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관을 나오며 점심먹을 장소를 찾았다.
이곳에 "묵집"이 유명하다고 하는데 "묵집"이 두 곳에 있다.
인터넷으로 검색도 했지만 이곳사람들에게 물으니 그래도 "옥천 묵집"이 더 잘한단다.
정지용 생가를 기점으로 반대편에 있는 "구읍할매묵집"은 전에 할머니가 계실 때는 더 잘했단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는 "옥천묵집"보다 못하단다.
"옥천묵집"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인기를 실감하게 하는 장면이다.
앞의 주차장에도 차가 가득하고 오는 순서대로 번호표를 나누어 준다.
건물 옆에는 도토리를 세척해서 묵을 만드는 곳인데 오는 사람들이 직접 볼 수 있다.
묵이 생각보다 그리 찰지지 않았다.
쫄깃한 맛도 덜하다.
오히려 "부추전"이 더 좋았다.
충남 공주시에서 계룡산 갑사를 가려면 23번 도로를 타야 한다.
첫번째 주유소옆으로 작은 진입로가 있고 "묵집"이란 간판이 보인다.
그곳으로 들어가면 "계룡산 묵사랑"이란 묵집이 있다.
이곳의 묵밥을 먹어보면 결코 옥천의 묵밥이 더 맛있다고 할 수 없다.
지방마다 묵집이 하나씩은 있다.그 지방의 특색의 맛이니 어느 집이 더 우월하다고는 할 수없다.각 개인의 입맛이 다르니 내게는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묵집에서 다시 큰길로 나오면 맞은 쪽으로 "옥천 옥주 사마소"(沃川 沃州 司馬所)가 있다.
"사마소"가 말을 기르는 곳인가 했더니 "조선 중기 지방의 生員,進士들이 각 고을에 설립한 자체 협의기구"란다.
사마소 입구.소
기둥에는 향약(鄕約) 4대 덕목(德目)을 써 놓았다.
덕업상권 (德業相勸) : 좋은 일은 서로 권한다.
과실상규(過失相規) : 과실은 서로 규제한다.
예속상교(禮俗相交) : 예의에 맞는 풍속은 서로 같이한다.
환난상휼(患難相恤) :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서로 돕는다.
옥주(沃州)는 옥천의 옛 이름이다.
앞 뜰에는 흰 무궁화를 심어 놓았다.
사마소를 나와 계속 올라가면 왼쪽 길옆에 "비석군"(碑石群)이 나온다.
"비석군"(碑石群) 맞은쪽에 있는 "옥천 전통 문화 체험관"
무척 크고 다양한 건물이 잇는데 식당과 찻집도 있다.
날도 무덥고 시간이 촉박해 그냥 지나친다.
비석이 있는 곳을 지나 올라가면 향교(鄕校)입구다.
홍살문 아래에 있는 하마비(下馬碑)
향교 입구.
명륜당(明倫堂) 아래에서 본 내삼문(內三門)과 대성전(大成殿)
더 이상 들어갈 수는 없고 오른쪽에 있는 곳은 문이 열려 있는데 사람이 거주하고 있는듯하다.
육영수 생가 초입 담아래 있는 철판으로 만든 안내판.
생각보다 무척 큰 규모의 집이다.
전부터 육(陸)씨네가 옥천의 명문가 부호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집이다.
입구를 들어서서 "사랑채" 안에 있는 육영수 여사의 그림.
간혹 박정희를 연상하여 육영수여사를 매도하는 분들도 있는데 나는 그냥 흘러 간 역사로 보려고 한다.
엣날 신당동에서 거주 할 때 같은 동내였기에 몇 번 먼 발치로 본 적이 있었다.
연못과 "연당사랑"
집안에 연못이 있다는 것은 그만치 세도가나 부호였다는 증거일것이다.
- 사당 -
여기에서 좌측으로 돌아가면 여러 곳을 볼 수 있다.
무더운 날씨에 오래 운전을 하고 왔기에 힘이 들어 대충 둘러보고 숙소인 장령산 휴양림으로 향한다.
휴양림으로 향하는 도중 문자가 온다.
어제 내린 비로 인해 물놀이나 등산은 금지 한단다.
입구에서 키를 받으며 내일은 어떠하냐고 물으니 그건 알 수없단다.
짐을 내리고 주변을 둘러본다.
개울을 건너는 출렁다리.
다리 위에서 보는 계곡 상류쪽.
이곳을 정리하시는 관계자 분의 이야기로는 아침만해도 아래쪽의 바위 위로 물이 넘쳤단다.
다리를 건너면 텐트를 치는 평상이 줄지어 있다.
이곳에서 쉬며 시간을 보냈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폭포.
나중에 보니 저 위쪽에는 물에 들어 가 놀 수있게 만들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