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일기 15 – 벌레 이야기
시골 가면 벌레 조심해야 된다는 글을 인터넷에서 본 일이 있다.
정말로 시골로 이사한 후 첫 번째 방문객이 벌레였다. 도배를 깨끗이 하고 들어왔는데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방구석에서 나오는지 밖에서 들어오는지 알 수 없다.
다행히 여러 종류의 벌레가 아니고 한 가지 벌레가 계속 나온다. 생전 처음 보는 벌레다. 길이는 손톱 끝마디 만하고, 다리는 너무 작아서 잘 안 보이지만 여러 개가 달린 것 같다. 작은 지네 같기도 하다. 빠르지는 앉지만 집어 버릴 것을 찾기 위해 돌아섰다가 다시 가 보면 어느새 사라져버리기도 한다. 느리지만 빠른놈이다.
처음에는 휴지로 집어내다가 징그러워서 ‘어디 한 번’ 하고 배큠을 들이댔더니 단숨에 빨려 들어간다. 이 배큠은 두어 달 전에 쿠팡에 주문해서 산 것이다. 10년 동안 사무실 바닥을 물걸레로 청소하다가 무슨 생각에 배큠을 사게 되었는지, 지금 배큠이 없었다면 저 작고 징그러운 벌레를 어떻게 일일이 손으로 집어낼까 싶다.
‘벌레 같은 놈’이라는 욕이 있다.
인간은 왜 벌레를 싫어하게 되었을까. 인간과 가장 가까운 벌레는 이(louse)와 벼룩과 빈대, 그리고 모기일 것이다. 이, 벼룩, 빈대는 요즘 아이들은 구경초차 한 일이 없겠지만 6.25 때 소년기를 보낸 사람들은 양지바른 툇마루에서 옷을 뒤집어 이 잡던 기억을 잊지 못할 것이다.
이와 벼룩은 옷 솔기 속에 살면서 사람의 피를 빨아 먹고, 빈대는 집 구석진 틈새에 숨어 있다가 기어나와 자는 사람 피를 빨아 먹는다. 모기는 지금도 도시, 시골 할 것 없이 극성이지만 모기약 종류도 많아지고, 방충망과 모기장 시설이 잘되어서 도시에서는 별 어려움 없이 살게 되었다. 그러나 시골에 온 후 밖에서 삽질하는 대낮에도 여기저기 물어뜯어서 날마다 연고를 바르고 있다.
인간과 가장 멀리 사는 벌레는 뱀일 것이다. 뱀은 벌레는 아니지만 인간 편에서는 가장 징그러운 벌레처럼 여긴다.
사람이 입고 사는 옷 솔기 속에 살면서 피를 빨아 먹는 이와 벼룩, 벽 틈 사이에 숨어 있다가 잠자는 사람 피를 빨아 먹는 빈대, 풀숲에 숨어 있다가 지나가는 개구리와 쥐를 통째 삼켜버리는 뱀, 이들 모두의 행태는 몰래 피를 빨아먹는 다는 것이다. 여기서 ‘벌레 같은 놈’이라는 욕이 나오게 된 것이 아닐까.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를 알게 된 후 드라마를 보지 않게 되었다. 시골로 이사하자 농촌방송이 많이 나온다. 나는 더욱 더 도시 소식은 아예 절연하다시피하고 농촌 이야기만 보게 되었다. 도시 소식은 첫마디부터 도둑질, 한 탕 해 먹은 이야기들뿐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도시 TV 뉴스를 <도둑 전문 방송>이라고 부르고 있다. 내가 갑작스럽게 귀촌하게 된 속 깊은 이유가 바로 현대 도시의 도둑질과 한 탕 해먹는 소식으로부터 눈과 귀를 막고 싶어서 라고 할 수 있다.
농촌 이야기는 모두가 먹고사는 일의 기본인 농산물 이야기와 그것들을 길러내는 사람들 이야기 뿐이다. 그중에 놀라운 이야기가 식용 벌레 이야기이다. 어떤 농부는 식용 벌레로 억대 수입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그 사람 앞에서 ‘벌레 같은 놈’이라는 욕을 했다가는 뺨 맞는 건 고사하고 천하에 무식한 놈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한 만물 가운데서 아직도 인간이 가장 알지 못하는 것이 벌레들 세상일 것이다. 벌레농사 짓는 농부는 자신 있게 말하고 있었다.
"벌레는 인류의 미래 식량입니다."
우리집은 미래 식량 밭 위에 있는 집이라고 할 수 있다. 매일 미래 식량이 내 방 안으로 기어들어온다. 가만히 있어도 돈이 기어들어오는 곳이 농촌인가보다.
‘벌레 같은 놈’이라는 욕이 사라지게 된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다. 오래 살다보니 이런 밝은 세상도 오는구나!
‘개 같은 놈’이라는 욕도 사라지는 세상이 와야 할 텐데, 도시에는 유명 개들이 너무 많이 날뛰고 있다.(이관희)
우리집 방 안으로 들어 오는 미래 식량?이다.
인터넷에서 약을 찾아서 뿌리고, 단열 공간에 난 틈새를 세멘으로 막았더니 훨씬 덜하다.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놈은 며칠 후 구석진 자리에서 동그랗게 말려 죽어있곤 한다.
아마 적당한 습기가 있어야 살 수 있는 벌레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