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기 생존경제(강의, 책)는 2009년에 나와 서브프라임 모지지론 사태로 유발된 사실 2007년 금융위기를 주제로 다루었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은 당시 최소 향후 30년 간다고 했을 정도의 위기.
지금도 2007년 상황에서 질적으로 크게 변한 것은 없을 것이다.
물론 최진기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꽤 있는 것으로 안다.
최진기는 당시 금융위기를 대단히 비관적으로.. 그러니까 곧 큰 일이라도 날 것 처럼 설명했었다.
그런데 지금 뭐 어떻게든 굴러 가니까 나중에 맞고 틀리는 문제로 비난한 듯.
거기에 대해 취~는 특별히 할 말은 없다.
이 글은 그 책을 읽고... 그중에서 세계 경제 변화에 대한 것만 추려서 조금 보충해서 쓴 것.
1945년 8월 15일은 일본의 항복으로 2차대전이 종결되며 미국이 전후 패권국으로 공식적으로 올라선 날이다.
그러나 44년때 브레튼 우즈 체제를 발효시켰을 때 미국은 이미 패권국이었다.
바로 브레튼 우즈 협정에서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지정한 것.
당시는 미국이 전 세계 금 보유량의 70%를 가지고 있었고, 당시 달러는 태환화폐였다.
태환화폐란 금으로 바꿔주는 화폐로서 그러니까 달러를 가지고 가면 언제든 금으로 바꿔주었다.
금은방 가면 우리나라 원으로 금을 물론 살 수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나라 원을 태환화폐라고 하면 안 된다.
우리나라 시중의 돈을 다 가져다 금으로 바꿀 수 있겠나? 참고로 한국정부가 보유한 금은 14톤에 불과하다.
당시 달러화는 그러니까 금 1온스에 35달러로 바꿀 수 있을 정도로만 발행되었던 것. 그래서 태환화폐.
이후... 특히 베트남전 때 미국은 급격하게 달러화를 찍어냈는데...
그러니까 사람들은 '이렇게 달러화를 많이 찍어냈는데 이것을 전부 금으로 바꿀 수 있을까' 의문을 품었다.
당시 사람들은 오늘날과는 달리 금만이 화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당연히 달러를 금으로 바꿔달라는 요구가 빗발쳤고
마침내 닉슨은 1971년 달러와 금의 교환 폐기를 발표하며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를 알렸다.
즉, 뭐 달러로 여전히 금을 살 수 있겠지만
옛날처럼 1온스에 꼭 35달러가 아니라 1달러일 수도, 혹은 3,500달러일 수도 있다는 뜻.
사실 종이로 찍은 돈이 돈으로서 가치를 가지는 것은 신용의 힘이다.
금에서 신용으로 사람들이 그것을 바꾸어 인식하기까지는 기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기간 중 일어난 일이 1차 1973년, 2차 1979년 오일쇼크다.
둘 다 직접적으론 중동전쟁과 자원민족주의 때문이나 불태환화페 달러화의 신뢰 추락이 밑에 깔려있다.
1배럴에 50센트 하던 석유 가격이 40달러로 80배 정도 뛰면서 전세계적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의 물결이 넘쳤다.
팔리지는 않는데 물가는 오르고... 경기침체속 물가상승.
이때 등장한 사람이 레이건.
레이건은 금리를 올려 물가를 안정시키려 했다. 레이거노믹스.
문제는 금리가 17%에 달하다보니까 기업들이 17%의 이자를 물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미국 대부분의 제조업이 바로 이때 붕괴되었다.
그리고 제조업 일본의 신화가 시작.
일본이 미국 소비시장을 무섭게 잠식하고 미국의 적자폭이 커지자 미국정부는
1985년 플라자호텔에서 G5 재무장관 회의를 열어 당시 1달러에 250엔이던 환율을 120엔으로 조정하는
플라자 합의를 이끌어냈다.
환율에 대해 잠시 공부해 보면...
환율이라 함은 1달러에 대한 돈의 가치다.
환율이 오른다고 하면 달러화의 가치가 오르는 것이다.
일테면 1달라 1,000원 했던 것이 1,300원으로 올랐다.. 이런 뜻.
그러면 우리나라가 1달러짜리 상품을 수입 한다고 치면 1,000원이었던게 1,300원이 된다.
당연히 수입이 어렵다. 반대로 수출은 당연히 잘 되겠다.
그러면 최근엔 왜 환율이 오르면 우리 경제 작살난다고 하는가?
자본이탈 때문이다.
즉, 달러가 없어져도 환율은 오른다.
다른 이유로 자본이 이탈하면 달러의 가격은 오른다.
그 결과로 환율이 오르는 것이므로 차후 수출이 잘 되고 어쩌고를 떠나 당장 작살나는거다.
아무튼 일본의 경우는 1달라 250엔에서 120엔으로 환율이 내려갔다.
한마디로 일본 수출을 막겠다는 것.
그리고 미국은 위기에서 벗어나 제조업에서 강세를 띠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가장 쉽게 금리를 낮추었다.
그러면 일단 기업체에서 은행에서 돈을 빌려도 이자가 낮게 되고 서민들도 소비력이 생겨난다.
당연히 금리를 낮춰서 돈을 푸는 것이지만 문제는 너무 풀었다는데 있다.
돈이 풀리면 모든 상품의 가격이 뛴다.
물건이 하나 있고 100원짜리 하나 있다면 100원인 것을 100원짜리가 두개 늘어났으니 200원이 되었다.
그렇게 물가가 뛴다.
이런 것을 유동성 장세라 한다.
유동성이란 그냥 현찰.. 돈. 왜 돈을 돈이라 하지 않고 유동성이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참고로 양적완화도 돈(유동성)을 푸는 것.
플라자 합의에서 환율이 내려갔을 때 실질적으로 경기하락이 된 것이다.
돈을 못 벌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돈 못 번 만큼 기업의 효율성을 제고한다든지 했어야 했는데 가장 쉽게 유동성을 왕창 풀었다.
그 결과 니케이 지수가 38,000 까지 올라갔고 초밥 한개 2만원이 되었다.
너나 할 것 없이 돈을 펑펑 벌어대니 당장은 좋은 것 같지만...
첫째, 어떤 경우에도 버는 놈이 더 벌어들인다.
둘째, 결국 원자재는 외국에서 사와야 한다...
나중에 물가가 너무 올라서 맨 밑의 사람부터 버텨내질 못 하고 그러한 경향이 점점 올라오게 된다.
결국 돈을 거둬들여야 하므로 금리를 올려야 했다.
그러자 돈 빌려서 부동산 산 사람들이 금리를 배겨내질 못 하고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땅을 내놨지만 너도나도 내놨으므로 이미 땅값은 떨어졌다.
기업도 주로 담보로 땅을 잡히고 돈을 빌렸으므로 마찬가지 결과다.
담보로 잡힌 땅이 가격이 내렸으니 은행도 돈을 회수해야 했다.
17개 은행과 14개 신용금고를 포함해 124개 금융기관이 연쇄도산했다.
버블이란 단적으로 일 안 하고 돈 벌어들이는 불로소득자가 늘어났다는 것을 말한다.
어떻게 기회 잘 타서 일에 비해 큰 돈 벌어들일 것을 생각한다면 버블에 참여했다 생각하면 된다.
그때 1991년부터가 바로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되었다.
그 즈음 소비에뜨가 망하고(1991년)
미국과 중국이 다시 경제적으로 일어서기 시작했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가 발발했다.
우리나라도 1997년 IMF를 맞았다.
IMF의 본질은 국제금융투기세력, 종금사.. 말이 많지만 한마디로 대기업이 잘 못 한 원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과도하게 부채를 져서 설비투자하였다. 이때의 부채는 물론 달러부채. 달러 빚.
결국 어마어마한 규모의 공적자금을 투여했고 대기업은 구조조정을 단행하였다.
그때 구조조정된 사람들은 다 자영업자(주로 닭집)로 빠졌다.
미국은 그때가 주로 클린턴의 시대이다. (1993년~2001년)
그러나 클린턴의 시대라기 보다는 그린스펀의 시대라고 하는게 더 맞는데...
1987년 레이건 후반때 등용되어 부시와 클린턴, 다시 부시까지.. 2006년까지 연방준비제도 의장으로 있었다.
그린스펀은 신자유주의 신봉자였다.
신자유주의는 감세와 통화량 유지, 그리고 정부의 시장개입 금지로 대표된다.
케인스 이론에 반하여 나왔는데 케이스 이론 전 아담 스미스로 대표되는 자유주의와도 분리된다.
아담 스미스의 자유주의는 인간의 이기심은 공정한 시장을 통해 국부로 전환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이때 정부는 공정한 시장을 위해서만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정부는 축구로 말하자면 심판인 것이다.
케인스는 자본주의에 있어 경기순환은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현상이라 보고
그 경기순환을 최대한 평면적으로 하기 위해 정부가 적절하게 개입해야 한다고 보았다.
일테면 경기가 좋아지게 되면 어차피 돈 빌려서 사업벌이려는 사람이 많다.
그렇다면 좀 있으면 당연히 금리가 오를 것인데...
너무 과열된 상태로 가기 전에 정부가 미리 금리를 올리는 것이다. 야구로 말하자면 구원투수.
그러나 이 케이스 이론은
1970년대 오일쇼크로 인한 스테그플레이션- 물가가 오르면서도 경기침체- 상황에서 모순되게 되었다.
물가가 오르면 돈을 거둬들여야 하는데, 또 경기침체를 생각하면 돈을 풀어야 하는 그런 상황.
여기서 신자유주의가 나왔다.
신자유주의는 스테그플레이션상황에서 우선 물가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비용엔 석유값 말고도 인건비가 있다는 것에 주목했다. 즉, 인건비를 잡으라는게 신자유주의의 주장.
그리고 레퍼 곡선으로 대표되는 감세정책을 주장했다.
레퍼 곡선이란 소득이 1억일 때 세율이 10%면 조세수입은 1천만원. 세율이 20%면 조세수입은 2천만원.
그러나 세율이 100%면 조세수입은 0원. 아무도 일 안 할테니까. 세율이 90%면 조세수입은 0원보다는 좀 더...
그렇게 추측해서 나온 곡선이다.
그리고 국가도 사적동기를 가진 경제주체이니 시장에 전혀 개입하지 말라고 하였다. 바로 이 점이 아담 스미스의 자유주의와 차이점. 아담스미스도 정부를 선한 존재로 보고 공정을 위한 정부의 시장개입을 주장했으나 신자유주의는 이조차도 '안된다!'고 하였다. 일테면 국토해양부 같으면 죽으나 사나 부처의 존재이유로 해서 개발만 주장한다. 역시 사적동기를 가진... 공정할 수 없는 악한 존재로 보았다.
그러나 이런 신자유주의의 방식은 결과적으로 부자감세 - 사실 감세해 봐야 부자 아닌 사람들은 큰 혜택이 없다 - 와 저금리로 로 인한 유동성(돈) 과잉, 그리고 금융기관의 자유 - 레이건 이전에 미국 금융기관은 전부 소규모였고 업무가 분담되어 있었고 위험한 투자를 할 수 없게 하였다. 레이건 이후 금융기관은 서로 합쳐서 거대 금융기관이 되었으며 보다 큰 돈을 가지고 위험한 투자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를 결과하였다.
훗날 닷컴버블(1999년 ~ 2000년 클린턴시대) 과 2007년 금융위기는 이때부터 태동된다.
닷컴버블때는 말하자면 버블이 붕괴했으니까 정부 개입이 아니라 시장 자체적으로라도 당연히 고금리로 되어야 한다. 그러나 당시 세계의 공장으로 등극한 중국의 싼 제품들 때문에 계속 저금리로 갔었고 미국은 버블을 지속할 수 있었다.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는 서브프라임...신용(프라임) 없는(서브) 사람들에게 부동산담보대출(모지기 mortagage)해주는 것이다. 신용 없는 사람들이 일단 은행에서 돈을 꿔서 주택을 사면 그 주택을 은행이 담보로 잡는 것이다.
신용이 없으니까 이자가 당연히 높다. 이자가 높으니까 수익성은 좋지만 그만큼 위험하다. 게다가 주택담보대출인 만큼 상환에 수십년이 걸린다.
그러나 은행은 이를 좀 할인받아 투자은행에다 팔아버렸다. 즉 1000만원을 꿔주고 수십년간 상환하게 했으면 상환 다 되었을 때는 한 2000만원 정도 될 것이다. 담보와 함께 그 2000만원짜리 증서를 한 1100만원 정도에 다른 투자은행에다 넘겨줬단 말이다. 1000만원 꿔주고 1100만원 벌었으니 100만원 이득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옛날 은행들이 돈 받기 힘든 신불자들을 채권추심회사에다 팔아먹었다. 뭐 한 500만원 받아야 한다면 채권추심회사에다 50만원 정도로 팔았다. 채권추심회사는 신불자들에게 100만원만 받아도 이익 생기는거다. 그 비슷한것. 투자은행은 또 이를 부채담보물증권(OCD)라고 불리우는 파생금융삼품으로 만들어 팔아먹었다. 국제신용평가기관에서는 이 위험한 투자에 AAA등급을 매겨주었고 그거 믿고 우리가 가입한 펀드 매니저는 그 상품을 샀다. 결국 전 세계가 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에 묶여버렸다.
파생금융상품이란 한마디로 위험 회피와 경비절약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1991년 소비에뜨 망하고 재정적인 이유로 미 항공우주국 NASA에서 쫓겨난 물리학자, 우주공학자들이 월 스트릿으로 진출해서 만들어냈다. 금융공학이라면 이 파생금융상품을 말하는 것이다.
파생금융상품중 선물만 잠시 설명하자면 금 100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현재 금 1냥의 시세는 40만원이다. 그러니까 전재산이 4000만원이다. 앞으로 금값이 내릴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석달후 현재 시세인 1냥의 40만원"으로 1000냥을 팔 수 있는 선물계약을 체결했다. 석달 후 1냥의 30만원이 된 경우 선물시장에서 40만원 * 100냥 해서 4천만원의 수입을 올린다. 그 4천만원 중에서 3천만원을 들여 현물시장에서 30만원에 100냥을 사들일 수 있다. 금은 그대로고 1천만원의 수입을 올릴 수 있다. 석달 후 1냥의 50만원이 되었다면 아무튼 금을 4천만원에 판다. 최소한 처음 재산과 같게 된다. 이런 것이 파생금융상품중 선물이다. 이 외에도 옵션과 스왑등이 있다.
결국 파생금융상품은 앞날을 예측한 것이 맞으면 돈을 벌게 되어있다. 그러니까 위험회피도 회지지만 결국 도박처럼 되어버렸다.
막상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사태가 터지자 부시는 역사상 최고의 케이스주의자가 되어 8천억 달러의 통화확장과 8천억 달러의 재정정책을 폈다.
첫댓글 카리스마가 있는 작가!! 경제학자라고 해야 하나요 강의도 콕 집어서 잘하시는 분이죠 ㅋ 알찬~내용에 감사^^ 경제의 역사가 한 눈에 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