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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여행"..................프롤로그
♣ 가을여행.......
우리가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것이 봄 여행이라면...
가을여행은 아마도 우리가 지나온 것들에 대한 잊고 있는것이 없는 지를 뒤돌아보게 하는 여행같다.
♣ 벌써 올 한해도 달력이 많으면 2장 아니면 1장이 달랑거린다.
"세월이 약이겠지요"라는 송대관씨의 노래가 있다.
그 약이 보약인지 독약인지 우리 머리엔 어느덧 하얀 백발이 서성거리고 기억은 가물가물 거린다.
아마도 세월이란 약은 지독히도 독한 약인듯 싶다.......
# 시월의 마지막 밤
♣ 해마다 그래왔듯이 우리 사무실에서는 10월의 마지막 날이 되면 진천별장에서 시월의 마지막 밤 행사가 열린다.
작년에는 시월의 마지막 날이 금요일이어서 1박2일로 행사를 하고 토요일날은 진천별장 뒷산에서 봉삼을 캐느라고
늦게 서울로 왔었다.
그래서 일요일날 목일산악회를 따라 구봉산으로 산행을 갔었는데 너무너무 피곤하여 팔봉까지만 갔다가 구봉은
힘이 들어서 낙오하고 내려오는 길에 일행들과 옆지기랑 감을 땄던 기억이 난다.
♣ 그런데 올해는 시월의 마지막 밤이 토요일이었다.
사무실 직원들과 함께 진천별장에서 시월의 마지막 밤행사를 하고 새벽1시경에 서울로 올라 올려고 계획을 세웠다.
♣ 그 계획에 의하면...........
나는 사무실에서 근무하다가 오후 1시경에 출발하여 1시간반정도 걸려서 진천에 도착하면 먼저 아침부터 도착한 팀이
준비한 멧돼지 애저,낙지 연포탕,가마솥에 푹 삶은 토종닭,바다의 우유라는 굴등을 먹고 술은 뒷산에서 캔 봉삼으로
담근 봉삼주와 맥주,소주그리고 죽염주등을 준비했다.
나는 처음에는 술을 한잔만 받아서 여러번 나누어서 마실 계획이다.
시월의 마지막 밤행사가 끝나면 새벽1시경에 서울로 올라가서 일요일 목일산악회의 남덕유산 등산에 참석해야 하니
술에 취하면 운전을 못하게 되니말이다.
♣ 늦은 점심을 먹고 나면 주변 사미저수지를 산책하고 초저녁에는 방에서 노래방 기계를 켜놓고 노래를 하다가
밤이 깊어져서 밤11시 30분이 되면 떠나가는 시월의 마지막 밤을 아쉬워하며 별장앞 잔디밭에서 밤하늘로 폭죽을 터트리며
술에 취한 어른들이 이용씨의 "잊혀진 계절"을 목놓아부르며 어린아이들처럼 놀터인데........
♣ 서울에는 오전부터 세찬 바람과 함께 비가 내렸다.
오후 1시가 다가와서 나랑 동행하여 모시고 갈 일행에게 전화를 하였다.
그런데 그분은 사정이 생겨서 오늘 진천에서의 시월의 마지막 밤행사에 못간다고 한다.
오늘은 빗속을 혼자서 운전하고 진천에 가야했다.
♣ 그러자 마음속에서 두마음이 고민을 했다.
한마음은 사무실에서 주관하는 시월의 마지막 날 행사니까 진천에 가자는 마음이다.
진천에 가면 맛있는 음식들....푹익은 멧돼지 애저에......
해남에서 갓 잡아온 낙지를 참기름,무우,파등을 넣고 만든 연포탕에.....
마당에 걸린 두개의 가마솥에서 푹 삶은 토종닭에....,
또 해남인근에서 딴 싱싱한 굴에......
찹쌀을 넣어서 막 지은 햅쌀밥을 먹고 술을 마지시 말고 갔다가 오자는 마음이 있고.....
또 한 마음은 진천에 가면 맛좋은 안주가 있는데 술을 안먹을수없고,술을 먹으면 빗길에 새벽에 서울로 올라오면
위험하기도하니 가지말라는 옆지기의 마음이었다.
더우기 일요일날 목일산악회 남덕유산 산행을 할려면 피곤하고 카페지기니까 등산사진을 찍어서 서울목일산악회 카페에
올리려면 위험도 하니 진천에 갈려면 산행을 가지말고,산행을 갈려면 진천에 가지말라고 하였다.
진천에서의 시월의 마지막 밤 행사냐! 아니면 남덕유산 산행이냐!
갈림길에서 나는 한참을 망설였다.
그러나 결국은 옆지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올해는 진천별장에서 시월의 마지막밤행사에 불참하기로 결정하고
사무실 직원들에게 연락을 하였다.
이미 진천에 있는 사무실 직원들은 아침부터 도착해서 좋은 안주에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혀들이 꼬불아져서
"그러면 할수없지! 그래도 할수없지!"를 연발하였다....ㅋ
♣ 술을 먹다보면 처음에는 술을 사람이 먹지만 나중에 술이 취하면 술이 사람을 자꾸만 먹어버린다.
사람들이 술을 먹기전에는 찰떡같이 굳게 술을 쬐끔만 마신다고 약속을 하지만 술에 취하다보면 어느사이에 그 약속은
물거품이 되어 허공에 맴돌고 내가 언제 그 약속을 했나 싶어진다.
결국 술에 취하면 세상 모든일을 다 잊어버리게하는 술의 특징이 있드라구요
어쩌다가 길을 가다보면 술이 많이 취해서 집에 들어 온것으로 착각하고 길가 전봇대옆에 옷을 벗어놓고 신발을 벗고
술에 취해 자는 이들을 보곤한다.
술이란 적당히 마시면 혈액순환도 돕고 건강에도 좋은 보약이지만 너무 많이 마시게 되면 독약이 되여 건강도 헤치고
몸도 망가지고 실수하여 체면도 구겨지니 술을 좋아하시는 이여!
적당히 드시기를 권합니다.
♣ 어느 지방 각설이타령을 들어보면 이런 귀절이 있다.
".......밥은 바빠 서 못 먹겠고,죽은 죽어도 못 먹겠고,술만 수울술 넘어간다....."
그러면 여기서 잠시 술의 유래에 대해서 살펴보자.
# 술의 유래
♣
우리의 문화는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술 또한 중국에서 전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우리 문헌에 술에 관한 기록이 드물지라도 우리 민족이 발효문화에 친숙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화북지역에
거주했던 우리의 선조인 동이족의 술문화가 중국과 한반도에 동시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또한 삼국사기에 술에 관한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 술의 유래도 아주 오래 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술을 빚는 기술도 자연발달하여 우리의 토속주인 여러 가지 술이 나타나게 되었을 것으로 생각되어 역사와
문헌 등을 참고하여 우리나라 술의 유래를 시대별로 살펴보았다.
♣삼한시대의 술
제조법 : 삼한시대에는 곡주를 바탕으로 제조했는데 그 제조방법은 알 수 없으나 누룩을 사용한 것 같은
흔적은 엿볼 수 있다.
위지 동이전에 의하면 이 땅의 영고(迎鼓), 동맹(東盟), 무천(舞天)의 군중 대회에서는 밤낮으로
식음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 삼국 및 통일신라의 술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대무신왕 11년편에 의하면 지주(旨酒 ; 맛 좋은 술이란 뜻)란 말이 나온다.
동해석사(東海釋史)와 지봉유설에서는 당대의 시인 옥계생(玉溪生)의 ‘한 잔 신라주(新羅酒)의 기운이
새벽 바람에 쉽게 사라질까 두렵구나’라는 시를 소개해 놓았다.
당대 문인들 사이에 신라주의 인기가 자못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의 제민요술(齊民要術)에 술 빚기가 우리나라에 전파되고 동화되면서 독특한 술까지 빚게 된 것으로
짐작되며 실제로 일본고사에는 우리에게서 배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 고려시대의 술
제조법 : 고려 시대에는 송·원대의 양조법이 도입되었으며 전래 곡류 양조법이 발전되어 국(麴 ; 누룩)의
종류도 소맥국(小麥麴)과 미국(米麴)으로 이루어질 뿐 아니라 주품도 다양해졌다.
고려 때에는 사찰이 여행자의 숙박지로 이용되었을 뿐 아니라 술을 판매하는 풍속이 있어 사찰을 중심으로
다양한 술들이 발달된 것 같다.
현종(顯宗;1140년)때에는 그 폐단이 심하여 사찰에서 술을 빚고 마시는 것을 금하게 된다.
고려 후기에 접어들면서 증류주 문화가 유입되는데, 이는 몽고의 침입(1274년)으로 소주 고리의 이용 방법이
도입되면서 급속하게 발전하였다.
♣ 전통 증류주의 뿌리
전통민속주로 유명한 안동소주, 문배주, 고소리술, 진도홍주 등 증류주의 뿌리는 어디일까?
이런 전통주는 기마병과 독한 술로 무장한 몽고의 고려 침입과 밀접한 연관을 가졌을 것이다.
고려가 몽고에 항복한 후 고려지배를 고착화하기 위해 개성, 안동 등지에 기지를 두었는데그런 기지가
있었든 곳은 어김없이 유명한 증류주가 존재한다.
이때부터 내려오든 증류주류가 현재 안동의 안동소주, 개성의 문배술 등으로 명맥을 이어 나갔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몽고의 고려지배를 대항하여 항몽전의 선두에 섰던 삼별초의 항쟁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강화도와 진도, 제주도를 잇는 항몽루트를 따라 탐라총관부 등 몽고의 기지가 세워졌고, 이들의 영향을
미쳤든 증류주류가 진도에는 진도홍주, 제주도에서는 고소리술 등의 증류주로 발전하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 조선시대 술
제조법 : 우리나라 주조 사상 주목할 일은 조선 시대에 오면서 지금까지 유명주로 손꼽히는 술들이
이 시기에 정착되었다는 것이다.
술의 고급화 : 술은 고급화 추세를 보여 제조 원료도 멥쌀 위주에서 찹쌀로 바뀌고 발효 기술도 단사입에서
중양법으로 바뀌면서 양보다는 질 좋은 술들이 제조되었다.
- 조선의 술들 : 이 때 양반주로 손꼽히던 술로 품질이 뛰어났던 것으로는 삼해주, 백로주, 이화주, 부의주,
하향주, 춘주, 국화주 등 이었다.
특히 이시대의 증류주는 국제화 단계로 일본, 중국 등에 수출이 빈번하였다.
그 당시 중국에서는 관이 제조를 관장하게 됨에 따라 우리 술의 수출이 용이하여 더욱
발전 되었던 것 같다.
조선 후기로 접어 들면서 지방주가 전성기를 맞이 하는데 지방마다 특색과 멋과 맛을 가진
술들이 발전하였고, 이때의 명주로는 서울의 약산춘, 아산의 호산춘, 충청의 노산춘,평안의
벽향주, 김천의 청명주, 전라도의 이강주, 김천의 과하주 등이 유명하였다.
♣ 근대사회의 술
조선후기에는 자가 제조 및 판매가 자유로왔던 관계로 술도 다양하였으며 제조하는 장소 또한 무수하여
당시 제조장 수는 155,832장(場)이나 되었다.
그러나 국권이 일본으로 넘어가고 조선 총독부가 수탈 작업의 일환으로 주세법(1907년)을 공포하여,
주세가 세금원으로 이용되면서 전통 향토주는 그 자취를 감추게 되고 신식 술이라는 획일적인 술들이
일제의 통제하에 제조되기 시작한다.
그래도 밀주가 성행하게 되자 1916년 1월에 주류 단속이 강화되는 가운데 모든 주류를 약주, 탁주, 소주로
획일화 시켰다.
이로 인하여 전래의 전통주는 몰살 당하고 1917년 각 지방마다 대단위 주류 제조업 공장이 새로 선정되었다.
여기에 수반하여 1920년을 기점으로 신기술이 도입되어 재래식 누룩을 사용하던 방법에서 흑국,
황국의 배양균을 사용하는 입국법이 활용됨과 동시에 전통주는 맥이 끊기게 되었다.
♣ 현대사회의 술
주세법에 의해 자가제조 소비와 판매를 엄격히 구분되어 그 맹맥을 간신히 유지하던 전통주류는 해방후
또 한번의 큰 시련을 마지하게 된다.
해방이후의 부족한 식량사정에 따른 양곡정책으로 인하여 쌀을 이용하여 술을 제조하지 못하게 엄격히
규제하여 우리나라 고유주라 할 수 있는 민속주들은 명맥이 완전히 단절되었다.
이에 대안으로 부상한 술이 현재 국민 알콜소비량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주정을 희석하여 제조한 희석식소주가
주류를 이루게 된다.
그러나 '88서울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전수·보전하고, 외부적으로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우리나라 술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관련 법조항을 개정하여 전통 민속주 제조의 길을 열게 되었고,
현재 우리나라의 민속주 제조장은 탁주, 약주, 소주류 등을 통틀어 52개 제조장이 존재한다.....문헌참조
오늘은 시작과 동시에 술얘기를 해서 남덕유산 산행에서 술께나 받겠는데......ㅋ
# 남덕유산으로 출발
♣ 남덕유산은 멀리 전북 장수군과 경남 거창그리고 우리가 사량도에 갈때 쉬었다 간 함양휴게소가 있는 함양에 걸쳐있는
산이다
멀기 때문에 아침6시반에 목동14단지에서 출발한다.
집에서 아침5시 반에 일어나서 밖을보니 다행히도 어제 내린비는 그치고 하늘엔 구름만 가득하였다.
세수를 하고 6시경에 목동아파트 A상가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아침 6시면 엇그제 여름일때는 해가 중천에 떠 있을시간인데 지금은 깜깜한 오밤중이었다.
너무 일찍 도착하여 A 상가 경비실로 갔다.
경비아저씨는 낙엽이 많이 떨어졌다면서 어둠컴컴한 A상가주변을 청소하러 나가셨다.
11월 7일이 입동이니 절기상으로는 이제는 완연한 겨울속으로 접어 들었다.
♣ 6시반이 되자 우리를 남덕유산에 데려다줄 동백관광이 도착하였다.
버스앞에 계신 목일산악회 박순주회장님과 인사를 하고 버스에 탔다.
버스 중간쯤에 신정산에서 만난 김영선사장님의 자리를 잡고 나도 그 옆자리에 앉았다.
매일아침에 6시에 신정산으로 아침운동가서 만났었는데 최근에는 날씨가 추워진탓에 내가 안나가서 며칠동안 못 만났다.
그런데 출발시간에 되어서도 김영선사장님이 오시지않아서 목일산악회 박순주회장님께 물어보니 오늘은 호주에 사시는
형님이 귀국하셔서 등산을 못간다는 연락을 받으셨다고 하셨다.
그래서 잡았던 자리를 다른 회원에게 내어 드리고 버스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 목일산악회 운영진들은 회원들에게 단감과 김밥그리고 계란과 생수와 오뎅국물들을 나누어 주셨다.
받아서 먹는 우리는 편하지만 준비하느라고 고생하셨을것을 생각하면 항상 운영진들에게 고맙고 감사할뿐이다.
♣ 우리를 태운 동백관광버스는 서부간선도로를 거쳐 88올림픽도로를 타고 경부고속도로로 접어 들었다.
오늘은 목일산악회 신선주총무님이 개인사정이 있어서 목일산악회 박순주회장님이 회장과 사회를 겸하여 보시고
장옥선산악대장님께서 오늘 남덕유산 산행에 대하여 안내 말씀을 하셨다.
♣ A코스 : 영각사 - 영각재 - 제1철계단 - 제2철계단 - 남덕유산 정상 - 월성재 -황점(5시간 30분)
B코스 : 황점 - 월성재를 산행하기로 하셨다.
# 회장님들의 빅딜
♣ 천안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후 우리 버스는 남덕유산을 향하서 달리기 시작했다.
♣ 휴식시간동안에 목일산악회 박순주회장님과 목동산악회 문형수 회장님사이 놀랄만한 빅딜이 이루어져서 휴식이 끝난 다음
참석한 회원들에게 빅딜사실을 공표하였는 즉,
♣ 목일산악회 회원들과 목동산악회 회원들중 원하시는 분들이 2010년 1월 9일~1월 11일(2박3일동안) 제주도 한라산 등반을
하기로 하였다.
(첫째날) : ☞ 2010년 1월 9일 오전 9시 : 목동14단지 A상가앞 출발(동백관광)
☞ 오후 3시 : 목포항 도착
☞ 저녁 3시반 : 목포항에서 제주도 가는배 승선
☞ 저녁 7시 : 제주항 도착
☞ 저녁 7시반 : 라자호텔도착
☞ 저녁식사후 자유시간
(둘째날) : ☞ 한라산 백록담 등산및 자유시간
(셋째날) : ☞ 제주도 시내관광 및 자유시간
☞ 오후 : 비행기 탑승
☞ 저녁 : 서울 김포공항 도착
♣ 상세한 사항은 추후 12월 6일 목일산악회 정기산행시 안내 할 예정이고 서울목일산악회 카페에도 공지할 예정이며,세부적인
시간및 일정은 추후에 알려드릴 예정입니다.
♣ 전에 사량도에 무박 2일산행을 한적은 있어도 2박3일동안 배타고 비행기타고 높은 한라산 백록담을 가기는 처음 일인것
같내요.
저러다가 내후년에는 해외 원정산행도 할것같군요...ㅋ
# 영각사 도착
♣ 달리는 버스에서 보니까 하늘은 구름이 잔뜩 끼어있고 멀리보이는 구름사리 자락에는 빗줄기가 쏟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한두방울씩 빗줄기도 우리 차장가에 떨어지자 목일산악회 박순주회장님께서는 2002년 월드컵때 사용하고 남았던
월드컵축구공 모양의 우비를 나누어주셨다.
나는 지난번 강천산 산행때 받았으나 이번에 가지고 오지않아서 다시 또 한개를 받았다.
♣ A코스 산행하실 회원들은 버스에서 내리고 B코스 하실 회원들은 그냥 버스에 타고 계시라고 하였다.
♣ 이윽고 우리버스는 영각사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목일산악회 박순주회장님은 서울목일산악회 키페 메인에 올릴 사진을 찍자면서 모두들 모이라고 하셨다.
회원중에는 세월이 묻어나는것을 싫어해서 사진을 안찍는 분도 계셨지만 대부분 회원들이 많이 사진촬영에 응해주셨다.
# 영각사의 유래
♣ 영각사(靈覺寺)는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상남리 1047번지 남덕유산(南德裕山)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 해인사의 말사다.
876년(신라 헌강왕 2)에 심광(深光)이 창건하였고 현재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영각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고찰로, 그 규모에 있어 해인사를 버금가는 큰 수행도량이었다고 전한다.
1770년(조선 영조 46) 상언(尙彦)이 장경각을 짓고 《화엄경》 판목을 새겨 봉안하였다.
상언이 이 절의 승려들에게 절을 옮기지 않으면 수해를 당할 것이라고 예언하였으나 아무도 새겨듣지
않았는데, 얼마 뒤에 큰 홍수가 나 절이 무너졌다고 한다.
1907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강용월(姜龍月)에 의하여 곧바로 중창되었다.
6·25전쟁 때 다시 소실되었으며, 1959년 법당을 중건하였다.
건물로 극락전과 화엄전·삼성각·요사채 등이 있고, 유물로 석등 부재와 부도 6기가 전한다.
부도는 모두 석종형으로, 절 입구에 있는 해운(海雲)과 용월의 부도 2기만 주인을 확인할 수 있다.
# 남덕유산 산행 시작
♣ 우리는 영각사 입구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남덕유산 정상을 향하여 산행을 시작했다.
영각사 주변에는 단풍이 조금 남아있었는데 탐방지원센타앞에는 양쪽에 단풍나무가 두줄로 서있는 모습이 마치
내장산 단풍터널을 연상케 하였다.
그러나 남덕유산 정상을 향하여 올라갈수록 이미 단풍은 시들어서 고운 빛을 잃고 낙엽이 되어 있었다.
작년 11월달 구봉산에 등산갔을때도 단풍이 이미 져버리고 낙엽이 되어 초라한 모습을 봣었는데 이번에도 고운 단풍을
그리많이 보지 못하여 아쉬웠다.
그대신 평생동안 밟아보지못할 낙엽길은 실컷 밟아보았다.
어제그리고 오늘도 비가 조금 내려서인지 먼지도 안나고 낙엽밟는 소리가 아삭 아삭거리며 이쁜 소리가 났다.
♣ 영각사에서 남덕유산 정상까지는 약3.6km 거리다.
4km가 십리니까 십리는 조금 못되는 거리다.
3.6km는 평지에서도 한참동안 걸어갈 거리인데 비탈진 산기슭을 올라가기란 정말 쉬운일이 아니다.
아리랑 노래에서도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는 구절처럼
십리면 발병이 날 정도의 거리이다.ㅋ
♣ 하늘을 보니 계속 부는 바람에 구름이 남덕유산쪽으로 많이 몰려왔다.
비가 올듯올듯도하고 바람도 세차게 불어서 기온이 낮고 몹씨 추웠다.
대부분 회원들이 바람막이 외투를 입고 산행을 시작하였다.
나도 바람막이 외투를 입었으나 조금 올라가니까 더워서 바람막이를 벗어서 가방에 넣을려니까 들어가지않는다.
그래서 베낭사이의 줄에 끼었다.
겨울철 산행때는 준비물이 많으니까 가방을 좀 큰걸로 가져와야겠다.
♣ 지난번 강천산에 등산갔을때는 몸이 아파서 갑자기 체중이 줄고 어지럽고 힘들었었는데 이번 남덕유산 등산은
할만하였다.
9월달 강천산 갈때는 68kg이었는데 지금은 70kg정도로 산행을 하여도 그리 힘이 달리지 않았다.
그전에는 보통 75kg이상이었었는데 이제는 70kg가 내체중으로 이 체중에 몸이 적응 된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 산행에서는 선두엔 못끼고 2등그룹정도에 끼어서 산행을 하였다.
♣ 처음 산에 오를때에는 숲만있고 경치도 좋은게 없으니 별로 사진을 찍을 일이 없으니 2등그룹도 가능하지만 정상에
올라갈수록 사진을 찍다보면 뒤에 쳐져서 꼴등그룹에 낀다.
그런데 어쩌랴!
한번오면 다시는 못 올지도 모르고 이시간 이순간에 일어난 일은 다시는 사진에 담지 못하니까 나는 그순간에 충실하며
열심히 사진을 찍어댄다.
사진을 찍는 것을 겁을 내는 회원들도 있으나 가급적 싫어하는 사람은 피하고 개인적인 프라이버시나 미풍양속에
어긋나는 사진은 산행에서 돌아와 편집할때 제외시키므로 걱정하지는 마세요.
또 서울목일산악회 카페에서 사진을 보시고 마음에 안들거나 부족한 점이 있으면 카페지기한테 전화를 주시면 시정할께요.
♣ 선두그룹에 뒤떨어져 한참을 가는데 저만치 목일산악회 장옥선대장님과 선두그룹회원들의 바위에 앉아 쉬는 모습이 보였다.
나도 바위에 앉아 쉬면서 생수도 먹고 운영진이 준 단감도 먹었다.
남덕유산은 정상이 1,507m로 아직 정상까지는 멀었지만 높은 산이라서 그런지 날씨의 변화가 무쌍하였다.
갑자기 안개가 자욱히 끼었다가 바람에 날리어 어느새 맑은 하늘이 되었다.
그러자 어느 재치있는 회원이 방금 산신령님이 담배를 한대 피웠다고 하여 모두들 웃었다.
정말 안개가 스쳐 지나가는 모습이 담배연기 같았다.
저 산아래에서 이광경을 보면 산허리에 구름이 지나가는 모습이었으리라!
산 아래애서 보면 구름!
산 정상에서 보면 안개!
이대로 올라가면 별도 달도 만날수 있을것 같내요!ㅋ
♣ 목일산악회 장옥선대장님은 산 정상에 올라가면 추우니까 가다가 쉬면서 후미그룹과 같이 보조를 맞추어야 정상에서
기다리지 않는다고 조금 긴 휴식을 취하였다.
그러나 휴식이 길어지니까 다시 몸이 식어서 추워지니 모두들 바람막이를 꺼내 입었다.
장옥선 산악대장님은 대장이면서 목일산악회 전 회장님의 아내이다.
장옥선 산악대장님은 바람막이를 꺼내서 남편인 목일산악회 전 회장님에게 옷을 입혀주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찰칵!
♣ 참! 오늘 내 옆자리에 앉은 분 얘기를 해야 겠내요.
내 옆자리에는 오늘 여자분이 앉았어요.
멋진 모자에 안경을 쓰신 분인데 목동아파트에서 살다가 전세를 주고 멀리 경기도 파주에서 사신대요.
오늘도 파주에서 차를 타고 목동아파트까지 오셨대요.
등산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지요?
내가 처음 그분을 보았을때는 계룡산 정상에서 사진을 찍어서 카페메인 사진을 올리면서 봤던 기억이 나내요.
그 분은 아직 조금남은 빼빼로데이날(11월 11일) 선물을 미리주는거라면서 쉬고있는 회원들에게 빼빼로를 일일이 나누어 준
사려깊은 분이였어요.
♣ 후미그룹이 도착하자 같이 쉬었다가 우리는 다시 남덕유산 정상을 향해서 올라가기 시작했지요.
난간이 있고 바닥에 미끄러지지않게 고무줄을 깐 나무계단을 지나 올라가니 태양열 전지판이 붙은 중계기가 보였어요.
나는 산에 올때는 카메라 챙기고 사진을 찍느라 무게를 줄일려고 핸드폰을 가져오지않는데,산속에서도 휴대폰이
터지는 이유는 바로 저런 중계기를 설치했기때문이내요.
위급할때 휴대폰이 불통되면 어쩌겠어요!
♣ 산정상으로 올라갈수록 이제는 먹구름이 하얗고 옅은 구름으로 변하여 흩날리며 손에 잡힐듯 스쳐 지나갔다,
사실 버스에서 하차하기 바로전까지만해도 차장가에 빗방울이 떨어지고 목일산악회 박순주회장님이 우비를 나누어주는등
비올 확률이 높았거든요.
그래서 저는 걱정이 태산같았어요.
♣ 걱정인즉.....................
남덕유산 오기전에 사진을 미리보니 남덕유산에는 정상부근에 철계단이 제1철계단과 제2철계단하는 걸보니 철계단이 아주
많은 가봐요.
철계단이 무려 700계단이나 된대요.
철계단 숫자도 숫자이지만 더욱더 무서운게 하나 있지요.
그게 뭐냐면....
바로 벼락이에요.
이게 무슨 날벼락같은 소리냐구요?
그러나 지난 2007년에 북한산 용혈봉 부근 철계단에서 벼락이 쳐서 5명이 사망하고 10여명이 부상당한 일이 있거든요.
그래서 남덕유산 사진을 보고 등산오기전부터 토요일날 비가 왔잖아요.
그때부터 북한산에서 철계단에 벼락을 친 생각이 계속 났거든요.
저는 천둥과 벼락이 치면 바로 도망가요!
지은 죄가 많아서라구요?
글쎄요!ㅋ
♣ 그러나 정상으로 갈수록 먹구름은 없어지고 하얀구름만 떠있으니 모든 걱정은 사라졌지요.
그런데 바로 눈앞에 그 무섭던 철가방이 아니라 철계단이 나타났어요.
이건 사진에서 본 것보다 장난이 아니게 급경사에 좌우옆에는 낭떠러지가 나타났지요.
제가 고소공포증이 좀 심하거든요.
어릴때 하사로 군대를 갔었는데 유격훈련에서 외줄타기,두줄타기,세줄타기를 하잖아요.
외줄타다가 유격조교가 줄을 흔드는 바람에 줄에서 손을 놓치고 전북 완주 운암산 고산유격장 50여미터 상공 외줄에
낙엽처럼 대롱대롱 매달렸던 기억이 삼십여년이 흐른 지금에도 생생하거든요.
아마도 그때부터 고소공포증이 생긴것 같아요.ㅋ
♣작년에 사량도에 갔을때도 무서워하는 옆지기보다 사실은 내가 더 무섭고 겁이 났었는데도 내가 무섭다고
하면 옆지기가 더 겁을 먹을것 같아서 무섭다고 말도 못하니 내 정신이 정말 말이 아니었지요.
멀리 사량도 까지 간다고 큰 마음먹고 그때 k2지팡이를 새로 샀는데 나도 겁을 먹고 어찌나 쎄게 밑으로
던졌는지 그만 지팡이가 부러졌을정도로 내정신이 아니었답니다.
아마도 K2짝퉁 지팡이였나봐요!ㅋ
♣드디어 제1철계단이 시작되었다.
겁이난 나는 그저 앞만 쳐다보며 계단을 올랐지요.
어찌나 계단이 많은지 오르고 또 오르고 올라도 도무지 계단이 끝이 날줄을 몰랐다.
뒤돌아서서 사진을 찍으면 정말 멋진 경치가 있을텐데 사진찍을 엄두도 못내고 그저 계단밑만 보고 기어
오르기만 하였지요.
아니 사진은 커녕 뒤를 돌아다 보는것조차도 겁이 나서 계단을 다 올라간다음 난간을 잡고 겨우 사진을
찍었지요.
밑을 쳐다보니까 정말 장난이 아니드라구요.
♣제1철계단을 올라가서 앞을 보니 아니 이게 무슨일이람!
가파른 산위에 거의 80도는 족히 되어보이는 철계단이 3개씩이나 있는게 아니겠어요?
지금까지 올라온 제1철계단은 어린애 장난감 같은 거였고,정말 이제부터 철계단이 시작되는 모양이에요.
순간 혼미해져가는 정신을 가다듬고 앞을 보니 제2철계단을 올라가는 목일산악회 미스터후와 회원들이 있길래
그 회원들의 사진을 찍고 나도 조심조심 천천히 제2철계단을 올라가니 변화무쌍한 날씨는 구름이 안개가
되어 끼었다가 해가 나타났다가 하였고 바람은 한층 더 세차게 불었지요.
♣TV에서 보면 히말라야산맥의 정상에 있는 에베레스트봉우리의 날씨는 맑았다가 눈이 왔다가 하며 순간순간
변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때는 날씨가 왜 저럴까 눈이 올려면 구름도 잔뜩 끼어야할텐데 하면서 이해가
잘 안되었으나 겨우 해발1,507m밖에 안되는 남덕유산도 이렇게 변화무쌍한데 정말 그 높은 에베레스트
산봉우리에서는 우리가 정말 짐작할수도 없을만큼 변화무쌍할 것만 같았다.
♣이때 제1철계단쪽에서 목일산악회 박순주회장의 사모님과 총무님이 오고 계셨는데 그분들도 놀랐는지
기운이 없다고 사탕있는 사람을 찾았다.
그래서 내게 사탕이 있다고 대답을 하고 위를 쳐다보니 목일산악회 전 회장님이 서 계셔서 사진을 찍어드리고
제3철계단과 제4철계단을 조심스레 올라가니 아니 이런! 정상이 여기가 아닌가비!
정상은 저너머로 또 있었다.
♣제4철계단 위에는 나무로 2평 남짓한 사각형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는데 거기서 목일산악회 박순주회장님의
사모님과 목일산악회 전 회장님그리고 여 총무님과 구청과장님 부부와 회원들의 사진을 찍어드리고
여총무님에게 사탕을 드리고 다시 남덕유산 정상으로 향했다.
♣높은 제4철계단을 지나니 신기하게도 이렇게 높은 산에 이런길이 있나싶게 마치 동네 뒷산같은
작은 오솔길들이 나왔다.
마지막 용을 쓰듯 또한번의 계단을 지나 한참을 올라가니 바위에 1507m 남덕유산 정상이라는 표지판과 함께
남덕유산 정상이 나왔다.
♣남덕유산 정상은 해발 1507m로 높은 산이라 그런지 하이얀 구름이 손에 잡힐 듯 스쳐 지나가고 인근 서봉은
구름이 끼었다가 걷쳤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먼저와서 기다리시는 목일산악회 장옥선 산악대장님과 회원들의 사진을 찍어드리고 정상 바로옆에서
우리는 점심을 먹기로 했다.
♣점심식사하기전에 김성규회장님은 연신 두리번거리며 사모님을 찾았는데 아무리 찿아도 없자 어떤회원은
“화장실간 것 같다.”“혹시 높은데서 떨어졌나?”“떨어지면 비명소리가 났지!”“비명소리가 안나것보니까
아냐!“혼자 비명소리없이 떨어졌나!”하며 별소리를 다 하시면서 걱정들을 했으나 잠시후 바람을 피한
우리 산악회 다른팀과 계시는 것을 찾아오셨다.ㅋ
♣옆지기는 높은 산에 올라가면 춥다고 보온통에 청국장을 넣은 우거지국에 두부부침과 김을 싸주었고 회원들의
반찬은 장떡,콩나물 무침,파김치,묵은지 조림,갑오징어 볶음,소고기볶음,열무김치,장아찌,배추김치등 별의 뵬
반찬에다가 소주와 감,배,사과등을 가져오셔서 맛있게 먹었다.
# 하산하는 길
♣높은 산 정상이라서 점심을 먹고나니 추워서 바람막이를 입고 주위 사진을 찍고 서둘러서 하산을 시작했다.
♣장옥선 산악대장님의 뒤를 따라 먼저 내려오다가 삼거리가 나왔다.
산에서는 길에 따라 목적지가 전혀 다른 곳으로 갈수도 있으므로 장옥선 대장님은 나보고 뒤에 오시는 분들을
월성재쪽으로 안내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서서 기다리고 있으니 목일산악회 전 회장님이 바람막이가 들어 있는 빨간가방을 보여주면서 점심먹은
후 내가 앉은 자리에서 주웠다며 내밀으셨는데 나는 바람막이를 입고 있어서 아니라고 말씀드렸지요.
높은산 정상이라 정말 겨울처럼 추었는데 옷 주인은 옷도 안입고 어디를 갔는지!추워서 얼마나 고생을 할까!
하면서 다시 월성재로 향했다.
♣남덕유산에서 월성재까지는 1.4km정도로 약 30분정도 소요되었다.
우리는 월성재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후미에 오시는 회원들을 기다렸다가 그분들도 사진을 찍어드리고
이제는 우리의 하산지점인 황점으로 하산하기 시작하였다.
월성재에서 황점까지는 3.6km로 영각사에서 남덕유산 정상까지의 3.6km로 거리가 같았다.
♣하신길은 올라가는 길보다는 조금은 쉽지만 언제나 하산길에서 사고가 많이 나니 조심을 해야겠다.
더구나 오늘처럼 낙엽이 많이 쌓인 길은 바닥에 돌이 있고 어제내린 비가 미끄러워 다칠 수 있다.
♣낙엽이 쌓인 길을 가니 기분이 참 좋았다.
아삭거리는 소리도 좋고 새싹의 풋내음과 반대되는 뭐랄까? 연륜이 묻어나는 내음이랄까?
퀴퀴하고 은은한 낙엽냄새도 그런대로 좋다.
♣하산길이 3.6km는 가도 가도 끝이 안보일정도로 내려가고 또 내려가는 길의 연속이었다.
지루하니까 구청 과장님이 우스게 소리 한번 하신다고 하셨다.
아내의 호칭에 대한 말씀이었다.
아내는 안고자니까 아내이고,
부인은 붙어서 자니까 부인이고,
여편네는 옆에서 자니까 여편네고,
마누라는 마주보고 자니까 마누라고,
각시는 화나면 각방쓰니까 각시고,
자기는 같이 자니까 자기고,
집사람은 집에서 같이 자니까 집사람이고,
옆지기는 여편네와 같이 옆에서 자니까 옆지기라는 것이였다.
그러자 같이가던 우리 목일산악회소속이 아닌 어떤분이
자식을 모두 출가시키면
자식들은 모두 도둑이 되는데,
그중에서도 아들은 강도이고,
며느리는 바람잡이이고,
딸은 이쁜도둑이고,
사위는 장물아비이고,
손자는 좀도둑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모두들 우스워서 깔깔거리면서 가을산길을 걸어갔다.
♣얼마나 잊어버리고 내려왔드니 이제는 평지가 나왔다.
평지가 보이고 산골짜기에 물은 없지만 계곡이 보이기 시작한것을 보니 이제 거의 다 내려온 것 같았다.
♣거기서 또 한참을 더 내려오니 월성제2교라는 아치형모양의 나무다리가 나오고 일부회원들은 다리밑
계곡에서 피곤에 지친 발을 씻고 있었다.
나는 이계곡 어디에선가 목일산악회 장옥선산악대장님이 우리를 기다리면서 계곡에서 발을 씻고 쉬고
있을 것을 생각해서 가던 발길을 멈추지않고 계속 갔다.
♣곧게 뻣은 낙엽길 저 끝편에 누가 걸어간다.
정말 한폭의 그림같은 가을풍경이다.
그 모습도 사진에 담고 한참을 내려가니 월성제1교라는 다리가 나오고 그밑에 목일산악회 장옥선산악대장님과
회원들이 역시 우리를 기다리며 발을 씻고 쉬고 계셨다.
역시 목일산악회 장옥선 산악대장님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셨다.
♣다리밑에는 정상주가 과하셨는지 아니면 피곤하셨는지 미스터 후사장님이 바위에 누워계셨다.
그 모습도 찰칵!하고 사진을 찍으니 그소리에 놀라셨는지 다리위를 바라보셨다.
또 그모습도 찰칵!
♣나도 배낭을 내려놓고 등산화를 벗고 오랜산행에 지친 발을 계곡물에 담그었는데....
순간 깜짝 놀랐다.
계곡물이 어찌나 차가운지 1분아니 10초도 담그지를 못햇다.
그런데도 장옥선 산악대장님과 내 옆자리의 오늘의 짝꿍은 물속에 서계셨다.
목일산악회 전 회장님은 “참! 여자분들이 독하네!”하시며 연신 물속에 담갔던 발을 빼셨다.
♣우리는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씻고 황점을 향하여 갔다.
산밑에 오니 여기는 단풍이 조금은 남아 있었다.
주변 단풍과 파란하늘의 하얀 구름을 찍으면서 내려가니 이쁜이들 셋이서 덕유산관광안내도를 보고 있었다.
드디어 황점에 도착한 것이다.
세 이쁜이들의 사진도 찍어드리고 동백관광에 올라가서 배낭을 벗어 걸고 놓고 목일산악회 박순주 회장님과
운영진들이 준비한 시골 암돼지 고기를 숭숭 썰어 넣고 김치와 라면을 넣은 김치찌개와 조껍질로 만든
막걸리 4잔 마시고 동백관광에 올라왔다.
출발시간이 다되었는대도 목일산악회 박순주회장님과 노래잘하시는 여 주방장 사모님은 뭔가를 계속
끊이고 계셨다.
나중에 알고보니 길이가 손가락만한 소세지였는데 참 맛이 있었고 술안주용 소세지인 것 같았다.
♣오늘 산행은 오전 10시30분에 영각사에서 등산을 시작하여 오후 4시가 되어서 황점에 도착했다.
예정은 4시간 30분이었지만 점심시간을 포함하여 5시간 30분이나 걸렸다.
# 서울로 귀경
♣하산시간이 늦어져서 당초에는 오후4시경에 서울로 출발할려고 했었는데,남덕유산에서 4시에 하산하는 바람에
출발시간도 늦어져서 오후 5시경에 서울로 출발하였다.
♣산행시간이 길어서인지 모두들 깊은잠에 빠졌다.
나도 얼마나 잠을 잤는지 한참을 자고 휴게소에 도착했다고 해서 눈을 떠보니 신탄진휴게소였다.
벌써 해가지고 날이 어두워져서 동쪽 하늘엔 둥근 보름달이 떠있었다.
신탄진 휴게소에서 볼일을 마친 버스는 다시 서울을 향하여 출발을 하였다.
♣버스는 천안-논산간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다들 잠이 깨니 정요섭기사님이 TV를 켜자 1박2일이라는
오락프로그램을 하고 잇었다.
강호동,이승기,정수근,MC몽,은지원등이 제주도에서 국토순래를 하는 장면이 나왔다.
여자분들이 좋아하면서 보고있는데,뒤에서는 노래부르자면서 난리가 났다.
술에 취한 남자분은 우리가 등산갔다가 TV보러왔냐면서 화를 많이 내었다.
그래도 계속해서 1박2일을 보고있으니 경부고속도로 한가운데에서 내리겠다고 난리였다.
그래서 밖을보니 천안근처였다.
내려주지않고 계속해서 버스가 달리고있으니 내리는 방법이 또 있다면서 버스유리창을 깨고서
내리겠다고하자 이제는 동백관광 정요섭기사님이 여자분을 위할수도,남자분을 위할수도 없는 어찌할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자 TV소리를 작게 틀고 또한 노래테이프도 같이 틀었다.
그러니 TV와 노래방이 공존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여지저기에서 여성분들이 불만의 볼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결국TV방송에서 1박2일이 방송이 종료되면서 음악소리만 커지고 자연스레 여자분들의 상황은 종료되었고
목동산악회 문형수회장님이 큰소리로 남자분을 나무래면서 남자분의 상황도 종료 되었다.
집에서나 밖에서나 여자분들에게는 잘해주어야 하는데.....
이것이 오늘 등산에서 옥에 티가 되었다.
♣동백관광은 안성휴게소에 다시한번 쉬었다가 서울 목동아파트 14단지 A상가앞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끝으로 오늘 목일산악회 남덕유산 산행을 위하여 수고하신 목일산악회 박순주회장님과 장옥선 산악대장님
그리고 산행음식을 준비하느라 고생많으신 운영진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또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운전하느라고 수고하신 동백관광 정요섭 기사님에게도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회원 여러분!
12월 6일날은 대관령 선자령으로 눈구경을 겸하는 산행을 계획하신다고 하내요.
11월 7일이 벌써 입동이라니 이제 본격적으로 추워지겠내요.
신종플루가 심각단계에 접어 들었고 매일같이 사망자가 나와서 불안하게하는 요즈음
손 잘씻고 옷 따뜻하게 입고 감기조심하세요.
건강하셔야 앞으로 12월달 대관령 선자령의 눈꽃축제와 1월 둘째주 2박3일 제주도 한라산에 즐거운 마음으로
갈수있으니까요.
항상 건강하시고 언제나~~~~~ 꼭!행복하세요! ^*^
서울목일산악회 카페지기"너랑나랑"(김재홍)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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