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kg 2100원 커피보다 싼 쌀, 미래는?
한반도에서 쌀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약 1만5천년 전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가 충북 청원에서 발견되면서 국제적으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인정받아왔던 중국 후난성 출토 볍씨보다도 약 3000년이나 더 오래된 세계 최고의 볍씨가 한국에서 발견된 것.
누가 더 먼저 벼를 재배했느냐에 대한 여러 가지 설들도 있고 국내에서 발견된 볍씨가 재배된 볍씨냐 아니냐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지만 열대성 작물인 벼를 온대지방인 한반도에서 재배가 가능하도록 수많은 품종개량이 이뤄진 것은 사실이다.
쌀이 한국인의 주식이 된 이유는 재배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겨울이 따뜻하고 초여름에 비가 적게 오는 지역에서는 밀이 재배가 가능해 주식이 되고, 여름에 덥고 장마로 인해 물이 많은 지역에서는 쌀을 재배해 주식이 됐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나라에서는 옥수수가 주식이 됐다. 옥수수, 밀, 쌀의 공통점은 탄수화물이 주성분이고 오랫동안 저장이 가능하다는 장점이다.
쌀은 크게 인도에서 재배되는 쌀이라는 뜻의 인디카 계열과 일본에서 재배되는 쌀인 자포니카 두 품종으로 나뉜다. 인디카는 장립종으로 쌀이 긴 모양으로 끈기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가 흔히 안남미라고 부르는 쌀로 동남아에서 주로 재배가 된다.
자포니카는 한국, 일본, 중국 동북 3성 일대에서 재배하며 둥글고 짧은 모양으로 중단립종이다. 찰기가 많은 것이 특징이며 수확량이 인디카 계열에 비해 떨어진다.
쌀에서 찰기를 내게 하는 성분이 아밀로스이고 이 성분 함량이 많을수록 찰기가 많다. 자포니카 계열이 찰기가 많기는 하지만 한국만 유독 찰진 밥을 좋아하기 때문에 밥을 짓는 방식도 일본과 중국과 다르다. 한국의 밥은 뜸을 오래 들여 찰기를 유지하지만 일본과 중국을 그렇지 않다.
세계에서 숟가락 혹은 스푼 문화가 발달한 나라가 많지 않은데 한국에서는 일본과 달리 스푼 문화가 발달했다. 숟가락은 국을 떠먹는 용도보다는 찰진 밥을 떠먹는 것에 더 많이 사용되며 밥이 찰지기 때문에 탕 문화가 발달했다. 일본, 중국과 한국의 숟가락이 다르게 생긴 이유다.
일본은 2~3개의 반찬만으로 밥을 먹는 문화이기 때문에 밥맛이 상당히 중요하다. 한국은 짜고 매운 반찬을 곁들여 밥을 먹기 때문에 찰진 밥맛만 있으면 되지만 일본은 반찬을 적게 먹기 때문에 단맛이 진한 밥을 좋아한다.
한국에서 가장 비싸게 팔리는 쌀은 오대쌀과 이천쌀이다. 오대쌀은 철원지역에서 재배되는 조생종으로 1982년 농촌진흥청 작물시험장에서 육성한 품종이다. 냉해에 강하고 재배 기간이 짧은 품종으로 개량됐다. 북부 산간지에서 재배가 가능한 벼로 육성된 것인데, 강원 지역에 꼭 맞는 품종으로 오대쌀의 적응력은 상당히 뛰어나 현재 강원 지역에서 가장 많이 심는 품종이 됐다.
이천쌀 혹은 경기미로 불리는 쌀은 추청 품종으로 옛날 우리가 아끼바리라고 불렀던 쌀이다. 아끼바리는 일본에서 개량한 품종으로 1969년에 한국에 도입돼 1970년 장려품종으로 결정됐다. 한국에서는 충북 이남에서 재배되는 쌀은 크게 알려진 쌀이 없다. 한국인 입맛에 맞는 품종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일본 신품종을 들여와 재배해 인기를 얻는 쌀이 있다. 바로 고시히카리와 히토메보레다. 고시히카리는 일본에서 개량한 품종으로 한국의 경기도와 충청남도 일대에서 재배하고 있다. 편의점에서 고시히카리 도시락을 팔기도 하고 햇반에도 고시히카리 품종을 쓰고 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히토메보레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는데 전남 해남지역에서 많이 재배되는 쌀로 한눈에 반한 쌀이라는 브랜드로 판매되고 있다. 히토메보레 자체가 첫눈에 반했다는 뜻이다.
한국인의 쌀 소비량은 일본의 약 2배다. 1980년 한국은 132kg의 쌀을 일본은 78.9kg을 소비했다. 쌀 소비량은 매년 줄어 2010년 한국 72.8kg, 일본 48.1kg, 대만은 59.5kg이다. 쌀소비량이 줄어드는 이유는 소득이 높아질수록 주식에 대한 소비가 감소하고 육류와 채소의 소비량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밀의 면, 과자 등 밀 소비량 증가도 한몫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자포니카를 재배하지만 전세계 생산량은 인디카 품종이 압도적으로 많다. 인디카 쌀은 세계 전체 쌀 생산량 및 무역량의 약 90%를 차지한다. 태국, 베트남, 미국, 파키스탄, 인도 등이 인디카 쌀의 주요 수출국이며, 인도네시아, 브라질, 유럽연합(EU), 중동국가 등이 수입하고 있다.
자포니카 쌀은 세계 전체 쌀 생산량 및 무역량의 약 10%를 차지하는데, 호주, 중국, 미국, 이탈리아 등이 자포니카 쌀의 주요 수출국이며, UR협상 이후 MMA(최소의무수입물량) 수입으로 인해 일본, 한국 등이 수입하고 있다.
자포니카는 생산량 자체가 적어 경제학에서 씬마켓(Thin market) 즉, 엷은 시장이라고 정의한다. 즉 시장 규모가 작아 생산량 변화에 따라 가격변동이 크다는 약점을 갖고 있다.
한국에서 80년대 초 냉해피해로 생산량이 급감했을 때 쌀을 독점하다시피 한 곡물메이저에 의해 가격이 2배로 올랐고 불공정계약까지 하는 일이 발생했다.
전 세계에서 자포니카 소비도 적고 생산량도 적은데 항상 한국, 일본, 대만은 쌀 수입개방에 시달린다. 대만과 일본은 WTO 압력에 의해 쌀 시장을 개방했고 한국은 현재 부분적인 개방상태다.
내년에는 쌀 수입개방 협상에 들어간다. WTO에 의해 2004년 한국은 10년간 쌀 시장개방을 유예하는 대신 의무수입물량(MMA)을 늘리기로 했다. 당시 협정이 내년으로 끝나기 때문에 협상을 다시 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노무현, 이명박도 마찬가지) 내년 시장개방을 계획하고 있다. 쌀 시장이 개방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국책연구소인 농촌경제연구원의 주장대로 관세율을 300%~400%로 하면 수입산 쌀 가격이 높아 수입이 많지 않을 수도 있다. 반대로 관세율과는 상관없이 곡물메이저의 기획으로 저가로 밀고 들어올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당장이 아니라 미래이다. 쌀 개방 이후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상상할 수 없다. 늘 손쉽게 싸게 구할 수 있는 쌀. 1kg에 2100원 하는 쌀. 커피보다 싼 쌀, 짜장면보다 싼 쌀은 과거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