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 시집 『그대 마음 훔쳐 싣고』
제 1 부 : 계절속 마음밭 하늘꽃
삼월에
아침 散策
계절속 마음밭 하늘꽃
오월의 노래
둔산의 아침
내 유년의 보리밭에는
세월속 마음속
몫
山은 물이 되고 물은 山을 이루니
宣言
등걸밭
겨울바다
겨울 山頂에서
제 2 부: 빗속의 계절여행
그대의 흰 돛
사랑의 言語.10
사랑의 言語.11
구봉산에도 여름비는 내리고
그대 마음 훔쳐 싣고
猶豫
그믐밤 그 바다에는
빗속의 계절 여행
그림 같은 밤
보물 찾기
안나의 여름
미시령 단풍
넋 씻김굿
제 3 부 : 가을 하늘은 여름바다를 꽃다발처럼 가슴에 안고 싶지
둔산동 개구리는
寶文山
속리산의 아침
龍鳳山에 올라
南原에서
중생에도 法語가
땅끝마을에 와서
來蘇寺 벚나무
소요산을 내려오며
능가산 開岩寺에서
가을 하늘은 여름바다를 꽃다발처럼 가슴에 안고 싶지
작은 나무의 반란
農家日記
自然의 아들
제 4 부 :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신간센으 따라
동경국립박물관
긴자거리에는
桂林의 리강에는
오리떼인가 했더니
水墨畵 속에 잡혀
홍구공원에서
상해 임시정부 청사는
만리장성 팔달령 문루에 올라
베이찡 스켓치
자금성
순박한 농부들은 청천하늘에 치는 날벼락을 보고도 물꼬를 보러간다
늘푸른 세월속에
아들아
제 1 부 : 계절속 마음밭 하늘꽃
삼월에
아침 散策
계절속 마음밭 하늘꽃
오월의 노래
둔산의 아침
내 유년의 보리밭에는
세월속 마음속
몫
山은 물이 되고 물은 山을 이루니
宣言
등걸밭
겨울바다
겨울 山頂에서
삼월에
傲氣만 살아
더 빳빳해진 청솔가지
흰 구름 쫓다 돌아와
통 굵어진 나이테
세상은 머리칼 흩트린 채
회색 벌판에 누워
오늘을 넉살떨고
봄비 내려 좋네
대지의 물 온몸에 뽑아
망울망울 순 내놓고
초록빛, 얼레 빗, 마음 빚
거울 찾아 가꿔가며, 갚아가며
작은 바람에 크게 움직이는 잔가지
가지마다 포롯포롯 피어오르는 안개 꿈.
아침 散策
감나무 꼭대기에
아침 햇살 받아
더욱 빛나는
까치밥 한 알
산새들이
불어대는 하모니카 소리에
실비단 안개는
꽃잎 위에 이슬로 남고
가을 하늘을
아침 散策하며
호주머니속 낡은 지폐를 꺼내
다시 펼쳐보듯
하루를 맞는다
계절속 마음밭 하늘꽃
三月 하늘은
흰 백합
어둠속에 피는 꽃은
향기로 불꽃을 태우고
四月 마음은
아우내 장터 횃불
검은 포장을 뚫고
새가지 뽑아
솟는 해 맞으러 간다
五月 하늘은
그믐빛에 걸린 초승달
숨이 너무 차
장수바위에 앉아
보름달로 보픈다
六月 마음은
과녘 맞춘 화살
심장에 꽃친 촉은
고향을 떠났어도
뜨거운 피가 돌고.
오월의 노래
봄 냄새
풋내음
비릿한 오월꽃
상큼한 살 내음
새볔비 훑고 간
그대 마음밭
초록빛 그리움
죽순처럼 돋아 오르고
배동 오른
아침 햇살
가슴속 깊히
아카시아향 나르고
저녁 노을에
불 타오르는 역재방죽
옛 추억의 노래
개골개골 개골.
둔산의 아침
새 햇귀 터져
불 붙는
큰 바다 한밭 벌
新婦처럼
풍겨내는
야리리 풋내음
잠자리 펴던
계룡, 신도안
골안개 구름
산비릿내 싣고
둔지벌에 내려
새벽처럼 홰를 치고.
내 유년의 보리밭에는
내 유년의 풋보리 밭에는
꿩알 주으러 아침에 들어간
동네 친구 철이가
점심대가 넘어 저녁
다시 몇 밤, 몇 달
몇 해가 지난 여직까지
억새꽃 나비 되어
노을밭 서성여도
깜장 고무신 뒷굼치 한 쪽
내보이지 않고
내 유년의 청보리 밭에는
숨바꼭질 놀이 하다가
짚더미 넘어간 술래
숫자 세어가는 목소리
들려올 듯, 말 듯
앞머리 뒤퉁수 덮어
꿈결에서 챙겨봐도
긴 머리칼 한 올
넘어오지 않고
내 유년의 갈보리 밭에는
길찬 장다리 꽃밭에서
밀려온 노랑나비 한쌍이
날개깃에 묻흰 보리 깜부기
서로 털어다가
호랑나비가 되어
마음속 사래 긴 밭
돌고돌아 찾아봐도
풀피리 소리 한 잎
돋아나지 않고
세월속 마음속
마음속의 텃밭
그 빈 언저리에
낯익은 계절이 찾아와
새싹과 꽃눈을
산뜻한 살내음을
품어주는 일은
삶의 유혹이다
바라만 보아도
꽃으로 머무는 하늘
흰 구름 차고 들어가
창공을 헤엄치며
계절 속 숨긴 추억을
그대에 훔쳐 찾아가는
세월 속, 마음 속
몫
안뜨락에 갓피어난
나의 꽃몽올을
꽃샘바람이 훑어갔다
때 묻은 길거리에
짓밟힌 바닥 위에
나르려다 찢겨버린
노래의 날개깃이여
꽁무니바람 꼭지 떨어진 뒤
몽당비라도 찾아내
소리나게 쓸어보자
삽사리 발톱에 채인
꽃넋의 시신을
장대라도 가져와
꽃목이라도 치어보자
차지하면 챙겨질
고목 위의 몫
몫 속의 새 筍.
山은 물이 되고 물이 山을 이루니
돋은 살점
다시 떨어지것다
袈裟와 長衫
벗겨버린
四月의 휘파람소리
철지난 아망위에
입마개 물호스
연화 무늬 석등
넘어져 목탁 깨어지고
목 치듯 자른 머리칼
끊어버린 속세
닭벼슬 잘라
중벼슬 만들고
山은 山이고
물은 물이로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움보살.
宣言
낡은 意識의 꼭지로
빨아 마시던 도회의 숲
고정관념의 뜰을 벗어나
그리움의 깊이 가슴 한 복판에
한 줄기 물꼬를 트고 싶다
日常의 틀에 녹쓴
세월의 빗장을 제치고
굳어버린 僞善의 각질을
벗기고 씻기워
잠겨있는 삶의 물길 깊이보다
떠내려온 목표의 위치보다
더 깊게 , 멀리 흘러보내고 싶다
나 추워 하나 걸치고
남 부끄러워 또 주워입고
관객 눈치보다 불어난
삐에로의 패션무대
베르린장벽의 써치라이트
조명되어 다소곳해질 때
모두 벗어 내던지고 싶다
雪原으로 달려간
겨울나무의 순수처럼
싸락눈 휘몰아 쌔리는
世態의 허허벌판에서
겹겹으로 껴입은 假飾과
마지막 숨긴 변명까지
벗어 버리고, 내품어
太初의 나이고 싶다.
등걸밭
제외된 陰濕地帶
맨살로 부벼대는
기나긴 밤 개구리 떼
피 말리는 사월의 울음은
제몸 너비보다 더 흔들린다
진흙 속더미에
자라목 되어 떨어져 뒹구는
유년의 꿈은 나의 체온
그 속잎파리 갈피마다
피돌기는 멈추지 않고
눈비늘 비껴날려
옛 향기를 펌푸질 하는
내 故鄕 밤나무 등걸밭
천둥번개 섞어쳐도
어린 싹들의 파랑개비는
언제까지나 돌고 있지 않네.
겨울 바다
겨울
바다의 순정은
그대 앞가슴
뱃머리
채이면서
수정꼭지 잠시
반짝이고
배 지난 뒤
아물어져
칠해가는 초록빛
멀어지면 질수록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바다 색깔.
겨울 山頂에서
하루는
빛처럼 다시 사라져도
조그마한 역사 한 줌
건져놓지 못한 고요의 숲
밤바람 소리마저 떠나버린
침묵의 江
막연한 기다림 속에
상현달빛이 고마왔다
함박눈 마음밭에 내려
살속 파고드는 촉감이 좋았다
달빛 받아 곱게 핀 눈꽃
알가지로 남아 더욱 좋은
겨울나무 속가지.
제 2 부: 빗속의 계절여행
그대의 흰 돛
사랑의 言語.10
사랑의 言語.11
구봉산에도 여름비는 내리고
그대 마음 훔쳐 싣고
猶豫
그믐밤 그 바다에는
빗속의 계절 여행
그림 같은 밤
보물 찾기
안나의 여름
미시령 단풍
넋 씻김굿
그대의 흰 돛
閏四月
꽃샘바람 스쳐간
不惑의 잔가지
꽃망울
꼭지 떨어진 자리에
철 늦은 초록 筍
대신 돋아
색깔 짙어가고
幼年의
마음자리 깊이
실뿌리 묻어 놓고
꽃다운 이파리
꿈꾸며 아침 맞은
사철 푸른 나무
새벽비
씻고간
풋가지 매디마다
곱게 파도쳐오는
그대의 흰 돛
사랑의 言語.10
철철 끓는 쇳물도
빨갛게 달아오른 인고의 터널을 지나야
무서운 힘, 강철로 굳어지고
혼 깊은 불씨 한덩이
춥고 어두움 속에 남모르게 싹 터
불붙은 가슴 아침해로 떠오르나.
사랑의 言語.11
기다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작은 꿈 품을수록 더 인간답고
오월 하늘 아카시아 꽃에는
잔가지 많은 나무일수록 향기롭고
빈가지 위에 꿈 한쪽 열매로 매달았더니
사랑의 원액은 눈물 되어 뿌리로 흘러내렸다.
구봉산에도 여름비는 내리고
이쯤에서 우리
밤을 곱게 입어요
여름 소낙비
한껏 씻어준
구봉산 아홉 잘록이마다
저녁 안개
신선 태워
산벚꽃나무 위를
나비처럼 날고
山바람
골 속깊은 바람
아무리 보채어도
드러내지 마세요
보일듯 말듯
여기에서 시간을 멎어요.
그대 마음 훔쳐 싣고
새벽 봄비 발자취에
선잠 깬 이른 아침에는
막 목욕 후 머리 빗고 있을
고향 언덕 청보리 밭
배동 오르고 있는 新婦가
야리리 풋살 내음 품기며
하루의 쟈크를 열고
비 맑게 갠 뒤
옛 그림자 , 아침햇살 타고
닦아놓은 내 마음의 창에
파도처럼 밀어닥칠 때
화사한 찔레꽃 덩쿨
곱게 덮어 가는
유년의 뒷동산에 올라
풀피리 늴리리, 저기에
하얀 드레스 자락 날린다
소장산 연달래 꽃불
저녁노을에 옮겨 붙어
바라보며 뒤는 가슴 깊이
연분홍 꽃물 스며들 때
지켜오던 자리 용수철처럼
빈손 탁탁 털고 일어서
역류하는 물살따라
그대 마음 훔쳐 싣고.
猶豫
느네 그도 없고
나네 그도 없는
텅 빈 자리
피비린내에
찌든 주제가
피로하다.
하나서
둘이 되어
그렁저렁
살다보면
채워지는 것을
소리치며
눈 부릅뜨며
툴툴 털고 일어서는
서러운 뒷 모습들
돌아와라
외로운 자들아
우리끼리 모여
빈자리 채우며
둘이도
하나처럼 살자.
그믐밤 그 바다에는
별꽃몽올 보플자
달그림도 멈춰 선
동해의 그믐빛
볼 곱던 하늘
살금살짝 내려와
칠흑 바다 위에
살을 꽂는다
겉호창 이불 속에서
들릴듯 말듯
하얀 목소리
밤파도 앓는 소리
하늘 천 하고
다시 따지
이엉 엮듯이
갑사댕기 풀듯이
희여멀건
밤바다의 허벅지
하늘 끝을 향해
산봉우리를 만들고.
빗속의 계절 여행
봄비 갠 뒤
타는 저녁놀은
연분홍 영산홍
라일락 꽃내음
포도빛 그림자
여름비 갠 뒤
바라본 하늘은
하늘하늘 치마폭
선보인 꽃唐鞋
드러난 외씨버선 코
가을비 촉촉한
내마음의 뜨락은
그네줄 잡은 손
힘차게 잡아당기자
飛翔하는 새
겨울비 촉촉히
그대 머무는 곳
울리지 않는 종소리를
캔버스에 담아 그리고 있는
눈먼 화가의 純情
그림같은 밤
구름다리
널뛰며 자라준
대둔산 초승달
다소곳이 들어와
차지한 마음밭
추부터널 넘으면
내가 키우는 상현달
동양화 속의
한 폭 그림 되어
추억의 그림자를 되비추고
저녁놀에
붉게 불붙어 가는
대청호의 푸른 물결
어둠에 쫒긴 새처럼
품안에 둥지 틀며
마음결 색칠해 가고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아름답게 그려지는
도회의 화려한 불빛
고요속에 벗겨지는
우암순환도로의 신비
별빛 되어 비춰주는
그대의 총총한 눈빛.
보물찾기
골안개 이슬 맺는
풀꽃을 안아보기도 했지
키가 큰 미루나무 가지를
온힘으로 흔들어 보면
아침 햇살이 밤알처럼 떨어져
새벽별은 분홍꽃으로 피어나고
힘겨운 바윗돌을 옮겨가며
숨겨진 보물은 내차지라고
가슴을 조이며 기다렸어.
열 길 푸른 물속이나
천 길 검은 땅속 깊이나
눈 덥힌 하얀 언덕이나
해와 달이 넘나드는 산정을
꿈처럼 오르고 내리던 세월
꽁꽁 엉킨 마음의 끝
탁 풀어줄 사람 찾아
훔치며 이웃 담장 넘겨보듯 살았지.
삶의 반 이상을 치르고서
이제야 숨은 그림을 찾았네
이렇게 가깝고 쉬운 곳에
장승처럼 서있을 줄이야
이제 비로소 몫의 주인을 알았네
구름이 걷치고나면 푸른 하늘이
꽃이 지고나면 까만 씨알이
꿈이 깨고나면 서 있어야 할 위치에
따라온 세월의 그림자가
색깔을 노래하지 않는 꽃으로
한 잎씩 피어나고 있음을.
안나의 여름
도시에 남아 있던
몇 마리 매미들마져
午睡에 빠진 오후 2시
대지의 온도는 365도
안나가 태어났습니다
체온 역시 같습니다
앞으로 맞이할 삶도
따습고 정겨워야 한다며
버릴 것은 버려버리고
닦은 것은 빛나야 한다며
알살을 씻고 닦아내듯
속마음까지 씻어내더니
1990년 7월 29일
不惑의 씨를 심으며
분홍 저고리 옥색 치마
하얀 미사포에 덮여서
대전시 용정동 성당안
나와 어린 것들의 축복 속에
욕쟁이 신사
주임 신부님의 산파로
아내가 다시 태어나
하나님의 딸 안나가 되었습니다.
미시령 단풍
가려다가 뒤돌아
너를 다시 훔쳐보면
가슴속 바다, 파도 높이는
산을 오르다
터널도 뚫고
불타는 로마
가을 언덕
빨,주,노,초,파,남,보
나는 루이 16세
푸른 깃발에
무차별 放射 해대는
그믐밤의 불꽃놀이.
넋 씻김굿
정오에도 역사의 그림자는
실상보다 훨씬 길었고
자정에도 얼룩무늬 한 세대는
칠흙보다 더 짙었다
내일을 찾아 도마 위에
오늘을 뽑아 칼날처럼
가지치듯 잘라내어
녹슨 머리는 향물 상탕에
숙물 중탕에는 가슴이
손과 발은 청계수 하탕에
다시 씻고 빨아
향내마져 풍겨오고
황촉불 밝혀 놓고
산넋을 부르는 피리소리
이승을 떠돌던 슬픈 영혼
갈 길 찾아 흰 무명천 위에
산지사방에서 모여들고
에라만수 에라대신
이승에서 얻은 恨은
예서 모두 풀어 놓고
차려진 제물 맘껏 흠향 하시고
닦아 놓은 새 길로
왕생극락 하시구료.
제 3 부 : 가을 하늘은 여름바다를 꽃다발처럼 가슴에 안고 싶지
둔산동 개구리는
寶文山
속리산의 아침
龍鳳山에 올라
南原에서
중생에도 法語가
땅끝마을에 와서
來蘇寺 벚나무
소요산을 내려오며
능가산 開岩寺에서
가을 하늘은 여름바다를 꽃다발처럼 가슴에 안고 싶지
작은 나무의 반란
農家日記
自然의 아들
둔산동 개구리는
아파트 공사장 빈터
봄비 맞은 웅덩이에서
제철따라 풋잠 깬
둔산동 개구리는
목젖 깊이 숨겨놓은
비장의 칼날을 뽑아
가슴 저린 사연을
가장 아름다운 노래로
가장 구슬픈 울음소리로
요리를 하여
오월밤 하늘에 상차리고 있다
이승의 마지막 선물
최후의 만찬을 위한.
동네 뒷동산에는 뻐꾹새가
상현달빛 가득 담가놓은
마을 앞 못자리 논에서는
개구리 떼 교향악이
파도 섞어치던 고향
삶은 보리감자 한 쪽에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핑돌던 이웃.
불도져 바퀴에 짚더미가 쓰러지고
수은 가로등 불빛에 반딧불이
금속성 마찰음에 풀피리 소리가
자동차 크락숀에 말방울이
추억 속에 숨겨버린 마을
마지막 고향을 지켜온
둔산동 신시가의 개구리는
봄밤이 짧은 줄도 모르고
첫닭 우는 소리 들려올때까지
목청을 가다듬어 가면서
개굴개굴, 깨굴깨굴, 캐굴캐굴
정부 제3청사 신축공사장을 향해
개개굴굴, 깨깨꿀꿀, 캐캐쿨쿨.
寶文山
朴彭年의 가슴 너비
宋時烈의 눈 높이
해와 달과
크고 작은 별들이
눈맞춤 하다
마음 맡긴 곳
유년의 풀꽃
청춘의 나뭇가지와
愛戀의 열매가
산파도 일궈
역사책 넘기는 곳
천년 두껍아 나오렴
목타는 보물접시에
아침 햇살 가득 담아
그믐빛 삭이며
새벽같이,한밭 뜰로.
속리산의 아침
봄비
목욕한 뒤
실비단 안개 여민 섶
하늘하늘 드러나는
속리의 산허리
고스락
타고오르던
아침 햇살에
신비의 끄나풀 잡혀
흰 까운 벗겨지면
골속물 터져
산파도 몰고오는 바람
복전암 목탁소리는
숨이 점점 가빠지고
법주사
미륵청동불상도
온몸 화끈 달아올라
연천봉과 밀애에 들어갔다.
龍鳳山에 올라
눈 감고 그릴 땐
월출산이다
바로 금강산이다
눈 뜨고 내려보니
龍의 등이고
올려보면 봉황의 날개다
돌산 고스락마다
공룡들이 나와 울부짖고
칼바위, 송곳바위, 말등바위, 5형제바위
마리 맞댄 채 무슨 회의라도 하나
온종일 하늘 아래 그대로고
흰눈 덮힌
옛성터를 따라
龍鳳寺 사잇길로 내려오니
少年최영이 팔을 끼며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
하긴 이 많은 기암괴석이
모두 황금덩이였더라면
또 무슨 욕심 품을까마는...........
南原에서
좁고 깊은 춘향고개
돌아돌아 들어서는
한숨고개 버선발
벗어 넘어
광한루 그네 터
오작교 난간 위에서
비단 잉어 함께 놀다
대밭에 큰 대자로 누워
새털구름 안주 삼아
동동주 한 주발에
나는 ,어사 이몽룡
지리산 뱁사골
산속물 소리 터져
청학동 골바람소리
춘향 마음 뽑아 싣고
갈바람으로 날려와
이 가슴 속에 머무네.
중생에도 法語가
하늘 아래
산
산 그 아래
나
바다 저 아래에서
움 돋는 빛이여.
바다 위애
너
너 그 위에
하늘
저 높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여.
빛과 소리는 하나다
하늘과 바다도 하나다.
땅끝(土末)마을에 와서
빈 소락지라도 크게 한 번
저기 저 파도처럼
바위덩이 무너져라
내리쳐 보고싶다
한라산 밀어 붙여
마라도 까지
까치발 높이 하고
두 손 높이 뽑아 올려
들숨 크게 한 번
들이켜 보자꾸나
백두산 천지물이
조금은 빨려올지
발끝은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갈두리 마을
사자봉 그 아래 땅끝
극남 북위 34도 17분 38초
옆으로 빗금 하나
살짝 그어보면
동경 126도 6분 2초
육지부의 최남단 땅끝
마음빚은 햇살 쫓아
양지 음지 가릴 것 없이
이웃집 담 넘나들듯
꽃씨 날리고 있는데
내 고작 예 멈춰 서
푸른 하늘 맞닿은
최북단 끝을 향하여
날개나 파닥거리다가
제 힘에 지쳐버린 갈매기
來蘇寺 벚나무
올겨울은 건너 뛰고
몸짝 붙여 후천세계
그래도 버려진 계절
잊어버린 위치 못잊어
벚나무 새가지 매디엔
눈꽃몽올을 숨겨 놓았나
일천관 범종소리 무게
白衣觀音 옷 벗기고 있나
끼, 왕소금이 사각사각
서해바다 늦바람
느티고목 앞장 세워
天王門 발로 박차
금강역사 예 있었나
꽃살무늬 문짝 살짝
용머리 조각 모서리
벚곷 다시 피어나고
소요산을 내려오며
산 같은 산들은
언젠가, 누구엔가
정복되고 만다는 진리를
받아들여 몸매 가꾸며 산다
계절따라 시간 맞춰
잠옷 빛깔이 달라지고
화장 범위도 좁아젔다 넓어지고
속옷과 겉옷도 입었다, 벗어버렸다간
11월의 알가지 나무산, 소요산
대한민국 동두천시 개천가 꽃순이는
아메리칸 마이웨이 여름 바닷바람은
스위스 알프스의 늦가을 빙벽의 고드름은
일본제국 후지산의 불붙은 활화산은
숨소리는 하나고 체온만 다를까
산골짝 늘어진 고샅길마다
오색 단풍 떨어져 부토로 남았어도
펄럭이는 원효의 낡은 장삼자락은
소요산의 동두천에서 의정부로
서울에서 대전으로
초승달 보름달 될 때까지
나풀거리며
그림자처럼 뒤따르고 있다.
능가산 開岩寺에서
늦가을 새벽 햇살
함박눈으로 쌓여
사자상 머리 위에
연화좌대 석등에
開岩寺 종소리
대신 꽃으로.
벌레퉁이 밤알 문
능가산의 바람쥐는
돌성 안에서는 주지스님
청댓님에 누워
바라본 내 하늘은
오직 울금바위.
가을 하늘은 여름바다를 꽃다발처럼 가슴에 안고 싶지
꺼진 배 일부러 부풀려
고무풍선 넣은 듯 살아나면
사장님 다 된 것 같던 시대
구슬땀 흘리며 가꿔온 세월
조그마한 열매라도 맺히면
모두가 내 뜻인지 흐뭇했지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의
목줄이 유난히 솟아 있고
말끝가지마다 황금알이 열려있고
내 몫 없어 악수하지 못할 때
시내버스에 제비처럼 날아가는
차창 밖의 오너드라이버 그 반바지가
옛 추억의 긴 그림자일 때
가을 하늘은 여름바다를
꽃다발처럼 가슴에 안고 싶지
작은 나무의 반란
넝쿨장미 뒤덮은
붉은 벽돌담 보다는
개나리꽃 곱게 피워준
생울타리를 바라보며
사는 맛 터득했지요.
잎 지자 꽃이 피고
꽃잎 떨어지면
열매도 맺는다는
자연의 섭리를
삶의 궤도를
낸들 왜 모르겠소만
꽃잎 떨어 버리고
새잎 다시 맞이하는
작은 나무의 반란을
오늘에 깊게 받아들여
내일에 뿌리내리고 싶은.
農家日記
불과 몇 년 전에는
제 자식 보다도 더
애지중지 기르던 암소를
길거리 한복판에 끌고나와
목 졸라 죽여 놓고
땅을 치며 울부짖다가
얼마 후 하늘 끝까지 치솟는
소값 쫓아 심장 뛰다
아주 멈춰버린 농민 후계자
순덕이 오빠가 있었다.
작년 이맘때엔
어린것들 학자금 마련으로
돼지꿈 꾸며 키운
새끼 돼지 어미 되고
그 어미 또 새끼를 낳고
모두 합쳐 계산하니 똥값
가져가는 사람 없어
야산에다 멧돼지 만들고
포크레인 빌려다
돼지 고려장도 하여 놓고
천장만 처다보고 있는데
불과 며칠 뒤부터는
어린것들 학자금 되어도
한낱 돼지꿈은
날라간 현실 그대로였다.
불과 몇 달 전에는
수천만 원 투자로
기십만 원 뽑아낸 우유가
단 돈 몇 만 원도 안돼
맹물 값도 안된다며
장터 길바닥에 물뿌리개 대신
고무 호스로 쏟아버리던
그 보다도 넘치는
눈물로 범벅된 오기를
만용이라 탓하기엔
아무도 어려웠다.
엊그제는
화물 실은 값도 못뺀다며
팔뚝만한 무, 아름드리 배추를
경운기로 밀어붙이며
그럴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가는
얼마 가지 않아서
은무우 금배추 값 되어
경운기 하나 값
갈아엎어 버리고
발이나 동동 굴러야 하는
불확실성의 현실에
함께 해야만 하였다.
오늘은
좋은 것만 골라 뽑아
창고 가득 숨겨 두었던
코 큰 사람들 입맛 맞춰 기른
예산 능금이나 유성 배
군침도 마른 가난한 이웃
쓰레기 야적장에
산더미처럼 버려져야 하는
한국적 모순덩이를
국제적인 가슴으로
감싸며 새겨야 하였다.
내일쯤에는
새순 뻗어가는
텃밭 포도넝쿨을 걷어야 한다
뿌리 채 뽑아내야 한다
비닐하우스도 걷어치우고
복숭아, 살구나무까지도
베어버려야 앞서 가는 농촌
시대에 발맞춰 가는
「쎈스」 있는 사람 된다며
낫과 톱을 찾아
모아놓고 있다.
얼마 후엔
태평양, 인도양 건너에서
배 타고 건너온 과일이나
쵸코렛 맛에 혀를 맡겨야 한다
빠다나 케찹 맛으로
고추장, 된장 맛을 바꿔야 한다
살갗 위엔 솜털이 보송보송
눈동자와 머리칼은 노랗게 변하고
혀뿌리마져 꼬부라들어야
세계화에 동참할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고향 하늘 지키던
농사꾼들 모두 모여
「나이프」「 쿠크」 휘젓는 연습하고
트럼프놀이도 배우며
캉캉춤도 출 수 있어야 된다고
촌티 못벗은 사람 골라
까닭도 없이 을러 보기도 하고
겁주는 방법도 익혀야 한다고
겨드랑에 성경책처럼 끼고 다니던
삽과 곡괭이 자루를
마음은 태평양 한가운데
하낫, 둘, 셋 집어 던지고
도회지 네온싸인 불빛 아래로
날파리떼 되어 날아오고 있다.
自然의 아들
지구는 어머니의 태반입니다
숲속에 피어나는 풀꽃 한송이
그 위를 찾아주는
고마운 벌과 나비
산토끼 모는 살쾡이
비둘기 채어간 독수리 까지도
흙에서 태어나, 흙에서 살다가
다시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우리의 피붙이, 형제자매 입니다.
희롱하지 마셔요
짓밟지 마셔요
산허리를 끊어 문명의 심을 박고
大地의 동맥을 막아 생살이 썩어가고
처녀림에 인공의 말뚝에 박혀
회한의 사생아만 잉태하고 마는
갓 태어난 물고기가 죽어가고
막 피어난 꽃송이가 시들어 갑니다
자연은 인간을 넘보지 않고
자연은 인간을 배반하지 않아요
소낙비 막 씻고 간 솔숲
영혼의 속삭임, 시냇물
새 생명의 약속, 새싹
신비로운 탄생, 꽃봉오리
맛갈스러운 향내음, 열매
좁쌀만한 하루살이에서
바위덩이 같은 불곰까지도
한솥밥을 먹으며
호흡을 함께하고 있는
지구속의 대가족입니다
인간은 지구가 낳은 자연
자연의 아들입니다.
제 4 부 :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신간센을 따라
동경국립박물관
긴자거리에는
桂林의 리강에는
오리떼인가 했더니
水墨畵 속에 잡혀
홍구공원에서
상해 임시정부 청사는
만리장성 팔달령 문루에 올라
베이찡 스켓치
자금성
순박한 농부들은 청천하늘에 치는 날벼락을 보고도 물꼬를 보러간다
늘 푸른 세월 속에
아들아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천둥 번개 칠 수 있는 말
간지럼 타는 속삭임
시대 따라 사람 쫓아
구분해 쓸 줄 알고
머릿속은 하늘 끝까지
깃발 되어 펄럭여도
코밑부터는 마른 땅에
깃대로 꽂혀 있어야 한다
아귀다툼 해야 할 때에는
손과 발도 함께해야 하고
요란떨고 다닐만한 곳에
속속들이 종종걸음 쳐
단단하게 다져 놓아야 한다
자네 머리에 쓰고 있는
빨강색 고깔 모자가
한 손에 끼고 있는 흰 장갑이
반쯤 벗어버린 고무신 축이
나와 세상과 친구의
숨바꼭질놀이를 어렵게 하며
담벼락으로 가로막고 있다네.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人生길 축소판
100만 분의 47
안내 지리부도
도로마다 그림자 지어진
얇고도 굵은 죽사릿 길들
일단은 1단 놓고
z에서 출발하여
넘어야 할 線
넘어서 안되는 線
토라져 돌아 서버린
女人의 의미를 캐듯
s와 t코스를
앞 뒤로 매만지며
그대가 내 안에 있응 때
나는 작은 우주가 된다.
지도책 곳곳마다
직선과 곡선이 그려져 있어도
돌발 시간과 언덕배기 표시는
눈 씻고 찾아도 없다
삼원색 신호등도 없다
쉬었다 갈 준비
비켜갈 여유
빠르면 조금만 더 천천히
느리면 조금더 빠르게
핸들을 부여잡듯,이 세상
中心은 심장 한 복판에
중앙선 침범하지 않고
시시각각 양 옆구리를
때로는 뒷 꽁무니도
음악의 원천은 한 곳
결혼식 행진곡이든
가슴에 못 박힌 진혼곡까지도
마음에서 분류되어
시간 속을 스쳐갈 뿐
달콤한 미소, 쓴 웃음
편애하지 않겠네
꽃불 난 사르비아 꽃밭
흘러가는 샛털구름 벗 삼아
직진하다 우회전
좌회전도 하며, 후진도 하고
작은 우주 안에
人生길 그려져 있고
그 위에 나 서있고
신간센을 따라
神話에 女神은
칼 하나를 내려
나고야를 수호했고
풍요로운 오사카는
구슬 하나로 오직
오늘을 가꿔왔다고 전한다
신요코하마역을 출발
나를 듯 최고 시속 230km
전동차의 차창에는
태평양 연안의 백사장도
오른쪽 멀리 후지산도
야산의 대나무숲까지
그림자처럼 따라붙고
바둑판처럼 그려놓은
논과 밭 사이사이엔 단층 양옥이
마을길 중앙선에는
선명하게 칠해진 백색선
천변 잔디밭마다
한 폭의 풍경화를 그리 듯
간이 골프를 즐기는 농부들.
동경 국립 박물관
안개 낀 눈을 씻고
다시 한 번 확인 해도
여기는 광화문 네거리
서울 사대문 안 국립 박물관
앞으로 헐어져 없어질
구중앙청을 옮겨 놓은 듯
속으로 파고들면 들수록
신비는 벗겨지기 시작 한다
본관의 층층마다 전시된
썩어 문드러진 칼집과
무사들이 쓰던 투구 몇 점.
별관을 찾아야 상감청자도
금관의 영롱한 무늬도
아시아의 곳곳에서 잡혀온
진품의 유물들도
유리 상자 속에 갇혀온
일본제국주의의 그 이후를
여기서 만날 수가 있다.
긴자거리에는
전통을 지키며
가업을 계승 하겠다는
외골수들만이 살아가는 동네
동경의 구시가지
긴자거리에는
허술하다 못해 초라한
최초의 빵집
최초의 맥주집
최초의 국수집이
진짜 자랑거리로 통한다
증조할아버지가 시작한
일거리를 할아버지가
그 아들인 아버지가
그리고 다시 그 아들이
바톤으로 이어받아
마라톤을 하고 있다
빵을 굽기 위해
국립대학 교수직을 마다하고
우동집을 지키기 위해
현직 검사도 사표내고
동경의 구시가지
긴자거리에는
진짜 괜찮은 사람들만
이마 맞대고 모여 산다.
桂林의 리강에는
-중국 기행.1
시대와 장소 인물을
구분하여 말하진 말자
桂林의 개 돼지가 될지언정
왜국의 신하로 머물지 않겠다는 충신
고독한 신선으로 머무는 것 보다는
桂林의 시성으로 남겠다는 풍류가
충신도 신선도 거리가 먼 나까지
중국 광서성 남의 땅
桂林에 늘러 앉아
통굵은 대나무로 자라고 싶다면
멍에나 고삐가 없는 물소떼 속에 묻혀
기존의 틀을 조금씩 풀어 놓고 싶다면
겹겹이 둘러쳐 놓은 자연의 병풍
陽朔까지 펼쳐지는 리강에는
五星紅旗의 그림자가
이만오천 카르스트형 산봉우리가
푸른 물속에 다시 얼 비추이고
40도C의 갑판 위에서
눈 한 번 딱 감고 뛰어내려
대자연과 친구 될 수 있다면
日常의 모든 것을 손 흔들어
배웅해 주고 싶었다.
오리떼인가 했더니
-중국 기행.2
잿빛 물소 떼 이었다
멱감고 있는 원주민 머리통 이었다
물 위에 조금씩만 내보이는
저 많은 부표들을
인간과 자연, 동물과 식물을
무슨 재주로 구분해 알아보며
또 구분하여 선 그어놓을 필요가 있나
헤엄치는 아이들의 등허리는
물소 궁등 짝 그대로이고
손과 발 움직임은 천상
오리발을 닮아 한결같은 것을
자연 속에 침입하여
카메라 셔터만 눌러대고 있는
자연 외 인간들 모두는 여기에서
하나의 보기 좋은 자연의 구경꺼어리.
水墨畵 속에 잡혀
-중국 기행.3
神이 한 폭의 산수화를 그려놓았나
江과 山 그리고 나무 숲
화폭 밖에서 감상하고 있는
사람들끼리 모두 잡혀
더 큰 화폭의 수묵화 속에
새처럼, 통나무배처럼 머물고
속세처럼 익힌 욕망이
여기에선 일어나지 못한다
걸친 체면은 반나가 되어도
끼니때가 되어 조여와도
잊을대로 잊고 있으니
자연 속에 인간이
인간의 마음밭에
신선이 내려와 살고 있는 곳
桂林에 내가 서 있다.
홍구공원에서
-중국 기행.4
대륙의 칙칙한 것만 골라
싣고 흐르는 황포강의 거센 물살은
서해로 깊어갈수록 더욱 얌전해지고
청정해역으로 녹아드는데
반가운 글씨 몇 줄
조그마한 표지판 하나
찾아 볼 수 없는 노신공원
1443년 4월의 봄꽃은
여름 열매도, 가을 향기도
피워놓지 못한 채 시들어 있었다.
전통 쿵푸를 즐기고 있는 사내들과
개방 사교춤을 배우고 있는 아낙들은
반달형 호수 속의 비단 잉어가 되어
하늘과 물밑을 섞어 날고
푸른 잔디밭 광장에서
일기 시작한 황색 바람은
천안문 광장으로 , 레닌그라드로
흙비를 몰아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상해 임시정부 청사는
-중국 기행.5
이삿짐 싣고 막 떠나버린
교외 외곽지대, 남은 풍경
사극 영화 촬영 세트 같은
일자형 연립주택 속엔
빈 세월만 꽉 차 있네
나라 뺏기고 고향 떠나
만리타향 예까지 와
온갖 수모와 울분으로
얼룩진 1926-1932년
馬堂路 306 街에는
전화선 같이 늘여진 빨랫줄
깃발처럼 나부끼는 인민복 가랑이
엉켜져 있는 대나무장대 숲
웃통은 온통 벗어 던진 채
구경거리 찾아 나선
이웃 사람들 속에서
테 굵은 안경알 눌러쓴
金九 선생이 나타나시어
처진 두 어깨 살며시 두드려
용기를 북돋아 주실 것 같네.
만리장성 팔달령 문루에 올라
-중국 기행.6
그와 같은 피와 땀의 댓가는
어차피 얼마못가 안과 밖의 구분 없이
하나가 되버린 구경거리일 뿐인데
한 세상 나 홀로 외롭게 태어나
좋은 사람 얼굴 마주보며 가는 길이
인생길에서 정확한 순서인 것을
이웃과 흙, 돌담을 높이 쌓아놓고
심장을 향해 화살촉 곤두세우며
뼈아픈 과거를 남겨야 했던 연유는?
여름비 비껴 날려 더욱 경치 좋은
만리장성 팔달령 문루에 올라
푸른 안개 속의 산하를 바라본다
천하를 불호령하던 뭇영웅 호걸들은
한 줌의 흙속에 묻혀 말이 없는데
달에서도 보인다는 유일한 인공 건축물 하나
화강암 돌벽 이끼를 헤집고 드러난
인간사 깊은 욕망을 퇴색한 낙서로 맞으며
흉노족의 말발굽 소리를 또 다시 듣는 듯.
베이징 스켓치
-중국 기행.7
자전거는 사람을 비껴가고
자동차는 자전거를 피해가는
살맛나는 도시 베이찡
화려한 과거의 역사는
꿈꾸는 총천연색
850만대의 자전거 바퀴는
아침을 돌려, 사람바다
竹의 장막 걷히자
신비의 베일
시나브로 벗겨지는
3000년의 문화 유적지
북경의 5대 명물은
만리장성, 자금성, 이화원
그리고 천단공원, 명 13능
도시 전체가 보물섬.
잠에서 깨어난 사자
밀림을 헤치고 나와
폭 54m에 직선 도로 42Km
장안대로 달린다
하늘 찌를듯 키가 큰 가로수
화강암 빌딩숲 그 위로
1160만 북경 사람들은
개방화의 파도타기를 즐기고.
자금성
-중국 기행.8
만주 하급 관리의 딸에서
궁녀로, 궁녀에서 황제로
역사의 물결을 바꿔놓은
중국 역대 여걸중 여걸
청말 반세기의 역사적인 인물
영화, 마지막 황제 서태후
명, 청 황제 스물네 명이
대륙을 주무르던 곳
곤명호수 파낸 흙
인공의 만수산 되고
자주색 높은 벽돌담
금나라 찬란한 지붕
용상의 위엄이 도사린 태화전
좌우에는 학과 거북의 형상이
예나 지금이나 長壽는
꿈이었나, 허무였나
자금성 내부의 방은
일만 마이너스 일, 9999칸
첫 방에서 태어난 왕자가
하루에 꼭 한 칸씩만 자도
맨 끝 방에서 잠을 깨면
9999∻365=27.39(세)
이미 황제 되고 왕후 얻어
새 왕자 몇 명은 더 얻었을 나이
웅장할수록 그늘은 넓고
쎈 빛일수록 바래진 역사
영욕이 엇갈린 시대에
빚어진 속빈 강정
비행기 타고 떠나 유물들
바다 건너 채워지는 날
중국 역사의 겉과 속은
강물 되어 바다에 다시 만나리라.
순박한 농부들은 청천하늘에 치는
날벼락을 보고도 물꼬를 보러간다
나의 우둔한 머리로서는 계산이 어려워요
셈 헤아려 볼 재간이 없어요
입은 당장에 반창고로 봉해 놓고
세일할 때 사입은 단별 기성복
걸레 되어 헤어질 때까지
피땀으로 쌓아올린
성냥갑만한 집 한 채
불도저에 밀려나갈 때까지
동전 한 잎 손까딱하지 않고
걸어온 가시밭 길 몇 십년
몫으로 차지한 자갈밭 길 또 몇 십 년
그때 이 한 몸뚱이
이승에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면서
발바닥 물 잡힐정도 뛰어야
청빈하다고 이름 석자 푸른 빛 나게 된
어느 공직자 공개된 재산 정도나
될까 말까 하다고 모두가
하던 일손 놓고 하늘만 바라보고 있으니
나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뭐가 뭔지 도대체 모르겠어요
세 살짜리 손자 이름으로
몇 십 억대 호화 별장
부인. 아들. 며느리. 손주
사촌. 육촌. 고모. 이모
피붙이들 불러내어
대한민국 삼천리 금수강산
발길 안 닿은 곳 없이
냄새 안 맡은 곳 없이
튀밥 튀길 강냉이땅 모두
챙겨 불려 놓았으니
그린벨트는 갈비집으로
문전옥답이며 선산까지
간덩이 큰 어른들께서
단숨에 집어 삼키셨으니
금싸라기 땅, 도회의 빌딩
시민용 다세대 임대주택까지
값진 보석이며 골동품
고가의 미술 작품까지
권력의 질긴 끈에다
굴비 엮어놓듯 꾀었으니
세상 돌아가는 이치
세상 살아가는 방법
나는 아직도 감이 안잡혀요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과
뒤가 구린 사람 몇 명은
반짝쇼로 끝날지도 모른다고
물갈이 각본일지도 모른다고
처음에는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소낙비 피해 나무숲 찾더니
썩어 문드러진 고목이 쓰러지고
황금별이 낙엽 떨어지듯
땅에 떨어져 묻히고
맹수가 쥐덫에 잡히고
잡힌 쥐 고양이 몰고 오고
세상 살다보니 별일 다 보겠어요
속이 다 시원해요
뒤틀린 역사의 물줄기
이제사 제길 찾아
곧바로 흘러가
강이 되고 바다에 이른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권부의 방부제 속에서
곪을대로 곪아온 속살
단칼로 도려내고
새살만 돋아준다면
쓰라린 아픔
왜 참지 못하겠어요
청천 하늘에 치는 날벼락에도
순박한 농부들은
삽과 괭이를 찾아들고
물꼬를 보러 가거든요.
늘 푸른 세월 속에
세월 속에
펼쳐져 있는
늘 푸른 하늘이
내 차지만이 아니라 해도
양지뜸에
곧게 뻗어가는 나뭇가지
챙겨 놓은 몫이 못된다 해도
세월 따라 계절 속에
때깔 고운 꽃잎
향내 짙은 열매 한 알
함께하지 못한다 해도
펼쳐놓은 날개
돌개바람에 찢겨
새처럼, 저 하늘
훨훨 나르지 못한다 해도
눈, 비, 바람 많이 타
휘어진 알가지
너처럼 찾아내
눈꽃송이 함빡 피워놓고
어름깡 밑으로
흘러내리는 시냇물소리
가슴속 깨끗이 씻어 놓고
유년의 텃 밭
마음속 깊은 곳에
봄의 씨 뿌려놓고
꽃과 열매
벌과 나비
함께 어울리는
늘 푸른 세월 꿈꾸며
오늘도 내일처럼 살아 보겠네.
아들아
담양 田씨 29대 손
시조는 전득시공
7대로 내려오면 문원 공
우리 집은 보령공파
19대 자천 전운상 공은
3도 통어사겸 수군절도사
해골선을 만드셨다
20대 성제 전광국 공은
충청도 수군절도사
21대 전문현 공은
희선대부동지중추부사
너에게는 9대조가 되시고
22대에 전응성 공
23대에 전경순 공
24대에 전우규 공
대대로 충신이고 효자이시었다
겨울눈 덮힌 산밭에서
여름수박을 찾아
운명하실 부친을 살려내신
효성의 주인공이
25대 전홍진 공
애비에게는 증조부요
너에게는 고조가 되신다
26대 전용갑 공은
청렴 근검하신 학자
27대 전필수 공은
마지막으로 고향을 지키고 계신
너의 할아버지
네가 좋아하는 시골 할아버지
28대가 바로 너의 아비
네가 부르는 아빠
29대가 바로 너
담양 전씨 대들보
조상에 욕됨이 없어야 하고
후손에 더욱 빛나는
내 아들로
네 자리를 네가 지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