 적어도 초속 11.1km가 돼야 이 지점에 도달해, 달까지 갈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온다.
» 그림 2. 지구의 중력과 달의 중력이 같아지는 지점.
지구 중력을 완전히 벗어나기 위한 ‘중력탈출 속도’
또 하나의 중요한 우주선 초기 속도로, 우주선이 지구 중력을 완전히 벗어나기 위한 최소한의 속도가 있다. 지구 외에 달을 포함한 다른 천체가 없다고 가정하면, 지구 중력을 완전히 벗어난다는 것은 무한히 먼 곳까지 갈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중력의 크기가 아주 작아질지언정 중력은 무한히 먼 곳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지구 중력 ‘탈출 속도’라고도 부르는 이 초기 속도는 초속 11.2km다. 좀 전에 계산한 초속 11.1km와 거의 차이가 없다. 지구 중력이 많이 약해진 곳에 달이 위치하고 있는 것이 한 몫 한다. 이런 작은 차이 때문에 초속 11.2km를 달에 갈 수 있는 초기 속도로 보기도 한다.
초속 11.2km는 음속의 30배가 넘는 속도다. 설령 대포 방식으로 우주선을 이렇게 빠른 속도로 쏘아올릴 수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 우주선 안에 사람이 탈 수 있는지는 한번 따져봐야 한다. 영화에서는 거의 순간적으로 우주선을 대포로 날려보내는 것처럼 묘사한다. 몇 초 안 되는 동안 초속 11.2km의 속도를 내려면, 지구 표면 중력가속도의 수백배 이상에 해당하는 가속이 필요하다. 이때 우주선 안에서는 지표면 중력의 수백배 이상에 해당하는 인공 중력이 만들어진다. 사람이 견딜 수 없는 중력이다. 실제로 달에 우주선을 보낸 아폴로 프로젝트의 기록를 보면, 1차로 12분에 걸쳐 지구 궤도에 진입하는 동안, 우주선 안의 최대 중력 가속도는 대략 지구 표면 중력의 4배였다고 한다.[1]
‘공기저항’도 문제가 된다. 초속 11.2km는 우주인이 지구로 귀환할 때 타는 귀환 캡슐이 지구 대기권에 진입하는 속도보다 약 1.5배 큰 속도다. 대기권 경계 부분이 지상보다 공기가 훨씬 희박한데도, 귀환 캡슐에는 공기저항으로 인해 엄청난 열이 발생한다. 공기저항으로 속도가 줄면 운동에너지가 줄어드는데, 이 줄어든 운동에너지가 열에너지로 바뀐 결과다. 얼마나 열이 발생하는지는 영화 <아폴로 13호>나 <그래비티>에 잘 묘사되어 있다. 공기가 훨씬 많은 지상에서 초속 11.2km로 쏘아올리면 공기저항도 훨씬 더 커지고 이로 인해 생기는 열도 엄청날 수밖에 없다. 현대의 우주선이라도 이런 정도의 열에 버티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이런저런 이유로, 대포 방식으로 우주선을 발사하는 것은 비현실적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좀 전에도 언급했듯이 이런 가상의 방식으로 발사된 우주선의 속도를 물리학에서는 ‘초기속도’라는 이름으로 중요하게 다룬다. 그리고 우주선 비행과 관련된 설명에 서슴없이 적용해 사용한다. 사실 물리학을 하는 사람들 중엔 공상과학 영화를 보고 비과학적인 내용을 찾는 사람들이 꽤 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비현실적인 발사 방법을 가정해야만 가능한 우주선의 ‘초기속도’ 개념을 사용해 우주 비행을 설명한다는 점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초기속도 중에 우주 비행과 관련된 몇 가지 중요한 속도가 있다. 그 하나는 제1 우주속도(cosmic velocity)라고 부르는 초속 7.9km다. 인공위성처럼 지구 주위를 공전하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발사 속도다. 좀 전에 언급한 지구중력 탈출 속도인 초속 11.2km는 제2 우주속도라고 부른다. 제2 우주속도는 제1 우주속도보다 정확하게 √2배(1.414배) 크다.
» 그림 3. 제1 우주속도 (지구 주위를 공전하기 위한 속도)와 제 2 우주속도 (지구 중력을 완전히 벗어나기위한 속도).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 그리고 우주 비행 궤적은 시각적 이해를 돕기 위해 편의상 과장되게 그렸다.
외행성 탐사 땐 태양 중력을 극복해야 한다
달 탐사와 달리, 행성 탐사에서는 무엇보다 비행 거리가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인류가 발을 디딜 첫 행성으로 꼽히는 화성만 해도 지구와 가장 가까울 때 지구에서 약 7800만km나 떨어져 있다. 거리도 문제지만, 태양계 질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태양에 의한 중력이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지구에서 달까지 가기 위해 지구 중력을 거슬러 가야 하듯이, 태양에서 더 멀리 떨어진 화성까지 가려면 태양 중력을 거슬러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일단 지구 중력을 고려하지 않고, 아래 그림과 같이 지구 공전 궤도의 한 위치에서 우주선을 발사해 가장 가까운 화성 공전 궤도의 한 위치까지 일직선으로 간다고 하자. 우주선이 목표한 위치까지 가려면 초기속도가 초속 24.7km는 돼야 한다. 초기속도가 이에 못 미치면, 태양이 끌어당기는 중력에 의해 목표한 위치에 도달하기 전에 속도를 잃고 태양 쪽으로 다시 끌려간다.
» 그림 4. 지구의 위치에서 다른 천체에 도달하기 위한 우주선 초기 속도.
더 먼 천체인 목성의 공전 궤도까지 가려면 초속 37.9km, 명왕성의 공전 궤도까지 가려면 41.6km의 초기속도가 필요하다. 태양계를 완전히 벗어나려면 초속 42.1km에 이르러야 한다. 우주선이 내야 하는 속도가 클수록 이에 필요한 추진체의 크기와 필요한 연료의 양은 기하급수로 증가한다. 초기 속도가 초속 11.2km이어야 하는 달에 가는데도 엄청난 크기의 로켓 추진체가 사용됐는데, 화성이나 그보다 멀리 떨어진 천체에 우주선을 보내려면 도대체 얼마나 큰 추진체를 사용해야하는 것일까?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고려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우주선은 지구에서 발사하고, 지구는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는 사실이다.
지구공전을 이용한 우주선 발사
태양에서 약 1억5000만km 떨어져 공전하는 지구는 1년 동안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돈다. 계산해보면 지구가 초속 29.8km로 움직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지구에서 우주선을 발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우주선은 이미 지구가 공전하는 속도를 가지고 출발하는 효과를 지닌다. 만약 지구가 공전하는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우주선을 발사하면, 우주선은 발사 속도에다 지구 공전 속도인 초속 29.8km를 더한 속도로 날아가게 된다. 버스 안에서 버스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걷는 사람을 버스 밖에 있는 사람이 보면 버스가 달리는 것보다 더 빠르게 보이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만약에 우주선의 발사 속도에 지구의 공전 속도를 더한 속도가 좀 전에 태양계를 벗어날 수 있는 속도인 초속 42.1km (지구 공전 속도의 √2≒1.414배)에 이르면, 우주선은 태양계를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 만큼 아주 먼 곳까지 날아갈 수 있다. 초속 12.3km가 이 발사 속도에 해당한다. 하지만 지구 중력도 벗어나야 하기 때문에, 실제 지구 표면에서 발사하는 우주선의 이론상 초기속도는 이보다 커야 한다.
몇 가지 물리 법칙과 원리를 이용해 계산하면, 우주선의 초기속도가 초속 16.7km이면 태양계를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온다.[2] 이 속도를 제3 우주속도라고 부른다. 물론 우주선의 방향이 공전 방향과 같아야 한다. 만약 지구의 공전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우주선을 발사하면, 지구 공전 속도에서 오히려 우주선 발사 속도만큼 줄어드는 효과가 생겨 지구 공전 궤도 바깥의 천체를 탐사할 수 없다.
초속 16.7km는 지구 공전을 고려하지 않고 계산한 태양계 탈출 초기 속도인 초속 42.1km의 절반도 안 되는 크기다. 우주선이 내야 하는 속도가 클수록 추진체의 크기와 연료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구 공전이 우주 비행 비용을 엄청나게 절약해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구보다 태양에서 더 멀리 떨어진 천체에 도달할 수 있는 우주선 발사 속도도 계산할 수 있다.(아래 그림)
» 그림 5. 지구위에서 지구가 공전 방향으로 발사된 우주선: 지구에서 발사한다는 자체만으로 우주선의 지구의 공전속도를 덤으로 얻는다.
행성공전 이용하는 또다른 방법: 스윙바이, 슬링샷, 또는 중력 도움
우주선 행해 중에 추진체를 쓰지 않고도 우주선의 속도를 추가로 높이는 마술 같은 방법이 있다. 공전하는 행성 근처를 지나가면서 추가적인 속도를 얻는 방법이다. 1961년 당시 25살 대학원생이였던 마이클 미노비치가 당시에 가장 빠른 컴퓨터로 삼체문제(three body problem)을 계산하다가 찾아냈다고 하는 이 방법은 ‘스윙바이’, ‘슬링샷’, ‘중력 도움’ 등으로 불린다.[3] 과거의 보이저 1•2호뿐 아니라, 최근의 뉴호라이즌스 호까지 지구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천체를 탐사하는 탐사선의 속도를 높이는 데 ‘스윙바이’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구체적인 예를 보자. 목성 근처를 지나가는 우주선은 목성의 중력에 의해서 끌려가다 벗어나는 궤적으로 움직인다. 목성에서 우주선이 움직이는 것을 보면, 우주선이 움직이는 방향은 목성에 다가올 때와 멀어질 때가 다르지만, 목성에서 떨어진 거리만 같으면 우주선 속도의 크기는 같다. 에너지 보존 법칙에 따라, 떨어진 거리가 같으면 중력에 의한 우주선의 위치에너지가 같으니, 운동에너지도 같고 따라서 속도의 크기도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목성은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인다. 태양 중력에 의해 태양 주위를 돌고 있기 때문이다. 대략 초속 13km의 속도로 움직인다. 목성이 공전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관찰 시점에서 보면, 우주선이 목성에서 같은 거리에 떨어져 있다고 해도 우주선 속도의 크기가 항상 같은 것은 아니다. 목성에 어떤 방향으로 접근해서 어떤 방향으로 멀어지느냐에 따라 우주선 속도의 크기가 달라질 수 있다.
야구공과 야구선수로 비유해 설명하는 스윙바이
이해를 돕기 위해 우주선은 야구공으로, 목성은 야구선수로 비유하자. 이 야구선수는 날아오는 야구공을 받고 이 야구공을 다시 다른 방향으로 되던진다고 하자. 단 야구선수가 받을 때와 던질 때 공의 속도 크기가 같다는 규칙이 있다. 목성에서 같은 거리면 목성에서 보는 우주선 속도의 크기가 같은 점을 반영한 규칙이다.
1.
야구선수가 땅 위에 서서 공을 받아 던지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미 정한 조건 때문에 받을 때 공의 속도와 되던질 때의 속도는 방향만 다를 뿐 크기는 같다. 이 장면을 구경하는 다른 사람에도 마찬가지다.
2.
야구선수가 초속 10m로 달리는 트럭에 서 있고, 밖에서 공을 던지는 사람은 다가오는 트럭을 향해 초속 25m로 공을 던지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땅에 서서 구경하는 사람에게는 공 속도는 여전히 초속 25m이지만, 트럭 위의 야구선수 입장에서는 트럭 속도가 더해져 받는 공 속도가 초속 35m가 된다. 그림 6에서 가운데의 상황이다.
이미 정해진 규칙에 의해 트럭 위의 야구 선수는 공을 받을 때의 공의 속도와 같은 초속 35m로 되던진다.
2-1.
만약 야구공을 되던지는 방향이 트럭이 움직이는 방향과 반대 방향이면 (그림 6의 맨아래 왼쪽 상황), 땅 위에 서서 구경하는 사람에게는 트럭 위 야구 선수가 던진 속도인 초속 35m에서 트럭 속도인 초속 10m가 줄어든 초속 25m로 날아가는 공을 본다. 처음에 야구선수에게 날아간 공의 속도와 똑같다.
2-2.
그런데 만약 야구공을 되던지는 방향이 트럭이 움직이는 방향과 같은 방향이면 (그림 6의 맨아래 오른쪽 상황), 땅 위에 서서 구경하는 사람에게는 트럭 위 야구선수가 던진 속도인 초속35m에 트럭 속도인 초속 10m가 더해진 초속 45m로 날아가는 공을 본다. 처음에 야구선수에게 날아간 공의 속도보다 더 큰 속도다.
» 그림 6. 야구선수가 가만히 서서 공을 받아 되던지는 경우와, 움직이는 트럭 위에 서서 공을 받아 되던지는 경우
야구선수의 입장에서는 받는 공과 되던지는 공의 속도 크기가 같지만, 밖에 가만히 서 있는 사람이 볼 때는 야구선수가 어떻게 받고 어떻게 되던지냐에 따라 공의 속도 크기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야구선수가 타고 있는 트럭이 움직인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림에는 포함하지 않았지만 달리는 트럭 뒤에서 공을 던지고 되받는 경우는 공의 속도 크기가 줄어들기도 한다.
똑같은 원리가 목성에 접근하는 우주선에도 적용된다. 우주선이 어떻게 목성에 다가가고 멀어지냐에 따라 우주선의 속도가 더 늘어날 수 있고 줄어들 수도 있다는 말이다. 먼 행성을 탐사하는 우주선은 그중에서 속도를 높일 수 있는 방식을 이용한다. 그래야 훨씬 먼 천체까지 보낼 수 있고, 목적지에 더 빨리 도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행성 공전을 이용한 스윙바이: 태양 중력의 다른 면
목성이 움직이는 방향을 기준으로 목성에 다가가는 각도와 멀어지는 각도가 같으면 우주선의 속도 크기에 차이가 없지만(그림 7의 위), 각도에 차이가 있으면 우주선 속도 크기에 차이가 생긴다. 특히 멀어지는 방향이 목성이 움직이는 방향에 가까울수록 우주선 속도를 높이는 효과는 커진다. (그림 7의 아래)
» 그림 7. 목성에 접근했다 멀어지는 우주선의 속도 변화: 회색 곡선은 목성에서 보는 우주선의 궤적.
‘스윙바이’의 또다른 이름인 ‘중력 도움’이 의미하는 것처럼 행성 중력의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실제로 우주선의 속도를 높이는 것은 행성의 공전에 달려 있다. 태양의 중력 때문에 행성이 공전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스윙 바이로 우주선 속도를 높이는 것은 결국 태양 중력에 의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종합해보면 태양의 중력은 우주선을 끌어당겨 우주선이 멀리가는 것을 어렵게 만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행성을 공전하게 하고 이를 통해 우주선 속도를 높이는 것도 가능하게 하는 양면성이 있는 셈이다.
67P/CG 혜성을 탐사한 로제타 탐사선과 왜행성 세레스를 탐사한 돈 탐사선은 화성의 공전을 이용한 스윙 바이로 우주선 속도를 높였고, 명왕성을 탐사한 뉴 호라이즌스 탐사선은 목성의 공전을 이용한 스윙 바이로 우주선 속도를 높였다. 1997년에 발사해 토성을 탐사한 카시니 탐사선은 금성을 이용한 스윙 바이를 두번, 지구와 목성을 이용한 스윙 바이를 각각 한번씩 해서 모두 네번의 스윙 바이를 한 독특한 경우다.[4]
‘스윙 바이’는 우주선의 질량과는 무관하게 우주선 속도를 높일 수 있는데, 이 덕을 본 대표적인 경우가 카시니 탐사선이다. 토성의 위성 타이탄에 착륙한 호이겐스 착륙선을 탑재한 카시니 탐사선의 질량은 약 2.5톤으로 뉴호라이즌스 탐사선의 5배가 넘는다. 스윙 바이로 절약하는 추진체 연료의 양이 클 수밖에 없다.
좀 더 멀리 봐서, 우리 은하계 안의 다른 별을 탐사한다고 가정해보자. 태양계 안의 다른 천체들의 움직임을 설명하고 이해할 때에는 보통 태양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보지만, 실제로 태양계는 은하계의 중심 주위를 돌고 있다. 우리 태양계의 경우는 그 속도가 무려 초속 230km에 이른다.[5] 따라서 별과 별 사이를 여행하면서 중간에 태양계를 거쳐가는 경우, 이론적으로 태양의 움직임을 이용한 스윙바이가 가능하긴 하다. ◑
[주]
[1] Apollo 15: Launch and Reaching Earth Orbit,
http://history.nasa.gov/ap15fj/01launch_to_earth_orbit.htm
[2] The Cosmic Velocities, http://dsp.agh.edu.pl/_media/en:dydaktyka:cosmic_velocities.pdf
[3] Michael Minovitch - Gravity Assist, http://www.gravityassist.com/
[4] Cassini–Huygens, https://en.wikipedia.org/wiki/Cassini%E2%80%93Huygens
[5] 은하년, https://ko.wikipedia.org/wiki/은하년
윤복원 미국 조지아공대 연구원(물리학)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