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통영에 새로운 명물이 있다. ‘남해의봄날(출판사)’과 ‘봄날의책방(서점)’이 최근 정부로부터 공간문화대상을 받았다. 강용상(50)·정은영(47). 서울서 귀촌한 부부의 삶은 지방에 대한 편견을 보기 좋게 깨트린 유쾌한 반란으로 불린다.
하필 태풍이 불었다. 지난 10월 초 ‘남해의봄날’을 찾아가는 길은 전혀 봄날 같지 않았다. 그런데 대화가 이어질수록 봄기운이 느껴졌다. 가을에 부는 봄바람! 대한민국 남해 통영에서 일어난 작은 기적이었다.
봄날의집 강용상 대표, 남해의봄날 정은영 대표. 통영시민 10년차다. 2010년 서울에서 왔다. 배우자는 어떤 사람인가? 물었더니 대외비는 방출하지 말자는 웃음 머금은 신사협정을 맺고 입을 열었다.
“은영 씨는 한마디로 똘똘하다. 역할이 많은데도 스마트하다. 그런데 결정 장애가 있다.” 긴장은 필자의 몫이었고 남편은 머뭇거리지 않았다. “아내는 한 단계씩 자박자박 가는 스타일이다. 나는 정보가 부족해도 성큼성큼 간다. 우리는 정확하게 정반대의 캐릭터다.”
아내가 맞장구를 쳤다. “맞는 말이다. 남편은 이상주의자고 나는 현실주의자다. 그래도 남편의 결정을 따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통영에 가자고 먼저 제안한 것도 신랑이다. 서울을 떠나 통영까지 남편을 따라왔다.”
“아뇨. 따라온 것은 아닙니다. 같이 왔어요. 아내가 아팠기에 1년 정도 쉬면서 몸을 추스를 곳을 같이 찾았죠. 그게 통영이었죠.”
아내가 말을 이었다. “남편은 인성이 좋은 사람이에요. 누군가를 잘 도와줘요. 보통 사람은 이해가 되지 않은 말도 그 사람의 이상을 현실이 되게끔 도와줍니다.”
통영 느린 만큼 여유롭다
통영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지 올해로 10년차다. 통영살이가 어떤지 궁금했다.
“아니 인터뷰를 하자고 찾아올 정도면 저희가 잘 사는 것 아닙니까.”
남편의 짧은 답에 아내가 살을 붙였다. “서울 살 때는 여유가 없었어요. 남편과 저녁을 같이 먹기도 힘들었죠. 경쟁에 시달렸고 빠른 속도감에 지쳤어요. 그런데 여긴 아니에요. 느린 만큼 여유가 있어요. 덜 벌어도 덜 쓰니까 해결이 되고 집도 서울보다 빨리 장만했고 자연과 가까이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삶의 기준점이 바뀌었어요.”
남편도 통영 자랑에서는 현실주의자였다.
“종합적으로 봤을 때 통영이 최고입니다. 날씨, 먹거리, 문화예술 등에서 자원이 풍부하죠, 도심이 뚜렷해서 서비스 기능이 모아져 있습니다.”
그랬다. 통영이 좋다는데 누가 말리겠는가?
그래서 행복하냐고 물었다. 부창부수로 화답했다. 점점 행복해진다고 했다. 책방 주변에 서울서 살러 오는 젊은 부부들이 늘었다고 자랑했다. 통영에 야식배달문화가 약한 것을 증거로 내세웠다. 밤은 일보다 휴식이 지배하는 도시라는 말이었다.
“책방 주변을 보세요. 밤에는 사람이 없어요. 우리도 저녁 6시 반이면 문을 닫아요.”
책은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
정은영 대표에게 물었다. 책이란?
“여기 와서 출판사를 시작했습니다. 책은 소통의 도구입니다. 저희가 이곳에서 비로소 다른 삶을 시작했듯이 뭔가 대안적인 삶을 책에 담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역적인 것을 소재로 기록을 남기고 싶어요.”
정 대표는 인터넷과 휴대폰 등에서 얻는 정보를 ‘휘발성 메시지’라고 했다. 책은 비록 소수가 찾는다 해도 귀중한 자산을 담아내고 누군가 기억해준다면 지역에 대한 애정도 강해지고 문화도 성숙한다고 강조했다. ‘남해의봄날’에서 발간한 책은 43권, 그 가운데 절반은 통영 등 ‘지역에서 재발견한 소재들’이다.
“저는 사회운동가가 아닙니다. 거창하게 변화시키거나 많이 봐주지는 않아도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주고 싶어요.”
‘인생의 책’을 물었더니 다독을 권유했다. 한 권의 책이 인생 전체를 바꾸기는 힘들다는 이유였다. ‘남해의봄날’에서 펴낸 책 가운데서는 두 권을 꼽았다. 『작은 책방, 우리 책 좀 팝니다!』,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전국에 작은 책방 열풍을 몰고 온 화제의 책이자 편의점은 알고 구멍가게는 모르는 젊은이에게 던지는 도전이었다.
지역을 보면 새로운 것이 보인다
아내의 다양한 표정을 성실하게 지켜보던 남편에게 물었다. 왜 동네건축가인가?
“아내가 지어준 이름인데 규모에 연연하지 않고 옛날 동네목수처럼 그 지역의 특성에 맞는 건축을 하는 사람이죠. 참 정감이 가는 이름입니다.”
동네건축가가 생각하는 좋은 집의 기준을 알아볼 요량으로 ‘이런 집은 짓지 말라’는 조언을 구했더니 엉뚱한 대답이 돌아왔다. 웬만하면 집을 짓지 말라 했다. 스스로 밥줄(?)을 끊는 처방을 내리다니!
그의 생각은 이랬다. 집짓기는 호사스런 취미이자 남자들의 로망이다. 요즘도 5060세대가 집을 짓고자 하는데 이미 늦다고 했다. 새집이라도 관리와 보수가 늘어나면 체력이 달려서 힘들단다. 평생 모은 재산을 부동산에 묶어두는 것도 걱정했다. 무엇보다 부모가 애정을 담아지어도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자녀들이 살지 않는다 했다. 이제 집을 물려주는 시대는 지나갔다고도 했다. 시멘트나 콘크리트 쓰레기의 문제도 우려했다. 그렇다면 대안은 고쳐 짓는 것과 재생이라고 강조했다.
‘남해의봄날’이 가져온 통영의 조그만 변화도 고쳐 지은 것이니 공감이 갔다. 실제로 ‘봄날의책방’도 지붕부터 바닥까지 공간재생의 결과였다. 동네건축가의 건축은 물리적인 새집이 아니라 이미지와 스토리텔링을 입힌 새집이었다. “집은 한 번에 뚝딱 만드는 것이 아니라 프로세스(과정)가 있기 때문에 짓는다고 하는 것 아닐까요?”
평범하지만 독특한 이른바 슈퍼 노멀(Super Normal)의 철학이 묻어났다.
모두에게 봄날을!
인터뷰를 하다 출판사 벽면의 작은 메모판에 눈길이 갔다. 10여 개의 독서 모임 일정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이들 부부가 일궈낸 작은 변화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저분들이 하고 계신 것을 도와주고 숨어있던 것을 드러내는 정도입니다. 저희들이 주도한다고 할 수 없어요.”
최근 이들 부부는 정부에서 주는 공간문화대상(국무총리상)을 받았다. 지역 출판사와 작은 책방이 일궈낸 공간재생, 인문환경의 변화, 지역의 재발견에 대한 찬사였다.
“저는 문제에 착념할 때 답이 나온다고 봅니다. 문제(대상)를 보고 거기에 맞는 유일한 답을 찾아야 합니다. 대가의 사진을 흉내내는 것보다 피사체에 맞는 사진을 찾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남해의봄날’이라는 이름을 지은 아내도 소망을 얘기 했다.
“통영 앞 남해에서 반짝이는 윤슬을 보면서 봄날을 생각했죠. 저희에게 남해가 봄날을 선물했듯이 모두에게 봄날이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남해의봄날 books@namhaebomnal.com
봄날의책방 경남 통영시 봉수1길 12 ☎ 055)646-0513
봄날의집 www.namhaebomnal.com/artho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