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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석개재-면산-구랄산-토산령-고비덕재-통리역(1일)
천의봉(매봉산)-피재-작은피재-서미촌재-유령산-우보산-통리역(2일) *참가자 : 이재근, 이인식, 옥영동, 윤재희(4명) *산행일 : 2007. 6. 22~24 마지막 구간 완주를 위해 금요일 저녁에 출발하다. 낙동정맥 종주의 마침표를 찍는 마지막 일정으로 평소보다 하루 앞당겨 숙등역을 출발한다. 일행은 애용하던 7번 국도를 버리고 신대구고속국도와 중앙고속국도를 거쳐 영주-봉화 노선을 이용하기로 하였다. 18:30 숙등역을 출발하여 봉화군 현동삼거리를 경유하여 명산랜드에 도착한 시각은 11:00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고선계곡에 자리한 명산랜드는 휴양지로서 맑은 계곡과 수려한 경관이 지나는 길손을 붙들어두기에 충분하였다. 숙소를 정하고 호프에 소주를 곁들여 목을 축이고 자리에 누웠다. 심마니산당을 거슬러 올라 면산을 바라보며 북으로 04:30 기상하여 지난번 종주를 일시 거두었던 석개재로 향하는 길은 넛재와 청옥산 휴양림을 거쳐 구불구불한 산길을 넘어야 했다. 이윽고 석포면을 지나 삼척과 봉화를 잇는 해발 900고지인 석개재에 이른다. 06:00 차량을 주차시키고 산행 채비를 한 후 숲속으로 숨어들어간다. 시멘트 블록으로 지어진 심마니산당을 지나 급경사를 오른다. 거침없이 오르던 길은 정수리에서 멈추니 바로 1009.3봉이다. 봉우리를 넘자마자 산죽길이 이어지고 이내 낙엽송 군락으로 연결된다. 멀리 면산(두리봉)이 보인다. 완만하면서도 아침 공기 맑은 숲은 상쾌함을 더해준다. 장마전선이 형성되어 오늘은 장맛비 예보 속에 일행은 산행을 강행한다. 날씨가 맑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다행히도 현재까지는 맑은 날씨가 이어지고 동녘 하늘은 맑아온다. 벌써 봉우리를 6개나 통과한다. 갑자기 커다란 바위 절벽이 앞을 가로막는다. 절벽 왼편을 감싸고돌아 오르니 돌 능선이 이어진다. 능선 마루를 사뿐사뿐 걸어간다. 산죽이 빼곡하게 자라 있고 풀도 무성하게 자라 헤쳐 나가기가 힘들다. 그나마 다행스런 것은 나뭇잎에 맺힌 물기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뒤에서 잡목과 산죽들을 헤집어 나오느라고 고문님은 고생이 많다. 산죽이 광장을 이뤄 놓은 것 같다. 08:00 가파른 경사를 올라서니 면산(1245.2m)이다. 두리봉이라고도 한다. 강원도와 경상북도 경계를 이루는 면산(綿山)은 부드러운 이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산봉에 지나지 않는다. 발품을 벌어 올라온 길이 아까우리만치 계속 내려간다. 언제나 그렇듯 오르면 다시 내려가고 또 올라선다. 면산 오르막과 내리막에는 산죽들로 넘쳐나고 있다. 주변에 자란 참나무들은 밑둥이 무척이나 굵고 높은 가지마다 겨우살이가 오밀조밀 자라고 있다. 심신계곡 위를 잇는 마루금은 낭떠러지를 형성하고 오른편 심신계곡은 가곡 자연휴양림이 위치한 곳이다. 내리막에는 작은 돌이 많고 경사가 심해 천천히 내려간다. 마루금의 오른편은 급경사 낭떠러지의 연속이다. 그나마 숲이 우거져 현기증이 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08:50 아침 식사를 한다. 이제 구랄산으로 향하는 능선을 오르고 내린다. 제법 큰 소나무가 자란 봉우리를 넘어 내리막을 지나 안부에 이르고 다시 숨 가쁜 오르막을 반복한다. 09:18 구랄산(1071.6m) 정상을 통과한다. 구랄산 정상 부위에는 아름드리 단풍나무가 자라고 있어 흡사 설악권의 점봉산 단목령 일대처럼 느껴진다. 토산령으로 가는 길에는 아름드리 고목들이 즐비하다. 09:33 토산령 안부에 이르고 능선은 서서히 고도를 높여간다. 힘들이지 않고 1085봉을 지나니 토산령 정상이라는 이정표가 설치되고 휴양림에서 잘 정비를 해 둔 길을 만난다. 덕분에 우리는 백병산 갈림길까지 이어지는 어깨를 건드리는 나뭇가지가 없는 길을 간다. 대여섯 개의 봉우리를 넘고 내려 참나무와 산죽들이 뒤섞여 자란 잡목지대를 지난다. 한참동안 이어지던 길은 휴양림으로 가는 좋은 길을 버린 채, 백병산으로 가는 길은 다시 산죽과 잡목이 무성히 자란 비탈을 헤쳐 간다. 넓은 임도 흔적이 역력한 능선을 이어간다. 능선을 연결하는 임도에는 예전에 철탑을 설치하려고 낸 길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오엽송을 심어두어 제멋대로 자란 싸리나무와 함께 숲을 형성해가고 있다. 11:13 임도가 끝나는 곳에 86번 송전탑이 버티고 있다. 지나는 길의 좌우로 송전탑은 연결되어 있다. 12:30 식생이 잘 보존된 백병산 갈림길에 도착하니 길은 오른편으로 방향을 돌린다. 하얀 병풍을 둘러쳐 놓은 백병산을 살짝 비켜 돌아가다. 정상까지는 300미터라고 되어 있고 주변에는 갖가지 풀과 나무들이 잘 자라고 있다. 백병산(1259.3m)은 낙동정맥에서 약간 비켜나 있지만 최고봉으로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하얀 병풍을 둘러놓은 듯하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백병산(白屛山)은 병풍바위가 정상에 자리하고 있으며 가뭄이 들면 이 바위가 하얗게 변한다고 한다. 우거진 나무 때문일까? 단풍나무가 많은 이곳은 아름다운 가을 풍경을 연상하게 할 뿐 별다른 조망이 없는 백병산을 뒤로 하고 다시 내리막을 따라간다. 밧줄이 설치되고 나무계단과 돌계단이 섞인 내리막을 지나 12:40 고비덕재에 이른다. 고비가 많이 자생하며 능선 위의 평탄한 지역을 의미하는 “덕”이 합해져 고비덕재가 되었다는 이 고개는 동해의 수산물과 소금 등이 이 길을 통해 황지로 전해졌다고 한다. 직진을 하던 길은 왼편으로 방향을 돌리면서 면안등재에 이른다. 싸리나무가 많이 자란 지역을 지나 능선 분기점을 지나니 급경사 내리막이 이어진다. 산죽이 넓게 분포되어 있는 흑찌이밭재를 지나 마지막 갈림길(길주의 표시)에서 오른편으로 돌아선다. 1090봉을 힘차게 올라 이제는 내리막길만 남은 셈이다. 성터 흔적이 있다는 지역을 언제 지나쳤는지 알 수 없다. 비가 온다던 날씨는 자취를 감추고 산행 내내 휴대전화가 잘 통하는 지역이다. 왼편에 태백시가 인접한 관계로 통화 상태도 아주 좋다. 마사와 작은 돌로 이뤄진 길은 가만히 버티고 서 있으려 해도 미끄러져 어느새 산 밑에 와 있다. 내리막 아래로 통리역이 한 눈에 들어온다. 움막이 보이면서 암자 규모에도 미치지 못하는 태현사를 통과하여 낚시점을 지나니 통리이다. 철길을 횡단하여 15:00 통리역에 이르면서 오늘의 산행을 접는다. 택시를 타고 석개재로 옮긴 다음 황지로 가는 길목에 있는 구문소에 들렸다. 황지 연못 인근에 숙소를 정하고 예전 숭악이 들른 바 있는 한우 불고기집에서 저녁식사를 하였다. 밤부터 내리는 장맛비는 그칠 줄 모르고 05:00 알람에 맞춰 기상을 하니 밖에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하는 수 없이 비옷으로 완전무장을 하고 차량에 탑승한다. 너무나 이른 아침이라 주유소마다 불이 꺼져 있다. 변두리까지 내려가서 연료를 보충하고 통리역으로 향한다. 그런데 길을 찾지 못하여 헤매다가 하는 수 없이 피재에 주차를 하고 역방향으로 산행을 하기로 하였다. 백두대간 산행을 할 때 천의봉에서 피재까지 걸었던 길이라 일행은 피재에서 도로를 따라 작은 피재에 주차를 한다. 굵은 빗줄기에 맞서 통리로 향하는 산길로 접어든다. 작은 피재에서 시작되는 길은 임도와 나란하게 이어진다. 낙동정맥은 천의봉에서 몰운대까지이다. 매봉은 하늘에서 내려다 본 형상이 매가 날개를 편 모양이고, 매의 부리는 황지의 어느 작은 연못을 향하고 있단다. 삼수령은 피재에 세워져 있으나 빗물의 운명은 천의봉인 셈이다. 천의봉에서 한강, 낙동강, 오십천으로 갈라진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남하하는 정맥 서편에는 목초지가 형성되어 있고 그 밑에는 구와우라는 지명이 있다. 구와우는 9개의 봉우리가 마치 아홉 마리의 소가 앉아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차게 퍼붓는 빗줄기를 맞으며 백두대간 마지막 날에 비를 맞더니 오늘도 어김없이 정맥 마지막 날에 또 다시 빗속을 걸어간다. 06:40 작은 피재를 출발한 일행은 임도를 뒤로하고 서서히 경사도를 높이더니 이윽고 대박등(930.8m)에 이른다. 진달래나무는 무성히 자라 지나는 사람의 걸음을 더디게 하고 빗속에 주의할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다. 대박등을 지난 지 15분 쯤 후에 118번 송전탑과 마주한다. 봉우리 몇 개를 넘더니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서니 08:00 고개를 관통하는 도로가 개설된 지역에 이른다. “국유림사용허가구역”임을 알리는 표시목이 서 있는 예낭골 임도로서 왼쪽 아래 도계쪽 쥐치리의 지명에서 따온 듯 이 고갯마루를 서미촌재 또는 쥐치라고 부른다. 도로를 개설중인지 넓은 길이 고개를 관통하고 있으며 마치 광산처럼 보이는 도로변에는 콘테이너 가건물과 채석용 중장비가 몇 대 있을 뿐이다. 주인도 없는 빈 건물에서 비를 피해 아침을 먹다. 한없이 내리는 비를 피해 아침을 해결해야하겠기에 무작정 아무도 없는 빈 건물의 문을 열고 들어가서 쭈그려 앉아 아침을 먹는다. 식사 후 채석장을 관통하여 돌무더기 위를 조심스럽게 건너 922봉을 향해 오른다. 칼날 같은 능선은 비를 더하니 미끄럽기만 하다. 성큼 자라버린 나뭇가지는 얼굴 부위를 공격해온다. 돌 능선이 이어지는 이곳은 성터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내리막에 다시 119번 송전탑이 있고 멀리 열차의 기적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통리역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10분 후에 측량용 폴대가 철사에 묶여있는 유령산(932.4m)에 이른다. 날씨가 맑다면 지도상에 보이는 남쪽 연화산(蓮花山)이 이름처럼 연꽃이 활짝 피어있는 모습을 보여줄 텐데 아쉽다. 유령산 이후 길은 가파르게 떨어지기 시작한다. 10분 가량 미끄러지며 내려서니 전봇대가 있는 넓은 임도가 나타난다. 이곳이 느릅령인 셈이다. 느릅령은 도계와 황지를 연결하는 옛 고갯길이건만 아직도 그 명맥을 유지하는 듯 시멘트 포장이 되어있는 상태다. 고갯마루엔 단청을 입힌 "유령산령당(楡嶺山靈堂)"이 자리하고 있고 그 옆으로 <유령제(楡嶺祭)유래문>을 적은 표석이 있다. 느릅령은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예전에 느릅나무가 많아 붙여진 지명으로 추측된다. 유령제유래문을 통해 이해를 해보면, 느릅령은 신라 임금이 태백산 천제를 올리기 위해 소를 몰고 넘던 고개이며 조선시대에는 태백산을 향해 망제를 올리던 곳으로 우보산(牛甫山)이라고도 했다. 먼 옛날 차도와 철도가 생기기 전 이 고갯길은 영동과 영서를 잇는 교통 요충지로 험하고 높기에 맹호의 피해가 심하여 고개 밑에서 10명씩 모여서 넘곤 했다. 그 후 주민들이 산당을 짓고 영로(嶺路)의 무사 안행과 주민의 평안과 풍년농사를 기원하게 된 것이 천년이 넘는다. 중간에는 관청에서 보조봉제하다가 임진왜란 등 난세에는 중단하므로 산당이 무너지는 등 피해가 극심하던 때 황지에 살고 있던 효자가 소달장(所達場)에 부친제사 장보러 갔다가 그날따라 늦어서 모군(募群)에 합류하지 못하고 혼자 산을 넘다가 호랑이인 산령에게 홀려서 죽게 될 지경에 이르자 아버지 제사봉행으로 살려달라고 애원하니 산령 왈 효성이 지극하니 나의 청을 들어주면 살려주겠노라고 하여 “황소를 잡아 여기에 제사를 올려주면 무사하리라” 하기에 약속하고 귀가하여 부친 제사 후 황우를 제물로 음 4월 16일에 제사를 올리게 된 후부터는 태백과 삼척 주민들이 산당을 복원하고 매년 이날 황우를 제물로 무사태평과 소망을 기원 봉제사하게 된 것도 우금(于今) 수 백 년이다. 유령산과 우보산을 넘으니 낙동의 끝이 보인다. 맞은 편 무성한 수풀 사이로 매달린 깃을 따라 오르니 산딸기가 지천으로 널려있다. 비에 젖은 딸기를 따먹으니 새콤새콤하다. 맑은 날씨라면 달콤한 맛이 날 텐데. 급사면을 따라 한참을 다시 올라야 하는 봉우리가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인 우보산(牛甫山)이다. 오늘 구간에서 가장 가파르게 이어지는 급사면으로 비와 땀으로 젖은 몸은 보폭이 더디어진다. 커다란 바위를 돌아 오르는 길에선 정면으로 바위벽을 직등해 보기도 한다. 이윽고 급사면을 기어오르게 되니 완만한 능선길이 시작되고 초입으로 오래된 묘비와 망가진 수호석이 평화롭게 보인다. 무덤을 지나쳐 완만한 능선을 따라가면서 정상을 지나치고 갈림길 안부에서 왼편 내리막으로 정맥은 이어진다. 다정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는 부부를 만나 대화를 나누어보니 우리와 같은 시기에 시작한 낙동정맥길을 오늘 피재에서 마무리한다고 한다. 더욱 반가운 것은 동향인 부산 사람이다. 나중에 택시기사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경찰공무원이고 우리가 이용한 차량들을 이용하면서 주차해 둔 차량번호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급하게 떨어지는 경사면 아래가 통리일대가 어림되고 그 뒤로 어제 지나온 길로 어림된다. 이제 비가 그치기 시작한다. 안부까지 이어지던 길은 다시 조그만 능선으로 이어지고 밭고랑을 지나니 통리역이 바로 코앞이다. 약 8개월에 걸친 낙동정맥의 대장정이 드디어 마무리되는 순간이다. 낙동정맥을 마치고 이젠 낙남정맥으로 간다. 모두들 수고했고 이어지는 낙남정맥에는 더 많은 회원들의 참여를 기대해 본다. 마을 어귀를 지나 통리역에 이르러 빗길 산행을 한 흔적을 지우려 남은 식수로 씻어본다. 택시를 불러 피재로 돌아온 다음 일행은 젖은 몸을 씻고 부산으로 향했다. 11:00 황지를 출발한 일행은 안동 휴게소에서 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15:00 부산에 입성하였다. 17:00 화명동에서 낙동정맥 완주를 기념하여 숭악회 여러 회원이 참여한 가운데 부회장 주관으로 성대한 자축연이 이어졌다. 부회장의 따님이 보건복지부 연구위원으로 특채되어 그 의미를 더욱 배가시켰다. <숭악사관 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