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장산 내장사의 겨울 10F oil on canvas 2009
내장사(內藏寺, 靈隱寺址)
정읍시 내장상동 590
지방기념물 제63호(1979.12.27지정)
백제무왕(百濟武王) 37년(636년)에 영은조사가 현재의 부도전 일대에 50여동의 대가람을 새우고 영은사라 칭하였다. 고려 숙종(肅宗)3년(1098년)에는 행안선사(幸安禪師)가 전각당우(殿閣堂宇)를 새로 중창했고 조선에 와서 이곳 승려들이 작당하여 승적(僧賊)으로 변하여 민가에 행패가 심하여 날로 민심이 소란해지자 중종 34년(1539년) 조정에서는 이를 진압하고 폐찰령을 내려 소각하고 말았다. 그 뒤 조선 명종 22년(1557) 희묵대사가 법당 및 요사를 수축하였으며 , 선조 30년(1597) 임진·정유(壬辰·丁酉)의 난 때 왜군에 의하여 방화로 소실되었는데 인조 17년(1639년) 부용대사(芙蓉大師)가 사우를 개축하고 불상을 도금하였다. 그리고 정조 3년(1779년) 영운대사(暎雲大師)가 대웅전, 시왕전을 개수하고 요사를 개축하였는데 정조 13년(1789년) 법당이 소실되어 고종 9년(1878년) 유학(宥鶴), 익진(翼振) 두 선사가 중건하였으며 근래에 와서도 1938년 매곡선사(梅谷禪師)가 대웅전을 중수하고 명부전과 요사를 신축하였으나 6·25전쟁으로 1951년 1월 12일 대웅전에 그리고 1월 18일에는 6개 암자가 소실되고, 1957년 주지 야은(野隱)이 요사를 1958년에 대웅전 중건에 착수하였든 바 1959년 주지 다천(茶泉)이 완공 하였다. 1964년에는 무량수전을 세우고 1965년 대웅전 불상과 탱화를 조성 봉안했다. 그리고 정부의 국립공원계획에 따라 1973년에 일주문(一柱門) 1975년에 명부전(冥府殿) 1978년에는 인도(印度)로부터 석가모니(釋迦牟尼)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奉安) 했다.
성임(成任)의 정혜루기(定慧樓記)에 의하면 영은사는 고려 말엽 지엄선사(智嚴禪師)의 개산(開山)에서 비롯된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영은사의 개산연혁을 밝히는데 고증자료의 연구가 더욱 요청된다. 현재 내장사는 1888년(고종25년) 간행된 정읍현지에도 영은사로 일컬어 왔으나 내장사란 최근 내장산의 이름을 따라 내장사로 바꾸어 부르게 된 것이다.
- 정혜루(定慧樓)는 영은사(현 내장사)의 문루로 세조12년(丁亥 1446년)에서 다음 13년까지 2년여에 걸쳐 준공한 삼간누각이었으니 그 규모와 제작이 장려무비(壯麗無比)했다고 정혜루기(定慧樓記)의 저자는 극찬했다. 현 정혜루는 1977년 정부의 내장사 복원 계획에 따라 중건된 것이다.
자료출처 : 정읍시사(井邑市史)
- 현 대웅전은 1958년 보천교의 보화문으로 중건하였다고 한다.
- 본래 내장사는 고내장, 백련사,백련암으로 부르던 현 벽련암 터에 있었던 절 이름 이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