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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정명론(1)
大哉人之道也定君臣文子之名正上下尊卑之分名分昭著而不可紊也如天尊地卑而不可易也豈不重哉夫天之生物也飛禽走獸昆蟲草木至於夷狄莫不容於天地之間而人之所以獨得其最靈者豈非以其有名分而然歟有是名分而不敢不正者也其可紊之乎唐虞之風動夏商之文明莫不存此名而然也降及春秋彝倫攸斁蒯聵者南子之子也而欲害之衛輒者蒯聵之子也而以拒之是可謂正父子之名者乎豈所謂無父者歟我不敢知不仁而得國者有之無父而治國者亦有之乎我亦不知昔者明王以孝治天下今也蒯聵亦以孝治之乎父子名分之紊莫甚於此矣其從仕於衛者肯可以若越人視秦人之肥瘠而不之正乎此夫子之所以深致意焉耳且夫子嘗自言曰君君臣臣父父子子其意以爲誠以君不君臣不臣父不父子不子一亂名分而害至於民無所措手足則雖有粟吾得以食諸以此而觀夫子之意則其欲正名於衛者豈不欲使衛君知父父之意也哉然則當如何吾以爲昔太甲顚覆湯之典刑伊尹放之於桐太甲賢又反之孟子亦以夫子之道而乃曰君有大過則諫反覆之而不聽則易位然則賢者之爲人臣也其君不賢則固可放也固可易也況以不當立之君立之而拒其父則爲人臣者可不正之乎使夫子爲政於衛則必也明無父之罪上告天子下告方伯易置其位以懲其罪父子之名於是乎正矣三綱五常之倫於是乎定矣遂使言順事成而禮樂大興此豈非夫子之意也聖人復起不易吾言矣其不知夫子之意者乃曰當夫子欲正名之時蒯輒之立十二年矣久則難變也夫子之欲正無乃迂乎是不知聖人者也是不知爲政之道者也夫爲政之道其身正不令而行其身不正雖令不從其於身之不正而民且不從況於紊父子之名分而不正則其孰從之其名旣不正則雖以堯之欽明舜之濬哲文王之不遑暇食未如之何矣況衛之君乎此名分之不可不正也君子之事君也合則留不合則去是故夫子以正名之事行於衛而吾事不行則固當去矣豈可以從君之欲不正其名而北面無父之君哉嗚呼春秋之時名分旣毀無一國一人之能守者甚可痛哉以天王之尊下賵諸侯之妾尊卑之名分顧安在哉州吁從仕於衛而弑其衛君崔子食祿於齊而弑其齊君君臣之分又安在哉嗣隱公者桓也弑隱公者亦桓也嗣悼公者止也弑悼公者亦止也則君臣父子之名分掃地如也宜夫子沐浴而請討以正名爲先也嗟乎使當時得位之臣其事君每如此則豈不堯舜其君乎夫子空言無施雖切何補賴其言而至今萬世之後知君臣父子之名分不可犯如天尊地卑之不可易也豈無所補哉苟無正名之一語則吾恐人人將淪入於飛禽走獸昆蟲草木夷狄之類而不自知矣嗚呼惜哉
위대하도다!
사람으로서 도라는 것은!
임금과 신하를 글자로서 이름 지어 구분함으로 인하여, 상하와 존비의 구분이 바르게 되고, 그리하여 명분이 분명하고 뚜렷하게 들어나 어지럽지 않게 되는 것이다.
하늘은 존귀하고 땅은 비천하다는 진리(2)는 바꿀 수 없는 것이니 어찌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으리오.
무릇 하늘이 만들어 낸 것들 중에서 날아다니는 새와, 기어 다니는 짐승과, 곤충, 나무나 풀은 물론 심지어 오랑캐에 이르기까지 하늘과 땅 사이에서 용납되지 않는 것이 없지만, 오직 사람만이 홀로 가장 영장한 능력을 갖춘 까닭이 어찌 명분이 있음으로 인하여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명분이 있으므로 인하여 감히 올바르지 않게 되지 못하도록 할 수 있는 것이니 어찌 그것을 훼손시킬 수 있으리오.
우리가 요순시대 풍속에 감화되고, 하나라와 상나라를 문명하다고 보는 이유는 명분이 뚜렷하였기 때문에 그리하는 것이다.
춘추시대로 내려오면서 지켜져야 할 인륜의 도가 사라지고 문란해졌다.
위나라 영공의 태자 괴외는 남자의 아들이면서도 어머니(남자)를 해치려고 하다가 탄로가 나서 외국으로 도망쳤고,
위나라 출공 첩은 괴외의 아들이지만 출공이 왕위에 오른 다음에도 아버지 괴외는 여전히 나라 밖을 떠돌아다니면서 위나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가,
대부 공회와 더불어 반란을 모의하여 출공을 습격하므로, 출공은 노나라로 도망치고 괴외가 임금이 되었으니 그가 바로 장공이다.
이런 상황을 두고 과연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명분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어찌 아버지 없는 자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감히 알아듣지 못하겠거니와 어질지 못한 사람이 임금이 되는 경우는 있다고 할지라도, 아버지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이 또 어찌 있을 수 있는 일인지 나는 알아듣지 못하겠다.
옛날부터 밝은 임금은 효도로서 천하를 다스린다고 하였는데, 지금 괴외가 한 짓거리가 과연 효도로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명분이 흐트러져 버린 것이 이와 같이 막심한데도 당시 위나라에서 벼슬한 사람들을 이 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떼어놓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 사람들 또한 올바르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공자의 제자 자로와 고시가 위나라에서 벼슬을 하고 있었는데, 위나라에서 권력을 둘러싼 골육상쟁이 벌어졌다는 말을 듣고 공자께서는 고시는 돌아오겠지만 자로는 죽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며 크게 탄식했는데 이는 깊은 뜻을 가지고 하신 말씀이다. 또 공자님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아들은 그 뜻을 바르게 하여,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고, 아버지가 아버지답지 못하고, 아들이 아들답지 못하면, 한 번 흐트러진 명분은 그 피해가 백성들에게까지 미치게 되어 손을 쓸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되면 아무리 식량이 풍족하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어떻게 잘 먹고 잘 살 수 있겠는가?(3)
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본다면 공자님이 말씀하신 뜻은 위나라 사람들에게 올바른 명분을 가지도록 만들려고 하신 말씀인 것이다.
어찌 위나라 임금으로 하여금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와 자식 사이의 명분을 알게 하고자 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마땅할 것인가?
우리가 알고 있기로 옛날에 태갑이 왕위에 올라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탕왕이 만들어 놓은 좋은 제도를 모두 없애버렸기 때문에, 이윤이 태갑을 동 땅으로 내쫓아 버렸는데, 태갑이 크게 반성하고 어진 사람이 되어서 다시 돌아와 태종이 되었다.
맹자께서도 공자님의 도를 가지고 말씀하시기를;
임금이 큰 잘못을 저지르면 간언을 해야 한다.
반복하여 간언하여도 들어주지 않으면 임금 자리에서 몰아내야 한다.(4)
라고 하셨으니, 그렇다면 신하로 있는 어진 사람이 그 임금이 어질지 못하면 쫓아내어 버릴 수도 있다는 뜻이므로 폭군이 폭정을 하면 신하들이 임금을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하물며 부당하게 세워 진 임금이 그 아버지를 몰라보고 거부하는데도 신하 된 자로서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공자님으로 하여금 위나라를 다스리도록 했다면 틀림없이 그 아버지가 죄가 없음을 밝혀서, 위로는 천자에게 아뢰고 아래로는 지방의 방백들에게 알려서 임금 자리를 바꾸고, 그 죄를 응징하여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명분을 분명하게 바로잡았을 것이다. 삼강과 오상의 윤리가 바로 서도록 하였을 것이다.
언어가 순리를 따르면 정사가 올바로 이루어지고, 예법과 음악이 크게 흥성해 진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공자님의 뜻이 아니겠는가?
성인께서 다시 나타나신다고 하더라도 나의 이 말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공자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공자님께서 명분을 바로 잡으려고 하셨다고 하더라도 괴첩(출공)을 왕으로 세운지 벌써 12년이나 지난 시점이기 때문에 오래 된 것은 바뀌기는 어려운 법이니, 공자님께서 바로잡고자 하시면서도 곳 바로 실행하지 아니하고 에둘러 피하신 것이 아니겠는가?
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성인이란 어떠한 사람인지 몰라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고 정치의 올바른 길이 어떤 것인지 몰라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무릇 정치의 올바른 길이란 먼저 그 몸을 바르게 하면 명령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올바른 법이 행하여지는 것이며,
그 몸을 바르게 하지 않으면 비록 명령을 한다고 하더라도 법을 따르지 않게 되는 것이니,
그 몸을 바르게 하지 않는다면 백성들 또한 따르지 않을 것인데,
하물며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명분이 흐트러질 정도로 올바르지 못하다면 누가 그의 명령을 따르겠는가?
그 명분이 이미 올바르지 못하다면, 비록 요임금처럼 누구나 흠모할만한 밝음이 있으며, 순임금처럼 뛰어난 지혜가 있으며, 문왕처럼 밥 먹을 겨를마저 없을 정도로 열심히 뛰어다니며 노력하는 정성이 있다고 할지라도 해결되지 않을 것인데 어찌하겠는가?
성인들마저도 그러할진대 하물며 위나라 왕이겠는가?
이와 같이 명분은 어쩔 수 없이 바르게 해야만 하는 것이고, 군자가 임금을 섬기는 방법이므로, 그에 합당하면 벼슬에 머물러 있고 합당하지 않다면 벼슬을 버리고 떠나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위나라에서 바른 명분을 찾으려고 하신 것처럼 우리는 그 일을 실행할 수 없다면 마땅히 벼슬을 버리고 떠나야 할 터인데, 어찌 임금을 따르고자 하면서 명분을 바로하지도 못한 채로 아비도 몰라보는 어리석은 사람을 임금이라고 받들 수 있겠는가?
오호라! 춘추시대에 명분은 이미 훼손되어 한 나라, 한 사람도 능히 지켜내지 못하였으니 매우 가슴 아픈 일이다.
하늘같이 높으신 임금께서 아래로 제후의 첩에게까지 선물을 내리는 것을 두고 존비의 명분이 자리 잡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위나라의 신하 주우는 위나라 임금 환공을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으며, 최저는 제나라에서 녹을 먹으면서도 제나라 임금 장공을 죽였으니(5), 임금과 신하 사이의 명분이 안정되어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은공이 대를 잇도록 한 것은 환공이고 은공을 죽인 사람도 역시 환공이다.
도공이 대를 잇도록 한 것은 지이고 도공을 죽인 사람도 역시 지이다.
즉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아들의 명분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실태가 이와 같다.
진항이 간공을 죽이니 공자께서 목욕재계하고 애공에게 고하여 말씀하시기를 진항이 그 임금을 죽였으니 청컨대 토벌하십시오. 라고 하셨으니 공자께서는 올바른 명분을 가장 우선으로 하신 것이다.
슬프다! 당시 벼슬에 올라 신하 노릇 한 사람들로 하여금 그 임금 섬김이 언제나 이와 같도록 한다면 어찌 요순 같은 성군이 아닐 수 있겠는가?
공자는 빈말만 하시고 실행함이 없었으니 비록 간절하기는 하였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무슨 보탬이 있었겠는가?
하지만 그 말씀으로 인하여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에도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아들의 명분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윗사람을 존중하고 아랫사람을 천시하는 질서는 바뀌지 않게 되었으니, 어찌 도움이 되는 곳이 없다고 하겠는가?
참으로 바른 명분을 위한 한 마디 말이 없었다면 우리가 두려워했던 것처럼 사람들이 장차 날아다니는 새나, 기어 다니는 짐승이나, 곤충, 초목, 오랑캐 등과 같은 영장하지 못한 사물의 한 종류로 빠져들게 되는 것을 스스로 깨달지 못하게 되고 말았을 터이니, 아! 안타까운 일이로다.
* 각주 ----------------------------
(1) 正名論. 정명이란 명분에 상응하도록 실질을 바르게 함을 말한다. 이를테면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아들에게는 그에 어울리는 윤리와 질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2) 『예기』의 “하늘은 높고 땅은 낮기 때문에 군신 간의 질서가 정해지고, 높고 낮은 것이 벌여 서기 때문에 귀천의 자리가 잡히고. 음과 양의 움직이고 고요함의 상도가 있어서 작고 큰 것을 달라지고, 방향에 따라서 모이는 부류가 달라지고, 물건을 무리로써 나누어지는 것은 성명이 같지 않은 때문이다.(天尊地卑君臣定矣卑高已陳貴賤位矣動靜有常小大殊矣方以類聚物以羣分則性命不同矣)”를 인용한 것이다.
(3) 『논어』<안연>의 “제나라 경공이 정사에 관하여 공자에게 물으니 공자가 대답하기를 ‘임금은 임금다우며, 아비는 아비다우며, 자식은 자식답게, 그 구실을 다하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공이 말하기를 ‘옳은 말씀입니다. 진실로 임금이 임금노릇 못하고, 신하가 신하노릇 못하며, 아비가 아비노릇 못하고, 자식이 자식노릇 못한다면, 비록 곡식이 많이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어떻게 먹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齊景公問政於孔子孔子對曰君君臣臣父父子子公曰善哉信如君不君臣不臣父不父子不子雖有粟吾得而食諸)”를 인용한 것이다.
(4) 『맹자』<만장하>의 “제나라 선왕이 경에 관해서 묻자, 맹자께서 ‘임금님께서는 어떤 경에 관하여 물으시는 것입니까?’하고 되물었다. 제선왕이 다시 ‘경에도 종류가 있습니까?’하고 묻자, 맹자가 ‘종류가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맹자가 말하기를‘경에는 임금의 친척인 경이 있고, 또 임금과는 성씨가 다른 경이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제선왕이 ‘임금의 친척인 경에 관하여 묻습니다.’라고 말하자 대답하기를 ‘임금에게 큰 과오가 있으면 간언을 합니다. 그러나 반복하여 간언하여도 들어주지 않으면 임금을 몰아내어버립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임금은 발끈하여 얼굴빛이 변했다. 맹자께서 말씀히시기를 ‘임금께서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임금님께서 물으시는데 신이 감히 바른대로 대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씀하시자 임금의 얼굴빛이 가라앉았다. 그러고는 ‘성씨가 다른 경에 관하여 묻겠습니다.’라고 청하였다.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임금이 과오가 있으면 간언하고, 반복하여 간언하는데도 들어주지 않으면 벼슬을 버리고 떠나버립니다.’라고 말씀하셨다.(齊宣王問卿孟子曰王何卿之問也王曰卿不同乎曰不同有貴戚之卿有異姓之卿王曰請問貴戚之卿曰君有大過則諫反覆之而不聽則易位王勃然變乎色曰王勿異也王問臣臣不敢不以正對王色定然後請問異姓之卿曰君有過則諫反覆之而不聽則去)”를 인용한 것이다.
(5) 최저(崔杼)는 춘추시대 제나라(齊)의 실권자로, 자신이 세운 임금 장공(莊公)이 자신의 아내와 사통하였으므로 죽이고, 경공(景公)을 임금으로 세워 전권을 휘둘렀지만 집안의 불화로 인하여 멸문 당했다. 중국 최씨는 산동성 최읍(崔邑)에서 시작되어 성을 최씨로 했는데, 춘추전국시대 강대국이었던 제나라의 핵심세력이었고, 중국 북방 호족의 우두머리로 평가되었다. 당나라 때 최씨는 특히 청하최씨(淸河崔氏)와 박릉최씨(博陵崔氏)가 유명하였는데 재상만 28명을 배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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