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아는 청렴했습니다. 하나님께 당대의 의인으로 칭송받을 정도였습니다. 산꼭대기에 방주 곧 배를 지으라는 하나님의 엉뚱한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방주를 짓는 데만 무려 120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습니다. 그동안 이웃들로부터 온갖 비웃음과 조롱을 받았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방주를 완성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방주 문을 닫았습니다. 이후 방주 속에서 일주일을 지냈습니다.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하나님 말씀대로 방주를 짓기는 지었는데, 정말 비는 내릴 것인가? 하나님 음성을 제대로 듣기는 들은 것인가?”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혹 하나님이 마음을 바꾸시면 어떻게 하지? 그동안 온갖 수모를 당하며 방주를 지었는데 수포로 돌아가면 어쩌지? 나만 믿고 따라온 가족에게는 어떻게 설명하지? 이미 기다릴 만큼 기다렸는데, 방주 문도 이미 닫혔는데 칠일을 더 기다리게 하시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이제 곧 비가 내리겠다는 증거를 보여주시든지, 이슬비라도 내려주시면서 기다리라고 하신다면 좋을 텐데, 어떤 증거나 말씀도 없이 이렇게 막막하게 기다리게 하시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것도 모르겠어. 정말로 모르겠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너무나 불안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어떤 증거도 보여주지 않으셨습니다. 철저히 침묵하셨습니다. 요셉은 형들에 의해서 노예로 팔렸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어떤 예고도 없이 다가온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서 몸부림쳤습니다. 누구보다 경건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의 아내를 범하려 했다는 누명을 썼습니다. 비록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지만, 안정되어 가던 삶이 또 다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감옥에 갇혔습니다. 더 이상 떨어질 수 없는 밑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시종장들의 꿈을 해몽해주었습니다. 드디어 억울한 누명을 벗을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고 확신했습니다. 착각이었습니다. 이후, 이집트 왕 앞에 설 때까지 무려 2년 동안이나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기다리다보면 좋은 날이 반드시 다가올 것이라고 말씀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철저히 침묵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자신만큼은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배신하지 않을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사탄의 농간에 빠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배신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뵈었지만 자신은 제자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어부로 돌아갔습니다. 밤새도록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았습니다. 피라미조차 얻지 못했습니다. 보기 좋게 허탕을 쳤습니다. 그날 밤, 하나님께서는 그를 위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철저히 침묵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한 번쯤 경험했던 일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삶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내면을 만져주셨습니다. 그들은 비로소 자신들의 내면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꽁꽁 숨겨져 있던 자신의 의를 보았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깨달았습니다.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값없이 선물로 허락해주시는 은혜 하나 만을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침묵하는 시간이 모두 지났습니다. 노아는 호흡하는 모든 생물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대홍수 때 살아남았습니다. 현 인류의 조상으로 거듭났습니다. 요셉은 이집트 전국을 다스리는 총리로 거듭났습니다. 성민 이스라엘이 씨족에서 민족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중추적中樞的인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오랫동안 거리를 두고 서먹서먹하게 지내왔던 형들과 진실한 마음으로 화해할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전도의 문을 여는 주인공으로 거듭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이 땅 끝까지 전해지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랜 침묵 속에서도 절대로 쉬지 않으십니다.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일하고 계십니다. 저와 여러분을 완성해가고 계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이나 소망하는 것을 넘어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삶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느껴지는 지극히 어둡고 절망적인 순간에도 믿음을 놓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오히려 자신의 삶 전부를 송두리째 맡길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세상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절대 주권과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탁월한 섭리로 지으신 만물을 친히 다스리십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완벽한 통치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존재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모양과 형상을 따라서 지음 받은 인간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또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뜻 곧 창세전 작정을 완성하기 위하여 지으신 만물을 사용하십니다. “여호와는 모든 것을 나름의 자리와 목적에 맞게 만드셨다. 악인은...심판을 위해 지으셨다.”(잠16:4)라는 지혜의 외침에 따르면, 악인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많은 도구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무수히 많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죄로부터 돌아서기는커녕 오히려 대적했던 성민 이스라엘을 새롭게 창조하기 위하여 바벨론을 높이 들어주셨습니다. 의인을 징계하기 위하여 악인을 높이 들어주셨습니다. 신흥강국 바벨론의 왕이었던 그Nebuchadnezzar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가증스럽게 여기시는 우상 숭배자였습니다. 태양신 숭배에 완전히 빠져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주변 나라들을 거침없이 정복할 수 있는 강력한 군사력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모든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막강한 권세와 능력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막대한 영토와 소유까지도 허락해 주셨습니다. 열방이 그를 섬길 수밖에 없도록 역사해 주셨습니다. 그가 “꿈חֲלוֹם(할롬)"을 꾸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셨습니다.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특별했습니다. 마음을 어지럽혔습니다. 번민에 사로잡혔습니다.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역사를 당신의 뜻대로 주관하시는 곧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담겨 있었습니다. 역사 속에서는 물론 장차 도래하게 될 메시아 왕국의 탁월함이 계시되어 있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진정으로 추구해야 하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비전이 계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마술사, 주술사, 점쟁이, 점성가들을 빠짐없이 왕궁으로 불러들였습니다. 자신이 어떤 꿈을 꾸었는지 미리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힌트도 주지 않았습니다. 미리 말해주게 되면 그들의 뜻대로 해석할 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 스스로 알아내라고 명령했습니다. 알아낸 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석해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면 믿겠다고 외쳤습니다. 인간 편에서 보기에 그들은 바벨론의 최고 지혜 집단이었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보기에는 심판받아 마땅한 우상 숭배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인 꿈을 알아내기 위해서 몸부림쳐봤지만 헛수고였습니다.
풀 수 없었습니다.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왕께서 물으신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육체와 함께 살지 않는 신들 외에는 왕 앞에 풀어낼 수 있는 자가 없습니다.”(단2:11)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스로 사람들을 미혹하는 거짓말쟁이요 사기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그들을 모두 다 죽여 버리라고 명령했습니다. 한 명도 남기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잔인하고 포악한 성정을 여지없이 드러냈습니다. 자비와 긍휼은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왕 앞으로 부름 받지 못했습니다.
그들 역시 졸지에 우상 숭배자들과 함께 죽을 수밖에 없는 위기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다니엘은 자신에게 왕의 명령을 집행하기 위해서 찾아온 시위대 장관에게 왕의 명령이 왜 이리도 급하냐고 물었습니다. 신중하고도 사려 깊은 자세로 물었습니다.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셨던 지혜를 십분 활용했습니다. 꿈의 내용은 물론 의미까지도 풀어낼 테니까 시간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모였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당신의 계시를 보여주셨습니다. 완벽하게 풀어주셨습니다.
다니엘은 그에게 “왕이 물으신 비밀은 어떤 마술사, 주술사, 점쟁이, 점성가도 풀 수 없습니다.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이는...하나님이십니다. 그가 왕에게 후일에 될 일을 알게 하셨습니다.”(단2:27b-28)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꿈의 내용과 해석을 소상昭詳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동시에 그는 다니엘에게 절했습니다. “절하다סְגִד(세기드)”를 직역하면 “예배하다.”입니다. 그가 다니엘을 하나님의 대리자 또는 신적 존재로 여겼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상징입니다. 하나의 거룩한 그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승리와 사탄의 완벽한 파멸을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거듭난 저와 여러분 곧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당장 아무리 어렵고 힘겨운 상황에 던져져 있다할지라도 무조건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영원한 구원과 생명과 함께 다시는 사망과 애통과 곡하는 것과 아픈 것이 없고 오히려 참된 기쁨과 즐거움과 만족과 평안과 안식과 쉼이 더할 나위 없이 충만한 하나님 나라를 값없이, 선물로, 무조건, 반드시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는 또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들의 신이시다. 모든 왕들 가운데서 으뜸가는 군주가 되신다.”(단2:47a)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여호와를 유일하고 참된 하나님으로 인식하거나 믿었다고 해석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많은 신들 가운데 탁월한 신 또는 영광 받을 탁월한 신들 가운데 하나라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이후, 금으로 된 거대한 신상을 만들어 두라 평지에 세운 사실을 통해 충분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금으로 된 신상을 세운 그는 지방장관, 사령관, 총독, 고문관, 재무관, 재판관과 법률가들을 포함해 지방의 모든 관리들에게 사람을 보냈습니다. 신상 제막식에 참석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온갖 종류의 악기가 연주되면 신상을 향해서 엎드려 절해야 한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즉시 맹렬하게 불타는 가마솥에 던져 넣을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일단의 무리들이 왕 앞으로 나아와 엎드렸습니다. 그들은 상당한 지위에 올라 있었습니다. 다스리는 세력을 가진 귀족이었습니다. 포로 출신이면서 자신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젊은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정부 요직에 앉아 있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끓어오르는 시기와 질투를 다스릴 수 없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아주 제거해 버리기로 작정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왕에 대한 반역, 반국가적인 행위, 종교적인 불순종 등 패역한 죄들을 저지르고 있다고 고소했습니다.
왕은 격앙激昻되었습니다. 분노했습니다. 격렬한 화를 드러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친구를 즉결처분하지는 않았습니다. 최소한의 법적인 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참소의 동기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죽이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인재들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그들이 요직에서 일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라도 온갖 악기들이 연주될 때 신상을 향해 엎드려 절하라고 회유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극렬하게 타는 가마솥에 던져 넣을 것이라고 협박했습니다.
자신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낼 수 있는 신은 없다고 위협했습니다. 유일한 패자覇者로 절대 권세를 무지막지하게 휘두르고 있던 자신을 하나님보다 위에 두었습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성민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하여 자신을 높이 들어주신 하나님보다 위에 두었습니다. 자신을 신격화하는 교만을 드러냈습니다. 여호와를 자신이 국가의 수호신守護神으로 섬기고 있던 신Merodach보다 한 수 아래에 두었습니다. 자신이 정복한 국가들이 섬기고 있던 열등한 신들과 동등한 위치로 낮춰버렸습니다. 신성 모독이라는 끔찍한 죄를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저질렀습니다.
사람은 언제나 이렇습니다. 지위가 조금이라도 높이 올라가면, 자신이 허물과 죄로 죽은 죄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너무나 쉽게 간과합니다. 교만해집니다. 자신을 자랑합니다. 하나님 자리에 앉습니다. 세 친구의 대답은 분명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를 섬긴다는 이유로 받게 될 형벌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억울하다고 호소하지 않았습니다. 형을 가볍게 해달라고 간청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극렬하게 타는 가마솥에 던져진 자신들을 건져주실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죽음이 눈앞에 다가온 폭풍전야 속에서도 여호와에 대한 믿음을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이후, 어떤 결과가 주어지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왕이시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해 주지 않으셔도 우리는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않을 것이며 왕이 세운 황금 신상에도 절하지 않을 것이니 그리 알아주십시오.”(단3:18)라고 외쳤습니다. 우상 숭배를 통해서 생명을 부지하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겠다고 외쳤습니다. 설령 자신들이 극렬히 타고 있던 가마솥에 던져져 죽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 할지라도 여호와에 대한 믿음만큼은 버릴 수 없다고 외쳤습니다. 전인격적인 결단입니다. 진정한 믿음의 진수眞髓입니다.
그들의 대답을 들은 그는 순식간에 낯빛이 변했습니다. 얼굴 형체가 바뀌었습니다. 분노를 드러냈습니다. 가마솥을 평소보다 일곱 배나 뜨겁게 하라고 외쳤습니다.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뜨겁게 하라고 외쳤습니다. 시위대 안에서 가장 용맹한 군사들을 불러들였습니다. 군사들은 세 친구를 옷을 입은 채로 결박했습니다. 가마솥에 던져 넣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이 먼저 타죽었습니다. 가마솥이 얼마나 뜨겁게 달궈졌었는지 충분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때까지, 하나님은 세 친구들에게 어떤 말씀도 해주지 않으셨습니다. 위로해주거나 격려해주지도 않으셨습니다.
용기를 북돋워주지도 않으셨습니다. 철저히 침묵하셨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가 “여호와여! 그렇게 도와달라고 부르짖었는데, 언제까지 들어주지 않으시렵니까? 폭력이 일어나고 있다고 외쳤는데도 어찌하여 구해주지 않으십니까? 어찌하여 저로 하여금 불의를 보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악을 그대로 버려두십니까?”(합1:2b-3), “주의 눈은 정결하여 차마 악을 보지 못하고 백성이 나쁜 짓 하는 것을 참지 못하십니다. 그런데 어찌하여...악한 백성이 의로운 백성을 쳐서 이겨도 잠잠히 보기만 하십니까?”(합1:13)라고 외쳤을 때, 침묵하셨습니다.
당신 스스로 동방의 의인이라고 자랑까지 하셨던 욥이 하루아침에 생떼 같은 자식 열 명은 물론 소유 전부와 함께 건강까지 잃어버렸을 때 침묵하셨습니다. 남편과 사별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들까지 불의의 사고로 잃은 시인朴婉緖이 “한 말씀만 하소서!”라고 부르짖을 때도 침묵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채 죽어가고 있었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마266:46b)라고 절규하실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 마디도 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어쩌면 그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철저하게 침묵을 지키셨습니다.
성공회 사제인 그녀Taylor, Barbara Brown는 “기도에는 기도 응답 그 이상이 있다. 기도를 통해서 빚어져 가는 일꾼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번역가이면서 동시에 작가이기도 한 그Eugene H. Peterson는 “기도는 행하거나 취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존재하고 변하기 위한 도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저와 여러분은 기도를 통해서 자신이 원하는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합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열악한 환경을 바꾸려고 합니다.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며, 위험한 기도를 올립니다. 반면, 하나님은 환경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을 바꾸려고 하십니다.
당신이 어떤 환경을 허락해 주신다 할지라도 기꺼이 복종하기를 바라십니다. 바로 그 환경을 통해서 반드시 이루어야할 일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또 지금 이 순간 즉시 응답되지 않은 기도는 다음 주나 다음 달 또는 다음 해 아니 다음 세기에도 응답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으리라는 것을 뜻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상황이 무르익으면, 하나님은 물론 저와 여러분에게 한걸음 더 나아가서 관련된 모두에게 유익이 될 때는 반드시, 무조건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가장 정확한 때는 엮여 있는 모든 상황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는 하나님만 아십니다.
당연히 문제가 발생한 즉시 응답하실 때도 있습니다. 실제로 그는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단3:25b)라고 외쳤습니다. 세 친구들이 던져진 가마솥을 지켜보고 있던 그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신기한 광경에 그야말로 크게 놀랐습니다. 간담이 서늘해졌습니다. 충격과 함께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가마솥에는 분명 세 명이 던져졌습니다. 한 명이 늘어서 네 명이었습니다. 그들은 결박당한 채 던져졌습니다. 가마솥 안에서는 결박이 풀려있었습니다.
특별히 선택된 군사들은 그들을 가마솥에 던져 넣는 과정에서 타죽었습니다. 그들은 불 가운데로 다니면서도 어느 곳 하나 상하지 않았습니다. 거기다 한 사람은 신들의 아들처럼 보였습니다. 신들의 아들이 예수 그리스도 또는 하나님의 사자 곧 천사라는 주장이 있지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죽음을 불사하고 믿음을 지킨 세 친구들을 극렬히 타고 있던 불속에서 안전하게 지켜주셨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극렬한 불이 그들의 몸을 해하지 못하도록 지켜주셨습니다. 머리털 하나도 그을리지 않도록 지켜주셨습니다.
겉옷 빛깔도 변하지 않도록 지켜주셨습니다. 심지어 불에 탄 냄새조차도 나지 않도록 안전하게 지켜주셨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당시로서는 절대적인 권세를 행사하고 있던 군주의 추상같은 명령을 거역하고 당신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와 함께 죽음도 불사하는 순교적인 신앙을 구체적으로 실천한 세 친구를 구원해 주셨다고 고백했습니다. 이후, 하나님에 대해서 조심성이 없이 함부로 말하는 자들은 누구든지 그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겠다고 경고했습니다. 그의 집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리겠다고 경고했습니다. 세 친구에게는 한층 더 높은 직책을 맡겼습니다.
주의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세 친구에게 임했던 은혜를 일반화시키지 말아야합니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방식으로 주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똑같이 믿음의 결단을 했지만, 어떤 사람은 입 한 번 뻥긋하지 못한 채 처참한 모습으로 죽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견디기 힘든 고난의 한 복판에 던져졌습니다. 어떤 사람은 울음이 그치지 않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세 친구들처럼 훨씬 더 좋아진 환경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사람에 따라서 너무나 다른 응답이 주어졌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알 방법이 없지만 반드시 이루어져야할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은혜 안에서 값없이 부어지는 믿음을 선물로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응답해 주셔도 다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한편, 시리아Peshitta 역은 불에 타 죽은 용사들은 세 친구를 참소했던 자들이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선과 악을 정확하게 판단하십니다. 상응相應하는 복과 저주를 내려주십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는 세 친구에게 걱정하지 말고 가마솥 속으로 뛰어 들어가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반드시 지켜주겠다고 말씀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묵묵히 그들의 곁에 함께 계셨습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실상은 가장 큰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한 여인이 사랑하는 자녀를 잃는 참척慘慽의 슬픔을 당했습니다. 그法頂와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식사를 다 마칠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반찬 그릇을 간간이 여인 앞으로 옮겨놓아 주었습니다. 그렇게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슬픔을 당한 여인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위로가 되었습니다. 모든 상황이 뒤죽박죽되어 버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그 시간과 상황들을 견디도록 해주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든 귀담아 들어주는 것입니다.
흔들리는 그들의 어깨 위에 가볍게 손을 얹어놓는 것입니다. 조용히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거대한 힘으로 짓누르는 어두운 시간을 기꺼이 함께 보내주는 것입니다. “그들은 밤낮 이레 동안을 욥과 함께 땅바닥에 앉아 있으면서도, 욥이 겪는 고통이 너무도 처참하여, 입을 열어 한 마디 말도 할 수 없었다.”(욥2:13)라는 증거에 따르면, 욥을 찾아온 친구들은 너무나도 처참한 상황 앞에서 누구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그저 욥과 함께 땅바닥에 앉아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욥은 친구들의 별것 아닌 행동을 통해서 너무나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빵집 주인은 졸지에 아들을 잃은 부부와 함께 창으로 희미한 햇살이 높게 비치는 이른 아침이 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좀처럼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있어 주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형광등 아래 있었습니다. 부부에게는 그 빛이 마치 햇빛처럼 환하게 느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두려워 떨고 있었던 여호수아에게 “내가...너와 항상 함께하여...떠나지 않고...버리지 않겠다.”(수1:5b), “강하고 담대 하라. 두려워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겠다.”(수1:9b)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여호수아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위로와 격려였습니다. 가나안을 거침없이 정복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랑하는 당신을 잃고 역시 두려워하고 있었던 제자들을 향해서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28:20b)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제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위로와 격려였습니다. 성령께서 충만하게 임하실 때까지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당신 백성을 찰나刹那조차도 떠나지 않으십니다. 언제나 함께 하십니다. 동행 하십니다.
간혹 오랫동안 침묵하실 때도 있으십니다. 가장 좋은 때를 위해서입니다. 그렇다고 손까지 내려놓고 있으신 것은 아닙니다. 한순간도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십니다. 가장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침묵하고 계실 때, 자신의 삶에서 완전히 떠나신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 믿음을 내려놓기는커녕 오히려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고백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그것을 통해서 가장 좋은 때,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는 가장 좋은 열매를 더할 나위 없이 풍성하게 받아 누리는 복된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