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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4월 11일 월요일, 맑음. 바람, 바람, 바람.
*걷기-첫째날
*생쟝에서 론세스바에스까지.
*이동거리 26km.
새벽 6시에 정확하게 불이 켜진다. 모두 잠에서 깨어 있었던 것 같다. 불이 켜지기를 기다리기도 힘들다. 화장실은 새벽 3시에 조용히 다녀왔다. 화장실에 다녀오는 것이 하루의 시작에 가장 중요한 일이다. 짐을 챙긴다. 처음 사용했던 침낭을 갠다.
아침 8시에 출발이다. 아침 식사는 비상식량으로 때우기로 했다. 가는 길에 식당이 있는 줄 잘 모르겠다. 아직 하루 일정의 출발이 익숙하지 않았다. 무거운 짐은 동키 차에 실었다. 아침 8시 출발이다. 공원에서 간단한 체조를 한다.
드디어 걷기 시작하는 날이다. 오늘 여정은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인 피레네 산맥을 넘어가는 것이다. 전체 여정에서 가장 힘든 구간에 속하는 길이다. 그러나 발걸음이 가볍다. 자신만만하고 의기충천이다.
여기서 걷기를 위해 한국에서 열심히 연습을 했다. 걷기와 달리기, 등산도 꾸준히 했다.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무엇보다도 할 수 있다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었다.
등에 우비와 물, 그리고 카메라와 우산 등을 넣은 작은 배낭을 지고 모자를 눌러쓰고 출발이다. 손이 약간 시려울 정도로 기온이 차다. 갖고 있는 가장 두꺼운 옷, 점퍼와 목도리로 무장을 했다. 아마도 영상 4도 정도 되는 것 같다.
아직은 에너지와 모험심으로 가득 찬 상태다. 이런 기대감과 흥분에 속지 말란다. 나의 신체는 아직 적응을 마치지도, 제대로 훈련되지도 못한 상태다. 초기 단계에서는 체력이 허락하는 한에서 가볍고 편하게 걸어야 한다.
해발 1450m인 콜 데 레푀데르 봉을 넘어가야한다. 경사로를 감안하면 32km 정도를 걸어야 한다. 중간 카페와 식당에서 좀 쉬어가란다. 시내를 벗어나기 전에 작은 학교를 지난다. 유치원인 것 같다. 학생들이 등교하여 놀고 있다.
시내를 벗어나 좀 더 올라간다. 두 갈래 길이 나온다. 나폴레옹 루트와 발카를로스 루트가 갈라지는 이정표가 보인다. 우리는 나폴레옹 루트를 선택하기로 했다. 첫 단추를 끼우는 것이 가장 어려운 법이다.
우리는 순례자로서 그리고 스페인에 대한 첫 경험을 하게 된다. 먼저 간 수백만의 순례자들이 이미 잘 다져놓은 길이다. 어느 길을 선택하든지 몸과 영혼의 근육을 강도 높게 사용해야한다.
나폴레옹 루트는 가장 길고 험난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장관을 감상할 수 있는 구간이다. 나폴레옹이 반도 전쟁 중에 부대를 이끌고 스페인을 드나들 때 즐겨 찾았던 길이자, 중세 순례자들이 숲속에 숨은 산적을 피해 선택한 길이기도 하다.
이른 아침 태양이 빛날 때 가장 아름답단다. 발카를로스 루트는 계곡 길을 가는데 한 낮이 될 때 까지도 햇빛이 뚫지 못하는 숲속 구간이다. 성 로마제국의 사를마뉴 대제가 스페인으로 진군할 때와 초라하게 후퇴할 때 카를로스 계곡을 이용했다고 한다.
아주 가파른 산길이지만 거리는 좀 짧단다. 우리는 시야가 탁 트이는, 그늘이 없는 나폴레옹 루트를 걷는다. 처음에는 포장된 길을 오른다.떠오르는 태양을 등지고 간다. 파란 하늘에 언덕이 초록색으로 곡선을 이루고 있다.
몇 그루의 고목나무가 하늘을 바치고 자라고 있다. 전봇대와 함께 걸어간다. 기온이 서늘해 걷기 좋다. 잠시 숨을 돌릴 겸 멈추어서 내려다보면 평화로운 목초지에 농가와 축사가 보인다. 예쁘다. 앞으로 다시 걸어간다. 오른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다.
ORISSON 5km 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출발선에서 함께 오르던 행렬이 길게 풀어진다. 양떼를 만났다. 모두 같은 흰색인 양들이 모여 가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다. 오랜만에 만나는 주택에는 프랑스 국기가 보인다. 아직 프랑스 영토인가보다.
앞서 가는 젊은이들의 커다란 배낭에는 스위스 국기 같은 십자가가 보인다. 독일에서 온 청년들이란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올라간다. 포장된 길도 이제 자갈 비포장 길로 잠시 바뀌었다.
ORISSON 2km 30분, 론세스바에스 19.2km 4시간 50분. 이라는 간판을 본다. 또 한 무리의 양떼가 올라온다. 자동차와 개가 양떼를 몰고 올라간다. 이번에는 특이한 양들이다. 털은 하얗고 얼굴과 다리가 검은 양이다. 새끼 양도 보인다.
마네크(Manech)라는 양이다. 이 양들에게서 얻은 젖은 품질이 좋아 그 젖으로 만든 오사우 이라티 치즈는 대회에서 상을 탔을 정도다. 떼를 지어 자기 초장으로 들어가면서 흩어져 풀을 뜯는다. 뒤돌아보면 생쟝 마을이 보인다. 계속 올라간다.
치워진 돌에는 노란색 화살표가 보인다. 노란색 꽃도 있는데 개나리는 아니다. 지그재그, S자 길을 오른다. 경사가 급해지면 오르는 속도도 느려진다. 숨이 차다. 옆으로 말들이 보인다. 키 작고 털이 긴, 통통한 말이 여러 마리 보인다.
그 아래 경사지에는 양떼가 있는데 100여 마리는 되는 것 같다. 평화로운 풍경이다. 길가에 식수대가 나온다. 페트병에 물을 담는 이들이 있다. 제법 올라온 것 같다. 멀리 산들이 눈 아래 펼쳐진다. 앞길도 끝없이 이어져 있다.
ORISSON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Refuge(피난처)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레스토랑과 바(Bar) 그리고 숙박업을 겸하여 하는 곳이다. 이 집 한 채 밖에 없다. 집 앞에는 커다란 고목이 세월을 말해 주고 있다.
그 아래 작은 순례자 모형이 오르는 이를 반기고 있다. 여기가 해방 900m 란다. 아무 생각 없이 식당 홀로 들어섰다. 줄을 서서 빵과 커피 주스 등을 주문해서 먹으며 쉰다. 오렌지 주스 한 잔을 주문했다. 5유로다. 좀 비싸 보인다.
아침도 굶고 점심도 준비를 못했다. 주스 한잔이 너무 맛있다. 잠시 쉬어간다. 벽난로가 있는 홀은 따듯하고 포근해 보인다. 이 알베르게는 연중무휴란다. 주방은 없지만 전망이 근사한 곳이다. 순례자 여권에 스탬프를 찍었다.
다시 걷기 시작한다. 나무가 없는 언덕을 계속 올라간다.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모자를 쓴다. 손이 시렵다. 바람에 날아가지 않으려고, 중심을 잡고 걸어가려고 긴장하며 힘주어 버티며 밀고 간다. 방심하면 옆으로 밀려날 정도로 바람이 세차게 분다.
산이 높아 해가 뜨면서 기온이 상승하여 모진 바람이 형성된단다. 그 증거로 하늘에 도너츠 구름이 생성된단다. 고맙게도 비와 눈이 함께 몰아치지 않아 다행이란다. 하늘에는 회색빛 도너츠 구름이 눈에 들어왔다.
바람을 피해 언덕 아래 자리를 잡고 앉아서 쉬면서 점심을 먹었다. 아침 일찍 출발해야 론세스바에스에 닿을 수 있으므로, 전날 저녁에 미리 점심 도시락을 준비해야했다. 슈퍼가 문을 닫아 생각지 못했다.
할 수 없이 비상식량으로, 육포와 견과류를 씹는 것으로 대신했다. 전날, 다음날을 위한 외면의 준비와 다음날을 위한 내면의 준비가 있어야 한단다.
헤수스 하토(Jesus Jato)라는 사람이 ‘카미노는 명상을 위한 시간이지, 단순히 관광을 위한 길이 아니다,’ 라고 말했단다. 내면의 준비라는 말에 생각하려해도 별 생각이 안 난다.
순례의 목적에 대해서 조용히 앉아 생각해보려 해도 특별히 생각나는 것이 없다. 순례의 길이라고 남들은 말하지만 순례라는 말도 동의가 되지 않았다. 그저 걸을 뿐이다. 오늘 할 일이 걷는 것이기 때문이다. 햇살이 좋다.
조용히 일어나 바람을 버티며 또 걸어간다. 올라갈 수 록 더욱 바람이 세차게 몰아친다. 길은 완만히 흐른다. 바람 탓인지 메고 가는 커다란 배낭이 정다워 보인다. 정상 부근은 경사가 급한 것이 아니고 평원에 가깝다. 바람에 평지가 된 것 같다.
웬 만 한 것은 다 날아간다. 나무도 바람에 자랄 수 없는 것 같다. 바짝 누운 풀들은 흔들리며 잘 버티고 있다. 잔뜩 몸을 움츠리고 걸어간다. 오리송(ORISSON) 봉에 도착했다. 봉이라기보다 언덕이다. 해발 1100m 지점이다.
오른쪽 100지점에 성모상이 보인다. 바람을 버티며 사진을 찍는 이들의 몸부림이 대단하다. 그 뒤를 아름다운 산과 계곡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모자를 붙들고 힘겹게 흔들리며 올라오는 순례 객들이 재미있다.
가까이에 고대의 샤토 피뇽 유적이 있다. 중세 시대에는 순례자 호스텔로 이용되었다. 돌담만 남아있다. 아스팔트길을 따라간다. 길이 갈리는 곳에서 아르네기로 향하는 곳으로 가다가 기념 십자가 옆에서 한 번 오른쪽으로 꺾는다.
모던한 길가 십자가를 지난다. 묘지석인지 조형물인지 인지 모르겠다. 여기서부터 아스팔트길과 작별이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서 바람을 버티며 서 있는데 사람만 조금씩 오르고 있다. 산등성이가 눈앞에 펼쳐진다.
등성이로 난 산길을 통과하니 평지 숲길이 나온다. 길이 넓다. 해발 1,275m라는 표지석이 있다. 바람을 피할 수 있어서 좋다. 약간 습지다. 산티아고 765km 남았다는 표지석도 반가웠다. 급수대가 있다. 철 구조물 발판을 넘으면 스페인이다.
이곳이 스페인과 국경이다. 가축탈출 방지용 철조망과 깊은 도랑이 계속 이어진다. 론세스바에스 8.2km 2시간 10분이라고 적혀있다. 해발 1,344m. 잠시 쉰 후에 다시 걷는다. 얼레지 꽃이 많이 보인다. 얼레지 밭이다.
연보라 빛 꽃이 가득한데 잎이 작다. 환경 탓 인가보다. 이제 스페인 땅을 걷고 있는 것이다. 돌로 된 국경 표지는 이제 우리가 나바르(Navarra)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숲길, 대체로 너도밤나무 숲길은 약간 내리막길이다.
멀리 언덕에 잔설이 보인다. 아직 잎이 나지 않은 죽은 것 같은 겨울나무지만 바닥은 초록이다. 대피소 건물이 보여 반가웠다. 폐허가 된 고대의 국경 초소란다. 견고하게 돌로 만들어진 작은 집이다. 거센 바람을 피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낙서가 가득 차 있다. 다시 여기 저기 너도밤나무가 있는 무난한 오르막길로 접어든다. 길가에는 잔설이 있다. 자갈 길 눈을 밟으며 걷기도 한다. 이 넓은 길은 정상까지 이어진다.
해발 1,450m의 콜 데 레푀데르. 이곳에서 처음 맞이하게 되는 것은 남쪽으로 펼쳐진 나바르 지역이다. 우리의 목적지 론세스바에스의 수도원 지붕과 골짜기 아래 부르구에테 마을이 내려다 보여 반가웠다. 작은 풍력발전기에 태양광이 설치되어있다.
계곡 넘어 멀리 산에는 하얀 잔설을 이고 있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가면 웅대한 너도밤나무 숲을 지나는데, 이 숲은 유럽에 남아 있는 가장 큰 너도밤나무 숲 중 하나다.
우리는 경사가 너무 심하다고 해서 오른쪽 우회도로를 따라 걸어 내려갔다. 눈이 녹으면서 길이 질퍽거렸다. 약간 멀다. 수도원 건물은 이제 나무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왼쪽에 나무숲을 쳐다보며 돌아간다.
길이 아니지만 내리막길에 직선으로 질러 내려간다. 발걸음이 점점 빨라진다. 내리막길에서는 무릎이 약간 아파온다. 힘들게 내려가는 길, 힘이 다 빠질 무렵에야 평지 오솔길이 나오고 커다란 나무에 가려져 있던 우리의 숙소 성채가 나타난다.
드디어 론세스바에스에 도착한 것이다. 오후 4시 30분이다. 성채에는 호텔과 알베르게 그리고 대성당과 수녀원 등이 있다. 우리는 호텔에 짐을 풀었다. 숙소는 고급스럽고 고전틱 한 분위기로 참 좋다.
론세스바에스는 바스크어로는 오레아가(Orreaga)이고, ‘가시 골짜기’라는 뜻이다. 여전히 중세 분위기 속에 신비롭게 모습을 감추고 있다.
12세기 이래로 론세스바에스는 병 들었거나 건강하거나, 카톨릭교도거나 유태인이거나, 이교도이거나 이단자거나 방랑자거나, 모든 순례자들을 다 수용했다.
호텔에 붙어 있는 성모 마리아 대성당은 나바르의 산초왕의 명령으로 건립되었지만, 산초왕이 죽을 까지 봉헌되지 못했다. 이곳에는 14세기에 만들어진 아름다운 동상인 ‘론세스바에스의 성모 마리아’가 있다.
사를마뉴의 채스판‘으로 알려진, 에나멜과 은으로 만들어진 유물이 포함된 흥미로운 박물관도 있다. 1212년에 있었던 유명한 나바스 데 톨사 전투에서 무어인 들에게 패배했을 때 산초왕이 끊었던 쇠사슬이 이곳에 있다.
이 사슬은 나바르 정부의 문장에도 그려져 있다. 건너편 길 가에는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성령 예배당‘이 있다. 그 옆에 아주 작은 고딕 양식의 성 야고보 예배당이 있다.
여기엔 이바네타의 예배당에서 옮겨온 종이 있는데, 한 때는 이 종이 이바네타 산길에 자욱이 낀 안개 속에서 순례자들을 인도했었다. 옆에는 론세스바에스 전투와 778년 롤랑의 죽음을 기리는 기념비가 있다.
해발 950m 지점에 있는 마을에는거주하는 인구가 100명도 채 안된다. 유용하게 도움이 되는 투리스모(Turismo, 관광 안내소)는 카사 사비나 뒤에 있는 오래된 방앗간 안에 있다. 아가씨가 한 사람 나오고 있다. 나바르 주는 고립된 산간 지역이다.
이 지역은 특히 프랑스인들 때문에 파란 만장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나바르가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음에도 샤를마뉴의 군대는 팜플로나의 성벽을 부수었다.
이에대한 복수로 바스크인들은 론세스바에스에서 샤를마뉴 군의 후위를 학살했다. 이곳의 풍경은 외국 작가들의 글에도 생생하게 묘사되었다. 대표적인 이가 어네스트 헤밍웨이다. 그는 부르구에테와 팜플로나에 오랫동안 머물며 글을 썼다.
햇살 가득하고 서늘한 오후, 동네를 돌아보았다. 호텔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11유로다. 야채수프와 치킨 다리 하나가 나온다. 품위가 있고 분위기가 좋다. 식당 분위기가 더 고급스럽다. ’부엔 까미노‘ 좋은 순례되세요.라는 인사말을 배웠다.
집에 돌아갈 때 까지 사용할 말인 것 같다. 순례길의 첫날, 내가 느낀 것은 세상에 같은 날은 없다는 것이다. 만나게 되는 날이 늘 새로웠다. 내가 산 어제와 내가 살 오늘은 다르다는 것이다. 내가 만날 내일은 또 어떤 날이 펼쳐질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