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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기독교는 죽었다!
하나.
어제 이윤훈 시인과 점심을 먹고 가을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카페 야외테라스에 앉아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카페 옆으로는 가을 들판이 익어가고 산들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한 달 동안 원주의 토지문학관에서 집필에 몰두했던 이윤훈 시인은 한층 깊어진 내공으로 가슴에 담긴 생각들을 드러냈다.
이윤훈 시인은 ‘시(詩)도 결국은 철학’이라며 니체와 샤갈을 입에 올렸다. 니체의 ‘신은 죽었다’라는 선언은 종교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중세 이후 뿌리 깊게 내려온 기독교적 폐단, 천국에 대한 욕망을 추구하며 세상에서의 참된 삶을 도외시하는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라고 일갈했다. 나는 마르크스의 ‘종교(기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주장도 기실 ‘아편과 같은 역할을 했던 19세기 기독교에 대한 부정이지 기독교 본질에 대한 부정은 아니라며’ 맞받았다.
브라질 대통령선거가 뜨겁다. 2014년 대통령에서 물러났던 룰라가 다시 출마하여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으며, 한편에서는 극우를 상징하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이 맞대결을 펼치고 있다. 룰라는 노동자 출신의 대통령, 서민층의 아버지로 통칭된다. 그가 대통령에 취임한 뒤 IMF 외환위기로 몸살을 앓았던 브라질의 경제는 세계 8위의 경제 대국으로 환골탈태했다. 빈곤율이 30%나 줄었고, 빈곤층 아이들의 취학율이 몰라보게 높아지면서 빈곤의 악순환을 끊어버릴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다. 하지만 룰라가 물러나자 집권한 보수정권은 룰라를 가만두지 않았다. 물적 증거도 없이 어느 기업가의 증언만으로 부정한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죄를 씌워 감옥에 넣었으며 그가 했던 개혁정책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결국 룰라는 대법원에서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지만 정치적 타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번 대통령선거는 무죄판결 후 다시 출마하는 선거다.
룰라의 삶은 익히 알려졌다. 그가 얼마나 정직했고 브라질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려고 했는지도 안다. 다만 주목되는 인물은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이다. 보우소나루는 프랑스계 이민 2세대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으며 군 복무 중에는 군 수뇌부의 부패로 군인 봉급이 적다고 폭로해서 주목을 받았다. 전역 후에는 기독민주당에 입당했다. 정치 활동 중에는 빈민층 비하 발언을 하는 등 스스로는 중도를 자처했지만 실제로는 극우 정치인으로 활동하며 좌파 정당과 대립각을 세웠다. 보우소나루를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막말’이다. 보우소나루의 막말 리스트는 화려하다. 예컨대 ‘여성과 흑인은 국가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흑인이 조종하는 헬기는 위험하다’, ‘군인들이 원주민 사회를 말살하지 않는 것이 슬프다’, ‘나는 게이 아들을 사랑할 수 없다, 그런 아들은 사고로 죽는 것이 낫다’, ‘나는 군사정권이 그립고 독재 정부 때 반정부 인사들을 죽이지 않은 것은 실수다’와 같은 발언이 그것이다.
그에게는 ‘남미의 트럼프’라는 별칭이 따라다닌다. 실제로도 친미 성향이면서 트럼프를 매우 좋아한다고 공개 발언했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막말을 서슴치 않고 있으며 외교적 결례도 자주 범한다. 당연하지만 노동자와 빈민들에게 혹독하며 자본가와 지주들에게 관대하다. 자본가들과 손을 잡고 지구의 허파인 아마존 밀림개발을 밀어붙이고, 환경을 걱정하며 질문하는 기자에게는 ‘이틀에 한 번 방귀를 뀌면 될 것이다’라고 되받았다. 연금을 개악하고 공기업 민영화를 반대하는 노동자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여 탄압했다. 코로나에 대한 대책 부재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코로나 사망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보우소나루의 악행을 열거하려면 입이 아프다. 그런데 보우소나루의 이력 중에서 눈에 띄는 점을 발견했다. 그가 ‘복음주의 기독교도’라는 사실이다. ‘복음주의 기독교’는 청교도주의에 기반한 미국의 보수기독교를 일컸는 말이다. 미국의 전통적인 지주와 자본가들의 입장을 지지하고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든 기독교이기도 하다. 140여 년 전 한국에 전파된 기독교이며 한국의 보수주의 기독교의 뿌리다. 전광훈 목사의 기독교이며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대한민국을 미국의 52번째 주로 만들어달라’고 기도하는 기독교이다. 지난 선거에서 국민의 힘과 윤석렬 정부를 지지했던 기독교이기도 하다.
세계적 전염병이 만연하고 경제가 위축될 때마다 정치가 보수화되었던 것은 역사적 현상이었다. 진보의 희망과 불안정성보다 보수의 안정성에 기대려는 대중의 심리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전역에서 나타나는 보수주의 열풍은 심각한 우려를 갖게 한다. 이들은 보수라기보다는 ‘극우 파시즘’에 가깝고, 전통적으로 보수가 가졌던 품격하고는 거리가 먼 세력들이다. 최근 이탈리아에서 무솔리니 파시즘에 기반한 ‘이탈리아 형제당’의 조르자 멜로니가 총리가 된 것, 유럽과 남미에서 보수성향의 정당들이 집권하는 것은 비근한 예이다.
둘.
암울하고 우울한 아침에 기분 좋은 이야기를 접했다. KBS2 TV의 ‘해 볼만한 아침’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다룬 ‘이본 쉬나드’ 파타고니아 회장에 대한 이야기다.
이본 쉬나드는 세계적 등반가이며 1973년 미국에서 파타고니아라는 회사를 설립해 세계적 기업으로 키운 사업가이다. 젊은 시절에는 주한미군으로 복무하며 북한산 인수봉에 자신의 이름을 딴 암벽 루트를 개척했던 인물이었다. 파타고니아는 암벽 등반 장비를 생산하는 회사로 출발했다. 하지만 암벽 등반 장비들이 실제로는 자연을 훼손하고 있다는 자괴감을 갖고 아웃도어 쪽으로 방향 전환했고 이것이 성공하여 오늘날 파타고니아라는 회사로 성장했다.
파타고니아는 재투자비와 비즈니스비를 제외한 수익금 중 1% 이상을 매년 환경단체에 기부한다. 그는 자서전에서 ‘세상이 종말을 향해 치달아가는 상황에서 종교 지도자, 정치인, 기업가가 인류를 구원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라고 말하며 NGO의 역량과 가치를 강조했다. 쉬나드는 ‘이제 파타고니아의 유일한 주주는 지구입니다’라고 역설한다. 이 같은 철학을 기업 운영에 접목시키기도 했다. 막대한 비료와 농약을 살포하여 생산한 목화로 직조했던 기존의 의류 생산 시스템을 바꿔 생산비가 3배나 더 드는 유기농 목화 재배를 통해 옷을 만들도록 한 것은 대표적인 예다. 의류 낭비로 지구환경이 오염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소비자들에게 유행에 따라 옷을 구입하거나 버리지 말고 직접 수선하여 입으라며 수선법을 광고하는 모험도 감행했다. 반자본주의적 기업 운영은 한동안 파타고니아를 어려움에 빠뜨렸다. 하지만 고통은 오래가지 않았다. 대중들이 쉬나드의 진심을 이해하면서 파타고니아는 ‘철학과 비전 있는 회사, 개념 있는 옷을 만드는 회사’로 이미지를 구축했다. 파타고니아의 철학과 비전에 동감하는 고개들이 증가하면서 매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당연했다.
쉬나드는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를 온전히 유지하면서 지구 환경 위기를 막기 위한 싸움에 더 많은 돈을 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고 말한다. 최근에는 본인과 가족이 소유한 회사 주식 전부(약 4조 2,800억 원)를 기후 위기 해결을 모색하는 NGO 지원 단체 ‘홀드패스트 콜렉티브’에 기부했다. 심지어 기부에 필요한 수천억 원의 세금과 제반 비용까지 스스로 부담했다고 한다.
이본 쉬나드의 삶에서 ‘선한 사마리아인’을 발견한다. 예수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누가 고통받는 자들의 친구이며, 누가 참된 신앙인이냐’라고 질문한다. 사마리아인은 성직자도 아니었고, 성경을 연구한 신학대학 교수도 아니며, 주일 날 교회에 열심히 나가는 장로와 권사도 아니었다. 정통 헤브라이인이나 기독교인도 아니었으며 이방인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던 천한 존재들이었다. 그런데도 예수는 ‘누가 참되냐, 누가 진정으로 신앙적 행동을 했느냐’라는 질문에서 사마리아인의 손을 들어주었다.
쉬나드는 독실한 기독교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는 나눔의 가치를 2차대전 직후 먹고살기 힘들어 캘리포니아로 이동할 때 어머니가 배고픈 원주민들에게 옥수수를 나눠주는 모습을 보면서 배웠다고 말한다. 우리는 쉬나드가 말한 ‘지구를 살리는 일은 정부나 종교인이나 기업가가 할 수 없다’는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이 말은 정부, 종교인, 기업가의 공통점이 자본주의자라는 뜻이며, 자본주의는 인류에게 희망이 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가 찾은 해답은 반자본주의적 경제활동이며 환경운동이다. 쉬나드의 생각과 실천은 사마리아인과 닮았다. 예수께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사마리아인의 모습이 쉬나드에게서 발견된다.
기독교는 ‘창조 질서의 보존과 건강한 지구 회복,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종교가 구현할 수 없을 것이다’라는 쉬나드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왜 세상의 악한 정치인들은 모두 ‘보수적 기독교인’인지도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물신주의에 빠진 한국 기독교는 왜 반성하지 않는지, 패악한 정권을 탄생시키고도 왜 회개하지 않는지에 생각해봐야 한다.
니체는 말한다.
‘신은 죽었다.’
김해규도 말한다.
‘지금도 신은 죽었다.’ (2022.10.05. 김해규)
하나.
어제 이윤훈 시인과 점심을 먹고 가을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카페 야외테라스에 앉아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카페 옆으로는 가을 들판이 익어가고 산들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한 달 동안 원주의 토지문학관에서 집필에 몰두했던 이윤훈 시인은 한층 깊어진 내공으로 가슴에 담긴 생각들을 드러냈다.
이윤훈 시인은 ‘시(詩)도 결국은 철학’이라며 니체와 샤갈을 입에 올렸다. 니체의 ‘신은 죽었다’라는 선언은 종교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중세 이후 뿌리 깊게 내려온 기독교적 폐단, 천국에 대한 욕망을 추구하며 세상에서의 참된 삶을 도외시하는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라고 일갈했다. 나는 마르크스의 ‘종교(기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주장도 기실 ‘아편과 같은 역할을 했던 19세기 기독교에 대한 부정이지 기독교 본질에 대한 부정은 아니라며’ 맞받았다.
브라질 대통령선거가 뜨겁다. 2014년 대통령에서 물러났던 룰라가 다시 출마하여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으며, 한편에서는 극우를 상징하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이 맞대결을 펼치고 있다. 룰라는 노동자 출신의 대통령, 서민층의 아버지로 통칭된다. 그가 대통령에 취임한 뒤 IMF 외환위기로 몸살을 앓았던 브라질의 경제는 세계 8위의 경제 대국으로 환골탈태했다. 빈곤율이 30%나 줄었고, 빈곤층 아이들의 취학율이 몰라보게 높아지면서 빈곤의 악순환을 끊어버릴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다. 하지만 룰라가 물러나자 집권한 보수정권은 룰라를 가만두지 않았다. 물적 증거도 없이 어느 기업가의 증언만으로 부정한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죄를 씌워 감옥에 넣었으며 그가 했던 개혁정책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결국 룰라는 대법원에서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지만 정치적 타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번 대통령선거는 무죄판결 후 다시 출마하는 선거다.
룰라의 삶은 익히 알려졌다. 그가 얼마나 정직했고 브라질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려고 했는지도 안다. 다만 주목되는 인물은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이다. 보우소나루는 프랑스계 이민 2세대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으며 군 복무 중에는 군 수뇌부의 부패로 군인 봉급이 적다고 폭로해서 주목을 받았다. 전역 후에는 기독민주당에 입당했다. 정치 활동 중에는 빈민층 비하 발언을 하는 등 스스로는 중도를 자처했지만 실제로는 극우 정치인으로 활동하며 좌파 정당과 대립각을 세웠다. 보우소나루를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막말’이다. 보우소나루의 막말 리스트는 화려하다. 예컨대 ‘여성과 흑인은 국가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흑인이 조종하는 헬기는 위험하다’, ‘군인들이 원주민 사회를 말살하지 않는 것이 슬프다’, ‘나는 게이 아들을 사랑할 수 없다, 그런 아들은 사고로 죽는 것이 낫다’, ‘나는 군사정권이 그립고 독재 정부 때 반정부 인사들을 죽이지 않은 것은 실수다’와 같은 발언이 그것이다.
그에게는 ‘남미의 트럼프’라는 별칭이 따라다닌다. 실제로도 친미 성향이면서 트럼프를 매우 좋아한다고 공개 발언했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막말을 서슴치 않고 있으며 외교적 결례도 자주 범한다. 당연하지만 노동자와 빈민들에게 혹독하며 자본가와 지주들에게 관대하다. 자본가들과 손을 잡고 지구의 허파인 아마존 밀림개발을 밀어붙이고, 환경을 걱정하며 질문하는 기자에게는 ‘이틀에 한 번 방귀를 뀌면 될 것이다’라고 되받았다. 연금을 개악하고 공기업 민영화를 반대하는 노동자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여 탄압했다. 코로나에 대한 대책 부재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코로나 사망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보우소나루의 악행을 열거하려면 입이 아프다. 그런데 보우소나루의 이력 중에서 눈에 띄는 점을 발견했다. 그가 ‘복음주의 기독교도’라는 사실이다. ‘복음주의 기독교’는 청교도주의에 기반한 미국의 보수기독교를 일컸는 말이다. 미국의 전통적인 지주와 자본가들의 입장을 지지하고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든 기독교이기도 하다. 140여 년 전 한국에 전파된 기독교이며 한국의 보수주의 기독교의 뿌리다. 전광훈 목사의 기독교이며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대한민국을 미국의 52번째 주로 만들어달라’고 기도하는 기독교이다. 지난 선거에서 국민의 힘과 윤석렬 정부를 지지했던 기독교이기도 하다.
세계적 전염병이 만연하고 경제가 위축될 때마다 정치가 보수화되었던 것은 역사적 현상이었다. 진보의 희망과 불안정성보다 보수의 안정성에 기대려는 대중의 심리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전역에서 나타나는 보수주의 열풍은 심각한 우려를 갖게 한다. 이들은 보수라기보다는 ‘극우 파시즘’에 가깝고, 전통적으로 보수가 가졌던 품격하고는 거리가 먼 세력들이다. 최근 이탈리아에서 무솔리니 파시즘에 기반한 ‘이탈리아 형제당’의 조르자 멜로니가 총리가 된 것, 유럽과 남미에서 보수성향의 정당들이 집권하는 것은 비근한 예이다.
둘.
암울하고 우울한 아침에 기분 좋은 이야기를 접했다. KBS2 TV의 ‘해 볼만한 아침’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다룬 ‘이본 쉬나드’ 파타고니아 회장에 대한 이야기다.
이본 쉬나드는 세계적 등반가이며 1973년 미국에서 파타고니아라는 회사를 설립해 세계적 기업으로 키운 사업가이다. 젊은 시절에는 주한미군으로 복무하며 북한산 인수봉에 자신의 이름을 딴 암벽 루트를 개척했던 인물이었다. 파타고니아는 암벽 등반 장비를 생산하는 회사로 출발했다. 하지만 암벽 등반 장비들이 실제로는 자연을 훼손하고 있다는 자괴감을 갖고 아웃도어 쪽으로 방향 전환했고 이것이 성공하여 오늘날 파타고니아라는 회사로 성장했다.
파타고니아는 재투자비와 비즈니스비를 제외한 수익금 중 1% 이상을 매년 환경단체에 기부한다. 그는 자서전에서 ‘세상이 종말을 향해 치달아가는 상황에서 종교 지도자, 정치인, 기업가가 인류를 구원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라고 말하며 NGO의 역량과 가치를 강조했다. 쉬나드는 ‘이제 파타고니아의 유일한 주주는 지구입니다’라고 역설한다. 이 같은 철학을 기업 운영에 접목시키기도 했다. 막대한 비료와 농약을 살포하여 생산한 목화로 직조했던 기존의 의류 생산 시스템을 바꿔 생산비가 3배나 더 드는 유기농 목화 재배를 통해 옷을 만들도록 한 것은 대표적인 예다. 의류 낭비로 지구환경이 오염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소비자들에게 유행에 따라 옷을 구입하거나 버리지 말고 직접 수선하여 입으라며 수선법을 광고하는 모험도 감행했다. 반자본주의적 기업 운영은 한동안 파타고니아를 어려움에 빠뜨렸다. 하지만 고통은 오래가지 않았다. 대중들이 쉬나드의 진심을 이해하면서 파타고니아는 ‘철학과 비전 있는 회사, 개념 있는 옷을 만드는 회사’로 이미지를 구축했다. 파타고니아의 철학과 비전에 동감하는 고개들이 증가하면서 매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당연했다.
쉬나드는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를 온전히 유지하면서 지구 환경 위기를 막기 위한 싸움에 더 많은 돈을 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고 말한다. 최근에는 본인과 가족이 소유한 회사 주식 전부(약 4조 2,800억 원)를 기후 위기 해결을 모색하는 NGO 지원 단체 ‘홀드패스트 콜렉티브’에 기부했다. 심지어 기부에 필요한 수천억 원의 세금과 제반 비용까지 스스로 부담했다고 한다.
이본 쉬나드의 삶에서 ‘선한 사마리아인’을 발견한다. 예수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누가 고통받는 자들의 친구이며, 누가 참된 신앙인이냐’라고 질문한다. 사마리아인은 성직자도 아니었고, 성경을 연구한 신학대학 교수도 아니며, 주일 날 교회에 열심히 나가는 장로와 권사도 아니었다. 정통 헤브라이인이나 기독교인도 아니었으며 이방인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던 천한 존재들이었다. 그런데도 예수는 ‘누가 참되냐, 누가 진정으로 신앙적 행동을 했느냐’라는 질문에서 사마리아인의 손을 들어주었다.
쉬나드는 독실한 기독교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는 나눔의 가치를 2차대전 직후 먹고살기 힘들어 캘리포니아로 이동할 때 어머니가 배고픈 원주민들에게 옥수수를 나눠주는 모습을 보면서 배웠다고 말한다. 우리는 쉬나드가 말한 ‘지구를 살리는 일은 정부나 종교인이나 기업가가 할 수 없다’는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이 말은 정부, 종교인, 기업가의 공통점이 자본주의자라는 뜻이며, 자본주의는 인류에게 희망이 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가 찾은 해답은 반자본주의적 경제활동이며 환경운동이다. 쉬나드의 생각과 실천은 사마리아인과 닮았다. 예수께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사마리아인의 모습이 쉬나드에게서 발견된다.
기독교는 ‘창조 질서의 보존과 건강한 지구 회복,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종교가 구현할 수 없을 것이다’라는 쉬나드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왜 세상의 악한 정치인들은 모두 ‘보수적 기독교인’인지도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물신주의에 빠진 한국 기독교는 왜 반성하지 않는지, 패악한 정권을 탄생시키고도 왜 회개하지 않는지에 생각해봐야 한다.
니체는 말한다.
‘신은 죽었다.’
김해규도 말한다.
‘지금도 신은 죽었다.’ (2022.10.05. 김해규)
하나.
어제 이윤훈 시인과 점심을 먹고 가을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카페 야외테라스에 앉아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카페 옆으로는 가을 들판이 익어가고 산들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한 달 동안 원주의 토지문학관에서 집필에 몰두했던 이윤훈 시인은 한층 깊어진 내공으로 가슴에 담긴 생각들을 드러냈다.
이윤훈 시인은 ‘시(詩)도 결국은 철학’이라며 니체와 샤갈을 입에 올렸다. 니체의 ‘신은 죽었다’라는 선언은 종교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중세 이후 뿌리 깊게 내려온 기독교적 폐단, 천국에 대한 욕망을 추구하며 세상에서의 참된 삶을 도외시하는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라고 일갈했다. 나는 마르크스의 ‘종교(기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주장도 기실 ‘아편과 같은 역할을 했던 19세기 기독교에 대한 부정이지 기독교 본질에 대한 부정은 아니라며’ 맞받았다.
브라질 대통령선거가 뜨겁다. 2014년 대통령에서 물러났던 룰라가 다시 출마하여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으며, 한편에서는 극우를 상징하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이 맞대결을 펼치고 있다. 룰라는 노동자 출신의 대통령, 서민층의 아버지로 통칭된다. 그가 대통령에 취임한 뒤 IMF 외환위기로 몸살을 앓았던 브라질의 경제는 세계 8위의 경제 대국으로 환골탈태했다. 빈곤율이 30%나 줄었고, 빈곤층 아이들의 취학율이 몰라보게 높아지면서 빈곤의 악순환을 끊어버릴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다. 하지만 룰라가 물러나자 집권한 보수정권은 룰라를 가만두지 않았다. 물적 증거도 없이 어느 기업가의 증언만으로 부정한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죄를 씌워 감옥에 넣었으며 그가 했던 개혁정책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결국 룰라는 대법원에서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지만 정치적 타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번 대통령선거는 무죄판결 후 다시 출마하는 선거다.
룰라의 삶은 익히 알려졌다. 그가 얼마나 정직했고 브라질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려고 했는지도 안다. 다만 주목되는 인물은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이다. 보우소나루는 프랑스계 이민 2세대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으며 군 복무 중에는 군 수뇌부의 부패로 군인 봉급이 적다고 폭로해서 주목을 받았다. 전역 후에는 기독민주당에 입당했다. 정치 활동 중에는 빈민층 비하 발언을 하는 등 스스로는 중도를 자처했지만 실제로는 극우 정치인으로 활동하며 좌파 정당과 대립각을 세웠다. 보우소나루를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막말’이다. 보우소나루의 막말 리스트는 화려하다. 예컨대 ‘여성과 흑인은 국가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흑인이 조종하는 헬기는 위험하다’, ‘군인들이 원주민 사회를 말살하지 않는 것이 슬프다’, ‘나는 게이 아들을 사랑할 수 없다, 그런 아들은 사고로 죽는 것이 낫다’, ‘나는 군사정권이 그립고 독재 정부 때 반정부 인사들을 죽이지 않은 것은 실수다’와 같은 발언이 그것이다.
그에게는 ‘남미의 트럼프’라는 별칭이 따라다닌다. 실제로도 친미 성향이면서 트럼프를 매우 좋아한다고 공개 발언했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막말을 서슴치 않고 있으며 외교적 결례도 자주 범한다. 당연하지만 노동자와 빈민들에게 혹독하며 자본가와 지주들에게 관대하다. 자본가들과 손을 잡고 지구의 허파인 아마존 밀림개발을 밀어붙이고, 환경을 걱정하며 질문하는 기자에게는 ‘이틀에 한 번 방귀를 뀌면 될 것이다’라고 되받았다. 연금을 개악하고 공기업 민영화를 반대하는 노동자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여 탄압했다. 코로나에 대한 대책 부재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코로나 사망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보우소나루의 악행을 열거하려면 입이 아프다. 그런데 보우소나루의 이력 중에서 눈에 띄는 점을 발견했다. 그가 ‘복음주의 기독교도’라는 사실이다. ‘복음주의 기독교’는 청교도주의에 기반한 미국의 보수기독교를 일컸는 말이다. 미국의 전통적인 지주와 자본가들의 입장을 지지하고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든 기독교이기도 하다. 140여 년 전 한국에 전파된 기독교이며 한국의 보수주의 기독교의 뿌리다. 전광훈 목사의 기독교이며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대한민국을 미국의 52번째 주로 만들어달라’고 기도하는 기독교이다. 지난 선거에서 국민의 힘과 윤석렬 정부를 지지했던 기독교이기도 하다.
세계적 전염병이 만연하고 경제가 위축될 때마다 정치가 보수화되었던 것은 역사적 현상이었다. 진보의 희망과 불안정성보다 보수의 안정성에 기대려는 대중의 심리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전역에서 나타나는 보수주의 열풍은 심각한 우려를 갖게 한다. 이들은 보수라기보다는 ‘극우 파시즘’에 가깝고, 전통적으로 보수가 가졌던 품격하고는 거리가 먼 세력들이다. 최근 이탈리아에서 무솔리니 파시즘에 기반한 ‘이탈리아 형제당’의 조르자 멜로니가 총리가 된 것, 유럽과 남미에서 보수성향의 정당들이 집권하는 것은 비근한 예이다.
둘.
암울하고 우울한 아침에 기분 좋은 이야기를 접했다. KBS2 TV의 ‘해 볼만한 아침’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다룬 ‘이본 쉬나드’ 파타고니아 회장에 대한 이야기다.
이본 쉬나드는 세계적 등반가이며 1973년 미국에서 파타고니아라는 회사를 설립해 세계적 기업으로 키운 사업가이다. 젊은 시절에는 주한미군으로 복무하며 북한산 인수봉에 자신의 이름을 딴 암벽 루트를 개척했던 인물이었다. 파타고니아는 암벽 등반 장비를 생산하는 회사로 출발했다. 하지만 암벽 등반 장비들이 실제로는 자연을 훼손하고 있다는 자괴감을 갖고 아웃도어 쪽으로 방향 전환했고 이것이 성공하여 오늘날 파타고니아라는 회사로 성장했다.
파타고니아는 재투자비와 비즈니스비를 제외한 수익금 중 1% 이상을 매년 환경단체에 기부한다. 그는 자서전에서 ‘세상이 종말을 향해 치달아가는 상황에서 종교 지도자, 정치인, 기업가가 인류를 구원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라고 말하며 NGO의 역량과 가치를 강조했다. 쉬나드는 ‘이제 파타고니아의 유일한 주주는 지구입니다’라고 역설한다. 이 같은 철학을 기업 운영에 접목시키기도 했다. 막대한 비료와 농약을 살포하여 생산한 목화로 직조했던 기존의 의류 생산 시스템을 바꿔 생산비가 3배나 더 드는 유기농 목화 재배를 통해 옷을 만들도록 한 것은 대표적인 예다. 의류 낭비로 지구환경이 오염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소비자들에게 유행에 따라 옷을 구입하거나 버리지 말고 직접 수선하여 입으라며 수선법을 광고하는 모험도 감행했다. 반자본주의적 기업 운영은 한동안 파타고니아를 어려움에 빠뜨렸다. 하지만 고통은 오래가지 않았다. 대중들이 쉬나드의 진심을 이해하면서 파타고니아는 ‘철학과 비전 있는 회사, 개념 있는 옷을 만드는 회사’로 이미지를 구축했다. 파타고니아의 철학과 비전에 동감하는 고개들이 증가하면서 매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당연했다.
쉬나드는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를 온전히 유지하면서 지구 환경 위기를 막기 위한 싸움에 더 많은 돈을 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고 말한다. 최근에는 본인과 가족이 소유한 회사 주식 전부(약 4조 2,800억 원)를 기후 위기 해결을 모색하는 NGO 지원 단체 ‘홀드패스트 콜렉티브’에 기부했다. 심지어 기부에 필요한 수천억 원의 세금과 제반 비용까지 스스로 부담했다고 한다.
이본 쉬나드의 삶에서 ‘선한 사마리아인’을 발견한다. 예수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누가 고통받는 자들의 친구이며, 누가 참된 신앙인이냐’라고 질문한다. 사마리아인은 성직자도 아니었고, 성경을 연구한 신학대학 교수도 아니며, 주일 날 교회에 열심히 나가는 장로와 권사도 아니었다. 정통 헤브라이인이나 기독교인도 아니었으며 이방인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던 천한 존재들이었다. 그런데도 예수는 ‘누가 참되냐, 누가 진정으로 신앙적 행동을 했느냐’라는 질문에서 사마리아인의 손을 들어주었다.
쉬나드는 독실한 기독교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는 나눔의 가치를 2차대전 직후 먹고살기 힘들어 캘리포니아로 이동할 때 어머니가 배고픈 원주민들에게 옥수수를 나눠주는 모습을 보면서 배웠다고 말한다. 우리는 쉬나드가 말한 ‘지구를 살리는 일은 정부나 종교인이나 기업가가 할 수 없다’는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이 말은 정부, 종교인, 기업가의 공통점이 자본주의자라는 뜻이며, 자본주의는 인류에게 희망이 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가 찾은 해답은 반자본주의적 경제활동이며 환경운동이다. 쉬나드의 생각과 실천은 사마리아인과 닮았다. 예수께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사마리아인의 모습이 쉬나드에게서 발견된다.
기독교는 ‘창조 질서의 보존과 건강한 지구 회복,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종교가 구현할 수 없을 것이다’라는 쉬나드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왜 세상의 악한 정치인들은 모두 ‘보수적 기독교인’인지도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물신주의에 빠진 한국 기독교는 왜 반성하지 않는지, 패악한 정권을 탄생시키고도 왜 회개하지 않는지에 생각해봐야 한다.
니체는 말한다.
‘신은 죽었다.’
김해규도 말한다.
‘지금도 신은 죽었다.’ (2022.10.05. 김해규)
어제 이윤훈 시인과 점심을 먹고 가을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카페 야외테라스에 앉아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카페 옆으로는 가을 들판이 익어가고 산들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한 달 동안 원주의 토지문학관에서 집필에 몰두했던 이윤훈 시인은 한층 깊어진 내공으로 가슴에 담긴 생각들을 드러냈다.
이윤훈 시인은 ‘시(詩)도 결국은 철학’이라며 니체와 샤갈을 입에 올렸다. 니체의 ‘신은 죽었다’라는 선언은 종교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중세 이후 뿌리 깊게 내려온 기독교적 폐단, 천국에 대한 욕망을 추구하며 세상에서의 참된 삶을 도외시하는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라고 일갈했다. 나는 마르크스의 ‘종교(기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주장도 기실 ‘아편과 같은 역할을 했던 19세기 기독교에 대한 부정이지 기독교 본질에 대한 부정은 아니라며’ 맞받았다.
브라질 대통령선거가 뜨겁다. 2014년 대통령에서 물러났던 룰라가 다시 출마하여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으며, 한편에서는 극우를 상징하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이 맞대결을 펼치고 있다. 룰라는 노동자 출신의 대통령, 서민층의 아버지로 통칭된다. 그가 대통령에 취임한 뒤 IMF 외환위기로 몸살을 앓았던 브라질의 경제는 세계 8위의 경제 대국으로 환골탈태했다. 빈곤율이 30%나 줄었고, 빈곤층 아이들의 취학율이 몰라보게 높아지면서 빈곤의 악순환을 끊어버릴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다. 하지만 룰라가 물러나자 집권한 보수정권은 룰라를 가만두지 않았다. 물적 증거도 없이 어느 기업가의 증언만으로 부정한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죄를 씌워 감옥에 넣었으며 그가 했던 개혁정책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결국 룰라는 대법원에서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지만 정치적 타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번 대통령선거는 무죄판결 후 다시 출마하는 선거다.
룰라의 삶은 익히 알려졌다. 그가 얼마나 정직했고 브라질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려고 했는지도 안다. 다만 주목되는 인물은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이다. 보우소나루는 프랑스계 이민 2세대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으며 군 복무 중에는 군 수뇌부의 부패로 군인 봉급이 적다고 폭로해서 주목을 받았다. 전역 후에는 기독민주당에 입당했다. 정치 활동 중에는 빈민층 비하 발언을 하는 등 스스로는 중도를 자처했지만 실제로는 극우 정치인으로 활동하며 좌파 정당과 대립각을 세웠다. 보우소나루를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막말’이다. 보우소나루의 막말 리스트는 화려하다. 예컨대 ‘여성과 흑인은 국가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흑인이 조종하는 헬기는 위험하다’, ‘군인들이 원주민 사회를 말살하지 않는 것이 슬프다’, ‘나는 게이 아들을 사랑할 수 없다, 그런 아들은 사고로 죽는 것이 낫다’, ‘나는 군사정권이 그립고 독재 정부 때 반정부 인사들을 죽이지 않은 것은 실수다’와 같은 발언이 그것이다.
그에게는 ‘남미의 트럼프’라는 별칭이 따라다닌다. 실제로도 친미 성향이면서 트럼프를 매우 좋아한다고 공개 발언했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막말을 서슴치 않고 있으며 외교적 결례도 자주 범한다. 당연하지만 노동자와 빈민들에게 혹독하며 자본가와 지주들에게 관대하다. 자본가들과 손을 잡고 지구의 허파인 아마존 밀림개발을 밀어붙이고, 환경을 걱정하며 질문하는 기자에게는 ‘이틀에 한 번 방귀를 뀌면 될 것이다’라고 되받았다. 연금을 개악하고 공기업 민영화를 반대하는 노동자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여 탄압했다. 코로나에 대한 대책 부재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코로나 사망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보우소나루의 악행을 열거하려면 입이 아프다. 그런데 보우소나루의 이력 중에서 눈에 띄는 점을 발견했다. 그가 ‘복음주의 기독교도’라는 사실이다. ‘복음주의 기독교’는 청교도주의에 기반한 미국의 보수기독교를 일컸는 말이다. 미국의 전통적인 지주와 자본가들의 입장을 지지하고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든 기독교이기도 하다. 140여 년 전 한국에 전파된 기독교이며 한국의 보수주의 기독교의 뿌리다. 전광훈 목사의 기독교이며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대한민국을 미국의 52번째 주로 만들어달라’고 기도하는 기독교이다. 지난 선거에서 국민의 힘과 윤석렬 정부를 지지했던 기독교이기도 하다.
세계적 전염병이 만연하고 경제가 위축될 때마다 정치가 보수화되었던 것은 역사적 현상이었다. 진보의 희망과 불안정성보다 보수의 안정성에 기대려는 대중의 심리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전역에서 나타나는 보수주의 열풍은 심각한 우려를 갖게 한다. 이들은 보수라기보다는 ‘극우 파시즘’에 가깝고, 전통적으로 보수가 가졌던 품격하고는 거리가 먼 세력들이다. 최근 이탈리아에서 무솔리니 파시즘에 기반한 ‘이탈리아 형제당’의 조르자 멜로니가 총리가 된 것, 유럽과 남미에서 보수성향의 정당들이 집권하는 것은 비근한 예이다.
둘.
암울하고 우울한 아침에 기분 좋은 이야기를 접했다. KBS2 TV의 ‘해 볼만한 아침’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다룬 ‘이본 쉬나드’ 파타고니아 회장에 대한 이야기다.
이본 쉬나드는 세계적 등반가이며 1973년 미국에서 파타고니아라는 회사를 설립해 세계적 기업으로 키운 사업가이다. 젊은 시절에는 주한미군으로 복무하며 북한산 인수봉에 자신의 이름을 딴 암벽 루트를 개척했던 인물이었다. 파타고니아는 암벽 등반 장비를 생산하는 회사로 출발했다. 하지만 암벽 등반 장비들이 실제로는 자연을 훼손하고 있다는 자괴감을 갖고 아웃도어 쪽으로 방향 전환했고 이것이 성공하여 오늘날 파타고니아라는 회사로 성장했다.
파타고니아는 재투자비와 비즈니스비를 제외한 수익금 중 1% 이상을 매년 환경단체에 기부한다. 그는 자서전에서 ‘세상이 종말을 향해 치달아가는 상황에서 종교 지도자, 정치인, 기업가가 인류를 구원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라고 말하며 NGO의 역량과 가치를 강조했다. 쉬나드는 ‘이제 파타고니아의 유일한 주주는 지구입니다’라고 역설한다. 이 같은 철학을 기업 운영에 접목시키기도 했다. 막대한 비료와 농약을 살포하여 생산한 목화로 직조했던 기존의 의류 생산 시스템을 바꿔 생산비가 3배나 더 드는 유기농 목화 재배를 통해 옷을 만들도록 한 것은 대표적인 예다. 의류 낭비로 지구환경이 오염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소비자들에게 유행에 따라 옷을 구입하거나 버리지 말고 직접 수선하여 입으라며 수선법을 광고하는 모험도 감행했다. 반자본주의적 기업 운영은 한동안 파타고니아를 어려움에 빠뜨렸다. 하지만 고통은 오래가지 않았다. 대중들이 쉬나드의 진심을 이해하면서 파타고니아는 ‘철학과 비전 있는 회사, 개념 있는 옷을 만드는 회사’로 이미지를 구축했다. 파타고니아의 철학과 비전에 동감하는 고개들이 증가하면서 매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당연했다.
쉬나드는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를 온전히 유지하면서 지구 환경 위기를 막기 위한 싸움에 더 많은 돈을 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고 말한다. 최근에는 본인과 가족이 소유한 회사 주식 전부(약 4조 2,800억 원)를 기후 위기 해결을 모색하는 NGO 지원 단체 ‘홀드패스트 콜렉티브’에 기부했다. 심지어 기부에 필요한 수천억 원의 세금과 제반 비용까지 스스로 부담했다고 한다.
이본 쉬나드의 삶에서 ‘선한 사마리아인’을 발견한다. 예수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누가 고통받는 자들의 친구이며, 누가 참된 신앙인이냐’라고 질문한다. 사마리아인은 성직자도 아니었고, 성경을 연구한 신학대학 교수도 아니며, 주일 날 교회에 열심히 나가는 장로와 권사도 아니었다. 정통 헤브라이인이나 기독교인도 아니었으며 이방인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던 천한 존재들이었다. 그런데도 예수는 ‘누가 참되냐, 누가 진정으로 신앙적 행동을 했느냐’라는 질문에서 사마리아인의 손을 들어주었다.
쉬나드는 독실한 기독교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는 나눔의 가치를 2차대전 직후 먹고살기 힘들어 캘리포니아로 이동할 때 어머니가 배고픈 원주민들에게 옥수수를 나눠주는 모습을 보면서 배웠다고 말한다. 우리는 쉬나드가 말한 ‘지구를 살리는 일은 정부나 종교인이나 기업가가 할 수 없다’는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이 말은 정부, 종교인, 기업가의 공통점이 자본주의자라는 뜻이며, 자본주의는 인류에게 희망이 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가 찾은 해답은 반자본주의적 경제활동이며 환경운동이다. 쉬나드의 생각과 실천은 사마리아인과 닮았다. 예수께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사마리아인의 모습이 쉬나드에게서 발견된다.
기독교는 ‘창조 질서의 보존과 건강한 지구 회복,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종교가 구현할 수 없을 것이다’라는 쉬나드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왜 세상의 악한 정치인들은 모두 ‘보수적 기독교인’인지도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물신주의에 빠진 한국 기독교는 왜 반성하지 않는지, 패악한 정권을 탄생시키고도 왜 회개하지 않는지에 생각해봐야 한다.
니체는 말한다.
‘신은 죽었다.’
김해규도 말한다.
‘지금도 신은 죽었다.’ (2022.10.05. 김해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