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승언 (Homepage) | 2019-04-06 09:42:12, 조회 : 28, 추천 : 1 |
- Download #1 : 친구들과수선화앞에서.jpg (3.65 MB), Download : 0
- Download #2 : 실치회무침.jpg (3.73 MB), Download : 0
맨날 山으로 다녔던 친구들이 이번에는 서해바다로 가기로 했다. 사연인즉 정대장 말에 따르면 요새 장고항에는 실치가 한창이란다. 산사나이 중 진골인 강양원과 그 브러더스 몇은 '오늘도 산으로 간다'고 들려왔다. 출발시각이 되자 정대장 SUV앞으로 윤장호, 양회균, 김양형, 안종운, 선승언이 모여들었다.
나들이 목적이 별식 실치회다보니 아무래도 먹거리 이야기가 많았다. 그 중에서도 실치와 간재미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갔다. 실치를 먹어본 사람은 정대장뿐이었고 간재미에 대해서는 누구는'회가 좋다‘하고, 누구는 '찜이 좋다'고 말했다. 그 새 중간에 누구는 '송악 어딜 가다보면 우렁이쌈밥이 최고'라고 해서 잘못하면 ’실치 대신 우렁이‘가 될랑가 했다.
베스트드라이버 조수석에는 바둑/당구 고수 누가 길안내를 도왔다. 모두들 봄바람 같은 마음으로 이야기를 하다보니 반세기 우정이 샘물처럼 우러났다. 그 중에서도 천주교의 대단한 직분에 있는 어느 어르신의 말씀은 世俗과 天國을 망라한 경지였다. 그의 술에 대하여 관대한 입장은 나 같은 필부에게 크게 위안이 되었다.
모두가 여행깨나 한 친구들이라 궁금한 것을 서로 묻고 일러주곤했다. 누구는 '어디에 가면 바닷길이 갈라진다' 하고, 또 누구는 '요새 무슨 새꼬시가 최고'라고 하는통에 자칫하면 '대부도나 제부도까지 갈랑가...'했다. 진작 일정을 알고는 있었지만 정대장에게 확인차 물으니 "수선화를 보고나서 실치를 먹는다"고 했다.
그 말이 오래지 않아서 우리 차는 지방도로 내렸고 이어서 농로를 잠깐 따라가니 노오란 수선화로 에워싸인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차량 진입로에는 동네청년이 논바닥에 노끈을 밖아 만든 임시 주차장으로 차량을 안내했다. 논을 가로질러서 행사장으로 올라가니 임시로 만든 출입구에서 입장권을 팔고 있었다. 敬老도 5,000원씩이나 받고 있었는데 작년보다 100%나 올랐단다. 아무개는 '그런다'고 돌아설 위인은 없을걸...했다.
동네 맨 초입에 솟을대문이 있었는데 '여미헌'이란 현판이 걸려있었고 미스터션사인촬영지라는 입간판도 있었다. 그 오른쪽 언덕바지로는 노란 수선화가 가득 피어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다. 우리도 지나가는 여인에게 부탁하여 첫번째 인증샷을 남겼다. 근처에는 조그만 연못에서 분수가 있었는데 봄바람에 날려서 가끔은 사람들에게 물세례를 주었다.
친구들은 풀어놓으니 소풍 나온 아이들처럼 금새 흩어져서 어디로들 갔다. 나는 수선화가 구름처럼 피어있는 언덕으로 향했다. 야트막한 남향받이 야산에는 커다란 紅松들이 자라고 그 아래로는 셀 수 없이 많은 수선화가 해맑은 얼굴들을 내밀고 있었다. 그녀들 사이로 난 소로를 따라가자 이번에는 마치 제주도의 유채꽃밭에 온 것 같았다. 사진작가로 보이는 사람들은 대포같은 사진기를 수선화에 들이대고 있었고 그냥 봄나들이 나온 사람들은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수선화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유기방가옥 옆문으로 들어가니 예전의 생활모습을 볼 수 있는 것들이 여기저기 놓여있었다.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뒤편으로 돌아가니 장독대 주변으로 노란수선화들이 오래된 장독들과 잘 어울렸다. 일행과 만나기 위해서 서둘러서 나왔더니 마침 그곳으로 들어오려던 친구가 "어이, 300년 묵은 비자나무를 봤는가?"했다. 그래서 얼른 '어디쪽인가?' 묻고는 부리나케 그곳을 찾아갔다. 세 아름도 넘어보이는 비자나무 아래 안내판에는 여미리에 살고 있는 예민李씨 선조깨서 심었다는 유래와 나무에 관한 안내가 있었다. 그 아래로는 문중의 묘들이 따사로운 봄볕을 맞고 있었다.
누구는 車로 돌아오면서 실뿌리 같은 장뇌삼을 많이도 사와서 모두에게 돌리고 나서는 "조수석은 내 자리이니께 누구도 넘보지 말라고 잉!"했다. 그러면서 그는 올 때처럼 여전히 조수석에 앉았다. 그때사 산삼을 사서 돌린 까닭을 알 것 같았다. 정대장은 “다음 행선지인 장고항으로 간다”고 핸들을 잡았고 조수는 “오라잇”'했다.
얼마가지 않아 장고항에 도착했다. 실치를 먹으려왔지만, 바닷가에 왔으니 발길은 자연히 부두로 향했다. 길가로 점포들이 물건을 팔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 말린 볼락을 사고 싶었다. 이어진 방파제로 더 가고 싶었지만 정대장이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수산물시장으로 불러들였다. 그곳에는 싱싱한 해산물들이 널러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오늘의 피식자로 간택된 실치와 간재미가 눈에 제일 띄었다.
온갖 바다 것들을 구경하고서는 민영이네횟집으로 들어갔다. 주인인 젊은 여자가 낭낭한 목소리로 '오빠들 오셨어! '하며 엄청 반겼다. 북새통 속에서 겨우 자리를 차지하고는 실치회 두 사라에 간재미회무침 하나, 간재미찜 하나를 시켰다. '오빠들한테만 내놓는다'는 살아있는 새우와 멍게와 땅콩버무림이 쓰끼다시로 나왔다. 아무개가 폭탄주를 제조하여 한 순배 돌릴 때 실치회무침이 나왔고 정대장이 먹는법을 일러주었다.
이어서 간재미회가 따라나왔는데 언니가 내나 '간재미를 두마리나 넣었다'고 장을 썼는데 간재미 살점은 잘 안 보였다. 누구는 '양념이 너무 맵고 시다'고 하면서 추가로 막걸리를 시켰다. 마지막으로 나온 간재미찜은 먹을만했는데 양이 너무 적었다. 그새 중간에 아무개는 "실치가 정력에 좋으니 오늘 저녁 한번 확인해보라"고 했다.
이어서 방파제를 따라서 바닷쪽으로 쭈욱 걸어갔더니 동서남북으로 모두 바다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연말연시가 되면 이곳에 와서 해넘이와 해돋이를 보는가' 싶었다. 되돌아오는 길에 보니 입간판에 '장고항 노적봉'이라고 적혀있었다. 노적봉 뒤로 난 층계를 타고 내려가니 바로 바다였다. 그 너머로 보이는 땅이 있어 물어보니 왜목항이란다. 누군가 '나선 김에 저기도 한 번 가보세'했다. 마음씨 좋은 정대장은 '그라고말고' 했다.
잠깐 달려가니 왜목항에 도착했다. 바다에는 날짐승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있었고 길가로는 '해가 뜨고 지는 왜목항 기념석'도 있었다. 횟집거리 뒷편으로는 야트막한 산이 보였다. 누구는 "어이, 오늘 산에 가는 날이니 여기서라도 산에 오르세"했다. 석문산(80미터)으로 오르는 길가로는 분홍색 진달래꽂이 다소곳이 피어나고 있었다.
산 정상에 올라서니 그야말로 사면팔방으로 시야가 확 트였다. 날씨 좋은 날 친구들과 수선화도 보고 실치도 먹고 석문산에도 올랐다. 아주 즐거운 날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