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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un espace, the space, der Raum) 철학 일반 [개요],
[편집진], Les Notions philosophique, Dictionnaire, PUF, pp. 836-837(P.3299)
[내가 개요라고 명칭을 부친 것은 이 긴 글에는 필자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 본문 내용의 필자는 보에르(E, Bauer)이다. 게다가 다양한 공간에 관한 개념들은, 기하학적(G. Baudelle et D. Dory), 지리학적, 수학적(Y. Felix), 물리학적(M. Ghins), 국면적(B. Hespel), 논리적(A. Soulez), 시학적(R. Pietra), 공공적(L. Quéré) 공간들에는 각각 필자들이 명기되어 있다.]
공간을 다루는 학문적 방식들이 많기도 하다. 그리고 철학적으로 다루는 이 항목에서 개요 부분은 필자가 명시되지 않았다. 여기서는 우선 철학에서 인간의 심성과 연관하여 공간(무한한 경험적 공간)을 다룰 수 있고, 둘째는 어원적으로 공간이라는 것이 그리스 사유에서 나온 것인데, 흥미로운 것은 그리스 기원과 히브리 기원을 유비로서 언급하였는데, 스피노자의 것은 후자에 속한다고 한다. 셋째로는 수학과 물리학(기술)과 연관하여 공간의 개념을 다루는 것을 간략하게 소개하다. 마지막으로 물리적 공간에 대한 감각적 지각은 삶의 실천적 방식에서, 곡식을 심는 표면의 면적의 단위에서, 나왔으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경험적으로는 이 마지막이 인류 사유의 발달에서 먼저이고, 그리고 아페이론의 경계(자리), 측정적 공간, 추상적 공간과 순수 기하 공간으로 전개과정을 걸었을 것이다. (54NK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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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간: (un espace, the space, der Raum), [philo. géné.]
- 남성 실사(subs. masc.)
“이 무한한 공간들의 영원한 침묵을 나를 두렵게 한다”(Le silence éternel de ces espaces infinis m‘effraie)고 고백하면서, 파스칼(Pascal, 1623-1662)은 인간적 특수성에 도움을 청하면서 스스로 안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공간에 의해서 우주는 나를 포함하고(comprendre) 있고, 또 나를 마치 한 점처럼 삼킨다, 사유에 의해서 나는 그것을 이해한다(comprendre).” 파스칼 이후로 3세기가 지나, 하이데거(Heidegger, 1889-1976)는, 칸트(Kant, 1724-1804)의 혁명과 상대성이론의 발전에 의해 제기된 문제들과 더불어,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 1927)에서 “공간의 존재에 대한 해설(l’interprétation)에 관하여 현재까지 이어지는 당혹함(l’embarras, Verlegenheit)”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전망에서 파스칼적인 신뢰를 다시 얻는 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인정되었다. 그러면, 사람들이 “이해하다, 포함하다”를 상상은 하지만 그래도 잘 인식되지 못한 채 남아 있는 위협에 대항하는 사유 안에서 어떻게 도움(구조)을 얻을 것인가? 만일 사람들이, 공간의 개념이 19세기부터는 정확한 과학 속에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것만큼, 그리고 철학과 물리학 사이에서 – 실증주의와 언어분석 에도 불구하고 - 점진적 거리유지에서, 또한 시간에 관하여 정교하게 공들임 덕분에(헤겔로부터 벩송과 하이데거로) 공간에 관하여 소위 철학적 탐구를 위한 관심의 축소 때문에, 그 만큼의 탁월한 역할을 고려한다면,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것에 놀라게 될 수 없으리라: 현대 상황은 공간의 문제에 관한 - 지평(l’horizon)으로부터 모든 인간적 방향이 가능할 것이라고 여기는, 역설적으로, 지평이라 이름 지워진 용어에 문제에 관한 - 철학에서는 방향상실(désorientation)에 의해 특징 지워질 것이다. 진실로 공간에 의해 제기된 “당혹함(l’embarras, 걱정거리)”은 머나먼 기원과 수많은 원인들을 지니고 있으며, 이들로부터 나온 당혹감을 지시하는 다양한 방법들과 문제를 접근하는 다양한 각도들은 예비적인 방법들과 각도들일 뿐이다.
중세 라틴계는 외연의 여러 측면들을 지시하기 위하여 세 가지 개념들을 소개 한다. 즉 장소(locus), 자리(situs, 위치), 공간(spatium)이다. 이 후자가 토대가 될 것인데, 그 토대로부터 프랑스어에서는 “공간”(espace), 영어에서는 공간(space)이고 로마식의[라틴계의] 언어들에서는 espatio(스페인어), espaço(포르투갈어) spazio(이탈리아어)로 전개된다. 이들과 다른 측면에서, 게르만 언어들은 튜턴계어 rûm(공간)을 어원으로 삼고서, 그 튜턴계어는 영어의 room, 독일어의 Raum, 네델란드어 ruimte, 스웨덴어와 덴마크어의 rum등의 기원이다. 그 게르만 언어들은 라틴어의 공간(spatium)에서 유래된 사전적 어휘(lexicale)의 확장에 비교할 수 있는 사전적 어휘의 확장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서양문명 속에서 라틴계 공간(spatium)은 더군다나 시간적 영역에 속하는 공간에게 상대적인 전문용어(le vocabulaire)로 이용하는데 부과되었기 때문이다.
공간(l’espace) 또는 이와 등가물들은 현대 언어에서는 시간적인 것만큼이나 공간적 적용방식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12세기에서 16세기로 가는 시기 동안에 프랑스어 공간(l’espace)은 특출하게 사용했다는 사실, 이것은 멀리서부터 키케로(Cicero, 106-43)의 표현, 스파시움 프라에테리티(spatium praeteriti temporis)에 의해서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여기에서 공간은 흘러간 시간의 간격을 지시한다. 라틴어 스파티움(spatium)은 우선 그리스어 코라(khôra)에 해당하며, 이 그리스어는 플라톤의 티마이오스(Timée) 안에 철학적 문맥으로 처음 등장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엄격한 의미에서 코라에 관한 어떤 이론을 전개하지 않고서, 장소(topos, locus)의 이론을 제공하였다. 그리고 이 장소(토포스)의 이론은 철학과 과학들의 역사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런데 코라는 자주 공간에 대한 플라톤 이론의 등가물[코라와 등가물]처럼 취급되었다.
그리스의 철학적 용어사용에서 보면 더욱 복잡하다. 플라톤 이전에 철학은 이미 철학적 공간(espace, khôra)에 관하여 문제를 삼았었다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여러 다른 이름으로 불려졌는데, 혼돈/질서(Khaos/kosmos)에서부터 토 아페이론(to apeiron, l’illimité, 무한정자), 토 캐논(to Kenon, le vide, 허공), 토 판(to pan, le tout, 전체), 우라노스(ouranos, monde/ciel, 세계/하늘) 등도 있다.
이러한 문맥에서 예외적 사실을 빠뜨리지 않아야 한다: 즉 유일한 개념(le seul concept)도 있다. 히브리 성서의 언어는 그 개념에게 그리스인들 이전에 학술어의 의미를 부여했던 것 같다. 이 개 마콤(makom)이란 용어인데, 「창세기」 속에(I, 9) 이미 나타났으며, 이는 헤시오도스(Hésiode, Ἡσίοδος, 기원전 8-7세기)의 신통기(La Théogonie, Θεογονία)안에서 비교할 수 있는 어떠한 용어도 없는 우주론적 뉘앙스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신통기는 성서의 본문과 동일한 시대 와 가까운 시기에 나온 것으로 여긴다. 이 개념은 탈무드 속에서는 신과 동이어가 되었고(“신은 자기 세계의 마콤이다”로 쓰이듯), 또 카발라의 사색에서 강조되고 난 뒤에, 그 개념은 스피노자에서 재론된다.스피노자(Spinoza, 1632-1677)는 철학적 근대성[근세철학]에서 이 용어를 연장 사물(la res extensa)과 함께 주제로 삼았는데, 신의 무한 속성들 중에 하나로 삼았다.
공간 일반 관념 주위에 주어진 사전적 어휘의 범위 확대에 의해 제기된 문제에게 그것의 규정에 대해 난점들이 보태어진다. 이 난점들은 인식과 탐구의 다양한 전망들로부터 시작한다. 이리하여 그리스인들의 공간은 우주적이고 자연적(물리학적) 질서에서 이해되었으며, 에우클레이데스/유클리드(Euclide, Εὐκλείδης, 전300년경), 아르키메데스(Archimède, Ἀρχιμήδης, 전287-전212), 프톨레마이오스(Ptolémée, Πτολεμαῖος, 기원후83-168) 등의 기하학적 도형들과 구축들에서 “바닥으로서 공간(espace de fond)”처럼 이해하지 않았다. 그러한 공간은 처음으로 데카르트(Descartes, 1596-1650)의 기하학(Géométrie)속에 나타나며, 그리고 “절대공간”의 요청(전제)은 뉴턴(Newton, 1642-1727)을 기다려야 했다. 이 절대공간은 지상과 천상의 역학의 공간 만큼이나 – 심지어는 형이상학을 포함하여 - 수학의 토대 공간을 포함한다. 왜냐하면 뉴턴에게서 공간은 신의 감각력(sensorium Dei)이기 때문이다. 그의 야심찬 기획은 장차[미래의] 전개방식들이 그의 종합을 마치 단지 임의적인 것으로서 폭로할 것이라는 것을 막지 못했다.
나중에 지각작용의 심리학과 같은 그림같은 전망의 영역에서 또는 비유클리드 기하학들에 의해서 발전된 공간에 관한 이론은 이 이론들 서로 사이에는 공통분모가 없으며, 이론들이 공간의 철학적 개념화의 연관은 자주 밝혀지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깊이 분석하기에 앞서서 공간에 관한 물리학 또는 우주론의 결과물들을 상대화하는 몇몇 현대철학들이 따른 전략이 있다. 실재성에 대한 해석적 충돌에 마주하여 거부를 증거하는 과학들에서 검증 이론의 이름으로 또는 “패러다임 변환”들의 항상 가능한 이론의 이름으로 철학자들이 따른다. 그리고 사람들이 실재성이 [현재] 있는지를 자문하는 할 때까지, 그 실재성을 -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에게서 시간처럼 – 사람들은 인식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근대 물리학의 공간과 더불어 정점을 이루는 과정이 있다. 그 과정은 자주 감각적 지각작용에 접근할 수 없는 특성들과 더불어 사유되고 묘사된다. 그 과정은 긴 추상적 진행방식을 구성하는데, 그 긴 방식의 기원들은 이러한 계기에 위치되어 있다고 추정될 수 있다. 그러한 계기란 원시인이 – 이 원시인은 자신이 방향 잡은 장소의 방향의 다양성을 공간의 관념과 구별할 수 없어서 – 길이, 표면, 체적을 측정할 자신의 실천적 관심에 의해 강요되었을 계기이다. 측정한다는 기술에서, 초기 시도들은 인간중심주의적 전방으로부터 해방될 수 없었다가(예 수메르 지방에서 표면들을 측정하기 위한 단위는 문제거리인 표면에 씨앗을 심기 위하여 표면에 필요한 곡식의 양이었다), 일반화로 인도되는 기회가 있었을 것이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차별적 공간들의 확장 속에서 집중화될 수 있는 추상의 수준에 이르렀을 것이다. [세기(곡식알), 밭의 넓이 측정의 양(숫자), 일정한 크기의 다른 밭에 심을 양의 단위 설정(추론 수개념), 공간화한 추상의 수로서 계산 또는 예측가능한 수 체계. - 이 네 단계는 벩송이 시론 제2장에서 서술한 것이고, 이는 플라톤의 선분의 비유도 마찬가지이다. 인류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추상 수학들의 분야들을 사유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54NKD)] - [필자의 소개가 없는데 편집진이 쓰기에는 너무나 전문적이고, “내용”을 쓴 바우어(E. Bauer, s.d.)가 썼다고 하면 왜 이중으로 썼느냐에 의문이 생긴다. 혹시 바우어가 독일인 수학 물리학자이 아닐까? - 위 문장은 만연체로서 명사구문이 길며, 헤겔 정신현상학처럼 뒤에 수식들이 많다. ]
(5:10, 54NKD)
*인명록
700k 헤시오도스(Hésiode, Ἡσίοδος Hēsíodos) 기원전 8세기-7세기경 활동한 고대 그리스서사시인, 작가로 호메로스와 함께 그리스 신화, 그리스 문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인이다. 신통기(La Théogonie (Θεογονία / Theogonía) 노동과 나날(Les Travaux et les Jours (Ἔργα καὶ Ἡμέραι / Erga kaì Hêmérai)
427 플라톤(Platon, Πλάτων, 본명 아리스토클레스 Aristoclès 427-347; 80살) 플라톤이란 ‘어깨가 넓음’을 의미한다. 이데아의 철학자. (출생시 소크라테스 나이 42살이었고) [그리고 그가 18년 후에 배울 수 있을 있었다면, 소크라테스 나이 60살이었으며 10여년을 따라다니며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말기에 이야기를 들으면서 결과(이데아)에 대한 존경심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진정한 고민은 이데아가 아니라 아페이론이었을 것이라고 말년에 깨닫고 필레보스편을 쓰지 않았을까?]
384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 Ἀριστοτέλης/Aristotélēs, 384-322: 62살) 스타지르(Stagire)에서 탄생. (플라톤 나이 43세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367년(17살)에 플라톤의 나이 예순 살에 아카데미아 입학했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학을 창안하면서 앞 시대(이오니아)의 아페이론을 무시하는 누스((le νοῦς 지성)의 영광을 노래한 첫 철학자일 것이다. 인류는 결과를 전달하는 도구를 만들었다. 문자라고.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에게 배운 시기는 그래도 구전이었다(파이돈편에서 감옥 이야기에서는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죽음의 장소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야기를 들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에게서 쓰여진 것으로부터 출발하여, 즉 결과물에서 역으로 추론(정의 내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지성이 추론상 결과를 먼저 생각하고 아페이론에게 명령(지배)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 수 있었다. 문자의 시대이다. 이는 유클리드 기하학이 체계를 갖는 시기와 같다는 것인데, 영역이 달라도 유사한 사고 방식은 서로 만나지 않더라도 창안하는 것이다. 나로서는 아우구스의 황제의 성립과 크리스트교가 판단(심판)의 종교로 형성된이 유사한 사고에서 나온 것으로 본다. 종교는 감성인데 지성(심판)으로 바꾸어 로마를 지배한 것이 서양사상사가 또는 역사과 억압과 광기로 흘러가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54MLEF)
300k 에우클레이데스(Euclide, Εὐκλείδης, 전300년경)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소설가. (고대 이집트의 수학자였을 가능성도 있다. 에우클레이데스가 어느 나라 수학자인지 확실하게 밝혀진 사실은 없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의 재위(전323-전283)동안 프톨레마이오스 1세의 부탁으로 최초의 대학이자 도서관, 박물관이라고 불리는 알렉산드리아 대학에서 활동하였고(하지만 이 대학은 현재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정확한 위치도 추측만 하고 있을 뿐이다.), 당시 알려진 정수론 및 기하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에우클레이데스의 원론》을 집대성한 업적을 가장 높게 평가받고 있다.
287 아르키메데스(Archimède, Ἀρχιμήδης, 전287-전212) 고대 그리스 마그나 그라이키아의 일부였던 시라쿠사 출신의 철학자, 수학자, 천문학자, 물리학자 겸 공학자. 왕관과 같은 무게의 금을 비교한 실험을 부피로 알고 있었는데 비중에 의한 실험이었구나( “찾았다”εὕρηκα!)
106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 106-43) 이탈리아 아르피눔 출생, 로마의 정치인, 변호사, 라틴어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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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프톨레마이오스(Ptolémée, Κλαύδιος Πτολεμαῖος, AD 83-168)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천문학자, 지리학자, 점성학자. 고대 이집트의 테바이드에서 태생으로 추정 알렉산드리아에서 사망. 천문학 집대성(Megalē Syntaxis tēs Astoronomias)(아랍어 번역본 알마게스트)
354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Hipponensis, 354-430) 성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 히포넨시스(Sanctus Aurelius Augustinus Hipponensis)라고 불린다. 기독교 교부철학자. 성직자, 주교. 고백록(Les Confessions (Confessiones) 401
1596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 프랑스 철학자, 수학자, 과학자, 근대 철학의 아버지, 해석기하학의 창시자.
1623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 프랑스 수학자, 과학자(물리학자), 발명가, 작가, 철학자. 루이 드 몽탈트가 시골의 한 친구와 예수회 신부님들에게 보낸 편지: 이 신부들의 도덕과 정치의 주제에 관하여(Lettres écrites par Louis de Montalte à un provincial de ses amis et aux RR. PP. (révérends pères) Jésuites: sur le sujet de la morale et de la politique de ces pères. 1657)(장세니즘을 옹호하며,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이나 명예를 위해 살인까지도 용납한다는 예수회에 대해 이렇게 점잖게 충고한다.)
1632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7)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출생 포르투갈계 유대인, 철학자. 기하학적 순서로 증명된 윤리학》 (Ethica, ordine geometrico demonstrata), 1677
1642 뉴턴(Isaac Newton, 1642-1727) 잉글랜드의 수학자, 물리학자, 천문학자.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 1687)
1724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독일(프러시아) 계몽주의 철학자. 비판철학. 순수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 1판, 1781: 2판, 1787) 실천이성비판(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1788) 판단력비판(Kritik der Urteilskraft, 1790)
1859 베르그송(Henri-Louis Bergson, 1859-1941) 프랑스의 철학자. 의식의 무매개적 자료들에 관한 시론(Essai sur les données immédiates de la conscience (1889), 물질과 기억(Matière et mémoire, 1896) .
1859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 독일 철학자, 현상학의 체계를 세웠다. 그는 심리주의와 역사주의에 대한 비평을 통해 실증주의와 결별하였다. 그는 유대교를 믿는다.
수의 개념에 관하여: 심리학적 분석(Über den Begriff der Zahl. Psychologische Analysen (On the Concept of Number; habilitation thesis), 1887, 산술의 철학: 심리학적이며 논리적인 탐구(Philosophie der Arithmetik. Psychologische und logische Untersuchungen (Philosophy of Arithmetic), 1891, 논리 탐구(Logische Untersuchungen. Erster Teil: Prolegomena zur reinen Logik (Logical Investigations, Vol. 1), 1900
1889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 메스키르히 출생, 독일 철학자. 흔히 실존주의 철학자로 알려져 있으나, 하이데거 자신은 그러한 칭호를 거부하였다. 1923년 마르부르크 대학, 1928년 프라이부르크 대학 교수. 독일의 히틀러 집권시기에는 나치 독일을 공공연히 지지하는 발언을 자주 해 한나 아렌트 등과 관계가 소원해지기도 했다.
(7:08, 54NK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