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삶의 여정을 등산이나 여행에 비유하기도 한다.
여행을 하는 방법도 사람마다 다르다.
여행지마다 모여서 사진 몇장 찍으며 안내자를 따라 여러 일정을 소화 하는 여행이 있는가 하면,
유적지나 박물관, 여행지에서 오랫동안 관람에 몰입해보는 여행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짧든 길든 여
여행이 끝나고 나면 여행지에서 경험한 모든 것들은 추억과 사진으로 남는다.
기억은 세월속에서 풍화되어 가지만 사진속의 전경은 정지된 채로 오래 남겨 둘 수 있다.
엊그제 나는 오랫만에 동네 사진관에서 인물사진을 찍었다.
영남민요의 공연 팜플렛에 필요한 사진이다.
뽀족연필로 인물사진을 수정을 해주던 옛날 읍내 사진관과는 너무 달랐다.
사진관 아저씨는 디지탈카메라로 찍어서 포토샵으로 다듬는다.
편리하고 감쪽같다.
화면속의 내 모습을 수천만 화소의 그림 화일에 담아서 전자메일로 보내드렸다.
참 편리한 세상이 되었지다
그러나 흑백사진을 찍을 때의 낭만적인 장면과는 거리가 멀었다.
우리집에 엘범이 몇권 있다.
얼마전 어머님 영정사진 준비해 두자는 형님의 제안을 받고서
엘범속에서 어머니 사진을 찾은 적이 있다.
산더미처럼 쌓인 가족 사진중에 어머니 사진은 겨우 몇장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가족'이라는 개념속에서 늘 소외되어 있었음을 깨달았다.
언젠가 친구 모친상에 갔는데
영정사진속 고인은 모습이 너무 젊어 어색해 보인 경험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또한 곱게 늙으신 모습만을 기억하고 싶은 자식의 이기적 욕심때문인지 몰라도
그 욕심까지도 사랑하듯이 사진속의 엄마는 수줍게 웃고 계셨던 것 같다.
수년전일이다.
카센타를 경영하는 인척이 화재를 당했다.
건물에 세들어 사는 젊은 부부의 단칸방도 불타버렸다고 했다.
얼마간의 돈을 보상해 주었으며
보상해준 돈이면 몽땅 새가구를 살 수 있었을 거라고 그는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그분들은 그 돈으로 가구와 집기는 다시 장만할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의 소중한 추억이 녹아 있는 사진은 어떻게 보상받아야 하나....
추억을 돈으로 환산한다면 그 가치는 얼마가 되어야 할런지..
추억을 몽땅 태워버린 허망한 눈빛의 젊은 그들을 생각하며 마음 아픈적이 있다.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편리하게 사진을 찍지만
필름사진기로 사진을 찍던 시절에는 실수한 경험들도 많다.
고교 졸업식날. 빌려간 카메라에 필름을 잘못넣어서 헛바퀴만 돌았음을 알고
텅빈교정을 다시 찾아 몇장 사진을 찍으려 친구와 포즈를 취했던 슬픈기억..
필름한통 다 찍고나면 필름교체를 해야 하는데,
되감기 하지않은 상태로 뚜껑열어 몽땅 태워버린 황당했던 실수들...
이제는 디지털 카메라와 스마트폰에 밀려나서 장롱속에 잠자고 있는 내 사진가방.
줌렌즈 교환렌즈와 각종휠터들이 들어 있는 가방을 다시 꺼내어 본다.
각양 각색의 필터와 렌즈들.
다시 가방을 둘러 메고서 멀리 남쪽바다로 향하는 간이역 플레폼에 서있는 나를 꿈꾸어 본다.
내 엘범속에는 특별한 흑백사진하나가 있다.
게리쿠퍼와 잉글릿드버그만의 키스장면이다.
고교 사진반 친구가 찍은 흑백사진인데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 나오는 장면이다.
동성로 한일극장안 어둠속에서 그 한컷 찍으려고
친구와 함께 2회 연속 관람을 했던,
추억담긴 사진이다.
청춘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물위로 떠나 보낸 사진도 있다.
입대를 앞두고서, 떠나보내야 할 사진 한장 호주머니에 넣고서
친구와 함께 설악산엘 같다.
설악동 계곡물에 사진을 띄웠 보냈다.
계곡물속 바위를 빙빙돌며 웃음짓더니 계곡물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늦도록 술을 마시고 해변가 모래사장에서 놀다가
다음날 저녁 강릉발 청량리행 열차를 탔던 기억이 있다.
고교시절.보았던 추억의 명화들..
초원의빛. 러브스토리. 벤허. 바람과함께사라지다.라이안의처녀.닥터지바고 노틀담의곱추 등...
영화속 잊을 수 없은 장면 장면들은 내 기억속에 빛 바랜 사진으로 남아 있다.
며칠전 추풍령휴게소에서 책 한권을 샀다.
장편소설 '덕혜옹주'.
표지에 실린 비운의 황녀 덕혜옹주의 흑백사진을 보고 골랐다.
그녀의 흑백사진 아래에는
"품어서는 안될 그리움을 품은것이 그녀의 죄라"라는 슬픈 글이 있었다.
해변에서 남녀의 뒷모습을 실루엣으로 처리한 흑백사진은 꽤나 낭만적으로 보인다.
흑백사진은 칼라사진이 표현하지 못하는 그 무엇이 있는것 같다.
빛바랜 사진이라면 칼라보다는 흑백사진이 더 예술감이 있을것 같다.
얼마전 다시 본 영화 "위대한 겟츠비'의 한장면이 떠오른다.
저 멀리 호수건너로 남의 아내가 되어 살고 있는 데이지의 저택이 보이고
하염없이 바라보는 겟츠비의 쓸쓸한 뒷모습..
그러나
안개낀 저편에는 아련히 깜박이는 파란색 불빛 뿐이었다.
파란색 불빛..
볼수는 있지만 영원히 닿을 수 없는 그 불빛...
슬픈 겟츠비의 종말..
사진관을 얘기 하면 떠오르는 영화.하나.
한석규 심은하가 출연했던 '8월의 크리스마스'
영화관이 아닌 vcd로 보았는데 보고나서 드러누워 한참이나 천장을 멍하니 쳐다본것도 같고....
하여튼 눈물샘을 자극하는 그런 영화이다.
여자에게 죽음을 알리기는 커녕 사랑한다는 고백조차 하지 못하고 떠나가는 남자.
어느날 한마디 인사도 없이 갑자기 떠나버린 사진관의 그남자.
남자를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분노와 배신감에 '초원사진관'유리창을
향해 돌은 던지는 여자 심은하...
한석규와 심은하의 연기가 좋았다.다시보고 싶은 영화이다.
내친김에 영화속 대사를 찾아서 적어 본다.
"내 기억속의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랑도 언젠간 추억으로 그친다는것을 난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지 않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준 당신께 고맙다는 말을 남깁니다."
-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중에서
첫댓글 아~~~
글은 거짓이 없어야 감동을 주지요
글 한 줄 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잘 압니다
창문넘어님 삶속에서의 감성과
마음이 없이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책과 영화 등을 통한 감성에 감동을 받습니다
그래서 진정 글쟁이(?)인 것 같습니다~~
지난일을 회상하는 글은
동시대를 지나온 이들에겐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나봅니다.
저보담 선생님께서 감성지수가 월등하신것두 같구요..
제가 다닌 고등학교에서는 '문화교실'이라고 해서 토요일 방과후에 단체 영화관람이란게 있었습니다.
감수성 높았던 고교시절에 본 영화는 오래 기억에 남는가 봅니다.
저에겐 행운이었습니다
서부영화들도 참 감명깊게 보았던것 같습니다.
크린트이스트우드의 마카로니웨스턴영화부터 존웨인 케리쿠퍼 같은 명배우들이 출연했던 정통서부극들..
석양을 향해 쏴라. 역마차. 대서부. 황야의 결투....
그 방랑의 휘파람소리와 카우보이 모자를 쓴 사나이들의 결투장면들은
이국적향수를 불러
고등학교 <문화교실> 그랬군요...
특히 창문넘어님께는 정말 행운이었네요~~
저는 창문넘어님이 워낙 좋아해서 어렵게 시간을 내어
그 시절 명화를 보기 위해 영화관을 들락날락 한 줄 알았어요ㅋ
하지만 감상문을 쓰는 것은 어려운 것이지요
제 경우는 한 줄을 쓰고 나면 쓸 것이 없어 쩔쩔매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