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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이름-에벤에셀(제 14 일, 2026.3.29.주일)
삼상7:5–14 찬송:301장
하나님의 이름-여호와 에벤에셀입니다. 그뜻은 ‘여기까지 여호와께서 우리를 도우셨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들과 몇해전에 제주도로 수련회를 가신적이 있습니다. 그때 한라산을 등반 할 때가 있었습니다. 산을 오르다 보면 중간중간 이정표가 있습니다. 그리고 ‘해발 100, 200, 500m 등등 지점’이라는 표지판입니다. 사진도 찍어두었습니다만 그 이정표는 ‘이제 그만 가라’는 뜻이 아니라 ‘여기까지 잘 왔다. 계속 가도 된다’는 신호입니다. 그래서 정상 까지 올라가서 백록담을 구경하고 사진찍고 내려와서 다녀왔다는 인증서 까지 받은 적이 있습니다. 다녀오신분들은 사진을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에벤에셀 여기까지 잘 왔으니 앞으로도 잘 가라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에 사무엘이 세운 에벤에셀의 돌도 바로 그런 이정표입니다. ‘여기까지 여호와께서 우리를 도우셨다’ 에벤에셀은 종착역이 아니라 중간 지점입니다. 과거의 감사이면서 동시에 미래에 대한 확신입니다. 지금 힘든 분들에게 ‘여기까지 왔다는건 이미 은혜입니다’포기하고 싶은 분들에게 ‘하나님이 여기까지 도우셨다면 앞으로도 도우십니다’라는 표시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앞으로 인생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미지의 세계로 향하여 가는데 오늘 여기까지 하나님이 도우셨으니 미래를 향하여 가라는 명령인줄 알고 힘차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애가서에는 이미 우리는 다 사랑을 받았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살아오면서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하지만 여기까지 도우신 하나님은 그에게 ‘아직’할일이 있어서 고난을 겪고 있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힘들고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있다라면 여기까지 잘왔으니 앞으로도 할 일이 있다는 믿음으로 잘 극복하고 내가 이런 고난을 받았으니 그와 같은 이들에게 힘주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에벤에셀(Ebenezer, אֶבֶן הָעָזֶר)은 히브리어의 음역을 그대로 쓴 것입니다. 이 단어는‘돌(stone)’이라는 뜻의 ‘에벤 Eben(אֶבֶן)’과 ‘도움(help)’이라는 뜻의 ‘에젤 Ezer(עָזֶר)’이 합쳐져서 ‘도움의 돌(the stone of help)’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을 원래 발음할 때에는 ‘에벤하에젤’이라고 발음합니다. 따라서 ‘에벤에셀 하나님’이라는 말은 ‘지금까지, 또는 여기까지 우리를 도와주신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여기까지 우리의 도움이 되셔서 인도하신 하나님’이 ‘에벤에셀 하나님’입니다. 지난 1년동안에 일어났던 크고 작은 사건을 보든지,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이 당한 여러가지 어려운 일을 생각해 보든지, 참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이 너무나 컸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험하고 환란과 시험이 많아도, 아무리 사단의 세력이 강하여도 하나님만 우리의 편이 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도우신다고 하면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돌아보면 두 시대가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하나는 이가봇의 시대, 또 하나는 에벤에셀의 시대입니다. 이가봇이란 말은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떠난 시대에는 혼란과 수치가 가득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원수의 손에 붙잡혀 고통을 겪었고, 삶의 자리마다 눈물과 절망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에벤에셀의 시대는 다릅니다. 에벤에셀은 ‘여기까지 여호와께서 우리를 도우셨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는 시대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회복되고 싸움에서 승리가 있고 공동체 안에 평안이 임합니다. 오늘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에게 묻고 있습니다. ‘지금 나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가’ 이가봇의 시대라고 한다면 오늘 기도하여서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하셨다는 ‘에벤에셀’의 자리로 초대하고 계시므로 모든 일이 회복되시기를 축복합니다.
1.하나님이 여기까지 도우셨습니다.
에벤에셀은 굴복의 돌이었습니다. 13절입니다. 싸움은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합니다. 전쟁은 이길 때가 있고 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전쟁이 끝났을 때 한쪽은 승자요 한쪽은 패자가 됩니다. 에벤에셀은 전쟁에서 이겼다고 세운 돌이 아닙니다. 전쟁이 끝났다는 것입니다. 블레셋은 사무엘이 세운 돌을 보고 굴복했습니다.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에벤에셀은 승리한 기념이 아니라 다시는 까불지 말라는 표시였습니다. 모세 앞에 바로가 굴복하고, 다윗 앞에 골리앗이 굴복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말씀 앞에서 사탄과 마귀 권세는 철저하게 굴복하는 것입니다. 사탄을 내쫓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을 듣고 도망가는 것입니다. 오늘 제31차 특샐르 맞이하여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사단마귀 권세는 무너질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에벤에셀은 회복의 돌이었습니다. 삼상5:1-2절에 보면 광야에서부터 이스라엘의 중심이 되었던 여호와의 궤를 블레셋에게 뺏긴 곳이 에벤에셀입니다. 블레셋은 에벤에셀에 있던 여호와의 궤를 뺏어 아스돗의 다곤 신전으로 가져갔습니다. 하룻밤 지내고 나니 다곤이 딸에 엎드러졌습니다. 다음날 보니 팔다리가 부러져나가고 몸만 땅바닥에 굴러다닙니다. 전쟁에서 이긴 블레셋 사람들은 독한 종기에 시달리다 못해 여호와의 궤를 다시 벧세메스로 돌려보냅니다. 이스라엘은 뺏겼던 궤를 다시 찾았습니다. 그동안 그들이 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궤는 스스로 암소 두 마리가 끄는 마차를 타고 알아서 돌아왔습니다.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진 에벤에셀은 도움의 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도와주셨다는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전쟁은 하나님께 속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도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홍해도 요단강도 사람의 노력과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운 에벤에셀의 돌은 집 나간 궤를 찾았다고 세운 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스스로 돌아오셨다는 돌입니다.
에벤에셀은 평화의 돌이었습니다. 삼상4:1-2절에 에벤에셀은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싸우려고 진을 쳤던 곳입니다.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블레셋에게 졌습니다. 군사 4천 명이 죽었습니다. 하다못해 여호와의 궤를 들고 나왔습니다. 이를 본 블레셋은 두려워 떨면서 오히려 더 강하게 싸워 궤를 뺏어갔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이 전사하고, 엘리 제사장은 두 아들이 다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 의자에서 떨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전쟁은 평화를 가져오지 못합니다. 다투고 싸워서 만드는 행복은 없습니다. 다투고 나면 말도 안하고 서로가 화해 하기 까지는 불편한 것은 사실입니다. 화해를 하고나면 행복이 찾아옵니다. 다툼이 끝나면 이렇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에 평화의 돌을 세웠습니다. 이쪽에서 그쪽으로 가지 않겠다는 표시입니다. 그쪽에서 이쪽으로 오지 말라는 뜻입니다.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진 에벤에셀의 돌은 평화의 돌이었습니다.
사무엘은 전쟁이 끝난 후 돌 하나를 세우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삼상7:12절‘여기까지 여호와께서 우리를 도우셨다’이 말은 과거에만 머무는 감사가 아닙니다. ‘이제는 끝이다’라는 말도 아닙니다. 여기까지 도우신 하나님은 지금도 도우시고, 앞으로도 도우실 하나님이라는 신앙의 선언입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도 도우심을 받았습니다. 광야에서도 도우심을 받았습니다. 홍해 앞에서는 길을 여셨고 물이 없을 때는 반석에서 물을 내셨고 먹을 것이 없을 때는 만나를 주셨습니다. 어제만 도우신 하나님이 아닙니다. 오늘도 이 자리에 있는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이 기도할때에 에벤에셀 하나님은 철저하게 도우실 것입니다. ‘여기까지 왔다’는 말은 ‘하나님이 나를 여기까지 이끄셨고, 앞으로도 함께 가실 것이다’라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지난 인생을 돌아보며 감사 제목을 적어보시기 바랍니다. 힘들었던 자리에서도 하나님이 지켜주신 흔적을 찾아보십시오.‘여기까지’의 하나님을 기억하는 사람은 ‘여기부터’의 하나님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학2:19절‘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이 복을 사모하여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2.에벤에셀 시대는 회개로 시작됩니다.
에벤에셀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에벤에셀은 미스바 대 각성 후에 내리신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회개하는 자에게 임합니다(2-6절). 미스바 부흥운동은 바로 회개운동이요, 종교개혁운동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언제나 회개하는 자에게 역사합니다. 회개 후의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였습니다(7-8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개 후에 사무엘에게 기도하기를 요청하였습니다. 이는 합심기도, 확신의 기도였습니다. 온전한 번제를 드렸습니다(9절). 엘리 때는 온전한 번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 때에 와서 온전한 제사가 회복되었던 것입니다.
에벤에셀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에벤에셀은 승리 후에 내리신 축복입니다. 블레셋이 전쟁을 걸어왔습니다(1절). 사단의 무리는 은혜의 집회를 방해합니다. 하나님이 큰 우뢰로 그들을 패하게 하셨습니다(10절). 모든 승리는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오늘날까지 나아 온 것도 오직 하나님의 역사 때문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승리의 모습입니다(11절). 오직 하나님의 역사 때문이었습니다. 에벤에셀은 하나님의 감사입니다. 에벤에셀은 감사, 감사의 제단입니다. 미스바와 센 사이의 돌단입니다(12절). 이는 에벤에셀이니 감사, 감사의 제단이었습니다. 잃은 땅을 되찾는 회복의 돌단이었습니다(13-14절). 에벤에셀의 하나님은 다시 회복케 하신 은혜의 하나님이었습니다. 미래에도 도우실 것을 믿고 쌓는 제단이었습니다(15-17절). 우리가 잘 변하지,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가 되셔서 변치 않으신 분으로 영원까지 에벤에셀 되시는 분이십니다.
에벤에셀의 돌은 회개의 자리 위에 세워졌습니다. 사무엘은 분명히 말합니다. 삼상7:3절‘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라’ 회개 없는 승리는 없습니다. 우상 제거 없는 회복은 없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삼손이 맷돌을 돌리고 있을 때에 그 때가 삼손에게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맷돌 돌리는 것은 처음에는 수치스럽고, 원통하고, 원망스럽고 후회스러움으로 가득 찼을 것입니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갈수록 하나님께 회개했습니다. 자신의 교만함, 방자함, 자기 힘만을 의지했던 것들을 회개했습니다. 맷돌을 돌리는 중에 머리털이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머리털이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는 말씀을 읽으며 그의 신앙이 다시 점점 자라기 시작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바벨론이라는 우상 문화 속에서도 하나님을 선택했습니다. 단1:8절‘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그 결단 위에 하나님은 은혜와 존귀함을 더하셨습니다. 사탄은 욥의 입술을 노렸습니다. 환경은 무너졌지만, 욥의 신앙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욥1:21절‘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불평을 막아낸 사람은 결국 갑절의 회복을 경험했습니다.
오늘 내 마음의 우상은 무엇입니까? 돈? 성공? 인정? 편안함? 미움과 다툼과 원망과 불평이 입에 맴돌 때 ‘아, 지금 영적 전쟁 중이구나’하고 깨닫고 기도의 자리로 돌아오십시오. 회개는 자책이 아니라 회복의 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에벤에셀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과거는 에벤에셀 ‘하나님이 여기까지 도우셨다’입니다. 현재는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미래는 여호와 이레 ‘하나님이 이미 준비하셨다’입니다. 하나님이 하셨고, 하나님이 하시며,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우상을 버리고, 교만을 내려놓고, 하나님만 섬길 때 우리는 다시 에벤에셀의 돌을 세우게 될 것입니다.
복 받을 그릇을 준비하는 삶, 많은 사람이 복을 받길 원하지만, 정작 복 받을 행동은 하지 않으려 합니다. 복의 근원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남을 시기하거나 환경을 탓하는 대신, 내 밭을 묵묵히 일구는 농부처럼 신앙의 자리를 지키십시오. 정직하게 행하며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은 상주감리교회 여러분의 가정과 섬기는 교회에 막힌 것을 뚫어주시고, 인간관계속에 평화를 허락하실 것입니다. 여기까지 도우신 하나님께서 오늘도, 내일도, 2026년에도 사무엘의 시대에 임했던 에벤에셀의 영광이 오늘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도 풍성하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