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1>
우리 동네 어귀 도깨비새암에는
도깨비가 산다는 전설이 서렸다
새암* 가 고목, 개버들 실가지는
도깨비가 당겨서 활[弓]이 되었다
수심은 천야만야 아무도 모르는데
수면엔 도깨비 숨으라고 몰*이 덮였다
악동들, 메* 감으면 두 다리 쑤욱
잡아당긴다는 말에 벌벌 떨었다
대낮에도 아이들은 이 새암 옆은 지날 때면 오금이 저렸다. 손으로 두 눈을 가려도 손가락 새로 도깨비불만 번쩍거렸다. 봄비 내리는 해름참*이면 파르스름한 도깨비불이 날곤 했다. 하나인가 하면 둘로, 넷으로 번졌다. 분산(墳山)에서 번쩍, 안산(案山)에서 번쩍, 시공을 초월하는 것 같았다.
새암 둘레는 걸창말뚝에 널장*이 받쳐 있었다. 송장이 담겼던 널[柩]을 떠올린 아이들은 무섭기만 하였다. 도깨비가 두 눈을 부릅뜨고 두리번두리번 사방을 살피면서 외다리로 춤을 춘다는 생각을 했다. 봄비가 고목 나뭇가지에 구슬방울로 맺히면 도깨비는 불놀이 재주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극화(水剋火)라 하여, 결국에는 불은 물을 이기지 못한다는 할아버지 말씀을 떠올렸다.
봄 불은 여시*불이라 키를 넘어 날기도 했다. 한 패는 불을 지르고, 다른 한 패는 불을 끄는 악동들의 하굣길 불놀이는 논둑에서 시작하여 장못재까지 이어졌다. 고개에는 마른 띠풀이 많았다. 여기에 불을 놓으니 새빨간 불기둥이 솟았다. 겁이 났다. 눈썹을 태우며 생솔가지로 불길을 겨우 잡았다. 남은 불티는 연기를 따라 하늘로 오르고, 아지랑이는 고갯길에서 아롱아롱 피어났다. 며칠이 지났다. 밤새 내리던 봄비가 아침이 되자 갰다. 산과 들에는 산뜻한 새싹들이 돋아났다.
장목재 언덕의 띠밭에도 삐비*가 지천으로 돋았다. 나는 하굣길에 삐비를 뽑아 주머니가 빵빵하게 담았다. 봄비의 정령이 땅속에 스며서 삐비로 돋아났고 생각했다.
* 새암 ‘샘’의 방언(전라).
* 몰 ‘모자반’의 방언(전라).
* 메 ‘목욕’의 방언(전라).
* 해름참 ‘해거름’의 방언(전라).
* 널장 ‘널[柩], 널의 조각’의 방언(전라).
* 여시 ‘여우’의 방언(강원, 경남, 전라, 제주).
* 삐비 ‘삘기(띠의 애순)’의 방언(전라).
첫댓글 선생님! 잘 읽었습니다.
* 정령[精靈]:[민속]산천초목이나 무생물등 갖가지 물건에 깃들어 있다는 혼령.
봄비가 삐비로 태어났네요 이것이 저것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한 편의 시를 읽은 느낌입니다.
"걸창말뚝"
"봄 불은 여시불이라 키를 넘어 날기도 했다"
글에서는 특별한 음식냄새가 납니다. 잘 먹겠습니다.
순우리말의 아름다움에 빠져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