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자종시래(自從是來) 아상재차(我常在此) 사바세계(娑婆世界) 설법교화(說法敎化) 역어여처(亦於餘處) 백천만억(百千萬億) 나유타(那由佗) 아승기국(阿僧祗國) 도리중생(導利衆生)
이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항상 이 사바세계에 있으면서 설법교화했느니라.
또한 여처(余處)의 백천만억나유타아승기의 나라에서도 중생을 도리(導利)했느니라.
[통해]
나(석존)는 오백진점겁의 구원의 옛날에 성불한 이래, 늘 이 사바세계에 있으면서 법을 설하고 사람들을 교화했다.
또, 다른 곳의 백천만억나유타아승기의 무수한 나라에서도 중생을 이끌고, 이익하게 했다.
[어역]
사바세계(娑婆世界): 사바는 산스크리트어인 '사하(Saha)'의 음역한 말로, '인내'라는 뜻이다. 사바세계란 '괴로움에 가득찬 세계'라는 뜻이지만, 불 * 보살이 고난을 견디면서 중생을 구제하는 세계이기도 하다.
[강의]
제일 첫 부분에 '석존이 오백진점겁의 구원에 성불한이래, 언제나 이 사바세계에서 설법하고 중생을 계속 교화했다'고 나온다.
'사바세계'는 본래 구원의 부처가 상주하는 정토(淨土: 청정한 국토)이다.' - 이것은 참으로 획기적인 가르침이었다. 도다 선생님도 "이 부분에 와서 불법이 발칵 뒤집혀버렸다."고 말씀하셨다.
이전경은 이 사바세계는 예토(穢土: 번뇌로 오염된 국토)이고, 부처가 사는 정토는 다른 곳에 있다고 했다.
예를 들면, 서방(西方)의 극락세계(極樂世界)에는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가 있고, 동방(東方)의 정유리세계(淨琉璃世界)에는 약사여래(藥師如來)가 있다는 등으로 설했다.
법화경 적문도 기본적으로 이 이전경의 설을 아직 답습하고 있다.
이렇게 이전경은 '사바세계는 예토, 다른 국토가 정토'라고 차별을 두었다. 이 사고방식을 최초로 명확하게 타파한 것이 수량품의 경문이다.
사바즉적광의 법리를 밝히다
이 경문은 사바세계야말로 구원실성의 부처가 사는 본국토(本國土)라는 사실을 밝혔다.
부처가 사는 국토를 '적광토(寂光土)'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 경문에서는 '사바즉적광(娑婆卽寂光)'의 법리를 밝힌 것이다.
이 경문에는 다음에 "또한 여처(余處)의 백천만억 나유타 아승기의 나라에서도 중생을 도리(導利)했느니라"라고 씌어 있다. 구원의 석존은 사바세계 이외의 무수한 국토에서도 중생을 인도했다는 것이다. 이 경문은 다른 국토의 부처도 실은 구원실성의 석존의 수적(垂迹)이고, 분신(分身)이었다고 밝힌 부분이다.
대성인은 '개목초(開目抄)'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량품이 구원실성을 밝혀을 때, 모든 부처는 석존의 분신이 된다. 이전(爾前) * 적문(迹門)이 '시방(十方)의 세계를 정토, 이 사바세계를 예토'라고 설한 것을 역전시켜서, 이 세계가 본토(本土)이며 시방의 정토는 오히려 수적의 예토가 된다."(어서 214쪽, 취의)
사바세계는 구원의 부처가 종횡으로 활동하여 중생을 구제하는 본토이다.
그러므로 이 사바세계와는 별도로 다른 정토를 추구하더라도, 모두 본토 이외의 수적의 정토를 찾는 것이 된다.
결국 그림자나 환상을 찾는 듯한 것이므로 덧없는 일이다.
사바세계와는 별도로 이전경이 적광토를 설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현실 생활의 욕망에 사로잡힌 중생에게 구도심을 일으키기 위해서이다. 이전경의 적광토는 방편의 정토에 지나지 않는다.
수량품은 '현실세계와는 다른 곳에 이상적인 세계를 세우는 사고방식'을 타파했다고도 할 수 있다.
사람에게는, 이 현실을 떠나 어딘가 다른 세계로 가면 행복하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현실도피적인 생명'이 있다. 환상의 행복은 어디까지나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수량품은 그 미망(迷忘)을 타파했다.
대성인은 '어의구전(御義口傳)'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곳을 떠나서 저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니라. (중략) 지금 니치렌 등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하는 자의 주처(住處)는 산곡광야(山谷曠野) 개적광토(皆寂光土)이며"(어서 781쪽)
지금 묘법을 수지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야말로 '적광토'이다. '사바즉적광'이야말로 진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사바세계란 '감인세계(堪忍世界)'라고도 하듯이, 중생이 고뇌를 계속 참고 견뎌야 할 세계를 말한다. 이러한 세계가 즉 적광토라는 것은 어떠한 뜻인가. 그것은 수량품에서 '사바세계 = 감인세계'의 의미가 크게 전환(轉換)되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다시 말해, 중생이 고뇌와 슬픔을 계속 참고 견뎌야만 하는 '비극의 장소'에서, 부처가 온갖 고난을 참고 견디면서 중생을 계속 구제하는 '민중행방'의 무대로 바뀐 것이다.
이 세계야말로 우리 사명의 불국토
문저로 말하면, 이 '무대'에서 활약하는 것은 구원실성의 석존만이 아니다. 이미 말했듯이, 구원실성을 '원초(元初)의 생명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문저의 뜻이다.
도다 선생님은 "이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항상 이 사바세계에 있으면서 설법교화했느니라."라는 경문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대우주 즉(卽) 어본존(御本尊)이라는 뜻이고, 남묘호렌게쿄의 생명은 구원 이래 대우주와 함께 있다는 뜻이다."
원초의 생명으로 되돌아가면 사바세계 즉 대우주이다. 자유자재로 행동을 하는 큰 무대이다. 우리 범부도 묘법을 수지하고 원초의 대생명을 열면, 사바세계의 곤란을 유연히 견뎌내면서 '민중해방을 위해 끝까지 살아가는 사명의 용자(勇者)'로서의 본지(本地)를 나타낼 수 있다.
가장 힘든 곳에 뛰어들어 가장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포용하면서, 벗과 이야기하고 벗을 지킨다. 그리고 '사바즉적광'이라는 '희망의 혁명'을 일으킨다. 거기에 지용의 용자의 인생이 있다. 불법자(佛法者)의 정신이 빛난다.
대성인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본화(本化)가 홍통하는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대인욕(大忍辱)의 힘을 가지고 홍통하는 것을 사바(娑婆)라고 하느니라. 인욕은 적광토이고, 이 인욕의 마음을 석가모니불이라 하였고"(어서 771쪽)
본화(本化) 다시 말해 지용보살로서, 남묘호렌게쿄의 대생명을 토대로 한 대인욕의 힘으로 묘법을 홍통하는 모습이야말로 '사바 = 감인'인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인욕의 모습에 적광토가 있다. 우리가 근행 * 창제를 하며 우주대(宇宙大)의 본원의 생명을 흉중에 용현(涌現)시키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사바세계의 현실에 들어가는 모습이야말로 '사바즉적광'이다.
존극(尊極)한 본원적인 생명에 눈뜨면, 괴로움과 숙명으로 가득한 현실의 예토(穢土)는 환희와 사명으로 가득한 정토로 바뀌게 된다.
'정토'의 진정한 의미 - 불국토를 청정하게
'염리예토(厭離穢土) * 흔구정토(欣求淨土)'라는 말이 예부터 사용되어 왔다. '이 고뇌의 현실사회를 싫어하여 떠나, 사후(死後)의 극락왕생(極樂往生)을 원한다.' - 사람들은 오랫동안 불교를 그와 같은 도피처, 소극적, 염세적인 종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떠난 정토'라는 생각은, 중생의 기근(機根) 맞추어 임시로 설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일시적인 위안일 수는 있어도, 진실한 행복을 가져오는 가르침이 아니다.
니치렌 대성인은 '수호국가론(守護國家論)'에서 "법화경을 수행하는 자는 어떤 정토를 원하면 좋은가?"라는 물음에 이렇게 답하셨다.
"법화경 28품의 중심인 수량품에 '나는 항상 이 사바세계에 있다.'고 있다. (중략) 이 경문대로라면, 구원실성의 본지를 나타낸 완전한 부처는 이 사바세계에 있다. 그러므로 이 사바세계를 버리고 그 외에 어떠한 국토를 원할 필요가 있겠는가."(어서 71쪽, 통해)
"사바세계에서 정토를 구하라."라는 말씀이다. 이 현실사회야말로 본래의 정토이다.
그리고 불교의 정신이야말로 그 본래의 정토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 있다.
불교는 '사람이 사는 곳을 떠나, 산림(山林)에 틀어박혀 자신만의 깨달음을 목표로 하는 종교'가 결코 아니다. 또 현세를 포기하고 사후의 행복만을 기대하는 종교도 아니다.
'정토'라는 말에는 '정불국토(淨佛國土)' 다시 말해 '부처의 국토를 청정하게 한다.'는 적극적, 실천적인 의의가 담겨 있다. 본래 여기에 '정토'의 의의가 있는 것이다.
일본의 불교에서는 이 본의(本義)가 완전히 사라지고, 정토는 '사후의 세계' '저 세상'으로 되고 말았다. 정토란 다시 말해 '토(土)'를 깨끗이' 하는 것이다. 환경을 변혁하는 행동이며 건설이다.
'입정안국'의 정신에 불법의 정통이
경전에는 국토변혁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까지도 나타나 있다.
예를 들면, 석존이 이렇게 말했다.
"불모지에 나무를 심어 풍요로운 초록 동산으로 만들고, 강에 다리를 놓고, 건조지(乾燥地)에 우물을 파서 수로를 만들고, 길에 나그네들을 위한 휴식처를 만든다. - 이와 같은 사람의 공덕은 나날이 증대하고, 진리에 설 수 있다."
이 석존의 정신을 국가의 정치이념으로 하여 실행한 사람이 아육대왕(阿育大王)이었다.
정법시대(正法時代)의 대논사(大論師)인 용수(龍樹)도 당시의 왕에게 "병든 자, 고아, 가난한 사람을 보호하라." "재해, 흉작, 역병 등으로 황폐해진 지역의 사람들을 구제하라." "사람을 권력으로 부당하게 구금하면 안 된다." 등으로 간언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정토'의 본의는, 대성인의 '입정안국(立正安國)'의 이념과 실천에만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실의 국토변혁 - 이 정신이야말로 불법의 정통(正統)이다.
도다 선생님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이 사바세계는 안온(安穩)하고 평화로운 곳이어야만 한다. 원자폭탄이 날아다니거나, 폭탄이 비행기에서 떨어진다거나 하면 안 된다. 살인했다거나, 아사(餓死)했다는 등의 일이 묘법유포의 세계에서 있으면 안 된다."
여러분도 근행할 때에 세계평화, 전 민중의 행복을 기원하고 있다. 또 매일매일 벗의 괴로움을 듣고, 광포실천에 힘쓰고 있다. 참으로 존귀한 '정불국토(淨佛國土)'의 실천이다.
창가학회는 부처의 사자(使者)로서 보살도를 행하고 있다. '우리 지역을 그리고 이 나라를, 또 전 세계를 상적광토(常寂光土)로 빛내자!' - 이렇게 결의하여 나아가는 속에 '사바세계. 설법교화'의 모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