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판소리의 이해
지금은 판소리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국가의 보호를 받는 것처럼 되어있지만 그 동안의 판소리는 철저히 자생력에 의해서 발달되어 왔다. 결국 소리하는 사람(광대)들과 그 소리를 소비하는 서민 대중들과의 사이에서 형성된 것이고 그 소비층의 변화에 따라서 판소리의 내용도 변화되고 발전되었다고 할 수 있다. 판소리는 줄거리가 있는 긴 이야기를 성악적인 방법으로 연출해 내는 것이니까 그것을 발달시킨 수요자의 측면으로 눈을 돌리면 판소리는 수요자인 우리들이 옛날 얘기와 같은 '이야기'와 그것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소리' 또는 '노래'를 좋아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그 기호가 만나면서 만들어낸 극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판소리의 기원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설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보형 같은 학자는 판소리가 '판놀음'에서 나왔다고 본다. '판놀음'이란 여러패의 놀이꾼들이 너른 마당을 놀이판으로 삼고 각기 '소리'나 '춤' '줄타기' '놀이' 등을 한판씩 노는 것을 뜻하는데 이런 경우의 예능을 '판소리' '판춤' '판줄'과 같이 불렀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또 다른 견해는 무가巫歌기원설이다. 무당들이 하는 굿에는 서사적인 내용을 노래로 연출하는 무가가 많이 있다. 해안 별신굿의 '심청굿', 경기 도당굿의 '손님굿', 진도 씻김굿의 '제석굿'도 마찬가지이다. 또 무가를 부르는 형태가 경기도와 전라도의 서사무가는 판소리하는 것과 비슷하다. 특히 경기 도당都堂굿의 경우는 남자 무당이 북장단에 맞추어 무가를 하는 것이 판소리하는 것과 똑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전라도 굿을 많이 본 사람들도 '판소리는 굿에서 왔을 것'이라고 느끼기 쉽게 되어있다. 서사무가의 연출방법도 비슷하고 음악적인 내용도 유사성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판소리의 명창 대부분이 전라도 세습무 집안 출신이라는 것도 그런 짐작을 하게 하는 한 요인이다. 세 번째 또 다른 견해는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이야기꾼 기원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전통사회 시절에는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파는 이야기꾼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야기꾼은 '장화홍련전'이나 '춘향전'같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구연해 주고 돈을 받아 생활하는 직업인이었다고 하니까 그들의 이야기 연출 솜씨도 대단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꾼이 이야기 말로만 했겠느냐 하는 것이다. 이야기를 하면서 노래도 하고 재미있는 표정도 짓고 춤도 추고했을 터이니까 그런 것이 발전하여 판소리가 되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서민 대중들의 여러 가지 욕구와 관련을 가지고 발달하는 판소리는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하게 된다. 판소리를 음악으로 연출할 때의 중요한 요소가 '아니리'와 '소리'인데 '아니리'는 반드시 전라도 사투리로 하여야 하고 '소리'도 전라도의 민요 토리인 육자백이 토리의 계면조가 기저를 형성하고 있는 점을 보면 판소리는 전라도에서 자생하고 전라도를 배경으로 발달했다고 할 수 있다. 전라도 사람들은 정말 판소리를 좋아하고 판소리에 대한 안목도 대단히 높다. 결국 판소리의 발달 배경에는 우리 민족이 좋아하는 '이야기'와 '노래' '연극' 등의 요소가 있고 그것을 공연물로 가꾸어 온 전라도 사람들의 음악적인 안목과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2. 판소리의 큰 흐름
판소리는 시조나 가곡처럼 혼자서 유유자적으로 즐기는 노래가 아니다. 소리군이 청중을 대상으로 소리를 파는 공급자와 수요자가 있는 노래이다. 청중을 대상으로 하는 음악이기 때문에 청중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즉 공급자인 소리광대가 수요자인 청중을 상대로 하여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개발해 온 것이 판소리라고 보아도 된다. 게다가 우리네의 음악작품은 서양의 음악작품처럼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변모하면서 발달했으니까 판소리의 작품 내용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서 상당한 차이를 가지고 발달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판소리라는 공연물이 어떤 식으로 발달해 왔을까? 아마 초창기의 판소리는 사설이 재미있고 곡조가 민요와 비슷한 간단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때의 재미있는 내용이란 대개 음란한 얘기일 것으로 짐작된다. 일반 대중들이 척 들어서 재미를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좀 음란한 내용의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판소리는 그런 내용의 얘기를 실감나게 그러면서도 노래의 재미를 맛 볼 수 있도록 음악적으로 각색하여 들려주었을 것이다. 송만재의 『관우희』에 나오는 열두 마당 중에서 사랑을 내용으로 하는 것은 '춘향가'를 비롯하여 '배비장전', '변강쇠타령', '강릉매화전', '왈자타령' 등인데 그 내용의 야한 정도는 당시가 유교적인 분위기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정말 대단한 것이다. 초기에는 그냥 야한 얘기를 상스러운 표현으로 막 표현하던 것이 한문을 배우고 먹물 먹은 사람들이 판소리를 좋아하게 되니까 가사의 표현방법이 한문투로 바뀌고 같은 내용이라도 중국의 고사를 끌어다가 명분 있게 표현하는 방법이 사용되게 되었을 것이다. 또 음악적으로도 기존의 토속적인 음악언어 외에 점잖은 음악언어와 다양한 음악언어를 수용하여 보다 풍부한 표현력을 가지도록 발달시켰을 것으로 본다. 전체적으로 보면 사설의 내용이나 음악의 내용이 훨씬 유교적인 가치관을 수용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재미위주로 발달했던 판소리가 재미와 명분을 함께 지닌 판소리로 발달하면서 판소리에 대한 미학과 함께 판소리의 구조조정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12마당 즉 12개 이상의 작품으로 발달했던 판소리가 이 시기로 내려오게 되면 5마당 정도로 줄어드는 현상이 일어난다. 정절貞節을 중시한 춘향가나 효심孝心을 그리는 심청가가 인기를 얻으며 가꾸어진다. 흥보가는 재미의 요소와 교육적인 내용을 함께 담고 있어서 또한 널리 알려 지게 되고수궁가 역시 토끼의 위기극복의 지혜가 재미를 주는가하면 별주부의 충성스러움이 유교의 덕목과 합치한다. 적벽가는 가장 많이 읽히는 삼국지의 한 부분을 판소리로 각색하여 인정과 의리의 문제를 잘 그리고 있어서 또한 인기를 끌 수 있었다. 이런 내용들을 표현하기 위한 음악의 언어는 우선 가곡의 음악요소를 상당부분 판소리가 수용하게 되고 경기 토리나 경상도 토리도 판소리가 수용하게 된다. 그러면서 전체적인 분위기가 토속적이고 슬픈 정서에서 의젓하고 점잖은 분위기로 바뀌게 된다. 초기의 판소리가 토속적이고 계면조의 성격이었다면 이 시기의 판소리는 가곡과 경토리를 받아드리면서 평조나 우조의 요소를 많이 가지게 된다. 이러한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소리의 공급자인 광대와 소리의 수요자인 청중들의 상호작용인데 "귀명창이 있어야 진짜 명창이 나온다"는 말도 있지만 과거의 우리 사회에는 "판소리는 이러 이러해야 한다"는 공통된 미학의 틀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함께 발달시킨 판소리가 뚜렷한 흐름을 가지고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3. 신재효의 광대론
동리 신재효 桐里 申在孝(1812-1884)는 조선조 후기 전라북도 고창출신으로 상당한 재력 을 바탕으로 판소리 인들을 후원하고 판소리 사설을 정리한 사람이다. 그가 정리한 판소리는 춘향가, 심청가, 박타령, 토별가, 적벽가, 변강쇠가 등이고 그가 지은 단가 사설은 광대가, 도리화가 등 30여 편에 달한다. 그는 많은 광대(판소리를 업으로 삼는 음악가)들을 상대하고 그들에게 자기의 의견을 얘기하기도 하고 직접 가르치기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잘못된 사설을 바로 잡아 준다든지 판소리에 대한 미학적인 기준을 일러주는 일 등은 그의 장기로 하는 일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가 지은 광대가를 통해서 신재효가 가지고 있었던 명창에 대한 이상이랄까 명창의 조건에 대한 얘기를 해 볼까 한다. 광대가에서 "거려천지 廬天地 우리행락 광대행세 좋을씨고"하면서 광대가 대단하다는 말을 꺼낸다. "그러나 광대행세 어렵고 또 어렵다. 광대라 하는 것은 제일은 인물치례 둘째는 사설치례 그 지차 득음得音이요 그 지차 너름새라"로 이어지는데 바로 이 대목이 광대의 조건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대목이다. 여기서 보면 신재효는 광대를 참 좋은 예능인이랄까 멋진 직업을 가진 사람들로 보았다. 광대란 그 당시 사회에서 천인 계급이었고 살아가기도 어려운 직업이었는데도 신재효는 그 광대들의 멋진 삶을 제대로 간파했던 것이다. 여기서 광대란 판소리를 하는 소리꾼을 말한다. 그런데 신재효가 말하는 광대의 조건은 무엇인가? 첫째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인물은 천생天生이라 변통할 수 없다고 했다. 둘째는 '사설치례'로 "사설이라 하는 것은 정금미옥精金美玉 좋은 말로 분명하고 완연하게 색색이 금상첨화錦上添花 칠보단장七寶丹粧 미부인美婦人이 병풍 뒤에 나서는 듯 삼오야三五夜 밝은 달이 구름 밖에 나오는 듯 새눈 뜨고 웃게 하기 대단히 어렵구나"라고 했는데, 판소리에 있어서 사설이 중요하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인데 광대는 그러한 사설을 짜기도 하고 멋진 시어詩語를 구사할 줄도 알고 같은 내용이라고 더 멋있게 더 분명하게 표현해야 듣는 사람들이 감동한다는 내용이다. 이런 '사설치례' 다음이 '득음得音'으로 "득음은 오음五音을 분별하고 육율六律을 변화하여 오장五臟에 나는 소리 농락籠絡하여 자아낼 제 그도 또한 어렵구나"이다. 그러니까 광대에게 있어서 득음을 했다는 것은 판소리를 하는데 필요한 소리를 자유자재로 낼 수 있는 발성의 문제를 해결했다는 뜻도 되지만 가사의 내용을 음악으로 작곡하는 작곡능력도 함께 갖추었다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리고 맨 마지막이 '너름새'인데 "너름새라 하는 것은 귀성 끼고 맵시 있고 경각頃刻에 천태만상千態萬像 위선위귀爲仙爲鬼 천변만화千變萬化 좌상座上에 풍류호걸 구경하는 노소남녀 웃게 하고 울게 하니 어찌 아니 어려우며"라고 하였다. 너름새는 연기에 해당하는 몸짓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순식간에 신선이 됐다가 귀신이 됐다가 할 수 있어야 하고 천변만화하는 표정과 몸짓으로 모든 사람들을 웃기기도 하고 울리기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명창은 '인물'을 잘 타고나야 하고, '사설'을 잘 짜고 멋있게 표현하는 문학적 창작능력이 있어야 하고, 작곡능력이 있어야 하고 소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득음'이 되어야 하고, 연기와 몸짓을 통하여 청중을 웃기고 울릴 수 있는 '너름새'를 잘 하여야 한다는 것이 신재효의 광대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