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꼭 산딸기 따러 가야지."
아침 밥상을 물리며 선언하듯 힘을 주어 말했습니다.
그러자 쉬리가
"에헤이, 얼마나 딴다고 아서."
손사래를 치며 말립니다. 산딸기 있는 곳이 그렇게 먼 데(종석산 올라오는 길 초입께에 있음) 다리 아프게 내려갔다 올라올 때 힘들다,
보기엔 금방 딸 거 같지만 당신 키로는 얼마 못 딸 게 뻔하다, 가시덤불 속이라 정작 많이 열린 곳은 들어가지도 못한다는 둥
조목조목 이유를 들어가면서요. 게다가 점심 차려 준다고 왔다가 또 내려가서 저녁 차리기 전까지 땡볕에서 종일
산딸기 따다 체력 바닥나 널부러져 있으려고..... 하는 말은 꿀꺽 삼키고서.
나는 입을 비죽 내밀었지만 얼른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눈알만 굴리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햇살에 보석처럼 반짝이던 빠알간 산딸기가 눈에 아른거려 벌떡 일어났습니다.
"안돼. 내일 비 온다는데 그럼 다 떨어진다고. 오디도 시간 못 맞춰서
쬐금밖에 못 땄잖아. 할 수 있는만큼만 따면 되지 뭐."
꽁시랑거리며 비닐봉지며 장갑을 챙기는 아내를 보며 혀를 차던 쉬리가 할 수 없다는 듯
체념한 목소리로 제안을 했습니다.
"그럼 이따 애들 버스 타는데 데려다 주고 올라오면서 내가 전지가위로 가지 따줄게.
집에 와서 알맹이를 따."
"정마알~?! 여보, 고마워잉~"
급, 활짝 웃으며 코맹맹이 소리를 하는 아내를 보고 쉬리가 고개를 흔듭니다.
2박3일에 걸친 에비군 훈련 받으러 가는 아이들을 배웅하고 올라오는 길
산딸기 앞에 섰습니다.
한 알, 한 알 햇살에 말갛게 속살을 드러낸 산딸기의 붉음.
탱탱한 알맹이를 한 알 혀끝에 올려 맛을 봅니다. 새콤하고 달큰한 맛, 살그머니 씹는 끝에 느껴지는
쌉쌀한 작은 씨의 맛.
이번에는 한 웅큼 넣어 마음껏 맛을 음미합니다. 싱그러운 산딸기 맛이 입안 가득 퍼집니다.
싱싱함, 달콤함, 햇살과 바람이 만들어낸 싱그러움이 입안을 거쳐 온몸으로 짜릿하게 퍼집니다.
이 야생의 맛이 이제 고전이 된 영화 산딸기를 탄생시킨 것일까요?! ^^
" 산딸기 처음보는 사람처럼 뭘 그렇게 요리조리 살피고 있어?"
"야생 딸기를 산딸기라 그러고 똑같은 건데 밭에서 기른 걸 복분자라 그러는 거지?"
전혀 다르지. 아예 품종이 다르다고. 산딸기는 과육이 선명한 빨강이고 아무리 익어도 검게 변하지 않잖아.
복분자는 알맹이가 훨씬 더 크고 다 익으면 오디처럼 까만 색이 되는 거야.
아하,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러고 보니 복분자는 집으로 가는 길 거의 끝, 그러니까 집 가까이에 열리는데
이제서야 알맹이가 생길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산아래서는 벌써 복분자를 수확하고 있던데
종석산 복분자는 아직입니다. 산아래보다 식물이 꽃피고 열매 맺는 시기가 15일 정도 늦어지는 탓이지요.
바쁜 농장일 하는 시간을 조금 헐어내어 아내의 채집활동(고사리, 취나물, 다래순 등 나물 뜯기, 오디,
산딸기, 복분자 등 열매 따기)을 거들어 주고 있는 남편이 새삼 예뻐 보입니다.
어릴 적 진달래 따기, 쑥 캐기. 밤 따기를 하는 동무들 뒤를 따라 다녔지만 집에 갈 때까지 내 손에
쥐어 진 건 고작 진달래 한 두 포기, 쑥 반 풀 반 이었던 소쿠리, 밤 두 알이 전부였는데......
그 때의 초라하고 속상했던 마음들을 한꺼번에 다 보상 받는 기분입니다.
"자기 오늘 너무 멋져 보인다아~~. "
전지 가위로 싼딸기 가지를 꺽는 남편 등에 딱 붙어 얼굴은 감춘 채 오른손 엄지를 치켜세웠습니다..
"어허, 이 사람이 벌건 대낮에...... 산딸기 투 찍자는 거야?"
"피~ 산딸기 시리즈는 이미 5탄까지 나왔거덩!"
이른 봄부터 농장을 일구느라 쉴 사이 없던 단비 농장 부부의 얼굴에
여름 종석산에 야생 산딸기처럼 싱싱한 웃음소리가 퍼집니다.
첫댓글 돌아보니 이렇게 살아도 살고, 저렇게 살아도 사는 것인데, 젊은 시절 몸이 편한 직업을 선택해 살다보니 오십이 넘은 이즈음에는 찾는 전화도 뜸해졌다. 그런데 젊은 시절 몸은 고돼도 맘은 편안한 삶을 선택한 쉬리는 나이 들수록 살아 가는 길이 넓어지고 수확도 풍성해 보인다. 인생은 선택이다. 이제와 새삼 가보지 않은 길을 동경해본들 후회와 아쉬움뿐이지만 그래도 오늘 문득 쉬리의 선택이 부럽게 보이는 것만은 어찌할 수가 없다..... 쉬리! 그대가 진정 멋쟁이시군요~ 좋아요!에 한표 꾸욱~
아이고~ 선배님, 쉬리는 글 쓰는 삶을 동경하며 살았다는디요. 산속에 혼자 살면서 글 쓰기를 업으로 하고 싶은 적이 많았다네요 ㅋㅋ
선배님 댓글과 좋아요에 감동 받았나봐요.
쉬리
"발라당 선배님 산삼 한 뿌리 보내드려야겠다."
카네요. ㅋㅋ
요즘
더욱 선망하는
전원 생활입니다^^
산새님은 충분히 전원생활을 즐길 체력과 감성이 되는 분이죠. But, 저처럼 땡시골에서 살려면 마당쇠 먼저 구비하는 게 필수랍니다. ㅋㅋ
여자들 체력으로는....... 아시죠?!
저도 나름 열심히 산다고 살고 있는데 한참 달리다 돌아다보면 제자리걸음인듯요. 진정 선배님은 넉넉하고 자유로워보여요.
글로 나마 위안받고 갑니다. 평화로운 전원의 공기를 호흡해보려 애쓰며...건강하세요!
ㅋㅋ 넉넉하고 자유로워 보이는 삶 이면에
치열한 다툼과 헉, 소리나게 바쁜 날들도 많답니다.
사람살이가 어디나 그렇듯.
그래도 눈부신 하늘과 이 생생한 초록 앞에서는 자잘한 다툼과 불만이 무색해지긴 하지요 ^^*
앞으로도 평화로운 산속 공기 많이 보내 드릴게요.
씨~
선배님선배님!!!
산딸기 따는 거 누구보다 좋아하시는데......
복분자는 아직 익으려면 한참 있어야 되거든요. 어여, 오셔요. 큰소쿠리 하나 들려 드릴게요 *^^*
@청미루(이승희86A) 저두요. ㅎㅎ
오랫만에 들어와 밀린 글들을 읽으니 마음의 공기청정기 하나 마련해 놓은 듯 합니다.
짙푸른 자연 속에서 전하는 소식이라 그런가 봅니다.
이렇게나마 작은 기쁨이 되어 줄 수 있다니 참 고마운 일이네요. *^^*
저도 전원 생활 해보고 싶어요 선배님!! 일손 필요 하시면 연락 주세요. ^^* 산딸기 먹고 싶당.
대체로 우리집일 도와주겠다고 온 사람들 맘껏 일시켜 본적 없슈~~ 남편이 워낙 남한테 일 못시키는 사람이라... ㅋㅋ
하지만 내년 삼 심을 때 기대해 볼게요. 그맘 고맙게 받겠습니단~~~ *^^*
두분 산딸기처럼 싱싱하고 예쁘게 사는 모습 정말 멋지십니다~!
호호, 이 나이에 산딸기처럼 예쁘고 싱싱하게..... 라니.
황송하여라. 하늘바다처럼 맘이 푸지고 넓으시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