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 후의 상상
조선형
왼쪽 무릎 통증이 나기 시작해 강동구 둔촌동에 있는 중앙보훈병원 정형외과 담당 의사를 찾았다. 의사는 지난해 가을 이곳에 와 찍었었던 왼쪽 무릎 CT 사진을 찬찬히 보고 난 후 지금으로선 별 문제 없어 보인다며 진료실 한편에 있는 침대에 누워보란다. 그는 내 무릎을 몇 번 굽히고 틀어보더니 특별히 수술 일정을 잡는 것보다 두 가지 처방해줄 테니 3개월 동안 약을 먹어본 후에 그 때 가서 인공관절 수술을 해야 할지, 아니면 연골주사 치료를 해야 할 지를 결정해보자 한다.
지난 3월 초부터 무릎통증이 시작 되어 병원을 찾았지만, 의사의 진단이 나름 합리적이라 생각해 처방전을 받아 병원을 나와 집 근처 탑마을 약국에 들려 처방약을 들고 집에 와 약을 먹으려 하는데, 아내가 "어디 갔다 왔느냐" 묻는다. 보훈병원 다녀오는 길이라며 정형외과 의사의 진료에 대해 자초지종을 다 듣고 나서 너무 걱정이 되는지, 자기가 다니는 한의원에 상의도 않고 더럭 예약을 해놓고 빨리 가 침 맞을 준비를 하라 재촉한다. 아내도 지난해 김장하기 전 김장독을 들어 올리려다 갑자기 등뼈 요추에서 '뚝!' 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후 허리의 통증으로 인해 줄곧 치료받아오던 병원이 야탑동 소재 ㅁ 한의원이었다. "병은 초기에 잡아야 한다"는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얼떨결에 한의원에 가 침을 맞고 돌아와 보훈병원 의사의 말을 다시금 되뇐다.
“3개월 후에 경과를 보시고 그 때 판단하지요.”
정형외과 의사가 내게 해준 말이지만 백일 후의 일을 어찌 알 수 있으랴!
산수유가 노랗게 꽃을 피우고 매화 향기가 코끝에 간지러운 봄날이 진하게 유혹하는데도 내 무릎통증은 나날이 심해져 갔다. 누워서 잘 때도 왼쪽 무릎을 굽히거나 펴려 해도 통증으로 인해 편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결국 이튼날 참다못해 십 수 년 전 무릎 수술을 받았던 병원엘 가 연골주사도 맞았다. 그리고 보훈병원 처방약도 열심히 복용하며 한의원을 매주 세 번은 다니며 침을 맞았다.
그 효력을 보고 있는 것일까? 하루하루 통증의 완화를 겪고 있다. 오래 걸으면 잠시 쉬어가야 하지만 걷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문득 매사에 ‘지성이면 감천’이란 선인들이 늘 해오던 옛말이 떠오른다.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부상당한 운동선수들이나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 또는 질병 수술 후 환자들의 투병 모습은 대체로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려면 기나긴 재활의 진통을 견뎌내야 한다. 그런 경우를 보더라도 내 무릎관절이 정상으로 회복하는데 드는 기간은 딱히 언제일 거라 말할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겐 다행히도 100일의 믿음이 생긴 것이다.
우선 단단히 맘먹었다. 운동은 ‘수영과 간단한 산책만’ 하라는 의사의 권장을 철저하게 이행해야 한다. 그동안 건강에 좋을 것이라 생각해 꾸준히 운동해온 골프나 등산이나 계단 오르기 따위는 내 무릎 관절의 건강을 지키는 데는 오히려 해로운 운동이었던 까닭에 과감히 절제하기로 다짐했다.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서로 만나면 습관처럼 우선 상대의 화색부터 바라보며 건강 상태를 물어주는 건 흔한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만나는 연령대가 거의 노인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화의 시작은 먼저 “어디 아픈 데는 없니?”하고 따뜻하게 물어 주는 것이 상례이다. 물론 그때마다 사람들은 날 보며 얼굴 화색도 피부도 나이에 비해 좋고, 건강해 보인다고 말해주곤 했다.
아뿔싸! 그랬던 지금 난, 그때 그 찬사들이 다 공념불처럼 되버린 것이다! 오히려 지금은 100일 후 무릎 진통이 어찌 될 것인가를 상상해야 할 형편이 되었다. 매일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앉아서 그 날을 기다리는 것은 내 몸의 상식으론 어울리지 않는다.
문득 자난 가을 모 중학교 교정에서 본 100일 동안 붉게 피어나는 목백일홍 꽃의 가을을 상상한다. 모든 꽃이 다 그렇지만 특히 이 꽃이 좋은 이유는 오랫동안 피어 있고 또 피어 있는 동안은 언제나 다가가기 편하고 내게 행복한 감정을 갖게 해주곤 했다.
의사가 잡아준 무릅통증 치유의 3개월. 달력 안에 동그라미로 체크된 예정된 100일 속 날짜들의 메모들을 점검한다. 토요일은 결혼식 네 번, 일요일은 매주 주일 예배, 월에 한 번 이상은 문학 모임, 4월과 5월엔 내가 활동하는 소속 문학회와 다른 문학회의 봄 문학기행에 참여도 잡혀 있다. 물론 같은 아파트 거주자들의 월 당구 모임도 있다. 수영은 주 3회 이상 가고, 한의원엘 들러 꾸준히 침을 맞아야 한다. 이외에도 다수의 일정들이 잡혀 있지만 이런 모든 일정들을 지키려면 어느 목적지를 가든, 얼마를 걸으면 무릎이 뒤틀리는 통증을 감내하며 잠시 숨을 고르듯 쉬어 갈 수밖에 없는 일정들까지도 다 감내해야 한다.
그런데 다행스러운 건 그 진통의 과정에 변화가 오고 있었다. 다리를 질질 끌며 걷다가, 좀 편안해진 듯 걷다가, 어떤 날은 성급히 뛰어보고 싶은 맘이 생길 때도 있다. 결국 희망의 벽을 넘을 것인가! 약속된 백일이 가까워진다. 세상 모든 일이 거저 얻는 것이 없듯, 진통 후에 얻는 것이 더 달콤하리라.
2024. 4. 15. 월.
첫댓글 회장님도 세월에 먹히셨군요.
어쩌지요. 관리를 잘 하셔야 고생을 덜 하실 텐데요.
통증에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잘감상하였습니다. 무릎보호대 한번 사용해보세요..
빠른 쾌유를 빕니다.
정감情感어린 글에 머무르다 갑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건필하소서.
네, 회장님 3월에 뵐 때 걸음이 불편해 하시는 걸 기억합니다. 이제 운동 무리하지 마시고, 어서 쾌유 하시길 바랍니다.
회장님 ᆢ긍정적 마음으로 파이팅하세요
어서 쾌차하세요!
회장님 건강 유의하요~방법: 외출 그만하시고 댁에서 사모님과 지내셔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