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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잠언 7강
말씀/잠언 14:1-15:33
요절/잠언 14:1절
집을 세우는 자, 집을 허무는 자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무느니라”
IMF는 트럼프 당선으로 미중무역분쟁이 심화될 때에 가장 타격을 입을 나라로 한국을 지목했습니다. 트럼프가 한국경제를 허무는 자가 되지 않도록 기도해야 겠습니다. 더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은 트럼프가 어찌하든지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는 나라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14장 1절을 읽겠습니다.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무느니라” 지혜가 없으면 열심을 내는 손이 자기 집을 허무는 미련한 손이 될 수 있습니다. 재벌 2세나 3세 경영의 실패가 그러합니다. 스펙이 부족해서도 아닙니다. 아버지가 회장님이니까 어릴 적부터 최고의 코스로 자식 교육을 시킵니다. 학벌, 어학, 인맥, 현장 실습 뭐하나 꿀릴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아버지의 기업을 말아먹는 일들이 심심찮게 일어납니다. 무엇이 세우는 것이며 무엇이 허무는 것인지를 분별하는 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세움의 길은 첫째 정직입니다. 2절을 읽겠습니다.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여도 패역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멸하느니라” 정직하면 돈을 벌 수 없다고 생각하는 기업인들이 많습니다. 불법을 동원해서라도 이윤을 얻는 것을 경영의 지혜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거짓과 속임을 동원하는 것은 여호와를 경멸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댓가를 치루게 됩니다. 패역을 멀리하고 정직을 앞세우면 당장에는 느린 것 같지만 가장 튼튼한 집을 짓는 길입니다. 정직하게 실력으로 승부하다보면 아주 단단한 내공을 쌓게 됩니다.
둘째는 말조심해야 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미련한 리더는 작은 성공에 취해 교만한 말을 내뱉습니다. 그것은 적을 만들고 공격거리를 제공합니다. 매에는 장사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적이 많아지기 시작하면 언젠가 쓰러지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입술을 지켜 함부로 말하지 않습니다. 많은 말보다 꼭 필요한 말, 덕이 되는 말을 하고자 노력합니다.
셋째, 현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소가 없으면 구유가 깨끗합니다. 소를 키우려면 많이 수고가 들어갑니다. 밥도 많이 먹고 똥도 많이 쌉니다. 사료 준비하고 청소해주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럴지라도 피곤하게 살고 싶지 않다며 소를 파는 농부가 있다면 바보입니다. 현장에서 수고하는 자들을 대접하고 투자하는데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삼성전자의 위기를 진단하는 목소리들이 많습니다. 위기의 원인중 하나가 현장 엔지니어들의 의견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회장 주변 참모들이 재무통 인사들만으로 채워져 있어, ‘이런 식으로 만들어보면, 이쪽 분야를 연구해보면 어떨까요?’, 현장에서 의견이 올라오면, ‘그래서 성공확률이 얼마나 되는데?, 누가 검증되지 않은 의견 올렸어?’ 커트 당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는데 둔해진 것입니다.
넷째는 거짓된 자, 미련한 자들을 멀리해야 합니다. 5절을 보십시오. 누군가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증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때에 따라 말을 바꾸는 사람, 속이는 사람은 아무리 스펙이 좋아도 믿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거만한 사람도 손절해야 합니다.(6) 겸손히 들을 줄 알고 배우는데 빠른 사람이라면, 함께 할만한 명철한 사람입니다. 7절을 읽겠습니다. “너는 미련한 자의 앞을 떠나라 그 입술에 지식 있음을 보지 못함이니라”, 미련한 자를 멀리하는 것이 집을 세우는 길입니다. 미련한 자인지, 지혜로운 자인지는 입술의 말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다섯째, 인생 목적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8절을 보십시오. 슬기롭다는 것은 자기 길을 아는 것입니다. 자기 길을 안다는 것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인생 목적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생 목적 있어요?’라는 질문에, ‘있지요 30억 버는 것입니다’라고 답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인생을 모르는 미련한 자인데,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을 알아야 올바른 인생의 집을 세울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경고했습니다. “속지 말라, 악한 동무는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미련한 사람은 죄를 심상히 여깁니다.(9) 9절의 ‘심상히 여긴다’는 것은 대단치 않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보다 심각한 죄인들이 얼마나 많아, 나 정도는 양반이야!’, 뭉개는 것입니다. 정직한 자라면 그렇지 않습니다. 작은 죄에도 양심이 찔려 힘들어합니다. 물론 세상은 죄로 인한 마음의 고통과 죄사함으로 인한 마음의 즐거움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내가 알고 하나님이 아십니다.(10) 11절을 보십시오. 결국 악한 자는 좋은 집에서 시작해도 망하고 정직한 자는 장막, 텐트에서 시작해도 흥하게 될 것입니다.(11)
그러므로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1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말씀했습니다. 그 길을 좁고 협착하여 사람들 보기에 좋지 않습니다. 세상은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크고 넓은 문을 좋게 봅니다. 하지만 끝은 멸망입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기업 인수 합병에서 ‘승자의 저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큰 기업을 인수하여 승자로 생각했는데, 그것이 그룹 전체의 숨통을 조이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때입니다. 사람에 대해서도 그럴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웃고 있는데, 속으로는 깊은 슬픔을 지닐 수 있습니다.(13) 말보다 행동을 보아야 합니다. 마음이 굽은 자는 행동으로 마음의 굽은 것을 드러냅니다. 선한 사람 또한 행위로 선함을 드러냅니다.(14) 어리석은 사람이 말만 믿고 속는 것입니다.(15) 지혜로운 사람은 악에서 떠나고자 애를 씁니다.(16) 반면 교만한 사람은 돈이나 권력을 믿고 방자하게 행동합니다. 그들은 능력자가 아니라 어리석은 자입니다.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도 어리석은 자입니다.(17) 감정을 절제하는 못하는 자는 언젠가 사고 쳐서 손해를 끼칩니다. 악한 계교를 꾀하는 자도 그럴 것입니다. 언젠가 그에게 속은 자들이 복수할 때, 그와 한패로 몰려 미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어리석은 사람은 기업을 세우는데 도움이 안되는 어리석은 것을 의지합니다. 악한 계교나 거짓을 지혜처럼 생각합니다. 반면 슬기로운 자는 옳고 그름의 지식, 훈계를 받은 지식을 면류관처럼 귀하게 여깁니다. 19절 말씀은 악인과 선인이 맺게 될 최종 결과입니다. 악인은 선인앞에 엎드리고 불의한 자는 의인의 문에 엎드리게 됩니다.(19)
우리는 의인의 길을 가게 힘써야 합니다. 그것은 약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입니다. 20절을 읽겠습니다. “가난한 자는 이웃에게도 미움을 받게 되나 부요한 자는 친구가 많으니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말씀한 것입니다. 여기 있는 분들도 모두 부자가 되어 많은 친구를 가지면 좋겠습니다. 그럴지라도 가난한 이웃을 업신여기지 말고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21) 그러면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성경이 보증하는 축복의 비밀입니다. 가난한 자를 멸시하는 것은 약육강식의 자연 순리가 아니라 악을 도모하는 것입니다.(22) 약한 자들을 도와야 인자와 진리를 깨닫습니다. 실제 수고 없이 입술로만 이웃 사랑을 외치면 인자와 진리를 얻기는 커녕 궁핍만 이룰 뿐입니다.(23)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을 구제함으로 그의 재물을 면류관으로 만듭니다.(24) 반면 미련한 부자는 아무도 돕지 않음으로 그의 재물 또한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미련한 것으로 남게 합니다.
둘째 진실의 힘을 믿는 것입니다. 25절을 읽겠습니다. “진실한 증인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여도 거짓말을 뱉는 사람은 속이느니라” 복음을 증거하는 것 또한 진실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진실보다 자기 유익을 따라 말합니다. 자기유익을 위해 없는 사실도 있는 것처럼, 거짓을 증언하기도 합니다. 거짓이 주는 이익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언젠가 치명적인 덫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옳으면 옳다, 아니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말을 했으면 반드시 지키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며, 견고한 성을 쌓는 것입니다.(26) 진실을 말하는 사람 주위로 진실한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기뻐하사 그들의 자녀들에게까지 피난처를 제공하십니다. 그는 생명의 샘처럼 어디에 가든지 사람을 구원합니다.(27)
셋째 자기 사람들이 번성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28절을 보십시오. 백성이 많은 것은 왕의 영광이요 백성이 적은 것은 주권자의 패망입니다. 화려한 왕궁이나 무덤 혹은 강력한 군대를 왕의 영광으로 여겼던 고대 세계의 왕들의 생각과 다른 말씀입니다. 백성이 많으려면 백성의 행복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백성이 적은 것은 토목공사나 전쟁으로 먹고 살기 힘들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영광이 아닌 멤버들의 행복을 앞세우는 마음, 그것이 빛나는 리더의 모습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이 그러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4,15절입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게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리더는 조급한 마음으로 벌컥 화를 내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29) 구성원들을 위축시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30절을 보십시오. 평온한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은 육신에 생명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실적을 올리기 위해 서로 경쟁하며 시기하도록 만드는 것은 뼈를 썩게 하는 고통을 안기는 것입니다. 당장에는 도움이 되는 것 같으나 병들게 만드는 것입니다. 도움이 안되는 가난한 자들을 학대하지 말아야 합니다.(31) 궁핍한 자를 감당하는 것이 주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32절을 보십시오. 악인은 환난의 날에 절망하고 엎드러집니다. 반면 의인은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소망을 잃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가진 자이기 때문입니다. 지혜를 따라 사는 것이 얼마나 유익한지, 세상은 알지 못하지만, 명철한 자는 마음으로 선명히 체험합니다.(33) 공의를 행하면 자기 뿐만 아니라 나라까지 영화롭게 합니다. 반면 죄는 자기만 부끄럽게 할 뿐 아니라 백성까지 욕되게 합니다.(34) 슬기로운 신하는 왕에게 은총을 입고 욕을 끼치는 신하는 그의 진노를 당합니다.(35) 한 사람이 어떤 길을 가느냐는 그 사람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공동체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15장 1절부터 7절은 말의 영향력입니다. 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부드럽고 친철하게 대답하려면 상대방의 말을 잘 경청해야 합니다. 기분 상하게 들리는 말이 어떤 때에는 내게 꼭 필요할 말이 됩니다. 상한 감정으로 과격하게 말하는 것은 분노만 키울 뿐 문제해결에는 아무 도움이 안됩니다. 지혜 있는 사람은 상대방이 납득할 수 있도록 적절한 언어를 구사합니다.(2) 반면 미련한 자는 자기 기분대로 쏘아부칩니다. 여호와의 눈이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고 계심을 믿어야(3), 유순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온순한 말은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에게 생명나무가 됩니다.(4) 반면 패역한 말은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모두를 상하게 합니다. 아버지의 훈계를 업신여기는 자녀들이 있습니다.(5) ‘노인네 입 좀 다무시지? 나도 이제 어른이야’, 그는 머리 큰 자가 아니라 미련한 자입니다. 부모의 경계를 잘 받아들일수록 슬기로와집니다. 자기주도형 학습에 능한 자녀들을 보면 대부분 그러합니다. 6절을 보십시오. 그런 사람 하나는 집에 많은 보물을 가진 것처럼 든든함을 줍니다.(6) 반면 훈계를 거부하는 악인은 소득이 많아도 고통을 줍니다. 지혜로운 입은 살이 되고 피가 되는 지식, 삶을 풍성케 하는 지식을 말합니다.(7) 미련한 자일수록 그때 그때 기분 따라, 자기 유익 따라 내뱉습니다.
8-15절은 삶으로 끼치는 영향력입니다. 8절을 보십시오. 악인은 아무리 그럴듯한 제사를 드려도 여호와의 미움을 받습니다. 반면 정직한 자는 제물을 드리지 못하고 기도만 드렸는데도 그가 기뻐하십니다. 정직한 자의 기도는 회개해야 할 때 회개하는 기도, 감사해야 할 때 감사하는 기도입니다. 악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고 공의를 따라가는 자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십니다.(9) 그러므로 믿음의 길, 의의 길에서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도를 배반하는 자들은 엄한 징계를 받을 것입니다.(10) 견책을 싫어하는 자는 죽을 것입니다. 스올이나 아바돈(지옥)처럼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곳이라 할지라도 다 아시는 하나님이시니 인간의 마음을 아는 것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거만한 자는 견책 받을 때에 회개하기를 싫어할 것입니다. 지혜 있는 자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을 것입니다.(12) 하나님 무서운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악인은 악을 행하여 곤고할지라도 스스로 하나님 앞에 돌아오지 못합니다.
식물이 빛을 보며 살아야 번성하듯이, 사람의 마음 또한 어둠이 아닌 빛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까지 빛나게 합니다.(13) 의인의 길을 가는 자와 악인의 길을 가는 자의 얼굴이 다른 이유입니다. 악인은 아무리 명품을 걸쳐도 마음에 파고드는 근심으로 말미암아 영혼이 상합니다. 명철한 사람은 영적 지식의 유익을 알고 거기에서 떠나지 않습니다.(14) 반면 미련한 자는 욕망을 좇아 살아가며, 미련한 말들을 내뱉으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습니다. 의인이나 악인이나 세상살이가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15) 다만 마음을 즐겁게 하여 항상 잔치하는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좋습니다. 노벨상 수상자 한강씨의 고백이 생각납니다.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고, 그러면서 세상은 왜 이리 아름다운가” 고달픈 인생, 감사가 지혜입니다.
16절을 읽겠습니다.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자본주의 시대를 사는 청년들에게 필요한 말씀입니다. 가산이 적은 생활과 크게 부한 생활을 단순 비교한다면, 당근 부한 생활이 좋습니다. 그런데 가산이 적은 목자와 크게 부한 불신자를 대조하면 어느 쪽으로 기울어질까요? 17절을 보십시오. 채소를 먹으며 가난하게 살지라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부자로 살아도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부자로 살아본 사람은 공감할 것입니다. 부자라도 다투고 시기하며 분을 내며 산다면, 지옥에 사는 것입니다. 분을 쉽게 내면 다툼을 일으키고 노하기를 더디 하면 시비를 그치게 합니다.(18) 마음을 다스리는 일에 게으르지 말아야 합니다.(19) 마음을 다스리는데 게으르면 가시 울타리를 만납니다. 만약 분을 쉽게 내는 사람이 있다면, 정직하게 자기 약점을 인정하고 바꾸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그가 가진 재능을 펼칠 수 있는 대로가 열립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지혜로운 사람은 엄한 아버지라도 웃게 하는 말을 하고, 미련한 자식은 힘없는 어머니를 업신여기는 말을 합니다.(20) 인생에 도움이 안되는 것, 해를 끼치는 것임을 알면서도 끊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21) 미련한 것을 즐기는 무지한 자들입니다. 명철한 사람은 미련한 것을 버리고 바로잡습니다.
22-33절은 올바른 의사결정에 대한 말씀입니다. 2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무너지고 지략이 많으면 경영이 성립되느니라” 집을 잘 세우려면 의논이 많아야 합니다. 무대포로 결정하지 말고 집단지성의 힘을 의지해야 합니다. 시간과 상황에 맞는 적절한 말(의논)이 나올 때, 기쁨으로 경청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23) 사람의 소리에만 귀를 기울일 것이 아니라 위를 향한 귀를 열어두어야 합니다.(24)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24) 그러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시간이 오더라도 해를 당하지 않습니다.
그리하려면 매순간 겸손해야 합니다. 2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는 교만한 자의 집을 허시며 과부의 지계를 정하시느니라”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교만을 떨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들의 기업을 빼앗고, 과부처럼 힘없는 자들의 기업을 지켜주기를 기뻐하십니다. 힘없는 자들의 기업을 빼앗자는 악한 꾀에 솔깃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호와의 진노를 부르는 짓입니다.(26) 이익을 탐하는 자들의 소리에도 끌려가지 말아야 합니다.(27) 눈앞의 유익을 좇아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자들임을 알고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 의견은 아무리 그럴듯해도 집을 무너뜨리는 부메랑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악한 자들의 꼬임에 흔들리거나 동조하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깊이 생각하고 말해야 합니다.(28)
어떤 결정을 내리고자 할 때 잊지 말아야 할 한가지가 있습니다. 29절입니다. “여호와는 악인을 멀리 하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느니라” 사람이 세상을 주관하는 것 같으나 여호와가 세상의 주관자이십니다. 여호와는 악인을 멀리하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여호와는 의인들의 간구와 탄식과 부르짖음을 다 듣고 계십니다. 눈이 밝아, 분별력을 가진 사람이어서 여호와의 주관하심을 바라볼 수 있다면, 악한 세상에 짓눌리지 아니하고 기쁜 마음으로 살 것입니다.(30) 좋은 소식, 곧 복음으로 뼈를 윤택하게 할 것입니다. 훈계를 받을 때에 생명을 주는 경계로 받아들일 것입니다.(31) 반면 훈계받기를 싫어하는 자는 자기 영혼을 망치는 자입니다.(32) 쓴소리, 귀에 거슬리는 견책을 달게 받을 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지식이 됩니다.
33절은 결론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훈계의 말씀을 겸손히 따르는 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삶이 존귀해지고 존귀한 공동체를 세우게 됩니다. 각 사람에게 믿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