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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선 열차
■ 국립 생태원과 해변 스카이워크를 걸으며 서해의 노을을 본다. 충남 장항 기차역사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국립 생태원은 서울에서 당일에 다녀오기 적당한곳이다. 장항은 지난날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제련소 사진으로 기억되지만, 장항선 열차 이름에 묘한 친밀감이 드는 곳이다. 며칠 사이에 기온이 뚝 떨어지고 집 주위의 나무들이 벌거숭이로 변해가는 모습에 또 한 해가 간다는 생각을 하게 되자 갑자기 장항선을 타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기적을 울리며 덜컹거리며 달리는 통일호 열차에 대한 향수가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 열차 안에서
가을엔 기도하고 그리운 사람이 생각나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지는 것처럼 살아가면서 가장 아쉬운 것이 만남과 속박에서 벗어나는 자유가 아닌가 싶다. 가을은 단지 계절로서 한 해를 마감하는 시간이지만 사람들은 아쉬운 마음을 이 계절에 풀고 싶어 한다.
레이먼드 카버는 그의 단편 <칸막이 객실>에서 불편한 관계로 8년 동안 만나지 않고 지내던 아들과의 재회를 위해 기차를 타고 가는 사람을 묘사했다. 소설 속에서 사내가 타고 가는 칸막이 객실은 외부와 단절된 곳이다. 그가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는 동안 아들에게 줄 선물로 준비한 시계를 누군가가 훔쳐 갔다. 그러자 사내는 그 일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아들과의 재회를 포기한다. 불편한 관계를 회복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성서에서도 그 일은 성을 차지하는 것만큼 어렵다고 표현했다. 단절은 자체로서 안락을 추구하지만 늘 가슴 한구석에 기다림으로 남는다. 그래서 단절이 일상화되면 사소한 일에도 자신을 합리화하려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아내와 함께 느릿하게 달리는 열차 창밖으로 본 늦가을 풍경이 조금은 쓸쓸해 보였다. 열차가 평택 천안을 지나자 분주하게 타고 내리던 승객도 뜸해지고 열차 안이 조금 한가해졌다. 홍성역에서 내 나이쯤 되어 보이는 세 분이 차에 올라왔다. 마침 옆자리에 두 자리가 비어 있었기에 두 분이 먼저 앉고 나머지 한 분은 그 옆에 엉거주춤 선다. 그러자 자리에 앉은 분이 서 있는 분을 향해 "아 거기 빈자리 아무 데나 가서 앉아" 그러자 서 있는 분이 " 괜찮아 까짓 두 정거장인데"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그분들은 광천역에서 모두 내렸다.
다시 열차 안이 조용해지고 나는 조금 전 그분들의 대화가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에 남아 지워지지 않았다. 인생이 두 정거장 남았다면 내게는 그 시간이 기다림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다리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서성거리는 걸음이 설령 분주해다 하여도 기다림의 구속에서 풀어주는 것은 아니다. 인생이 두 정거장 남았다 해도 목적지만 생각하고 서성거리기보다는 자리에 앉아 창밖을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싶다.
- 생태공원 이곳 시설이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규모가 크다. 어쩌면 홍보가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서울에서 이곳까지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는 무언가 아쉬운 점이 있고 이 좋은 시설을 더 많은 사람이 활용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 넓은 갈대숲 과 생태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고 대형건물 안에 각종 동, 식물관, 쇼핑점과 쾌적한 휴게시설이 있다. 가족과 함께 다녀오면 자녀들의 생태 학습에 큰 도움이 되고 하루쯤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기에, 충분한 공간이다. -장항 스카이워크 스카이워크는 장항 제련소 굴뚝이 보이는 곳으로부터 길게 조성된 송림 해안가에 약 200미터쯤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 올라서 내려다보이는 서해의 해변이 아름답다. 늦가을 풍경은 조금 쓸쓸해 보였지만 잔잔한 물결위로 반짝이는 오후의 햇살이 아름답고, 멀리 장항 제련소의 굴뚝이 보이고 몇 척의 고깃배가 항구로 돌아오는 모습이 정겹다. 장항은 이제 지난날의 제련소와 인근에 있는 광천의 토굴 새우젓으로 호황을 누리던 시절은 지나갔다. 몇 년 전 군산 공업단지 조성과 함께 새로운 공업단지를 이곳에 세우려던 계획도 물거품이 되어버렸고. 이제는 자력으로 갱생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오히려 오랜 세월 제련소 공해로 인한 피해가 매스컴을 통해 보도되는 바람에 이미지만 더 나빠졌다. 택시를 타자 기사분이 이곳에 공업단지가 취소되는 바람에 부동산 투기자들이 큰 어려움을 당했다는 이야기부터 꺼냈다. 정부에서는 이곳 사람들의 실망을 위로하기 위해 그나마 대형 생태관을 만들어주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장항선 열차는 약 80년(1931년 개통)의 긴 역사를 지니고 한때 온양온천을 가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했으며 2008년에는 전북 익산까지 연결되어 호남선과 연계된다. 그동안 장항선 직선화 공사로 간이역 14개가 폐역 되었고, 수원에서 장항까지 약 두 시간 반이 소요된다. 충남 예절의 도시 온양온천, 예산, 홍성, 광천, 대천 등 이름만 들어도 정감이 드는 역들이 모두 이 노선에 연결되어 있다. 답답한 도시 생활의 일상에 빠진 사람들에게 힐링 장소로 장항은 새롭게 떠오르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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