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니...! 대전에 맛집이 없다고 한겨?
"오늘 대전서 아주 뜨거운 맛을 보여주겠노라!!"
아니 대전이 이런 오해를 받다니
우연히 알게 된 어느 번역사 블로그서 글쎄 '대전에 먹을 게 없다'라는 요지의 말을 듣고서
그리고 그 의견에 대한 대부분의 댓글이 다 '옳소 옳소'하는 걸 보면서 개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니, 대전에 맛집이 없다니
예전에 언젠가 계족산 오르다가 대구서 온 아저씨들이 했던
'대전아들이 싸가지가 없대이'
라는 말 들은 이후 다시 한 번 분개하고 있습니다.
말 한마디로 대전 사람들을 싸가지 없는 인간들로 만들고
또 다른 말 한마디로 대전을 제대로 된 맛집 하나 없는 동네로 만들고
이 역시 인터넷의 폐해 중 하나일 수 밖에 없지만
소양이 모자라는 이들이 자신의 의견을 공표하는 행위에 앞서
자신의 그 의견이 편견에 차 있거나 무지에 의한 소치임을
스스로 검증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일 겁니다.
그나마 어떤 이들은 그런 경솔한 행동과 말에 대해 비판 받으면 반성하기도 하지만
안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지 싶습니다.
저 번역사 양반은 어떤 태도를 보일지 궁금하네요
(그 블로그 글 화장품 얘기 빼놓고 왠만한 글은 다 읽어 봤는데 생각할 수 있는 힘은 있어 보였건만)
대전에 얼마나 많은 맛집들이 늘어서 있는데 그걸 모르다니 어떤 면에서는 가엾기도 하네요
인터넷서 들려오는 말 한마디에 이러쿵 저러쿵 답하는 일도 한심하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이번만큼은 한마디 해야겠습니다
길어져도 용서들 하시길
잘라 말하자면, 대전에는 맛있는 집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먼저 대전 구도심이라 할 수 있는 대전역과 구 충남도청 사이의
중동(중앙동), 정동, 선화동, 대흥동, 은행동 등에 걸쳐 유구한 역사를 가진 맛집들이 수없이 늘어서 있습니다.
그 대표적 존재가 대전역 앞에 있는 '한밭식당'입니다.
중앙시장 건너편 한약방 거리로 약 30미터쯤 들어가서, 아카데미 극장통과 교차되는 곳에 있습니다.
한밭식당의 대표주자는 설렁탕과 갈비탕, 그리고 여름에 잘 나가는 냉면(함흥식)입니다.
먹어는 봤나용?
대전역 앞에서 '60년을 이어온 전통'을 모른다고 해서 그걸 탓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저 그대가 모를 뿐 대전에는 그대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거기 있어온 맛집과 '라오푸'(老铺)가 정말 많다오
한밭식당 설렁탕(위아래 모두 한밭식당을 소개하는 어느 블로그에서 퍼왔음. 이하 대부분의 사진 동일하게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는 사진들)
대전에 살면서 한밭식당을 모른다면 그건 좀 안타까운 일이네요
대전의 역사를 전혀 모른다는 얘기일 수도 있으니까
하긴 일반적으로 깊이 있는 생각을 안 하고 살게 만드는 어떤 유행병과도 같은 것이
세상 모든 이들을 생각이 있는 듯 없는 듯 애매모호하게 보이는 좀비로 만들어 버린 오늘날
자신이 사는 곳에 대해 잘 모르고 또 자신이 잘 모른다는 걸 또 잘 모르고 해도
아는 척은 할 수 있는 세상이고 그리고 그와 엇비슷한 이들이 인터넷서 '옳소 옳소' 박수를 치면서 좋아라 할 때
좀비들이 옳은 세상이 되어 버리기도 하는 그런 세상인 듯해서 슬퍼집니다
이는 정말이지 좀비가 영상에서 인터넷으로 옮겨 가면서 생겨난 '좀비의 언어화'랄 수 있겠습니다
각설하고
대전역 주변의 대표적인 맛집 중 다른 하나가 '태화장'이라는 중국요리점입니다.
대전역을 등지고 오른쪽(지도상으로는 북쪽이 될 듯)으로 300미터 쯤(심리적인 거리) 되는 곳에
큰길가에서 조금 안으로 들어간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곳 역시 6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널찍한 전용 주차장을 갖추고 있기도 합니다.
태화장과 짬뽕
면을 기계면을 쓰는 게 아쉽긴 하지만, 이곳 짬뽕은 60년 역사에 걸맞는 걸작 요리입니다.
요즘 중국음식점들이 원가 낮추려고, 본래 짬뽕에 들어가던 재료들을 하나둘씩 빼면서
짬뽕다운 짬뽕(이름처럼 다양한 재료들이 들어가며, 재료들을 볶다가 해물 국물을 붓는 조리법의)을
보기 어렵게 되었지만, 이 태화장만큼은 정통 짬뽕 재료와 조리법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정통 짬뽕이라 함은, 그 뿌리를 같이하는 '나가사키 짬뽕'의 재료와 엇비슷한 것을 의미합니다.
다양하다 못해 잡스럽기까지 한 해물과 고기, 야채 재료들...때로는, 메추리 알에 균류인 목이버섯까지
한밭식당이나 태화장 주변에는 설렁탕집과 칼국수집들이 많고
그 중 상당수가 수십년의 역사(사오십년은 보통)를 가진 곳들입니다.
칼국수집이 특히 많은데 그 이유는 6.25 발발 이후 이북에서 내려오신 분들이
미군이 배급하는 밀가루를 가지고 칼국수를 만들어 팔기 시작한 데 그 뿌리가 있습니다.
물론 찐빵과 만두도 그렇습니다.
대전역 앞에 주황색 건물(구 대한통운 건물, 대전역 등지고 볼 때 오른쪽)이 있고
그 건너편에 역시 수십년 역사를 자랑하는 찐빵 만두집이 있습니다.
이북식 왕만두입니다. 가게 이름은 생각이 안납니다. 죄송...
번밥사의 노령화 및 노안화와 보조를 맞추어 제 머리도 노화되어 가는지라...
사진을 찾아보니 원래 이름이 안 써 있네요. 맛있기로 유명한 집들은 간혹 무명인 듯
기차시간에 맞춰 서둘러 길을 가다가도 금방 요기를 할 수 있는 찐빵
그대, 먹어는 본겨?
중앙동 인쇄거리 뒷골목에 있는 여러 칼국수집들도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그리고 저렴한 가격표를 달고 오랜 단골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쇄거리 주변 칼국수집 대표주자 중 하나인 신도칼국수
태화장 만큼 오래되진 않았지만 화교 출신 주인장이 수십년을 영업해 온
'희락반점'이란 곳이 예전 동양백화점(그 뒤로 '갤러리아 백화점', 현재는 '뉴코아 백화점'으로 바뀐 듯)
뒷편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희락반점 짜장면
희락반점에서도 짧지 않은 역사에 걸맞는 맛좋은 중국요리를 맛볼 수 있습니다.
이곳 짜장면은 색이 갈색이며 단 맛이 강한 게 특징입니다.
여기서는 주인장과 직원들이 서로 중국어로 이야기를 나누는 걸 듣게 될 수도 있습니다.
2년 전 쯤 오랜만에(약 14년 만에) 희락반점 짜장면 먹으러 갔더니
그 바로 옆에 다른 중국요리점이 생겼던데, 그 집도 맛이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두 중국요리점이 이웃해서 경쟁하는 게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더군요.
그 때문인지, 희락반점 짜장면 맛이 예전에 비하면 조금 처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더군다나 그 이웃집은 대부분의 메뉴가 희락반점보다 약 10-15퍼센트 쌉니다.
두부두루치기
희락반점 주변에도 걸출한 맛집들이 몇 곳 있습니다.
희락반점 건너편에 있는 고기집(역시 이름 기억 안 남)도 유명해서
평소 한적한 선화동이지만, 그 식당만은 늘 손님이 많습니다.
그리고, 희락반점에서 조금 위로 수십미터 되는 부근에 '광천식당'이 있는데
역시 수십년 전통을 자랑하는 두부두루치기 전문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20년도 더 전에 연극 공연을 마친 뒤 뒷풀이를 하고
만 스무살에 수십명의 밥값을 처음으로 제가 혼자 다 내봤던 곳이라 남다르게 기억되어 있습니다.
흔히 대전을 문화의 불모지라고도 하지만
그 오명 뒤에는 수많은 예술인들과 운동이 묵묵하면서도 치열하게 존재해 왔습니다.
1994년 2월에 지금도 있는 대전 대흥동 카톨릭회관에서 제가 극본을 쓰고 연출하고 출연까지 했던 연극
<미친 태양 그 아래 산이 타고있다>가 이틀간 공연된 적이 있습니다.
상업적으로는 실패했지만, 수개월간 연습해서 공연까지 해낸 것은 지금 생각해도 참 자랑스럽습니다.
제작비랄까 그 당시 정말 큰 돈이었던 2백여 만원 정도가 들었는데
그 대부분을 저 스스로 벌어 충당했었습니다.
저는 그 황무지와도 같은 곳에서 예술을 위해 목숨이라도 걸 듯한 문학청년이자 연극청년이었네요.
그 청년은 아직 제 속에 뽀작뽀작 살아있습니다.
대전 연극 문화의 성지 대흥동 카톨릭문화회관
(그 뒤에 대흥동 성당이 있고, 이 대흥동 성당 종소리를 울리는 양반은 종치는 일만 50년 이상을 하신 분)
선화동에서 볼 때 중앙로 건너편 대흥동 과거 중구청이 있던 곳 근처(중교통)에는
또다른 대전 중국요리집 지존 중 하나인 '인화영'이 있습니다.
이 곳도 역시 수십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옛스러운 맛의 짜장면과 짬뽕, 탕수육을 맛볼 수 있습니다.
중교통에는 대전 최고를 뛰어넘어 전국 최고라 해도 과장이 아닌 냉면집 '사리원면옥'이 있습니다.
사리원면옥도 이북 출신 실향민이 주인이며 그 냉면맛은 제게 있어서도 지구상 최고의 맛입니다.
이제까지 제가 먹어본 냉면들 중에서 견줄 만한 데가 있었다고 한다면 그건 북경 옥류관 정도네요.
중교통에는 '수라면옥'이라는 냉면과 갈비로 유명한(서구 쪽에 분점 있음) 식당도 있습니다.
여기 냉면은 사리원면옥 냉면의 레플리카로 봐도 무방합니다.
사리원면옥
수라면옥
사리원면옥 바로 앞골목으로 20미터 쯤 들어가면 동성삼계탕이 있습니다.
동성삼계탕 역시 수십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 가봤더니 여전히 저렴한 편에 옛날맛 그대로였습니다.
대전에서 삼계탕 하면 동성삼계탕 저리가라 할만큼 유명한 곳이 있는데
다름 아닌 용전사거리(대전 톨게이트 나와서 2-3킬로 직진하면 있는) '풍전삼계탕'입니다.
맛있냐고요?
저는 어릴 때 원래 닭고기 잘 안 먹었는데
우연히 한 번 풍전삼계탕서 닭고기를 먹고 나서 닭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사라졌더랬습니다.
그 건너편에는 풍전삼계탕의 아류 '풍년삼계탕'이 있는데 이 역시 이미 30년 쯤 역사가 되었겠네요.
동성삼계탕
용전사거리 풍전삼계탕
다시 구 도심으로 돌아와서
대전경찰서 옆에 있는 부대찌게집(이름 생각 안남)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맛좋기로 유명합니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맛난 부대찌게집이 은행동에도 하나 있었는데(으능정이거리 롯데리아 골목)
그게 아직 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역시 그 골목에 있는 '보통사람들'도 30년은 족히 된 맛집(분식)입니다.
'보통사람들'은 대전의 '이수락'이라 할 수 있는 곳입니다. 늘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었더랬습니다.
보통사람들
이제 구 도심에 있어 옛맛의 도가니라 할 수 있는 중앙시장 먹자골목입니다.
중앙시장의 역사는 이북 실향민들의 역사입니다.
본래 대전 대동에 있던 이북 출신 시장사람들이 오래전에 중앙시장으로 옮겨 온 거라고 합니다.
대전 중앙시장은 규모면에서 전국 최대급입니다.
중앙시장 먹자골목에는 중앙시장과 역사를 같이한 전통있는 국밥집들과 한식집이 즐비합니다.
그 중 절대 패자는 순대국밥과 이북식 야채 순대입니다.
대전 중앙시장에서는 이른바 찹쌀순대라는 건 거의 안 팝니다.
이 또한 이북 실향민들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눌린 돼지머리 고기, 보신탕(저는 안 먹습니다만),
소내장탕, 소머리국밥 등 전통적인 한국 음식이 주로 많습니다.
기름 자글자글한 그야말로 옛날식 후라이드 치킨도 있습니다.
국밥골목
다음은 대전의 국밥 지존 '청주해장국'입니다.
중앙시장을 벗어나 옛날 중고책 시장을 거쳐 큰길로 나서면(인동쪽) 다리가 있고(다리 이름도 까먹었음)
중앙시장 건너편으로 그 다리 옆에 청주해장국이 있었습니다.
이름은 '청주'지만 대전서 시작된 국밥집입니다.
여기는 원래 소고기해장국과 선지해장국 밖에 안 팔았는데 90년대 말에
프랜차이즈를 시작하면서 메뉴를 여러 개로 늘렸더군요.
여기 국밥은 늘 그리운 맛 중 하나입니다.
(지금은 본점이 아예 유성으로 이사간 듯 하네요)
다른 곳에 있는 청주해장국집은 어떤지(대전하고 다른 곳에 몇군데 분점이 있는 걸로 압니다.) 모르겠는데
제 기억으로는 여기 있는 청주해장국집은 공기밥 추가해도 돈이 더 안 붙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24시간 영업을 하는 게 특징이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늦게까지 일하시는 택시 기사분들에게 대인기였습니다.
또 술꾼들이 술마시다가 아쉬워서 들러 한그릇 먹고 가는 곳이었습니다.
과거의 대전역 가락국수
'술꾼들이 술마시다가' 라는 말에 생각나는 곳이 하나 더 있네요.
바로 그 이름도 유명한 대전역 가락국수입니다.
대전은 호남선과 경부선 충북선 열차가 만나는 철도 교통의 중심지인데
대전에 정차하는 시간이 비교적 깁니다.
그 짧은 시간에 대전역 플랫폼에서 파는 가락국수를 먹어 본 기억이 있으신 분들 계신지...
멸치 국물에 쑥 이파리 몇 잎 띄운 굵은 면발의 우동이었습니다.
맛?
죽여줬습니다. 말그대로 ... 미슐랭이니 개나발이니 하는 것들 다 그 앞에 무릎 꿇어야 합니다.
이제는 사라진 추억의 맛이 되어버렸지만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맛이 있다면 바로 그 대전역 가락국수였습니다.
지금은 아까 말한 찐빵 만두집 옆에 과거의 맛을 연상시키는 가락국수집이 하나 있습니다.
대전역 플랫폼에 라면인지 우동인지 지금도 있기는 한데 과거의 그 맛은 전혀 느낄 수 없습니다. 아쉽게도
대전 사람들은 밤에 술먹다가 대전역 입장권 사서 들어가 먹기도 했었습니다.
잠시 옆길로 새자면, 대전역 하면 또 생각나는 것이 논산훈련소 입소하기 전날 밤에 내려와서
대전역 광장에 퍼질러 앉아 술퍼마시다가
다음날 기차타고 연무대 가서 입대한 게 생각나는 양반들도 계실 겁니다.
'학생 놀다 가'라는 아줌마를 따라 뒷골목을 향했던 분들도 계실테고...
대전역 과거 사진(누군가 향수를 자극하기 위해 일부러 흑백 처리한 듯)
대전은 90년 전까지만 해도(직할시가 된 것이 90년 무렵) 동구와 중구 밖에 없었습니다.
그게 나중에 유성, 신탄진이나 흑석리 등 주변 지역이 대전시로 편입되면서
서구와 유성구, 대덕구가 생겨났습니다.
저는 주로 동구 중구에 살다가 1998년인가부터는 대덕구 읍내동에 삽니다.
1999년 말부터 2013년 초까지 대부분을 외국에서 지냈기 때문에 대덕구도 잘 모르는 편이고
서구나 유성구는 더 잘 모릅니다.
대화동 공업단지 쪽에서 본 읍내동과 계족산
읍내동은 스무살 무렵에 처음으로 계족산을 찾아 온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계족산 아래에 있는 이름 자체가 없는 식당에서 '닭도리탕'을 먹은 일이 있습니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시뻘건 색에 기름이 줄줄 흐르는 게 너무 징그러워서
닭도리탕을 못 먹었었는데, 이 이름없는 식당에서 먹은 닭도리탕은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이름도 역사도 미상이며, 확실한 건 수십년이 넘었고
순두부와 닭도리탕이 걸작이며 주로 단골 손님만 받을 뿐만 아니라 사람이 여럿 될 때는
반드시 전화로 예약을 해야 된다는 겁니다.
지난 번에 갔을 때, 벤츠 타고 다니는 주인 아주머니가 말하길
노는 게 싫어서 일하신다고 그러더군요
계족산 아랫자락에는 60년된 소갈비 집이 있기도 하고 역사가 얼만지도 모를 보리밥집이 있기도 합니다.
대덕구 신탄진시장에는 70년 된 순대국밥집 '시골순대'가 있습니다.
이 곳 순대와 순대국밥은 지금까지 먹어 본 것 중 최고입니다.
제 주변 사람들과 같이 몇 번 갔었는데 다들 그 맛을 인정했습니다.
신탄진에서 대청댐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수년 전부터 인기몰이를 하는 '대청게장'이 있습니다.
대청댐 가는 길 주변은 매운탕 집과 장어집이 유명합니다.
예전에는 좁은 산길을 운전하는 게 운치 있어서 드라이브 겸 곧잘 갔는데
최근에 갔더니 길 넓히는 공사중이라 어수선했습니다.
대전 게장집 중 특히 맛있었던 곳은 유성구에 있는 '금강산게장'이었네요.
게장 백반이 좀 가격이 세긴 한데 큼직한 암게로만 담근 게장이라서 정말 맛이 좋았습니다.
유성구 쪽은 산지가 많고 도토리가 많이 나오는 곳이어서 그런지 충남대 뒷쪽으로 도토리집이 여럿 있었습니다.
언젠가 가서 정말 맛있게 먹었던 도토리묵집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미 그 때도 상당히 오래된 식당이었네요.
도토리묵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바로 그 도토리묵 전문 식당에서 했던 식사 때문입니다.
계룡산쪽으로 가는 길가, 그리고 계룡산 입구에도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산채 요리 식당들이 많습니다.
보문산 기슭에는 오랜 맛집들과 막걸리집들이 몰려있습니다.
옛날에 막걸리가 머리 안 아프게 화학처리 되지 않던 시절...
어떤 감각 있는 할머니가 겨울에 막걸리를 주전자에다 데워서 줬을 때
그 놀라운 맛에 글라스로 퍼 마셔대다가 아주 단단히 골팼던 기억이 떠올라 몸서리쳐지네요.
산내에는 냇물이 흐르고 금산까지 이어지는 그 냇물을 따라 어죽집들이 있습니다.
금산까지 가면 수십년 된 어죽집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한 집 더 생각난 게 건양대 병원 뒷켠에 있는 생선구이식당의 생선구이정식이 기억나네요.
저렴한 가격에 아주 맛있는 집이었습니다.
저는 90년대에 매일 아버지차를 몰고 다니면서 대전과 대전 주변 구석구석을 다녔었습니다.
돈이 많았던 것도 아니지만 이런저런 모임 활동도 하고, 시간 여유가 많았으니 그럴 수 있었지 싶습니다.
그리고, 그 때는 정말 대전도 전체적으로 지금처럼 삶의 리듬이 빡빡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여유가 있었어요. 다들...
그리고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니(pc통신은 있었고, 오늘날 우리가 아는 개념의 인터넷은 마악 태동하던 시절)
사람들이 가상 공간을 유령처럼 부유하는 일도 드물었으니 맛있는 것들에 좀 더 시간과 돈을 투자했습니다.
직접 바람쐴 겸 일상적으로 차를 몰고 가기도 했고요. 기름값이 싸기도 했네요. 그 때는 또...
시절 자체가 지금보다 기름기나 비만이 없는 날씬한 시절이었습니다. 아 그리워라
지금 대전 신도심 지역인 서구 지역, 특히 둔산 지역은(과거에는 공군학교와 농지) 역사가 짧기도 하고
오랫동안 대전을 떠나있기도 했기 때문에 어떤 맛집이 있는지 잘 모릅니다.
둔산지역이 개발된지도 20여 년이 되었으니 제가 없던 그 동안 새로운 맛집들이 많이들 탄생했을 터입니다.
2013년 3월 이후에 여기저기 다녀보고 있긴 한데, 부페가 많고
과거에 드물던 이탈리안레스토랑이나 패밀리 레스토랑이 많다는 인상이 있습니다.
한가지 아쉽게도 대전에는 아직 정통 프랑스 레스토랑이 없습니다.
알리앙스 프랑스가 있고 거기 달린 까페가 대흥동에 있는 정도네요.
누군가 대전에서 정통 프랑스 레스토랑에 도전하는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흠 그대
자 이래도!
대전에 맛집이 없다고 생각하나요?
쥐뿔도 모르면서......
제가 소개한 맛집들은 대표적인 곳들이기도 하고
제 개인적인 추억이 함께 얽혀 있는 곳들입니다.
대전 맛집이 어디 저 위 몇몇 집들 뿐이겠습니까?
수많은 진정한 맛집들이 대전 사람들 마음마음마다 고이 간직되어 있을 겁니다.
그런 맛있고 그리운 맛집에 대한 추억이 없는 그대가 내게는 가여워 보이네요.
나는 한국과 대전에서 경험했던 몇가지 일들이 너무 싫어서
언젠가 돌아올 거라고는 어렴풋이 가늠하면서도 한국을 떠났었습니다.
돌아온 후에 '세월호'로 대표되는 나로 하여금 한국을 떠나게 만들었던 경험들을 다시 조금씩 경험하면서
또 언젠가 돌아올 걸 알면서 다시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편찮으신 아버지가 계시는 동안에는 안 그러겠지만 이미 마음이 굳어졌네요.
그런데, 오늘 맛집들에 대한 기억을 되새기면서 좋았던 시절도 그렇듯 많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긋지긋해질 때도 있었지만 다만 잊고 있었을 뿐 좋은 것들도 많았다는 걸 새삼스레 깨달았습니다.
아무튼, 오랜만에 위에 적은 맛집들을 떠올리면서 과거의 즐거웠던 시절과 추억도 함께 살아나는 시간이 되었네요.
처음에는 대전에 맛집이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생각에 쓰기 시작했고
자꾸 길어지다보니, 이렇게 내 시간을 들여 글을 쓸 필요가 있나 싶었는데
다 쓸 때 쯤 되니 마치 과거로 타임머신 타고 여행 다녀온 느낌입니다.
누군가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줬다기 보다는 제가 달콤한 맛을 본 듯하네요
그래서 이 말을 꼭 해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추신: 제 입맛에 관한 정보
저는 대단한 미식가는 아니지만 활동적으로 살아오면서 또 미주와 구주,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살면서
온갖 것들을 다 먹어봤네요. 말젖술을 환각 상태가 되도록 마셔 본 일도 있고 개구리에 자라, 몇몇 벌레와 애벌레 등도
생 말고기도, 그러고 보니, 소 뇌도 생으로 먹어본 일이 있네요. 다른 데도 아니고 도쿄 선술집서...
술 깨고 나서 친구하고, '우리가 어떻게 소 뇌를 먹었을까... 취하긴 취했나 봐'하는 얘기를 했던 게 기억납니다.
중국에 있을 때 악어 고기를 잘라서 파는 걸 보면서 먹어볼까 생각했지만 왠지 뱀하고 악어는 안 땡기더라구요.
맨 앞에 고양이 사진 붙여놓긴 했어도 저 보통 인간입니다. 먹는게 잡스럽긴 해도요
첫댓글 와!
엄청난 정보네요.
뽀뽀뽀 님 덕분에 대전에 갈 일이 있으면 입맛 살릴 수 있겠군요. ^^
네. 읍내동 오시면 저 '삼계탕'이라는 간판만 있는데서 닭도리탕 쏘겠습니다.
정말 대단하신 뽀뽀뽀님.
대전에 가면 꼭 보고 다니겠습니다~~
프라이에님, 지난 번 정모 때 가까이 앉았는데도 별로 대화를 못 나눠 아쉬웠네요.
저한테 노안이라면서, 프라이에님한테는 '왜케 젊어보이냐'고 호들갑을 떨던 여자분들 생각나네요.
@뽀뽀뽀 그럴리가요??? 뽀뽀뽀님이 훨씬 젊어 보이시죠!!! 다음번에 만나면 더 많은 얘기를 할수 있을거 같네요^^ 그나저나 대전에 갈일이 없어서요ㅠㅠ
이 분 하여간...!!! 대단하십니다.
근데 고양이 사진 어디서 구하셨어요? 제가 고양이를 싫어하는데요.. 이렇게 호감가는 고양이 얼굴은 처음입니다..ㅋㅋ
제 본인 사진임다
제가 호감가는 얼굴입니까?
고양이 사진은 인터넷서 뒤졌네요.
고양이 싫어했었는데 한 10여 년 전부터 좋아지더라고요.
맛이라는게 너무 객관적이라서 저도 블로그 때문에 맛집이라고 갔다가 실패를 거듭하고 있죠... 남에게 맛있는게 본인에게는 별로이고 반대일 경우가 많죠~~ 저도 대전에서 10년 넘게 살면서 맛집 많이 알고 있죠~~ 그리고 지역마다 맛에 대한 편견은 다 있죠... 전 개인적으로 대구에서 막창 빼고는 맛있게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훌리오님하고 '청주해장국' 갔었죠.
청주해장국 뼈다귀해장국은 못 먹어봤는데 다음에 가면 뼈다귀로 먹어봐야겠습니다.
야구 시즌도 다 가고... 이제 겨울은 무슨 일로 소일하실 계획이신가요?
한밭식당 옛날보다 손님이 많이 줄었더군요.. 저 대전에 오래 살았던 사람인데 이렇게 맛집들이 많은 줄 몰랐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