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개 낀 이른 아침, 창 밖에서 들리는 오토바이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아내는 옆에서 안심하고 있는 표정으로 잠을 자고 있다. 침대 맞은편 벽에 걸어져 있는 시계를 보니 오전 6시를 가리키고 있다. 머리에 당겨지는 느낌이 들어 무의식적으로 오른손을 올려 머리를 더듬어보았다. 아직 정신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은 상태에서 머리를 뒤척이는데 몸속의 수분이 다 증발했는지 푸석푸석한, 건조한 촉감이 느껴졌다. 부분적으로 삐죽 튀어나온 것 하며 서로 엉켜서 손가락에 걸리는 헝클어진 머리.
내 몸이 바짝 말라버린 물 도마뱀처럼 물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땀에 흠뻑 젖은 것도 아닌데 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겁다.
아직은 꽤나 쌀쌀한 1월, 그렇게 되지는 않겠지만 감기라도 걸릴까봐 아내의 어깨부분까지 이불을 덮어주고 조용히 침실을 빠져나왔다.
신기하게도 모든 방은 거실을 지나치지 않으면 다닐 수가 없다. 침실 바로 옆에는 부엌이 있고 반대편에는 아들을 위해 따로 마련한 방이 있다.
독립심이 강한 것인지 신해는 초등학생이면서 혼자 잠을 청하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 아직 삼학년 밖에 되지 않았다. 신해가 따로 성인이 되고 독립할 능력을 갖추었을 때 이제부터 혼자서 살겠다, 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기분으로 받아들이게 될까.
세면대를 향해 거실을 지나치는데 텔레비전이 켜져 있다. 아마 신해가 새벽 중에 잠에서 깨다가 잠깐 시청한 뒤 끄는 것을 잊고 다시 잠자리로 갔을 것이다. 한 두 번이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아내가 먼저 일어나 집안을 둘러보는데 이런 일이 있으면 항상 잔소리를 한다. 아들놈은 자기가 잘못한 것을 아는지 고분고분 듣고만 있다. 그녀는 아들에게 잔소리를 하는 역할, 나는 아들의 실수를 받아들이는 역할. 가족이라는 것이 아니더라도 균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리모컨으로 전원을 꺼버린 후, 이번에는 시선이 커다란 베란다 창문 쪽으로 돌려졌다. 아직 정신이 맹한 상태인데 눈길은 잘 돌아간다. 안개가 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하품을 하는 입을 한손으로 가리며 가려운 눈을 비빈다.
세면대에 거울을 보니 눈은 거의 떠지지 않은 상태이고 입술은 바짝 말라서 회색빛으로 변해있었다. 어제는 제법 머리에 윤기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상태를 보니 그저 우습기만하다.
차가운 물이 흘러나온다. 손끝에서부터 느껴지는 차가움이 신경계를 통하여 전신에 전달된다. 살짝 놀라버렸다.
연거푸 얼굴에 세수를 하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다가 내친김에 머리도 감아야지 하는 생각과 좀 전에 들린 오토바이 소리는 신문배달인가, 하는 생각이 교차했다. 결국에는 머리를 먼저 감았다. 생각보다 차가운 냉기에 머리에 통증이 느껴져, 따뜻한 물로 감아야지 하는 후회가 들었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세면대에서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렸다. 수건을 넣는 수납공간이 있는데 그 바로 옆에 콘센트가 있어서 여러모로 편리하다. 다만 물이 닿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한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촉촉하게 젖어있는 상쾌한 공기가 흘러들어왔다. 꽤나 기분이 좋은 청결한 느낌에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안개 낀 날을 좋아한다. 안개가 안 낀다면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공기 중에 촉촉이 젖어있는 수분을 몸에 흡수하는 것이 너무나도 기분이 좋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좋아하는 이런 날씨들을 싫어한다, 라고 한다. 대부분 현실적인 이유였다. 빨래를 널 수 없다거나 운전하기가 불편하다거나.
가끔은 현실적인 것이 너무나도 싫다. 너무나도 좋은 것과 너무나도 싫은 것이 이 세상엔 가득하다. 그럼에도 알게 모르게 틀어지지 않고 있다.
신문을 들고서 고요한 적막이 흐르는 거실에 돌아왔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부엌에 설치되어 있는 냉장고가 잘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소리뿐. 매끄러운 가죽으로 만들어진 갈색 계열의 소파에 앉아 신문을 펼쳤다. 맞은편에 텔레비전이 있다. 원래는 푹신푹신 하고 부드러운 천으로 덮여진 소파에 앉았었는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텔레비전을 보면서 코코아를 마시다 쏟아버리는 바람에 결국 가죽 소재로 되어있는 소파를 하나 장만했다. 아들도 나만큼이나 코코아를 즐겨 마신다. 문학의 계절 소설 공모전 신인상 수여식, 이라는 글자가 신문의 첫 면을 가득 장식하고 있다.
꿈이 있었다. 난생처음 가슴을 두근거리며 가졌던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아내인 그녀를 지키기 위해 수년간 마음속에 품어왔던 꿈을 희망을 바닥이 닿지 않는 깊은 수심의 바다에 던져야 했다. 바다로 던져진 그것은 점점 찌그러지고 금이 가면서 조각조각 흩어져 버렸다.
후회도 미련도 없다. 하지만 그때 그 시절이 하얗게 피어오르는 김처럼 떠오를 때가 있다.
“여보, 오늘은 일찍 일어났네요. 조금만 기다려요. 곧 커피 드릴게요.”
이제 막 일어났는지 아내는 눈을 비비며 말하였다. 아내 역시 머리가 이리저리 헝클어져있다. 아직 잠에서 덜 깬 상태인데도 따뜻한 차를 주려는 행동이 오늘따라 기특하게 느껴져 살며시 그녀의 뺨에 나도 모르게 키스를 해버렸다. 아내는 싱긋 웃더니 오늘은 코코아로 할게요, 라고 말하고는 부엌으로 향하였다. 165cm에 몸무게는 57kg를 유지하는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면 주부임에도 불구하고 매력 있는 몸매를 유지한다는 것을 느낀다. 서른 살이라는 나이가 무력해진다. 내가 기분이 좋을 때나 뺨에 키스를 할 때면 거의 항상 코코아를 마신다는 사실을 아내는 아주 잘 알고 있다. 또 마실 때 느끼는 충족감에 잔을 움켜쥐는 손의 모양까지. 빈틈없이 완벽한 여인이다. 나에게는 그렇다.
어느 순간부터 글을 쓰면서 평생을 살아가는 것을 원하게 되었다. 쉽게 말하면 소설가를 꿈꾸고 있었다. 내가 시간을 들여 만든 이야기에 누군가가 읽어주는 것이 좋았다.
충분하리만큼의 시간을 들였음에도 만족할 만한 이야기가 써지지 않았을 때 그것마저도 좋았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그것을 표현했을 때의 쾌감은 정말이지 짜릿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 대학교를 다니고 틈틈이 글을 쓰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근근이 살아가던, 벚꽃이 살랑거리는 바람에 흩날리던 날, 나는 공원 벤치에 앉아 소설을 읽고 있었다. 주변은 벚꽃을 구경하러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순간적으로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자꾸만 앞머리에 눈이 찔려 집에 가는 길에 미용실에 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을사람들은 오직 벚꽃만이 흩날리는 이 공원을 백년공원이라 부른다. 이름에 대한 유래는 공원의 중앙에 심어져 있는 다른 나무들과는 차원이 다른 크기와 높이를 가진 벚나무를 보면 알 수 있다.
사람이 많은 곳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평소에는 일부러 백년이라는 시간 이상을 살고 있는 벚나무를 피해 다녔다. 보통 사람들 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청각 탓에 시끄러운 소리에 대한 스트레스를 남들보다 훨씬 높게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끄럽다고 해서 모든 것이 싫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해맑게 웃으면서 떠드는 소리는 왠지 모르게 좋다. 순수하게 웃을 수 있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벤치에서 일어나 책을 덮고 만년필을 책갈피로 끼우려던 그 때 앞을 보지도 않고 달려오는 어린아이와 부딪혔다. 책갈피로 꽃아 두려고 손에 쥐고 있던 만년필은 바닥에 떨어뜨렸고 엉덩이를 찧은 것이 아팠는지 아이는 울고 있었다. 아이를 일으켜 세워 울음을 그치도록 조심스레 달래던 중 다정하다고 느껴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는 여인이 다가왔다.
“꼬마야 많이 아파?”
끝 부분을 향할수록 가느다랗게 보이는 뽀얀 피부의 아름다운 손가락으로 아이의 눈물을 닦으며 그렇게 말하자 조금 전까지 멈출 줄 모르던 울음이 사그라졌다. 몇 분이나 되었을까 아이는 해맑은 미소를 되찾고는 어딘가를 향해 달려갔다.
“이 만년필 그쪽 꺼 맞나요? 아까 떨어질 때 조금 흠집이 난 것 같아요.”
“아, 네 고마워요.”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사람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구나, 라고 생각했다. 화창한 햇살아래에서, 벚꽃나무아래에서 만년필을 건네받는 손끝의 촉감이 무척이나 촉촉하면서도 부드러웠다.
그녀가 떠나기 전에 이름을 물어보았었다.
“이름, 물어봐도 될까요?”
“희선, 김희선이에요. 그쪽은?”
“신진경입니다. 다음에 또 볼 수 있을까요.”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로 돌아섰다. 찰랑거리는 머릿결이 벚꽃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비추었다.
벚꽃이 다 흩날리고 앙상한 나뭇가지만이 남은 바로 다음 날, 아침부터 창밖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려왔다. 나는 대학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다. 창밖으로부터 흘러들어오는 빗소리가 듣기 좋았다.
“소개팅 자리 잡혔는데 갈래?”
“아니 됐어, 시간낭비야”
바로 옆자리에 앉은 친구의 유혹에도 강의실을 가득매우는 교수님의 목소리에도 희선 이라는 이름은 머릿속에 점점 새겨졌다. 그 단아하고 아름다운 자태까지도.
강의가 끝나자 가방을 들고 항상 그 자리에 가게 되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내 자신을 더욱 더 기대하게 만들었다.
한 달이 흘렀고 또 다시 비가 내려왔다. 우산을 쥔 채로 이제는 군데군데 낡아버린 벤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도 아닌가, 싶어서 발걸음을 돌리던 그때 마주쳤다. 갈색 빛 눈동자에 찬란한 흑요석과도 같은 머릿결을 보았다.
“보고 싶었어요.”
그 사람을 보자마자 인사도 없이 그렇게 말하였다.
“만년필, 아직도 흠집이 있네요,”
그날은 푸른색의 와이셔츠를 입었고 겉주머니에는 같은 색의 만년필을 넣고 있었다.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어느 때 보다도 기뻤다. 감성이 물씬 풍겨지는 미니드레스를 입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꽤나 어울렸다. 춥지 않느냐는 말에 추위를 잘 타지 않아 괜찮다는 말을 하였다.
그날 두 번째로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수차례의 만남을 허락 받았고 결국에는 백년공원에서 고백을 하여 승낙을 받아냈다. 가장 다행이라는 점은 군대를 다녀온 후 희선 이라는 그녀를 알게 된 점이었다. 그 전이었다면 상당히 괴로웠을 것이다.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취업전선에 뛰어들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소설을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헐떡이는 취업난과 고집스럽게 꿈을 포기하지 않는 나 때문에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점점 야위어갔고 그것이 나를 점점 초초하게 만들었다. 그에 따른 연쇄반응인지 흰색 종이에 글자를 써내려 가는 작업 또한 힘들어졌다.
처음 내가 되고자 하는 모습을 말했을 때 그녀는 정말 멋져요, 라고 말하였다. 나는 항상 배고픈 직업일지도 모르는데 뭐가 멋지냐면서 반박하였다. 그러면서도 멋지다고 말해주는 것이 고마웠다.
“포기하지 말아요,”
수년이나 꿈꿔왔고 지켜왔으며 계속해서 달려왔기에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이라는 쇠사슬이 나를 궁지로 내몰았고 결국에는 결단을 내리고 말았다.
“취업? 소설가라는 꿈은요?”
“소설은 일하고 남는 시간에 쓰면 돼, 그러니까.”
힘겹게 대답하는데 이상하게 두 눈이 흐릿해지더니 뜨거운 액체 두 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렇게나 가슴 아픈 일이었을까.
결국엔 취업의 길을 선택했다. 현실을 선택했다. 취업을 하고나서 그녀와 결혼하고 집을 사고 자동차를 사고 자식을 얻었다.
꿈을 포기함으로써 가정을 얻었고 모든 것을 얻었다. 하지만 꿈을 포기한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했을 때 흘러내리던 액체 두 방울의 촉감이 조선시대 노비에게 주어지는 낙인처럼 너무나도 선명하다.
“코코아 더 드릴까요?”
“아니 괜찮아, 그보다 신해 깨울 시간되지 않았어?”
“아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볶음밥은 신해 깨우고 나면 금방 하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볶음밥은 아침이 여유로운 일요일에만 해주는 메뉴다. 앞치마를 하고서 머리를 뒤로 묶는 모습이 청결하다고 생각하며 신문의 다음 장을 펼쳤다. 종이재질에서부터 느껴지는 냄새가 익숙하다. 종이에 찍혀진 검은색 잉크. 물가상승이라는 글자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오늘은 일요일이니까 좀 더 자고 싶어, 이제 아침 7시 밖에 안됐단 말이야”
“학교강당에서 학예회 연습이 있다고 했잖니 늦으면 모두에게 폐가 될지도 몰라”
방안에서 이불을 뒤척이는 소리와 함께 일어나기 힘들어 하는 아들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침에 편안한 휴식을 강제로 깨우는 것과 강제로 깨워지는 것은 꽤나 고달픈 일이다.
회사원인 나조차 쉬고 있는데 아직 초등학생인 신해가 주말에, 그것도 일요일인 오늘 학교에 가야한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묘하다.
어른이 되었는데도 자식의 입장이 되어 부모님이 힘들게 출근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난 대사 한 줄도 없는데다가 역할은 주변을 장식하는 풀밭 역할인데?”
“잔말 말고 일어나렴. 엄마 화내도 모른다.”
자신의 주장이 확실한 신해조차 똑 부러지게 말하는 아내한테는 맥을 추지 못한다. 평화로운 일상이 마냥 행복하게 느껴진다.
“알았어, 가면 되잖아 가면”
하늘색 배경에 밝은 노란색의 별 무늬가 새겨져 있는 잠옷을 입은 신해가 몸이 앞쪽으로 축 처져있는 채로 터벅터벅 세면대로 힘겹게 걸어가고 있다.
학예회 발표 날짜가 아직 한 달은 남은 걸로 기억하는데 제법 열심히 하는 것 같다. 그러고 싶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주부들 입장에서는 기후나 날씨가 안 좋은 상황이 아니라면 자식이 집안에 하루 종일 있는 것 보다 조금이라도 바깥 생활을 보내고 싶은 것이 일반적인 경우라 생각된다. 그 일반적인 경우에 신해가 포함되어있다.
“아들 힘내렴.”
“아빠는 회사 쉬는 날이지?”
“뭐 그렇지, 일요일이라도 쉬어야 살맛나잖니”
“으, 살맛이 않나”
애늙은이처럼 말하는 모습에 내가 저랬었나, 하는 의문에 빠진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이 점차 마음에 와 닿는다.
“다녀오겠습니다.”
“몇 시쯤에 집에 들어오니?”
“연습 끝나고 친구들하고 놀러가니까 저녁 식사 전에는 올게요.”
회색빛의 얇은 철판으로 이루어진 문이 닫히자 철컹 소리가 났다. 집에는 나와 그녀 단 둘만이 있다는 것이 현실이었으면 좋겠지만 아내마저 주부모임이 있다며 곧바로 바로 외출준비를 한다고 했다. 아마 저녁 식사를 준비할 때쯤 돌아올 것이다. 열에 아홉의 경우는 그렇다. 균형이 잡혀있는 자그마한 몸집, 얇은 입술, 갸름한 얼굴과 매끈한 피부. 매니큐어 하나 칠하지 않는 소소한 손톱.
“내 얼굴에 묻은 것 있어요?”
정신을 차려보니 아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살짝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그러면 그녀역시 조그맣게 웃는다.
아내마저 집을 비운다는 생각을 하니 회사에서 매달 받는 쥐꼬리만큼의 월급으로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가족에게 돈을 입금하고 남은 돈으로 한 달을 살아가는, 맥주 한 캔이 인생의 낙이 되어버리는 기러기 아빠가 되어버린 기분에 사로잡힌다.
“기러기 아빠로 만들게 두진 않으니까 그런 표정하지 말아요.”
“응? 나 아무런 말도 안했어”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어요. 그리고 점심은 오늘 하루만 알아서 챙겨먹어요. 알았죠? 어쩌다 점심 혼자 먹게 되는 것 가지고 엄살은.”
왠지 모르게 야단맞아 버렸다.
자식은 학교에 아내는 주부모임이라는 명목으로 외출했다. 집안에는 나 혼자다. 베란다로 나와 초록빛 잎이 물신거리는 초원과도 같은 공원을 멍하니 보다가 잡다한 소음을 참다못해 창문을 닫았다. 집안의 정적이 되레 심신의 안정을 취하게 해준다. 드물게도 바깥소리를 받아내고 흘려내는 네모난 유리에는 방음창이 설치되어있다. 나에 대한 사랑하는 그의 배려이다.
무엇을 할지 고민하며 이리저리 걷다가 침대 바로 옆 구석에 쌓여져 있는 박스상자를 열어서 서적을 꺼냈다. 이럴 때면 나도 모르게 추억을 회상하고 만다.
꿈꾸던 시절의 모든 것이 이 상자 안에 담겨져 있다. 공모전에 응모했던 단편소설들, 미숙했던 삐뚤삐뚤한 글씨체, 생각날 때 마다 적어두었던 아이디어 노트, 몇 번이고 쓰고 난 다음에 그만 정이 들어버려 버리지 못한 짜리몽땅한 연필들과 잉크 펜들, 그리고 진심으로 동경했던 작가들의 여러 권수의 소설 책.
향수병이라도 걸린 것인지 그날의 다짐했던 때의 감정이 북 받쳐와 두 눈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또 다시 흘러내리는 물방울들이 이번에는 추억이라는 과거를 적신다. 후회나 분노나 절망 같은 것들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인 것인지 흐릿하면서도 뚜렷한 무언가가 머릿속을 헤집어놓고 있다.
여는 것조차 금지되어 있는 판도라의 상자 같다고, 신해가 말한 적이 있었다. 일곱 살의 달리는 모습이 너무나도 귀여운. 푹신한 침대에서 뛰어노는 것을 좋아했다. 그때는 신해의 방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평일 오후에나 주말의 햇빛이 쨍쨍하던 날에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침실에서 혼자 뛰어 노는 것에 쓰는 것으로 보였다. 아내가 잔소리를 하면 신해가 기죽을까 싶어서 나는 할 수 없이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는데 그때 보고 만 것이다. 네모난 크기의 두터운 상자를. 산뜻한 바람을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있던 내게,
“아빠 이 상자 뭐야?”
라며 호기심이 가득하다 못해 넘쳐흐르는 눈빛으로 물었다. 아내는 시장을 보러 외출한 상태여서 대충 얼버무릴 수도 없었다.
“아주 소중한 물건이 들어있어”
“소중한 물건?”
“그래, 도무지 버리지 못하겠더라. 꼭 간직하고 싶어서 말이지. 아빠가 꿈을 꾸던 시절이 그 상자 안에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담아져 있단다.”
“소중하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몰라, 간직이라는 말도, 하지만 꿈이라는 건 알아. 선생님이 말해줬어”
사랑이라는 단어를 꺼내주기에는 너무 어린나이 라고 생각됐다. 하지만 겉모습은 중요하지 않다, 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고 말았다.
“아빠는 꿈이 소설가였어.”
“나 그거 알아! 재밌는 이야기를 써주는 사람 맞지? 아빠 멋지다.”
멋지다, 아내도 그런 말을 했었다.
“그래 넓게 보자면 그런 사람들 중 하나지”
아직은 한참이나 미숙한 유치원생의 신해는 머릿속에 대화한 내용들을 정렬하는 듯싶더니,
“그런데 왜 지금은 소설가가 아니야?”
라고 하였다. 뜨끔했다. 바깥에는 솜사탕 같은 구름이 하늘에 뭉쳐져 있었고 참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네 엄마를 곁에 두기 위해서 선택을 해야만 했어, 이해하겠니?”
“어려운 말들이 많지만 아빠가 강하고 용감한 사람이라는 건 알았어.”
“어째서?”
그랬다. 그 말을 들은 이후로 더 이상 후회와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전에 선생님이 그랬어, 언젠가 사람은 꿈을 가지게 되는데 그 꿈을 이루는 사람도 있고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고 그런데 지키기 위해 이루고 있던 꿈을 포기한 사람은 정말로 강하고 용감한 사람이라고. 존경해야한다고.”
고작 일곱 살의 나이에 긴 문장을 거침없이 말한 것에 놀라웠다. 입가에는 미소가 퍼졌다. 창문에서 눈부신 햇빛이 등을 덮어주고 있었다.
“우리 아들 많이 컸구나.”
“응, 나중에는 아빠만큼 더 클 생각이야.”
꿈을 포기함으로서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고 신해를 낳았다. 그걸로 된 것이다. 정말로.
상자를 덮고 지난 일을 덮으며 침대위쪽에 걸어져 있는 벚꽃이 가득했던 날에 찍은 가족사진을 바라봤다. 세 명 모두가 한 치의 거짓 없이 행복하게 웃고 있다. 화목한 가정.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려서 벌써 점심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직감한다. 지금쯤 아들은 학교 강당에서 분장을 한 채 학예회 연습을, 아내는 주부모임을 할 장소로 카페에 들어서서 건물 안쪽자리에 자리를 잡고 신나게 수다를 떨고 있을 것이다.
오늘따라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점심은 간단하게 인스턴트 라면으로 충당하려고 냄비를 집어 드는 순간 뚜껑에서 분홍색의 메모장을 보았다. 그녀가 좋아하는 컬러.
-라면 같은 인스턴트식품을 점심으로 먹으면 저녁도 라면이에요-
아침에 먹었던 볶음밥이 남아있지가 않다. 그렇다고 밥솥에 밥이 남아있는 것도 아니다. 부분적으로 완벽한 그녀도 가끔은 인간적인 실수를 한다는 것을 체감한다.
다시 창문을 열었더니 바람이 얼굴과 목을 스쳐지나갔다. 그와 함께 들려오는 소음들의 불협화음. 햇살은 따스해졌지만 차가운 공기는 사리지 않았다. 나는 코가 얼어드는 것을 느끼면서, 이런 때 운전이라도 할까, 하고 생각했다.
저번 회의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던 도중 퇴근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심심찮게 보였다. 다섯 시간동안의 긴 회의를 한 탓에 그에 대한 내용정리가 꽤나 복잡하다. 최우선적으로 필요한 부분만을 작성하는 데에도 분량이 엄청나다. 국문학과나 문예창작과의 경력이 있는 사람이 내가 속해있는 부서에서는 나밖에 없기 때문에 회의내용정리, 시장조사, 제품에 대한 평가 등 글을 써서 결과를 산출해내는 작업은 거의 내 몫이다. 그 덕분에 주변 사원들이 내게 업무를 잘 넘기지 않거나 적어도 부서 내에서 만큼은 필요한 존재가 되었지만 그 만큼 피곤한 점은 엄연한 사실이다. 일요일이 지난 후의 월요일, 그 점을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한 숨이 절로 나온다.
결국 어제 점심을 편의점 음식으로 때워 먹은 것이 들켜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오늘 아침에. 물건을 계산하면 영수증은 항상 받아놓는 습관 탓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범한, 수많은 하루 중의 또 다른 시작이었다. 따스한 햇살, 푹신한 침대, 얼음장 같은 물로 세수를 하고 샤워는 결국 따뜻한 물을 틀어서 하고, 겉면만 살짝 구워진 식빵에 딸기잼, 항상 빠지지 않는 샐러드를 먹고서 정장을 입으려고 옷장에서 옷을 꺼내던 도중 하얀 종이의 무언가가 펄럭였다. 설마 하는 마음에 재빨리 그것을 집으려는 순간 아내가 먼저 주워버렸다.
“어제 점심은 뭘 먹었는지 물어봐도 되겠죠?”
항상 내게 말하던 존댓말이 그 순간만큼은 등골이 오싹하게 느껴졌다.
“야채가 가득 들어있는 샌드위치를 먹었어.”
결혼을 하고부터 샐러드는 그녀가 권하는 우선순위 대상이 되었다. 야채를 강조한 것도 그 점을 이용하여 조금이라도 잔소리를 덜 듣기 위해서였다. 건강을 걱정하는 정도에 비례하여 잔소리를 듣는 시간이 늘어난다, 고 생각하고 있다. 가족의 건강을 챙기는 점이 기쁘다.
“한 두 번은 괜찮을지 몰라도 지속적으로 먹으면 몸에 안 좋아요.”
허리에 양손을 올린채로 말하는 모습은 언제 봐도 사랑스럽다. 조심스레 껴안고 싶기까지 하다.
“응 잘못했어, 한 번만 봐줘”
“다음에도 이런 일이 있으면 용돈을 삭감해 버릴지도 몰라요.”
“조심할게 알았어.”
용돈삭감 이라는 말에 동그란 눈을 커다랗게 뜨며 놀라던 신해가 떠오른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요, 라고 말하는 표정이었다. 회사를 쉬는 날에 대한 그녀의 건강관리는 평소보다 더 엄격하다. 건강을 조절하지 못해 발생하는 질병들이 더욱 늘고 있다는 소식을 뉴스에서 자주 듣는다. 아내의 내조 덕분에 회식이나 따로 마련하는 술자리는 어지간해서는 참석하지 않는다. 그리 강요하지 않는 분위기라서 좋은 일자리를 잡았다고 느낀다.
오후 일곱 시가 넘었고 남아있는 사람도 몇 명 없어서 눈치 볼 것 없이 퇴근했다. 보고서 작성도 절반은 완성한 상태고 정해진 기한 안에는 완성할 수 있다.
밖을 나오니 완전한 밤이 되어 있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보았던 밤하늘의 촘촘한 별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고 달빛만이 빛을 뿜어내고 있다.
어쩌다 별이 보일 때면 항상 흙을 밟고 싶었다. 도시의 땅에서는 흙이 있는 곳을 맨발로 걸어 다니지 못한다. 시골에서는 밭을 갈고 씨앗을 심지만 도시에서는 그 위에 시멘트를 들이붓고 아스팔트를 깔아버리고 벽돌로 덮어버린다. 회색빛의 거리가 조금씩 슬퍼진다.
집과 회사와의 거리가 생각보다 지 않다는 것을 알고서부터 출퇴근을 버스로 이용하고 있다. 급한 경우는 차를 이용한다. 두 번 정도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내부의 따뜻함이 수고를 덜어준다. 좌석에 앉는데 뒤에서 여성들의 목소리가 점점 뚜렷하게 들려왔다.
“학원도 다녀야겠어, 작년처럼 성적이 안 좋으면 어떻게 될지 걱정이야”
“난 작년보다 조금이라도 성적이 좋으면 그에 맞춰서 취직할 생각이야”
대화를 들어 짐작하는데 수능시험에 대한 이야기 같다. 순간 겹쳐지는 고등학생 시절, 오래 전 나 역시 똑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성적미달로 원하는 대학에 지원하지 못했던 처음 맛보았던 인생의 실패, 좌절감에 빠지고 힘들었던 일 년이라는 시간. 결국에는 한 번 더 시험을 치러서 대학에 입학했다. 다행인 것인지 친구들 또한 나와 같은 상황에 놓였기에 그다지 외롭지가 않았다.
현관에 들어서자 신발이 눈에 들어왔다. 은색 장식이 달려있는 슬리퍼에 검은색의 윤택이 나는 구두, 벗은 모양 그대로 놓여있는 아주 작은 크기의 신발. 나는 그만 미소를 짓고 만다.
“오셨어요? 씻고 있어요. 저녁 먹을 준비할게요.”
“응 알았어.”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기 전까지 저녁을 미리 먹지 않고 있다. 너무나도 고맙지만 미안한 마음이 없다면 거짓일거다.
“고마워”
무슨 말을 했는지 못 알아들었다는 표정에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신해는 소파에서 자고 있다. 엎드려 한 팔을 축 늘어뜨리고. 조그만 목구멍에서 조그만 숨을 쉬면서 기분 좋게 자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 옆에는 검정리본이 꼬여있다. 점심시간 때 웹서핑을 하다가 보았던 검정리본. 점점 인기 상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새근새근 자고 있는 모습이 귀여워서 볼을 조심스레 만졌다. 피부가 푸딩처럼 말랑말랑하다. 내 손이 거칠었는지 그만 잠을 깨우고 말았다.
“아빠 다녀왔어?”
눈을 뜨자마자 말 하는 첫 마디.
“그래 다녀왔어, 배 많이 고프지? 아빠가 많이 미안해”
“아니야”
“아니야?”
“응, 밥은 다 같이 먹어야 맛있어 아빠 혼자 식탁에서 밥 먹는 거 왠지 보기 싫어”
“우리 신해 어른이 다 되어버렸네? 그런 말도 할 줄 알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책을 많이 읽는 습관이 정말로 좋아지기는 하나보다.
제일 겉에 있는 옷을 차례차례 벗고 넥타이를 풀어헤쳐서 반듯하게 옷걸이에 걸었다. 무엇인가 꾸깃꾸깃하면 신경이 쓰여 괜히 잠을 이루질 못한다.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쓸데없이 섬세하거나 예민하다.
“밥 먹어요.”
부엌 쪽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뚜렷하게 들려왔다.
“응 알았어.”
식탁에 앉는데 신해가 보이질 않는다.
“여보 신해는?”
“손 안 씻었다고 해서 어서 손 씻고 오라고 했어요. 그냥 싱크대에서 해도 되는데 당신을 닮아서 꼼꼼하단 말이에요.”
“하하, 그건 그렇고 샐러드 슬슬 그만 먹는 게 좋지 않을까?”
“안돼요.”
“네”
아내의 정성 덕분에 가족 중에는 비만 체형을 가진 사람이 없다. 모두가 건강한 몸을 유지하고 있다. 잠옷 차림으로 갈아입은 신해가 해맑게 웃으며 잘 먹겠습니다, 라고 말하고는 식탁의자에 앉았다. 말하는 수준이나 사고방식 등은 나이에 비해 뚜렷할지 몰라도 아직 젓가락 집는 손은 마냥 서툴고 어리기만하다. 어린 시절 내게 수저를 손에 쥐는 법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가르쳐 주시던 아버지가 생각났다. 나 역시 부모님을 닮은 것이다.
“우리 신해 주말에 젓가락 집는 방법 가르쳐 줘야겠다.”
“응 알았어.”
아무래도 좋다는 듯, 고분고분 대답하고 따라주는 아들이 고맙기만 하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에게 전화를 드려야겠다. 잘 지내세요?, 라고 첫 인사말로 말하면서.
다음 주면 벚나무의 고동색 나뭇가지에서 분홍빛의 벚꽃이 화사하게 피어오른다. 한 달이나 남았는데도 다들 조금씩 들떠있다. 뉴스나 신문, 텔레비전 프로그램 에서도 관광명소 소개로 시끄럽다. 아내역시 평소보다 조금 들떠 있다. 그녀가 좋아하는 색들이 하늘아래 흩날릴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시간은 어디에서 무엇이 어떻게 일어나든지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 거침없이 또 유유히 흐르고 있다. 현재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과거가 되어 버린다. 미래라는 여유는 점점 짧아져 어느 틈엔가 현재가 되어 버리고 그것 또한 잠깐의 틈을 주지 않고 지나간다. 내가 대학생 이었던 그날처럼 사람들은 돗자리를 좋은 자리에 펼치기 위해 새벽부터 준비를 할 것이리라. 그들은 집안의 가장이거나 여자 친구의 애인 또는 친구들의 대표로서의 신분을 한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자리선정에 의한 효율성으로 한명만을 보내지만 그 한명이 겪는 피로는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한다. 나 역시 그러한 일을 올해도 문제없이 수행해야한다. 어른이 된다는 건 누군가의 아버지가 된다는 건 여러 의미로 피곤하다.
4월, 일 년이나 감춰왔던 행복한 분홍빛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백년공원, 예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점이 없어서 반가워 진다. 변화한다는 것은 좋지만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했으면 하는 것도 있다.
“당신 여기가 어딘지 기억나요?"
오른손으로는 신해의 손을 잡고 왼손으로는 내 손을 잡고 있는 원피스를 입은 그녀가 물었다.
다행이 날씨는 화창하다. 백년공원의 거리에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나는 손으로 그곳을 가리키면서,
“저기 있는 벤치에 내가 있었고 딱 신해만한 키의 작은 아이와 부딪쳤고 만년필을 떨어뜨리고 그때 당신을 처음 보게 되었고, 맞지?”
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에는 소소한 미소가 보인다.
“아빠 자리는 잘 잡았어?”
“그래, 정말 중요한 자리를 잡았지”
정말로 중요한 장소. 하얀 페인트로 칠해졌던, 이제는 낡아버려서 군데군데 상처가 나 버린.
만일 내가 소설가를 꿈꾸지 않았더라면 백년공원이 있는 이 마을에 살고 있지 않았더라면 그날 이 벤치에서 책을 읽고 있지 않았더라면 사랑이라는 존재를, 그녀를, 신해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한 권의 소설을 읽게 된 것에, 처음이자 마지막인 꿈을 가졌던 것에 누구에게라도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이거 벤치 너무 낡아버린 것 같아”
삐걱거린다며 투덜거리는 신해. 아내는 아무런 말없이 묵묵히 천을 펼치고 가져온 도시락 통을 열고 있다.
“새벽에 왔더니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앉을 수 있는 곳이 여기밖에 없어서 그랬단다. 이해해 줄 수 있지?”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새벽 다섯 시쯤 이곳에 왔더니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아무 한산했다. 그럼에도 낡아버린 벤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추억과 함께하고 싶어서였다. 그때는 둘이었고 이제는 셋이다.
“여보”
그 날과 똑같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녀가 말하였다.
|
첫댓글 평가받지 않은 부끄러운 작품을 올려보았어요.
전개가 다소 산만해 어수선해 보이기는 하지만
고교생이 쓰신 것 치고는 상당히 연령을 뛰어 넘는 글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영 찜찜한 느낌은 산만함 이었군요 ! 감사합니다~
직장에 있다보니 집중해서 읽을수가 없어 몇번으로 나누어 읽어봅니다
효연님 말씀처럼
연령을 초월한 듯한 ~
저도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편안한 시간될때
다시 읽어 보려고 합니다
읽어주시느라 수고하십니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