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제천·단양여행
[제천의림지-청풍문화재단지-청풍나루 유람선-사인암-도담삼봉-청남대]
○ 여행일시 : 2017. 04. 17(월)~19(수), 날씨 : 17일(비), 18일(오후 비), 19일(흐림).
○ 인원 : 모임 회원 9명.
○ 숙소 : 단양 대명리조트.
○ 여행코스
4. 17
□ 의림지(義林池) 명승 제20호
위치 : 충청북도 제천시 모산동에 있는 저수지.
제천시 시가지에서 북쪽으로 약 3.3km 지점인 용두산(871m) 남쪽 기슭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 중의 하나로, 충청북도 기념물 제11호이다.
신라 진흥왕 때 우륵이 처음 방죽을 쌓았으며, 그로부터 700여 년 뒤인 고려시대에 고을현감 박의림(朴義林)이 다시 견고하게 쌓은 것이라고 한다. 그후 1457년(세조 3)에 체찰사로 부임한 정인지(鄭麟趾)가 크게 보수공사를 했다.
최근에는 1910, 1948년에 보수공사를 했으며, 1970년에 보조 저수지로 상류 쪽 1.2km 지점에 제2의림지를 축조했다. 1972년의 대홍수로 무너진 의림지 둑을 1973년에 복구하여 지금에 이른다.
1992년 현재 의림지의 규모는 저수지 둘레 약 1.8km, 만수면적 15만 1,470㎡, 저수량 661만 1,891㎥, 수심 8~13m, 몽리면적 약 2.87㎢이다. 예로부터 농업용수로 크게 이용했으며, 지금도 제천시 북부 청전동 일대의 농경지에 관개용수를 공급한다. 저수지 주위에는 몇 백년된 소나무숲과 수양버들이 있고, 그 기슭에 영호정·경호루 등의 정자가 있어 제천시에서 유일한 경승지이자 시민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저수지 안에는 예로부터 서식해온 빙어가 특산물로 유명하다.




□ 금월봉(錦月峰)
위치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청풍호로 1345-17 (금성면)
금강산을 닮은 산, 금월봉
금월봉은 지난 1993년 아세아시멘트주식회사 영월공장에서 시멘트 제조용 점토 채취장으로 사용되어 오던 산이다. 그러던 중 기암괴석군이 발견되었는데 그 모형이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그대로 빼어닮아 작은 금강산으로 불리우고 있다. 현재 어린이 영화와 무술 영화 촬영장소로 각광받고 있으며, 최근에는 KBS대하드라마 태조왕건의 촬영장소로도 이용되었다.
바라만 보아도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신령스런 바위산 금월봉. 금월봉은 뛰어난 풍경과 더불어 태조왕건, 명성황후, 이제마, 장길산 등 TV 및 영화촬영장소로 알려져 있으며 수년에 걸친 작업 끝에 예전의 평범한 야산에서 신과 인간이 공존하는 신령스런 바위산으로 변모하였다. 야산에서 종합관광지로 변모한 금월봉.
제천시가 명칭공모를 통해 금월봉이라 명명하여 개발을 시작하여 금월봉관광지를 조성하였다. 이렇게 조성된 관광지는 작은 금강산이라 불리우는 석산과 청풍호반을 자원으로 최적의 수상레포츠 활동조건과 뛰어난 전망 및 휴양조건을 활용한 종합관광지로 개발하는 지역이다.





□ 청풍문화재단지(淸風文化財團地)
위치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에 있는 문화재단지.
1982~85년에 청풍호 연안 망월산성 기슭의 총면적 5만 4,486㎡에 조성되었다. 남한강 상류인 이 일대는 선사시대 문화의 중심지로서 구석기시대의 유적이 곳곳에서 발견되었으며,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와 신라의 세력쟁탈지로 찬란한 중원문화를 이루었던 곳이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지방의 중심지로 수운을 이용한 상업과 문물이 크게 발달했다.
1978년부터 시작된 충주다목적 댐의 건설로 제천시의 청풍면을 중심으로 한 5개면 61개 부락과 충주시 일부가 수몰되자, 이곳에 있던 각종 문화재들을 한곳에 모아 문화재단지를 조성했다.
이곳에는 선사시대의 고인돌·선돌 등의 거석문화재와 민가·향교·관아 등을 나누어 복원·배치했으며, 고가(古家) 내에는 생활유품 1,600여 점을 옛 풍속대로 전시해놓았다.
중요한 문화재로는 청풍한벽루(보물 제528호)·청풍석조여래입상(보물 제546호)·금남루(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0호)·금병헌(錦屛軒: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4호)·응청각(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90호)·팔영루(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5호)·후산리고가(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5호)·수산지곡리고가(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9호)·도화리고가(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3호)·황석리고가(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4호)·청풍향교(충청북도 기념물 제64호) 등이 보존되어 있다.













4. 18
□ 청풍(淸風)나루(장회나루)
위치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읍리에 있는 청풍호의 나루터.
2011년 현재 청풍나루는 제천 시내에서 24㎞ 지점에 위치한다. 청풍호를 거슬러 올라가다 청풍문화재단지를 지나면 강 방향에 자리한 청풍나루를 찾을 수 있다. 충주관광선 청풍나루휴게소 선착장이라 칭한다.
선착장의 바지(barge)선은 1987년 7월에 진수하였는데, 무게는 677톤, 길이는 41.28m, 너비는 15m이며, 물속에 잠긴 깊이는 2m이다. 바지선은 ‘장회나루호’로 1987년 당시에는 장회나루에 있었으나 썰물이 심하여 1989년 청풍대교 밑으로 이전하여 2년간 정박하였다. 그러나 물살이 심하여 1991년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였다.
바지선은 2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은 매표소, 휴게실, 기념품점, 매점, 스낵코너, 화장실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 2층에는 음식점이 들어서 있다.
청풍나루에서 관광 유람선을 타면 청풍호의 명경인 제천 옥순봉[286m], 구담봉[343.2m], 금수산[1016m]을 볼 수 있다. 관광 유람선은 여름철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1일 6~7회 운항하고, 겨울철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1일 2~3회 운항한다. 주 운항로는 청풍나루~장회나루이며, 2009년의 승선 관광객은 약 10만 명이었다. 선착장에서 생활용수로 사용한 물은 바지선 아래 탱크에 저장한 후 제천 위생사가 수거해 간다.







□ 사인암(舍人岩) 명승 제 47호
위치 : 충북 단양군 대강면 사인암2길 42
단양팔경 중의 하나인 사인암은 역동 우탁에 의해 명명된 경승이다.
고려 말 정주학의 대가였던 우탁은 단양군 현곡면 적성리에서 태어났다. 충렬왕 4년에 항공진사가 되어 관직에 나간 후 여러 직에 보임되었다. 충선왕이 부왕의 후궁인 숙창원비와 통간하자 당시 감찰규정이었던 역동은 흰 옷을 입고 도끼를 든 채 궁궐에 들어가 자신의 말이 잘못되었을 때는 목을 쳐도 좋다는 이른바 지부상소(持斧上疏)를 올렸다.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생각하고 군주의 비행을 직간한 역동의 기개와 충의를 본 충선왕은 부끄러운 빛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이렇듯 우탁은 강직한 성품을 지닌 선비였다.
《고려사(高麗史)》 열전에는 우탁이 영해사록(寧海司錄)으로 부임했을 때 민간신앙이었던 팔령신(八鈴神) 때문에 백성의 폐해가 심하자 신사를 철폐하는 혁신적인 자세를 보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그는 벼슬을 버린 후에는 후학양성에만 전념했다고 한다. 우탁이 ‘사인(舍人)’이라는 관직에 있을 때 사인암 근처에 초막을 짓고 기거했다. 그래서 조선 성종 때 단양군수로 부임한 임재광이 우탁을 기리기 위해 이 바위를 사인암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 도담삼봉(島潭三峯)
위치 : 충북 단양군 매포읍 하괴리 산20-40
도담삼봉은 단양팔경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곳이다.
단양시내에서 제천 방향으로 3km 정도 남한강을 따라가면 맑은 물이 굽이치는 강 한가운데에 세 개의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다. 바로 도담삼봉이다. 푸른 강물 위에 기암괴석이 모두 남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는데 가운데 봉우리(중봉)가 가장 높고 각각 남과 북에 낮은 봉우리가 하나씩 자리하고 있다. 중봉은 주봉으로서 장군같이 늠름한 형상을 하고 있고, 남봉은 교태 어린 여인에 비유되어 첩봉 또는 딸봉이라 하며, 북봉은 이를 외면하는 듯한 모양을 하고 있어 처봉 혹은 아들봉이라고 한다.
중봉에는 현재 삼도정(三嶋亭)이라는 육각정자가 서 있다. 삼도정은 세 봉우리와 어울려 한층 더 경관미를 돋보이게 한다. 1766년(영조 42) 단양군수로 부임했던 조정세(趙靖世)가 처음으로 이곳에 정자를 짓고 능영정(凌瀛亭)이라 이름 지었다. 이후 1900년대에 김도성(金道成)에 의해 사각정자가 목조건물로 지어진 후 빼어난 모습을 간직해왔는데 안타깝게도 1972년 대홍수로 유실되었다. 이후 1976년 콘크리트로 다시 지은 정자가 삼도정이다.

4. 19
□ 청남대의 역사
위치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에 위치한 대통령 전용별장.
1980년 대청댐 준공식에 참석한 전두환 대통령이 주변 환경이 빼어나다는 의견에 따라 1983년 6월 착공, 6개월만인 12월에 완공되었다.
“청남대”는 충청북도 청주시 대청댐 부근 1,844,843㎡ 의 면적에 지어진 대통령 전용별장으로 ‘따뜻한 남쪽의 청와대’라는 의미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여름휴가와 명절휴가를 비롯하여 매년 4~5회, 많게는 7~8회씩 이용하여 20여년간 총 89회 472일을 이곳에서 보냈다. 대통령 별장은 이승만 대통령 시절부터 김해를 비롯해 4군데가 있었으나, 김영삼 대통령 시절 모두 폐쇄하고 청남대 한 곳만 남겼다.
청남대는 휴양 중에도 항상 국정을 수행할 수 있는 완벽한 시설을 갖춤은 물론 대청호 상수원 보호를 위해 최고의 수질정화시스템을 구축, 운영하였다.
또한, 청남대는 국가 1급 경호시설로 청와대에서 관리하고 4중의 경계철책과 경호실338경비대가 경비를 수행하다, 2003. 4. 18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관리권이 충청북도로 이양되고 일반인에게 개방되었다.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 속에 대통령에게는 커다란 결단이 요구될 때가 많았다. 역대 대통령들은 국정운영의 중대한 고비에서 청남대에 머물며 정국에 대한 구상을 하였고, 이때 내린 결단들은 역사를 뒤바꿔왔다. 이것이 바로『청남대 구상』이다. 그 밖에 청남대에서 국빈을 맞이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