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애자 선생님을 소요산역에 바래다 주고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활짝 열려진 대문이 나를 반긴다. 우리가 상주를 하기 전에는 대문 앞에 차를 멈추고 번호키로 잠겨진 열쇠를 끌러서 집 안으로 들어가야하는 번거러움이 따랐다. 그런데 우리가 상주를 하고나서부터는 그런 수고를 하지않고도 논스톱으로 마당으로 들어가니 기분이 좋다.
오늘은 세상 없이도 다용도실의 문고리를 수리해야 한다. 나는 연장통을 들고 고장 난 문고리를 수리하기 시작했다. 이 문고리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다용도실을 열지 못해 정초부터 동네 가게에서 쌀과 참기름을 얻어먹는 소동을 벌어졌었다.
▲대문을 활짝 열어놓은 금가락지
다용도실 문은 의외로 구조가 복잡했다. 나는 양쪽 문고리를 분해를 하여 구조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다행히 현관문과 구조가 같았다. 나는 현관을 왔다 갔다 하며 조립을 하기 시작했다. 무려 2시간이나 걸렸는데도 아직 실마리를 발견하지 못하고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아랫집 이장님 사모님과 동네 아주머니 한분이 오셨다.
"어서 오세요. 이 추운 날씨에 어딜 다녀오세요."
"산책을 나왔다가 들렸어요."
"이렇게 추운 날도 산책을 다니세요."
"걷다보면 별로 춥지 않아요."
"하기야, 그래서 운동이 좋은 거지요. 다음에 우리도 함께 다녀야겠네요."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요. 함께 다니면 좋지요."
아내는 동네 분들이 방문을 해주니 무척 반가운 모양이다. 이웃사촌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수평리에서도 혜경이 엄마랑 얼마나 재미있게 지냈던가! 그런데 여기 동이리에도 좋은 이웃이 생겨 심심치가 않을 것 같다. 두 아주머니들이 무척 순박하고 친절하게 보였다.
여자들은 수다를 떨 상대가 있어야 하는 모양이다. 아내는 수다를 떨 친구가 생겨서인지 연신 싱글벙글 거린다. 남자들이야 술이나 한잔 먹어야 말문을 트는데, 여자들은 만나면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모르겠다. 두 분은 동서지간이라는데 사이가 퍽 좋아 보였다. 나는 문고리 수리를 잠시 멈추고 차를 끓였다. 차 한 잔을 마시며 우리는 담소를 나누었다.
"대문이 활짝 열려 있어서 좋아요!"
"아, 그래요. 우린 지리산에 살 때에도 대문을 닫아 본적이 없어요."
"이웃집이라도 대문을 열어놓고 서로 왕래를 해야 살맛이 나지요. 그런데 이쪽 집들은 주말을 제외하고는 모두 대문이 꼭꼭 닫혀 있어서 답답해요."
"그러기도 하겠네요."
▲이장님 집을 지나면 주말에만 이용하는 집들이 문이 꽁꽁 닫혀져 있어 답답하다.
동네 토박이인 두 아주머니는 이웃 간에 소통을 하며 지내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금가락지 근처의 집들은 거의가 주말에만 이용하는 별장스타일이다. 이장님 집을 지나고 나면 그 안통에 있는 집들은 평일에는 대문이 꽁꽁 닫혀 있고 자물쇠가 물려 있다.
거기에다가 세콤이 작동하고 있어 친밀감이 없고 어쩐지 분위가가 싸늘하게 느껴진다. 어디 시골 토박이 집이 세콤장치를 한 집이 있던가? 아무리 궐 같이 좋은 집이라도 사람이 살지 않으면 냉랭하고 생기가 없다. 그런데 대문이 열려 있는 우리집을 보게 되니 두 분의 기분도 무척 좋은 모양이다.
지리산 수평리에서도 우리는 언제나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살았다. 수평리 집은 동네 한가운데 위치한데다가 바로 길가와 인접해 있어 동네 분들이 자주 들려서 평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런데 지난번 짐을 가지러 수평리에 들렸더니 대문이 꽁꽁 닫혀 있었다. 내가 살았던 집이라 본능적으로 둘러보고 싶었는데 그냥 돌아오게 되니 왠지 마음이 허전했다.
▲지리산 구례에서 가져온 블루베리
"저 현관문 입구에 나무는 무슨 나무에요?"
"아, 그거요 블루베리에요."
"이렇게 추운데 얼어 죽지않을까요?"
"블루베리는 영하 10도까지는 끄덕없데요."
"아, 그런 나무도 있군요. 집안에 화초를 들여 놓으니 생기가 도는 것 같아요."
"네, 화초가 집안에 있으면 습도조절도 되고 보기에도 삭막하지가 않지요."
두 분은 블루베리와 화초에도 관심이 퍽 많아 보였다.
▲거실에 화초를 키우면 습도가 조절되고 집안에 생기가 돈다
"아저씨가 문고리도 수리를 하시나 봐요?"
"저이요? 전에는 도대체 망치로 못질 한번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궁하면 통한다고 지리산에서 1년 반 살고 나더니 이젠 자칭 맥가이버라고 할 정도로 어지간한 것은 다 고쳐요. 호호."
“아하, 그렇군요.”
“하하, 전 원래 기계치인데 지리산 산골에는 누가 고쳐 줄 사람도 없어서 할 수 없이 망치로 손등도 찍어가며 못질도 하고, 이것저것 고쳐보는 경험을 하게 되었답니다.”
“말도 말아요. 저이가 한 번은 도끼질을 하다가 큰일 날뻔했어요?”
“어머, 그래요?”
“글쎄, 저이가 장작 패는 연습을 한다고 도끼로 장작을 내려쳤는데, 그만 도끼자루를 놓쳐 도끼가 가랑이 사이로 빠져 나가버렸어요. 만약에 가랑이를 벌리지 않았더라면 발등이나 다리를 찍을 뻔 했어요.”
“어머나, 저런! 큰일 날 뻔 했네요.”
“그래서 난로를 놓는 것을 포기 하고 말았어요. 장작 패다가 발등찍을까 봐서요. 호호.”
“호호, 그만하기를 다행이내요.”
"그래도 아저씨가 대단하네요. 뭔가 하려는 의지가요."
“하하, 시골에 내려오면 뭔가 소일거리가 있어야 하지않겠습니까?
사실 산골에 살려면 뭔가 소일거리가 있어야 한다. 농사일도 하고 집도 손수 수리를 하고... 뭔가 시간을 보낼만한 취미가 있어야 지루하지가 않다. 집수리도 해보니 힘은 들지만 솔송 재미가 있다. 앞으로 내 손으로 작은 집을 손수 지어 보는 것이 내 꿈이기도 하다.
▲대문이 딛힌 길은 냉랭하다.
차 한 잔을 마시며 잠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12시가 다 되었다고 두 분은 황급히 일어났다. 그래도 바쁜 일과 중에 산책을 하는 여유를 가진 두 아주머니의 마음이 풍요롭게 느껴졌다.
"우리 집에도 종종 들려주세요."
"그래야지요. 앞으로 기회가 많을 거에요. 그럼 또 오세요."
시골에서 이웃간의 의사소통은 매우 중요하다. 이곳 임진강 동이리에 이사를 온지 이제 겨울 3일재를 맞는다. 그런데 사람이 좋아 보이는 이웃을 두게되어 천만다행이다.
(2012.1.3)
첫댓글 황량한 벌판같은 휴양지에 문이 열리고
이웃간 오가는 발걸음에 정이 쌓여가서 사람 사는것 같군요.
복잡한 것 같아도 오래 처다보면 문 고리도 수리 가능하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