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보면 멋진 외관에 대형 주차장을 갖춘 건물에서 커피를 판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상호를 내걸고 손님을 불러들인다. 반면 토종 커피전문점이면서도 그 이름이 어느 나라말인지 알 수조차 없는 간판을 내걸고 장사를 한다.
화려한 외관에 넓은 매장을 갖춘 커피 전문점에는 언제나 젊은이들이 붐빈다. 친구나 연인들이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도 보인다. 반면 노트북이나 태블릿 PC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장시간 무언가를 하고 있는 모습도 많다. 곁에는 반쯤 마시다 둔 잔이 있다. 차를 마시러 자주 가지는 않지만 갈 때마다 신경 쓰인다.
어쩐지 침묵해 주어야 할 것 같은 느낌? 아니면 적어도 소음을 내서는 안되겠다는 배려? 이즘에서 젊은이들 문화에 대한 몰이해를 생각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시끄럽고 붐비는 곳에서 무언가를 해야 잘 되는가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모름지기 고요와 집중 속에서 깊은 궁구(窮究)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해외여행 시 보았던 유럽의 카페 풍광은 우리와 다르다. 술도 팔고 차 종류도 팔긴 하지만 매장 안보다 오히려 따스한 햇살 속에서 길거리에 내놓은 탁자와 의자에 앉는 것을 좋아한다. 지나는 사람들과 거리 풍경을 바라보며 담소하고 분위기를 즐긴다. 사람과 반려동물, 자유롭게 나는 새들, 인간이 지닌 표정과 무표정이 만들어내는 거리도 하나의 문화로 인식한다.
언제부턴가 우리나라 커피 점은 음악을 들으며 자신의 주업을 전문적으로 하는 장소처럼 보인다. 벽면을 바라보며 긴 테이블이 놓인 곳은 한 사람이 방해받지 않고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칸막이도 되어있고 콘센트도 비치되어 있다. 장시간 개인 컴퓨터를 두드리며 일을 해도 눈치 주는 이는 없어 보인다.
나지막하지 않은 정도의 음악이 계속 흘러나오고 사람들의 오가는 발자국 소리가 끊임없다. 이런 곳에서 회사 사무실에서 해야 할 일이나 학교 도서관에서 해야 할 공부가 제대로 될까 하는 생각을 한다.
개인 통신기기가 급격히 발달한 이후 학생들이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를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집중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정신통일이라고 쓰인 수건을 머리에 동여매고 초집중하여 죽기 살기로 공부하는 척(?)했던 우리 세대가 이런 문화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어떤 이들은 이런 커피 전문 매장에서 외려 집중이 잘 된다면서 아이들까지 모아 과외까지 한다고 하니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오히려 적당한 소음과 무관심한 사람들이지만 누군가 보고 있다는 느낌으로 공부 효율성이 더 높아진다고까지 하니 더 이상 할 말이 없긴 하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번화가에서 다방을 찾기는 쉽지 않다. 혹 다방이란 간판을 어렵게 찾아 들어가면 손님 맞는 태도에서부터 분위기까지 썰렁하기 그지없다.
오래된 친구와 만나면 음식이든 차를 마시든 옛날 분위기를 느끼고 싶을 때가 있다. 다방이란 간판을 보면 어쩐지 옛날 정서를 느낄 수 있을 듯해 반가운 마음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대체로 실망이다. 주인의 태도 탓이다. 마을 사랑방같이 아늑한 분위기를 기대하고 들어간 것은 아니지만 씁쓸하다.
주문한 차를 말없이 가져다 놓고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 면벽 수도를 계속한다. 팔기 싫은데 억지로 파는 것처럼 느껴진다. 조금 황당하고 무안하기까지 하다.
물론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손님들에게 방해가 될까 조심한다고 이해를 한다. 하지만 마치 얻어마시러 온 사람을 대하는 듯한 태도는 조금 심하다. 가벼운 미소 정도는 함께 내어놓아도 좋지 않을까. 그러다 보니 커피 맛도 맛이지만 분위기와 취향을 중시하는 젊은이들이 외면하는 모양이다.
나이를 기준으로 다방 출입을 자유로이 할 수 없던 시기가 있었다. 당시 다방은 궁금함과 호기심이 교차하던 장소였다. 소설 속에서나 분위기를 상상할 수 있는 곳. 마을 유지이자 돈깨나 있고 호기 깨나 부릴 줄 아는 김 생원이 군청 서기나 면사무소 주사를 만나 이런저런 청탁도 하고 무언가 부정한 일을 꾸미는 장소?
넉넉한 살림에 할 일없이 시간만 많은 장년의 배불뚝이들이 틈만 나면 읍내 다방에 들려 수시로 교체되어 오가는 젊은 다방 레지들의 희디흰 손을 만지작거리며 은근한 수작을 늘어놓는 곳. 청춘 시절에 읽었던 소설 속 다방이다. 다방 출입이 자유로워진 성년 이후 사람을 만나기 위해 들어갈 때도 그렇게 마음 편한 곳은 아니었다.
뿌연 담배연기가 가득한 그곳에는 대체로 나이 많은 양반들이 죽치고 앉아있었다. 계란 노른자를 띄운 쌍화차를 마시며 마담, 레지 해가면서 시간을 죽였다. 젊은이라고 해야 덥수룩한 머리에 가죽 점프를 입은 동네 건달들이 할 일없이 진을 쳤다.
처음 다방에 갔을 때 보았던 그 낯선 풍경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종로 어디쯤으로 기억되는 곳에 태양 다방이란 상호의 다방이 있었다. 흐릿한 조명 탓에 해가 중천에 뜬 한낮에 들어가도 두서너 자리 떨어진 곳의 사람 윤곽을 알아보기 쉽지 않았지만 언제나 손님들로 만원이었다.
그럴듯한 머리 모양에 콧수염까지 길러 험악해 보이기까지 한 디스크자키라는 이름의 진행자가 다방 유명도를 좌지우지하던 시절이다. 유리 칸막이 안에 앉아 긴 막대 끝에 달린 마이크로 저음의 멘트를 하면서 귀가 먹먹할 정도의 고음으로 팝송이나 유행가를 틀어 주었다.
입구에 들어서면서 떼어온 메모지에 신청곡을 적어 내고는 대책 없이 기다렸다. 신청자 이름과 함께 노래를 틀어주면 동석한 이들과 박수 치고 환호했다. 생일 파티는 물론 축하할 만한 자리를 유명 다방에서 하는 이들도 많았다. 세상 할 일이라고는 디스크자키의 멘트와 음악을 듣는 것뿐이라는 표정으로 찻잔을 홀짝거리며 마냥 앉아 있는 풍경도 심심치 않았다. 번화가 유명 다방은 젊은이들의 문화 소비처이자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는 해방구 역할도 했다.
어느 날부턴가 그런 다방이 사라지고 이름도 생경한 커피전문점들이 하나둘 들어서더니 이제는 한집 건너 유명 브랜드 커피 가게다. 이런 곳의 커피 가격은 서민들이 자주 이용하기엔 부담스러울 정도로 만만치 않다. 동네 중식당의 짜장면이나 짬뽕보다 결코 싼 가격이 아니다.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몇 시간씩 정담을 나누거나 음악을 즐긴다면 자릿값을 낸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우리 세대 대부분은 그런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 혼자서 일을 하거나 커피를 마시기 위해 전문 매장을 방문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찾기 쉬운 약속 장소로 이런 유명 커피 점을 가긴 하지만 다소 시끄럽게 느껴지는 음악이 썩 즐거운 곳은 아니다. 길에서 들여다볼 수 있게 된 통유리도 조금 어색하다. 차를 마시고 담소하며 길거리를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구경을 당한다.
그들은 전혀 그런 생각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웬 나이 든 사람(?) 하는 듯한 젊은이들의 시선도 신경 쓰인다. 찻값에는 장소 점유 가격도 포함되었을 텐데 분위기를 즐기기는커녕 할 이야기만 하고 후루룩 커피를 마신 채 쫓기듯 나오기 일쑤다.
불과 반세기도 지나지 않은 시간에 사라지고 바뀐 것들이 너무나 많다. 일전에 유럽 여행을 다녀온 지인이 전해준 말에 의하면 프랑스 파리에서 문화와 예술의 산실로 자리했던 카페는 약간 변하긴 했지만 아직도 그 원류를 간직하고 성업 중이라고 한다.
격동의 시기를 지나온 우리나라는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모든 것이 빠르고 색다르게 변한다. 커피 전문점이 늘어나면서 다방은 사라지고 카페족이라는 이름도 생소한 족속이 생겨난다. 때맞추어 커피 전문점은 이들을 끌어들여 유연근무나 학습공간 장소로 제공하며 공생한다.
세상의 변화에 발맞춘 변신과 진화만이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오래된 자연의 법칙이다. 사라지고 없어지는 다방을 찾아 옛 추억만 고집할 것은 아니다. 세계인이 경탄하는 빨리빨리 문화와 어느덧 고급스러움의 경지까지 오른 K문화에 적응하고 즐기도록 변신해야 꼰대 소리를 면한다.
꼰대마저 피해 다니는 다방은 이제 세계문화유산으로나 등재해야 될 모양이다. <끝>
첫댓글 글을 읽으면서 저의 지난 삶에 녹아있는 여러 장면들이 떠올라 순간 추억여행 했네요
덕분에 유럽국가들의 카페 풍경은 어떤지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차한잔 마시며 하루를 시작해 봅니다
관심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프로방스 아를 지방 카페들이 낭만적인 모양입니다.
오늘은 기억 속 커피 향기를 맡습니다.
김작가님 탄문에서 자주 뵈니 좋습니다.
그곳 사진들도 멋있더군요.
주말 행복하게 보내세요.
그 시절 다방을 떠올리며 비오는 봄날 아침 커피 한잔 합니다.추억을 찾아줘서 감사합니다.좋은 날 되세요.
봄비를 뚫고 여기까지 오셨군요.
양평 사시는 재미가 어떠신가요?
언제 한 번 가보아야 하는데......
양평 오일장에 맞추어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ㅋ
@이덕대 봄꽃과 함께 오세요.3,8일이 장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