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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들 원문보기 글쓴이: David Eagle
통일 한반도의 상황에 대해서 조금 더 나누기 원합니다.
교황 방문이후 부터, 성도와 교회에 대한 미혹과 핍박, 그리고 이에 타협하며 넘어가는 배도의 물결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차갑고, 경멸에 찬 시선을 받게 될 것이며, 우리에게는 속이 좁고 극단적인 문제 있는 종교인이라는 딱지가 붙을 것이고, 이러한 상황이 계속 진행 되어감에 따라, 언어 폭력과 신체 폭력에도 일정부분 노출되어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까지 진행된 상태에서는, 더이상 ‘법’이 공의를 집행하는 도구로써, 우리를 지켜주거나, 우리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준비해야 합니다. 아니, 준비되어져야 합니다.
앞으로 닥칠 상황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행동할 지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선택한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저희 가정의 3명의 아이들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세상의 문화로 부터 많은 부분 보호받으면서 지금까지 자라고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나타나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당연한 일이겠죠. 내면에는 성령이 임재하고 계시며, 외적으로는 세상의 문화로 부터 보호받으며 자란 아이들이기 때문에, 세상의 문화속에 살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이 땅의 사람들에게는, 그저 이 아이들이 신기해 보일겁니다. 그냥 달라 보일 겁니다. 도데체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궁금해 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그런데요,,,
저희가 식사를 하기 위해서 기도를 할라치면, 그때 부터 주변으로 부터, 차가운 시선들이 날아와 꽂히기 시작합니다. 방금전 까지만 해도, 아이들에게 말을 걸려고 하고, 한 번 만져보려고 하던 사람들도, 차갑게 돌아서 버립니다. 그리고는 저들끼리 수근수근 거리기 시작하며, 힐끔 힐끔 쳐다보며, 우리를 알게 모르게 주시하기 시작합니다.
아마도,,,
그 사람들 스스로도, 왜 그렇게 반응하게 되는지,,, 잘 모를 것입니다.
만약, 왜 방금 전 까지는 그렇게 친절하게 웃으며 다가와서 말을 걸고 호감을 보이다가, 갑자기 그러냐고 묻는다면,
아마 그들은, 왜 그러는지, 대답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왜 그러는지 그들 스스도로 모르기 때문입니다.
왜 갑자가 자기 속에서 부터, 그러한 반감이 일어나는지, 그들은 알지 못합니다.
이것이, 각 사람 속에, 어떠한 영이 거하느냐,,,
즉 성령님이 내주하시느냐, 아니면 적그리스도의 영에 붙들렸느냐,,,
이것 때문에, 그렇게 반응하게 되어지는 것을, 그 사람들이 알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이들에게도 나름의 논리는 있습니다.
당신들 기독교인 아니냐고,,,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이런 이런 일을 하지 않았냐고,,,
기독교는 너희들만 옳다고 말하고, 다른 모든 종교를 부정하지 않냐고,,,
너희들은 조상을 모시는 것도 잘못된 것이라고 하며, 효를 부정하지 않냐고,,,
너희들은 말은 그럴 듯 하게 하지만, 결국 우리랑 똑같이 사는거 아니냐고,,,
우리는 이런 기독교에, 이제는 신물이 난다고,,,
우리가 아무리 착하게 살아가고,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모든 사람을 품는다고 할지라도,
세상의 사람들이, 우리가 믿는 예수님을, 즉 참 복음을 좋게여기며, 믿으려고 할까요?
적그리스도의 영에 붙들린 자들이, 인간의 혼과 육의 영역에서의 호의와 인본적 사랑에 의해서,
그리스도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되시는, 예수님을 믿고 영접할 수 있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교회를,,, 진리를,,, 세상 사람들이 좋아한다면,
우리는 심각하게, 우리의 교회의 모습이 어떠한지, 우리의 전하는 진리가 무엇이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죄성으로 인해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진리를 부담스러워 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존재가, 나는 죽고 주님이 사셔야 한다는 복음을,,, 좋아한다??? 편안하게 느낀다???
물론 우리의 그러한 행동이,
선택함을 받았으나,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자들이, 복음을 듣게 되는, 통로로는 사용되어 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소수의 무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의 착하고 친절한 행동때문에, 마지 못해서 교회에 몇 번 출석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역시나 교회에 실망했다며 떠나갈 것입니다. 혹은 사회 활동 차원에서 교회 모임에는 계속적으로 참석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라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결국 세상은, 참 복음, 주 예수그리스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라는 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는 이 진리에, 이들은 스스로 공격받고 있다고 여길 것입니다.
니들만 옳고, 나는 무조건 틀렸다? 예수를 안 믿으니까? 그러고는 두 가지의 행동으로 반응할 것입니다.
1. 철저히 무시한다.
2. 공격적으로 대한다.
그리고 사회 전체적으로 이러한 분위기가 공감이 되면, 그들은 집단적 행동으로, 1, 2의 행동을 취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중에, 성도라 여겼지만, 그냥 교인이었던 사람들,,
그리고 목자라고 여겼지만, 삯꾼이었던 자들이 일어나서,
‘그래 지금까지 우리가 잘못했다. 이제는 우리만 옳다는 소리는 그만 할께. 그리고 사회의 모든 구성원과 더불어서 잘 살아가며, 사회로 부터 인정받고 존경받고 사랑받는 종교로 거듭날께~!’
라고 외치는 자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자들은, 세상으로 부터 환영받고, 환대 받을 것입니다.
마24: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겟으며 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라라
살후2:3/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 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이러한 무리들이 교회내에서 등장할 때,
교회는 더욱 초라해지고, 더욱 사회로 부터 무시당하며, 동시에 공격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봐라! 너희들 중에서도, 저렇게 잘못을 깨닫는 사람들이 나오는데, 너희들은 끝까지 고집불통 이냐?’
이렇게 되면서, 교회는 더욱 무시당하고, 공격받게 될 것입니다.
교황이 다녀가고,
사람들은 교황이 한 말이, 진리라고 여길 것입니다.
듣기에 편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교황의 종교인, 카톨릭을, 진정한 교회라고 여길 것입니다.
보기에 좋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성도의 모임인 우리의 교회에 대해서는,
진리도 아닌 이상한 것을, 자기들 끼리만 옳다고 주장하는, 편협하고 막혀있고 고집불통인 집단으로 여길 것입니다.
듣기에 블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교회를, 교황의 교회와 비교하며, 무시하고 공격할 것입니다.
보기에도 부담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곧 이러한 시선과 환경가운데 놓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지속될 것입니다.
끝까지 기도하는 소수의 의인의 기도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북한에 복음이 들어가는 문이,
갑자기 열리게 되는 그 순간까지.
사회로 부터 이러한 무시와 공격을 당할 때,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깊이 고민하고, 행동을 결정해야 합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억울하게, 오직 예수님을 그리스도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 다는 이유만으로, 나와 나의 가족이 무시당하고 공격받을때, 맞서 싸울지, 아니면 잠잠 할 지 결정해야 합니다. 잠잠하기로 결정한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그 상황에 처하게 되면, 나의 헌법에 의한 권리를 주장하며, 언어적 폭력/ 감정적 폭력/ 신체적 폭력에 맞서 싸우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올라올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그때의 상황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중에, 실제로 어떠한 행동을 취할지, 결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정하고 나면, 그때 부터는 성령의 인도하심 대로 말하고 행하면 됩니다.
눅12:11/ 사람이 너희를 회당과 정사 잡은 이와 권세 있는 이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 것을 염려치 말라 12/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
하지만,
그들의 때가 그렇게 연속적으로 오래가지는 못할 것입니다.
적어도 북한에 복음의 문이 열리게 되고,
그래서 북한교회가 엄청난 성령의 능력가운데 회복이 되어지고,
대한 민국 교회가 처절하게 허리를 동이고 재를 뿌리며 주님께로 온전히 돌아서게 되어질 때에,
통일 한반도에서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복음의 능력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깜깜하여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강렬한 섬광과 같이 빛날 것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복음의 능력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복음의 능력으로 인해서,
통일 한반도의 모든 영역에서, 잠시동안, 회복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질 때에, 성도와 교회를 핍박하던 자들도, 주춤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 부터,
복음의 능력을 경험했기 때문에, 복음에 깨어지는 자들과,
복음의 능력은 경험했으나, 복음으로 부터 완전히 떠나는 자들로,
명확하게 갈라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것으로 복음의 폭발적 부흥을 이끌 무리와,
적그리스도 체제의 바벨탑을 쌓을 무리로 양분되는 것입니다.
마21:44/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
아직까지 우리 가운데는, 회색지대가 존재합니다.
지금현재 기준으로,
온전하게 주님께 삶을 드리고,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의 인도하심대로radical 하게 살아가는 사람의 비율을 5%로 보겠습니다. 그리고 대놓고 예수님을 대적하는 사람, 기독교를 개독교라 모욕하는 무리의 비율을 30% 정도라 보겠습니다. 그렇다면 여전히, 완전히 예수님을 따를지, 아니면 완전히 예수님을 저버릴지 결정하지 못한 사람, 즉 회색지대에 남은 사람의 비율이 65% 입니다.
이 65%의 사람들이 통일 한반도에서, 복음의 능력이 드러나기 시작할 때 부터, ‘예수 그리스도 or 적그리스도의 바벨탑’ 으로 양자 택일하며, 양 얖으로 갈라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 깨어짐으로 반응 할 사람을, 남은 65% 중에서, 15% 정도로 보겠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50%는 적그리스도의 체제에 순응하는 자들의 비율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을 목숨다해 따라갈 백성의 비율은, 전체 20%가 되고,
예수님을 싫어하며, 목숨다해 바발탑을 쌓은 사람들의 비율은, 전체 80%가 됩니다.
위의 숫자는 성령님께서 주신 숫자도 아니며, 그래서 당연히 정확한 수치가 아닙니다. 그냥 설명을 위해서 제가 임의로 정한 숫자 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양과 염소의 무리가 정확하게 구분되어지기 시작할 때,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하는 무리의 비율이, 적어도 수배는 늘어날 것이라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그 분을 위해 radical 하게 살아가기로 결정하는 무리가, 매우 짧은 시간에 몇 배 늘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가장 어두운 상황속에서, 엄청난 부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목숨다해 바벨탑을 쌓을 무리의 비율도, 같은 시간에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무리들은 더이상 회색지대에서, 속으로만 기독교를 욕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온 삶을 다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미혹하고 핍박할 수 있는, 전사로 바뀌어 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과 질(quantity & quality) 모두에서 엄청난 기독교의 부흥이 일어나는 동시에, 이 기독교를 말살하기 위해 혈안이 된, 군대와 같은 무리들의 숫자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가장 어두운 시간 가운데, 가장 밝게 빛나는,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회색지대에서 뜨뜨미지근하게 주님을 믿던 형제/ 자매들 중에서, 주님을 위해서 이 마지막 때를 radical 하게 살아가기로 결단하는 자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동시에 회색지대에서 속으로만 기독교를 싫어했던 사람들 중에서도, radical 하게 본인의 행복을 위해서 살아가며, 또한 기독교를 핍박할 자들의 무리도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따르기로 결정한 무리들은, 통일 한반도의 문을 열고, 복음의 자발적 디아스포라로, 부르심의 장소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일부는 통일 한반도에 남아서, 핍박 가운데 죽으면 죽으리라는 자세로, 다니엘과 요셉과 모르드개와 같은 부르심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인본주의자들은 적그리스도 체제의 바벨탑을 쌓는 일에 소모되어 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통일 한반도 에서 뿐만 아니라, 한인 디아스포라가 열방으로 흩어지기 시작 할 무렵부터, 전세계적으로도, 동에서 서의 방향으로, 동일하게 일어날 것입니다.
* 왜 그리스도인은 한반도를 떠나, 열방으로 흩어지게 될까?
미국을 건국할 때,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두 세력이 있습니다.
한 세력은 영적인 부분에서 그 터를 닦았던 청교도 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미국의 건국을 허락하신 이유는, 청교도를 통해서 이어져 내려갈 신앙의 유산을, 열방으로 전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청교도의 영적 유산을 이어받은 Stududent Volunteen Movement의 세대가, 미국을 떠나서 열방으로 흩어짐으로써, 청교도를 통해서 지켜져온 신앙의 유산이 전세계로 퍼지게 됩니다.
청교도의 신앙과 삶은,
1. 거룩함
2. Complete Surrender
두 단어로 요약되어 질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미국 건국 세력은, 프리메이슨 입니다. 영국에서 건너온 이들은, 미국의 정치와 경제 영역의 터를 닦는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번창하는 미국의 정치적 힘과 경제적 부요함을 통해서, 수 많은 선교사들이 열방으로 나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권가운데 섭리로 역사해주신 것일 뿐, 이들이 닦은 정치와 경제체제는 결국, 적그리스도 체제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미국의 첫 번째 대령통을 비롯해서, 이후의 수많은 대통령들이 프리메이슨 이었으며,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Maryland와 Virginia 사이에, 워싱턴 D.C(District of Columbia – 영국 Columbia 프리메이슨의 지부)를 세워서 수도로 삼으며, 카톨릭의 마리아를 여신으로 숭배한 것 등등, 너무나도 많은 사단 숭배가 그 정치, 경제, 문화의 영역에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여기에서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이것입니다.
정작 하나님의 목적 가운데 미국을 건국했던 청교도는, 물론 경제와 정치의 영역에 전혀 무관심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삶을 복음에 온전히 초점 맞추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정치와 경제의 영역에 들어가게 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들 대부분은 복음을 믿고, 복음을 전하고, 이 복음이 땅 끝까지 전해지는 것에, 이들의 삶을 온전히 사용했습니다. 복음에 집중된 삶을 살기에도 모자란 시간을, 정치와 경제의 영역에 사용하지 않았고, 그렇게 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들이 하나님의 목적 가운데 있었던 무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미국내에서 정치, 경제 영역을 장악하고, 이 영역들이 복음적 방법으로 운영되도록 일생을 바치는 대신에(소수의 무리를 제외), 그저 복음이 그 땅에 전해지고, 그리고 열방으로 전해지는 것에 삶을 걸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미국을 떠났고, 나머지 한 세력이었던 프리메이슨은 미국에 남아서, 적그리스도 체제를 더욱 견고히 해왔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통일 한반도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의 자발적 디아스포라가 되어서, 열방으로 흩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시대 가운데, 그 분을 따르는 백성에게 원하심은, 그의 백성이 열심히 모든 영역에서 노력하여서, 그 결과 모든 영역에 공의가 회복되고, 그래서 그의 백성들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명확하게 세상에는 불법이 성행하게 될 것이고, 사랑이 식어갈 것이며, 결국에는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말은 즉, 시간이 가면 갈수록, 공의가 회복되는 대신에, 오히려 불의가 판을 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이 필요하며, 그렇기 때문에 그 분이 다시 오실때, 죄악으로 처참해신 세상에, 공의가 온전히 회복되는 것입니다.
1980년대에, 사회의 부조리로 인해서, 사회의 영역에서, 항쟁(?)을 해온 목사님들의 무리를 보면, 이 분들 중에 많은 분들이, 인본주의자가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혹은 이루어 지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공의로 인해서, 스스로 실망하고 낙담하여서, 주님을 떠난 분들도 계시며, 주님을 떠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스스로의 상처 가운데 거하며, 술과 다른 것들에 의존하는 분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백성은, 부르심을 입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사회의 각 영역에서 회복의 작업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절대로 주님이 오실때 까지는, 각 영역들이 회복되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더 죄악이 판을 치게 될 것이라고, 말씀에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분의 백성은, 어떠한 형태로든, 열방으로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권력의 중심으로 가서, 권력을 장악하고, 그 힘으로 온 나라가 공의로 다스려리게 하라는 말씀대신에,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그 분의 제자들에게 명하신 이유입니다. 이 땅의 권세 잡은 자가, 정해진 때 까지는 사단이기 때문이며, 전쟁의 진정한 승패는, 영역의 싸움이 아니라, 복음이 땅 끝까지 전해지느냐 마느냐로 정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엡2:2a/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요12:31/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
우리가 사회의 영역에서 적그리스도 세력과 싸워서 이기는 것으로, 전체 전쟁이 승리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영역전쟁에서는 우리가 이길 수도 없습니다. 전체 전쟁의 승리는, 땅 끝까지 복음이 전해져서, 그래서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심으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특별한 부르심을 입은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우리는 각 영역에서 전쟁하는 것에, 우리의 삶을 허비해서는 안됩니다. 그 대신에, 실제로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즉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마치 남한의 모든 영역에서는 종북주의자들이 판을쳐서, 마치 우리가 이 전쟁에서 곧 패하게 될 것 같지만, 오직 북한에 복음 들어가기만 하며, 한 순간에 모든 전세가 역전되어 버리는 것 처럼, 전세계의 범위에서도, 영역에서는 적그리스도의 체제가 판을 칠 것이지만, 우리는 소수의 복음을 나르는 자들이 되어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주님이 오시고, 그러면 전쟁에서 우리가 승리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전쟁의 승리 이후의 천년왕국에서, 우리는 모든 영역을 참된 공의로 회복하는 일을 실제로 하게 될 것입니다.
마25:23/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눅19:17/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따라서, 통일 한반도에 복음의 능력이 찬란하게 드러나며,
양과 염소가 양 옆으로 정확히 나누어 지는 것을 볼 때에,
우리는 복음의 자발적 디아스포라로 열방으로 흩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떠한 모양으로라도, 부르심에 따라서,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끝까지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께 순종한다면,
우리의 삶을 그렇게 인도해 나가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후에는,
10. '기도의 집 + 비지니스= 새로운 형태의 교회'. 자발적 디아스포라에게 주시는 실질적 무기 (복음의 수단)
11. 복음의 서쪽 최전방, 카슈가르 (Kashgar)
12. Asian Highway. 새로운 복음의 길
13. 통일 한국, 중국, 일본. 3국의 복음 안에서의 연합ㅇ르 통한, 이사야 19:23의 성취
에 대해서 더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