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눈물을 견디며 환한 세계가 다가온다”
배한봉 시집 『육탁』
책소개
“시간과 눈물을 견디며 환한 세계가 다가온다”
㈜여우난골의 2021년 시인수첩 시인선 54번으로 배한봉 시인의 시집
「육탁」이 출간됐다.
1998년 등단한 배한봉은 20년 넘는 동안 『흑조』(1998), 『우포늪 왁새』(2002), 『악기점』(2004), 『잠을 두드리는 물의 노래』(2006) 『주남지의 새들』(2017) 등의 시집을 상재했다. 간행된 시집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배한봉 시인이 우포늪과 주남지 등의 특수한 지역과 물과 새가 환기하는 보편적 의미를 기반으로 자신의 시적 개성을 구축했다는 점이다. 우포늪과 주남지라는 형식에 물과 새의 영혼이 깃들어 배한봉의 시 세계를 형성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인데, 이때 형식은 시인의 시적 개성에, 영혼은 보편적 의미에 대응할 것이다. 시인은 그동안 〈현대시작품상〉 〈소월시문학상〉 〈박인환문학상〉 등의 주요 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어 문단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중진이다.
시집『육탁』에는 노동의 삶에서 신성함을 찾고, 시적인 것을 공동체의 연대에서 찾으려는 시들이 여전히, 많이 나타난다. 이들의 매개는 삶의 고통과 인내이다. 배한봉은 세상이 주는 고통을 없앨 수는 없으나 옆의 사람을 신뢰하는 것으로 줄일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저자소개
배한봉
저자 : 배한봉
경남 함안에서 태어났다. 경희대 문학박사.
1998년 『현대시』 등단. 시집 『주남지의 새들』 『복사꽃 아래 천년: 소월시문학상 수상작품집』 『잠을 두드리는
물의 노래』 『악기점』 『우포늪 왁새』 『黑鳥』가 있다.
〈현대시작품상〉 〈소월시문학상〉 〈박인환문학상〉
〈김달진창원문학상〉 〈경남문학상〉 수상.
고등학교 문학교과서에 시 「우포늪 왁새」가 수록됐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목차
〈1부〉 아침
아침·13
포장마차 국숫집 주인의 셈법·14
알바 버스·16
늙은 구두 수선공의 기술·17
새는 언제나 맨발이다·20
발 없는 남자의 구두·22
북극성·24
덜컹거리는 얼굴·26
나는 벗긴다·28
각인·29
4월·30
대답이 없다·32
무꽃·34
푸른 것들의 조그마한 항구·36
냉이무침·38
〈2부〉 육탁
달리는 사람·41
비 맞는 무화과나무·42
울컥, 돼지 껍데기·44
육탁·46
염소·48
딱따구리·50
자본주의의 밤·52
별의 주검·54
모과꽃·56
그녀의 서가(書架)·58
인간 불평등 기원론·60
광합성·65
까마귀 떼처럼·66
악양루·68
아라 홍련·70
〈3부〉 정거장 없는 기차
멀미·75
속살·76
모서리의 무덤·78
무쇠칼·80
꽃 심는 사람·82
기타 배우기·86
교차점·88
정거장 없는 기차·90
흰 달·92
발바닥·94
제주 활화산·95
숨비기꽃 얼굴·98
성분제(成墳祭)·100
일족·102
염전 생각·104
〈4부〉 노인장대꽃
드높은 산·109
중산간마을 사람들·110
윤동주 생각·111
노인장대꽃·112
개의 정치적 입장·114
다주택자 나무·116
동백 낙관·118
잠수하는 날개·120
꽉 묶은 운동화 끈·122
청년 주대환·124
까치가 날아간다·126
상도여관·128
산벚나무의 가을·129
장마·130
이웃·131
왈칵, 한 덩어리 꽃·134
해설 | 김종훈(문학평론가)
“배한봉의 힘준 말: 인내의 연대를 위하여”
[예스24 제공]
출판사 서평
“시간과 눈물을 견디며 환한 세계가 다가온다”
배한봉 시집 『육탁』
㈜여우난골의 2021년 시인수첩 시인선 54번으로 배한봉 시인의 시집
『육탁』이 출간됐다.
1998년 등단한 배한봉은 20년 넘는 동안 『흑조』(1998), 『우포늪 왁새』(2002), 『악기점』(2004), 『잠을 두드리는 물의 노래』(2006) 『주남지의 새들』(2017) 등의 시집을 상재했다. 간행된 시집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배한봉 시인이 우포늪과 주남지 등의 특수한 지역과 물과 새가 환기하는 보편적 의미를 기반으로 자신의 시적 개성을 구축했다는 점이다. 우포늪과 주남지라는 형식에 물과 새의 영혼이 깃들어 배한봉의 시 세계를 형성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인데, 이때 형식은 시인의 시적 개성에, 영혼은 보편적 의미에 대응할 것이다. 시인은 그동안 〈현대시작품상〉 〈소월시문학상〉 〈박인환문학상〉 등의 주요 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어 문단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중진이다.
시집『육탁』에는 노동의 삶에서 신성함을 찾고, 시적인 것을 공동체의 연대에서 찾으려는 시들이 여전히, 많이 나타난다. 이들의 매개는 삶의 고통과 인내이다. 배한봉은 세상이 주는 고통을 없앨 수는 없으나 옆의 사람을 신뢰하는 것으로 줄일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새벽 어판장 어선에서 막 쏟아낸 고기들이 파닥파닥 바닥을 치고 있다.
육탁(肉鐸) 같다.
더 이상 칠 것 없어도 결코 치고 싶지 않은 생의 바닥
생애에서 제일 센 힘은 바닥을 칠 때 나온다.
나도 한 때 바닥을 친 뒤 바닥보다 더 깊고 어둔 바닥을 만난 적이 있다.
육탁을 치는 힘으로 살지 못했다는 것을 바닥 치면서 알았다.
도다리 광어 우럭들도 바다가 다 제 세상이었던 때 있었을 것이다.
내가 무덤 속 같은 검은 비닐봉지의 입을 열자
고기 눈 속으로 어판장 알전구 빛이 심해처럼 캄캄하게 스며들었다.
아직도 바다 냄새 싱싱한,
공포 앞에서도 아니 죽어서도 닫을 수 없는 작고 둥근 창문
늘 열려있어서 눈물 고일 시간도 없었으리라.
고이지 못한 그 시간들이 염분을 풀어 바닷물을 저토록 짜게 만들었으리라.
누군가를 오래 기다린 사람의 집 창문도 저렇게 늘 열려서 불빛을 흘릴 것이다.
지하도에서 역 대합실에서 칠 바닥도 없이 하얗게 소금에 절이는 악몽을 꾸다 잠깬
그의 작고 둥근 창문도 소금보다 눈부신 그 불빛 그리워할 것이다.
집에 도착하면 캄캄한 방문을 열고
나보다 손에 들린 검은 비닐봉지부터 마중할 새끼들 같은, 새끼들 눈빛 같은,
- 「육탁」 전문
그런데 ...(하략)
[예스24 제공]
출판사 서평 펼쳐보기
책속으로
육탁
새벽 어판장 어선에서 막 쏟아낸 고기들이 파닥파닥 바닥을 치고 있다.
육탁(肉鐸) 같다.
더 이상 칠 것 없어도 결코 치고 싶지 않은 생의 바닥
생애에서 제일 센 힘은 바닥을 칠 때 나온다.
나도 한 때 바닥을 친 뒤 바닥보다 더 깊고 어둔 바닥을 만난 적이 있다.
육탁을 치는 힘으로 살지 못했다는 것을 바닥 치면서 알았다.
도다리 광어 우럭들도 바다가 다 제 세상이었던 때 있었을 것이다.
내가 무덤 속 같은 검은 비닐봉지의 입을 열자
고기 눈 속으로 어판장 알전구 빛이 심해처럼 캄캄하게 스며들었다.
아직도 바다 냄새 싱싱한,
공포 앞에서도 아니 죽어서도 닫을 수 없는 작고 둥근 창문
늘 열려있어서 눈물 고일 시간도 없었으리라.
고이지 못한 그 시간들이 염분을 풀어 바닷물을 저토록 짜게 만들었으리라.
누군가를 오래 기다린 사람의 집 창문도 저렇게 늘 열려서 불빛을 흘릴 것이다.
지하도에서 역 대합실에서 칠 바닥도 없이 하얗게 소금에 절이는 악몽을 꾸다 잠깬
그의 작고 둥근 창문도 소금보다 눈부신 그 불빛 그리워할 것이다.
집에 도착하면 캄캄한 방문을 열고
나보다 손에 들린 검은 비닐봉지부터 마중할 새끼들 같은, 새끼들 눈빛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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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흐르는 물은 쉬지 않는다.
이제 막 바다에 닿는 강을 위해
먹빛 어둠 뒤에서
지구가 해를 밀어 올리고 있다.
너의 앙다문 입술과 너의
발등에서 태어나는 시간과 사랑과 눈물이
가 닿는 세계도 그러할 것이다.
오늘 하루치의 바람 잊지 않으려고
나뭇잎들이 음표를 던진다. 새가 하늘을 찢는다.
새카맣게 젖은 눈빛 꺾이던 골목에도
쿠렁쿠렁, 힘찬 강 열리고
푸른 햇발 일어서는 소리 들린다.
흐르는 물은 반드시 바다에 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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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
염소가 말뚝에 묶여
뱅뱅 돌고 있다. 풀도 먹지 않고 뱅뱅 돌기만 하는 염소가
울고 있다.
우는 염소를 바람이 톡톡 쳐본다. 우는 염소를 햇볕이 톡톡 쳐본다. 새까맣게 우는 염소를 내가 톡톡 다독여본다.
염소 주인은 외양간 서까래에 목매달고 죽은 사람.
조문을 하고 국밥을 말아먹고 소피를 보고,
우는 염소 앞에서 나는 돌 한 개를 주워 말뚝에 던져본다.
말뚝은 놀라지도 않고 아파하지도 않고 꼼짝하지도 않으면서 염소 목줄을 후려 당긴다.
자기 생의 말뚝을, 하도 화가 나서 앞도 뒤도 없이 원심력도 같이 뜯어 먹어버린 염소 주인.
뿔로 공중을 들이박을 줄도 모르고
세상 쪽으로 힘껏, 터질 때까지 팽팽히, 목줄 당겨볼 줄도 모르던 주인처럼 뱅뱅 제 자리 돌기만 하는 염소가
울고 있다. 환한 공중에 동글동글 새까만 울음을 누고 있다. --- 본문 중에서
[예스24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