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불교 교류
북부조국 스님들 방미 환영사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절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줍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석근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월북하신 시인 정지용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오늘 이자리에 그 그리움을 갖고 고향처럼 우리곁을 오신 분들이 계십니다. 진심으로 환영의 박수를 보내드립시다.
뉴욕에 오시는 날 잠깐, 그리고 어제와 오늘 이틀 동안 북에서 오신 네 분을 뵈면서 저는 고향의 아버님을 생각했습니다. 풋 중시절 산자락 끝에서 뵙던 노스님을 만나 뵈온 듯 했습니다. 문 밖으로 나서면 마주치는 이웃의 낯익은 아저씨들, 그 아저씨를 만났습니다.
오늘 이 자리를 우리가 함께 한 것은 서투른 정치이야기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종교이야기를 논하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한숨짓던 실향민의 고향소식이 듣고 싶고, 춥고 어두운 날이면 생각나는 두고 온 분들의 안부가 궁금하고, 한반도의 같은 땅이면서 발조차 마음대로 디딜 수 없었던 곳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렇게 모였습니다.
여쭙고 싶은 많은 말들, 전하고 싶은 숱한 이야기들을 이 자리에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자리를 시작으로 우리는 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환영의 이 자리가 이번 행사의 끝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비로소 시작되는 환영의 자리입니다.
자주자주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자리의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여비만 마련되면 훌쩍 다녀올 수 있고, 운동화끈만 튼튼히 매도 금방 뛰어갈 수 있는 바램의 시작입니다. 그 시작이 궁극에는 하나되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멀리서 오신 스님들께 이 자리에 참석하신 내외귀 빈 및 신도님들을 대표하여 제가 환영사를 드리는 바 입니다.
아주 오래전에 통일을 바라는 마음으로 썼던 저의 졸시를 끝으로 환영사를 마칠까 합니다.
백의민족의 깃발이 풀풀이 날리던 날 한 점의 불응도 그 땐 거기 없었다.
몽고족의 수난이 답답히 이 땅을 죄어 올때에 각고의 세월들은, 가로 세로 팔만사천의 빛을 영원 속에 탄생시켰느니
왜놈의 게다짝이 悲運의 이 살갗을 짓밟아도 폐와 장은 먹빛 그늘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
영원한 민족이여!
겨레의 소원으로 너의 깃발이 흩날리는 날
한 점의 불응도 그 땐
거기 없었다.
* 1991년 11월 10일 통일을 위한 남북한 불교도 합동 법회의 환영사
워싱턴 법주사 주지 일철
1992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