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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관상적 독서 - 호명환 가를로 신부 번역 (25. 06. 09. – 15.)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매일 묵상은 그리스도교 관상 전통에 뿌리를 두고 리처드 로어와 CAC 운영진,
그리고 객원 교수들의 묵상 글을 제공해 주어 우리의 영적 수양을 심화시켜 주고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동정(compassion)을 구현하도록 도와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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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성령과 더불어 성경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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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C 매일묵상
성령과 더불어 성경을 읽기~
하느님의 숨
2025.06.09. 03:15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 2025년 6월 8일 일요일 - 스물네 번째 주간 (호명환 번역): 관상적 독서
성령께서는 사랑의 시선으로 성서를 읽도록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매일 묵상은 그리스도교 관상 전통에 뿌리를 두고 리처드 로어와 CAC 운영진, 그리고 객원 교수들의 묵상 글을 제공해 주어 우리의 영적 수양을 심화시켜 주고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동정(compassion)을 구현하도록 도와줍니다.
리처드 신부는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그리고 교회가 오늘 그분의 현존을 기념하고 있는 성령의 동반을 받아 성서를 읽으라고 격려합니다:
예수님은 자그만 것들의 의미까지도 연결하여 특정한 순간이나 개인 혹은 상황들 저 밑에 있는 의식을 넘어서 성경의 문장들이 진정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는 법을 알고 계십니다. 그분은 이야기의 더 커다란 윤곽을 볼 줄 아시는데, 그 커다란 윤곽 안에서 하느님은 동정심 가득하고 모든 것을 포용하시는 분으로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징벌적이거나 제국주의적인("내 국가가 최고야!") 이야기나 분노적이고 배타적인 말씀들을 인용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레위기 18장과 20장에 나타나는 "너희는 하지 말라!"라는 28개의 금지 사항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19,18의 긍정적인 명령을 택하시어 이 말씀이 반향을 울리게끔 하십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그분이 인용하시는 가장 긴 말씀(루카 4,18-19)은 이사야 61,1-2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그 다음 말씀 - 하느님의 응보의 날 - 은 생략하시고 이 말씀으로 끝을 맺으십니다.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셨다." 왜냐하면 그분은 복수를 선포하기 위해 오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께서 믿음을 지닌 모든 이에게 가르치시는 바입니다. 즉 성서(그리고 삶의 경험들)를 사랑의 시선으로 읽는 법을 가르치신다는 말입니다. 관상의 실천은 행간과 줄간을 읽을 수 있는 제삼의 눈을 갖게 해 주고 언제나 포용성과 자비, 그리고 정의를 향해 나아가게 해 주는 끈을 찾게 해 줍니다. [1]
성경의 계시는 일깨워 주는 것입니다. 이는 계시에 관한 것이지 원칙을 연기하는 것과 관련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거기에 우리 스스로 다다를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거기에 있을 수만 있습니다. 그런데 이 근본적인 하느님-안에-존재하는 것은 믿기도 너무 어렵고, 그것이 진리라고 하기에도 너무 선해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직 겸손한 이들만이 그 은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은총은 우리에 대한 긍정이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긍정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저는 우리가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를 하나의 완전한 책으로 연결시켜 읽을 것을 권고합니다: 즉 시작과 중간과 끝이 다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이야기 문집으로 읽기를 바랍니다. 말하다면 성령께서 이끌어가시는 하나의 책으로 읽어 보시라는 말입니다.
제가 여기서 무엇보다도 먼저 말씀드리고자 하는 바는 하느님께서는 서서히 독자의 의식을 일깨우시는 영감을 받아 성서를 읽으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더없이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영의 가난함"(마태 5,3)으로 성서를 읽을 때 성경의 문장들은 우리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자 역사 전체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설명해 줄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자격을 지닌 사람으로서 성서를 읽게 되면 불행하게도 우리는 하느님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해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착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성경의 문장들 안에서 절대 바뀌지 않으시는 분이시지만, 우리는 그럴 수 있습니다. 쓰인 말씀들은 그 말씀들이 우리에게 영감을 주고 우리를 변화시켜 주는 한에서 정확하게 영감이 되는 말씀들이어야 합니다. 저는 inspire(영감을 주다)라는 단어를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말합니다. 즉 우리에게 숨을 불어넣어 주어 우리를 더 큰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으로 말입니다. 만일 쓰인 말씀들이 우리에게 진정한 숨을 불어넣어 주어 우리를 더 큰 생명이 되게 하지 못한다면 적어도 그 말씀들은 절대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말씀들이 아닐 것입니다.
저는 영감을 주는 온갖 말씀들을 믿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났지만, 그 말씀들은 어쩌면 생명력이 없는, 즉 아담의 코에 불어넣어 주신 숨(창세 2,7)이 존재하지 않는 말씀들이 아니었나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에게 다가오고 입술로만 나를 공경한다."(이사 2,13). 그래서 이사야 예언자와 예수님은 똑같이 이것을 "입술만으로 하는 공경"(이사 29,13; 마태 15,8)이라고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2]
우리 공동체 이야기
저는 침묵과 하느님과의 지속적인 대화를 균형 있게 실천하는 저의 일상 수양에 대해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매일 20분간 고요한 시간을 가지며(물론 저에게 쉽지 않은 시간이지만...) 이 수양을 시작합니다. 그러고 나서 렉시오 디비나를 하고, 그 다음에 CAC의 매일 묵상을 읽습니다. 낮동안은 하느님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단순하게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게 해 달라고 청하거나 성령의 인도를 청하지만, 대개는 솔직히 불평을 이야기할 때가 많습니다. 하느님과 저의 상호 관계는 솔직히 제가 너무도 부족하기에 늘 하느님께 인간적으로 매달리며 애정을 청하고 질문을 드리기도 하지만 그저 저를 내맡길 수밖에 없는 그런 관계입니다. 그래도 저는 이 관계가 적어도 제 마음을 여는 그런 관계이기를 희망합니다. 그래서 제가 밤이 되어 베개에 머리를 댈 때는 이 하루를 성찰하며 이 모든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리게 됩니다.
—Connie V.
References
[1] Adapted from Richard Rohr, Hierarchy of Truths: Jesus’ Use of Scripture (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2014).
[2] Adapted from Richard Rohr, Things Hidden: Scripture as Spirituality, rev. ed. (Franciscan Media, 2022), 28, 29.
Image credit and inspiration: Annie Spratt, untitled (detail), 2018, photo, Unsplash. Click here to enlarge image. 우리의 고요한 증거를 통해 말씀과 이미지가 연결되는 문턱이 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내면의 눈으로 깊이 바라보고 성령께서 우리 주의를 이끌어 조용하게 꽃을 피우도록 초대해 드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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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성경의 말씀을 씹어먹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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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C 매일묵상
성경의 말씀을 씹어먹는다는 것!
하느님의 숨
2025.06.10. 04:06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 2025년 6월 9일 월요일 - 스물네 번째 주간 (호명환 번역): 관상적 독서
고요하고 느긋하게 성서를 읽는 것은 하느님께로 가는 길입니다.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매일 묵상은 그리스도교 관상 전통에 뿌리를 두고 리처드 로어와 CAC 운영진, 그리고 객원 교수들의 묵상 글을 제공해 주어 우리의 영적 수양을 심화시켜 주고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동정(compassion)을 구현하도록 도와줍니다.
하루는 육체 노동을 바쁘게 하다가, 영적인 노동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영신 수련의 네 단계가 생각났습니다: 독서, 묵상, 기도, 그리고 관상. 이 단계들은 예전에 수도승들이 지상에서 천상으로 들어 올려지는 사다리 역할을 했습니다.
- 귀고 2세, 수도승들의 사다리(The Ladder of Monks)
CAC 운영진 중 한 사람인 제임스 핀리(James Finley)는 카르투시안 수도승인 귀고 2세(1114-1188)의 관상적 독서에 나오는 지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하늘로 오르는 사다리의 첫 번째 단계는 독서입니다. 귀고가 말하는 독서는 "성서를 주의 깊게 읽고 자신의 힘을 전부 성서를 읽는 데 집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독서를 먹는 것에 비유하면서,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읽을 때, 영적인 영양분을 섭취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귀고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저는 성서의 말씀을 이런 식으로 듣습니다: "복되어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 5,8).
이는 짧은 성서 말씀이지만 대단히 달콤한 포도와도 같습니다. 마치 많은 감각을 느끼는 입 안으로 들어가는 달콤한 포도처럼 말입니다... 우리 영혼은 이 달콤함의 의미를 더 충만하게 이해하기를 소망하면서 우리 이 포도를 깨물어 씹어 먹습니다. 마치 포도주 짜는 틀에 포도를 넣고는 더더욱 순수한 즙을 짜내려고 노력하듯이 말입니다. [1]
핀리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귀고가 설명하듯, 독서의 변모해 주는 힘은 성경을 읽는 데 있어 독특한 감각을 갖게 해 줍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행위로서 성서를 읽는 것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입에 단맛을 내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말씀의 힘은 마음에 누룩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이렇게 성서를 읽을 때 하느님의 말씀이 여러분을 일깨워 성서가 계시하는 하느님의 현존을 개인적으로 경험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 성서를 읽으면 성서는 마치 하느님이 보내 주신 긴 사랑의 편지와도 같을 것입니다. 그러면 성서의 구절 하나하나가 영원히 우리를 그 사랑으로 이끌어 주는 사랑의 속삭임처럼 들릴 것입니다....
영적으로 성서를 읽는 것은 성서 독서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귀고의 글들과 다른 영적 지혜를 담은 서적들을 읽는 것은 우리가 하느님을 찾는 것을 구체화해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비주의자들의 글들 안에서 하느님을 찾듯이, 우리는 신비주의자들이 쓴 하느님 체험을 그들의 말로 경험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 영적인 여정을 계속하게 되면 여러분은 옛것이든 현대의 것이든 저자들이 쓴 영적인 경험들을 넘어서 그 글들이 담고 있는 내용을 참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책들은 절대 완전하게 다 읽을 수 없는 책들입니다. 우리가 이런 책들을 펴서 몇 구절을 읽을 때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무언가 다른 것을 다시, 또다시 새롭게 인식하게 되고 지금까지 가지 않았던 새로운 길로 인도되기 때문입니다....
묵상을 실천하면서 하느님을 찾는 데 온갖 주의를 집중하는 것은... 귀고가 설명하는 방식으로... 성서를 읽는 것을 배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해, 그것은 성서를 읽는 가운데 우리에게 드러나는 하느님의 친밀한 현존을 깊이 느끼고 만나기 위해 고요하고 느긋하게 성서를 읽는 지속적인 과정에 온전히 몰입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공동체 이야기
저는 침묵과 하느님과의 지속적인 대화를 균형 있게 실천하는 저의 일상 수양에 대해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매일 20분간 고요한 시간을 가지며(물론 저에게 쉽지 않은 시간이지만...) 이 수양을 시작합니다. 그러고 나서 렉시오 디비나를 하고, 그 다음에 CAC의 매일 묵상을 읽습니다. 낮동안은 하느님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단순하게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게 해 달라고 청하거나 성령의 인도를 청하지만, 대개는 솔직히 불평을 이야기할 때가 많습니다. 하느님과 저의 상호 관계는 솔직히 제가 너무도 부족하기에 늘 하느님께 인간적으로 매달리며 애정을 청하고 질문을 드리기도 하지만 그저 저를 내맡길 수밖에 없는 그런 관계입니다. 그래도 저는 이 관계가 적어도 제 마음을 여는 그런 관계이기를 희망합니다. 그래서 제가 밤이 되어 베개에 머리를 댈 때는 이 하루를 성찰하며 이 모든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리게 됩니다.
—Connie V.
References
[1] See Guigo II, The Ladder of Monks: A Letter on the Contemplative Life, and Twelve Meditations, trans. Edmund Colledge and James Walsh (Image Doubleday, 1978), 82–83.
James Finley, Christian Meditation: Experiencing the Presence of God (HarperSanFrancisco, 2004), 80–84.
Image credit and inspiration: Annie Spratt, untitled (detail), 2018, photo, Unsplash. Click here to enlarge image. 우리의 고요한 증거를 통해 말씀과 이미지가 연결되는 문턱이 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내면의 눈으로 깊이 바라보고 성령께서 우리 주의를 이끌어 조용하게 꽃을 피우도록 초대해 드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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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독서(Lectio), 묵상(Meditatio), 기도(Oratio), 관상(Contemplat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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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C 매일묵상
독서(Lectio), 묵상(Meditatio), 기도(Oratio), 관상(Contemplatio)!
하느님의 숨
2025.06.11. 05:10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 2025년 6월 10일 화요일 - 스물네 번째 주간 (호명환 번역): 관상적 독서
독서가 기도일 때 우리는 성령을 얼굴을 맞대고 만나는 것입니다.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매일 묵상은 그리스도교 관상 전통에 뿌리를 두고 리처드 로어와 CAC 운영진, 그리고 객원 교수들의 묵상 글을 제공해 주어 우리의 영적 수양을 심화시켜 주고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동정(compassion)을 구현하도록 도와줍니다.
관상 신학자 비벌리 란제타(Beverly Lanzetta)는 예전에 수도승들이 실천했던 성독(Lectio Divina)을 오늘날 모든 이가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를 알려줍니다:
관상적인 정신으로 천천히 성경을 읽는 것은 내면의 길을 밝혀주고 영의 움직임을 의식하게 해 줍니다. 우리는 상세한 정보나 지식을 얻기 위해 성경의 본문을 급하게 읽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 말씀들을 통해 우리 삶에서 현존하시면서 일하시는 하느님을 감지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차근차근하게 성경을 읽게 되면 성경 본문의 의미가 열려서 우리는 신성한 영역으로 들어설 수 있게 됩니다....
어떤 상황을 파악하는 것과는 달리 성독(Lectio Divina)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본문을 읽음으로써 우리를 거룩하신 분과의 일치에 이르게 해 줍니다. 가장 단순하게 이야기하자면, 성독은 정보나 지침을 얻기 위해 지성적으로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읽는 사람이 하느님과 비슷하게 되려는 의도로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성경의 본문 안에서, 그리고 성경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성령을 얼굴을 맞대고 만나는 것입니다. 차근차근 성경을 읽음으로써 말씀이 우리 마음에 깊이 스며들어 우리 마음을 지혜와 사랑으로 채우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서 우리는 때때로 평범한 마음 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나곤 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진리나 통찰력으로 일깨워질 수도 있고 양심의 가책이나 수치를 느낄 수도 있으며 용서받거나 밝은 빛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가 묵상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을 때 온전하고 편안하게 우리 자신을 하느님께 내맡겨 드려 하느님과의 일치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논지나 근본 원인을 찾으려 하거나 비평적 분석을 하려고 급하게 성경을 읽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가만히 멈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신비 안에 고요하게 머물러야 합니다....
여기서 세 단계의 추가적인 단계가 이루어집니다. 명상 혹은 묵상(meditatio)은 성경의 본문을 성찰하는 마음으로 읽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음의 산상수훈 내용을 읽는다고 합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 빰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마태 5,39). 하루 동안 걸을 때나 일을 할 때나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곱씹으면 이 말씀이 여러분의 명상거리가 되게 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여러분의 삶에 이 말씀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깊이 성찰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의 본문을 깨어 의식하여 읽음으로써 우리는 하느님을 맞아들이고 단순하게 그분과 함께하는 분위기로 들어서는 것입니다:
기도 혹은 oratio(기도의 라틴어)는 묵상 안에서 얻은 지혜를 하느님께 되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진리와 덕으로 이끌려 지도록 기도하는 것이고, 그날의 독서에서 식별된 말씀을 감사와 찬미를 드리며 실행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궁극적으로 기도(oratio)가 관상(contemplatio)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무언가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맞아들이고, 하느님 안에서 쉬기 위해 여러분의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여러분은 앎의 수동적인 자세, 혹은 앎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그 성경의 본문이 하느님의 신성한 정신과 마음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여러분 존재 안으로 들어오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을 차근차근 읽는다는 것은 성령께서 여러분을 이 단계에서 저 단계로 가는 길을 단축시켜 주시게끔 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어느 단계에서든 수양하는 마음으로 머물 수 있게 되고, 자유롭게 다음 단계로도 넘어갈 수도 있게 됩니다. 또한 독서에서 묵상이나 기도 혹은 관상으로 순서적으로 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 단계들이 자연스럽게 혼합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공동체 이야기
노리치의 율리안나의 비-이원론적 글들은 저로 하여금 하느님을 남성이나 여성이 아닌 제삼의 성으로 이해하게끔 해주었습니다. 저는 요즘 우리 사회 안에서 성소수자들과 관련한 증오와 두려움이 얼마나 큰지를 봅니다. 제 막내 자식은 이분법적 성별을 뛰어넘어 있는(non-binary) 아이인데, 저는 이 세상에서 이 아이보다 더 동정심이 깊고 사랑스러우며 비평적이지 않은 영혼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제가 제 아이에게서 사랑을 배우듯이, 우리는 서로에게서 사랑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느님을 이분법적 성을 뛰어넘는 분으로 받아들인다면 서로를 얼마나 다른 방식으로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Mary D.
References
Beverly Lanzetta, A New Silence: Spiritual Practices and Formation for the Monk Within (Blue Sapphire, 2020), 246, 247–249.
Image credit and inspiration: Annie Spratt, untitled (detail), 2018, photo, Unsplash. Click here to enlarge image. 우리의 고요한 증거를 통해 말씀과 이미지가 연결되는 문턱이 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내면의 눈으로 깊이 바라보고 성령께서 우리 주의를 이끌어 조용하게 꽃을 피우도록 초대해 드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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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관상적인 자세로 질문하며 성서를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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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C 매일묵상
관상적인 자세로 질문하며 성서를 읽기!
하느님의 숨
2025.06.11. 16:47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 2025년 6월 11일 수요일 - 스물네 번째 주간 (호명환 번역): 관상적 독서
우리는 성서가 우리를 회심으로 이끌게 하고 또 우리를 변화하게 하는가요?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매일 묵상은 그리스도교 관상 전통에 뿌리를 두고 리처드 로어와 CAC 운영진, 그리고 객원 교수들의 묵상 글을 제공해 주어 우리의 영적 수양을 심화시켜 주고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동정(compassion)을 구현하도록 도와줍니다.
리처드 신부는 성서를 읽는 고대 유대인들의 방식인 midrash(미드라쉬)에 대해 설명해 줍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독서법을 잘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서에서 무엇을 보아야 할지를 정확하게 말씀하시기보다는 성서를 어떻게 보아야 할지, 무엇을 강조해서 보아야 할지, 그리고 무엇을 덜 강조하거나 무시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근본주의와 문자주의를 넘어서 미드라쉬라고 하는 유대인들의 주석법을 실천하셨는데, 이 주석법은 영적인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질문들을 한결같이 사용하며 종종 하나의 본문을 성찰하기도 하고 사람들의 질문들에 대해 더 많은 질문들을 던지면서 그 의미를 찾게 해주는 주석법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모방하여 이런 주석법으로 성서를 읽지 않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 방식으로 성서를 읽었다면 수세기에 걸친 의로움에 대한 잘못된 견해와 종교적 폭력, 심지어는 우리 교회의 독단적 노선을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미드라쉬라는 유대교 실천법은 언제나 확실하고 변하지 않는 답을 찾기보다는 오히려 많은 가능성을 열어두고, 믿음으로 가득 찬 차원의 의미를 많이 찾게 해줍니다. 이 의미들이란 독자들인 여러분의 삶에 관련되고 적용될 수 있는 것들이고 주체의 입장에서 공감하고 이해하게 해주며, 성서와 여러분이 올바른 관계를 맺게 해 주는 것들입니다. 우선은 그 내용이 다른 누군가에게 도전이 되기보다는 여러분 자신에게 도전이 되게 합니다. 영적인 방식으로 본문을 읽음으로써 -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 그 내용이 여러분을 회심으로 이끌고 변화하게 해주며 성장하게 해줍니다: 이 내용이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이 내용이 '내' 삶과 '내' 가족, '내' 교회, '내' 마을, '내' 나라, 그리고 우리 세상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 [1]
리처드 신부는 성서를 관상의 자세로 읽는 몇 가지 단계를 알려줍니다:
☞ 중요한 본문을 해석하기 전에 성령께 이끄심을 청하는 기도를 바치십시오. 이 기도는 우리가 원하고 필요로 하는 대로 해석하려는 에고의 경향을 내려놓기 위한 것입니다. 내면에서 지성의 자유를 느끼고 세상적 생각을 내려놓을 수 있을 때까지 기도하십시오.
☞ 어느 정도 진솔하게 지성과 감성의 자유를 얻게 되었다면 우리 자신의 뜻과 에고의 목적, 필요, 바람을 내려놓으려는 마음 자세를 갖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십시오.
☞ 그런 다음 우리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더 깊은 목소리를 들으십시오. 만일 그 목소리가 우리를 부끄럽게 하거나 놀라게 하지 않고, 도전은 되더라도 우리에게 힘을 부여해 주는 목소리라면, 그것은 우리 에고의 목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만일 그 목소리가 하느님의 목소리라면 그 목소리가 우리의 허상과 폭력성을 완전하고 자연스럽게 몰아내 주어서 우리는 이전에 가졌던 느낌들과 우리를 동일시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하느님께서 대체해 주시는 치유법이라고 부릅니다.
☞ 이 경험이 우리의 참 자아로 하여금 갈라티아서 5,22-23에 나오는 성령의 열매들 - 즉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 - 을 경험하게 해준다면, 우리는 이 해석이 성령, 즉 지혜의 더 깊은 흐름에서 오는 것임을 신뢰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만일 우리가 하는 해석을 통해 부정적인 감정이나 벌을 받는 듯한 감정 - 즉 우월감이나 자기-만족, 오만한 이원론적 확신, 복수하려는 갈망, 이기고자 하는 욕망, 무시나 배척의 정신과 같은 것들 - 이 떠오른다면 이는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에고가 여전히 우리가 타고 있는 배를 조종하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2]
우리 공동체 이야기
노리치의 율리안나의 비-이원론적 글들은 저로 하여금 하느님을 남성이나 여성이 아닌 제삼의 성으로 이해하게끔 해주었습니다. 저는 요즘 우리 사회 안에서 성소수자들과 관련한 증오와 두려움이 얼마나 큰지를 봅니다. 제 막내 자식은 이분법적 성별을 뛰어넘어 있는(non-binary) 아이인데, 저는 이 세상에서 이 아이보다 더 동정심이 깊고 사랑스러우며 비평적이지 않은 영혼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제가 제 아이에게서 사랑을 배우듯이, 우리는 서로에게서 사랑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느님을 이분법적 성을 뛰어넘는 분으로 받아들인다면 서로를 얼마나 다른 방식으로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Mary D.
References
[1] Adapted from Richard Rohr, “Midrash,” Daily Meditations, January 7, 2019.
[2] Adapted from Richard Rohr, What Do We Do with the Bible? (CAC Publishing, 2018), 52–54.
Image credit and inspiration: Annie Spratt, untitled (detail), 2018, photo, Unsplash. Click here to enlarge image. 우리의 고요한 증거를 통해 말씀과 이미지가 연결되는 문턱이 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내면의 눈으로 깊이 바라보고 성령께서 우리 주의를 이끌어 조용하게 꽃을 피우도록 초대해 드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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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다른 이들과 더불어 성경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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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C 매일묵상
다른 이들과 더불어 성경을 읽기!
하느님의 숨
2025.06.13. 03:09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 2025년 6월 12일 목요일 - 스물네 번째 주간 (호명환 번역): 관상적 독서
우리는 성서가 우리를 회심으로 이끌게 하고 또 우리를 변화하게 하는가요?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매일 묵상은 그리스도교 관상 전통에 뿌리를 두고 리처드 로어와 CAC 운영진, 그리고 객원 교수들의 묵상 글을 제공해 주어 우리의 영적 수양을 심화시켜 주고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동정(compassion)을 구현하도록 도와줍니다.
저술가들인 짐 윌호이트(Jime Wilhoit)와 이반 하워드(Evan Howard)는 우리 경험과 상황이 어떻게 해서 우리가 성경을 읽는 방식을 형성해 주는지를 강조하여 설명해 줍니다:
우리가 성경을 펼쳐 읽을 때 우리는 우리가 대상들을 보는 방식에 따라 읽게 됩니다.... 덜 발전된 지역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선진국들에 사는 그리스도인들과는 달리 성서의 내용들을 읽습니다. 부유한 나라에 사는 그리스도인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읽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보여준 임의의 친절이 지니는 가치를 특별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이웃"을 도움을 받은 사람으로 보면서 말이지요). 그런데 가난한 나라에 사는 그리스도인은 같은 비유를 읽으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향해 의도적으로 동정심 가득한 행위를 하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예수님께서 강조해 주셨다는 점을 받아들일 것이다. (도움을 준 사람을 "이웃"으로 보면서 말이지요.) 우리는 우리의 문화와 우리가 살아온 역사에 의해 형성된 마음과 정신으로 성서를 대하게 됩니다. [1]
니콰라과의 솔레티나메 제도에서 사목하는 에르네스토 카르데날 신부(Fr. Ernesto Cardenal)는 가난하게 살아가는 시골 사람들 공동체 [2] 에서 매주 복음 묵상을 함께했습니다. 그는 "영이 가난한 사람들은 복되다. 하느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루카 6,20)라는 진복팔단의 말씀에 대해 그들과 함께 나눈 대화 내용을 다음과 같이 소개해 줍니다:
오스카의 어머니: "제게는 하느님 나라가 사랑이라고 느껴집니다.... 이 세상 삶에서의 사랑 말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는 여기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나라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펠리페: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사랑을 더 잘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죠? - 그리고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가져다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이 이런 사랑의 사회를 만들어 줄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을 축복하신 것입니다."....
오스카: "에르네스토, 저도 가난한 사람이 두려워하지 않고, 하느님 나라를 얻기 위해 싸우지 않고도, 또 하느님 말씀을 두려워하지도 않은 채 더 신실하게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유한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언제나 사람들을 [착취]할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사람의 신실함을 보시고 그에게 하느님의 왕국을 약속해 주시는 겁니다."....
알레한드로: "우리가 여기서 보는 나라는 두 가지가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하느님의 왕국인데, 그곳은 사랑과 평등의 왕국으로서 우리가 모두 같은 형제자매들인 곳임이 틀림없습니다. 다른 하나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닌 우리 현실의 체제입니다. 이 체제는 수 세기 동안 계속되어 온 것입니다. 빈부의 격차가 있는 곳, 돈을 버는 사업만이 중요한 곳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두 가지가 아주 다른 곳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 나라가 실현되도록 이 사회를 바꾸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느님 나라가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이루어져야 한다고 확신해야 합니다. 그렇지요?"
판초: "사랑을 나누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서요! 왜냐하면 사랑을 나누는 부자들이 있다면 그들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으니까요!"
마리타: "하지만 사랑을 나누는 부유한 사람은 자기들의 재물도 나누어야 해요. 그게 바로 사랑을 나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니까요. 만일 그 사람이 사랑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면서 자기 재물을 나누지 않으면 우리가 어떻게 그 사람을 믿을 수 있겠어요?" [3]
우리 공동체 이야기
저는 여러모로 도움을 주고 여러 가지 앎을 제시해 주는 CAC에 참으로 감사합니다. CAC는 새로운 관점으로 제 신앙으로 되돌아오게 해 주었습니다. 저는 이제 하느님의 본질인 사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인간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더 아름답게, 그리고 더 강력하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Lillian M.
References
[1] James C. Wilhoit and Evan B. Howard, Discovering Lectio Divina: Bringing Scripture into Ordinary Life (IVP Books, 2012), 46–47.
[2] 깜뻬시노(campesino)는 글자 그대로 campo (시골, 밭)에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깜뻬시노들은 대부분 농장 노동자들이지만, 어떤 이들은 어부들이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를 소개하는 글에서 카르데날은 이렇게 말합니다. "깜뻬시노들의 성경 해석은 대개 신학자들의 해석보다 훨씬 낫습니다. 그리고 복음 그 자체처럼 단순하고요. 가난한 이들에게 선포된 복음 혹은 "기쁜 소식"이 그들과 같은 사람들에 의해 쓰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3] Ernesto Cardenal, The Gospel in Solentiname, trans. Donald D. Walsh (Orbis Books, 1976), 172, 173, 174.
Image credit and inspiration: Annie Spratt, untitled (detail), 2018, photo, Unsplash. Click here to enlarge image. 우리의 고요한 증거를 통해 말씀과 이미지가 연결되는 문턱이 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내면의 눈으로 깊이 바라보고 성령께서 우리 주의를 이끌어 조용하게 꽃을 피우도록 초대해 드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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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거룩한 응시(visio divina): 거룩한 바라봄의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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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C 매일묵상
거룩한 응시(visio divina): 거룩한 바라봄의 실천!
하느님의 숨
2025.06.13. 16:30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 2025년 6월 13일 금요일 - 스물네 번째 주간 (호명환 번역): 관상적 독서
응시한다는 것(gazing)은 마음의 눈으로 무언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매일 묵상은 그리스도교 관상 전통에 뿌리를 두고 리처드 로어와 CAC 운영진, 그리고 객원 교수들의 묵상 글을 제공해 주어 우리의 영적 수양을 심화시켜 주고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동정(compassion)을 구현하도록 도와줍니다.
성독(lectio divina)이 성경의 본문을 "잘 씹어 먹음으로써" 그 참 맛과 지혜를 받아들이도록 우리를 초대해 주는 것처럼,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하는 거룩한 응시(visio divina)는 우리가 바라보는 것을 통해 하느님의 현존을 받아들이게 해 주는 관상적 실천법입니다. 영적 스승인 크리스틴 발터스 페인터(Christine Valters Painter)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거룩한 응시(visio divina)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의식을 마음 안으로 옮겨가 우리가 바라는 것을 파악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바라보는 것을 그저 단순히 받아들이는 데 초점을 맞춤으로써, 우리가 바라보는 것이 분석되지 않고 통합되게끔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지향은 새로운 관점으로 사물들을 보는 것이므로, 역설적이게도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세상적 방식으로 바라보는 우리의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1]
페인터는 성령의 현존 안에서 우리 존재의 중심으로 들어서기 위해 잠깐 침묵을 지키라고 권고합니다.
거룩한 응시(visio divina)는 거룩하게 보는 것을 의미하며, 근본적으로 성독(lectio divina)에서 가지는 것과 같은 리듬을 "응시"하는 데 적용하는 것입니다. 응시한다는 것은 마음의 눈으로 무언가를 바라보는 것이며, 무언가를 힘들여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이미지와 더불어 있는 그대로 부드럽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의 중심을 잡은 상태에서 천천히 눈을 뜨고 마음의 눈으로 사진이나 어떤 이미지에 부드럽게 시선을 두십시오. 잠시 동안 여러분의 눈이 주변에 있는 모든 풍경에 훑어보도록 내버려 두십시오. 그 색깔과 윤곽, 세세한 모습, 거기서 드러나는 상징 등을 다 훑어보십시오. 그러고는 서서히, 그리고 부드럽게 그 이미지의 세세한 부분과 더불어 여러분을 현존하게 하십시오....
그런 다음 서서히 이 순간 여러분 내면에서 움직이는 느낌들과 이미지들을 떠오르게 해 주는 어떤 초대가 있는지를 살펴보십시오. 바로 지금 여러분이 처한 구체적인 상황 안에서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어떤 의식을 하고 또 어떤 행위를 하라고 하십니까? '내' 인생의 이 순간에 '나'는 나에게 어떤 초대를 하고 있나요? '나'는 어떤 응답을 하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나요?....
여러분이 이런 방식으로 기도하는 데 더 편안해지고 또 여러분이 바라보는 것이 기도의 "본문"이 되게 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바깥에서 산책을 하고 있더라도 이 바라봄의 영을 지니고 걸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이미지들을 있는 그대로 단순하게 받아들이면서 여러분은 그 순간에 주의를 기울여 하느님께서 이 과정 안에서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어떤 느낌이나 기억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을 여러분의 마음 안에 품어 희미하게라도 빛을 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드십시오. 이렇게 하다 보면 여러분은 지금 속도를 늦추어 이 세상을 보는 법을 심화하라는 하느님의 초대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거룩한 응시, 즉 이 세상을 성서와 같은 거룩한 본문으로 바라보는 데 마음을 모으게 되면 모든 것이 그저 "못난 것"과 "아름다운 것"으로 나뉘어지거나 우리가 기대하는 대로 모든 것이 되도록 하는 그런 이기적인 마음이 생기지 않고, 그 모든 것이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 더불어 현존할 만한 선한 것으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이때 비로소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우리 마음의 눈으로 보기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우리 공동체 이야기
저는 여러모로 도움을 주고 여러 가지 앎을 제시해 주는 CAC에 참으로 감사합니다. CAC는 새로운 관점으로 제 신앙으로 되돌아오게 해 주었습니다. 저는 이제 하느님의 본질인 사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인간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더 아름답게, 그리고 더 강력하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Lillian M.
References
[1] Christine Valters Paintner, Eyes of the Heart: Photography as a Christian Contemplative Practice (Sorin Books, 2013), 30.
[2] Paintner, Eyes, 36–38, 48.
Image credit and inspiration: Annie Spratt, untitled (detail), 2018, photo, Unsplash. Click here to enlarge image. 우리의 고요한 증거를 통해 말씀과 이미지가 연결되는 문턱이 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내면의 눈으로 깊이 바라보고 성령께서 우리 주의를 이끌어 조용하게 꽃을 피우도록 초대해 드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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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내면의 예언자를 일깨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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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C 매일묵상
내면의 예언자를 일깨우기! - 스물네 번째 주간 실천
하느님의 숨
2025.06.14. 16:20
CAC(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 2025년 6월 14일 토요일 - 스물네 번째 주간 (호명환 번역): 관상적 독서
여러분을 안내와 함께하는 성독(lectio divina)에 초대합니다.
리처드 로어의 매일 묵상
매일 묵상은 그리스도교 관상 전통에 뿌리를 두고 리처드 로어와 CAC 운영진, 그리고 객원 교수들의 묵상 글을 제공해 주어 우리의 영적 수양을 심화시켜 주고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동정(compassion)을 구현하도록 도와줍니다.
여러분을 이사야서 61,1-2의 내용을 주제로 삼아 안내와 함께 이루어지는 성독(lectio divina)에 초대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억압받는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깊이 있게 읽기(lectio): 천천히 본문을 읽으면서 특히 여러분에게 말을 건네오거나 여러분의 마음을 건드려 주거나, 여러분 안에 있는 무언가를 일깨워 주는 어떤 말씀이나 문구에서 멈추어 보십시오.
깊이 있께 묵상하기(meditatio): 여러분에게 주의를 요하는 본문이 있다면 그 본문을 성찰할 시간을 가지고, 어찌하여 그 말씀이나 문구가 여러분의 주의를 끄는지에 대해 성찰해 보십시오.
깊이 있게 기도하기(oratio): 여러분의 생각을 여러분이 하느님에 대해 이해하는 한도 내에서 하느님과 나누고 싶은 지향이나 바람, 혹은 요청에 머물게 하십시오.
깊이 있게 관상하기(contemplatio): 여러분이 하느님 현존 - 혹은 하느님의 신성한 사랑이나 진리, 선 - 안으로 받아들여지도록 편안하게 침묵의 시간을 가지십시오.
References
[1] Adapted from “Lectio Divina Instructions,” CAC’s Living School: Introduction to Engaged Contemplation, 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2024. Unavailable.
“Awaken the Prophet Within: A Lectio Divina Practice from Richard Rohr’s The Tears of Things,” March 12, 2025, 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YouTube video, 8:45.
Image credit and inspiration: Annie Spratt, untitled (detail), 2018, photo, Unsplash. Click here to enlarge image. 우리의 고요한 증거를 통해 말씀과 이미지가 연결되는 문턱이 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내면의 눈으로 깊이 바라보고 성령께서 우리 주의를 이끌어 조용하게 꽃을 피우도록 초대해 드려야 합니다.
출처 : https://cafe.naver.com/f-e/cafes/30893450/articles/2192?menuid=34&referrerAllArticles=fa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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