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영화는 히든 피겨스이다. 제목만으로 어떤 내용인지 전혀 상상이 되지 않았는데, 동생이 제목을 보더니 옛날에 흑인 여자 세 명이 나사(NASA)에서 일하면서 인종차별을 겪다가 인정을 받는 이야기라고 짧게 설명해주어 관심이 가게 되었다. 흑인이면서 여성인데, 정말 폐쇄적인 집단일 것 같은 나사에서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이 분명히 합리적인 과정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인 메리, 캐서린, 도로시는 나사의 전산원으로, 흑인 여성 전산원들이 모여 있는 전산실에서 근무한다. 나사는 러시아의 우주기술이 미국을 앞서가는 것에 위기를 느낀다. 이런 상황 속에서 책임자인 해리슨이 전산원을 필요로 하여 캐서린은 흑인이 들어간 적 없는 사무실에서 일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흑인이 사용할 수 있는 커피포트가 따로 준비되고 서류의 중요한 숫자들은 검정색 펜으로 가려진 채 일을 해야 하는 등의 차별이 일어난다. 중요한 내용들은 캐서린에게는 공유되지 않는다. 그리고 캐서린이 힘들게 계산을 해도 상황이 빠르게 변하는 나사에서 그 결과물들은 이미 쓸모가 없어진다. 그런 캐서린에게 해리슨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능력을 발휘해 숫자 너머를 봐야해. ... 알지도 못하는 질문에 답을 찾고, 아직 존재하지 않는 수학을 탐구하기 위한 거야. ... 계산만 잘하는 여성이 필요한 게 아니야.”
이 장면을 통해 해리슨이 직관적 인물이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아직 컴퓨터가 발전이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이 직접 계산하는 것을 상당히 중요하다고 여겼을 것 같은데, 해리슨은 이미 그 이상의 것을 봐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해리슨뿐 아니라 캐서린도 직관적인 행동을 한다. 캐서린은 계산해야 할 문서에 검정색으로 칠해진 숫자들을 빛에 비추어 보면서 그 사무실에서 기밀로 하던 내용까지 파악한다. 아마도 숫자들을 가려서 텃세를 부리던 그 백인직원과 사무실의 합리적인 방식으로 일하는 다른 사람들조차 이런 방법은 생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캐서린의 이런 직관적인 행동과 계산능력을 보고 해리슨은 캐서린에게 기밀자료를 모두 공유하도록 한다. 물론 다른 백인직원의 반대가 있었지만, 해리슨은 마치 무엇인가를 통찰한 것 같았다.
러시아의 우주선 발사 성공소식에 나사에서도 빠르게 쫓아가려고 노력했다. 그 중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었는데, 해리슨과 캐서린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새로운 수학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에 매달렸다. 그런데 해리슨이 갑자기 새로운 수학이 아니라 기존의 것으로 풀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했고, 캐서린은 그에 맞는 공식을 생각해냈다. 오랜 시간동안 풀리지 않던 문제가 해결되었고, 우주선 발사와 우주인의 무사귀환에 성공했다. 해리슨조차도 새로운 공식을 찾아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갑자기 떠오른 직관적인 생각으로 풀이가 가능했던 것이었다. 모든 일에 합리적이고 논리적이어야 할 것 같은 수학자들에게도 직관적인 통찰력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주인공인 메리는 엔지니어가 되고자 하지만, 나사에서 요구하는 교육 프로그램은 백인만 수업을 들을 수 있는 학교에서 이루어졌다. 게다가 그 학교가 있는 버지니아 주는 연방정부와는 상관없이 인종차별이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메리는 소송을 걸었고, 판사를 설득하는데 성공하여 학교를 다니게 된다. 판사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최초”라는 것을 가지고 논리적으로 설명을 한다고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자신이 최초의 나사 흑인여성 엔지니어가 되겠다는 것은 그 사회와 지역의 고정관념을 벗어나는 직관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당시 사회의 분위기에서 인종차별주의 철폐를 위한 많은 노력들도 영향을 주었겠지만, 자신을 둘러싼 제약들을 뚫고 나가려는 시도를 한 메리의 용기는 직관적인 통찰로만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캐서린이 흑인화장실을 찾아 멀리 떨어진 건물을 매일 뛰어다녔던 것처럼 메리가 주어진 상황에 순응했다면 절대 나사의 엔지니어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마지막 주인공인 도로시는 흑인여성 전산원을 총괄하는 일을 한다. 하지만 컴퓨터의 등장으로 전산원들이 모두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낀다. 도로시는 공공도서관에서 컴퓨터 프로그램 언어를 배울 수 있는 책을 빌렸다. 사실 백인들만 볼 수 있는 코너에서 몰래 훔친 것이지만, 자신의 아들에게는 세금을 냈으니 빌려온 것이라고 말한다. 도로시는 컴퓨터에게 밀려나지 않기 위해 그 책을 읽었고, 다른 전산원들도 공부하게 했다. 그리고 다른 백인직원들이 컴퓨터를 활용하는데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를 도로시가 해결하게 된다. 결국 도로시는 다른 흑인여성 전산직원들과 함께 컴퓨터를 다루는 일을 하게 된다. 도로시가 책을 훔쳐 나온 것은 매우 직관적인 행동이었지만, 다른 전산직원들과 공부를 한 것은 컴퓨터가 인력을 대체하게 될 확실한 상황을 예측하여 대비한 것이다. 도로시의 경우 다른 주인공들과 다르게 예측이 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대비한 것이 해피엔딩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직관과 합리에 초점을 맞추고 영화를 봐서인지 주인공들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 집중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직관이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하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만약 그저 인종차별을 이겨내는 이야기로만 영화를 봤다면, 주인공들이 굉장히 똑똑한 사람들이어서 나사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고만 생각했을 것 같다. 물론 뛰어난 두뇌도 큰 이유겠지만, 주어진 상황을 적극적으로 벗어나려는 용기와 통찰력이 없었다면 그저 계산을 잘하던 흑인여성들로, 역사에 남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