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통령~두리봉~고불암~치인리
목통령에서 두리봉을 경유하고 남산을 넘어 고물암까지의 노정이 오늘 구간이다.
오전 11시 쯤에서야 목통령에 접근하기 용이한 용암리 개금마을에 도착한다.
관광버스도 두세 시간이면 지루함이 덜 하지만 세 시간이 넘어서면 지루하고
따분하고 온 몸이 찌부득하고 머리는 지끈거리기 마련이다.
골이 깊고 대처로 부터도 멀찍이 떨어져 있는 관계로 인적도 없고 쓸쓸하기는
빈 절깐 마당에 들어선 기분이지만 골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이 맵게
콧구멍을 헤집고 지끈거려 몽매한 정신줄을 흔들어 놓는다.용암초교 개금분교
텅빈 운동장에 햇 낙엽만이 뒹굴고 초록산하의 녹즙을 빨아들여 더욱 새파래진
하늘에서는 따뜻한 온기대신 서늘한 바람을 연신 밀어댄다.
개금분교 앞에서 햇볕이 쏟아지는 골짜기로 세멘트 임도가 보인다.
임도를 따르면 비포장의 수렛길로 바뀌고 이내 숲길로 모습은 변한다.
반짝거리며 시절을 풍미하는 무리는 억새의 군무(群舞),오롯이 온몸의 옷을 벗어버린
나목(裸木)들의 침묵은 열반의 지극(至極)을 추구하는 몸짓이다.
짝을 부르는 산새들의 지저김도 바람을 맞는 푸르름의 함성도 메아리조차 사라진
산골짝의 적막은 솔개의 날개짓과 마른가지 사이를 훓는 가을 바람이 대신할 뿐이다.
목통령에 오르니 삼거리 이정표가 산객을 맞는다.왼쪽은 단지봉을 가리키고,
오른쪽으로는 두리봉이 4.2km 거리에 있음을 알린다.
뒷배경을 서슬이 퍼렇고 서늘하기가 어름장 같은 동장군을 둔 배경을 과시라도
하듯이 서북방향의 너른 산여울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에 매운 구석이 도처에
숨어있다.옷깃을 온통 벗어 내려놓은 진달래 철쭉의 말끔한 나신(裸身)에 소름이라도
돋아났는가, 허연 빛깔에 히끗히끗한 색깔이 묻어있다.
솨아! 미세한 모세혈관을 닮은 마른 잔 가지들이 산길을 따르는 산객의 얼굴을
쓰다듬기도 하고 후려치기도 하면서 잰걸음을 나무란다.
사람 한 길이 넘어보이는 철망 울타리를 만나면 울타리를 따라 좌측으로 방향을 잡아나가야
한다.파란 하늘아래 흰 자작나무의 자태가 돋보이고 여전히 진달래 철쭉의 기세는
수구러들 기미가 없어보이고 싸리가지도 한 몫을 하고 나선다.
눈에 거슬리던 울타리를 뒤로하면 삼거리 산길이 보인다.
우측의 희미한 산길은 상개금 마을에서 오르는 산길이다.
산자락은 온통 누런 가을빛의 만추 분위기를 만끽하는데 지맥의 등줄기는
초겨울의 입구에서 짧은 가을을 추억하고 있다.하얀색 장방형의 입간판이 눈길을
모은다. "국립공원내 샛길 출입금지공고"라고 하는 경고문이 자세하게 적혀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금지된 구역을 통과할시에는 과태료 50만원을 부과한다는
부분이다.이곳으로부터는 가야산국립공원이므로 공원관리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리라.
자의든 무의식적이든 걸려들면 벌금은 각오를 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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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 전경
숲길 한번 잘못 들었다가 물게 될 벌금치곤 과하다는 느낌이 들긴 하는 구석이다.
뭇 경제사범이나 정치꾼들의 탈법행위에 대한 제재조치에는 그에 걸맞지 않은
조치가 셀 수 없을 정도로 관대한데 이깟(?)산길 잘못 들었다고 내린 벌칙치고는
잣대가 돌파리 엿장수 가위를 닮았다.그렇다고 벌금받은 사람이 어디 얼마나 있느냐고
벌금내린 사실이 별로 없다고 거품을 내품을지도 모른다.
지키지도 못하고 다스리지도 못할 것은 내놓지도 말아야한다는 사실은
고대부터 잘 알려진 치세의 한 방편이 아니었든가.
쪽빛이라고도 하고 코발트 색을 닮았다고도 하고 눈이 부시도록 파랗다고
여느 시인들이 즐겨 찬미하던 가을 하늘,초록의 녹향을 품어내며 한 시절을 풍미하던
풍요의 푸른계절에서 이제 한 해를 마감하려는 노을의 빛깔 울긋불긋한 잉걸의
송년식을 올리고 있는 산하가 절정의 이별가를 준비한다.
올드랭 사인을 준비할까? 아니지,천지산간을 하얗게 물들이고 말끔하게 리모델링을
마치고나면 긴 세월이 아닌 몇 개월 후에는 상봉을 할텐데 유난 떨 이유가 뭐 있는가.
마른 가지사이로 가야산의 위용이 서서히 몸집을 드러내기 시작한다.요철이 심한
그의 주능선이 여느 산줄기에 비할까마는 주위의 뭇 멧덩이들을 우수마발의
처지로 몰아부치기에는 이 부근에서는 어느 누구고 없겠다.
거칠 것없이 언제고 제 세상인양 막난이 노릇을 했을 잡풀들이 잔뜩 들어선 삼거리 공터,
그런 잡풀들도 누렇게 말라버려 고개를 에워꼬고 허리까지 꾸부리고 자리보존만을
바라보는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덤불사이를 살펴보니 헬기장으로 쓰였던 봉우리,
한쪽의 참나무 가지에 "두리봉"이라고 쓰인 명찰이 매달려 있다.
그러나 원래의 봉우리는 이곳에서 우측으로 10여 분 거리에 있는 봉우리가 진짜
봉우리다.해발 1133.4m의 높이에 삼각점이 한가운데 있고,삼각점의 위치인 두리봉은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에 위치하고 있음을 알린다.
두리봉의 정수리는 잡목으로 둘러쳐 있어 조망도 기대할 것이 없고 명색만 유지한채
방치되고 있는 상태다.
지맥을 이으려면 이곳 정수리에서 조금 전의 삼거리봉으로 되돌아 와야 한다.
버스럭 버스럭 햇 낙엽이 산길을 또 다시 뒤덮고 있다.아직 이파리를 떠나보내지 않고
부르르 떨고있는 나무가지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이별을 서두르라 한다.
뭇 새들의 지저김도 꽃 이웃들도 사라진 숲에는 산객의 이동으로 발생하는
낙엽밟는 소리만이 숲의 고요를 허문다.
철쭉 숲길의 거추장스러운 마른가지들의 태클을 빠져나오면 고즈넉한 노송들이
한가롭게 솔향을 내품는 산길이 나오고 노송들의 뒤를 이은
잣나무 숲도 역시 푸른 숲을 간직하고 모든 옷을 벗어내린 이웃을 위로한다.
춥고 황량한 계절이 닥치면 송백(松栢)의 푸르름이 돋보이는 것은 재론할 여지가 없다.
노릇노릇 겨울을 준비하는 낙엽송 숲을 벗어나면 안부가 나오고 지맥의 산길은
서서히 오르막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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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옇고 희뿌연데다가 이리구불 저리구불 환형동물(環形動物)을 닮은 개다래 넝쿨이
어지럽게 산길을 가로지르고 있고, 씨앗을 은빛날개만 달아서 제금을 낸 억새들이
제 멋대로 허망한 심사를 풀고 있는 사거리 안부를 뒤로하면 멀리 하늘금을 그리는
남산 깃대봉이 아련하다.숨 쉴 틈없이 몰아치는 된비알이 아니라서 조금은 이동에 대한
부담이 가볍다. 하지만 해발 1112.9m의 덩치값은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대개 하기 마련인가 보다.부드러움이 거치름을 감쌌고 완만함이 날카로움을 덮어주었다.
지루하게 이어지는 오름이 다하는 곳에 다갈색으로 힘을 잃은 잡풀들이 뒤덮여있는
빈 공간을 내놓는다.한가운데 삼각점이 보이고 진작에 헬기장으로도 쓰였던 모양인지
표시도 보이고 그리고 한구석에 작은 빗돌이 쓸쓸하게 산객을 맞이한다.
하늘의 푸르름만 추구하려는가,우후죽순 창공의 꿈을 지향하는 낙엽송들의
울창한 숲 길이 이어지고 노송과 잣나무의 행렬이 바톤을 주고 받듯이 산길을
이어나간다.안타깝게 지난 태풍에 횡액을 당해서 허리가 부러진 노송과 뿌리까지 뽑혀버려
말라버린 거목들의 뒷모습에 허망스러움이 가득하다.
묘1기가 외롭게 숨어있는 곳을 지나면 곧바로 길섶에 가야산 국립공원에서 세워놓은
출입금지 안내판이 보인다.벌금을 물리테니 이곳으로는 통행을 말라는 엄포가
내용의 주 어젠다임은 불문가지,조금 더 산길을 따르면 헬기장을 만나게 되고
이곳에서 산길은 좌측으로 방향을 바꾸게 된다.이따금 태풍에 속절없이 누워있는
노송들이며 허리가 부러진 낙엽송들이 눈에 밟힌다.
한 아름이 넘어보이는 굵기의 실한 몸통을 한 노송들이 즐비하고 그에 못지않은
낙엽송들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는 산길은 산객에게는 정말 호사가 아닐 수 없다.
거창군 가조면에서 가북면 소재지를 경유하고 가야산 해인사 경내를 관통하는 도로가
넘나드는 고개, 오늘의 최종 날머리다(15시).언덕빼기에서 좌측으로 조금 내려서면
도로 우측으로 해인사 고불암(古佛庵) 입구다. 불자(佛者)들이 우루루 북적이며 몰려나온다.
이어서 울긋불긋 빛깔의 관광버스 두어 대가 우릉우릉 소리를 내며 다가오더니
그들을 모두 태우고 해인사 방면으로 쏜살같이 사라진다.
어수선하던 암자입구가 금새 적막으로 가라앉는다.암자를 한바퀴 둘러보고
해우소를 들르니 개수대 물꼭지에서 뜨뜻한 온수가 꼭지를 틀자마자 쏟아진다.
옳지! 무엇 큰놈 목욕하듯이 허겁지겁 땀을 씻어내리고 누구 들어올세라 잽싸게
여벌옷으로 갈아입은 후 아무 일 없었던 듯 시치미 뚝 떼고 해우소를 나선다.
이 후로 진행 된 뒤풀이 식사시간은 칠흑같은 어둠이 깔린 가야산 야영장 근방에서
이루어진다.대원들의 헤드램프가 불을 밝히고 가스렌지에 오리로스를 익혀가며
늦은 뒤풀이를 해결한다.식사는 없고 대신 오리로스와 그에 대한 술만 준비된 모양이다.
고기가 제대로 익혀졌는지 대강 짐작으로 판단해가며 헛헛해진 허기를 달랜다.
19시가 출발시간이다.두어 잔 마신 술기운이 솔솔 피어오른다.술을 피하고 오랫만에
몇 잔 마셔서 금방 효력을 보이는가 보다. (2012년 10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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