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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시 :2014년2월8일 토요일
서산국궁장 서령장 도착[09:27] - 서령정 출발[09:35] - 솔개재[10:06]
- 망일지맥 분기점[10:28] - 비룡산[10:38] - 쥐뿌리재[10:53] - 거북바위[11:09]
- 장군바위 갈림길 이정목[11:14] - 금강산[11:23] - 팔봉지맥 분기점[11:28] - 장군산[11:53]
- 서산예비군훈련장 진입도로 접속지점[12:03] - 지하통로[12:07~12:18; 휴식과 간식]
- 수량재 민가(차리수량재길2-7)[12:22] - 차리배수지[12:30] - 물래산[12:38] -
진산[12:59] - 지하통로[13:17] - 팔봉중학교[13:20~13:38; 점심] - 구세군진장교회[13:55]
- 도내2리(북창) 버스정거장[14:15] - 붉은재[14:22] - 오석산[14:47~14:50] - 옥녀봉[15:04]
- 강실고개[15:14] - 묵밭[15:20] - 바위봉우리[15:38] - 흥주산[15:58] - 흥주산
전망대[16:00~16:03] - 흥주산[16:05] - 약수터 갈림길[16:13] - 백화산 등산로 입구[16:15]
- 구조목<백화산길 01-05>과 산후리 주차장 갈림길[16:27] - 공군부대 철조망
능선 이정목[16:31] - 백화산[16:35~16:41] - 태을암[16:50~16:54] - 태을암 입구[16:56]
- 도로 좌측 전신주(6981A 291)[17:01] - 낙조봉[17:04~17:07] - 태안교육청 갈림길[17:10]
- 태안학습센터 뒷길(성안1길)[17:19] - 태안여고[17:23~17:25] - 대한 알뜰주유소
부근 공터[17:30]
윗갈치 : 충남 서산시 갈산동과 성연면의 경계이며, 29번과 77번국도가 지난다. ‘서령정(瑞寧亭)’이라는 서산궁도장이 있다.
솔개재 : 솔개는 매목 수리과의 조류로 소리개라고도 한다. 183m봉이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이라 하며, 솔개가 닭을 채가려는 형국이라 하여 유래되거나 솔개가 많이 살고 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망일지맥 : 신산경표(저자 박성태)에 의한 망일지맥으로 서산시 갈산동 죽사(사찰) 뒷산 비룡산에서 북쪽으로 분기하여 서산시 대산읍 삼길리 대호방조재 남단까지 이어지는 약 35.8km 산줄기를 말한다, 솔개재 동북쪽 약 1.2km 지점 비룡산의 분기봉에서 북쪽으로 삼고개, 연화산(234.6m), 화방산(161.6m), 부성산(118m), 망이산(128m), 망뫼산(120m), 망일산(302.3m), 지새고개, 몰니산(169.2m), 복우재, 자용산(152m),서해 가로림만에서 끝이난다. -출처 : 순천한울산악회 |작성자 산악인-
비룡산(飛龍山) :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성리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280m이다. 『서산군지』(1926)에 "부흥산 여맥이 갈산리에 이르러 우뚝 솟기 시작하여 성리에 이르러 비룡산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산의 모양이 날아가는 용처럼 생긴 데서 지명이 유래하였다. 산에는 죽사(竹寺)와 50장 높이의 바위가 있다. 죽사는 백제 의자왕때 도감승려에 의해서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바위는 절 뒤에 있는데 매우 커서 쉰질바위라고도 하고, 영구암(靈龜岩)이라고도 한다. -출처; 네이버 지식-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성리 에 있는 산으로 비룡산 남동쪽 210m에 있는 죽사(竹寺)에는 대나무와 바위가 서로 누가 먼저 자라는지 내기를 하여 대나무가 이겼다는 전설이 전한다. 이때 바위와 대나무가 점점 커지는 바람에 산에 살던 용이 안식처가 좁아져서 산으로 올라가 벼락을 쳤다고 하며, 비룡산이라는 이름도 여기서 유래하였다고 전한다. 비룡산은 팔봉면과 인지면의 경계로, 동쪽에는 국도 29호선이 지난다. 북쪽으로는 지방도 634호선이, 남쪽으로는 국도 32호선이 지나고 있다. 동쪽에 서산종합운동장과 서산시청이 있으며, 북동쪽에는 서산테크노밸리가 위치한다. 산 정상 남동쪽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修德寺)의 말사인 ‘죽사’가 위치한다. -출처; 디지털서산문화대전-
집뿌리재 : 집뿌리재(쥐뿌리재)는 서산시 금학리와 성리를 이어주는 고개길이다.
금강산 : 충남 서산시 인지면 차리의 금강산은 팔봉면과 인지면의 경계에 있으며, 비룡산 바로 서쪽에 있다. 산의 밑에 있는 장군봉[203.5m]은 인지면의 역마산(驛馬山)과 연결된다. 이 사이에 있는 차리고개는 서산과 태안을 잇는 고개이다. 본래는 ‘서각산(犀角山)’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코뿔소산’이라는 뜻이다. 1927년에 간행된 『서산군지(瑞山郡誌)』에는 ‘서각산(鼠角山)’이라고도 부른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쥐뿔산’이라는 뜻이다. 현재 국토지리정보원에서는 ‘금강산(金剛山)’으로 표기하고 있다. 산 정상에 있는 큰 바위 모습이 북한의 금강산과 닮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국립지리원 발행 지도에는 바로 서쪽 옆의 비룡산과 함께 표기되어 있다. 북쪽에는 지방도 634호선이, 남쪽에는 국도 32호선이 지난다. 동쪽에는 서산종합운동장과 서산시청이 있으며, 북동쪽에는 서산테크노밸리가 위치한다. -출처; 한국향토문화 대사전- 디지털서산문화대전-
금강산 최고봉 삼각점은 판독이 어렵다. 마을주민들이 알고 있는 사실상의 금강산은 한번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선 다음 봉우리의 남쪽 지능선 기암절벽의 암봉으로, 북녘의 금강산과 진 배 없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팔봉산 : 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양길리 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361.5m이다. 옛 서산 읍지인 『호산록(湖山錄)』에 따르면 8개의 봉우리가 이어져 있어 팔봉산(八峰山)이라고 부른다고 기록되어 있다. 원래는 8개의 봉우리보다 하나 많은 9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가장 작은 봉우리를 제외하고 8개의 봉우리를 가리켜 팔봉산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가장 작은 봉우리가 매년 12월 말에 운다고 전해진다. 팔봉산은 8개의 봉우리가 능선을 따라 남북으로 걸쳐 있으면서 팔봉산[361.5m]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연화산[284.2m], 남쪽으로는 금강산[316.1m], 장군산[203.5m] 등이 능선을 이루고 있다. 팔봉산 북쪽에는 지방도 634호선이 지나고 있고, 서쪽에는 솔감저수지가 있다.
-참고자료; 디지털서산문화대전-
팔봉산은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 양길리, 금학리의 3개 마을에 접해 있으며, 이 산맥은 인지면 서각산에서 출발, 서남쪽으로 빠져 금학리에서 기봉하여 금강산 6봉이 되고 이후부터 두 갈래로 되어서 한 갈래가 어송리로 뻗어 있다. 팔봉산의 명칭은 호산록에 따르면 원래 산봉우리가 9개인데 제일 작은 봉우리를 제외하고 팔봉산이라 했고, 매년 12월 말이면 작은 봉우리가 자기를 수에 넣지 아니하였다고 울었다는 전설이 있다. -100대명산- 지난 2004년 8월, 한배달민족정기선양위위원회 쇠말뚝뽑기운동본부가 팔봉산 기슭에서 일제가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박아놓은 콘크리트 말뚝(일명 혈침)을 제거하기도 했다.
장군산 : 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와 인지면 차리의 경계에 걸쳐 있는 산으로 산 정상에 장군바위가 있어 장군산(將軍山) 혹은 장군봉(將軍峰)이라고 부른다. 금강산(金剛山)의 줄기로 금강산, 서각산, 장군산 등의 명칭이 혼재되어 사용되고 있다. 장군산 남쪽 계곡에서 발원한 하천은 계곡의 남북 방향으로 흘러 팔봉면 솔감저수지에서 만나 가로림만으로 흘러 들어간다. -출처; 네이버 지식-
차리고개 : 서산과 태안을 잇는 고개로 금강산 밑에 있는 장군봉과 물래산 사이에 있다. -출처; 디지털서산문화대전-
물래산 : 충청남도 서산시에 있는 산줄기를 이루는 봉우리들 사이의 낮은 능선부로 서산시 팔봉면 진장리에 있으며 높이는 145m이다. 물래산에서 좌측(남쪽)으로 이어지는 지능선은 부석지맥이다. -참고자료; 디지털서산문화대전-
굴포운하 : 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 에 있었던 운하이다. 고려에서 조선까지 수도가 개성과 한양에 설정됨에 따라 서해 연안 해로의 운송로 기능은 극대화되었다. 당시 세곡과 각종 공납품의 가장 중요한 공급지는 경상, 전라, 충청의 삼남 지방로서 물류의 대부분이 태안반도 연안을 경유하여 개성 혹은 한양으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이 조운의 과정에서 태안반도 안흥진 앞의 안흥량은 전라 울돌목[鳴梁], 강화의 손돌목과 함께 가장 대표적인 위험 지역으로 해난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지역이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운하를 개착하게 되었다. 고려 숙종[1096년~1105년], 예종[1106년~1122년] 연간에 운하 개착의 논의와 시도가 있었으나 운하의 개착 시도가 기록상 처음 등장하는 것은 1134년(인종 12) 7월의 일이다. 인종은 정습명(鄭襲明)을 파견하여 태안 및 인근 지역에서 수천 명의 인력을 동원하여 운하를 파게 하였으나 암반이 물 밑에 있고 또 조수가 왕래하므로 파면 파는 대로 메워져 공사하기가 쉽지 않아 성공하지 못하였다. 1391년(공양왕 3)에 왕강(王康)의 건의에 따라 굴포운하 개착 공사가 재개되었으나 이 역시 성공하지 못하였다. 조선 건국 이후 1412년(태종 12)에 다시 운하 건설이 논의되었다. 하륜(河崙)의 건의로 종래의 관류식(貫流式)과 다른 일종의 갑문식(閘門式) 형태를 채택하여 1413년(태종 13) 1월에 착공하였다. 병조 참의 우부(禹傅)와 의정부 지인 김지순(金之純)의 감역 하에 인근 주민 5000명이 동원된 이 공사는 1413년 2월에 종료되었다. 1413년(태종 13) 완공된 이 태안조거(泰安漕渠)는 공사의 난관이 되었던 12㎞ 가량의 고지대 안부(鞍部)를 중심으로 남쪽 3개 처와 북쪽의 2개 처의 저수지를 계단식으로 조성하여 물길을 연결하는 일종의 갑문식으로 처리함으로써 기술적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러나 저수지의 규모가 작아 소규모의 용선(用船) 능력 밖에 없었고 그나마도 일부 구간은 소선 한 척이 겨우 다닐 정도이며 조수 간만의 차로 인하여 실제 통선 가능 일수도 많지 않아 실제 그 기능이 미흡하였다. 굴포운하 개착 문제는 조선 현종 대에 이르러 논의가 재연되어 송시열(宋時烈)은 이른바 설창육수(設倉陸輸) 안을 제안하였다. 천수만 쪽 옛 순성(蓴城) 근처에 조선(漕船)을 정박시킨 다음 여기에서 조미(漕米)를 가로림만 쪽 영풍창(永豊倉) 옛터까지 육수(陸輸), 그리고 다시 선박으로 옮겨 실어 경창(京倉)으로 가는 방안이다. 이를 위해서는 순성과 영풍창 옛 터 두 곳에 창고가 필요했다. 1669년(현종 10) 설창육수를 위해 안민창(安民倉)이 설치되지만 이 방안도 실제 번거롭기에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다. 충청남도 태안군 태안읍 인평리와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간 약 7㎞에 달하는 운하 유적의 일부가 남아 있는데, 높이는 제일 낮은 곳이 3m이고 제일 높은 곳은 50m이다. 문화재 지정이 되어 있지 않고, 훼손이 진행 중이며 자연 하천, 논밭 등의 경작지로 되어 있는 부분도 많다. -출처; 디지털서산문화대전-
굴포 운하지 : 굴포란 운하를 뜻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운하지로 가로림만 상류인 팔봉면 이송리(팔봉중학교 뒤편)와 천수만으로 흘러드는 홍인천(태안군 인평리, 현 인평저수지) 사이의 좁은 목 약 3km를 굴착하여 수로로 연결하고자 한 곳이다. 삼남지방의 세곡미를 개성(서울)으로 조운함에 있어 조운선단이 태안반도의 안흥량(안흥) 관장항을 반드시 통과해야 했으나 안흥량은 돌출되어 있고 암초가 많으며 급한 조류로 인하여 조운선이 자주 전복되자 안전수송과 지리적 시간적 거리를 단축시키고자 운하 개착이 필요했다. 고려인종12년(1134년)부터 굴착하여 임진왜란 직전까지 약400년 간 수많은 인부를 동원하여 운하공사를 계속하였으나 암반과 조수에 토사가 밀려 실패하였다. 그 후 조선 현종(1668년)때부터 굴포리 주변에 많은 조창을 지어 보관하였다가 육로로 이송하기 시작했다. 현재 남아있는 흔적은 팔봉면 진창리와 도내리 경계지점 약1km정도이다. 조거 유적 일대는 대부분 논으로 되었으며, 특히 연선의 가장 높은 지대인 해발 40m의 신털이봉 왼쪽의 논을 판개골, 판골 등으로 부르고 있다. -출처 : 순천한울산악회 |작성자 산악인-
붉은재 - 태안읍 어은리 흙이 븕은 색을 띄웠기 때문일 것이다. 충남 태안군 태안읍 2차선 포장도로(15번 지방도)
오석산(烏石山) : 충청남도 태안군의 태안읍 도내리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169m이다. 오석산은 예전에 오솔산, 오소산 혹은 두솔산이라고도 하였다. 『여지도서』에 "물금산은 군 동쪽에 있고, 산맥이 오솔산(五率山)으로부터 서남방향으로 이른다."라는 기록이 있다. 오솔산과 오소산은 오석산과 같은 산임을 알 수 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오석산(烏石山)'이라는 이름이 처음 보이는 것은 『조선지형도』이다. 『서산의 지명』에 "오소산(烏巢山)은 옛날 이곳에 까마귀 떼가 서식한 데서 이름이 생겼다."고 언급되어 있는데, 까마귀라는 글자가 쓰이기 시작하는 것은 문헌상으로는 일제강점기에 접어들어서부터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
강실고개 : 태안읍 상옥리 속말과 산후리 원산마을 을 이어주는 고개이다.
백화산 등산로 입구 도로 : 태안읍 오룡동과 냉정골을 이어주는 포장도로가 지난다.
백화산(白華山) : 충청남도 태안군의 태안읍에 있는 산이다(고도:285m).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읍 북쪽 3리 지점에 있는데 사면이 모두 돌로 되어 있다. 군 북쪽 13리 지점에 또 백화산이 있는데, 역시 사면이 모두 돌로 되어 있어 두 산이 유사하다."라는 기록이 있다. 지명은 산의 모양이 마치 흰 꽃이 활짝 피어 있는 것 같이 보인다고 해서 명명되었다고 한다. 이 산에는 봉수가 있었는데, 동쪽으로는 서산군의 북산(北山)과 호응하고, 남쪽으로는 서산군의 도비산과 호응하였다. 『해동지도』, 『조선지도』, 『여지도서부도』, 『청구도』, 『대동여지도』, 『1872년지방지도』, 『서산군지』 등의 사료에도 산이름이 표기되어 있다.
『서산군지』(1926)에 보다 상세한 설명이 있다. "백화산은 산맥이 팔봉면 금광산에서 나와 비스듬히 뻗어 서 본면 도내리 · 어은리로 들어가 우뚝 솟아 오소산이 되었고 두 지맥으로 나뉜다. 한 지맥은 동쪽으로 뻗어 가서 상옥리 · 인평리 사이에서 서우산이 된다. 한 지맥은 남쪽으로 가서 상옥리에서 우뚝 솟아 옥녀봉이 되며, 곧바로 흥주산으로 향하다가 방향을 바꾸어 태안읍 뒤에 이르러 우뚝 솟아 백화산이 된다. 이것이 태안군의 진산(鎭山)이다. 이 산은 오로지 암석으로 되어 있고 바위 사이로 겨우 한 조각의 땅이 있는데 태안 읍내 동문리 · 남문리 사람들이 함께 나무를 심어 지금은 울창하여 자랑할만하고 거의 바위면을 가릴 정도다. 이곳에서 두 지맥으로 나뉘는데 한 지맥은 층층이 모(旄)와 같고 개대치평으로 뻗어 평천리에서 그쳐 밖으로 읍지(邑址)를 감싼다. 한 지맥은 낙조봉에서 우뚝 솟아 두 지맥으로 나뉜다. 동쪽 기슭은 비스듬히 뻗어 중봉치에 이르러 여의천에서 그치고 안으로 읍을 감싸고 있다." 이 내용을 통해서 금광산에서부터 이어지는 주요 산줄기와 진산으로서의 백화산이 읍치를 감싸고 있는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서산군지』에는 이 산에 있는 봉수대 · 영사대(永思臺) · 어풍대(御豊臺) · 태을암(太乙庵) 등의 고적에 대한 기록이 있다.
-출처; 한국지명유래집 충청편-
충청남도 태안군 태안읍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284m로, 금북정맥에서 서쪽으로 뻗은 능선이 팔봉산(326m)에 이어지고, 다시 백화산까지 산줄기가 이어진다. 작고 아담한 산이지만, 서해 바다를 끼고 있어 풍경이 아름답다. 산에는 기암괴석들이 많고, 바위들과 소나무가 어우러져 있고, 특히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최고의 경관이다. 산기슭에는 태을암이라는 사찰이 있는데, 삼존불상이 큰 바위에 새겨져 있다. 중앙의 보살입상은 높이 223㎝이며, 좌우의 여래입상은 각각 306㎝와 296㎝이다. 좌우의 불상이 중앙의 것보다 큰 것이 특이한 점이다. 조각 양식으로 보아 백제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한국 마애삼존불의 초기 양식을 엿볼 수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백화산 [白華山] (두산백과)-
태안팔경 중 제1경으로 백화산은 온갖 수석을 모아놓은 듯 기기묘묘한 바위가 서해 바다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고 있지만 갈수록 훼손과 오염으로 시달리고 있다. 이 백화산은 서산시 팔봉면의 금광산(金光山)의 줄기가 태안의 도내리와 어은리로 벋어 내려 오소산(烏巢山 :一名五率山)을 이룩하고, 여기서 다시 두 갈래로 나뉘어 한 갈래는 동쪽의 상옥리와 인평리 사이로 벋어내려 서우산(犀牛山:一名勿金山)을 이루고 또 한 갈래는 남쪽의 상옥리로 벋어내려 옥녀봉(玉女峰)이 되고, 여기서 곧게 서쪽으로 벋어내려 흥주산(興注山)을 이룩하였는데, 이 홍주산이 태안읍사무소 뒤에서 백화산을 이루어 놓았다. 백화산은 태안의 진산인데, 산 전체가 바위로 되어 있으나, 한 때는 산림이 무성하여 특히 거목이 밀생하고 있었다. 그러나 8.15 광복 이후에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도벌(盜伐)과 남벌 등으로 인하여 오늘의 암석만이 남아 있는 글자 그대로의 백화산(白華山)이 되었다.
쌍괴대(雙槐臺) : 회화나무를 괴(槐)라 하며,
괴(槐)는 나무 목(木)에 귀신 귀(鬼)가 합쳐진 글자로서 회화나무의 옹두리가 귀신의 머리와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회화나무를 학자수(學者樹) 또는 ‘선비나무’라 하는데 이 나무의 가지를 보면 다른 나무와 달리 자유롭게 뻗어 나간 모습에서 자유로운 기상을 통해 학문을 성취할 수 있다는 선비정신에 비유하였다. 또한
회화나무가 사람이 사는 집에 많이 심은 것은 잡귀를 물리치는 나무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시대 궁궐의 마당이나 출입구 부근에 많이 심었다. 그리고 서원이나 향교 등 학생들이 공부하는 학당에도 회화나무를 심어 악귀를 물리치는 염원을 했다고 전해진다. 나무의 높이가 약 25m까지 자라며 가지가 넓게 퍼진다.
꽃봉오리를 괴화(槐花) 또는 괴미(槐米)라고 하며 열매를 괴실(槐實)이라 하는데, 한의학에서 약용으로 사용한다. 열매는 협과로 원기둥 또는 염주 모양이다. 괴화는 동맥경화 및 고혈압에 쓰고 맥주와 종이를 황색으로 만드는 데 쓴다. 괴실은 가지 및 나무껍질과 더불어 치질치료에 쓴다. 우리나라 산지에서 자라며 정원수나 목재는 가구재로 이용한다. 한국·일본·중국에 분포하며 영문명으로는 차이니즈 스칼라 트리(Chinese scholar tree)라고 한다. -참고자료;
네이버 지식백과-
이러한 뜻을 내포하여 2그루의 회화나무를 식수한 곳을 쌍괴대라
하였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태을암(太乙庵) : 태안 8경 중 제1경으로 꼽히는 백화산(白華山) 중턱에 자리 잡고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 수덕사의 말사이다. 창건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사찰의 이름은 단군영정을 안전시켰던 태일전(太一殿)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태일전은 건물이 없어졌고 그 터만이 남아 있다. 대웅전에는 중앙에 석가여래, 왼쪽에 관세음보살, 오른쪽에 소형 석가여래가 안치되어 있다. 사찰에서 3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백제 최고(最古)의 마애불상인 태안마애삼존불(국보 제307호)이 있다. 1962년 10월 1일에 전통사찰 제40호로 등록되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태을암 [太乙庵] (두산백과)-
모래기재 : 백화산에서 유득재로 이어지는 모래기재는 충남 태안군 태안읍 남문리와 삭선리를 잇는 고개로 603번 지방도로가 지난다.
[09:27] : 서산국궁장 서령정 도착 후 준비운동
[09:35] : 국궁장으로
진입하여 서산 사격장 건물 좌측 끝에서 숲속으로 진입
[09:45] : 무명봉(123m)에서 마루금은 우측으로 휘어진다.
[09:49] : 검은 차양막이 쳐진 곳을 지난다.
[09:55] : 삼각점이 있다는 무명봉(169.9m)을
지나는데 길 우측 풀 숲에 삼각점은 눈 속에 파묻혀 찾을 수 없다.
[10:02] : 무명봉(183m)을 내려가서
[10:06] : 솔개재를 지나가는데 우측에 노란색의 위험표시 경고천이 전선줄에 달려있다.
[10:17]
: 무명봉(227m)봉을 내려서면
[10:21] : 임도에 닿는데 좌측은 시멘트 포장도로이고 우측은 비포장 도로이다. 임도를 직진으로
건너 앞 봉우리를 오른다.
[10:28] : 망일지맥 분기점인 봉우리에서 정맥길인 좌측으로 진행한다.
[10:32] : 바위들이 있는 봉우리를 지나서 오른 봉우리 정상에 묘지가 있는 것을
보니
[10:38] : 비룡산(292m)인 것 같으나 아무런 표식도 없다. 묘지를 지나 쥐뿌리재(집뿌리재)로 내려 가는길에
진행 방향의 금강산과 쥐뿌리재를 잇는 도로가 보이나 나머지는 날씨가 몹시 흐려
시계가 뿌엿하다.
[10:53] : 쥐뿌리재(집뿌리재)는 우측의 서산시 팔봉면 금학리 마전마을과 좌측의 인지면 성리 용암마을을 이어주는 고개이다.
시멘트도로를 건너 우측으로 오르면 사랑나무라고 명명하는 나무가 우측에 있다.
[10:55~10:56] : 사랑나무를 배경으로 인증 샷을 남긴다.
[11:05] : 오르막 좌측에
묘지가 있는 곳을 지난다.
[11:08] : 좌측으로 크고 길쭉한 바위가 있는 봉우리를
넘어가니
[11:09~11:10] : 우측으로 커다란 바위 위에 거북모양의 바위가 얹혀있다.
사진을 찍느라고 잠시 지체한다.
[11:14] : 이정표<← 장군바위, ↓ 쥐뿌리재(죽사), ↗ 팔봉산>
있는 무명봉(295m)은 장군바위 갈림길삼거리인데 정맥길은 팔봉산 방향이다.
[11:23] : 금강산(316m)에 닿으니 삼각점(서산 27)이 있다.
[11:24] : 금강산
정상에서 내려가면
[11:26] : 암봉 전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꺽어 내려간다.
[11:28] : 팔봉지맥 분기점에는 '괜차뉴'님의 팔봉지맥 아크릴판과 등산대회 진행방향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팔봉지맥 방향으로 달려 있고, 정맥길은 좌측이다.
[11:36] : 능선 갈림길인데 우측은
나뭇가지로 막혀있고 정맥길은 좌측으로 꺽어진다.
[11:45] : 무명봉을 넘어 내려가는데 건너편에 장군산이 보인다.
[11:51] : "금북정맥을 종주하시는 산님들 힘내세요. 바랑산" 표지판 있는 곳을 지나 좌측으로 마루금은 꺽어지는데 직진으로 조금 가면
[11:53]
: 바위가 있는 장군산이다. 장군산을 뒤돌아 다시 마루금을 이어간다.
[11:54] : 블독(개) 같은 형상을 한 바위가 지나는 길 우측에 자리하고 있다.
[11:55] :바위가 있는 봉우리(200m)이고, 더 이상 진행할수 없으며 전망이 좋아보이나
오늘은 시계 제로이다. 좌측으로 급경사를 내려간다.
[12:03] : 서산 예비군훈련장 진입도로(좌측은 서산예비군 훈련장 방향)에서 우측으로 진행한다.
[12:04] : 수량재 - 32번 국도(구 도로)와 만나는 삼거리 우측에는 예비군훈련장
방향 안내판이 있고 좌측 홍성중기방향으로 내려간다.
[12:07~12:18] : 지하통로(신 32번국도 밑) 안에서 휴식을 취하며 간식을 먹는다.
[12:18]
: 지하통로에서 나와 우측 방향으로 송림씽크 간판을 보며 오른다.
[12:21]
: 좌측에 있는 송림씽크 건물과 잇대어 있는 민가를 지나면 민가로 들어가는 시멘트도로를 만난다.
도로따라 좌측으로 오른다.
[12:22] : 민가(차리수량재길 2-7) 마당에서 가옥 뒤쪽으로 나가면 정맥길이 이어진다.
[12:24] : 넓은 임도를 만나는데 좌측 방향이 정맥길이다.
[12:25] : 자갈이 깔린
임도를 만나면 건너편 약간 우측에 있는 나무에서 좌측으로 진행
[12:30] : 차리배수지 입구 옆 철조망을 따라 철조망이 끝나는 지점까지 가서
앞에 보이는 암봉을 향해 모래 사면을 오른다.
[12:34] : 바위봉우리에서 물래산을 향해 능선을 오른다.
[12:38] : 물래산(145m)에는
'준.희'님의 물래산을 알리는 패널이 달려있다. 정맥길은 정상에서 우측으로 급히 틀어야 한다. 임도따라 좌측 역마산 방향은
부석지맥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다.
[12:47] : 작은 바위들이 있는 봉우리(100m)에는 나무와
나무사이에 통나무를 매달아서 간이 쉼터를 조성해 놓았고 정맥길은 간이 쉼터 직전에
좌측으로 이어진다.
[12:59~13:02] : 커다란 바위들이 몰려 있는 봉우리에 도착하니 한현우님의 진산(155m)을
알리는 코팅지가 나뭇가지에 달려있고 잠시 쉬어간다. 산행 개념도에는 무명봉으로
140m봉이라 표기되어 있다.
[13:11] : 약간의 안부 같은 곳에서 갈림길을 만나는데
좌측으로 리본들이 달려 있다. 원래 마루금은 직진하여 32번국도를 건너서 팔봉중학교
정문으로 가야 하지만 지하통로를 이용하려면 마을로 내려가야 하기에 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려가서
정맥길을 이어간다.
[13:17] : 지하통로를 지나 팔봉중학교 방향인 우측으로 오른다.
[13:20~13:38] : 팔봉중학교 정문 좌측에는 진장1리 버스정류장이 있으며, 중학교 정문을 들어서서
좌측에 있는 '한울누리' 정자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눈비오는 날 식사하기에 안성마춤인
장소이다. , [13:38] : 정자에서 나와 본 건물 우측 계단 뒤로 지나간다.
[13:39]
: 학교 뒤에는 문이 없고 개방이 되어 있으며 마을길(시멘트도로)따라 통신탑을 보며 직진한다.
[13:44] : SK 팔봉 통신탑을 지난다.
[13:45] : 통신탑을 지나니 우측에
무밭인데 무는 뽑지도 않고 무청만 잘라내서 무가 그대로 있다. 약 50m정도 가면 삼거리를
만나는데 우측으로 진행한다.
[13:50] : 우측은 과수원이고 좌측은 밭인 시멘트
도로 삼거리를 만나는데 인평3리 버스정거장이 좌측에 있고 건너편에는 '삼원레저타운'
안내판이 있다. 여기서 우측으로 진행하여 도로따라 계속 진행하면
[13:53] : 굴포운하 안내도를
만나고 안내도 뒤로 나무다리가 보인다. 굴포를 사이로 서산시와 태안군이 나뉘고, 이제부터 태안군으로 들어간다.
구세군 진장교회 방향으로 전망대와 당산나무가 보인다.
[13:55] : 구세군 진장교회를 지나니
[13:57] : 인평3리(하창) 버스정거장과 다목적회관을 지난다.
계속 이어지는 도로를 따르니
[14:00] : 도내1리(도루째) 버스정거장이 있는 오거리이다.
10시방향인 좌측에서 두번째 도로로 접어들면 우측에 축사가 있다. 계속 길따라 진행하면
[14:04] : 도내1리(소한말) 버스정거장을 만나고 계속 길따라 직진하니
[14:08] : 도내1리(중말) 버스정거장이다. 여기서도 계속 직진하면
[14:12] : 농수로 다리앞 갈림길을 만나는데 좌측 길로 접어들어 앞에 보이는 빨간색 지붕 주택을
향해 길따라 계속 간다.(농수로 다리 앞에서 계속 직진하면 정맥길에는 가깝게 진행하지만
시멘트도로 삼거리에서 좌회전 하여 다시 도내2리(북창) 버스정거장에서 만난다).
빨간색 지붕의 주택을 지나면
[14:15] : 도내2리(북창) 버스정거장이 있는 사거리에 도착한다. 계속하여 직진하면
[14:21] : 우측에 도일목장 간판이 있는 곳에서 약 50m정도 앞이 붉은재이고
[14:22]
: 좌측에 리본들이 달려있는 숲으로 들어가 정맥길을 이어간다. 이후 한동안 곳곳에 나무가 쓰러져 있어 위 아래로 진행하기가 쉽지 않다. 강풍이 휩쓸고 지나간 흔적이란다.
[14:42] : 무명봉(161m)에 오르니 리본들이 나뭇가지에 달려있다.
무명봉에서 내림길에
[14:44] : 김해김씨 합장묘
지를 지나서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으로 오른다.
[14:47] : 산불감시초소를 만나고 이어서
[14:48~14:50] : 삼각점(서산 311)이
있는 오석산(169m)이다. 정상에서 좌측 9시 방향으로 급경사를 내려간다.
[15:00] : 우측으로 휘어지는 임도길을
만나는데 정맥길은 좌측으로 오른다.
[15:04] : 나뭇가지에 달려 있는 '한현우'님의 코팅지에 옥녀봉(130m)이라 적혀있다.
[15:14] : 시멘트도로인 강실고개에 내려선다.( 좌측의 태안읍 상옥리 속말과 우측의 태안읍 산후리 원산마을 을 이어주는 고개이다. 정맥길은
건너편 비탈로 올라가서 이어진다.
[15:20] : 현재는 묵밭으로 변한 곳이다.
[15:23]
: 무명봉을 넘는다.
[15:38] : 바위봉우리 지대를 지난다.
[15:43] : 계속되는
험난한 지대를 지난다.
[15:50] : 무명봉에 올라서 흥주산을 보고 오름길을 계속
진행한다. 흥주산에서 능선으로 이어지는 전망대도 희미하게 보인다.
[15:58] : 흥주산에
오르니 '한현우님'의 코팅지에 흥주산이라 적혀있다. 정맥길은 우측으로 내려 가지만 좌측 전망대로
향한다.
[16:00~16:03] : 전망대에 도착하니 이정목과 삼각점(서산 26)이 있으며
삼각점 안내판은 242m봉으로 표기되어 있다. 백화산 솔바람길 구간안내도도 있고, 전망대에는
망원경도 설치되어 있다. 흥주사까지는 우측방향으로 0.6km 정도 가면 된다.
[16:05] : 다시 흥주산 코팅지가 걸린 봉우리로 되돌아 와서 리본들이 달려있는
11시 방향으로 내려간다. 9시 방향에는 묘지가 있다. 목책에 로프로 안전지대를 형성한
곳을
내려가니
[16:13] : 약수터 갈림길로 이정목<↑ 백화산 정상 0.7km, ← 약수터 0.3km, 솔향기길, ↓ 흥주사 1.1km>이
있다. 백화산 정상 방향으로 진행한다.
[16:15] : 백화산 등산로 입구에 도착하니
내림길에도 이정목이 있고 백화산 오름길에도 이정목이 있다. 이 고개는 태안읍 오룡동과 냉정골을 이어 주는 고개로
시멘트 포장이 되어있다. 백화산을 향해 계단을 오른다.
[16:23] : 목책에 로프로 안전지대를 형성한 마지막 지점에 다달으니 커다란 바위가
양 옆에 있으며 그 사이를 지난다. 다시 이어지는 통나무 계단을 오르면서 위를 쳐다보니
공군부대 철조망 담장이 보이고
[16:27] : 구조목<백화산길01-05> 뒤로
산후리 주차장 갈림길 표지판이 있는 삼거리에서 직진하여 계속 오른다.
[16:31] : 공군부대
철조망이 시설된 능선 갈림길에 도착하니 그곳에 있는 이정목<좌측 태을암0.6Km
/ 올라온 방향인 흥주사 1.6Km>에서 좌측 태을암 방향으로 진행하여 백화산을
오른다. 오르는 도중에 목책에 로프로 안전지대를 형성한 마지막 부분에 다달으니
옆으로 전망바위가 있으나 시계가 제로인 오늘은 볼 것이 없다. 계속하여 오르니
[16:34]
: 기암 두 개가 우측에 거리를 두고 있는 곳을 지나 좌측으로 휘돌아 오르니
[16:35] : 백화산(284m)
정상이다. 백화산은 "태안의 진산" 으로 태안 8경 중 제1경으로 하얀 화강암으로 덮혀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앞에는 봉화대지(烽火臺地)가 있고, 정상석과
봉화대지 사이에는 백화산 관광안내도가 있다. 그 곳 좌측으로는 돌탑도 있고, 태을암 방향을
안내하는 이정목 있는 곳에는 쌍괴대(雙槐臺)라고 식자한 바위도 있으나 회화나무는
보이지도 않는다.으로 내려건다.
[16:41] : 쌍괴대(雙槐臺)를 지나 계단을 내려서니 매점이 있고 계속 내려가니
[16:47]
: 이정목을 만나는데 우측은 헬기장 방향이고 직진하면 <대림아파트, 태안초등학교 1km>방향이다.
직진으로 내려가다가 우측의 태을암으로 들어서니
[16:50] : 태을동천이라 식자한
바위와 마애삼존불을 모신 건물 앞에 이른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
[16:54] :
태을암 대웅전에 이른다. 태을암을 벗어나니
[16:56] : 태을암 입구인 삼거리에
닿는다. 도로따라 내려가니 우측에
[16:57] : 백조암이라 명명된 커다란 바위가
있다. 바위 주변을 둘러보고
[16:59] : 계속하여 내려가니 좌측으로 태안초교로
내려가는 내림길을 만나지만 계속 진행하여
[17:01] : 도로 좌측에 있는 전신주(6981A 291)를
끼고 좌측으로 돌아 능선으로 올라 잠시 진행 후에
[17:04] : 낙조봉 우회길을
만나서 낙조봉이 있는 좌측으로 오른다.
[17:07] : 낙조봉에서 내려와 우회로를
진행하니
[17:08] : 구조목<교장바위길02-04>을 만나고 곧 이어 돌탑을
지나고
[17:10] : 길 우측에 리본들이 달려 있는 곳에 도착하는데 리본들이 달려있는
우측 희미한 길이 정맥길이다. 진행하다가 만나는 암봉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띄엄띄엄 있는 리본을 길잡이로 삼아 계속 내려가니
[17:18] : 넓은 밭에 다달은다.
이 밭은 태안초등학교에서 관리하는 밭이다. 밭을 가로 질러
[17:19] : 파란색
지붕이 있는 가옥 앞에 도착한다. 이 가옥의 주소가 태안읍 성안1길 102번지이고
가옥 앞 도로가 성안1길이면서 태안학습센터 건물 뒷길이 된다. 이 건물 우측 내림길로
내려가면 산악회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대한알뜰 주유소 부근이지만 내려가다가 '다오리식당'
앞으로가면 나오는 큰길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신도로명이 동백로인 모래기재를
향해 도로따라 다시 올라간다.
[17:23] : 태안여고 앞 도로에 오르니 이곳이 모래기재로
건너편에는 태안학습센터 신축건물이 있고 그 아래에 태안교육지청 건물이 있다.
[17:25]
: 다시 산악회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대한알뜰주유소 부근으로 내려가서
[17:30]
: 산악회 버스가 있는 도로 옆 공터에 도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