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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깡에서 루터까지
L
라깡 Jacques Marie Lacan 1901-1981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149.(P.304)
프랑스 의사이며 정신분석가.
라깡은 1901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1981년(80살)에 파리에서 죽었다. 그는 1932년(31살)에 인격과 연관된 편집증 정신병에 관하여(De la psychose paranoïaque dans ses rapports avec la personnalité로 박사 학위 논문을 통과했다. 그는 10년 간 파리에 있는 생뜨-안(Saint-Anne) 병원에서 세미나를 가졌고, 그리고 ‘고등연구실천연구원’(EPHE)에서 강의를 하였고, [‘국제정신분석학회’에서 추방된 후에], 1964년(63살)에 자신의 정신분석학파를 세웠다. 그가 실질적으로 말로서 행했던 교육의 부분들은 1966년(65살)에 에크리(Ecrits, 1966)로 편집되었고, 1975년(74살) 이후로는 세미나(Séminaire)를 계속해서 출판하였다.
라깡의 구호(le mot de ralliement, 군호, 암호)는 “프로이트로 돌아가자”(Retour à Freud)였다. 그가 이론적으로 기여한 것은 상관 있는 두 가지 명제로 되어 있다. “무의식은 대타자(l'Autre)의 담론이다” 와 “무의식은 언어(language)처럼 구조되어 있다”이다. 이러한 기반 위에 그는 특히 세 개의 주제를 발전시켰다. 하나: 욕망은 대타자의 욕망이다. 둘: 각 인간적 존재(그 존재의 상징symbolique)가 진화하는 고유한 질서는, 완수되어야 할 빚(dette)으로서, 말투(parole)에 의해 정의된다. 셋: 욕망(le désir)은 삶의 동인(moteur), 즉 무의식의 초석(la pierre angulaire)이며, 그 욕망은 거세의 감정 덕분에 존속할 수 있다. (43TLJ)
라슐리에 Jules Lachelier 1832-1918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149.(P.304)
프랑스 철학자.
라슐리에는 1832년 파리 근교의 퐁텐블로(Fontainebleau)에서 태어나 1918년(86살) 그곳에서 죽었다.
그는 1854년(22살) 문학으로 또 1863년(31살)에 철학으로 교수 자격을 통과하였고, 1871년(39살)에 문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864에서 1875년(43살)까지 파리고등사범학교(ENS)에서 교수로 지냈다. 그는 꾸쟁(Victor Cousin, 1792-1867)의 독단적인 고등교육 대신에 인격적이고 비판적 반성으로 대체하였다. 우선 그의 성찰은 과학적 인식에 기초한 것으로 귀납법의 기초(Du fondement de l'induction, 1871)을 내놓았다. 그는 귀납법의 가치를 설명하기 위하여 우리의 사유 법칙과 세계의 구조 사이에서 기원적 상응관계를 가정하는 필연성을 발견했다. 연역법 때문에, 우리의 정신은 사실들의 우연성(contingence)들로부터 법칙들의 필연성으로 이행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법칙들은 우리들 정신의 법칙들임과 동시에 자연의 법칙들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추론들과 사물의 본성들 사이에 평행론이 성립할 것이다. 그의 유명한 논문으로 「심리학과 형이상학(Psychologie et Métaphysique 1885)」은 인간 사유의 토대에 대한 깊은 반성이다. 라슐리에의 영향은 반성철학이라는 관점과 프랑스에서 칸트 연구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라뇨(Jules Lagneau 1851-1894), 앙랭(Alain, 1868-1951), 알랙상드르(Michel Alexandre, 1888-1952) 등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43TLJ)
라뇨 Jules Lagneau 1851-1894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149.(P.304)
프랑스 철학자이다.
라뇨는 1851년 로렌(Lorraine)지방의 모젤(Moselle 57)에서 태어나 1894년(43살)에 파리에서 죽었다. 그는 반성적 분석[내성법]의 방법을 권하였다. 그 방법은 개인적 의식의 심리학적 사실들로부터 출발하여 그 사실들의 보편적 의미를 구별해 내는 것이다. [대상의 분석이 아니라 반성적 분석을 통하여, 일반적 의미를 구별해 내는 것이 들뢰즈의 개념 생성론이다.] 그의 저술은 유고본으로서 유명강의(Célèbres Leçons)에 들어있다. 사람들은 그 중에서 특히 「명증과 확신에 관한 강의(Cours sur l'évidence et la certitude」, 「판단에 관한 강의(Cours sur le jugement)」등이 있고, 정점에 이르는 강의는 「신에 관한 강의(Cours sur Dieu)」이다. 이 마지막 작품에서 그는 스피노자의 범신론과 합리주의를 데카르트에서 이어받은 인간 자유의 생생한 감정을 조화시키고자 애썼다. 알랭은(Alain, 1868-1951)은 1925년에 쥘라뇨에 관한 추억담(Souvenirs concernant Jules Lagneau, 1925)을 썼다. (43TLJ).
랄랑드 André Lalande 1867-1963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p.149-150.(P.304)
프랑스 철학자이다.
랄랑드는 1867년 부르고뉴(Bourgogne)지방의 꼬트 도르(Côte-d'Or 21) 주의 디종(Dijon)에서 태어나, 1963년(96살)에 일드프랑스(Ile-de-France)지방의 오트-드-센(Hauts-de-Seine 70)의 아스니에르(Asnières)에서 죽었다.
그는 철학 큰 사전, 즉 철학 비판적이고 기술적인 어휘집(Vocabulaire technique et critique de la philosophie, 1902-1903)을 만드는데 중요한 편집자였다. 그는 지적 도덕적 사회적 진보의 본질적 특성이 인간들 사이에 유사성들(similitudes)의 증가에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는 오랫동안 고전적으로 남아 있었던 “구성된 이성”과 “구성하는 이성” 사이를 구별하는 작가이다. 전자는 공통으로 인정된 사유와 행위의 원리들이며 시기에 따라 변한다. 후자는 변하지 않은 도덕적 판단이며, 이 판단은 도덕적 자질을 규정하며, 또한 한 시대의 진화물들 중에 획득된 것을 규정한다.
그의 작품으로는 가치 판단의 심리학(La Psychologie des jugements de valeur 1928), 귀납법과 실험의 이론(Les Théories de l'induction et de l'expérimentation (1929)
진화론의 착각(Les Illusion évolutionniste 1930), 이성과 규범(La Raison et les normes, essai sur le principe et sur la logique des jugements de valeur, 1948) 등이 있다. (43TLJ)
라마르크(Chevalier de Lamarck, Jean-Baptiste-Pierre Antoine de Monet 1744-1829)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150.(P.304) 철인0907라마르
프랑스 자연학자(naturaliste). 1744년에 피카르디(Picardi) 지방 솜(Somme)주의 바장땡르뻐띠(Basentin-le-Petit)에서 태어나 1829년(85살)에 파리에서 죽었다.
그는 변형주의(le transformisme)의 아버지이며, 진화를 설명하는 이론을 제안했다. 파리의 자연사박물관(그는 여기서 무척추동물 책임자였다)에 보관되어 있는 하등동물의 집단들을 분류하는데 따르는 어려움과 이 종들을 따로 떼 놓기 어려운 점 등 때문에, 그는 종들이 하나 하나씩 창조되지 않았고 오히려 어떤 것은 다른 것의 후손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이 종들은, 동물들의 경우에 새로운 습관을 조장하면서, 환경의 변형과 더불어 스스로 변형되었다. [자연 환경의 변화에 따른 자신 스스로를 변형시키며 살아왔다는 것은 유물론적 견해인데 말이다. 어떤 종도 자연을 변화시킬 수 없으니, 종들은, 인간종도 역시, 자연(본성)의 발현에 따라 변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런 변화는 새로운 작용들(nouveaux actes)을 끌어내고, 이 작용들은 기관의 발전전에서 변화를 끌어낸다. 라마르크는 기린의 예를 때문에 그의 이론을 유명하게 했다. 기린은 나무 잎이 뜯어먹어야 한다. 이 습관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다리들은 마치 목 만큼이나 길어진다. 그리고 기린은 높이 6미터까지 나뭇잎을 뜯어 먹을 수 있다.
라마르크의 이론은 논의해야할 두 전제를 게시하였다. 1. 사용과 불용을 전제한다. 이 가설에 따르면, 필요가 기관을 만든다는 것이다. 2. 환경 조건들의 영향으로 획득형질 유전을 전제한다. 참조: 다윈니즘
참조: 프랑스 식물상(La flore française, 1778), 무척추동물의 체계(Système des animaux sans vertèbres, 1801), 종의 조직화의 탐구(Recherches sur l'organisation des espèces 1802), 동물철학(Philosophie zoologique 1809), 무척추동물의 자연사(Histoire naturelle des animaux sans vertèbres, 1815-1822). (42RMF)
람네 Félicité Robert de La Mennais ou Lammenais 1782-1854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50.(P.304)
프랑스 작가 사상가이다.
라메네는 1782년 프랑스 브르따뉴(Bretagne)지방 꼬드 뒤 노르(Côtes-du-Nord 22)주의 생말로(Saint-Malo)에서 태어나, 1854년 파리에서 죽었다.
그는 생말로의 선주의 아들로 태어나, 박식한 삼촌의 손에 자랐으며, 맏형의 종교적 영향을 입었다. 라 셰스네(La Chesnaye)의 소유지에서 오래 은거한 후에 자신의 종교적 소명을 드러내기를 결심했고, 자신의 확신을 고집스럽게 강조했다. 그의 첫 번째 저작은 18세기 프랑스 교회 상태와 현실적 상황에 관한 반성(Réflexions sur l'état de l'Eglise de France pendant le XVIIIé siècle et sur sa situation actuelle 1808)(26살)은 로마 교황청에 우호적 신학의 경향을 표시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을 교황지상주의(ultramontanisme)이라 한다. 그는 프랑스 제1제국[1804년 나폴레옹 취임]의 경찰의 추궁을 받았고, [1816년 3월에서 6월](34살) 100일 천하 동안에는 게르네지(Guernesey)로 추방되었다. 그러나 그의 종교 분야에서 무관심에 관한 시론(Essai sur l'indifférence en matière de religion, 1817-1823)은 그를 갑작스럽게 유명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 정치적 사회적 질서에 연관된 종교에 대하여(De la religion considérée dans ses rapports avec l'ordre politique et social, 1825)(43살)를 썼는데, 이 작품에서 그는 카톨릭교에게 행위의 전체적 자유를 요구했고, 그리고 처음으로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주장했다. 그의 이런 사상은 1832년(50살)과 1834년에 교황으로부터 파문을 당했다. 그 때에도 그는 한 신자의 이야기(Paroles d'un croyant, 1834)와 인민의 책(Livre du peuple, 1838)을 썼다. 이 후자의 책에서 그는 자유주의 환경에 영향을 주게될 카톨릭 감정(sentimentalité)을 표현하였다.
그가 죽었을 때, 시민장(市民葬)은 민중의 공간에서 행한 역할이 얼마나 그를 큰 인물로 여긴 것인지를 알게 했다. (43TMB)
라메트리 Julien Offroy de La Mettrie, 1709-1751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50.(P.304)
프랑스 의사이며 유물론 철학자이다.
라메트리는 1709년 프랑스 브르따뉴(Bretagne)지방 꼬드 뒤 노르(Côtes-du-Nord 22)주의 생말로(Saint-Malo)에서 태어나, 1751년(42살)에 프러시아의 베를린에서 죽었다.
그는 프러시아의 프레데릭 2세(Frédéric II)의 친구였다. 그는 인간에게 데카르트의 동물기계이론을 적용했다. 그의 작품으로는 인간기계론(Homme-machine 1748), 인간식물론(Homme-plante 1750), 기계보다 더한 동물(Animaux plus que machines 1750), 즐기는 예술(Art de jouir 1751), 형이상학적 비너스(Vénus métaphysique, 1752). [나로서는 이 마지막 작품이 흥미있다. 아마도 루크레티우스의 영향일 것인데, 그 당시 루크레티우스 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의 완본이 없었는데 말이다.] (43TMB)
라모트 르 베이예 François de La Mothe Le Vayer 1588-1672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50.(P.304)
프랑스 작가이며 철학자이다.
라모트 르 베이예는 1588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1672년(84살)에 같은 곳에서 죽었다. 그는 네 대화록(Quatre dialogues), 그리고 다섯 대화록(Cinq dialolgues faits a l'imitation des Anciens 1630-1631)을 내면서 크리스트교 회의론(scepticisme chrétien)을 전개하고자 시도했다. 리슐리외(Richelieu 1585-1642)의 암시를 받아서, 그는 이교도의 덕성(Vertu des païen 1641)(53살 때) 속에서 쟝세니즘(jansenisme)을 공격하였다. 그는 1639년(51살)에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다. (43TMB) [프랑스 아카데미를 만든 것은 리슐리외이니깐, 그의 부탁으로 쟝세니즘에 대한 공격의 글을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언어 (le) languag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51.(P.304)
사유와 감정을 소통하는 수단이다.
사람들은 말투(parole, 빠롤)를 사용하는 것을 함축하는 “언어”개념을, (프랑스 말씀(laugue francais) 또는 독일어 말씀(langue allemande)이라 할 때) “맘씀”(langue, 랑그)의 개념과 구별한다. 랑그(말)은 보다 정확히 말하면 언어의 객관적 토대를 구성하는 기호들의 체계를 지칭한다. 사람들은 동물언어(lanuage animal)를 말하기도 하는데, 1923년에 프리쉬(Karl von Frisch 1886-1982)에 따르면, 꿀벌이 벌통에 되돌아와 8자의 춤의 형식을 실행하는데, 그 춤은 그 꿀벌이 어떤 장소에서 발견한 단 것(nactar)이 있는 방향, 거리, 집중(concentration 농도)을 지적한다고 한다. 이러한 것은 필요에 따라 직접적으로 연결된 행위 언어이다. 이 언어는 인간언어(langage humaine)와 대립된다. 인간언어는 미래를 향한 상상과 표상을 함축하고 있는 지향적이다. 이 언어는 사회적 획득물(l'aquisition sociale))이다. 자연언어의 관념, 즉 자발적 표현의 관념 자체는 문제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문화들에 따라 몸짓은 다양하다. 일본사람들에서 미소는 화(colère)를 표현한다. 일반적으로 언어습득(l'aquisition du langage)은 4-5개월에 목구멍의 꾸르륵 소리(le gargouillement)에서 시작하여 10개월경에는 처음으로 3-4개의 단어가 나타나게되고, 그리고 5살이 되면, 3천 단어를 알게된다.
언어 장애(les troubles du language)는 일시적인 뇌배엽의 타격에서 또는 뇌의 전두엽 제3회전돌기의 손상에서 올 수 있다. 사람들은 언어 발음의 기억의 상실에서 오는 실어증, 발음 장애로서 실성증(失聲症, anarthrie ) 읽기 장애로서 실독증(alexie) 등을 구별한다. (43TMJ)
랑게 Friedrich Albert Lange 1828-1866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51.(P.304)
독일 철학자. [마르부크 학파]
랑게는 1828년에 노르트라인-베스스팔렌(Nordrhein-Westfalen)주의 솔리겐(Solingen)도시 가까이 발트(Wald)에서 태어나서 1866년(38살)에 헤센(Hessen)주의 마르부르크(Marburg)에서 죽었다. 그는 유물론의 역사(Geschichte des Materialismus und Kritik seiner Bedeutung in der Gegenwart, 1866를 썼다. (43TMJ)
노자(老子) Lao-tseu ou Lao-tan 기원전 6세기-기원전 5세기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51.(P.304)
기원전 6세기에서 5세기에 살았다고 전해지는 중국 철학자.
사람들은 노자(老子)를 전설들을 통해서 알고 있을 뿐이다. 주나라 궁정의 문서 보관직에 있다가 그 시대의 퇴폐의 분위기에 진저리를 내고, 서쪽으로 떠났다고 한다. 왕국의 국경을 넘으면서, 그는 사라지기 전에 수문장에게 도덕경(Taotö king)을 받아쓰게 했다고 한다. 도가학파 사람들은 노자가 인도로 떠났고, 거기서 그의 학설은 불교가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도덕경은 사물의 원리, 진리의 “길”(la voie), 인간의 운명을 다룬 저술로서 소개되고 있다. (43TMJ)
라 로슈푸꼬 (duc de) La Rochefoucauld, François VI. 1613-1680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51.(P.304)
프랑스 도덕론자.
라 로슈푸꼬는 1613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1680(67살)에 파리에서 죽었다.
그는 그의 아버지 프랑스와 5세(François V -1650)가 죽을 때까지는 마르시약 왕자(prince de Marcillac)로 직위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17세기 귀족정의 거의 완전한 대표자이며, 그의 생애는 프롱드난(La Fronde, 1648-1653) 시기에 음모와 문학 살롱의 출입 사이에서 골고루 활동하였다. 그는 1662년(49살)에 첫 작품 회상록(Mémoires contenant les brigues pour le gouvernment à la mort de Louis XIII)을 썼으며, 그를 유명하게 한 것은 성찰과 도덕 잠언집(Réflexion ou Sentences et Maxime morales de 1664인데 이것은 1665년, 1666년, 1671년, 1675년, 1678년 계속해서 재편집되었다. 이 책에서 그는 인간혐오에 대하여 그리고 인간의 몰염치한 것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표현하였다. 이 저자는 모든 인간의 행위 뒤에 있는 개인적 이익의 동기들을 발견하고자 애썼다. 마담 사블레(Sablé 1598-1678)의 영향을 이어서 마담 라파이에트(La Fayette, 1634-1693)의 영향을 입었으며, 이 영향은 그의 잠언들의 어떤 부분들이 너무 절대적으로 치우치지 않게 하는 것이 되었다.
쟝세니즘의 사상가이기도 라 로슈푸꼬는 또한 언어의 예술가이기도 하다. 그의 성찰과 잠언집의 간결한 문체는 그의 예술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43UKA)
라스크 Emil Lask 1875-1915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51.(P.304)
[오스트리아 출신] 독일 철학자.
라스크는 1875년 오스트리아 바도비스(Wadowice)에서 태어나, 1915년(40살)에 러시아 국경의 카르파테스(Carpates)에서 죽었다. 그는 프라이부르크 대학 교수를 거쳐서, 1910년(35살)에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그의 철학적 반성은 신칸트주의를 넘어서서 인식의 형이상학을 세우고자하는 시도였다. 그의 작품은 결국에는 칸트의 비판주의와 후설 현상학의 직관주의 사이의 종합을 제시한다. 그는 하이데거의 교수이기도 하였다. 그의 전체작품인 전집(Gesammelten Schriften, 1923)에는 피히테 관념론과 역사(Fichtes Idealismus und die Geschichte 1902), 법철학(Rechtsphilosophie 1905), 철학의 논리와 카테고리 이론(Die Logik der Philosophie und die Kategorienlehre 1911), 판단 이론(Die Lehre vom Urteil, 1912) 등이 있다. (43UKA)
라바터 Johann Caspar Lavater 1741-1801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p. 151-152.(P.304)
스위스의 철학자, 시인, 연설가, 프로테스탄트 신학자이다.
라바타는 1741년 스위스 쮜리히(Zurich)에서 태어나 1801년(60살)에 그곳에서 죽었다. 그는 1772년에 발표한 논문 용모의 연구 기술(Art d'étudier la physionomie) 즉 “관상학”(physiognomonie)이며, 여기서 그는 인간의 성격과 [인식, 지적]능력(faculté)를 연구할 것을 제안하면서, 머리의 구조에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생기있고 활동적인 얼굴의 역할(le jeu vivant et mobile du visage)에 따라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머리의 구조에 따른 연구[골상학]는 뇌의 지역화(localisations cérébrales)이론의 진실한 선구자로서 갈(Franz Joseph Gall, 1758-1828)이 있다. (43UKA)
르페브르 Henri Lefebvre 1905-1991 (fr.Wiki 1901-1991)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52.(P.304)
프랑스 철학자 사회학자.
르페브르는 1901년 아끼텐(Aquitaine)지방의 랑드(Landes 40)주 아제모(Hagetmau)에서 태어나, 1991년(90살)에 아끼텐(Aquitaine)지방 피레네 아틀란티끄(Pyrenées-Atlantiques 64)의 나바랑스(Navarrenx)에서 죽었다.
그는 초기에 프랑스 초현실주의 운동에 자주 참여했다. 그리고 1930년에 철학교수직에 들어갔다. 그는 1942년 저항운동에 가담하였다. 문학박사학위를 하고서, 1949년 (CNRS) 연구소 소장이 되었다. [1962년] 스트라스부르 대학의 사회학교수를 거쳐서, [1965-1968] 파리10대학 낭떼르에서 교수를 했다. [68운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1928년(27살)부터 공산주의 맑스주의에 가담하였으나, [스탈린주의의 거부로] 1958년(57살)에 당에서 추방당했다. 형식논리와 변증법적 논리(Logique formelle et Logique dialectique, 1947)에서 변증법적 유물론에 대한 그의 반성, 일상생활의 비판(Critique de la vie quotidienne, I. 1947, II. 1962)([III. 1981])에서 동시대 맑시즘의 주요 문제들에 관한 그의 반성 등은 “일상적 삶”의 현실적 연관들과 일상적 삶을 동반하는 소외의 수준들에 대해 깊이있게 연구하기에 이른다. 그는 욕구들과 욕망들의 사회학을 발전시켰다. 그의 진행방식은 “가능성들”의 평가로부터 시작하여 역사를 과학적 정교화 방향으로 재구성하는 것이거나 또는 행동에 변화를 주기 위하여 행동의 의지들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의 작품으로는 맑스의 사회학(Sociology of Marx, 1968), 낭떼르의 정상에 난입(L'Irruption de Nanterre au sommet, 1968), 전원에서 도시도(Du rural à l'urbain, 1970), 국가에 대하여(De l'Etat, 4권 1976-1978) 등이 있다. [근대성에서 근대주의로(De la modernité au modernisme: pour une metaphilosophie du quotidien, 1981)도 있다.] (43ULJ)
적법성 (la) légalité - 합법성 légitimité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52.(P.304)
법의 처분들에 부합하는 것의 특성들을 말한다.
적법성(la légalité)은 직접적으로 사회적 법률에 호소하는 것이다. 사회적 법이란 도덕법에 대치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소포클레스의 비극에서 안티고네(Antigone)는 자기 오빠의 무덤을 만드는 것이 합법적(légitime, 도덕법)이라 판단하나, 국가의 법에 위반되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국민을 배반했을 때, 합법성(légitimité, 도덕법)은 적법성(la légalité 국가법)에 대립될 수 있다. (43ULJ)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 철인0605라이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52.(P.304)
라이프니츠는 독일 철학자 수학자로서 1646년 라이프찌히(Leibzig)에서 태어나서, 1716년 하노바(Harnovre)에서 몰했다.
그는 조숙한 천재였다 15세에 그는 이미 스콜라철학에 입문하였고, 라틴과 고전 그리스문학을 읽었다. 예나(Iéna)에서 수학을 공부하러 가서, 거기서 미분의 원리를 맛보게 된다. 그리고 알트도르프(Altdorf)에 가서, 거기서 법률학을 공부하였다. 그의 생애는 철학적 작품뿐만 아니라 수학적 작품들로 가득하고, [법학] 또한 정치적 활동에 깊이 관여하였다.
[30년전쟁(querre trente ans 1618-1648),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이 성립되어 30년간의 종교전쟁은 종지부를 찍었다.]
1672년 그는 파리로 갔으며, 루이 14세에게 이집트를 정복하게 하려고 애썼다. 1678년 신성로마제국(Heiliges Römisches Reich, 962-1808)에서 제후들의 권리를 지지하였고, 러시아의 표트르 1세(Pyotr I, Alexeïevitch, Pierre le Grand 1672-1725, 러시아 로마노프왕조 제4대의 황제, 재위 1682-1725)에게 제국의 인민들에게 서구 문화를 도입하기위한 계획서를 제출하였다. 또한 그는 많은 외교 협상에 말려들었다.
그의 수학적 발견은 그 자신의 철학의 형식을 규정하였다.
1684년 무한대와 무한소 규정을 위한 새로운 방법(Nova metodus pro maximis et minimis, Nouvelle Méthode pour la détermination des maxima et des minima)은 무한소 계산의 원리를 알렸고 [미분과 적분], 운동과학 즉 역동론(dynamique) [동력학과 가속도운동]을 정초하였다. 라이프니츠는 우리가 지각하는 운동이 정신적[에너지 energie] 본성이 힘을 표현하는 것이고, 우리는 운동에 관한 반성을 통하여 형이상학적 실재성에 입문할 수 있고, 또 우주 속에 신의 현전에 입문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1864년 인식, 진리 및 관념에 관한 성찰(Meditationes de cognitatione, veritate et ideis / Méditations sur la connaisance, la vérité et les idéas)을 썼으며, 여기서 그는 자신의 철학과 데카르트 철학을 구별하고 있다.
1701에서 1709까지 작업하고 그의 사후 1765년에 출간된 신 인간오성론(Nouveaux essais sur l'entendement humain)이 있으며, 여기서 그는 인식이론을 제시한다.
1710년 변신론(Essaie de théodicée sur la bonté de Dieu, la liberté de l'homme et l'origine du mal)에서 그는 형이상학적 낙관론을 전개하며, 1714년 쓴 단자론(Principe de la philosophie ou Monadologie, 1714, pub. 1840)은 우주에 관한 개념 일반들을 제시한다. (39PLA)
레닌주의 Léninism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53.(P.304)
레닌(Vladimir Il'ich Ulyanov, dit Lenin, 1870-1924)의 이론 전체를 이른다.
그는 맑스(Karl Marx 1818-1883)의 이론을 완성하였다. 맑스에 따르면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강하게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에서 우선 도래하게 된다. 레닌은 반대로 소비에트와 중국과 같은 저발전 된 나라나 농업이 지배적인 나라에서 사회주의 탄생의 이유를 제시했다.
레닌은 맑스의 테제를 확장하였다. 그는 생산수단의 발전에 부여해야하는 우선성을, 또 자본주의 몰락으로 가야만 하는 내적 모순들을, 또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과잉생산의 위기가 오는 주기를 밝힐 수 없음을, 강조하였다. 그는 좌익주의: 공산주의 소아병(Le Gauchisme, maladie infantile du communisme, 1920)에서 혁명의 전술(tactique), 프롤레타리아 정당의 자아비판의 필연성을 제시한다. 왜냐하면 그 프롤레타리아들은 이론적 입장의 파악과 최근 사실들의 진화 사이에 조화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레닌에 따르면 맑스주의는 항상 실재주의[현실주의?]의 학설(la doctrine réaliste) 이어야 한다. 1917년(레닌 47살) 10월 [서력 11월]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으로 레닌은 권력을 잡았다. 그 권력을 잡고서야 그는 이론(théories)과 실재(réalités) 사이에 대치의 경우를 발견하게 된다.
1924년(54살)에 죽은 레닌의 맑스주의는 스탈린(Stalin, 1879-1953)의 저작이나 마오쩌뚱(毛澤東 모택동, 1893-1976)의 연구의 대상이 된다. (43MLJ)
르끼에 Jules Lequier 1814-1862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53.(P.304)
프랑스 철학자이다.
르끼에는 1814년 브르타뉴(Bretagne)지방의 꼬뜨 다르모르(Côtes-d'Armor 22)주의 깡땅(Quintin)에서 태어나서 1862년(48살) 같은 지방 생 브리윅(Saint Brieuc)가까이 있는 플레랑(Plerin)에서 죽었다.
에꼴 폴리테크니끄 출신이다. 그는 자기 자서전을 썼다. 그의 유고 작품으로 1865년에 제일 진리의 탐구(Recherche d'une première vérité, 1865)이 나왔다.
과학과 자유의 연대, 즉 과학의 제거 없이 자유의지(libre-arbitre)의 제거의 불가능성을 주장했다. 왜냐하면, 자유의지란 확실함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이 그의 주제였으며, 르끼에를 프랑스 신비판주의(néo-criticisme)의 선구자들 중의 한사람으로 만들었다. (43UMG)
르화 Edouard Le Roy 1870-1954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53.(P.304)
프랑스 철학자, 수학자이다.
르화는 1870년 파리에서 태어나, 1954년(84살)에 파리에서 죽었다.
그는 베르그송의 철학에 깊은 영향을 입었다. [그는 베르그송 철학을 옹호한 첫 번째 작품을 낸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는 새로운 철학: 앙리 베르그송(Une philosophie nouvelle: Henri Bergson, 1912, 인간기원과 지성의 진화 (Origines humaines et l'évolution de l'intelligence, 1928), 신의 문제(Problème de Dieu, 1929), 종교문제 연구 입문(Intoduction à l'étude du problème religieux, 1944) 등을 썼다. 1945년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다. (43UMG)
르 센 René Le Senne 1882-1954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53.(P.304)
프랑스 유심론 철학자.
르 센은 1882년 오뜨 노르망디(Haute-Normandie)지방 센 마리띰(Seine-Maritime 76)주의 엘베프(Elbeuf)에서 태어나서 1954년(62살)에 파리에서 죽었다.
그는 내성적 분석에 근거한 성격학(caractérologie)의 저자이다. 그의 작품으로 철학입문(Introduction à la philosophie 1925), 의무(Devoir 1930, 거짓말과 성격(Mensonge et le caractère 1930), 장애물와 가치(Obstacle et valeur 1934), 도덕일반론(Traité de morale générale 1943), 성격론(Traité de caractérologie 1949) 등이 있다.(43UMG)
레싱 Gotthold Ephraim Lessing 1729-1781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53.(P.304)
레싱은 독일 작가이자 철학자이다. 그는 1729년 작센(Sachsen)주의 카멘쯔(Kamenz)에서 태어나 1781년(53살)에 니더작센(Niedersachsen)주의 브룬슈비크(Brunswick)에서 죽었다.
그는 독일 낭만주의와 합리주의의 조정자의 역할을 하였다. 역사에서 그의 도덕이론은 인류의 도덕적 진보를 믿는 신앙 위에 근거하고 있으며, 1780년에 나온 류적 인간의 교육(Die Erzeihung des Menschengeschlechts, Education du genre humain, 1780)에 표현되어 있으며, 그의 사상은 피히테 철학에 깊은 영감을 불어넣었다. (42LKG)
영국에 관한 철학적 편지 Lettres philosophiques sur l'Angleterre ou Lettres anglaises 1743.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53.(P.304)
볼테르가 쓴 글이다. 25편의 글이며, 이 글들은 작가가 종교, 정부, 상업, 철학, 연극, 글쟁이들 관하여 영국에서 관찰했던 것을 보고하고 있다. 이 생생한 보고서는 볼테르의 모든 철학적 관념들의 씨앗들을 지니고 있다. 그 관념들이란 양심의 자유(la liberté de conscience), 정치적 평등, 신앙과 이성의 분리, 실험적 방법, 학문의 자유 등이다. 그의 작품은 수거되었고 불태워졌다. 또 작가는 자기를 대상으로 하는 임의 체포영장(la lettre de cachet)을 피하기 위해 달아나야 했다. 그의 책은 열 번이나 찍어냈다. (43UMG)
레비나스 Emmanuel Levinas 1906-1995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9. 153-154.(P.304)
프랑스 철학자이다. 레비나스는 1906년 리투아니아(Lituanie) 카우나스(Kaunas)에서 태어나 1995년(89살)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후설의 현상학에 관한 그의 초기 작품들, 특히 후설 현상학에서 직관 이론(Théorie de l'intuition dans la phénoménologie de Husserl 1930)에서 레비나스는 현상학적 방법의 원칙들을 특별하게 유지했다. 원칙들이란, 1. 정신작용들, 정신의 지향성, 정신의 감화(또는 정신 감성)의 “서술”(description)묘사, 2. 주체로부터 반성이다. 프랑스에서 하이데거의 철학을 알린 것은 후설과 하이데거와 함께 실존을 발견하면서(En découvrant l'existence avec de Husserl et Heidegger 1949)를 통하여 레비나스였다. 레비나스에서 실존의 철학은 실존으로부터 실존자에로(De l'existence à l'existant, 1947)과 시간과 타자(le Temps et l'autre 1948)를 통하여 세계의 충만에 관한 반성이고, 총체성과 무한, 외부성에 관한 시론(Totalité et infini, Essai sur l'extériorité, 1961)을 통하여 윤리학을 정초하면서 윤리학의 근본적 경험은 타인의 시선과 얼굴에 대한 경험이다. 게다가 사람들은 일련의 유대주의에 관한 시론들, 지난한 자유(Difficile liberté, 1963), 탈무드 네 강의(Quatre lectures talmudiques, 1968), 인본주의와 다른 인간(Humanisme et l'autre homme 1972), 존재와 다른(Autrement qu'être ou au-delà de l'essence, 1974), 성스러움에서 성자로(Du Sacré au Saint: cinq nouvelles lectures talmudiques, 1977)에 대해 읽을 수 있다. (43WLG)
[ 인본주의와 다른 인간(Humanisme et l'autre homme 1972) 다른 곳에서는 타인의 인간주의(Humanisme de l'autre homme, 1972)로 표기되어 있다],
레비스토로스 Claude Lévi-Strauss 1908-2009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p. 153-154.(P.304)
프랑스 사회학자 인류학자이다. 레비스트로스는 1908년에 벨기에(Belgique) 브뤽셀(Bruxelles)에서 태어나서 2009년(101살) 파리에서 죽었다.
레비스트로스는 남아메리카와 아시아에서 여러 임무들을 수행했다. 친족의 기본구조들(Les Structures élémentaires de la parenté, 1949)과 슬픈 열대(Tristes Tropiques, 1955)에서 그는 그 임무들로부터 사회적인 것만큼이나 인간적인 교훈을 분간해냈다. 그는 타인의 이해에 기초한 사회학의 방법을 선구자였다. 그리고 이 사회학적 방법은 오늘날 “사회인류학”(l'anthropologie sociale)이란 이름을 얻었다. 사회학은 여기서 심리학과 접촉하게 된다. 왜냐하면 레비스트로스는 문화를 전설과 종교적 신화로부터 정신분석할 것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전설과 신화는 그 사회의 진실한 토대를 구성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로부터 집단성에 맞는 고유한 인격성을 구별해낼 것을 제한했다.
사회적 품행(conduites)들을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인종학(l'ethnologie)에 구조의 개념을 적용하였다. “사회적 구조”는 “사회적 관계”와 구별된다. 사회적 구조는 모델이며, 심리적 열망(l'inspiration)인데, 이들로부터 사회적 관계들이 전체적으로 이해된다. 이에 대해 구조인류학(Anthropologie structurale, 1958)과 보완된 구조인류학 2(Anthropologie structurale deux, 1973)를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오늘날의 토템이즘(Le Totémisme aujourd'hui, 1962)과 야생적 사유(La Pensée sauvage, 1962)는 그의 작업의 전환을 표시하며, 신화학(Mythologiques)(전4권) 시리즈를 예고했다. 그 중에서 날 것과 구운 것(Le Cru et le cuit, 1964)(제1권), 꿀에서 재(災)로(Du miel aux cendres, 1967)(제2권), 식사 방식의 기원(L'Origine des manières de table, 1968)(제3권), 벗은 인간(L'Homme nu, 1971)(제4권)에서는 아메리카 인디언의 신화문학을 연구했다. 레비스트로스는 인간의 문화 생산의 다양성 위에 세워진 인간의 통일성을 주의깊게 파악하였고, 그리고 그는 구조주의에게 어떤 인본주의를 부여하였다. 그 인본주의는 사회적 진화의 모든 형식에 적대적이고 심지어는 진보와 인간의 미래에 비관주의적인 진화 형식에도 적대적이다. 이에는 종족과 문화(Race et Culture, 1971), 정체성(L'identité, 1977), 가면의 길(La Voie des masques, 2권 1975(aug. 증보 1979)를 읽을 수 있다. 그는 1959년 이래로 꼴레쥬 드 프랑스에서 사회 인류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1973년에는 아카데미프랑스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43WLG)
레비-브륄 Lucien Levy-Bruhl 1857-1939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54.(P.304)
프랑스 사회학자. 레비-브륄은 1857년 파리에서 태어나 1939년(82살)에 같은 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아프리카 사회와 진화하지 못한 오스트레일이아 사회에 대한 원시적 정신성(La mentalité primitive, 1922)의 작품으로 유명해졌다. 사실 “원시 정신성”(mentalité primitive)이란 개념은 오늘날 사회학의 등기부들에 완전히 사라졌다. 요즘 사회학은 보다 이해적인 방식으로 또 [미리] 그 문화들을 판단함이 없이, 인간 문화의 다양성을 연구한다. 레비 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 1908-2009)는 자발적인 또는 “야생적”(sauvage)인 사유에 대해 말할 것이며, 원시적 사유 형식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라이프니츠 이래 독일(L'Allemagne depuis Leibniz. Essai sur le développement de la conscience nationale en Allemagne, 1700-1848, 1890), 야코비의 철학(La Philosophie de Jacobi 1894), 오귀스트 꽁트의 철학(La philosophie d'Auguste Comte, 1900), 도덕론과 풍습의 과학(La Morale et la Science des Mœurs, 1903)을 썼다. (43WLG)
르윈 Kurt Lewin 1890-1947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p. 154-155.(P.304)
독일 출신 아메리카 심리학자이다.
르빈은 1890년에 당시 프러시아(Prusse, 현 폴란드) 포젠(Posen) 지방의 모길노(Mogilno)에서 태어나, 1947년(57살)에 메사츄세츠(Massachusetts)주의 뉴튼빌(Newtonville)에서 세상을 떠났다. [유태인]
1926년(36살)에 그는 베를린 대학의 심리학과 교수였다가 1932년(42살)에 나찌즘이 도래할 때 미국으로 이민 갔다. 그는 심리학의 고전적 주제들, 의지, 관념연합, 지각 등을 버리고, 역동적 방식으로 인간 행실의 연구하기로 한다. 그는 “인격성의 영역”의 이론과 동기화의 이론을 전개한다. 여기서 동기화란 개인적인 힘과 사회적 힘의 상호작용에 의해 긴장들 일체에 의해 표상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나중에 그룹의 역동에 대해 실험적 연구로 방향을 잡는다. 그는 신행태주의(néo-béhaviorisme)을 대표한다. 그 덕분에 인격성에 대한 역동이론(A dynamic theory of personality, 1935), 개념적 표상과 심리학적 힘들의 측정(Représentation conceptuelle et mesure des forces psychologieques 1938), 사회적 상충의 해결방안(Resolving social conflicts, 1948: Pour résoudre les conflits sociaux, 1948)
(43WLG)
자유 Liberté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p. 155-157.(P.304)
자유란 소극적으로는 속박의 부재로서, 적극적으로는 원하는 것을 해하는 자의 상태라고 정의한다.
철학적 문제(Problème philosophique)
자유에 대한 정의와 증거의 문제는 데카르트가 말하는 “생생하고 내적인 감정”을 정당화하는 것이며, 우리는 이것을 자유롭다고 한다.
자유를 정의하기 위하여, 자유의 적확한(adéquate) 서술을 부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1) 가장 낮은 수준에서 즉 소위 생물학적 수준에서, 자유는 유기체의 건강 상태와 동일시된다. 르리쉬(René Leriche 1879-1955)는 유기체를 “기관들의 침묵 속에서 삶”이라고 정의했다. 질병에 걸린 인간은 자기 신체에 예속되어 있다고 느낀다. 그것은 그가 원하는 것을 해알 자유가 없다.
2) 보다 높은 단계에서, 자유는 경향성들의 자발성과 동일시된다. 인간은 욕망(에피큐로스주의)을 실현할 수 있을 때 자유롭다. 그러나 욕망들 중에는 우리가 그것들의 유감스런 귀결로 귀착되는 것 때문에, 또는 이성이 욕망들에 대립되기 때문에, 유기체를 위해서 [거슬리는] 욕망들에 대해 투쟁한다. 그러므로 자유는 이 경향성들을[감각적 욕망들의 제멋대로인 것을] 그대로 방임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경향성들 중에 선택이 있다. 플라톤(Platon, Platon, 427-347 av. J.-C.)은 우리가 정념(passions)들에 굴복할 때, 우리가 자유롭다고 의식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3) 의식의 수준에서, 자유는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정의된다. 선택이 있기 위해서는 여러 개의 동기, 즉 행위의 여러 가능성들이 필요하다. 모든 동기들이 [같은 동일하게] 가치가 있을 경우에 선택은 불가능할 수 있다. 뷔리당(Jean Buridan 1300-1358)의 당나귀는, 동등한 가치의 두 귀리 주머니 사이에 있을 경우에, 가운데서 굶어죽는다. 왜냐하면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갈 이유를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서 결정은 “무차별의 자유”(liberté d'indifférence)라는 것에 속하나, 그러한 자유는 인격성의 표현은 전혀 아니다.
4) 가장 넓은 지평에서, 자유는 의지적 “실현”으로 정의된다. 즉 동원된 많은 동기들에 의해 정당화됨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행동은 인격적 선택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또한 모든 사람들의 눈에 합리적으로 정당화 될 수 있는 선택의 표현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플라톤과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7)의 “자유로운 행위는 합리적 욕망 덕분에 결정되는 행위”라고 설명했던 이후로,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자유의 ‘합리주의’를 이렇게 넉넉하게 표현한다. 즉 행동이 자유롭다란, 양심(conscience, 의식)이 합리적 원리에 따라, 감성적 욕망들에 반대하여 결정할 때이다. 예들 들어 동정(pitié)에 의해 동냥(aumône)을 주는 것, 그것은 성벽(penchant)에 기운 것인데 비해, ‘원리’[도덕적 격률]에 의해 보시(aumône)하는 것은 합리적 원리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한 것이다.
5) 사람들이 깨닫게 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자유는 행하는 것 속에 있는 것[행동]이 아니라, 자유를 행하는 방식[행동 양태]이라는 것이다. 자유는 태도이며, 인간이 자신의 삶 속에서 스스로를 인정하고, 세계의 역사와 사건들을 시인하는 태도이다. 그래서 자유는 가끔 “세계의 질서를 변화시키기보다 자신의 욕망을 변화시키는 것”, 또 진화와 사물의 질서에 스스로 적응하는 것이라 한다. 이러한 개념은 스토아 철학의 것이었는데, 근대철학 특히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1969)와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에 다시 나타나게 된다. [이들의 사상에서 보면], 인간이 감당할 상황 대신에 능동적 태도를 취할 때, 또 인간이 그 시대의 사건에 비추어서 처신하며 체제 연관과 인간들 관계에 의해 정의될 때, 인간은 자유롭게 된다는 것이다. 간단히 인간이 맹목적 운명처럼 밖으로부터 세상 사건들을 감당하는 대신에 그 사건들을 통하여 인격성을 실현할 때, 자유란 스스로 실현함으로써만 증명된다.
[이상의 자유문제는 형이상학적이다. 개체 즉 인격과 연관하여서 설명한 것이다. 인격의 본래적 성격(속성) 속에 자유가 있느냐는 것인데 5)에 이르러 사회 또는 세상사에 연관시킬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래서 사회적 자유를 문제삼을 것이다.]
사회적 문제(Problème social)
자유의 사회적 문제는 우선 매우 일반적 방식으로 보아, 인간의 잘 사는 것과 연계되어 있다. 한 국가는, 그 나라가 비참함이 지배적일 때 자유롭지 못하다. 그 국가는 밖으로부터 부유한 나라들에 의존한다. 그러나 특히 안으로부터는 비참한 인구들이 자유롭다고 느낄 수 없다. 자유란, 사회적 평면 위에서,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노동을[일거리를] 찾을 수 있기를 요구한다. 인간적 평면 위에서, 시민의 의지는 효과적으로 노동하고 경제를 건설할 수 있기를 요구한다.
보다 특수한 관점에서 자유의 사회적 문제는 개인적 자유와 사회적 법률 사이의 화해를 이루는 것이다.
a) 한 관점에 따르면, 개인적 자유가 제한됨이 없이 표현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플라톤은 이것을 “직접 민주정치” 또는 “통치없음”(anarchie)라고 이름 붙였다. 개인들만이 있을 경우에 사회는 가능하지 않다. 경제적 관점에서, 사회적 이익을 개별적 이익에 종속시키는 것은 19세기 말에 미국에서 실행한 경제적 자유주의의 특징이다. [미국식 자유주의가 19세기 말에 나왔다는 것, ]
b) 다른 관점에 따르면, 사회적 법률이 이상을 구성하고, 그 이상에 따라 개인들은 동일화 된다. 이것은 국가주의(étatisme) 또는 유일 당에 기초한 사회의 통제경제주의(dirigisme)의 특징이다. 소비에트 연방이나 중국처럼 인민민주주의는 정치적으로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경제적으로는 사적 소유와 사기업들을 제거하는 것을 인정하는 통제경제주의이다.
c) 사실상, 사회가 있는 곳에는 최소 법률이 필요하고 자유가 있는 곳에는 최소한 개인적 창발(initiative)이 필요하다. 근대 역사가들과 철학자들은, 개인적 소유와 개인적 창발의 의미에서, 공산주의 국가의 필연적 진화를, 그들의 생활 수준의 상향을, 인정하는데 의견일치를 보이고 있다. 다른 한편 정치적 국가주의의 의미에서 자유 국가들은 정부의 안정성을 보증하였다. 경제적 통제주의는 금융의 입시세(octroi)와 비입시세(non-octroi du crédit)에 의해 표현되는데, 근대 산업의 차원에서 채택된다.
자유란 무엇인가? (Qu'est-ce que la liberté)
자유는 사유하는 능력이 아니라 행동하는 능력(le pouvoir d'agir)이다. 볼테르(Voltaire: François-Marie Arouet, 1694-1778)는 무식한 철학자(Philosophe ignorant)에서 “나는 당신에게 인간의 자유란 행동하는 자기의 능력에 있지, 하고자 원하는 몽상적 능력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라이프니츠(Gottfrid Leibniz, 1646-1716)는 변신론(Théodicée) 제319절에서 에서 “자유란 자신 스스로 결정하는 데 있다”고 한다.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자유란 자치(autonome)에 있다고 한다.
어디에 자유가 있는가? (Où est la liberté)
자유는 이성의 권능(la puissance de notre raison), 우리 삶에 관한 의지의 권능이다.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 1762-1814)은 전집 4권 36쪽에서 “합리적 존재만이, 있는 그대로 고려할 때, 절대적 자치이며, 자기의 절대적 토대이다.”고 하고, 셀링(Friedrich Wilhelm Joseph von Schelling, 1775-1854)은 전집 6권 31쪽에서 “자유롭다는 것, 그것은 실재 속에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다.”고 한다. 또한 피히테는 전집 2권 193쪽에서 “내가 자유롭기를 원한다는 것은 .. 내가 해야될 것을 내 스스로 행하고자 하는 것이다라는 의미이다”고 한다.
자유의 가치 (Valeur de la liberté)
자유로운 삶 만이 도덕적 가치를 가질 수 있다. 흄의 인간본성론(Traité de la nature humaine, 1740) 제3장에서, “행동은 본성상 이전(trasitoire), 이행(passager)의 어떤 것이다. 행위가 어떤 원인으로부터 솟아나지 않을 때, - 이 원인의 장소란 행위를 완수하는 인격의 성격이나 기질에 있기 때문에, - 행위는 이 인격에 속하지 못하여, 착하게 행했을 때도 칭찬을 할 수 없고, 나쁘게 행했을 때도 수치스럽다고 할 수 없다”고 한다. 또한 피히테는 “자유롭다는 것은 선이며, 자유롭게 된다는 것은 하늘이라!” 한다. (41UME)
(그림설명)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56.(P.304)
십자가로 벌린 팔, 흑인 미네랄 브람레터(le Noir Mineral Bramletter)... 자유의 순교자. [사진 상으로 보면, 한 흑인이 경찰에 체포되는 장면인데... 이 사건의 주인공이 브람레터인듯하나 영어, 불어 위키에는 나오지 않는다. - 사진출처는 신문연합이라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기사인 듯하다.](44LLE)
리비도 libido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57.(P.304)
리비도(libido)는 라틴어에서 온 용어이며, 욕망(désir)을 의미한다. 이 생명적 에너지는 삶 일반의 취향을 기원으로 하고 삶의 모든 긍정적 표출을 의미한다. 즉 성적 생활, 예술작품활동, 모든 창조적 형식들이다.
프로이트에 있어서 리비도는 거의 하나의 의미로서 성적 생활의 표출에 연결되어 있었다. 이 성적 생활의 억제(refoulement)는 일탈(déviation)이나 승화(sublimation) 즉 인격의 혼동을 자극한다. [프로이트에게서] 리비도는 근본적 원리였으며, 이 원리로부터 그는 꿈들과 무의식의 모든 표현 형태들을 설명하기를 권했다. 현대 정신과의사들에게서 리비도는 전적으로 생의 능력(puissance de vie)이라, 즉 도덕적이거나 아니거나 간에 우리 행동의 모든 설명의 원리라고 지칭한다.
최종적으로 리비도는 생명의 본능이다. 이 본능이 모든 활동의 품행들을, 즉 창조활동, 시도 정신, 보존 본능 등을 설명하게 한다. 리비도는 “죽음 본능”(l'instinct de mort), 즉 자기 존재를 고집하는 경향과 대립된다. [죽음 본능을 자기존재(주체)의 고집의 경향으로 풀이하는 것은 어디서 온 것일까?] (44LLE)
경계 (la) limite 극한(경계), 한계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57.(P.304)
부피[길이]의 끝을 표시하는 선. 행동과 힘의 한계(la borne)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철학을 우리 인식의 비판으로서, 즉 인식의 한계들에 대한 사유로서 정의했다. 인식은 공허(le vide) 속에서 행해질 수 없다. 인식에는 실재적 대상이 필요하다. 따라서 형이상학적 인식은 없다.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 1762-1814)는 이 탐구를 확장시켰고, 그리고 반성적이고 철학적인 사유의 한계를 규정했다. 사람들은 엄격하게 경계(la limite)와 한계(la borne)를 구별한다. 전자는 권리상 경계 지움(limitation)이란 의미로서, 칸트 철학의 경계의 사유라 한다. 즉 경계는 독일어로 그렌쩨(Grenze)이다. 후자는 독일어로 슈랑케(Schranke)이며, 사실상 한계이지만, 넘어설 수도 있는 우발적인 한계를 의미한다. (44LLE)
뇌의 위치화 이론 (théorie des) localisations cérévrales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p. 157-158.(P.304)
뇌의 몇 부분과 어떤 심리 기능(기억, 정서 등) 사이에 상응을 주장하는 이론을 말한다.
사실상 뇌의 어떤 부분을 인간 정신의 특별한 인식기능에 객관적으로 할당하는 것을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어떤 부분이 계산의 중심 또는 기억의 중심이라고 할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반대로 해부학, 생리학, 정신병리학은 대뇌피질의 어떤 영역이 운동기관에(전두엽 회전돌기), 시각기관(후두 피질)에 연결되어 있다고 규정할 것이다. 이런 위치화 이론은 19세기 말에 특히 리보(Théodule Ribot, 1839-1916)에 의해 전개되었다.
다음 세기에 1906년에서 1907년에 마리(Pierre Marie, 1853-1940; 샤르꼬 제자)의 연구에 이어서, 1914년 전쟁동안에 프와(Charles Foix 1882-1927)의 연속적인 연구로, 사람들은 두뇌 손상의 경우에 대행 현상들을 확인하였다. 두뇌 일부분의 타격을 입은 경우에 인격의 일반적인 변모를 이끈다는 것이며, 단순히 인식능력들 중의 하나가 제거가 아니라는 것이다. 골드슈타인(Kurt Goldstein 1878-1965)은 “구조들”(structures)의 전체적 이론을 발전시키고[형태심리학으로 발전시키고], 유기체의 구조(Der Aufbau des Organismus 1934; la Structure de l'organisme 1952 불어번역)이란 작품에서 위치화 이론을 보충하였다. 참조: 형태심리주의(Gestaltisme) (44LLE)
로크 John Locke 1632-1704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58.(P.304)
영국 철학자이다. 로크는 1632년 잉글랜드지방의 소머셋셔의 링턴(Wrington, Somersetshire, England)에서 태어나 1704년(72살)에 잉글랜드 에섹스 오아츠(Oates, Essex, England)에서 죽었다.
그는 법학자의 아들로 태어나서 런던과 웨스트 민스트에서 고등교육을 받았고, 그리고 나서 옥스퍼드 대학에 들어갔다. 현실에 대한 그의 고민이 그를 물리학, 화학, 의학, 그리고 정치학으로 이끌었다. 인간오성론(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1690; Essai sur l'entendement humain, 1690)에서 쓴, 인식기원에 관한 그의 이론은 감각주의 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모든 우리의 인식과 우리 정신의 원리 자체들은 경험과 습관에 결과이다. 그의 권리 철학(la philosophie du droit)은, 관용에 관한 편지(A Letter Concerning Toleration, 1689: Lettre sur la tolérence, 1689)에서 홉스(Thomas Hobbes, 1588-1679)와는 반대로, 관용을 정당화했다. 그의 시민정부론(Two Treatises of Government, 1689; Deux traités du gouvernement civil 1690)은 자유 사회의 이론을 만들었다. 게다가 교육에 관한 몇가지 사상(Some Thoughts Concerning Education, 1693)에서, 그는 원시 크리스크교를 인간 심성에 맞는 자연적 종교로서 소개한다. (44LMI)
논리주의 (le) logicism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58.(P.304)
모든 과학을 수학적 형식으로 이끌고, 또 수학 그 자체를 논리학의 응용으로 만드는 철학적 학설을 말한다. 럿셀(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1872-1970)은 논리주의의 창시자 중의 한사람이다. (44LMI)
논리학 (la) logiqu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58.(P.304)
고전적 의미에서, 사유 법칙들의 과학이다. 현대적 의미에서, 추론의 형식들의 과학이다.
논리학은, 포르 르와얄 논리학(Logique de Port-Royal, 1622)에 따르면, “자기 자신을 교육하기 위할 뿐만 아니라 타인들을 교육하기 위하여, [인간의] 이성을 사물의 인식에로 잘 이끄는 기술"이라 소개한다. 논리학은 본질적으로 개념, 판단, 추론의 형식들에 대한 형식적 과학이다.
논리학의 이 해석은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기원전 384-322)에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논리학의 저술인] 오르가논(Organon)은, 삼단논법, 연역법, 귀납법과 같은, 형식 논리학의 원리들과 요소들을 부여하는 것이다. 즉 논리학의 가장 단순한 요소는 관념(l'idée) 즉 개념(le concept)이다. 그리고 이 개념은 그것의 외연(son extention)과 내포(sa compréhension)의 관점에서 정의된다. 내포는 개념의 대상을 특징지우는 성질들의 집합이며, 외연은 성질들 자체를 갖는 존재들의 집합이다. 예를 들어 “개”(chien)라는 개념은, 보다 큰 범위로서 묘사할 수 있을 때, 동물의 개념인데, 이 [개] 개념은 [동물보다 더] 많은 개별적 성질들을, 즉 많은 내포들을 포함한다. 척추동물이란 개념은 [개보다] 훨씬 더 일반적인 개념이며, 이는 보다 더 큰 외연을 포함하지만 [개라는 개념보다] 훨씬 더 모호하다. 따라서 내포는 외연과 비교하여 반대방향으로 근거되어 있다. 판단(le jugement)은 두 개념들 사이의 관계로서 정의된다. 추론(le raisonnement)은 둘 또는 여러 판단들 사이의 관계로서 정의된다. 개념, 판단, 추론과 같은 것은 형식논리학의 세 가지 중요한 요소이다.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선험(transcendantale) 논리 즉 실질(matérielle) 논리의 토대를 만들었다. 이 논리는 실재적인 것에 적용되는 사유를 연구하는 것이고, 수학 또는 물리학의 방법들에서 구현된다. 오늘날 형식논리학은 수학과 결합하여, 기호논리학(logistique)라 불린다. (44LMI)
대 논리학 (Wissenchaft der Logik, Grande Logique 1812-1816)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58.(P.304)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이 1812년에서 1816년에 쓴 저작이다. 이 저술은 세 부분, 즉 감각세계의 논리, 본질의 논리, 의미의 논리로 되어 있으며, 정신과 실재 세계의 총체적 화해를 이루고자 한다. (44LLE)
연역과 귀납의 논리체계(Systeme de Logique deductive et inductive 1843)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59.(P.304)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이 1843년(37살)에 쓴 논리학 체계(System of logic)이다.
이 경험 논리학의 개론에서, 밀은 일치의 방법(méthode de concordance), 차이의 방법(méthode des différences), 공변법(méthode des variation concomitantes), 잉여의 방법 méthode des résidus)을 전개했고, 이 방법들은 과학의 법칙들을 연역하게 해 준다. (44LLE)
형식논리와 선험논리(Formale und transzendentale Logik, 1929; fr. Logique formelle et logique transcendantal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59(P.304)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이 1929년(71살)에 쓴 기본적인 작품이다. 이 책에서 그는 모든 과학에서 원리들과 규범들을 분간해 냈다. (44LLE)
계산논리학 logistiqu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59.(P.304)
[우리나라에서 “기호논리학”이라 하는데 이 용어는 잘 맞지 않은 용어이다. 왜냐하면 기호는 상징과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기에, 산술적이고 연산적이며 대수학에 가깝기 때문에 계산논리학이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44MKB)]
연산(algorithme)의 형식으로 만든 수학적 논리학.
이 용어는 “수학논리”, “연산논리”, “논리대수”(algèbre de la logique) 등으로 표현되고 있었던 것을 1904년 제네바에서 열린 논리학자들의 학회에서 창안되었다. “계산논리학”은 현대 논리학이며 수학적 조합의 형식으로 되어있다. 계산 논리학은 비엔나 학파의 카르납(Rudolf Carnap, 1891-1970), 타르스키(Alfred Tarski, Alfred Teitelbaum, 1901-1983),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Wittgenstein, 1889-1951) 등에서, 그리고 앵글로색슨 계의 신실증주의 즉 논리실증주의의 럿셀(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1872-1970) 학파에서 전개되었다. (44MKB)
로고스 logos gr. λόγος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59.(P.304)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e, Herakleitos, 기원전 576-480) 철학에서는 존재의 법칙이며 우주적 필연성이다. 플라톤(Platon, 기원전 427-347)에서는 이데아들의 근원인 한에서 신이다. 스토아학자들에서는 운명(sort), 섭리(raison)이다. 신플라톤주의 철학자들에서는 신성의 여러 측면들 중의 하나이다. 헤겔의 체계에서는 개념, 이성, 절대정신이다. (44MKB)
법칙(법률) la loi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59.(P.304)
법칙이란 필연적이거 명령적인 규칙이다.
우선 자연의 법칙(la loi de la nature)일 수 있다. [자연권(le droit naturel)과는 다르다.] 자연의 법칙은 보다 정확하게는 현상들 사이에서 필연적이고 항상적인 연관이라 정의된다. 이 경우에, 법칙은 동일한 현상이 반복되어 나타나는 것을 관찰함으로써 귀납적으로 얻을 수 있다. 이 법칙은 실험에 의해, 다시 말하면 실험실에서 재생산을 통하여, 검증되거나 또는 증명된다. 둘째 의미에서, 법칙은 “정언명법”이라는 의미에서 도덕 법칙(loi morale)을 지칭한다. 이 법칙은 인간의 양심(la conscience)에 무매개적으로 표출된다. 거짓말이나 도둑질과 같은 어떤 행위에는 하지 말라고 하는 불가능성의 감정의 형식으로, 그리고 죽음의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어떤 행위에는 [마땅히] 해야만 하는 감정의 형식으로 표출된다. 이와 같은 “실행”의 의미에서, 법칙은 집단적으로 살아가는 데 부여되는 강요(l'obligation)의 의미에서 사회적 법률(loi sociale)을 지칭한다. 이 강요는 명시적으로 실증법(loi positive)이 될 수 있으며, 암묵적으로는 사회학자들이 말하는 “사회적 의식” 즉 관습의 깊은 영향일 수 있다. 참조: 결정론. 명법(imperatif) (44MKB)
(그림설명)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59.(P.304)
* 마리에뜨(Pierre-Jean Mariette, 1694-1774)가 라파엘(Raffaello 1483-1520)의 그림에 본 따서 그린 판화: 율법(la Loi)이 새겨진 석판을 들로 시나이 산을 내려오는 모세. (44MKB)
법률 (Nomoi, les Lois)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60.(P.304)
플라톤(Platon, 기원전 427-347)의 대화편 중의 하나로서, 미완성인 체 남아있다. 이 저술은 12권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가능한한 최상의 법률들에 관한 반성적 시론이다. 그는 최상의 사회가 종교적 정신에 의해 침투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도시국가의 모든 법률은 아폴론 신전의 인준을 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44MKB)
여가 (le) loisir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60.(P.304)
노동과 일상적 일들로부터 벗어나서 사용할 수 있는 시간
필수적인 여가의 문제는 프랑스 혁명 이래로 제기되었다. 노동을 제한하는 수많은 규칙을 부여한 동업조합[길드]가 해체되면서 또 종교적 축제의 날들이 없어지면서 이다. 사용자와 노동자의 자유로운 토론이 노동조건들을 결정하게 되면서부터이다. 그 결과로 인민 계급을 위한 모든 여가가 거의 총체적으로 사라졌다. [집단적으로 모여서 구경하고 함께 놀이하는 축제들이 사라졌다. 왜? 지금도 연예와 스포츠에 여가의 축제가 있는데 말이다.]
기계주의, 생산에 매진하는 욕망, 경쟁 등은 여가를 즐기는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 노동의 리듬을 부여한다. 그런데 노동의 분업, 파편화된 일의 단조로움 등은 부인할 수 없는 비도덕적으로 되어 간다. 따라서 여가는 인간이 균형을 잡는데 본질적이고 필수적이 되었다. 프리드만(Georges Friedman 1902-1977)이 제시하듯이, 인간들은 직업적인 삶 속에서 자신의 용도를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인 자신의 일부를 여가 속에서 실현하고 한다.
몇몇 사회학자들은, 부차적으로 생각되었던 활동이 본질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여가가 노동의 장소[지위]를 인간적 평온의 길이 되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여가는 필연적으로 휴식이 아니다. 그것은 강도있는 활동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보상이 없는 자유로운 활동이 중요하다. 그 활동에서 인간은 자기 인격을 단순하게 표현한다. (43RKH)
롱기누스 Longin, Cassius Dionysius Longinus 213년경-273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60.(P.304).
그리스 철학자이며 수사학자.
롱기누스는 213년경 팔미르(Palmyre, Emèse 현 시리아) 또는 아테네에서 태어났다고 하며, 273년에 팔미르에서 죽었다. 그는 아테네에서 그리고 시리아에서 가르쳤다. 시라아에서 팔미르 여왕의 제노비(Zénobie)의 장관을 지냈다. 그의 철학적 작품으로 최고선에 관하여(Sur le souverain bien)의 단편들이 남아있다. (44MKA)
로체 Rudolf Hermann Lotze 1817-1881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60.(P.304).
독일 철학자 생리학자.
로체는 1817년 자하젠(Sachsen) 지방의 바우쩬(Bautzen)에서 태어나, 1881년(64살)에 베를린에서 죽었다. 그는 영혼의 의학적 심리학과 생리학(Medizinische Psychologie oder Physiologie der Seele, 1852; Principes de la pschologie physiologique)에서 생명적 힘(force vitale)의 관념을 쳐부수고 기계적 이론을 옹호했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독일에서 미학의 역사(Geschichte der Aesthetik in Deutschland, 1868)이 있다. 그리고 철학의 체계(System der Philosophie, Leipzig 1874-1879)에서 그는 라이프니츠의 영향을 입은 목적론적 관념론을 전개하였다. (44MKB)
류크레티우스(Lucrèce Lukretius, lat. Titus Lucretius carus 98-55 av. J.-C.)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304). 항목이 없다.
이상하게도 류크레티우스의 항목없음 (43VMI)
놀이의 ludique [어원 라틴어 동사 루도(ludo)에서 온 것으로 놀다(jouer)이다.]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60.(P.304).
놀이와 관계 있는 것.
놀이 활동의 문제는 여가의 문제이다. (44MKB)
루카치 György Lukács 1885-1971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60.(P.304).
헝거리 철학자이자 정치가이다. [fr.Wiki: 맑스주의 철학자이며 독일어를 쓰는 문필가 사회학자이다.] 그는 1885년에 헝거리 부다페스트(Budapest)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1971년(86살)에 죽었다. 그는 부다페스트 대학의 교수이며 아카데미 회원이었다. 1956년(71살)에 나지(Imre Nagy, 1896-1958)정부하에 교육부 장관[문화부 장관]을 지냈으며, 헝거리 봉기 때에는 감옥에 갔으나, 나중에 풀려났다.
그는 맑스주의의 가장 독창적인 사상가들 중의 한 사람이다. 1908년(23살)에 그는 첫째 작품을 썼는데, 연대 드라마(le Drame moderne)는 연극에 관한 것이었다. 1911년(26살)에 영혼과 형식(l'Ame et la forme)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다양한 연구를 모아서 내었다. 이 작품은 그를 얼마간 유명하게 했다. 그 작품에는 토마스 만(Thomas Mann 1875-1955), 안들러(Charles Andler, 1866-1933, 프랑스인 독일연구가) 베르토(Félix Bertaux 1881-1948, 프랑스인 독일연구가) 등에게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같은 해 현대 드라마의 진화(Evolution du drame moderne)을 출판하였다. 1916년(31살)에 소설의 이론(Theorie du roman)을, 1923년에 역사와 계급의식(Histoire et conscience de classe)을, 1924년에 레닌을 썼다. 그는 오랫동안에 모스크바에 체류했다. 거기에 그는 “맑스-엥겔스 연구소”에 협력하였다. 그의 모든 중요한 작품은 1945년 이후에야 나온다. 즉 실존주의와 맑시즘(Existentialisme et marxisme, 1948)과 특히 이성의 파괴(Destruction de la raison, 1955)가 나온다.
루카치는 제3의 길을 탐구하기 위해서 관념론자와 유물론자의 고전적 대립에서부터 출발하였다. 그의 비판들은 특히 현상학과 실존주의로 향했다. 그는 셸링(Friedrich Wilhelm Joseph von Schelling, 1775-1854)으로부터 파시즘까지 근대 비합리주의의 발전을 연구하였다. 그러나 그의 근본적인 고민은 미학적 영역에 남아있었다. 그의 목표는 실재론의 미학을 기초하는 것이었다. 참조: 문학사가로서 맑스와 엥겔스(K. Marx et F. Engels comme histoiens de la littérature), 체르니체프스키의 철학적 선별 모음집(Textes philosophiques choisie de N. Tchernychevski), 괴테와 그 시대(Goethe et son époque)등이다.
[(Nikolaï Gavrilovitch Tchernychevsky, 1828-1889) 러시아 혁명적 작가, 철학자. 무엇을 할 것인가? (Que faire ?, 1862-1863), 이 작품에서 혁명적 인물 라코메토프(Rakhmetov)를 창조했다. 마을마다 생기는 이 인물은 1917년 혁명의 주역이다.]
그는 “실재론적 미학개론(Traité d'esthétique réaliste)” 또는 “대 실재론”(grand réalisme)을 통해서 자신의 작품을 완성하고 원했을 것이다. 그 실재론에는 인간을 시간적 공간적 역사 총체 속에 두고자 한다. (여기서 공간적 역사란 사회적 공간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시간적 역사는 생명(기억)의 지속을 의미할 수 있을까?] 이러한 것은 셰익스피어(Shakespeare, 1564-1616), 발작(Honoré de Balzac, 1799-1850), 토마스만(Thomas Mann 1875-1955) 등이 이렇게 그렸다는 것이다. (43QKH)
자연의 빛 (la) lumiere naturell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61.(P.304).
자연의 빛이란 인간의 이성을 의미한다.
[우리가 보기에 자연의 이법, 즉 자연의 자기 생성과 자발성을 의미한다, 빛은 공처럼 발산한다.]
이 표현은 데까르트주의 철학자들에 의해 널리 사용되었으며, 철학의 기관(l'organe, 도구)을 지칭한다. 이것은 초자연적 또는 신적 빛(lumiere surnaturelle ou divine)에 반대된다. 이 후자는 계시의 기관이다. (44MKB)
빛들의 세기 [계몽의 철]학(la philosophie des) lumières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61.(P.304).
독일어로 아우프클레룽(Aufklärung, 계몽, 밝힘)이라 한다.
18세기의 철학운동이다. 이것은 인간의 진보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종교와 전통에 관해서는 불신하면서 이성에 대한 신앙을 특징으로 한다. .
달랑베르(Jean Le Rond d'Alembert, 1717-1783)와 디드로(Denis Diderot, 1713-1784)의 백과전서(Encyclopédie)은 계몽기 철학의 작품이다. 이 중요 대표자들은 디드로, 달랑베르, 카바니스(Pierre Jean Georges Cabanis 1757-1808), 엘베시우스(Claude Adrien Helvétius, 1715-1771), 신부인 꽁디약(Etienne Bonnot de Condillac, 1715-1780) 등이다. 독일에서 18세기말 계몽주의의 대표자들 중에 그 선두는 니콜라이(Friedrich Nicolai, 1733-1811)이다. 독일계몽주의 활동가들은 잡지 에우데모니아(Eudämonia, fr. Eudemonia)(1796-1797)를 통해서 표현했으며, 이들은 충분히 폭넓은 합리주의적 형식을 주장하면서, 낭만주의의 영감이나 칸트주의 철학의 어둠(ténèbres)에도 대립된다.(43RMJ)
루터(Martin Luther, 1483-1546)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61.(P.304).
독일의 신학자이며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이다.
루터는 1483년에 [자하젠안할트(Sachsen-Anhalt)지역의] 튀링겐(Thüringen)주의 아이스레벤(Eisleben)에서 태어나, 1546년(63살)에 같은 곳에서 죽었다.
1501년(18살)에 그는 에르푸르트(Erfurt) 대학의 학생이었고, 1505년(22살) 철학으로 석사를 마치고, 1511년에(28살) 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513년(30살)에 비텐베르크(Wittenberg) 대학에 신학교수가 되었다. 1515년(32살)에 독일 아우구스티누스회의 부제였다.
탁월한 수도사 였던 루터는 진리 속에서 자기 구원을 도처에서 도달하기를 애쓰면서, 회개(pénitence), 기도, 신학 탐구 등에 빠져 있었다. 우리는 그의 유명한 정식을 잘 안다: “크리스트교인은 항상 죄인인 것을 잘 알며, 항상 정의롭고 항상 회개한다. ..”
그는 교회 안에서 교회의 타락과 오류에 대해, 특히 면제부(indulgence)의 판매에 대해 투쟁했다. 이 면죄부를 테쩰(Johann Tetzel 1465-1519)이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을 건축하기 위하여 독일에서 널리 판매하였다. 사람들은 자기의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지니면서 구원을 살수 있었다.
이에 대한 루터의 반대가 종교개혁의 발단이다. [1517년 95개 주제를 내걸다]
1520년(37살) 에 그는 크리스트교인의 자유에 관하여(Von der Freiheit eines Christenmenschen, Wittenberg 1520; Le Petit Traité de la liberté chrétienne)에서 그의 사상의 본질을 보여주고, 또한 교회의 바빌론유수에 관하여(Von der babylonischen Gefangenschaft der Kirche; Manifeste à la noblesse allemande et la Captivité de Babylone에도 제시되었다. 이 작품에서는 로만 카톨릭에 반대하여 보이지 않는 교회의 원리들을 표현하고 있다. 이 보이지 않은 교외는 진실한 신앙의 교회이며, 이 신앙에 따르면, 인간은 내부의 신적 은총에 의해서만 절망으로부터 구원될 수 있다. 그리고 스폰지(행주)로 지나가듯이 외적 권위에 의해서는 구원될 수 없다. [1525년 수녀 카타리나와 결혼한다.]
1530년에 맬란흐통(Philipp Melanchthon, 본명 Philipp Schwartzerdt, 1497-1560)은 아우스부르크의 수도회의 집회의 기회에 일련의 루터 작업을 이어갔다고 고백을 소개했다. 나중에 루터에 의해 시인된 이 고백은 「아우스부르크의 고백」(Confession d'Ausbourg)이며, 오늘날 루터교회의 신앙고백이 된다. (41LMD, 44MKB)
(사진설명)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61.(P.304).
* 대 크라나흐(Lucas Müller dit Lucas Cranach l'Ancien, 1472-1553)가 1529년에 그린 「마틴 루터 초상화」(공립미술관, 피렌체). [루터가 46살 되는 해이다]. [루터는] “난폭한 신비가”(니체의 표현)인가 또는 진지한 신앙인 인가? (44M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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