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직전주최공휘강지단(司直全州崔公諱崗之壇){비석}
- 사직공 제단비(신비) -
전북 임실군 지사면 방계리
공(公)은 할아버지 연촌공(烟村公)께서 남원(南原) 부사(府使)로 계실 때 터를 잡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이곳 방계(芳溪) 옛 주암(舟巖)에서 아버지 호군공(護軍公)의 4남(四男)으로 태어나시어 금생(今生)과 인연(因緣)을 맺으셨는데,
애석(哀惜)하게도 공(公)의 생졸(生卒) 연대(年代)는 물론이고, 배위(配位), 묘소(墓所)까지도 전란(戰亂) 중(中)에 실전(失傳)되었으니, 수백(數百) 년(年) 후손(後孫)들의 서러움과 슬픔도 함께 그 포한(抱恨)을 어찌 다 말하리오.
평소(平素) 사모(思慕)할 곳이 없음을 상심(傷心)해 오던 14세손(十四世孫) 병문(秉文)은 그 포한을 계자(系子) 재열(再烈)에게 유언(遺言)하므로 마침내 제답(祭畓)을 마련하고 호군공(護軍公)의 동편에 제단(祭壇)을 세워드리니 공(公)을 향한 후손들의 사모하는 마음을 여기에 담게 되었도다.
공(公)의 제단은 원래 단기(檀紀) 4284년(四二八四年) 신묘(辛卯, 1951) 4월에 세워졌으나, 자연(自然) 재해(災害)로 훼손(毁損)되어 유지(維持)하기 어려우므로, 공(公)의 고향(故鄕)인 이곳에 다시 세워 후손들의 공경(恭敬)하는 마음과 추모(追慕)하는 뜻을 여기에 새기노라.
단기(檀紀) 4344년(四三四四年) 신묘(辛卯, 2011)
17세손(十七世孫) 선영(善英) 삼가 지음(謹撰)
후손(後孫) 일동(一同) 세움(竪)
* note.
1. 이 글은 국한문(國漢文) 혼용(混用)으로 되어 있으나, 한자를 괄호 속에 넣고, 일부 단어는 번역하였음.
2. 임의로 문단을 나누고, 뛰어 쓰기를 하였으며, 쉼표와 마침표를 추가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