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하관차장 ㅡ 조기 "간체자 철병"(간체"17"자, 인급제조 야생차엽)
※현재 "조기 간체자 철병 원차" 소장품 사진 이다
ㆍ중다패 요청으로 하관차장 출품 차이다
ㆍ조기? 중다패 "간체자 철병" 차품의 최초 출품 차라는 뜻이다
ㆍ2023년 1편 가격: 과거의 경매가 ₩8,000만원. 현재는 그이상 상회(환율1만위안/180만원) 품귀 차품이다.
ㆍ실질적 매매 실거래는 그 이상의 가격으로 찾아도 찾아볼 수 없다.
※마지막 (홍인, 남인)인급차의 생산후, 문화혁명 기간 보이차 청병 제작이 멈추었다.
이후 문화혁명이 1966년 ~ 1976년경 끝이난 이후, 중다패의 요청으로 하관차장에서 인급차(홍인, 남인) 제조차장이였던 하관 차공장 창고에 보관 되어있던 인급 생산위한 잔여 야생차(1963년~1973년 차엽) 자연쇄청 원료를 모두 모아 사용하여서 만들었다.
그리하여 1976년 중다패 상표로 하관차장에서 최초 간체자 철병이 생산된 것이다.
1966년~1973년 인급 출품위한 잔여 차품은 문화혁명 시기 다수의 물량이 최상품을 제외한 차엽은 모두 가공되지 않은채 청모차로 중국 공산당과 군부, 지역 실세들에게 납품되었으며, 홍콩과 마카오의 호텔 레스토랑, 식당, 차 판매상들에게 넘겨져 소실 되었다.
문화혁명 이후, 중다패는 인급 출품을 대기하던 잔여 최상위 차엽으로 1976년 1차 조기 간체자철병을 제조하였는데, 자연쇄청 제작원칙을 따르던 하관차장은 평균 10년 이상의 자연쇄청 이라는 기간이 지난 모차를 단면 석긴압으로는 차품의 모형이 유지되기 불가하다 판단하여, 선별한 차엽을 양면 철프레스 긴압을 선택하여 제조 출품하였다.
결과적으로 1976년 제조된 조기 간체자철병 운명을 바꾼건? 문화혁명의 고초로 인급차 출품 위한 창고에 보관된 다수의 차엽을 헐값에 청모차로 헐값 판매와 상납등으로 소실되었고,
그마져 더 충격적인것은? 인급(홍인, 남인, 조기간체자) 생산에 차엽을 납품하던 차나무 희귀 야생 산림지는 농업 생산혁명이라는 이유로 개척되어 다른 농산물 생산 작출하는 밭이나 도로 등으로 모두 개간 되었다.
잔여의 극소수의 최상위 모차 만이 문화혁명이 끝난 1976년이 되어서야 조기 간체자 철병으로 제작 출품되어 인급차 홍인, 남인의 철병과 동일한 진하고 강하며, 깊은 매장향을 간직한 최상의 인급 희귀 차품이 세상에 나오게된 것이다.
철병이기에 고이 차품이 간직된 것도 우연이 아닐것 이다.
그 아픈 상처와 고초를 겪은 차품이 곧 조기(1976년 제도) 간체자 철병이다.
ㆍ50~60년대 홍인ㆍ남인 철병과 동일한 차품이다.
ㆍ홍인ㆍ남인과 동일한 차엽종, 자연쇄청발효 야생차의 매우 진한 매장향과 강하고 깊은 차기를 간직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의 역사로 차인들은 1976년 간체자 철병을 문화혁명 이후 2대 인급 계승차로 지칭하게된 것이다.
ㆍ차 맛의 진운 장향은 오히려 인급차 홍인, 남인보다 깊고 진하다는 중국(홍콩) 보이차계 이름만 대면 다아는 유명인사 수뇌들의 평가다.
ㆍ인급차 홍인ㆍ남인의 포병급이 장향이 깊다면, 홍인철병, 남인철병, 1976년 조기 간체자철병은 기운이 더 진하고 차기름이 발효되어 더욱 깊은 매장향과 (동양의학 현상)명현현상을 발현한다.
ㆍ문화혁명이 끝난 이후 1976년 초기에 인급(홍인, 남인) 보이차 제조의 잔여 차엽으로 전통 자연쇄청 발효 제작과 외부 7편의 통포장은 전통방식인 "죽포장"으로 포장하였다.
ㆍ인급(홍인, 남인, 조기 간체철병) 차엽 생산지가 농업 생산혁명이라는 기지아래 1973년에 차 자생지가 밭과 도로, 과일 경작지 등으로 간척되어 사라지게 되자,
이후 2차 간체자 철병, 석포병 제조 시기인 1978년 부터 ~1983년대 초 들어서는 "서쌍반나 야생차엽"으로 변경되었으며, 포장지의 비용절감과 수출 목적으로 외부 통포장을 "전통 죽포장"과 "우피지(종이) 포장"으로 2가지로 이중포장으로 변모하였다.
보이차 한편 한편 포장지 또한 종이기술 발전으로 모두 얇은 종이며 부드러운 종이로 변경되었다.
이후 80년대 중기의 중다패ㆍ하관 번체자철병은 내수용으로는 죽포장, 일본 등지로의 수출용은 우지(종이) 포장 등을 겸하였다.
ㆍ하관차장 간체자ㆍ번체자 철병은 평판모이며, 곤명차장의 60년대, 80년대 곤명철병류는 평판 모소리 끝쪽이 굴곡 곡면져 있다.
ㆍ사진의 본 차를 감싼 포장지는 1976년 최초 투박한 재질의 두꺼운 전통 종이의 닥피 종이로 포장되었다. 그러한 두꺼운 포장지의 차품은 성질이 온전하고 고스란히 간직 되었다.
이후 1980년대 들어서는 수출을 목적으로 부드럽고 얇은 재질로 바뀌었고, 이후 번체자(철병, 양면석병, 포병) 등으로 연결되는 재질의 포장지 이어져 온다.
ㆍ야생 차엽으로 빚은 철병긴압 차기름 발효로 의학적 신체 "명현현상"을 발현 한다.
ㆍ아무리 독주 과음 이후에도, "명현현상"으로 새벽에 자연스레 잠에서 깨며, 몸이 날아갈 정도의 가벼움을 갖게되는 의학적 명현반음을 나타낸다
ㆍ차맛의 80년대 하관 번체철병보다 기운이 강하다
ㆍ깊은 매장향의 차향이 짙고 여운이 길다
ㆍ삭힌 홍어맛처럼 코를 치고들어오는 매장향이 깊다
ㆍ매우 맑고 짙은 선홍빛 색상의 차탕 색을 뛴다
ㆍ20번 가까이 우려도 선홍빛을 뛴다
ㆍ꼬냑 루이13세 블랙펄(에디션 출품작)을 연상케 한다
ㆍ현 중국 시장내 진품 소실 휘귀품이다
ㆍ희귀하여 중국내 실질적 거래는 찾아보기 어렵다
ㆍ현재 1976년 조기 간체자철병 (본 사진)소장중이다
ㆍ짙은 야생 산지 차엽이다.
ㆍ홍인ㆍ남인의 제작 차엽으로, 문화혁명 이후 잔여 자연쇄청 차엽 물량으로 제작한 조기 1976년 간체자 철병이다.
※제 자신이 60년대 곤명철병으로 오인하였던 차품이다.
※차를 들이키면, 입속에 퍼지는 울림의 소리가 말을 전하는 듯 하다!
역사적 "인급 희귀 야생차엽을 찾는 그대여, 나를 더는 이 세상에서 찾지마오! 나를 이제 놓아주오!" (라며 속삭이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