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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설교를 통해 평생을 배우고 깨달아 각성하고 결심하고 자긍하는 가운데 죄만 반복되는 근본 이유
모든 성경의 목적도 믿음도 소망도 사랑도 목자도 안식일도 은사도 능력도 진리도 성령도 오직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성품을 이루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하나님의 능력을 갖추도록 하시기 위하심에
존재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설교를 듣고 감동받았는가가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좇아난 신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하나님의 온전한 범죄 하지 않는 자녀가 되었는가 입니다. 또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좇아난 선한 일을 행할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좇아난 그리스도의 선과 의를 행하는 그리스도의 삶을 살고 있는가입니다.
평생을 다른 사람의 경험과 다른 사람의 교훈을 간접적으로 듣고 감동받는 오늘날 기독교인의 신앙은 자기 자신을 의지한 자기 중심의 신앙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를 의지해서 자신의 혈기 자신의 의욕, 자신의 확신, 자신의 각성, 자신의
다짐, 자신의 자긍에만 기대하도록 인도하는 오늘날의 모든 종교들의 설교와 기독교의 설교들의 한계는 명확하게
죄만 반복할 수밖에 없는 육체를 지닌 인간의 악한 죄의 습관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설교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학습과 교육 방식에 기대어 머리와 지능을 통해 배우고 익히고 깨달아 자기를 의지해서 각성하고 다짐하고
결심하는 다른 사람의 교훈과 감동의 한계는 모든 종교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공통적인 구조와 문제점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하나같이 많은 세월 속에 지속적으로 자신을 의지하여 각성과 다짐과 결심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사람의 설교로 인하여 하나같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절대화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머리와 지능을 좇아 배우고 익히고 느끼고 깨달아 각성하고 다짐하고 결심 합니다 이 인간의 반복
되는 학습과 교육과 교훈은 인간은 매우 어릴 때부터 자신이 점점 절대화가 될 수밖에 없는 습관에 길들어져 왔습니다
자신을 의지해 의욕하고 확증하고 결심하고 자긍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인간 교육 방식에서 길들어진 습관에 의해 오늘날의 모든 종교들과 기독교의 다른 사람의 경험과 교훈만 이론적 가치에 불과한 설교 방식을 아무런 검증도 여과도 거치지 않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들이 학문에서 배워 왔던 방식대로 쉽게 받아 드린 것이 가장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많은 세월 속에 반복되는 설교의 따라 모든 성도들은 점점 자신을 더욱 의지해 각성하고 다짐하고 결심하고 자긍하는 결과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점점 절대화 되어 가는 습관이 점점 커지고 극대화 되어 갑니다 기독교인들의 설교로 인하여 자신을 의지한 의욕과 확신과 자긍만을 일으키는 감동으로 난 결과의 부작용은 상상을 초월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탁하는 대신, 오직 자신을 절대적으로 의지한 자신의 의욕과 확신과 자긍만 일으키는 습관은 자신의 주장이 말씀화가 되고 자신의 판단이 하나님화가 되고 자신의 기준인 그리스도인양 하는 태도는 점점 자신을 절대화한 습관 넘어 자신이 하나님화가 되어 버린 줄도 모르는 신앙으로 인도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자신만 의지도록 한 설교의 감동으로 인한 참담한 결과는 모든 성도들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절대화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주장이 말씀 위에 군림하는 하나님화가 될 줄을 모른 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경험을 듣고 감동받는 신앙은 이론이나 다를 바 없는 간접적인 신앙입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 다른 사람의 체험, 다른 사람의 교훈을 듣고 마음이 뜨거워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감동이 내 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역사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을 의지하는 습관에 이끌린바 됩니다
자기의 각성, 자기의 다짐, 자기의 결심, 자기의 의욕, 자기의 확신, 자기의 자긍을 버리지 못하면 사람은 하나님을 절대로 의지하지 못 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말만 앞세운 설교들이 만들어 놓은 가장 큰 부작용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의지
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람에게 계속 감동으로 결심하게 만들고, 다짐하게 만들고, 자기 의욕을 불태우게
만듭니다. 이 반복되는 결과는 결국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믿는 습관에 점점 길들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습관이 점점 오래되면 어떻게 됩니까?
자기의 생각이 하나님의 뜻처럼 여겨집니다. 자기의 판단이 말씀의 기준처럼 여겨집니다.
자기의 주장이 진리처럼 여겨집니다. 자기의 확신이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여겨집니다
자기의 주장이 성령의 역사처럼 여겨집니다. 이것이 설교중심이 부른 자기중심이 믿음화 되고,
인간이 신격화되는 종교의 참담한 결과입니다.
여러분, 사람의 머리와 지능으로 배우고 익히고 깨닫는 교육 방식은 세상과 인간의 방식입니다. 지식을 배우고, 이론을
익히고, 감동을 받고, 결심하는 것은 모든 종교에서도 일어나는 공통적인 방식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
하는 신의 진리를 얻는 방식 자체가 아닙니다. 그저 세상사와 인간사의 학습 방식이요 모든 이단들의 설교 방식입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2장 4~14)
문제는 종교가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우면서도 실제로는 인간의 생각, 인간의 철학, 인간의 지식, 인간의 도덕, 인간의 감동을 말씀과 진리로 은혜로 포장한다는 데 있습니다. 명분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제목은 진리입니다. 표현은 성경적입니다. 그러나 그 설교 안에 실체는 사람의 주장, 사람의 해석, 사람의 철학, 사람의 지식, 사람의 도덕입니다.
성경 구절을 이용한다고 해서 다 하나님의 진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말한다고 해서 다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말씀이 중심인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도하는 것도 아닙니다.
만일 이 설교가 죄를 드러내지 못하고, 회개로 인도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선과 의의 열매를 맺게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람의 교훈일 뿐이요 감동만 부풀리는 누룩일 뿐입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은 부드러운 말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따뜻한 말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을 위로해 주는 말이라고 해서 다 생명의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입술은 기름보다 부드러워도 그 마음은 전쟁일 수 있고, 그 말은 미끄러워도 실상은 뽑힌 칼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또
음녀의 입술은 꿀처럼 달콤하고 그 입은 기름보다 미끄럽지만, 그 끝은 쑥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같이 날카롭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듣기 좋은 말이 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닙니다. 마음을 녹이는 감동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진리가 아닙니다.
좋은 말과 아첨하는 부드러운 말과 공교한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게 하는 자들도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부드러운 설교도 유창한 말솜씨도 설교의 감동도 감동의 눈물도 아닙니다. 그 설교가 죄에서 떠나는
하나님의 능력의 은사를 받도록 인도하고 있는 것인가를 보아야 합니다. 이 설교의 내용이 거듭남의 회개로
이끄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이 설교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선과 의의 열매를 맺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얻도록 하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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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진리는 다른 사람의 경험과 교훈과 감동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참된 진리는 사람의 의욕을 불태우는 설교가 아닙니다.
참된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감동을 주지 않습니다
참된 진리는 그리스도의 소망으로 인도하여 성도들을 깨끗하게 합니다.
참된 진리는 세상에 속한 정욕을 버리고 죄에서 떠나게 합니다.
참된 진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나타는 진리의 능력으로 서게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경건치 않은 것과 세상 정욕을 버리게 하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죄에 머물러 있는 자들을 위로하고 안심시키는 아첨하는 설교를 하지 않습니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을 깨끗하게 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게 하며, 선한 일에 열심하게
하는 능력을 좇아 선과 의에 백성으로 인도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설교를 듣고 감동받습니다. 그러나 감동은 구원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시 결심합니다. 그러나 결심은 성령의 능력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나 눈물은 곧 회개의 열매가 아닙니다.
사람의 말은 사람을 잠시 뜨겁게 만들 수 있습니다.
사람의 경험은 사람을 잠시 울게 만들 수 있습니다. 사람의 교훈은 사람을 잠시 결심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 안에 반복되는 악한 습관을 죽이는 강력한 하나님의 능력은 설교 안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죄를 이기고 거듭나도록 인도하는 하나님의 능력은 사람의 감동에 없습니다.
정욕과 죄를 버리게 하는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은 사람의 결심에 없습니다.
그 능력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역사하는 신의 능력입니다.
나는 설교를 듣고 감동받는 데 왜 죄만 반복하는 자리에서 머물러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했는면서 왜 정욕과 죄를 반복하는 세속에 살고 있습니까?
내가 듣는 설교는 세상 근심을 위로해 주는 말입니까? 아니면 구원에 이르는 회개로 인도하는 말씀입니까?
나는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입니까? 아니면 말씀을 행하는 자입니까?
여러분, 우리가 먼저 정직하게 물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실제로 가지고 있는가?
나는 죄를 미워하고, 악한 습관을 죽이며, 선과 의의 열매를 맺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변명하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을 많이 들었다고 해서 변화된 것이 아닙니다.
설교에 감동받았다고 해서 죄에서 해방된 것이 아닙니다.
눈물을 흘렸다고 해서 악한 습관이 죽은 것도 아닙니다.
사람의 말은 잠시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사람의 교훈은 순간적으로 결심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감동과 결심만으로는 인간 안에 반복되는 죄의 습관을 죽일 수 없습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의욕,
자기 확신, 자기 자긍을 의지합니다.
설교를 듣고도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더 강하게 세웁니다.
회개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축복과 형통만을 구합니다.
그 결과 사람은 점점 부드러워지는 것이 아니라 더 완고해지고,
더 겸손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자기중심적이 되며,
더 선해지는 것이 아니라 말과 행동이 다른 이중적인 사람으로 변해갑니다.
겉으로는 거룩한 척 하나 매우 완고하고, 겉으로 인자한 척 하나 실제로는 매우 이기적이고, 겉으로는 겸손한 척
하나 실제로는 자기 주장이 절대적이고, 겉으로는 선한 척 하나 매우 교활한 악한 이중성과 처세술의 믿음으로
점점 변해 갑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진리에서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열매가 아닙니다.
이것은 사람의 말과 감동과 자기 확신으로 만들어진 거짓된 믿음들의 열매입니다.
참된 진리는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철학이나 지식이 아닙니다.
성경을 인용한다고 해서 다 하나님의 진리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말씀을 자기 주장과 자기 해석을 세우는 도구로 사용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사단의 궤계요
마귀의 궤휼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사람을 자기 자신에게로 이끄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사람을 하나님께로 이끌고, 자기 의를 꺾으며, 악한 습관을 죽이고, 선과 의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속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많이 들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얼마나 감동받았는가가 중요한 것도 아닙니다. 내 안에 죄가 죽고 있는가,
내 안에 이기심과 완고함과 거짓과 교활함이 꺾이고 있는가,
내 삶에 하나님의 사랑과 선한 행실이 실제로 나타나고 있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참된 하나님의 진리는 말의 감동이 아닙니다.
참된 하나님의 진리는 죄인을 변화시키는 신의 능력입니다.
사람의 말은 사람을 흥분시킬 수 있지만, 하나님의 능력은 사람을 새롭게 합니다.
사람의 교훈은 결심하게 만들 수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악한 습관을 죽이고 의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말로만 믿는 믿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자기 확신과 자기 의욕과 자기 자긍을 믿음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름으로 자신을 높이는 믿음은 결국 하나님 앞에 대적이 됩니다.
진짜 믿음은 자신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꺾는 것입니다. 진짜 진리는 사람의 주장을
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겸손한 자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진짜 하나님의 능력은 입술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선의 열매로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듣고 감동받는 말이 아니라, 죄를 죽이고 선을 행하게 하는 살아 있는
사랑의 능력입니다.

첫댓글 말씀으로 깨우시는 것 같습니다.. 현재 나의 마음을 지금껏 믿어 왔던 신앙의 한계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있다고 믿었던 것이.. 나를 의지하고 있었다는게.. 참 말씀앞에 부끄럼고 얼마나 교만하였는지요.. 나의 의욕이 아닌.. 정말 절실한 마음으로 진리를 찾고, 사랑을 실천하며 진정으로 변화되는 참 그리스도인 으로 거듭나 여져가기를.. 더욱 말씀 앞에 고민하게 됩니다..
과연 저를 부끄럽게 하는 말씀입니다. 저의 믿음부터가 자신을 의지하고 의욕하는 한계에서 챗바퀴 돌고있고 아직도 오롯이 하나님을 좆지 못하는 믿음이라하기에 민망한 수준임을 지금 글의내용으로 제 자신을 뒤돌아보게 됩니다
설교를 통해 감동받으면 하나님의은혜 인줄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다짐하고 결심하고 의욕을 불태워서 혈기로 신앙생활을 했고 하나님을의지하는게 아니라 나를의지해서 내판단과. 기준이 절대화가 되있었다니 생각치도 못한 내용입니다
또한 설교를통해. 말씀으로위로받기를 원했고 눈물의기도가 회개인줄알았고~
그렇지만 반복되는 세월속에 변화되지않는 나를보고 참담했었는데~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선한열매가. 나타나며 죄를죽이고. 겸손한자로 변화시키고 선과의를 행하는 그리스도의삶을 살고있는가를 다시 점검하게됩니다 아직도 하나님앞에 한없이 부끄럽고 부끄러운 죄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