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문학지 원고입니다
박성숙
<두부밥>
작은 두부 한 모 으깨 기름 두르지 않은 팬에 물기 없이
고슬고슬 해 질 때까지 볶는다
며칠 전 코로나 백신 맞은 팔순 넘은 어머니는 자꾸 구부러지려는
허리를 한 손으로 받치며 콩물을 만들어 내 여름을 살리려고 한다
슬쩍 밥 두어 숟가락 팬에 섞어 좀더 고슬거릴 때까지 볶다 계란
두 개를 깨어 넣고 싱겁게 소금 간을 한 후 참기름 휘리릭 뒤적여
불을 끈다
아주 오래 전 손을 맞잡고 맷돌 돌려 세상 고소한 콩물을 만들고
두부를 만들던 젊은 어머니 아버지는 내 기억의 툇마루에 앉아있다
진한 커피 조금에 두유를 가득 넣는다 단정한 식탁에 앉은 딸아이는
두부밥을 먹고 나는 수제 라떼를 마신다
<횡설수설 2021>
간밤에 내가 잠을 자기는 한 걸까 아침에 일어나면
언제나 드는 생각이다 어쩌면 잠을 자기 위해 애쓰다
아침이 오고 만 것 같은 상태의 몸과 마음을 만나게
되니 말이다 열이 오른 지구에 갇혀 집과 일터 극과
극인 시간들 주말은 평일을 위해 평일은 주말을 위해
미래가 아닌 과거를 향해 걸어가야 할 것 같은 오늘
여전한 것들이 고마운 시절 아직도 지구는 초록색 일까
<불면을 위하여>
한 쪽 귀에 무선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듣거나 장편 소설을 듣는다
수시로 일어나 냉수를 마시고 방광이
조금만 찬 듯해도 아랫배를 살짝 눌러 보고
얼른 일어나 오줌을 누러 간다
창밖을 내다 보다 아직도 주차되지 못하고
서성이는 차들 곡예하듯 내달리는
배달 오토바이들을 오래도록 구경한다
내일 아침거리 재료가 뭐가 있나
냉장고를 열어 뒤적여 본다
핸드폰과 이어폰이 제대로 충전되고 있는지
자꾸 확인한다
아이들을 깨워줘야 하는 시간에 알람이
제대로 걸려 있는지 다시 확인 한다
오늘 일 할 물량은 얼마나 될까 이 더위에
얼마나 숨막힐까를 잠시 생각한다
새벽녘 문득 끼어든 잠을 붙잡고
아둥바둥 매달리다 보면 아
아침이다
휴가 2021
마스크 거의 끊고 이틀이 지나니
하루하루 자라던 모공속 하얀 피지와
콧등의 땀띠들이 수염처럼 까끌거려
면도라도 해야할 것 같더군
마스크를 안 쓰고 휴가를 보내려니
밖엘 안 나가는 수밖에 없는 거지
저녁이나 밤 중에 들어오는 식구들에게
생필품과 먹거리를 사오라고
생각 날때마다 카톡을 해댔지
사실 배달이 다 되니 돈만 있으면 되더군
제일 큰 거실 서랍에는
흰색과 검은색의 마스크가 꽉 차 있지
서랍이 다 비워지기 전 시절이 좋아지려나
가장 멀리 간 외출은 아파트 옆 공원이나
길 건너 식자재 마트가 고작이다
소소했던 일상이 마냥 그리워지는 여름날이다
<구월>
여름 속에 숨어 살던 어린 가을
어느새 구릿빛 얼굴로 달려와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단단한
가슴을 내어 주며 시름을 어루만진다
뜨거운 열기를 쏟아내며 헐떡이던
에어컨 실외기는 뒤집어 쓴 먼지를
이불인 채 잠들어 가고 오랫동안
넘어져 울던 아이는 금새 엄마 품으로
달려가 어리광을 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